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 클래식 2015년)

서울시향/브람스 피아노 협주곡과 드보르자크 신세계/3.14.토.pm8시/예술의전당

나베가 2015. 3. 13. 01:48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과 드보르자크 신세계

 

2013년 세계무대에 큰 소식을 알린 이스라엘의 신예 예술가 두 명이 서울시향 무대에 처음 오릅니다. 지휘자 라하브 샤니는 이 해 밤베르크 교향악단이 주최하는 구스타프 말러 국제 지휘 콩쿠르에 우승하며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같은 해 피아니스트 보리스 길트버그는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 우승했습니다. 알고 보면 두 사람은 명교사 아리에 바르디 문하에서 함께 수학한 ‘절친’ 사이. 라흐마니노프 스페셜리스트로 알려진 길트버그는 이번에 두텁고 무거운 질감의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선보입니다.

지휘 라하브 샤니 Lahav Shani, conductor
피아노 보리스 길트버그 Boris Giltburg, piano


[프로그램]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 Brahms, Piano Concerto No. 1, Op. 15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신세계에서’ Dvorak, Symphony No. 9 ‘From the New World’

지휘 라하브 샤니 Lahav Shani, conductor
이스라엘의 지휘자 및 피아니스트인 라하브 샤니는 2013년 밤베르크 교향악단이
주최하는 구스타프 말러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2013/14 시즌 첫 공연에 초대 받아 말러 교향곡 1번, 바흐
건반 협주곡 D단조 등을 포함하여 7개의 공연을 지휘하였다. 글로브지는 “현란했던
공연으로, 이스라엘 필하모닉의 역사적인 공연으로 기억될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2013년 11월 구스타보 두다멜을 대신해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알테 오퍼에서의
공연을 포함하여 밤베르크 교향악단의 3개 공연을 성공적으로 지휘했다. 2014년
6월에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와 베를린 필하모니 공연장에서 마하엘 길렌을 대신해
베를린 슈타츠카펠레를 지휘했다. 향후 2개 시즌 동안 그는 서울시향 및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네덜란드 라디오 필하모닉, 필하모니아 관현악단, 체코 필하모닉,
프랑크푸르트 라디오 심포니, 쾰른 귀르체니히 오케스트라, 밤베르크 교향악단,
하노버 북부독일 방송관현악단, 뒤셀도르프 교향악단, 버밍엄시 교향악단, 밴쿠버 교향악단, 바젤 교향악단, 베를린 콘체
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등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예정이다. 1989년에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태어난 그는 6살에
피아노를 공부하기 시작했으며, 텔아비브의 부크만 메타 음대를 졸업하였고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음악원에서 지휘와
피아노를 공부하고 있다. 최근에는 다니엘 바렌보임으로부터 멘토링을 받았다. 이스라엘 필하모닉과의 관계는 2007년
주빈 메타의 지휘로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하며 시작됐으며, 2010년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이스라엘 필하모닉의
아시아 투어에 솔로 피아니스트, 부지휘자, 더블 베이스 연주자로 참가했다.

피아노 보리스 길트버그 Boris Giltburg, piano
보리스 길트버그는 1984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5세부터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스라엘로 이주해 텔아비브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아리에
바르디를 사사했다. 2013년 브뤼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하였으며 이후
몇 달 동안 비엔나 무지크페라인,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런던 사우스뱅크센터,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콜론 극장, 콜마 페스티벌 등에서 시애틀 심포니,
런던 필하모닉,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등과 연주했다. 퀸 엘리자베스 수상 전
그는 2002년에 산탄데르 콩쿠르에서 대상을 받았고, 2011년에 루빈스타인 콩쿠르
2등 상과 클래식 협주곡 상을 받았으며,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이스라엘 필하모닉,
도이치 심포니,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 스웨덴 방송교향악단, 덴마크 방송교
향악단, 인디애나폴리스 심포니 등과 협연하였다. 2010년에 BBC 프롬스에 데뷔하
였고 툴루즈 카피톨 오케스트라와 함께 독일 투어를 했다.
EMI 음반사의 데뷔 음반을 시작으로 2012년에는 오키드 클래식스에서 호평을 받은 프로코피에프의 ‘전쟁 소나타’ 음반을
출시했고, 이 음반은 ‘클래시컬 브리츠’ 평론가상 최종 후보자 명단에 올랐다. 2013년 낭만주의 소나타 음반(라흐마니노프,
리스트, 그리그)은 그라모폰으로부터 “웅장하게 관객을 사로잡는 기교와 따뜻하고 서정적인 표현이 가득한 해석을
보여주었다”라는 찬사를 이끌어 냈다. 2014년에는 낙소스 음반사와 장기적인 녹음 계획을 시작했고, 2015년 봄 첫 음반이
출시된다.

 



치열하게 준비한 새로움
14일 공연에 오르는 두 곡은 각각 ‘처음’과 ‘새로움’의 가슴 두근거림을 담고 있다. 브람스의 첫 번째 협주곡이자
첫 관현악곡인 피아노 협주곡 1번 D단조, 그리고 신세계를 경험하고 새로운 것에 감화된 드보르자크 미국 체류기의 결과물인
교향곡 9번 E단조 ‘신세계에서’. 지휘자 라하브 샤니와 피아니스트 보리스 길트버그도 이번이 첫 서울시향 무대다.
그들이 들려줄 신세계가 궁금하다.
글 황장원(음악 칼럼니스트)


요하네스 브람스 (1833~1897)
피아노 협주곡 1번 D단조, Op. 15(1858)
<연주시간: 44분>
이것은 브람스의 첫 번째 협주곡이자 첫 번째 관현악 작품이다. 또한 기나긴 작곡 과정으로
유명한 그의 첫 번째 교향곡에 이르기 위한 시행착오의 과정에서 탄생한 노작이었다. 일단 이
협주곡의 유래를 더듬기 위해서 185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그 해 2월에 브람스의 멘토
였던 슈만이 자살을 기도했고, 그 소식을 들은 브람스는 곧바로 뒤셀도르프로 달려가서 슈만
가족을 위로하고 도와주었다. 이 사건은 결과적으로 클라라를 향한 브람스의 마음이 애틋한
연정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 해 3월(또는 4월), 브람스는 친구 요아힘에게 편지를 보내 3악장으로 된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를 완성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처음에 브람스는 이 소나타를 바탕으로
교향곡을 작곡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우선 제1악장을 관현악곡으로 고쳐 써서 요아힘과 클라
라에게 비평을 구하기도 했다. 친구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었지만, 워낙 자신에게 엄격한 성품
이었던 브람스는 그 과정에서 악곡의 결함과 관현악법의 미비점을 발견하고 계획을 변경했
다. 그리고 1855년 2월에는 클라라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쓰기에 이른다.
“제가 밤에 어떤 꿈을 꾸는지 상상해 보십시오. 저는 좌절된 교향곡을 피아노 협주곡으로 전
용하고 그것을 연주했습니다. 제1악장도 스케르초도 피날레도 무척 어렵습니다만, 저는 아주
의욕이 넘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피아노 협주곡의 작곡은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되었다. 결국 1856년 여름에 슈만이
세상을 떠났고, 그 해 가을이 되어서야 브람스는 그 제1악장을 클라라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
두 사람은 그것을 두 대의 피아노로 몇 번 연주하기도 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30일의 편지
에서 브람스는 클라라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렸다.

 


“요 며칠 저는 협주곡의 제1악장을 정서했습니다. 요아힘은 마지막 악장을 무척 기대하고 있
지요. 지금은 당신의 아름다운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데, 그것은 아다지오가 될 것입니다.”
이 편지에서 ‘클라라의 초상’으로 언급된 아다지오 악장은 이듬해 1월에 완성되었다. 브람스
는 그 악보를 요아힘에게 보내 비평을 구했는데, 그때 브람스는 악보에 라틴어로 “주의 이름
아래 오는 자에게 축복 있으라”는 기도문을 기입했다. 혹시 그는 이 악장에 슈만에 대한 경의
와 클라라에 대한 위로를 담고자 했던 것이었을까? 하지만 나중에 이 문구는 삭제되었다.
한편 마지막 론도 악장이 확정된 것은 1857년 5월이었다. 그러나 브람스는 1858년 2월까지
요아힘과 의견을 주고받으며 계속해서 오케스트레이션을 보완하고 세부를 수정했다. 결국
완성된 협주곡이 처음으로 시연된 것은 1858년 3월 30일, 하노버 궁정극장에서였고, 공개 초
연은 다시 해를 넘긴 1859년 1월 22일에 가서야 이루어졌다.
브람스가 첫 협주곡의 완성에 이토록 오랜 시간을 소요했던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
엇보다 애초에 포부가 지나치게 컸던 탓을 들 수 있을 듯하다. 물론 슈만의 부담스런 격려와
베토벤에 대한 경외심이 그를 필요 이상으로 압박하거나 고무시켰던 측면도 분명 있었을 것
이다. 하지만 관현악 장르에 대한 첫 도전에서 교향곡을 시도한다는 것은 아무리 브람스 같
은 천재라 하더라도 무모한 일이었다. 결국 그는 구상을 축소 변경하는 타협안을 선택했지만,
그 고군분투 또는 시행착오가 그저 공염불은 아니었다.
베토벤의 ‘교향곡 9번 제1악장’과 ‘피아노 협주곡 3번 제3악장’, 그리고 ‘슈만의 피아노 협주
곡 A단조’에서 영향을 받은 이 작품은 브람스 고유의 ‘교향적 협주곡’의 시발점이 되었다. 피
아노 파트는 고도의 정력과 기교를 요하지만 관현악을 압도하기보다는 대등한 관계로 맺어
져 있고, 전곡은 유기적이면서도 명쾌한 구성으로 고전파적인 형식감을 견지하고 있다. 비록
관현악 처리에 있어서 미숙한 면이 없지 않고, 전반적으로 ‘의욕 과잉’을 느끼게 하는 면도 있
지만, 이 곡은 정열 넘치고 패기 충만했던 청년 브람스의 초상을 전하는 가장 뜨겁고 생생한
증언이라 하겠다.

제1악장: 거대하고 장엄한 첫 악장은 마치 천둥치듯 강렬한 관현악 총주로 출발한다. 이 개시부는 초자연적
울림과 오르간포인트(지속저음)의 부각이라는 면에서 다분히 ‘합창 교향곡(베토벤)’의 개시부를 떠올리게
한다. 계속해서 바로크 협주곡의 리토르넬로에 해당하는 긴 서주가 이어지는데, 여기서는 이 악장의 제1주
제를 중심으로 투쟁적 분위기와 숙명적 이미지가 부각된다.
서주의 격렬한 요동이 차츰 가라앉으면 주부로 넘어가고 이내 피아노가 등장한다. 제시부에서는 역시 투쟁
적 국면으로 나아가는 제1주제와 지극히 차분하고 서정적인 제2주제가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데, 특히 풍부
한 표정을 머금고 서서히 부풀어 올라 무한한 동경을 자아내는 제2주제부의 감흥이 각별하다. 피아노의 강
렬한 타건과 함께 시작되는 발전부에서는 피아노와 관현악이 마치 전투라도 벌이듯 격렬하게 맞부딪히다가
폭발적인 클라이맥스에 도달하고, 재현부 이후에 음악은 다시 한 번 뜨겁게 달아 오른 다음 격정적인 울림
속에서 막을 내린다.
제2악장: 명상적 기운과 종교적 기품으로 가득한 아다지오 악장. 피아노와 관현악이 응답풍의 대화를 이어
나가는 3부 형식의 곡으로, 주요 주제는 첫머리에서 바순이 제시하며 피아노의 정교한 서법이 두드러진다.
어떤 이는 이 악장을 들으면서 브람스가 언급했던 ‘클라라의 초상’을 떠올리고, 어떤 이는 슈만을 기리는

진혼곡의 이미지를 거론하기도 한다. 침착하고 사색적인 흐름 속에 깊은 슬픔과 애틋한 그리움이 담겨 있는
듯하며, 감동적으로 치솟는 클라이맥스에서는 그 모든 상념과 감정들을 종교적으로 승화시키려는 열망이
떠오르는 듯하다.
제3악장: 경쾌하고 활력 넘치는 론도 피날레. 다시금 펼쳐지는 투쟁을 통해서 이제까지의 역경과 고뇌를 떨
치고 승리를 향해 나아가는 듯한 이 악장은 여러 가지 흥미로운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론도 주제는 다성
적 요소와 당김음을 지니고 있어 바흐의 협주곡을 연상시키며, 두 번째 부주제는 카논 풍으로 등장하여 역시
바로크적 기법을 가리키고 있다. 아울러 중간의 단조 부분에서 푸가토를 도입하여 긴장감을 높이는 수법은
베토벤의 협주곡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단계에서 음악은 ‘환상곡풍으로’라고 지시된 짧은
카덴차를 거친 후 코다로 넘어가 잠시 멋을 부리는 듯 느긋한 흐름을 보이다가 밝은 D장조로 힘차게 마무리
된다.

 


안토닌 드보르자크 (1841~1904)
교향곡 9번 E단조, Op. 95, ‘신세계에서’(1892)

<연주시간: 40분>
‘신세계에서’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교향곡 제9번 E단조’는 드보르자크의 마지막 교향곡이
며, 베토벤의 ‘운명’, 슈베르트의 ‘미완성’,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등과 더불어 대중들에게 가
장 인기 있는 교향곡이다. 그런데 이 교향곡은 드보르자크가 생애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미
국 체류기’에 거둔 첫 결실이었다.
1891년의 어느 날, 이제 막 프라하 음악원에 교수로 부임한 드보르자크에게 뜻밖의 편지가 날
아든다. 멀리 대서양 저편으로부터 날아온 그 편지는 얼마 전 설립된 뉴욕 내셔널 콘서바토리
의 교수로 와달라는 제안을 담고 있었다. 해당 콘서바토리의 설립자인 자네트 서버 부인은 유
럽의 저명한 음악가를 원장으로 초빙해 신생 음악원의 지위와 명성을 높이고자 하는 포부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섭외 대상 1순위로 얼마 전 영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어 미국에까지 명성
을 떨친 드보르자크를 지목했던 것이다.
드보르자크는 처음에는 이 제안을 거절했으나, 서버 부인의 집요한 설득과 파격적인 조건을
계속해서 외면하기란 어려운 노릇이었다. 결국 1892년 가을, 그는 아내와 두 아이, 그리고 젊
은 미국인 조수를 데리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이라는 ‘신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거대한 아메리카 대륙에서의 2년 반에 걸친 생활을 통해 드보르자크는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경험했다. 우선 뉴욕이라는 최신식 대도시에 호감을 가졌고, 미국의 광활한 국토가 포용하고
있는 대자연의 웅대함에 압도되었다. 또 음악원의 제자들을 통해 인디언 음악과 흑인 영가에
대한 지식을 습득했으며, 새로움과 신비로움으로 가득한 미국에서의 생활을 온몸으로 즐겼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고향에 대한 향수를 주체할 수 없어 눈물짓기도 했다. 그 모든 체험이
위대한 음악으로 승화되었으며, 이 ‘신세계 교향곡’을 비롯하여 ‘아메리카 사중주’, ‘첼로 협
주곡 B단조’ 등이 그 대표적인 수확물이다.
일명 ‘신세계 교향곡’은 1893년 여름에 완성되어 같은 해 12월 15일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안톤 자이들이 지휘한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의해 초연되어 대성공을 거두었다.

‘교향곡 제9번 E단조’는 드보르자크의 마지막 교향곡이며,
베토벤의 ‘운명’, 슈베르트의 ‘미완성’,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등과 더불어
대중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교향곡이다. 그런데 이 교향곡은 드보르자크가
생애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미국 체류기’에 거둔 첫 결실이었다.
이 교향곡은 고전적인 4악장 구성을 취하고 있는데, 모든 악장이 도입부를 가지고 있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드보르자크는 이 작품에서 자신의 음악적 토양인 보헤미아의 어법을 바탕으로 ‘미국음악’의
특징적 요소들을 흡수하는 독창성을 발휘했다. 그 결과 전편에 걸쳐 ‘싱커페이션(당김음)’과
‘펜타토닉 스케일(5음계)’이 적극 활용되고 있으며 흑인영가와의 연관성도 엿보인다. 하지만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작곡가 특유의 ‘보헤미아 정신’에 동화된 형태로 드러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제1악장: 먼저 아다지오의 서주가 한동안 흐른다. 이윽고 알레그로 몰토의 주부로 진입하여 제1주제가 호른
에서 당당하게 제시되는데, 이 주제는 싱커페이션과 펜타토닉의 성격이 결부된 것으로 종래의 전통적인 교
향곡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형태이다. 또 플루트와 오보에로 제시되는 주술적인 제2주제는 흑인 영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나긋나긋한 코데타 주제가 더해지고, 이후 곡은 이상 세 개의 주제
가 어우러지는 가운데 교묘하게 발전해 나간다. 그 음률이 펼쳐 보이는 이미지는 흡사 광활한 대양을 방불케
하며, 역동적인 파고와 고즈넉한 풍경 사이를 오간다.
제2악장: 울창한 숲을 연상시키는 금관의 신비로운 울림과 함께 시작되는 이 느린 악장은 특유의 우수 어린
분위기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특히 잉글리시호른이 꺼내놓는 주제선율은 단순한 윤곽 속에 애틋한 정서를
가득 머금고 있어 듣는 이의 가슴에 깊은 감명을 불러일으킨다. 이 악장은 아메리카 인디언 영웅을 다룬 롱
펠로우의 서사시 ‘히아와서의 노래’에 나오는 ‘미네하하의 장례식’ 장면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된 것으로 알
려져 있다. 하지만 그 동경과 그리움의 정서는 한편으로 머나먼 타지에서 고향 보헤미아를 몹시도 그리워했
던 드보르자크의 향수와도 맞닿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제3악장: 활기차고 역동적이며 다채로운 이미지로 수놓인 스케르초 악장. 이 악장 역시 ‘히아와서의 노래’에
나오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결혼축제 장면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래서인지 스
케르초 부분의 리듬은 다분히 인디언 춤을 연상시킨다. 반면 중간의 트리오에서는 보헤미아 민속춤곡 풍의
선율과 리듬이 등장하여 앞뒤 부분과 절묘한 대비를 이룬다.
제4악장: 현악군의 일사불란한 합주로 출발하는 이 악장의 개시부는 제2악장 못지않게 유명하다. 특히 현악
도입부에 이어 호른과 트럼펫이 힘차게 연주하는 행진곡풍의 제1주제는 대단히 호쾌해서 한 번 들으면 그대
로 뇌리에 각인된다. 이후 클라리넷이 신비로운 느낌의 제2주제를 꺼내놓으면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고, 발
전부에서는 앞선 세 악장에 등장했던 주제들이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또 재현부 이후 웅대한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과정에서도 각 악장의 주요 주제들이 나타나 합쳐지는 멋진 장면이 연출되고, 마지막에는 길게 늘인
화음이 여운을 남기며 마무리된다.

신세계 교향곡 제9번 E단조 - '신세계로부터'



제1악장 Adagio - Allegro molto

(민속 가곡의 특질을 사용했으며

흑인 연가의 특색을 보여 준다)


제2악장 Largo

(잉글리쉬 혼의 아름다운 향수를 노래하며 엮어 나간다)

3악장 Scherzo, Molto vivace

(유머러스하고 엄숙하며 기괴하고
아름다운 정취를 담고있다)

제4악장 Allegro con fuoco

(행진곡풍의 억양을 가진 발랄하고 생기에 찬
슬라브풍의 무곡리듬)

 

Dvořák: Symphony No. 9 "From The New World" / Karajan · Vienna Philarmonic

Brahms, Piano Concerto No.1 in D minor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 D단조 Op.15

Johaness Brahms

1833-1897

Maurizio Pollini, piano

Christian Thielemann, conductor

 

Brahms Piano Concerto No 1 D minor, Maurizio Pollini Staatkapelle Dresden Christian Tielemann

 

 

 

파트리크 쥐스킨트(1949~ )의 <콘트라베이스>라는 소설을 읽어보셨나요? 이 소설은 독일 작가 쥐스킨트가 무명 시절을 청산할 수 있었던 계기였습니다. 어느 극단의 제의를 받아 모노드라마(1인극)를 염두에 두고 썼던 작품인데, 다행스럽게 연극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쥐스킨트라는 네 글자가 대중에게 알려지게 됩니다. 이듬해에 발표한 <향수>는 그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소설이었지요. 30개가 넘는 나라에 번역 소개되면서 그를 일약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습니다. 한데 엄밀하게 따지면 ‘콘트라베이스’는 잘못된 표현입니다. 이탈리아식으로는 ‘콘트라바소’, 영어식으로는 ‘더블베이스’로 써야 합니다. 쥐스킨트의 모국어인 독일어로 발음하자면 ‘콘트라바스’(Der Kontrabass)가 맞겠지요. 아마 출판사에서 편의상 ‘콘트라베이스’로 표기한 것 같습니다.

어쨌든 쥐스킨트의 <콘트라베이스>는 사랑스러운 소설입니다. 일단 분량이 짧아서 단숨에 읽기에 좋고요, 다루고 있는 내용과 주제가 제법 묵직해서 여운이 길게 남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아마 쥐스킨트는 독일 작가답게 음악을 꽤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토마스 만(1875-1955)처럼 본격적으로 음악에 몰입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소설 곳곳에 음악적 표현이나 음악에 대한 언급들이 종종 등장하곤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마찬가지지요. 한데 하루키가 매우 표피적으로 음악을 소설 속에 등장시키는 것과 달리, 쥐스킨트는 훨씬 본질적으로 음악에 접근합니다.

예컨대 <콘트라베이스>가 그렇습니다.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몸집이 가장 커다란 악기인 콘트라베이스는 어떤 존재일까요? 사실 이 악기는 ‘오케스트라’라는 계급사회에서 매우 낮은 위치를 차지합니다. 권력 서열이 보잘 것 없다는 뜻이지요. 물론 저현(低絃)의 깊은 맛을 우려내기 위해 꼭 필요한 악기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늘 뒷전에 엉거주춤 서 있는 악기이기도 하지요. 오케스트라 피트의 전면에서 화려하게 조명을 받는 바이올린에 비하자면, 또 관악기들이 터뜨리는 우렁찬 팡파르에 견주자면, 콘트라베이스는 왠지 서글프고 안쓰러운 악기입니다. 그래선지 쥐스킨트는 소설 속에서 이렇게 말하지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는… 최후의 쓰레기 같은 존재입니다.”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의 아버지인 요한 야코프 브람스가 바로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였습니다. 속된 말로 째지게 가난했습니다. 이곳저곳 떠돌며 작은 악단의 연주자로 살던 그는 스무 살 무렵에 함부르크에 정착하지요. 하지만 그를 기다려주는 번듯한 오케스트라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동네잔치에 불려가 경음악이나 연주하는 별 볼일 없는 악단의 ‘오부리 악사’로 근근히 살아갑니다. 그리고 브람스가 태어나기 3년 전인 1830년, 세 들어 살던 집의 주인집 딸과 결혼합니다. 한데 그 ‘주인집’도 형편이 곤궁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울러 또 하나의 흥미로운 사실은 브람스의 어머니인 크리스티아네 니센이 남편인 요한 야코프보다 17년 연상이었다는 점입니다. 브람스가 14년 연상의 클라라를 평생에 걸쳐 사모한 배경에는 그런 가족사도 깔려 있는 듯합니다.

가난한 집안의 아들이었던 브람스는 아주 어린 나이부터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열두 살부터 열아홉 살 때까지, 브람스는 가극장에서 가수들의 반주를 해준다거나 인형극의 배경음악을 피아노로 연주해주고 급료를 받았습니다. 밤에는 술집에서 연주를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함부르크는 항구도시입니다. 어린 브람스가 아르바이트를 했던 술집은 취한 선원들로 북적거렸고 매매춘이 일상사였습니다. 그 어둡고 음습한 북부 독일의 항구도시에서, 브람스는 우울하고 가난한 청소년기를 보냅니다. 그래선지 훗날 브람스가 작곡한 음악들은 대부분 무겁고 우울합니다.

브람스와 처음 만난 날, 슈만이 일기에 쓴 글 “천재가 다녀갔다”

1853년은 브람스의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해였지요. 뿐만 아니라 서양음악사에서도 중요하게 기록될 만한 해였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그해 9월 30일, 드디어 브람스가 슈만과 조우합니다. 브람스는 스무 살 청년이었고 슈만은 마흔세 살의 중년이었습니다. 브람스는 무명의 음악가 지망생에 불과했지만, 슈만은 뒤셀도르프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이었을 뿐 아니라 영향력 있는 잡지 <음악신보>의 발행인이었습니다. 스무 살 청년은 자신이 직접 쓴 ‘피아노 소나타 C장조’를 떨리는 마음으로 연주합니다. 그리고 1악장이 끝났을 때, 슈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잠깐 연주를 멈추게.”라고 말하지요. 왜 그랬을까요? 연주가 시원치 않았던 걸까요? 아닙니다. 그와 정반대였지요. 슈만은 서둘러 아내를 거실로 불러들입니다. 아내가 들어오자 슈만이 청년에게 말합니다. “처음부터 다시 연주해주게나.”

클라라 비크와 로베르트 슈만.

그날 슈만의 집 거실에서 펼쳐졌던 장면은 매우 드라마틱합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슈만과 클라라는 청년 브람스의 연주에 감탄했지요. 슈만은 그날 일기에 “천재가 다녀갔다.”고 씁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창간한 잡지 <음악신보>에 ‘새로운 길’(Neue Bahnen)이라는 제목으로 한 편의 글을 게재하지요. 그것은 슈만이 이 잡지에 절필을 선언한 후 10년 만에 쓴 글이었습니다. 글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브람스에 대한 극찬이었습니다. 한데 그것은 브람스의 이름을 사람들에게 알린 계기였던 동시에, ‘브람스의 적’을 만든 사건이기도 했지요. 슈만의 글이 너무 신랄했던 까닭입니다. 슈만은 브람스를 열정적으로 옹호하면서 당시의 음악적 대세로 자리를 잡아 가던 리스트와 바그너 풍의 음악을 거세게 비난합니다. 그 덕분에 훗날의 브람스는 반대파들의 공격에 직면하지요. 세상일이란 항상 그렇습니다. 좋은 게 있으면 힘든 것도 있는 법입니다.

피아노 협주곡 1번 D단조 Op.15는 청년 브람스의 대표작입니다. 브람스가 남긴 4곡의 협주곡들, 그러니까 두 곡의 피아노 협주곡과 한 곡의 바이올린 협주곡, 또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2중 협주곡’(더블 콘체르토) 중에서 가장 먼저 작곡된 음악이지요. 브람스가 최초로 작곡한 대규모 관현악곡이기도 합니다. 브람스를 옹호했던 슈만에게는 일종의 조울증이 있었는데, 그는 브람스를 첫 대면하고 약 5개월 뒤에 라인 강에 몸을 던집니다. 간신히 구조돼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그곳에서 생을 마치지요. 브람스는 슈만이 사망하기까지, 그러니까 약 2년간 뒤셀도르프에 머물면서 슈만의 집안을 가족처럼 돌봅니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바로 이 무렵에 작곡되지요. 작곡이 완전히 마무리된 것은 1858년인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Clifford Curzon/George Szell/LSO - Brahms, Piano Concerto No.1

Clifford Curzon, piano

George Szell, conductor

London Symphony Orchestra

Kingsway Hall, London

1962.05

 

 

 

1악장: 마에스토소 (장엄하게)

1악장은 장엄하게 펼쳐지는 마에스토소(maestoso) 악장입니다. 팀파니가 으르렁거리며 돌진하는 서주에서부터 청년 브람스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바이올린과 첼로가 비장하면서도 남성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첫 번째 주제를 연주하고, 이어서 불현듯 음악이 잦아들었다가 아름다운 선율의 바이올린으로 이어집니다. 관현악과 피아노가 두 개의 얼굴의 번갈아 보여주는 악장이지요. 때로는 격렬하게, 또 때로는 애틋하게. 마치 브람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듯한 악장입니다.

2악장: 아다지오 (아주 느리게)

브람스는 아다지오(adagio)로 연주되는 2악장에 대해 클라라에게 보낸 편지에서 “당신의 아름다운 초상(肖像)”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슈만을 잃은 클라라에 대한 위로, 아울러 클라라를 향한 브람스의 애틋한 마음이 겹쳐지는 악장입니다. 현악기들이 잔잔하게 물결치고 목관악기들의 활약이 특히 두드러집니다. 피아노는 슬픔을 머금은 채 애잔한 선율을 연주합니다.

3악장: 론도. 알레그로 논 트로포 (빠르지만 지나치지 않게)

이어지는 마지막 3악장에서 음악은 다시 강렬해지지요.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allegro ma non troppo). ‘빠르지만 지나치지 않게’라는 뜻입니다. 피아노가 당당하게 상승 선율을 연주하고 관현악이 따라옵니다. 1악장에서 이미 들었던 주제가 재현되는 장면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지요. 피아노가 매우 화려한 패시지들을 연주하면서, 브람스 본인이 당대의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지요.

브람스는 1859년 1월 하노버에서 자신이 직접 피아노를 연주해 이 곡을 초연했습니다. 절친한 친구였던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1831-1907)이 지휘를 맡았지요. 결과는 ‘비교적 성공’이었습니다. 하지만 닷새 후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가졌던 연주회는 격렬한 비난에 부딪혔습니다. 브람스 본인의 표현에 따르자면 “악단도 청중도 무반응”이었고, “박수를 치려고 했던 사람은 고작 3명”에 불과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마도 ‘진영 논리’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해봅니다. 라이프치히에는 유난히 ‘브람스의 적’이 많았습니다. 브람스는 자신에게 모욕을 줬던 도시 라이프치히를 이후에도 계속 불편해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추천음반

1. 클리포드 커즌(Clifford Curzon), 조지 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1962, Decca. 음악적으로 완벽주의자였던 커즌은 녹음을 많이 남기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브람스의 협주곡 1번은 그의 명연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커즌의 특징은 역시 신중함과 섬세함이다. 특히 이 곡의 2악장에서 그의 서정적인 피아니즘이 빛난다. 그렇다고 1악장의 강주 부분과 3악장의 파워풀한 드라이브에서 힘이 부칠 것이라고 예단할 필요는 없다. 의외로 힘차게 달려 나간다. 물론 거기에는 오케스트라와의 한판 승부이라는 측면이 깔려 있다. 조지 셀은 런던 심포니를 상당히 강하게 몰아붙인다. 영국 <그라모폰>은 아래에 소개하는 길렐스의 연주와 함께 커즌의 이 녹음을 20세기 ‘100대 명반’의 반열에 올려놓고 있다. 데카에서 ‘레전드 시리즈’로 발매한 음반은 국내 구입이 어렵다. 대신 1, 2번을 커플링한 음반을 구할 수 있다.

2. 에밀 길렐스(Emil Gilels), 오이겐 요훔, 베를린 필하모닉, 1972, DG. 1순위로 추천하는 음반이다. 이 녹음에서 길렐스가 보여주는 힘과 테크닉은 ‘역시!’라는 찬탄을 불러일으킨다. 파워풀하게 밀어붙이는 1악장, 다감하고 아름다운 2악장, 피아니스틱한 테크닉을 구사하는 3악장 등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가 없다. 힘이 좋으면 자칫 무겁고 딱딱해질 수도 있지만, 길렐스의 연주는 그런 우려를 초장에 불식시킨다. 템포는 느린 편이다. 전체 연주시간이 53분에 달한다. 오이겐 요훔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은 살짝 뒤로 물러난 자세로, 하지만 매우 견고하게 길렐스를 서포트한다. 격렬함과 애틋함을 빈번히 오가는 협주곡 1번을, 맥박이 고동치는 듯한 감흥으로 전해준다. 음악적 흥취가 물씬한 연주다.

3. 마우리치오 폴리니(Maurizio Pollini), 크리스티안 틸레만,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2011, DG. 2011년 6월 드레스덴에서 있었던 연주회 실황이다. 우리 시대의 명장 폴리니는 1970년대에 뵘이 지휘하는 빈 필하모닉과, 1990년 대에는 아바도가 지휘하는 베를린필하모닉과 브람스의 협주곡 1번을 녹음했다. 틸레만과 조우한 이번 음반은 세번째 녹음이다. 혹자는 이 음반의 녹음 상태에 불만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실황이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겠다. 바로 그 ‘실황’이라는 점이 오늘 이 음반을 추천 목록에 올리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음반 표지에 담긴 69세의 폴리니, 병치레 끝에 무대로 돌아온 그는 이제 늙은 모습이 완연하다. 틸레만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조심스럽게 지휘하며 폴리니를 보필한다. 그것이 이 실황 속에 담긴 ‘또 하나의 음악’이다.

문학수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다. 청년 시절에는 음악을 멀리한 적도 있다. 서양음악의 쳇바퀴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부르주아 예술에 탐닉한다는 주변의 빈정거림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을 다소나마 털어버렸고,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에도 한동안 빠졌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재즈에 대한 애호는 점차 사라졌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의 관현악이거나 피아노 독주다. 약간 극과 극의 취향이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두 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2013년 2월 철학적 클래식 읽기의 세계로 초대하는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를 출간했다.

Brahms : Klavierkonzert Nr.1 D-moll Op.15 (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