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클래식(2007년)

알랑 플라텔 & 벨기에 쎄드라베 무용단 <저녁기도>/2007.5.26/LG아트센터

나베가 2007. 5. 26. 09:46

 

 

알랑 플라텔 & 벨기에 쎄드라베 무용단
<저녁기도>


“마지막 20분의 장면 - 그 어떤 공연도 이보다 더 감동적일 수 없다.”
- Ballet-tanz, 독일

엑스터시에 오른 육체들이 부르는 합창!
무아지경 상태에서의 격렬하고 거침없는 움직임이 주는 강렬한 감동!
벨기에의 대표 안무가 알랑 플라텔의 명성을 확인한다.

벨기에 쎄드라베 무용단의 창시자이자 이 단체의 현재 명성을 있게 한 장본인, 안무가 ‘알랑 플라텔’이 그의 최신작 <저녁기도>로 한국 관객들과 처음 만난다. 알랑 플라텔은 인간들의 일상적인 움직임을 무대로 끌어 들여 가장 독특하고 흥미로운 댄스시어터 작품들을 선보이며 젊은 안무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대표 안무가 중 하나이다.

10명의 무용수, 10명의 연주자들과 함께 만들어 낸 알랑 플라텔의 최신작 <저녁기도> (2006년 초연작)는 가장 숭고한 신앙심의 표현으로 여겨지는 곡인 몬테베르디의 <성모 마리아의 저녁기도(Marian Vespers)>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작품으로, 정신과 의사가 촬영한 이성 잃은 환자들의 움직임을 담은 영상자료를 또 다른 출발점으로 삼았다. 알랑 플라텔은 이 두 가지 안에 ‘자기 통제력을 잃을 정도의 극단적 감정에 이른 상태’라는 공통의 연결고리가 있다고 포착한 것이다. 알랑 플라텔은 재즈, 집시, 바로크 연주자들을 통해 하늘의 음악으로 여겨지는 몬테베르디의 음악을 현대적으로 완전히 새롭게 편곡/연주하게 하고, 모든 관절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무용수들에게서 자기 통제력을 잃은 사람들의 움직임을 발전시킨다. 매번 작품 특성에 맞게 무용수를 새로 선발하는 쎄드라베 무용단이 이번 작품 <저녁기도>를 위해 불러 모은 무용수들은 서커스의 기예를 방불케 하는 유연한 움직임과 엑스터시에 오른 듯 무아지경에서의 발작과 비틀어진 움직임으로 강력한 힘을 발산한다. 또한 간절하게 무언가를 계속 얘기하려고 하고, 그 너머에 무언가 있는 듯 손에 손을 잡고 무대 뒤에 있는 하얀 산을 힘겹게 오르는 무용수들의 애처로운 모습은 현대인의 일면까지 절묘하게 교차시킨다.

과연 무엇이 아름답고 무엇이 추하며, 무엇이 신성하고 무엇이 저속한가 일그러진 움직임을 통해 강렬한 감동을 끌어내고, 이질적인 요소들을 직조해서 절정의 순간까지 끌고 가는 탁월한 연출력은 대가로서 알랑 플라텔의 명성을 실감케 한다.

“알랑 플라텔의 무용수들은 타고난 예술가들이다. 그들은 모든 경계를 부수는 작품을선보이며 우리를 기겁하게 하고 고무시키고 동시에 감동시킨다.”  - Financial Times

 

 

벨기에의 안무가 ‘알랑 플라텔’이 그의 최신작 저녁기도로 한국 관객들과 처음 만난다.
안무가들의 작업 공동체로 유명한 쎄드라베 무용단은 2004년 이 단체의 다른 안무가 시디 라르비의 <믿음>으로 내한(LG아트센터 기획공연)해서 강한 인상을 남긴 바 있으나, 이 무용단의 창시자 ‘알랑 플라텔’의 작품은 이번에 처음으로 한국 관객들에게 소개된다.

알랑 플라텔(1956년생)은 인간들의 일상적인 움직임을 무대로 끌어 들여 가장 독특하고 흥미로운 댄스시어터 작품들을 선보이며 젊은 안무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대표 안무가 중 하나이다. 특히 현대 사회와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과 같은 그의 작품들은 관객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며 깊은 감동을 선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10명의 무용수, 10명의 연주자들과 함께 만들어낸 알랑 플라텔의 최신작 <저녁기도(2006년 초연)>는 바흐와 모차르트 음악에서 모티브를 얻었던 전작들에 이어 이번에는 가장 숭고한 신앙심의 표현으로 여겨지는 곡인 몬테베르디의 <성모 마리아의 저녁기도(Marian Vespers)>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작품이다. (16세 때 무더운 여름 날 벨기에 겐트의 어느 성당에서 처음 이 곡을 들었던 때의 인상이 너무 강렬했다고 한다.) 동시에 정신과 의사가 촬영한 이성을 잃은 환자들의 움직임을 담은 영상자료를 또 다른 출발점으로 삼았다. 알랑 플라텔은 이 둘 모두 ‘자기 통제력을 잃을 정도의 극단의 감정상태에 이르러 있는 상태’라는 공통의 연결고리가 있다고 포착한 것이다.

알랑 플라텔은 재즈, 집시, 바로크 연주자들을 통해 하늘의 음악으로 여겨지는 몬테베르디의 음악을 현대적으로 완전히 새롭게 편곡/연주하게 하고, 모든 관절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무용수들에게서 자기 통제력을 잃은 사람들의 움직임을 발전시키게 한다. 매번 작품 특성에 맞게 무용수들을 새로 선발하는 쎄드라베 무용단이 이번 작품 <저녁기도>를 위해 불러모은 무용수들은 서커스의 기예를 방불케 하는 유연한 움직임과 엑스터시에 오른 듯 무아지경에서의 발작과 비틀어진 움직임으로 강력한 힘을 발산한다. 또한 간절하게 무언가를 계속 얘기하려고 하고, 그 너머에 무언가 있는 듯 손에 손을 잡고 무대 뒤에 있는 하얀 산을 힘겹게 오르는 무용수들의 애처로운 모습에서는 현대인의 일면까지 절묘하게 교차된다.

과연 무엇이 아름답고 무엇이 추하며, 무엇이 신성하고 무엇이 저속한가?
일그러진 움직임을 통해 강렬한 감동을 끌어내고, 이질적인 요소들을 직조해서 절정의 순간까지 끌고 가는 탁월한 연출력은 대가로서 알랑 플라텔의 명성을 실감케 한다.
또한 성공적으로 벨기에 현대무용계에 진출한 한국인 무용수 예효승의 모습도 만날 수 있는 반가운 무대이다.

 

 

 

 


* 안무/연출: 알랑 플라텔(Alain Platel)


‘결국 알랑 플라텔은 무엇을 표상하는가? 명확한 답은 없다.
그의 세계는 양이나 늑대, 남자나 여자로 나눌 수 없다.
또한 그 무엇도 항상 아름답지만은 없다. 결코 양자택일할 수 없다.
그는 대립되는 것을 끌어 안고 양극단의 것들을 한 데 결합시킨다.
그는 “모두/그리고(both/and)”이다. 모든 것이 동시에 존재한다.
이러한 조합에서는 승자나 패자도 없다.
이러한 지속적인 대립은 그의 작품의 무한한 부의 원천이 된다.’
- 벨기에 쎄드라베 무용단의 ‘알랑 플라텔’ 소개글에서



벨기에 현대무용의 큰 이름이자,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명성을 얻고 있는 현대 안무가, 알랑 플라텔. 그는 동물과 어린이들, 무용수, 장애인, 곡예사, 연주자들이 무대에서 함께 뛰놀고 다국적 공연가들이 각자 자신의 모국어로 얘기하는, 또 하나의 작은 사회를 무대에서 구현해 내며 이 시대 가장 흥미로운 댄스시어터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본래 전문치료교사 교육을 받은 알랑 플라텔은 정식 무용교육을 받지 않고 대신 예술가들과 무용단들과의 현장작업을 통해 안무와 연출을 익혔다. 그리고 1984년 가까운 친지/친구들과 함께 공동 작업을 위한 작은 단체를 세우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쎄드라베 무용단이다. 이곳에서 만든 <엠마 Emma>(1988)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연출/안무작업에 몰두하게 된 그는, 이후 <봉쥬르 마담 Bonjour Madame>(1993), 'La Tristeza Complice'(1995), <바흐에 관한 무엇 Iets op Bach>(1998) 등의 작품들을 통해 쎄드라베 무용단을 국제적으로 가장 큰 주목을 받는 단체로 단숨에 비상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벨기에 겐트의 청소년 극단 ‘빅토리아(Victoria)’를 위한 작품제작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이곳에서 제작한 세 편의 연극작품들(<어머니와 아이 Moeder en Kind)>(1995), <베르나데체 Bernadetje>(1996), <모두가 인디안 Allemaal Indiaan>(1999)) 또한 국제적으로 큰 찬사를 받으며 그의 명성을 더한다.

이처럼 알랑 플라텔은 자신의 무용단인 쎄드라베 무용단의 작업만을 고집하지 않고 다양한 규모와 형식의 작품들을 즐겨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앞서 언급한 청소년 극단(빅토리아) 뿐 아니라 아마추어 극단과의 작업에도 활발히 참여하고, 공연장/전시장을 벗어나 작품을 공연하는 운동을 벌이는 민간예술재단 ‘아트엔젤ARTANGEL’과의 작업에도 참여했으며, 고음악 연주단인 ‘익스플로레이션 앙상블(Ensemble Exploration)’뿐 아니라 현대음악 연주단인 ‘클랑포룸 빈(Klangforum Wien)’ 등과도 공연하는 등 그의 활동경향을 한 가지 틀로 결코 가둘 수 없다. 쎄드라베 무용단만 보더라도 현재는 그를 포함해 세 명의 안무가(크리스티네 드 슈메트, 코엔 아우구스티넨)가 서로 간섭하지 않고 각기 다른 색깔의 작품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데, 이렇게 “누구나 무엇이든 할 수 있다(everyone can do everything)”라는 모토를 확립시킨 것이 바로 알랑 플라텔이다. (본래 안무가 시디 라르비 셰르카위까지 모두 네 명의 안무가가 있었으나 셰르카위는 2005년부터 독립했다.)

그의 작품들을 보면 마치 일부분만이 그 자신의 마음 속에서 나온 것처럼 보인다. 그는 리허설 작업을 시작하는 지점에서는 자신의 의견을 아주 조금만 제시하는 대신 무용수들의 선택을 통해 작품의 윤곽을 그려 나간다. 다양한 개성과 경험, 문화적 배경, 연령을 지닌 무용수들을 선택하는 목적은 바로 서로 다른 특성이 공존하는 이 현실세계를 무대 위에서 그대로 창조해 내기 위함이다. 이렇게 열려 있는 작업과정과 긴 리허설 과정 동안 개개별 재료들이 무언가로 발전되어 가도록 기꺼이 기다리는 그는 마치 진주조개를 채취하는 잠수부처럼 보물들을 낚아내고,목걸이를 엮어낸다. 그는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는 다양한 재료들을 한 데 엮어내는 작업에 대가이며 무질서와 혼돈을 조직하는 탁월한 기술의 소유자이며, 공동 작업은 결국 국제적인 큰 찬사를 받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그들만의 작품들로 탄생하게 된다.

예술가들간의 자유로운 교류를 통해 항상 깨어있는 창조 정신을 이어나가고 있는 ‘쎄드라베 무용단’의 명성과 저력은 그 무엇이든 자신 안에서 수용하고 한 데 녹여내는 알랑 플라텔에게서 솟아 나오고 있다.

 

공연후기...

 

공연후기를 쓴다는 것이...

처음 기 공연을 접했을때 만큼...아니 훨씬  그 이상으로 힘이 든다.

춤과 연극이 하난로 된 <댄스 시어터>란 장르부터가 내겐 낯설고 생소한 현대무용 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알랑 플라텔>이 추구하고자 했던 주제 자체가 워낙 난해하고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몬테베르디>의 <성모마리아의 저녁기도>한 곡에서 받는 느낌... 한없이 평화롭고 성스러운...

거기에 정신병동의 환자들의 움직임을 접목시켜서 인간의 한계-엑스터시를 표현하려고 했다는거 자체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가, 왠지 엽기적(?)일것 같은 예감이 들기도 했다가...

그래서 연초에 자유패키지 선정을 할때 넣었다 뺐다를 몇번이나 반복했던 <저녁기도>였던 것이다.

 

"에잇~ 한번 봐 보는거야!'

평범한 우리들이 쉬이 접근할 수 없는것에서 예술가들은 어떻게 그것을 작품으로까지 승화시킬 수 있는가 느껴보고 싶었다.

특히 프리뷰에서 눈길을 잡았던 <그들의 마지막 20분 동안의 엑스터시에 사로잡힌 육체><무아지경..><감동...>

이런 단어에 유혹당하고 말았다.

 

커튼이 내려져 있는데도 밖으로 흰 천조각 같은것이 무대 가장자리로 널부러져 나와있는...

밖에까지 확대시킨 무대 셋트가 먼저 눈길을 끌었다.

그러면서 옛날 2003년에 보았던 <피나 바우쉬>의 <마주르카 포고>때 객석 앞으로 한참을 나왔던 무대셋트가 오버랩되어

그때의 감동에 설레임이 생겼다.

 

드디어 커튼이 올려졌다.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것과 같은 하얀천으로 무대 뒤 전체를 커버한 거대한 <산>이 시선을 제압했다.

그 한켠에 흰옷을 입어 언뜻 눈에 띄지않는 보컬을 포함 10여명의 연주자들이 있고, 높은 산 언저리에 검은 원피스에 선글라스,

눈길을 확 끈 <빨강색 스타킹>을 신은 여자가 누워있다.

그리고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

 

익숙한 아름다운 몬테베르디의 선율에 사로잡혀 있는 사이, 벌써 그 검은 양복의 사나이는 다 벗어던지고 와이셔츠와 흰 팬티

차림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또 한켠에선 거대한 딱딱한 빵을 들고 힘겹게 뜯어서 반은 바닥에 흘리면서 먹고 있었다.

이미 예측했듯이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다.

그렇게 빵을 뜯던 사나이는 순식간에 하얀 산 속으로 뚫고 사라졌다.

그리고 출연한 한 여인...

연속 무어라 소리치고 지껄여 대며 무대를 헤메고 다녔다.

잘 들어보니...한국말로 지껄인다.

이 뜻모를 행위들의 연속에, 그리고 그녀의 어눌한 한국 말의 외침에 객석들 소리죽여 킥킥댔다.

 

어느사이 또 흰 팬티의 사나이는 양복을 다 차려입은 멀쩡한 신사로 되있었다.

이윽고 10명의 무용수들이 제각각 옷을 입고 무대로 나와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을 끌었던 작고 깡 마른 여자 무용수와 그녀 상대남자 무용수....

쉼없이 꼬고 비틀리고 엉켜 붙었다가 어느사이 풀어져 있고..

오랜시간 동안 그 둘은 그렇게 무대를 장악하며 신음하며 구르고 기어 다녔다.

정상적인 인간이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행위....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 연체동물 같았다.

 

그 연체동물은 100분이 넘는 공연시간 내내 그렇게 비틀렸다.

하얀 산에도 거침없이 기어 올라가고 매달리고...

도대체 이들은 춤을 추는건지, 기예를 하는건지...곡예를 하는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곡예를 하듯 뒤로 젖혀있는 그녀의 가녀린 배위로 남자 무용수가 올라서기도 하여

숨죽였던 객석에서 신음소리를 다 냈다.

 

듀엣으로 나와서 춤을 추던 무용수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격렬해지기 시작했고 보컬이었던 여자도 어느새 무대에 나와

무용수들과 하나되어 소리도 치고 행위도 하고 했다.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 지...그들의 행위를 잘 이해하지는 못해도 어느샌가 우리도 그들의 행위속으로 빨려 들어가 하나가 되고 있음을 느꼈다.

 

무대가 서서히 어두워졌다.

그리고 하얀 산 속에서 조명이 뿜어져 나와 무대를 가득 메운 거대한 산이 부각되었다.

두어명의 연주자가 슬그머니 하얀 산의 문을 밀치고 퇴장을 했다.

이어서 관악기파트...첼로..드럼이 소리없이 다 나가고...보컬과 바이올린만이 남아서 광기에 오른 소리를 내주고 있다.

조짐이 느껴졌다.

그 20여분의 광기에 오른 인간의 육체가 보여질거라는 걸...

 

퓨리뷰에 실렸던 것...인간의 극한 상태 엑스터시에 다달은 육체는 어떠한 것일까...

긴장감이 돌아 몸을 바짝 앞으로 당겨앉았다.

내 앞자리 옆자리 ..모두에게서도 긴장감이 느껴졌다.

 

무용수들은 극한 상태의 음악에 맞추어서 일제히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 행위는 점점 가속도가 붙어서 자신의 몸을 때리는 자학까지...통제할 수 없을 만큼 극한으로 치달았다.

급기야 그들은 옷을 벗어 재낀다.

윗옷을 잡아 끌어 올리고...아랫도리를 끌어 내리고...바닥에 엎드려 발버둥치고...

극한 엑스터시 상태에서 내뿜는 격한 신음소리를 내뱉고...

 

이미 자기 통제력을 잃은 이들의 행위는 마치 성적인 자위행위를 보는 듯 했다.

정말이지 무용수들의 이러한 광기어린 행위는 20여분 동안 단 1초도 멈춤없이 계속되었다.

나는 그들이 진짜 광기에 사로잡혀 있다고 느꼈다.

인간으로선 도저히 한 순간도 멈춤없이 그렇게 오랜시간 동안 그 광기속에서 버틸 수가 없다고 생각들기 때문이다.

 

이제 끝까지 경험한 상태...엑스터시 후...그들은 하나씩 하나씩 쓰러졌다.

편안함이 느껴지는 순간...

하얀 산 한켠에 화면이 뜨면서 나타난 한 남자는 표정을 수없이 바꿔가면서 무언가 계속 말을 하다가 사라졌다.

그 사이 살아남은 자들은 그들을 일으켜 세우려고 안깐힘을 썼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살아남은 자들은 그들을 질질 끌고 하얀 산 위로 오른다.

오르다가 떨어지기를 반복...서로 잡아끌고 밀어주면서...

그리고 커튼은 서서히 내려졌다.

 

객석의 반응은 그리 뜨겁지 않았다.

나역시 광기에 사로잡힌 그들의 20여분의 행위에 몽롱한 상태였으니까...

어쩌면 프리뷰서 읽었던 그 엑스터시에 오른 인간의 육체가

이런 광기에 사로잡힌 성적인 엑스터시가 아닌 뭔가 절정에 다달은 아름다움을 기대했었는 지 모르겠다.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

프로그램도 없이 이 난해한 댄스 시어터를 보았으니...

로비에 가서 프로그램을 하나 살까 생각들었지만, 그만 순식간에 지하 1층까지 내려와 버렸다.

'그래...그만두자. 그냥 내 느낌만큼만...'

 

스타벅스 커피를 한잔 시켜 자리에 앉았다.

바닐라 향과 어우러진 커피향이...그리고 입안을 감도는 그 뜨거움이 좋았다.

그리고 계속 가시지 않고 머릿속을 맴도는 단어들...

 

엑스터시...

그 후...

죽음...

상실...

신앙..

사랑...희생...죽음

 

<알랑 플라텔>은 몬테베르디의 음악에서 극도의 신앙상태를 느꼈고, 정신병동의 환자들의 움직임에서 인간의 극한 상태를 발견

했다 한다.

이 둘의 이질적인 것에서 그는 무언가에 사로잡혀 잠재력을 잃은 극단상태의 사람들을 보았고,

이들을 통해 종교의 문제와 본질을 다뤄보려 했다.

자제력을 상실한 우리들는 무엇을 찾고 있는것인지..

극단의 상태에 빠져있는 종교는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 줄수 있는 지...

 

사실 무엇을 표상하는지 답이 없고, 그의 세계는 양과 늑대, 남과 여를 나눌 수도 없고,

그 무엇도 항상 아름다울 수 없고, 양자 택일 할수도 없다. 양극단의 것을 한데 결합시킨 상태,

따라서 그의 세계는 <모두/ 그리고>가 맞는 말인거 같다.

그리고 모든것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도...

숭고한 종교에서 얻는 엑스터시나 정신병자의 육체에서 얻어지는 엑스터시나...

 

순수함..

본질...

육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