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본격적인 K2여정이 시작된다.
그래서일까....
6시반 식사, 7시 출발인데 4시반에 일어났다.
빠유까지는 작렬하는 태양빛에 녹초가 되어 자칫하면 일사병에 걸릴 수도 있다하니, 특히 추위보다 강한 햇볕과
더위를 이겨내기 힘들어하는 나로서는 그 긴장감이 도를 넘었는 지도 모르겠다.
하긴 이건 순전히 나의 어릴적 기억에서 온 일종의 트라우마인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시절...봄소풍을 가면서 뜨거운 태양열을 이겨내지 못하고 쓰러졌던 기억이 충격으로 남아있어서...
밖에서는 여기 저기서 벌써 압력솥 흔들리는 소리와 김빠지는 소리로 요란했다.
그도 그럴것이 손님들의 밥이 준비되기 전 스텝들이 먼저 아침을 일찍 먹은 다음 우리의 식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출발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짐을 다 패킹하고 밖으로 나가니, 앞 공터에는 원정대원 포터들과 일자리를 구하려고 몰려든 사람들로 가득하다.
우리가 보기엔 그렇게도 힘든 포터 일자리도 여기선 구하기가 쉽지 않은가 보다.
지구 곳곳이 모두 일자리 구하기가 힘든것 같아 먹고 사는 일에 잠시 마음이 씁쓸하다.
아침 식탁이 화려하다.
원정대원에게서 얻은 반찬과 내가 해간 반찬에다 계란 오믈렛에 토스트까지 있다.
물론 압력솥에다 한 아끼바리의 쫀득쫀득한 밥과 양파 멸치국도 있다.
어제저녁 이미 원정대원 덕에 화려한 만찬으로 K2 여정을 시작했지만, 이 정도라면 작년 팀의 굶주림을 되 씹지 않아도 될듯한...그런 섣부른 예견까지 든다.
원정대원들과 짧은 Tea Time을 가진 뒤 우리는 먼저 출발했다.
출발시간 7시 보다는 짐을 달아서 재분배하는라 지체되어 7시반 조금 지나 출발한것 같다.
최대한으로 배낭은 가볍고, 옷은 최대한으로 시원하게....
냉감 셔츠와 가장 얇고 시원한 바지에 인견 모자를 쓰고 출발이다.
만약을 대비한 파워 에너지 젤과 에너지 바, 그리고 캔디를 챙기고 3리터의 물을 준비해서 넣었다.
K2여정에서도 나는 가이드인 임티아스를 카메라 포터로 고용했다.
사실은 카메라를 전용 카메라 포터가 아닌 가이드에게 맡기니, 요소 요소에서 사진 찍기가 힘들어서 그냥 내가 매고 출발했는데,
헤를리코퍼 BC를 갈때 컨디션 난조로 일일 포터로 고용한 뒤, 임티아스가 헐떡이며 달려와서 내 카메라를 가져가는 바람에...
그러지 뭐~
배터리도 아껴야 하는데, 이참에 자제도 하고....
너도 돈 좀 더 벌고...
이른 출발이라 아직은 햇살이 없으니 발걸음이 가볍기만 하다.
사방이 거대한 바위산으로 둘러쳐져 있지만 그 안으로 포옥 파묻힌 아스꼴리는 더없이 아름다운 마을이다.
한여름 푸른 밀밭의 풍광이
여늬나라와는 달리 높디 높은 무채색의 바위산 사이로 들기 시작한 햇볕에 더없이 이색적이고도
싱그러워 보인다.
해가 나기 시작하니
벌써부터 몸이 지치기 시작한다.
그도 그럴것이 그늘을 만들어 줄
커다란 나무 한 그루도 없는데다가
얼마나 태양열이 강한 지
자욱을 떼는 발걸음 마다
흙먼지가 폴폴 일을 정도로 고운 흙이 수북이 쌓여있어, 마치 모래 언덕을 걷는것 처럼 약간씩 밀리는 듯하여 더 힘들고 지치게 만드는 거다.
하지만...
우린 이 정도엔 절대 지치지 않아~
이 보다 더한 최악의 상태까지 점치며
온 몸을 완전 무장 시켰거든~
나무 그늘 대신 커다란 바위를 그늘 삼아
나타나기만 하면 우린 그곳에서 잠시 쉬어 갔다.
스카르두에서 이미 퍼밋은 받았고...
아마 이곳에선 퍼밋 확인정도 했을까...
??
도대체 이 많은 돌들은 언제 굴러서 흘러내려온 것들일까...
주변을 돌아보면 사방이 흘러내려온 돌더미로 그야말로 전 구역이 낙석 위험지구다.
한참을 가파르고 험준한 위험 지구를 걸어 올랐다.
그 지점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고나 할까...
아래로 펼쳐지는 경치가 장관이다.
어떤 강줄기들이 서로 합류가 된건 지 위에서 내려다 보니 마치 거대한 십자가가 놓여져 있는것만 같다.
엄청난 소용돌이와 흙탕물을 만들며 흐르는 비아포 강(Biafo River) 위로 아슬 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나무다리를 만났다.
줄도 군데 군데 끊어지고, 나무 바닥도 사방이 수선하여 덧 댄 다리 아래로 엄청난 굉음을 들으며 건널라 치면
순간 움찔하며 주눅이 들기도 하지만...뭐 이정도야...ㅎㅎ
다리를 건너니 끝도 보이지 않게 광활하게 펼쳐진 모레인 지대다.
뜨거운 열사에서 이 험준한 모레인 길을 걸어갈 생각을 하니 아찔하기도 했지만...
이 돌더미 사이 사이 먼지처럼 훌훌 날리는 고운 흙더미 속에서도 자잘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음에 위로를 삼으며 걷는다.
워낙에 그늘이 될 만한 나무가 없으니, 가는 길목 군데 군데에 원두막 같은 것을 지어 놓아 트래커들이 쉬었다 가게끔 만들어 놓았다.
멀리서 뵈는 그 그늘막을 찾아 빠른 걸음으로 가니, 벌써 이풀은 한 잠 자고 난 뒤다.
ㅋ~~
그럼 우리도 한 잠 자고 가야지~
바람까지 살랑 살랑 불어주며 피로감을 씻어간다.
강섶 길로 이어졌다.
여전히 돌길과 그 사이 고운 흙길이 뒤섞인 힘든 길의 연속이다.
강 건너편을 보니 마치 칼로 썰어 놓은 듯, 돌과 흙이 섞인 흙더미 언덕인 수직 절벽이다.
언제 어느때 어느 한켠에서 칼로 썰어내듯 뚝뚝 떨어져 나갈 지 모를....
11시 즈음 고로폰에 도착했다.
주변엔 나무가 무성하고 사방으로 개울이 흘러 시원함을 선사했지만 햇볕에 지친 몸을 회복시키기엔 역부족이다.
쿡이 점심을 준비하기 전 조막만한 사과와 견과류와 사탕을 먼저 차려놓았지만 그 역시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그냥 사과만 먹고는 배낭을 베고 누웠다.
점심으로 볶음밥을 해주었으나 오직 이 순간 물만을 외친 내게 먹힐 리가 없다.
마치 돌밥을 씹는 기분....맛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뜨거운 열기에 지쳐서 도저히 먹히지가 않았다.
커피라도 한 잔 마시면 카페인이 에너지를 만땅으로 채워줄 터인데, 시멘트를 풀어놓은 듯 회색 빛이 감도는 물로 끓인 물을 보니
도저히 또 커피를 타먹을 용기가 안생겨서 그냥 말았다.
미수가루를 따로 준비해서 아침에 가지고 나온 물에 타 먹었으면 좋았을걸....
이렇게까지 지쳐 밥이 먹히지 않을 줄 전혀 예상치 못하고 미처 그 생각까지는 못했다.
준비해간 파워 에너지젤 하나만을 먹고 좀 누워있다가 다시 출발했다.
모레인 빙하 너머로 아득하게 설산이 보인다.
또 끝없는 모레인 광야속 뜨거운 열사를 걸어야 한다.
3리터의 물중 2리터를 스포츠 음료로 타가지고 나온것이 되려 힘들고 더 지치게 했는 지도 모르겠다.
달달한 맛때문에 더욱 갈증을 증폭시켰다고 할까....
적어도 이 순간은 파워 에너지젤도, 에너지 바도, 스포츠 음료도 다 소용이 없다고 느껴졌다.
오직 깨끗한 물...
피차에 너나 할것 없이 얼굴만 마주치면 '힘들어 죽겠다'는 소리를 수없이 했다.
옆에서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임티아스가 수심 가득한 표정으로...
'1 day' 란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가 생각해도 기가 막힐 일이었다.
K2 전 일정중 가장 고도도 낮고, 길도 가장 순탄하고, 가장 쉬운 코스라는데....
악명높은 K2 여정의 고난을 여실히 보여주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임티아스의 이 말때문에 우린 여정 내내 또 박장대소를 하며 웃었다.
고로폰을 떠난후 부터는 비아포강이 아닌 브랄두 강을 따라 걷는다.
그러고 보니, 아까 십자가 모양으로 강이 지류가 갈라지던 곳이 이 두 강의 지류였나??
비아포강과 브랄두 강??
아!!
세상에~
꽃이 있어.
그러고 보니, 여기 오면서 돌과 먼지처럼 고운 흙더미 속에서도 잘 자라고 있던 자잘한 나무들이 다 이 꽃나무 였나봐~
좀더 일찍 왔더라면 이 모래 사막처럼 뜨겁고 황량한 이 벌판이 모두 이 핑크빛 꽃으로 덮여졌다는 거 아냐~
잠시 꿈같은 풍광을 상상해 보았다.
지칠대로 지친 몸에 조금은 생기가 부여되었을까...??
아니지, 안타까운 맘에 더 지쳐버린 거 같아~
지칠대로 지친 주인공이 광야를 걸어가는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를 즈음...
커다란 바위가 제대로 그늘막을 만들어 주고 있는 곳이 눈에 띄었다.
더더군다나 신기하게도 그 바위 아래 틈새에서 나오는 냉기가 얼마나 시원한 지...
지친 몸에 금새 혈색이 돋는것만 같다.
바위에 기댄 채로 한동안을 에너지를 채운 뒤 다시 광야로의 행보는 시작되었다.
두모르도강(Dumordo River)과 발토르 빙하에서 내려온 비아호강이 합쳐져 거세게 흐르고 있는 수직 절벽위로
가파르고 아슬 아슬한 길이 끝없이 이어졌다.
아찔할 정도로 험하고 가파른 절벽길이었지만 벌써 이 정도 험한 길에는 익숙해진 듯,
위험할 거라는 생각보다는 멋진 비경이라는 생각이 더 앞선다.
가파르고 험준한 돌 사면길을 오르고 내리는 나귀들의 모습도 힘들어 보인다.
유난히 무거워 보이는 짐을 실은 나귀는 힘이 들어서인 지 반항을 하는건 지, 말을 듣지않고 천방지축으로 다른 길로 가며
마부를 힘들이고 있다.
피차에 안타까움이 인다.
문득 지난 히말라야 트래킹때도 짐을 싣는데 야크가 도망을 나와 주변 트래커들에게 뛰어들어 한바탕 소란을 일으켰던 적이 있었다.
이들도 다 안다. 저 짐을 실으면 얼마나 힘이 들지...
오후가 되자 그래도 바람이 산들 산들 불어준다.
등에 가득 찼던 땀에 바람이 닿으니, 냉감셔츠의 효능이 이제서야 제 기능을 한다.
마치 시원한 냉기를 등에 계속해서 불어 넣어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오오~~
냉감 셔츠 정말 짱이야~~
수없이 속으로 되내이며 신비의 양탄자를 탄듯 날듯이 걸었다.
기막히게 매혹적인 길이기도 하지만
치명적으로 낙석 위험지구 이기도 한...
바위를 파낸듯 움푹 들어간 가파른 길섶 바위에서...그 위험한 곳이 유일한 그늘이라고...우린 털푸덕이 주저앉아 바위에 기댄 채 쉬었다.
깜빡 잠이 들었었나....싶었었는데 비단 나만 졸은게 아니고 모두들 잠깐씩 수면을 취했었든것 같다.
이렇듯...
우린..
환상적인 주변 풍광에 사진 찍느라 멈춰서고....
작은 오르막에서는 힘들어서 멈춰서고...
뜨거운 열기에 지쳐서 바위만 나타나면 아니, 조금이라도 쉴 수 있는 돌덩이만 나타나도 앉아서 쉬며...
'아시다 아시다 (천천히...)'를 소리치며 천천히 걸었다.
바위 절벽길을 돌자 강 건너 거대한 바위산 아래로 오늘 캠프지인 졸라(Jolla)가 보인다.
아스꼴리에서 졸라까지는 20km 정도로 졸라는 우르두어로 '줄에 매달린 바구니'라는 뜻으로
두모르도강을 건너는 케이블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서 강을 바로 건너 가면 10분 거리이지만, 과거 이곳에 있던 군용 케이블 다리가 떠내려 가
계곡 상류의 폭이 좁은 곳에 다리를 재설치 하면서 계곡위까지 거슬러 올라 다리를 건너 다시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1시간 30분이나 더 걸린다.
저 멀리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운 듯한 모양을 하고 있는 봉우리가 바로 바코르다스봉(Bakhor Das Peak 5,809m)이다.
바코르다스 봉은 독일인이 초등한 봉우리이다.
가다보니,저만치에 왠만한 거실만한 넓이의 넓다란 바위가 보인다.
이제는 졸라 캠프사이트도 보이니, 저곳에 누워 잠시 푸른 창공을 올려다 보고 가면 힘이 좀 날까....
높다란 바위 위를 낑낑대며 올라가 벌렁 누웠다.
파아란 하늘에 하얗게 두둥실 떠가는 뭉게 구름이 끝없이 흘러갈것 처럼 보인다.
거리도 공간도 예측할 수 없는 광활함이....
매혹적이다.
드디어 눈앞에 졸라 브릿지가 나타났다.
북쪽 라톡 산군의 북쪽 사면에서 시작한 판마(Panmah)빙하에서 내려오는 두모르도강을 건너가기 위해 만들어진 다리다.
이제 다리를 건너 다시 되 내려가면 아까 강건너로 보았던 우리의 캠프사이트다.
마지막 순간까지 '우르릉 쾅 쾅' 바윗돌 굴러가는 소리를 발끝으로 들으며 아슬 아슬한 맘으로 졸라에 도착했다.
얼마나 갈증에 시달렸는 지, 도착하자 마자 미르자가 건네 준 차가운 '땡쥬스'를 연거푸 3잔이나 마셔댔다.
물이 깨끗한 지, 고로폰에서 보았던 시멘트 물색깔인 지 따져 볼 여유도 없었다.
뒤늦게 주변을 돌아보니, 사이트 사이로 맑은 물도 흐르고, 수도꼭지도 달려있고, 저만치 아주 커다란 물탱크에선 폭포수 처럼 탱크안의 물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풍요롭고 시원하기 그지없는 멋진 캠프지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텐트로 들어가 짐을 대충 풀고는 빨래감을 들고 물탱크 앞으로 갔다.
얼마나 고운 흙먼지 길을 걸었는 지 바지가랭이가 온통 흙먼지로 총총 박혀 있다.
세찬 물살을 통에 받아 빨래를 해서 널고, 잠시 일행들과 담소를 나누다가 텐트에 들어와 쓰러져 누웠다.
저녁을 먹으라는 호출에 식당으로 내려가니 여전히 저녁 상차림은 한식만찬이다.
원정대에서 얻은 조개젖갈과 마늘 장아찌, 내가 가져간 북어조림, 감자조림과 미역무침에 미역국이다.
그나마 저녁은 먹히니 다행이다.
피곤이 온 몸을 휘감으며 몰려들었다.
얼마나 피곤했던 지, 텐트에 들어와 헤드랜턴을 켠채로 머리에 쓰고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다.
몇번을 깼지만, 옴짝하기도 싫은데다가 날씨도 춥지않아 패딩도 입지 않고 그냥 인견옷을 입은 채로 새벽까지 자버렸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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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반에 눈을 떴다.
어제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잠이 들어버렸기에 준비를 시작했다.
뜨거운 열사때문에 지치고 그로 인해 점심을 먹지 못해 악명높은 K2여정의 혹독함을 톡톡히 치뤄낸 첫날이었지만....
워낙에 최악의 상태까지 고려하며 쇠뇌를 시켜놓은 지라...뭐 이 정도는...그런 느낌이 또 들기도 한 첫날이었다.
그러나 K2여정이 고난과 역경의 극점이 될거라는...예감은 충분히 들고도 남는다.
그래서 K2여정을 트래킹의 종결지 라고들 하는 지도 모르겠다.
내가 히말라야 로왈링 산군의 타시랍차 라를 넘고 트라움바우와 트라카딩 빙하를 건너면서...
다시는 히말라야에 오지 않고 살림만 열심히 하겠다고 남편에게 말했던 일이 또 되풀이 될 지도 모를....
(이날 어지간히 힘들긴 했었나 보다.
졸라 캠프지 사진이 단 한장도 없는걸 보니...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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