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늦도록 일정표를 확인해 가며 다시 가방을 패킹했다.
K2로 가는 입문인 아스꼴리까지의 길은 워낙 악명높은 험로라서 만약의 산사태로 길이 끊길것을 감안...
그로 인한 최악의 상태까지 대비해서 패킹을 했다.
무엇보다 작년 팀처럼 길이 끊겨 우리는 걸어서 가고, 카고백 짐이 들어오지 못할 상황까지 생각해서
간식을 포함 하루치의 충분히 먹을 음식과 물, 한 밤중까지 걸어갈 것을 대비한 헤드랜턴...
그리고 역시 짐이 오지 못해 캠프사이트를 치지 못해 남루한 롯지 창고에서 잘 수도 있음을 대비해...
깔판으로 사용할 커다란 비닐과 따듯한 옷가지들을 배낭에 챙겨넣었다.
오늘부터 드디어 K2의 여정이 시작된다는 기대감 못지않게 긴장감으로 온몸을 휘감는다.
조금은 이른 7시 출발이므로 6시 15분 식사다.
5시에 일어나려고 알람을 맞춰 놓았지만, 긴장감 때문인 지, 훨씬 더 일찍 눈이 떠졌다.
그도 그럴것이....
오늘 이곳을 떠나면 정확히 18일 동안은 집안 식구들과 연락이 완전히 두절되기 때문에 식구들과 좀 더 오랜 시간 카톡을 하고 떠나기 위해서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로비로 나가니, 모든 스텝들도 마지막 점검을 하며 차량에 짐을 싣느라고 한참 바쁘다.
이제까지 우리와 함께 훈자와 낭가파르밧 여정을 했던 후세 아저씨의 노란 차량은 떠나 버렸고, 새로운 차량 3대가 서 있었다.
그 사이로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난 미르자의 모습에 흠짓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까지 입었던 파키스탄인들의 일상복 대신 청바지에 노오란 셔츠와 썬캡,그리고 썬그라스를 쓰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멋지다고 두 손을 치켜 세워 보여주었지만....한켠에선...
뭐지??
험준한 발토르 빙하를 걸어 K2를 가는데 저 복장은....??
그런 맘이 들어 미르자의 한껏 멋을 부린 옷차림에 미소가 지어졌다.ㅎㅎ
오늘로서 드디어 그동안 정이 듬뿍 들은 요사니와 남수와 헤어지게 된다.
우리는 새로운 일행 알쏭과 유라시아와 합류해서 이번 여행의 하일라이트인 K2 여정을 시작하지만, K2를 벌써 다녀온 요사니야 제쳐두고라도
아직 가지 않은 남수를 두고 우리끼리 떠나자니 발걸음이 떨어지지가 않는거다.
함께 가자고....누누히 말하긴 했지만, 워낙이 준비할게 많은 K2여정에서 준비없이 온 남수를 끝까지 함께하자고 우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K2여정이 그리 쉽게 올 수 있는 곳도 아니고, 사정이 그렇다 보니, 안타까움이 더욱 커지는거다.
하긴, 이 모든 안타까움이라는게 어쩌면 K2 여정을 함께 하지 못해서라기 보다는 헤어지기가 힘들어서 였을 지도 모른다.
어짜피 남수와 요사니도 훌륭한 파키스탄 여행계획이 있다는걸 피차에 모르는 바가 아니기 때문에...
익발 사장을 포함한 스텝들과 이곳에서부터 출발하는 포터들과 우리들은 3대의 차량에 나누어 탔다.
익발이 직접 선곡했다는 한국 가요를 포함한 팝의 선율을 타며 신나게 질주하듯 스카르두 시내를 빠져나왔다.
얼마를 달렸을까....
순식간에 달라진 눈앞에 펼쳐진 광경....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풍광에 우리는 환호하기 시작했다.
모래가 강 양옆으로 밀려나 퇴적된 양 높다란 모래 언덕을 만들어 낸 독특한 모습과
마치 몽골 여행에라도 들어선것 같은 착각이 들 만큼 끝없이 펼쳐진 사막 풍광이 눈길을 완전히 사로잡기 시작했다.
고도는 점점 높아져 모래산 정상을 넘어가는데 그 광경이 얼마나 대단한 지...흥분을 주체하기 힘들 정도였다.
산을 하나 넘었을까...
아니, 깊은 암산사이의 사막 길을 몇개를 넘었을까....
눈앞에 다시 인더스 강줄기가 나타났다.
스카르두 처럼 커다란 도시는 아니어도 또 강 옆으로 형성된 마을엔 여전히 비옥한 초록 숲이 빼곡히 형성되어 있다.
이곳의 마을의 크기도 그 길이로 봐서 제법 큰것 같다.
아니지, 앙증맞도록 아기 자기한 이쁜 마을들이 강섶으로 끝없이 이어진거겠지.
힘든 고산을 넘어서 차를 쉬어주고 있는 것일까....
아름다운 풍광을 보라고 잠시 선걸까...
3대의 짚은 섰고, 그 사이 우린 또 멋진 풍광과 우리의 포터들을 카메라에 담는 행복을 누렸다.
우리를 보고 활짝 웃는 모습이 앞으로 이어질 이들의 고된 여정과는 전혀 상관없는듯 참으로 순박하고 행복해 보인다.
까마득한 아래로 펼쳐진 포퓰러 나무 숲으로 들어가니 역시 아기자기한 마을을 관통한다.
사막을 질주하다 만난 이 뜻밖의 풍광이 왠지 낯설기까지 하다.
길섶엔 마을 사람들이 흙바닥에 털푸덕이 주저앉아 지나는 이를 구경하듯 앉아있다.
문득 인간은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가장 완벽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흙에 딩굴고 빨래도 제대로 하지 못해 때가 꼬질 꼬질 묻어도 표가 잘 나지 않는 옷 색깔이 그렇고...
흙벽돌과 돌로 지어진 낮으막한 이들의 가옥도 그렇고...
심지어 이들의 표정까지도...
지저분하다는 생각보다는 모든게 그저 자연의 일부인것 같은....
이런 자연 환경속에서 살아가려면 누구나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을것 같은.....차라리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강 양쪽에 튼튼한 돌 축대를 쌓아 철근을 잇고 그 철근을 지지대로 삼아 나무 다리를 놓는 것이 이곳의 다리 모양새다.
얼핏 보기에 험악하리 만큼 거세게 흐르는 강위로 튼튼한 철교나 시멘트 다리대신 이런 위태로와 보이는 다리를 놓았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다 이유가 있겠지 생각해 버린다.
나무가 부러져 끊긴곳도 많고, 수없이 많은 곳을 보수해 나무를 덧댄 자국이 많아 사람이 건너가기에도 겁나는 다리건만,
저 많은 짐을 실은 짚차가 흔들 거리기까지 하는 낡은 다리를 건너갈 때는 아찔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론 아이러니하게도 스릴감이 느껴지니...
이놈의 안전 불감증에 걸린 녀자라니....
마을에 들어서 살구나무가 있는 곳을 지나치게 되었다.
일순간에 모두 '살구' 를 외쳤다.
익발 사장과 기사가 차에서 내리더니 한 웅큼의 살구를 씻어서 우리에게 주는 것이다.
손으로 몇개씩 받다가 감질맛이 나서 유라시아 모자에 몽땅 받았다.
노랗게 익은 살구는 얼마나 달고 맛있는 지 그냥 입안에서 살살 녹듯 넘어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사미사의 직분도 잊어먹은 채 살구를 폭풍흡입하고는 뒤늦게 살구 따는 아지매를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편안한 트레이닝 복을 입고 따기에도 힘들것 같은 살구 따기를 저렇게 치렁 치렁한 숄을 온몸에 두르고
저리 두껍고 들기조차 버거울 기인 장대를 들고 가볍게 미소까지 띄우며 살구를 따고 있는 처자의 모습이
그리 여유롭고 행복해 보일 수가 없다.
한 보따리 살구를 얻어 먹은것 말고도 제법 많은 살구를 봉지에 더 담아가지고 차에 탔다.
글쎄...산것 같지는 않고 그냥 공짜로 얻은것 같은데....
나중에도 모두 공짜로 살구를 먹은걸 생각하면 아마 여기서도 공짜로 얻었을것 같다.ㅎㅎ
맛있는 살구에 기분이 더욱 업되어진 우리는 마을을 벗어나 새롭게 나타난 풍광에 또다시 열광하기 시작했다.
바로 강 옆을 끼고 우람하게 서 있는 산새들의 위용이 예사롭지가 않다.
날카로운 산 꼭대기의 봉우리들과 그 사이 사이로 언뜻 언뜻 보이는 하얀 만년설의 모습이
터키어로 검은 바위산..검은 자갈밭이라는 카라코람의 위용에 걸맞는 풍광이다.
마을은 벗어났어도 간간히 쭉쭉 뻗은 포퓰러 나무와 그 사이로 잘 경작되어 노랗게 익은 밀밭의 풍광이 보인다.
파아란 하늘과 검은 바위산의 위용앞에 노오란 밀밭은 앙증맞도록 아름답다.
어디 그뿐인가~
달리는 내내 차안에 흐르는 신나고도 감미로운 팝의 선율들은 우리의 흥분되고도 행복한 마음을 몇배로 배가 시켜 주었다.
익발을 향하여 두 손을 치켜 세우며 '굿 초이스 뮤직'이라고...수없이 말해주었다.
우리의 이 행복한 모습을 보고 익발은 얼마나 그 역시 흥분됨을 감출 수 없었을까...
수도 없이 뒤를 돌아보며 우리의 이런 모습을 보고 또 보는것이 그도 한없이 행복에 겨운듯 보인다.
그대의 사랑 덕분에....Celine Dione / The Power of Love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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