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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스톡홀름 문화기행/

나베가 2008. 1. 11. 23:16
조용한 문화 강국
  스웨덴 스톡홀름 문화기행
  장일범음악 칼럼니스트




이 세상에서 인구 대비 합창단 수가 가장 많은 나라는 어디일까? 음악의 나라 오스트리아일까, 오페라의 종주국 이탈리아일까? 아마추어 단체 활동에 강한 일본일까? 독일? 핀란드? 미국? 정답은 스웨덴이다. Sweden(스웨덴어로는 Sverige), 이 정답을 보고 의외라고 생각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스웨덴은 인구 대비 합창단 수가 세계에서 가장 많을 뿐만 아니라 수도 스톡홀름은 유럽에서 면적당 극장이 가장 많은 도시일 정도로 문화, 예술의 저변이 폭넓고 수준이 대단히 높은 나라다.


지난여름 서울시 오페라단이 가을에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올리는 베르디 오페라‘가면무도회’의 필름 촬영을 위해 스웨덴에 다녀왔다. 객석 기자 시절 무작정 배낭여행을 떠난 지 12년 만의 일이었다. 스웨덴의 강산은 과연 변했을까? 이번에는 좀 더 찬찬히 스톡홀름 사람들이 여름을 어떻게 보내는지 또 어떻게 이들이 문화를 향유하는지 지켜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다국적의 이방인들이 많이 늘어나 무척 국제화됐다는 느낌이었고 실제 미국, 이탈리아, 스페인 등지에서 시원한 여름을 지내려고 휴가를 온 관광객들이 대단히 많았다.  


 


관객과 청중이 함께 부른 아리아    


먼저 어떤 문화 이벤트들이 펼쳐지고 있나 번화가 세르겔스 토리 광장에 있는 스톡홀름 시립극장에 들렀더니 이 시립극장은 여름 시즌에는 극장에서 벗어나 야외무대에서 페스티벌을 열고 있었다. 바로 스웨덴판 민속촌인 스칸센 바로 맞은편에 있는 자연 속의 야외 무대인 파크 테아터(공원 무대)에서 6월 8일부터 8월 26일까지 연극, 쇼, 라이브 공연, 댄스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공연이 매일 펼쳐졌는데 시민들의 참여도 따뜻하게 이뤄졌고 무엇보다 모든 공연이 무료로 시민들을 위해 열린다는 점이 역시 사회보장제도의 나라 스웨덴다워 기분이 무척 좋았다. 난 프로그램 중‘싱얼롱 오페라’라는 제목의 공연이 궁금했다.“오페라를 출연진과 관객이 함께 부른다고? 그게 가능하단 말이야?” 본능적으로 또 직업적으로 궁금해져서 도저히 보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아 버스를 타고 파크 테아터를 찾았다. 많은 사람들이 공원 무대에 모여 있었다. 입구에서 할머니 한 분이 스웨덴어로 된 악보는 없는 가사집을 나눠줬는데 유명한 오페라 아리아와 합창곡들이었다. 오페라단에서 바리톤과 소프라노가 한 명씩 나와서 선창을 하며 모인 청중들과 함께 같이 ‘히브리 노예의 합창’이나 카르멘의‘아바네라’ 같은 아리아를 합창했다. 아리아를 합창하는 청중들은 프로페셔널 싱어들이 아니었다. 노래를 좋아하는 일반 아마추어 청중들이 모여서 세계 각국의 오페라 아리아를 합창한다! 그것도 꽤 잘했다. 이건 매우 놀라운 일이었고 문화적 저력이었다. 난 이날 함께 노래하면서 스웨덴이 왜 전 세계에서 인구 대비 합창단수가 가장 많은 나라인지 이 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노래를 좋아하고 오페라를 좋아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역사와 예술 그 사이


발트해의 전통적인 강국이자 선진국인 스웨덴은 대단히 실용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뿐만 아니라 건축, 연극, 영화, 과학, 문학, 도시공학, 양성평등, 환경보존에 이르기까지 가장 앞선 국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 미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만큼이나 전통을 고수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물위의 아름다움(Beauty on water)'이라는 뜻의 바이킹어인 스톡홀름은 14개의 섬으로 이뤄진 결코 크지 않은 수도지만 아름답고도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도시다. 이 스웨덴의 수도에 사는 인구 75만(조금씩 줄어든 숫자다)의 사람들은 요즘 스칸디나비아의 뉴욕을 자처하면서 매우 패셔너블하고 트렌디하며 센스 있는 또 예술이 살아 있는 즐거운 생활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또 기독교 국가였던 스웨덴인들은 국교를 포기하는 대신 자연을 광적으로 사랑했고 자연과 문화 속에서 일상생활을 살고 있다.   
 다음날 스웨덴 최고 아니 스칸디나비아 최고의 오페라 극장인 스웨덴 로열 오페라 극장(Kungliga Operan)을 찾았다. 스웨덴 스톡홀름 로열 오페라 극장은(Operan)은 한 번 철거됐다가 그 자리에 다시 세워진 뼈아픈 역사를 갖고 있었다.
이 오페라 극장을 지은 인물은 바로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3세. 그는 1772년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던 의회의 권한을 제한하고 절대군주에 오르면서 오늘날의 강국이 될 터전을 닦았다. 구스타프 3세 치세 때 스웨덴은 과학, 건축, 예술의 꽃을 피웠고 많은 신문들을 창간했으며 신문들은 대중들의 의견을 열정적으로 싣는 등 언론 발전에도 기여했다. 지성과 감성을 겸비한 구스타프 3세는 이탈리아를 방문했을 때 자신이 사 모은 조각 컬렉션으로 구스타프 3세 앤티크 뮤지엄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예술 애호가였다.
스톡홀름 로열 오페라 극장도 1782년 구스타프 3세가 지었다. 하지만 구스타프 3세의 절대군주로서의 권력에의 집착과 집중은 스웨덴 대중이나 의회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했다. 결국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지 3년 후인 1792년 의회 의원들은 왕을 살해하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겼다. 구스타프 3세는 결국 자신이 세운 오페라 극장에서 열린 가면무도회에서 야콥 요한 앙카르스트룀 대위에 의해 뒤에서 쏜 총에 맞았고 심각한 치명상을 입게 됐다.
구스타프 3세는 베르디 오페라 속에서처럼 그 자리에서 바로 세상을 떠나지는 않았다. 1792년 3월 16일 그는 총상을 입었고 13일 후에 세상을 떠났다. 자신이 오페라 극장을 지은 지 10년 만의 일이었다. 구스타프를 살해한 앙카르스트룀은 대역죄로 스톡홀름 시내 곳곳의 광장에 묶인 채 매질을 당한 후 참수됐다. 
이 실제 있었던 스웨덴 국왕 시해 사건을 베르디는 오페라 ‘가면무도회(Un Ballo in Maschera)'로 만들기로 결심하고 이 사건에다가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앙카르스트룀 백작의 부인 아멜리아와 국왕 사이에 비밀스러운 사랑이 존재했다는 이야기를 삽입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구스타프 3세가 이 로열 오페라 극장을 지은 후 대중을 위해 모든 오페라를 스웨덴어로 공연하도록 했고 이런 전통은 20세기 들어와서 1930년대에야 깨어졌다는 사실이다. 현지에서는 이것도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기 위한 하나의 정치적인 제스처였다고 스웨덴 오페라 담당자들은 이야기한다. 구스타프 3세가 세상을 떠난 이후 이 극장은 문을 굳게 닫았다. 그러다가 19세기 말 철거냐 보존이냐를 두고 회의를 하다가 결국 재건축을 하기로 결정되어 오스카 국왕 시대에 기존의 오페라 극장을 허물고 재건축을 했다. 하지만 현재 스웨덴 사람들은 당시에 구오페라 건물을 보존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다고 한다. 스웨덴 로열 오페라 극장에 가면 극장 내부에 G와 O이니셜이 장식되어 있다. 바로 오페라 극장을 지은 두 명의 왕 구스타프 3세와 오스카의 이니셜을 딴 것이다. 그런데 이 이름은 모두 베르디 ‘가면무도회’의 등장인물이기도 하다. 구스타프는 테너 주인공인 왕이고 오스카는 시동 역인 소프라노 역이다. 게다가 주술사로 등장하는 울리카라는 이름도 사실은 스웨덴의 여왕이었으니 역대 중요한 스웨덴 국왕들의 이름을 베르디는 ‘가면무도회’에 모두 등장시켰던 것이다.
오페라 극장 구석구석을 보고 구스타프 3세가 사망했던 자리와 옮겨진 방 등을 보고 오페라 극장 출연자 출입구를 나오는데 범상치 않은 크지 않은 동상이 있어서 다가가 봤다. 아, 스웨덴을 대표하는, 스웨덴 음악사상 가장 유명한 성악가인 테너 유시 비외를링의 흉상이었다. 감동. 만감에 젖어 한동안 비외를링의 흉상과 그의 격조 높았던 노래를 떠올려보다 사진을 찍고 돌아섰다. 2007-2008시즌에는 ‘토스카’ ‘예프게니 오네긴’ 등을 올릴 채비를 하고 있었다.


예술의 도시, 스톡홀름


8월, 스톡홀름의 밤은 심심할 새가 없다. 연극, 테크노 음악, 팝음악, 록, 무용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가 하나되는 스톡홀름 서머 페스티벌이 열리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새로운 클래식 음악 페스티벌인 발트 해 페스티벌이 8월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발트 해 연안의 클래식 아티스트들이 하나가 되는 페스티벌로 핀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에사-페카 살로넨,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의 발레리 게르기예프, 에스토니아의 파보 예르비 같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총출연, 자웅을 겨루는 경쟁력 있는 축제다. 역시 일 만들기 좋아하는 워커홀릭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만든 페스티벌이다. 그는 진정한 행동가(Doer)다. 또 국왕이 살고 있는 스톡홀름 교외의 드로트닝홀름 궁전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오페라 극장 중 하나인 바로크 양식의 오페라 극장에서는 전통적으로 여름에 오페라를 볼 수 있다. 지금도 수동으로 작동되는 극장인데 올해에는 1607년 초연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오페라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 공연이 열려 오페라 팬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이외에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주요 음악 페스티벌들을 정리해보면 2월 스톡홀름 뉴 뮤직 페스티벌, 7월 스톡홀름 재즈 페스티벌을 꼽을 수 있다.        
스톡홀름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모든 건축물이 유적인 오픈 에어 뮤지엄이라고 할 수 있는 미로 같은 올드 타운 감라스탄. 가이드라인을 따라 걸어도 좋고 무작정 헤매어도 좋다. 감라스탄에 있는 구왕궁에서 정오에 열리는 경비병 교대식도 놓치지 말고 꼭 봐야 할 재미있고 멋있는 장관이다. 먼저 스톡홀름 시내 곳곳을 군악대와 경기병들이 연주를 하면서 돌아 감라스탄의 왕궁으로 경비병 교대식을 하러 들어가는데 이 군악대만 따라 돌아도 스톡홀름 관광을 거의 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코스가 괜찮으며 신나는 행진곡에 발 맞춰 군악대와 경기병들을 따라 가다 보면 아이처럼 즐거워지고 정말 신이 난다. 강력 추천! 경비병 교대식에서는 주페의 ‘경기병 서곡’도 들을 수 있다. 
조용한 문화강국 스웨덴의 하루 하루는 멋진 공연들로 즐겁다.



이 글을 쓴 장일범은 월간 <객석> 기자를 거쳐 음악 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현 KBS1-FM <장일범의 생생클래식>을 진행하고 있으며, 여러 강의와 칼럼에서 그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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