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막에 누워 살랑이는 바람결을 이불삼아 한 숨 누웠다가 걸으니,
언제 또 그리 힘들었냐 싶게 용감 무쌍한 트래커의 모습이다.
끝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잔인한 빙퇴석 돌길...
강렬한 뙤약볕....
그래도 좌우로 보이는 거대한 바위산과 그 너머로 보이는 날카로운 설산....
저 멀리 까마득하게 보이는 상상도 못했던 카라코람의 독특한 모습들에 홀려서
강력한 파워 에너지 건전지를 넣은 로봇 마냥 지칠줄 모르고 걷는다.
저만치 빠유피크에서 흘러 내려오는 계곡물이 거친 빙퇴석 돌밭 사이를 거칠게 흘러 내려간다.
좀 더 가까이 가니 그 앞으로 앙증맞은 나무 다리가 놓여있다.
그러고 보니, 작년팀이 단 1분도 담그고 있기 힘든 얼음처럼 차가운 빙하 계곡에 빠져 건너 가느라고 애를 먹었던 곳이 바로 이곳이 아닌가 생각든다.
세상에나~
우리는 예습한 바로 오늘 여기를 건너가기 위해 샌들 등산화들을 준비했는데....
물론 나는 배낭 무게의 압박감에 양말을 신고 건너겠다고 샌들 등산화를 뺏지만....
다리가 놓여있기 망정이지 조심해서 건넌다고 발을 안 다칠 상황이 아니다.
흙탕물속의 상황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데다 저 세찬 물살을 뚫고 건너가야 했을 것을 생각하니 아찔함에 식은 땀이 쭈르륵 흘러내린다.
오우!!
신이시여~ 이 순간도 또 제게 엄청난 은총을 베풀어 주고 계시나이다.
끝없는 광야를 로봇 처럼 또 묵묵히 걷는다.
시간이 흐를 수록 눈앞에 선명하게 나타나는 광경...
수십개의 바위 피라밋을 다닥 다닥 붙여 세워놓은 듯한 카라코람의 위용에
그만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저게 산이라고??"
"지구상에 저런 모습의 산이 있었어??"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광경이 히말라야의 풍광이라니...
저건 SF영화에나 나올법한 풍광이지 지구상에 현존하는 산의 모습이 아니잖아~
<좌로부터-트랑고 타워,카테드랄,롭상스파이어,사보야캉그리(스킬브룸)>
저 멀리.... 보기에도 가파름이 힘겨워 보이는 오르막 길이 보인다.
잠시 멈춰서 있는 사이 놀랍게도 한 무리의 나귀 부대가 나타났다.
아니, 한 무리가 아니었다.
연거푸 나타나고 또 나타났다.
흥분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줄을 놓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그런데 내 앞을 지나가는 말을 보니, 놀랍게도 발에서 피가 난다.
최대치 한계를 넘은 무거운 짐을 등에 싣고 거친 돌길과 너덜 모레인 길을 걸으면서 수없이 다친 모습이다.
40킬로가 넘는 짐들을 머리에 끈을 메고 다니는 네팔의 포터들에 비해서 이곳은 나귀가 짐을 실어 날으니
훨씬 보기에 맘이 편안했었는데...이 모습을 보니, 또 그렇지도 않다.
인간과 어쩌면 너무나도 똑같을 지도 모른다는...아니, 말을 못하고 딱히 반항도 못하니 죽기 직전까지 견뎌낼 수 밖에 없는 동물이
더 가슴아픈건 아닐까 ....하는...
한편으론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험란한 발토르 빙하의 여정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아 긴장감도 바짝 든다.
시간이 흐를 수록 점점 태양 빛은 뜨겁게 달아 오르고...
몸은 또 한없이 지쳐온다.
수도 없이 물을 마셨다.
문득 등산할때 물을 많이 마시는 사람을 보고, '물 많이 마시지 말라' 고...
'위에 물이 차면 더 힘들고 지친다'고.... 했던 말이 가슴을 때렸다.
체력 고갈이 오면 물을 많이 마시게 된다는 걸....새삼 깨닫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머릿속엔 온통 시원한 물로 가득했다.
아니, 온갖 마실것들이 눈앞에서 날아다녔다.
기네스 흑맥주와 부드러운 아사이 생맥주가 뜬금없이 간절해졌다.
눈앞에 있다면 몇병이라도 벌컥거리며 순식간에 다 마셔버릴것만 같다.
잠시 쉬며 버럭이에게 '내게 소원이 무엇이냐' 고 한번 물어보라고 했다.
내 말에 또 순순히 버럭이가 묻는다.
"그대 지금 소원이 무엇이냐~"
"흑맥주가 마시고 싶어~"
"그려?? 알았어. 내가 캠프에 도착하면 흙을 타서 흙맥주 만들어 줄께~"
푸핫<<<
전혀 예측하지 못한 버럭이의 대답에 순간 박장대소 했다.
아!! 귀엽고 재치 발랄한 버럭이.....
임티아스가 동료를 만났다.
어찌나 진한 우정을 표하는 지...
파키스탄 남자들은 동료를 만나면 꼭 허그를 하면서 반가움을 표시한다.
얼마나 그 모습이 다정다감함과 진한 우정을 느끼게 하는 지, 조금은 생소한 모습이기도 하지만 더없이 정겹게 느껴지는게
살맛나는 세상인것 같기도 하다.
이들의 우정을 남겨주기 위해 한 컷을 담았다.
까마득한 아래로 아르미 캠프로 가는 다리가 보인다.
너무도 높아서 아르미 캠프는 바윗돌 보다도 작아 잘 보이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아호 강물의 성난 듯 세찬 물살은 이 높은 곳에서도 느껴진다.
높디 높은 절벽끝 사면길을 따라 끝없는 내리막 길을 걸었다.
아찔한 길이기도 했지만, 그에 상응할 만큼 매혹적인 풍광을 보여주기도 했다.
강바닥까지 내려가니,
또 독특한 빙퇴석의 모습이
마치 석상같이 서 있다.
천둥 번개라도 쳐댄다면
금새
와르르 무너져 내릴것만 같은....
가까이 곁을 지나며 보니,
정말 금이 쫙 쫙 가있는 것이
언제 무너져 내릴 지...
언제 이 길이 없어져 버릴 지 모를
위험 천만의 길이었다.
빙퇴석의 석상을 지나니, 저 만치 앞으로 푸르른 녹음이 보인다.
K2여정에서 마지막으로 볼 수 있다는 빠유의 녹음...
빠유가 지척임을 알려주는 신호다.
길목 양옆으로 옷깃을 스칠 정도로 빼곡한 나무 사이를 걷는 길이 차라리 낯설었다고 할까...
드디어 빠유(=소금)가 코앞이다.
오후 2시반이 채 못되었다.
출발 예정 시간 새벽 5시 반을 지나 거의 6시에 출발했으니 8시간 반이 채 안걸린 것이다.
작렬하는 뙤약볕을 조금이라도 피하겠다고 얼마나 빠른 걸음으로 걸었는 지 ....
점심을 먹은 뒤 1시간 남짓 자다 온것을 생각하면 미친듯이 걸은 행보다.
<좌로부터-트랑고 타워,카테드랄,롭상스파이어,사보야캉그리(스킬브룸)>
차이콥스키 백조의호수중 제 1막 정경(sce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