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avinsky, Petrushka
스트라빈스키 ‘페트루슈카’
Igor Stravinsky
1882-1971
Petrushka: Andris Liepa
Ballerina: Tatiana Beletskaya
Blackmore: Gennady Taranda
Magician : Sergey Petukhov
Devil: Vitaly Breusenko
Bolshoi State Academic Theatre Orchestra
Bolshoi Ballet Stars
Conductor: Andrey Chistyakov
Bolshoi Theatre, Moscow
Bolshoi Ballet 1997
Andrey Chistyakov/Bolshoi Ballet 1997 - Stravinsky, Petrushka
디아길레프가 신예 작곡가인 스트라빈스키에게 대규모 오케스트라용 발레음악인 <불새>를 위촉한 도박에 가까운 모험이 커다란 성공을 거두자 숨 돌릴 겨를도 없이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서로 전투를 벌이는 듯한 일종의 발레-콘체르트슈튀크(Ballet-Konzertstück)를 작곡해 달라고 작곡가를 설득했다. 이에 1910년 여름 스위스에 머물고 있던 스트라빈스키는 러시아의 꼭두각시 인형인 페트루슈카(영국에서는 Punch, 프랑스에서는 Polichinelle, 이탈리아에서는 Pulcinella)라는 제목을 떠올리게 되어 1장의 러시아 춤과 2장 대부분을 작곡했다. 디아길레프의 요청대로 피아노를 등장시켰고 특히 2장에서 큰 역할을 하게끔 구성했다. 10월에 프랑스로 거처를 옮긴 뒤 1장 나머지와 3장 전체, 4장 대부분을 작곡하고 1911년 3월경에는 작품의 오케스트레이션까지 거의 마쳤다.
이렇게 총 1막 4장으로 구성된 발레음악 페트루슈카는 1911년 5월에 작곡이 완성되었고 다음 달인 6월 13일 파리 샤틀레 극장에서 피에르 몽퇴의 지휘와 발레 뤼스의 무대로 초연되었다. 이 발레의 시나리오를 쓴 알렉산드르 베누아가 무대장치를 제작했고 안무는 미하일 포킨(Michael Fokine, 1880-1942)이 맡았으며 페트루슈카 역은 바슬라프 니진스키(Vaslav Nizinskii, 1890-1950)가 맡았다. 결과는 불새 초연 때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사람들은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즉각적으로 이해하진 못했지만 발레에는 어마어마한 열광을 보냈다. 파리는 물론이려니와 이후 빈 슈타츠오퍼에서도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음악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정도였지만, 발레 뤼스의 안무와 스타 발레리노인 니진스키의 탁월한 감정 표현은 단박에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특히 사람도 아니고 인형도 아닌 페트루슈카의 기묘하고도 광적인 동작과 공허한 얼굴 표정, 그리고 고통스러운 내면의 파토스를 완벽한 몸짓으로 보여준 천재 니진스키의 연기는 찬탄을 자아냈다. ▶1911년 초연 공연에서 페트루슈카 역을 맡은 니진스키.
무대감독 베누아에게 헌정된 이 페트루슈카는 전통적인 발레와는 전혀 다른 음악 언어와 무용 언어를 선보였다는 점에서 대단히 파격적이다. 인형이 발레나 오페라에 등장한 적은 있었지만 전적으로 주인공으로 나선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들이 펼쳐내는 치정극으로서의 비극적인 결말, 현실을 은유하는 듯한 리얼리티는 대단히 충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한 만큼 이 페트루슈카는 낭만주의 시대 발레 전통과 결별한, 일종의 19세기 전통의 종지부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이 20세기에 접어들어 드라마틱하게 변했음을 알려주는 이 작품은 주인공의 심리 묘사로 표현되는 고통과 불안, 폭력과 과시로 얻어진 속물 근성의 승리, 권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소시민들의 쳇바퀴적인 삶, 소외되고 버림받은 개인의 잔혹한 결말, 현실에 대한 은유 등등이 20세기 예술의 주제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음악 또한 혁신적이지만 스트라빈스키의 다음 작품인 <봄의 제전>만큼 전통과 관습을 파괴하는 작품은 아니다. 러시아적인 정서와 독창적인 화성의 대비가 현대적인 조화를 이루며 안무와 무대장치와 함께 서사적인 클라이맥스와 드라마틱한 전개를 도출하기 때문이다. 피카소가 칭찬한 베누아의 데코르와 다채로운 코스튬, 포킨의 절제된 안무를 중심으로 E.T.A. 호프만적인 환상과 스트라빈스키 특유의 러시아적인 감수성, 동화적인 분위기와 신랄한 현실 비판, 드라마틱한 스토리텔링과 초현실적인 상징 등등이 때로는 무시무시하거나 신비스럽게, 때로는 흥겨우면서도 연극적으로 펼쳐지는 동시에 이 모든 예술적 요소들은 유기적으로 긴밀히 결합되어 있다. 그런 까닭에 음악과 발레, 시각과 청각, 서사와 은유가 창조적으로 결합된, 바그너의 종합예술론과는 전혀 다른 진취적이고 러시아 취향적인 종합예술의 개념을 정립한 효시로 평가받기도 한다.
알렉산드르 베누아가 디자인한 초기 무대 장치를 위한 스케치.
니진스키가 페트루슈카의 영웅이라면 음악을 작곡하고 많은 부분을 자신의 아이디어(마지막에 지붕 위에서 페트루슈카의 영혼이 등장하는 아이디어도 스트라빈스키 것이다)로 무대를 채운 스트라빈스키는 페트루슈카의 어머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민속적인 요소와 현대적인 요소, 협화와 불협화, 온음계와 반음계, 콜라주와 병치 효과, 불연속적인 음악적 흐름과 상상력과 드라마의 연속성을 적절하게 배합하여 전혀 새로운 음향을 만들어낸 결과 오케스트라 음악에 일대 혁신을 몰고 왔다. 오케스트라 버전은 1911년 오리지널 버전과 그보다 조금 작은 편성으로 손을 본 1947년 개정판이 존재하는데, 전체적으로 러시아 춤을 제외하면 독립적으로 떼어내기 힘든 순환적이고 연속적인 구조로 되어 있어 <불새>처럼 연주회용 모음곡으로 만들 수 없었다. 대신 작곡가는 피아노 독주용으로 편곡하여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에게 헌정했다. 처음 작곡할 때부터 피아노를 염두에 두었던 탓에 오케스트라 버전의 중요한 요소들을 피아노에 모두 담아내어 원곡 이상의 완성도를 자랑한다. 특히 피아니스트 알렉시스 바이젠베르크와 아케 팔크 감독이 1965년에 흑백으로 제작한 스튜디오에서의 피아노 솔로 연주 영상물은 발레 뤼스의 무대만큼이나 현대적이고 창조적인 클래식 음악 영상물의 선구자로 손꼽힌다.
Andris Nelsons/Royal Concertgebouw Orchestra - Stravinsky, Petrushka
Andris Nelsons, conductor
Royal Concertgebouw Orchestra
Concertgebouw Amsterdam
2011.11.16
1장
상트페테르부르크 광장에서 사육제 분위기가 흥청거린다. 금욕적이고 소박한 사순절이 오기 전인만큼 시작부터 축제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오른다. 노점상과 가판대가 가득 찬 가운데 작은 촌극들이 펼쳐지며 사육제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손풍금과 오르골(클라리넷, 플루트, 첼레스타)에 맞추어 아가씨들과 무용수들이 군중들 사이에서 춤판을 벌인다.
작은북이 울리며 복잡한 상점들 사이에서 마법사인 약장수(바순과 콘트라바순)가 페트루슈카, 무어인, 발레리나로 구성된 세 개의 꼭두각시와 함께 극장에 등장한다. 약장수가 플루트를 불며 신호를 보내자 세 꼭두각시는 생명을 얻은 듯 벌떡 일어나 러시아 춤(러시아 민요인 A Linden Tree is in the Field와 Song for St. John's Eve)을 추기 시작한다. 군중이 환호하자 세 꼭두각시는 팬터마임을 펼친다. 페트루슈카와 무어인이 동시에 발레리나를 사랑하지만 결국 발레리나의 관심은 무어인에게 꽂히지만 발레리나의 화해로 흥겨운 러시아 춤을 춘다는 내용이다. 군무가 끝나자마자 세 꼭두각시들은 약장수에 의해 생명을 뺏겨 무대에 쓰러지고 급작스럽게 막이 내린다.
1장 - 무어인, 발레리나, 페트루슈카가 같이 러시아 춤을 추는 장면.
2장
무대 뒤 페트루슈카의 방. 검은 벽지에 별과 초승달로 장식되어 있다. 악마가 그려진 금빛 문은 발레리나의 방을 향해 굳게 닫혀 있다. 청중은 그가 인간과 동일한 감정을 갖고 있는 상태임을 알 수 있다. 페트루슈카(C장조와 F샤프장조의 병렬 3화음으로 구성된 ‘페트루슈카 코드’)는 인간의 몸과 정신, 자유와 열망을 원하지만 약장수의 노예와 같은 상태임을 한탄한다. 그리고 디아길레프가 의도했던 콘체르트슈튀크 형식을 반영하여 피아노 아르페지오가 페트루슈카 코드를 장식하며 슬프고 음침한 그의 마음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우울함은 자신의 방에 들어온 발레리나로 인해 급격하게 기뻐하며 그녀의 사랑을 얻고자 정력적으로 춤을 추며 구애한다. 방의 기이한 모습과 페트루슈카의 거친 모습에 놀란 발레리나는 이내 자신의 방으로 도망가버린다. 절망에 빠진 페트루슈카는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감옥 같은 자신의 방에서 탈출하고자 하지만 오른쪽 벽에 주먹만 한 구멍을 낸 채 실패한다. 결국 아무런 통로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약장수의 초상화를 향해 절규하며 바닥에 쓰러진다.
2장 - 굳게 닫혀 있는 발레리나의 방 앞에서 슬퍼하는 페트루슈카.
3장
무어인의 방. 벽에는 붉은 대지 위에 야자수가 서 있고 천연색의 과일이 그려져 있다. 빈둥거리며 소파에 기대어 한가로움을 즐기고 있다가 코코넛을 발견하고 이리저리 굴리고 돌리며 가지고 놀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코코넛을 향해 큰절을 올리기까지 한다. 작은북이 울리며 발레리나가 작은 나팔을 불면서 등장한다. 거만하게 춤을 추며 무어인은 발레리나를 유혹하기 시작하고 이내 같이 춤을 추다가 둘은 포옹을 하며 사랑을 나눈다. 바로 그때 페트루슈카가 질투에 눈이 멀어 방으로 뛰어 들어오고 무어인은 칼을 빼서 그를 뒤쫓는다. 발레리나는 겁에 질리고 페트루슈카는 결국 밖으로 도망친다.
3장 – 무어인과 사랑을 나누는 발레리나.
4장
다시 1장과 동일한 카니발이 열리고 있는 시장 한가운데의 저녁 무렵. 군중이 몰려오는 가운데 유모들(오보에)이 춤을 추고 피리를 부는 농부가 곰(하이 클라리넷)을 끌고 나오며 술에 취한 상인이 집시 여인들(오보에)을 옆에 끼고 나와 지폐를 뿌린다. 한편 마부들(강한 현악 코드)과 가면을 쓴 무리, 서커스를 하는 광대들도 무대에 등장한다.
이러한 흥겨운 분위기는 겁에 질린 듯 뛰어나온 페트루슈카와 칼을 빼들고 그를 쫓는 무어인 때문에 극적으로 바뀐다. 결국 무어인이 칼로 페트루슈카를 베어 쓰러트리고 놀란 군중은 죽은 페트루슈카 주위에 몰려든다. 경찰까지 달려오지만 약장수는 나무 머리와 지푸라기 몸을 한 꼭두각시일 뿐이라고 사람들을 안심시킨다. 페트루슈카기 한낱 지푸라기 인형임을 확인한 군중은 뿔뿔이 흩어지고 약장수는 인형을 무대 밖으로 끌고 가려는 순간 페트루슈카의 유령(트럼펫)이 극장 지붕 위에서 원통한 듯 몸부림치며 자신과 사람들을 조롱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4장 – 죽은 페트루슈카를 끌고 나가는 약장수.
추천음반
1. 피에르 불레즈/ 클리브랜드 오케스트라, 오케스트라 버전. DG
2. 마리스 얀손스/ 로열 콘세르트헤보우 오케스트라, 오케스트라 버전. RCO
3. 파리 오페라 발레, 발레 버전. Nonesuch LD
4. 데니스 맞추예프, 피아노 버전. RCA
5. 알렉시스 바이젠베르크, 피아노 버전. EMI DVD
글 박제성(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음악 전문지 <음악동아>,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피아노 음악>과 여러 오디오 잡지에 리뷰와 평론을 쓰고 있으며, 공연, 방송, 저널 활동, 음반 리뷰, 음악 강좌 등 클래식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베토벤 이후의 교향곡 작곡가들>을 번역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클래식>명곡 명연주 2014.01.17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66&contents_id=47180
Mussorgsky, Night on Bold Mountain
무소르그스키 ‘민둥산에서의 하룻밤’
Modest Mussorgsky
1839-1881
회오리바람이 불어오듯 무시무시한 분위기로 시작되는 교향시 <민둥산에서의 하룻밤>은 19세기 관현악 작품들 가운데서도 매우 독창적이고 특별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민둥산에서의 하룻밤>을 작곡한 무소르그스키는 러시아 남부 키예프의 트라고라프라 불리는 산에서 매년 6월 24일마다 열리는 성 요한제의 전설에 영감을 받아 이 곡을 작곡했다고 전해진다. 전설에 의하면 성 요한제의 전날 밤에는 온갖 마녀와 귀신들이 민둥산에 모여 악마를 기쁘게 하는 잔치를 벌어지는데, 그들이 벌이는 기괴한 연회 장면은 무소르그스키의 교향시 <민둥산에서의 하룻밤>에 생생하고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거칠면서도 흥미진진한 느낌의 이 음악은 재미난 표제와 대담한 표현력을 갖추고 있어 오늘날 오케스트라의 어린이 음악회의 단골 레퍼토리로 연주될 뿐 아니라, 디즈니의 유명한 만화영화 <판타지아>에 사용돼 인기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이 곡은 작곡의 기원부터 완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개정과 편곡 과정을 거치면서 판본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문제작이기도 하다. 게다가 오늘날에는 무소르그스키의 원곡판보다는 림스키코르사코프의 편곡판이 주로 연주되고 있기에 과연 이 작품을 무소르그스키의 대표적인 관현악곡으로 꼽을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점도 있다.
Fritz Reiner, conductor
Chicago Symphony Orchestra
1957
프리츠 라이너/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이 연주가 네이버캐스트 온라인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작곡 배경에 대한 가설과 여러 개의 판본
사실 <민둥산에서의 하룻밤>을 비롯한 무소르그스키의 많은 작품들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편곡 작업이 없었다면 세상에 알려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무소르그스키는 러시아 5인조를 이루는 민족주의 작곡가들 가운데 독창적이고 파격적인 악상을 지닌 음악가였음에도 간질병과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다 46세의 이른 나이에 심장병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미완성으로 끝나버렸다. 다행히 러시아 5인조의 작곡가 중 관현악 기법에 가장 뛰어났던 림스키코르사코프는 무소르그스키가 남긴 작품에 오케스트레이션을 하고 원곡의 의도에 맞게 양심적으로 편곡하여 무소르그스키의 많은 작품들이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다. 교향시 <민둥산에서의 하룻밤> 역시 림스키코르사코프의 깔끔하고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 덕분에 빛을 보게 된 작품이다. ▶무소르그스키는 ‘러시아 5인조’의 한 명으로 러시아 국민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이다.
무소르그스키의 <민둥산에서의 하룻밤>이 어떻게 잉태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무소르그스키가 리스트의 <죽음의 무도>를 모델로 하여 1860년경에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환상곡이라는 형식으로 구상한 것이 <민둥산에서의 하룻밤>의 기원이 되었다는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주장이다. 그러나 초안의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또 한 가지 유력한 설에 의하면 1860년에 멘그덴 남작의 희곡 <마녀>를 위한 부수음악을 구상하고 있었던 무소르그스키가 이 희곡 가운데서 1년에 한 번 열리는 ‘악마의 연회’ 장면에 대한 음악을 작곡했는데, 이것이 <민둥산에서의 하룻밤>의 기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이 무대 작품은 완성되지 못했다.
이후 무소르그스키는 고골의 희곡 <성 요한제의 전야>에 의한 오페라를 구상하면서 1867년에 드디어 교향시 <민둥산의 성 요한제의 밤>의 첫 번째 판본을 완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작곡가 발라키레프가 이 곡을 심하게 혹평하는 바람에 이 곡은 연주 기회도 얻지 못한 채 묻혀버렸고 오페라 역시 완성되지 못했다. 그로부터 4년 후인 1871년, 러시아 5인조의 합작 오페라 <믈라다>를 위해 무소르그스키는 교향시 <민둥산에서의 하룻밤>을 성악과 피아노용으로 편곡하려 했으나 이 계획 역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그는 다시 오페라 <소로친스크의 시장>을 작곡하면서 술에 취한 청년의 환각에 사로잡힌 꿈을 묘사하기 위해 <민둥산에서의 하룻밤> 악보를 개정해 ‘젊은이의 꿈’이라는 합창 관현악 작품으로 만들었다. 오페라에서 이 곡은 3막의 제1장과 제2장 사이에 삽입된 간주곡이며 극의 이야기와 직접 관계가 없는 꿈속의 악마의 향연을 묘사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무소르그스키가 남긴 <민둥산에서의 하룻밤>의 악보는 결국 서로 다른 이름의 세 가지 판본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발라키레프의 혹평으로 사장된 1867년의 ‘민둥산의 성 요한제의 밤’의 원곡판과 오페라 <믈라다>의 편곡판, 그리고 오페라 <소로친스크의 시장> 중 ‘젊은이의 꿈’이 그것이다. 1881년 무소르그스키의 타계 이후 림스키코르사코프는 남아 있는 세 개의 판본들 중 “개개의 최상의 부분을 떼어내어” 자기 나름의 교항시로 구성해냈다. 이로써 교향시 <민둥산에서의 하룻밤>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오케스트레이션과 무소르그스키의 악상이 결합된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림스키코르사코프의 편곡판은 1889년 프랑스에서 개최된 만국박람회의 연주회에서 초연되었다.
BBC Symphony Chorus and Singers
BBC Symphony Orchestra
Gennadi Rozhdestvensky, conductor
1981 Royal Albert Hall
무소르그스키의 미완성 오페라 <소로친스크의 시장>에 바탕한 코랄 버전 <민둥산에서의 하룻밤>입니다.
마녀들의 축제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관현악 기법
무소르그스키는 교향시 <민둥산에서의 하룻밤>을 구상할 당시 이 작품을 “마녀의 집회와 논의, 사탄의 행렬, 사탄에 의한 저주스런 찬사, 악마의 연회”라는 표제적인 내용에 따라 작품을 계획했기에 1867년의 교향시 원곡판은 이런 순서를 따른다. 그러나 이후 오페라 <소로친스크의 시장>에 삽입된 ‘젊은이의 꿈’의 개정 작업을 진행 중 그는 이 작품에 평온한 분위기로 끝맺는 새로운 결말을 덧붙였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무소르그스키가 후에 덧붙인 평화로운 결말을 채택해 림스키코르사코프 편곡에 의한 교향시 <민둥산에서의 하룻밤>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전개된다.
▶이 곡은 민둥산에 모여든 마녀, 악마들의 기괴한 축제를 묘사한 관현악 기법이 뛰어나다.
“지하에서 음산한 소리가 울려나온다. 어둠의 요정들이 등장하고 이어서 어둠의 왕 체르노보그가 나타난다. 마귀들은 체르노보그를 찬미하는 암흑의 미사를 드리고, 마녀들이 안식일의 향연을 벌인다. 이 광란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먼 마을 교회의 종이 울리기 시작하고, 어둠의 요정들은 물러간다. 그리고 날이 밝는다.”
무소르그스키는 마녀들의 축제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하기 위해 교향시의 원곡판에서 현악기군과 관악기군을 대비시켜 긴장감을 만들어 내거나 여러 가지 음향 층으로 분리하는 기법을 자주 사용했는데, 이런 기법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편곡판에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어 원곡의 느낌을 잘 살려내고 있다. 그러나 무소르그스키의 오케스트레이션이 한결 거칠고 투박해 각종 마귀들의 괴성과 혼란스런 축제의 분위기를 묘사하는 데 있어 더 효과적인 면도 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종종 1867년에 완성된 <민둥산에서의 하룻밤>의 원곡판이 종종 연주되기도 한다.
추천음반 <민둥산에서의 하룻밤>의 전통적인 추천음반으로는 프리츠 라이너가 지휘하는 시카고 심포니오케스트라의 음반(RCA)이 있으며 샤를 뒤투아가 지휘하는 몬트리올 심포니오케스트라의 음반(Decca)과 주세페 시노폴리가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의 음반(DG)과 레이프 세게르스탐이 지휘하는 핀란드 라디오 심포니오케스트라의 음반(BIS)도 호평을 받고 있다.
글 최은규(음악평론가) <교향곡은 어떻게 클래식의 황제가 되었는가>의 저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졸업,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부수석 및 기획홍보팀장을 역임. 월간 <객석> <연합뉴스> 등 여러 매체에서 음악평론가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술의 전당과 풍월당 등에서 클래식 음악을 강의하고 있다.
해설 :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클래식 2010.08.23
Schbert, Symphony No.8 ‘Unfinished’
슈베르트 교향곡 8번 ‘미완성’
Franz Peter Schubert
1797-1828
워낙 ‘미완성’이란 제목이 유명해서 슈베르트의 미완성 작품은 이 곡이 유일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는 그가 1818년 이후에 작곡한 곡 가운데는 미완성 작품이 적지 않다. 또 교향곡의 역사를 돌이켜보아도 ‘미완성으로 완성된’ 곡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브루크너의 교향곡 9번도 이런 경우에 속한다. 그런데 왜 유독 이 곡만이 ‘미완성’이라는 표제가 붙은 채 누구나 사랑하는 명곡이 되었을까?
풀리지 않는 ‘미완성’의 비밀
이 곡은 1822년 10월 22일 슈베르트가 작곡에 착수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것은 관현악 총보를 만드는 작업을 가리키는 것이며, 단편적으로 존재하는 피아노 스케치는 그 이전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슈베르트는 1악장과 2악장을 작곡하고 나서 3악장 작곡을 시작했으나, 20마디까지만 관현악 편성 작업을 한 채 일단 작곡을 중단했다. 그 뒤 1823년 4월에 그라츠의 음악협회 회원으로 추천받은 슈베르트는 이를 수락한 뒤 감사의 뜻으로 교향곡 하나를 헌정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슈베르트의 친구이자 음악협회 대표였던 안젤름 휘텐브레너는 나머지 두 악장의 악보가 마저 도착하기를 기다렸으나, 결국 악보는 오지 않았고 이 일은 그대로 흐지부지되었다. 그 뒤 지휘자인 요한 헬베크가 이 곡을 발견해 초연한 것은 1865년 12월 17일의 일이었으니, 이 교향곡은 40여 년 동안 그대로 잠자고 있었던 셈이다.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슈베르트 기념상.
이 작품이 끝내 미완성으로 남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많은 설명이 있다. 일단 갈수록 악화된 슈베르트의 병(1820~1821년 사이에 매독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을 근거로 드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슈베르트가 1828년에 사망할 때까지 수많은 걸작을 남겼다는 점에서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워낙 다작의 작곡가였던데다 건망증까지 심했던 슈베르트가 그냥 잊어버린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또 1, 2악장 모두 3박자 계통이기 때문에 역시 3박자로 구성한 3악장 스케르초의 악상을 제대로 전개해 나가는 데 애를 먹었던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흥미로운 의견이긴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뚜렷한 증거는 없다.
결국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자료가 발굴되기 전에는 ‘진실은 저 너머에’가 될 것 같다. 이런 상황을 안타까워한 여러 음악가가 스케르초 악상의 피아노 스케치를 관현악화했고, 영국의 음악학자인 에이브러햄과 뉴불드는 3악장 스케르초의 완성본에 더해 슈베르트의 극부수음악 <로자문데>의 간주곡을 4악장으로 대체해 ‘완성본’을 제시하기도 했다(<로자문데>는 1923년 말에 작곡되어 시기상으로도 근접하며 기본 조성도 B단조로 같다). 러시아 작곡가 안톤 사프로노프처럼 아예 새로운 피날레를 작곡해버린 이도 있다. 그것 나름대로 좋은 시도이기는 하지만 어차피 미완성은 미완성이고, 이 작품은 미완성 상태만으로도 완전한 걸작으로 칭송받고 있다.
Muti/WPh - Schubert's Symphony No.8 'Unfinished'
Riccardo Muti, conductor
Wiener Philharmoniker
2010
1. Allegro moderato
2. Andante con moto
1악장: 알레그로 모데라토
소나타 형식을 취하면서도 악상이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독특한 형식의 악장이다. 엄숙한 느낌의 서주 주제가 제시된 뒤 처연하게 노래하는 느낌의 유명한 1주제(만화영화 <개구쟁이 스머프>에서 이 주제가 흘러나온다)가 등장한다. 이어 민요풍의 2주제가 G장조로 연주되며, 발전부에서는 세 주제가 함께 발전하면서 분위기가 고조된다. 재현부 말미에서 첫 부분 주제가 짧게 연주되면서 침통한 느낌으로 마무리된다.
2악장: 안단테 콘 모토
2부 형식, 달리 말하자면 발전부가 없는 소나타 형식이라 할 수 있다. 호른에 이끌려 등장하는 바이올린의 1주제는 1악장 서주 주제와 연관성이 있어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되풀이된다. 오보에가 처음 제시하고 클라리넷이 받아 연주하는 2주제는 목가적인 느낌을 띠고 있으며, 이 주제가 잠시 격정적으로 전개된 뒤 전반부의 악상이 약간 변형된 형태로 되풀이된다. 2주제부의 전개가 확장되어 거대하게 전개된 뒤 여운을 남기며 고요히 끝난다.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슈베르트(맨 왼쪽)와 동료들이 연극 리허설을 하고 있다. 슈베르트는 동료들과 함께 ‘슈베르티아데’라는 예술 모임을 이끌었다.
‘미완성이되 미완성이 아닌’ 시대를 초월한 고전
평생토록 슈베르트의 작품을 깊이 사랑했던 브람스는 이 곡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이 곡은 양식적으로는 분명히 미완성이지만 내용적으로는 결코 미완성이 아니다. 이 두 악장은 어느 것이나 내용이 충실하며, 그 아름다운 선율은 사람의 영혼을 끝없는 사랑으로 휘어잡기 때문에 누구라도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온화하고 친근한 사랑의 말로 다정하게 속삭이는 매력을 지닌 교향곡을 일찍이 들은 적이 없다.”
슈베르트의 시대 이래로, 또 브람스의 시대 이래로 많은 세월이 흘렀고, 또 많은 교향곡들이 등장했지만, 브람스의 말은 아직도 그때와 똑같은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 바로 이런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클래식’(고전)이 아니겠는가?
추천음반
곡의 명성만큼이나 수많은 녹음이 있지만 노장의 연주 두 장, 신선한 해석 두 장을 골라보았다. 브루노 발터의 1958년 녹음(Sony)은 작품에 대한 지휘자의 공감이 전해지는 따뜻한 해석이 일품이다. 귄터 반트/베를린 필의 1995년 녹음(RCA)은 오래전부터 명성이 높지만 2악장의 해석은 뮌헨 필과의 녹음(Profil)이 한층 자연스럽고 유연하다. 시노폴리의 녹음(DG)은 진중한 태도, 느릿한 템포로 섬세하고 세부가 뚜렷한 연주를 들려준다.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녹음(DG)은 탁월한 리듬감, 역동성, 시원스런 추진력이 돋보이는 상쾌한 연주다.
해설 :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클래식>명곡 명연주 2009.11.20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66&contents_id=1532
Herbert Von Katajan, cond.
Berlin Philharmonic
1. Allegro Moderato (12:25)
2. Adante con moto (13:47)
Gunter Wand, cond.
Munchner Philharmoniker
1. Allegro Moderato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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