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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터너

나베가 2007. 10. 10. 10:03
페이지 터너 La Tourneuse de pages, The Page Turner (2006)
프랑스|스릴러|85분|2007-10-03

 

 

사람들이 복수를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복수하는 방법이 잔인할수록  그 이유는 절절하기 마련이다. 예외가 있다면 어김없이 ''네가 이렇게 할 만큼 내가 잘못했니?''라는 피가해자의 항변이 튀어나오기 마련이고.

 

영화 킬 빌의 블랙 맘마(우마 서먼)는 자신의 결혼식날 총탄세례를 받아 수 년간 혼수상태에 빠졌고, 잘못 알긴 했어도 임신한 아기마저 잃었고, 올드 보이에서 이우진(유지태)는 자기 누이의 명예훼손과 죽음을 겪었다. 친절한 금자씨(이영애)는 아동 유괴 및 살인죄를 혼자 뒤집어 썼다. 그럼  멜라니(데보라 프랑수아)는?

 

영화 페이지 터너(감독 드니 데르쿠르)는 멜라니가 음악학교 입학시험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시작한다. 심사위원인 아리안(캐서린 프로트)이 팬에게 사인을 해주느라 주위를 분산시키는 바람에 멜라니는 실수를 저지르고 시험에서 떨어지고 피아니스트로 사는 길을 접는다.

 

한국 문화에서 복수는 '권선징악'이라든가, '정의는 이긴다'는 신화 속에서 나온다. '인과응보'와 '사필귀정' 차원 문제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멜라니의 복수는 ''내가 이렇게 파멸될 만큼 너한테 잘못했니?''라는 말을 불러오기 딱 알맞다.

 

멜라니가 복수를 결심하게 된 이유가 블랙 맘마, 우진, 금자가 복수를 다짐하게 된 원인과 매우 다른 만큼 멜라니가 복수하는 방법도 그들 것과는 사뭇 다르다. 화면을 핏빛으로 물들이며 복수라는 행위가 한풀이의 향연이기 마련인 전형화한 복수 영화와는 달리, 페이지 터너에서 멜라니의 행동은 정적이고 말 그대로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아리안의 저택과 어울려 서정적이기까지 하다. 소리 없이 그림만 본다면, 그림 없이 소리만 듣는다면 복수라는 행동이 있었는지 모르고 지나갈 판이다.

 

카메라 앞에만 서면 울렁증이 있다고 농담 반 진담 반 섞어 말하는 코메디언, 사람 만나길 꺼리는 기자, 무대 위에 서는 게 고역인 연주자. 역설적인 것 같아도, 이 또한 현실이다. 코메디언은 사람을 웃기는 것에, 기자는 취재하고 글쓰는 것에, 연주자는 연주에 몰두하지, 부수적인 것 하지만 본질적인 사람과 사람 간의 교감에 대해선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그걸 강조하는 이도 별로 없고. 그 부수적인 게 어느 순간 그 사람의 발목을 붙잡는데, 멜라니는 그 순간을 노렸다.

 

악보 넘기는 사람이란 뜻을 지닌 페이지 터너에겐 지켜야 할 수칙이 있다. 피아니스트와 완벽하게 호흡을 맞춰야 하고, 피아니스트를 방해해선 안 된다. 멜라니는 이 수칙을 충실히 지킨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덕분에 아리안은 멜라니를 분신처럼 여기고 그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만다. 사람의 몸에 비교하면, 아리안은 머리고, 멜라니는 머리를 받치는 목이다. 그런데, 머리를 받치는 목이 아니라 목이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머리라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단지 자기 일에 충실했을 뿐인데, 그게 잔인한 복수인 게다.

 

멜라니가 아리안뿐 아니라 주변 환경을 파괴하면서 아리안에게 철저히 복수하는 과정도 한 맺힌 자의 처절한 몸부림이 아니라, 각자가 갖고 있는 열등감, 억제된 욕망에 자유를 준 것에 불과하다.

 

어린 트리스탄에게 바흐 음악은 무리다. 이는 트리스탄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에겐 부모에게 자기 피아노 실력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다. 트리오의 멤버인 첼리스트. 그는 유부남이다. 일부일처제를 받아들인 문명사회에서 아내 이외의 사람에게 눈길을 돌리는 행위는 불륜임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리안의 페이지 터너에 대한 욕정이 있다. 인간에겐 양성애의 본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고대 서양 철학자들 가운데는 동성애자(자식은 낳았으니 양성애자)가 많았다. 현대사회에서 동성애를 이해한다 해도, '결혼'한 아리안에게 동성애는 금기일 뿐 아니라 불륜이다.

 

멜라니는 사람들이 열등감, 욕망을 억제하고 있는 이성이란 제동장치를 풀려할 때, 그걸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고 방관한다. '페이지 터너의 도움을 빌지 말고, 악보를 암기하란 말이야! 토스카니니, 카라얀은 악보를 외워서 거대한 교향곡을 지휘했어!',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체르니나 쳐! 바흐에 도전한답시고 시건방 떨지말고!', '당신 이러는 거 성추행이라는 범죄행위라는 거 알지?' 한 마디만 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또 멜라니가 아리안에게 처음 키스했을 때 뺨을 한번 후려쳤으면 아무 일 없었을 게다. 그런데 멜라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리안은 가만히 있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바로 복수가 되는 행동은 자기가 도살되는 것도 모른채 고통없이 도살되는 장자의 우화 속 황소를 떠올리게 한다.

 

새 하얗게 칠해 순결해 보이는 대 저택 안에서는 연주자의 열등의식과 어린이의 과욕, 일부일처제에 대한 반감이 들어있었다. 마치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사람이 아무도 모르는 곳에선 온갖 타락된 짓을 서슴지 않는 위선처럼 새 하얀 저택에는 사람들이 억누르는 온갖 욕망이 숨겨져 있는 게다.

 

결국 복수라는 게 자신이 억누르고 한편으론 애써 모른 척하고 있는 욕망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존 복수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나 대리만족의 쾌감, 죄 짓고 살면 안 된다는 인과응보와 같은 교훈 대신 찜찜한 뒷맛이 남는다. 향기 가득한 커피를 마시고 난 뒤 혀 안에 남아있는 깔깔하고 쓴 맛처럼 말이다.

 

쇼스타코비치의 Trio No.2 for Violin, Cello & Piano in E Minor, Op. 67

 

 

 

피아노, 첼로, 바이올린 트리오, Op. 87 <쇼스타코비치>

음악학자 솔레르틴스키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만든 곡

 

 

 

영화음악들은 대부분 단조 곡으로, 단조 특유의 낮고 우울한 분위기 연출하면서 영화의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삽입된 곡들 중 특히 아리안의 연주회에서 연주된 쇼스타코비치의 곡 ‘Trio No.2 for Violin, Cello & Piano in E Minor, Op. 67’음악학자 솔레르틴스키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만든 곡으로 비장함과 슬픔, 고통, 연민이 묻어난다. 이는 마치 아리안의 비극적 결말을 암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Music 2.

바흐의 클라비어 평균율2권

 

 

 


prelude / Glenn Gould, piano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바흐의 피아노곡은 건반의 구약성서라 불리는 클라비어 평균율’ 2권 중 6번 곡이다. 이 곡은 연주가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쉴 새 없이 건반을 두드려야 하기 때문에 연주자들의 손가락, 손목 등에 무리를 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혹적인 피아노곡이지만 멜라니의 복수를 위해 그 어떤 것보다 안성맞춤인 곡

 

드니 데르쿠르 감독의 탁월한 음악적 재량을 확인하라!

<페이지 터너>의 영화음악들은 엘레강스 스릴러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시종일관 긴장감 넘치고 우아한 무드를 유지하며 관객들을 영화에 몰입하게 만든다. 음악가 출신 감독다운 드니 데르쿠르의 탁월한 능력을 확인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페이지 터너 수칙

1 피아니스트와 완벽하게 호흡을 맞출 것

 

악보를 넘기는 사람이 연주 전체를 망칠 수 있다는 호로비츠의 말처럼 페이지 터너의 악보 넘기는 타이밍이 연주의 성패를 가를 수 있다. 악보를 빨리 넘기거나, 너무 늦게 넘길 경우 연주의 흐름을 끊어 연주를 망칠 수 있으므로 피아니스트와 완벽히 호흡을 맞춰야 한다.

 

2. 피아니스트를 방해하지 말 것

 

페이지 터너는 단 한 순간도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악보를 넘길 때 연주자를 가린다거나 부산한 행동으로 연주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행동은 절대금물. 페이지 터너의 숨소리에 영향을 받는 피아니스트도 있으니 언제나 조심히 행동해야 한다.

 

3. 무대 위의 주인공은 연주자

 

어디까지나 무대는 연주자를 위한 공간이다. 페이지 터너는 연주자들 보다 튀는 옷을 입어서도, 화려한 액세서리를 착용해서도 안 된다. 연주자 다음에 무대에 올라야 하고, 연주가 끝난 후 박수갈채가 쏟아질 때도 의자에 앉아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