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클래식 2013년)

베를린 필하모닉 내한공연 둘째날 /11.12.화/예술의 전당

나베가 2013. 11. 10. 03:24

 

 

11.12 TUE

 프로그램

 

피에르 불레즈 오케스트라를 위한 노타시옹

Pierre Boulez Notations

Notations I - VII - IV - III - II

 

 

I N T E R M I S S I O N

 

 

안톤 부르크너 교향곡 7 E장조, WAB107

Anton Bruckner Symphony No. 7 in E Major, WAB107 (‘Lyric’)

Allegro moderato

Adagio: Sehr feierlich und sehr langsam

Scherzo: Sehr schnell

Finale: Bewegt, doch nicht zu schnell

 

베를린 필하모닉 (Berliner Philharmoniker) 소개

 

베를린 필하모닉 (Berliner Philharmoniker)은 1882년에 창단되었으며 초대 지휘자인 한스 폰 뵐로 이후 근대 지휘사에 장을 연 2대 지휘자 니키쉬, 3대 푸르트뱅글러, 4대 카라얀 등 거장들이 이 악단을 상임 지휘했다. 특히 종신 상임 지휘자로 34년간 베를린 필을 이끌었고 1989년에 타계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지금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지휘자이다. 베를린 필은 카라얀 타계 후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상임 지휘자로 오랜 동안 지휘봉을 잡아 오다가 2002년 9월부터 '사이먼 래틀 경'이 음악감독 및 상임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사이먼 래틀 경'의 임기는 2012년까지이다.

[오케스트라의 역사]
1878년, 벨제 관현악단 창단
1882년, 베를린 필하모닉 창단
1887년 ~ 1892년, 한스 폰 뷜로 (지휘자)
1895년 ~ 1922, 아르투르 니키슈 (지휘자)
1922년 ~ 1934년, 1952년 ~ 1954년,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지휘자)
1945년, 레오 보르하르트 (임시 지휘자)
1945년 ~ 1952년, 세르주 첼리비다케 (임시 지휘자)
1955년 ~ 1989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자, 종신 음악감독 겸임)
1989년 ~ 2002년, 클라우디오 아바도
2002년 ~ 2011년 현재, 사이먼 래틀 경


사이먼 래틀 경(Sir Simon Rattle) 소개 사이먼 래틀 경(Sir Simon Rattle) 소개

'사이먼 래틀 경'은 2002/03 시즌, 베를린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 겸 음악감독으로 부임했다. 1955년 영국 리버풀에서 태어난 '사이먼 래틀 경'은 런던 왕립 음악원에서 지휘를 공부했다. 1974년 존 플레이어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번머쓰 심포니 앤 신포니에타의 부지휘자로 취임하였으며, 1980년 버밍엄 시립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 겸 예술 고문으로 지냈으며, 이후 1990년 9월부터 1998년 8월까지 음악감독으로 재직했다. 1992년 10월부터 계몽시대 오케스트라의 수석 객원 지휘자, 버밍엄 현대음악단의 예술 고문으로 있다. 1979년 로스엔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북미 데뷔 무대를 가진 이래, 1981년부터 1994년까지 수석 객원 지휘자로 활동했다. 이 외에도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시카고 심포니,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토론토 심포니, 보스톤 심포니 등을 지휘했다.
'사이먼 래틀 경'은 2004/05 시즌, 베를린 필하모닉을 그들의 본거지인 베를린에서 지휘하며, 유럽과 일본 투어, 2005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벤자민 브리튼의 "피터 그라임스(Peter Grimes)"를 최초로 지휘하였다. 영국 왕실은 음악에 대한 그의 공헌을 인정하여 C.B.E.를 수여했으며, 1994년 Birthday Honours List에서 기사 작위를 수여했다. 그는 BC Music Magazine Outstanding Achievement Award를 최초로 수상하였으며, Loyal Society of Arts Albert Medal을 수상했다. 또한, South Bank Show Awards 오스트리아의 1등급 십자 문화예술 명예 훈장을 수상했다.

 

 

Symphony No.7 in E major, GA110

브루크너 / 교향곡 7번

Bruckner, Josef Anton, 1824 ~1896

Herbert von Karajan, Cond / Berliner Philharmoniker

얼마전 종영된 KBS TV, 역사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에서, 이순신 장군이 고뇌하는 장면에서 브루크너 교향곡 7번 2악장 아다지오가 배경음악으로 나오면서 듣는 시청자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으며,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 한다. 이후, 이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음악이 어떤 곡인지 인터넷을 통해 질문하는 사례가 많아졌다한다. 1883년 브루크너는 이 교향곡을 작곡하던 중, 바그너의 부고를 접하게 되자, 제2악장에 장송행진곡을 추가하여 이 거장의 서거를 추모하였기에 <이별의 노래>라는 부제로 불리기도 한다.


1,2,3,4악장
Berliner Philharmoniker / Herbert von Karajan, Cond
사용판본:1885년 원전판, Haas편집 1944년 / 1970. 10. & 1971. 2 .녹음

[브루크너 교향곡 7번 E장조 배경]

브루크너의 제7번 교향곡 E장조는, 너무나 오랫동안 이해를 못 받고 조롱을 당하거나 심지어는 풍자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그의 교향곡 작품을 위한 돌파구를 마련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그것은 브루크너에게 참된 성공을 가져다 준 첫 작품이 었으며, 그의 다른 교향곡들이 음악회장으로 진출하는 길을 닦아 놓았다. 이 새로운 작품에서 그는 처음으로 네 대의 바그너 튜바를 추가하는 등 오케스트라 편성을 확대시켰다. 그러나 금관악기의 강렬한 음색을 남용하지 않고, 노래하는 듯한 현악기와 서정적인 목관악기를 부각시키기 때문에 브루크너의 작품 중에서는 가장 선율적인 음악을 만들어낸다.

브루크너는 그의 제7번 교향곡을 그의 제6번 교향곡을 완성하고 난 후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1881년 9월에 착수했다. 다시 제6번 교향곡을 작곡하던 때와 마찬가지로 브루크너는 이 곡의 작곡에 거의 2년을 보내게 되며, 이 기간 동안 이 교향곡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테 데움>의 작곡을 잠시 멈추었다. 자필 스코어에 나타난 날짜에 의하면 브루크너는 1881년 9월 23일에 7번 교향곡의 첫 악장을 작곡하기 시작하였고, 1882년 12월 29일에 완성하였다. 아다지오는 1883년 4월 21일에, 스케르초는 1882년 10월 16일에, 피날레는 1883년 8월 10일과 9월 5일 사이에 완성되었다. 초연은 1884년 12월 30일에 라이프치히에서 아르투르 니키쉬의 지휘 하에 행해졌는데, 이것은 몇번의 유예 후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아다지오는 몇주 후에 다시 반복되었고, 1885년 3월 10일에는 레비가 뮌헨에서 완전한 교향곡을 다시 연주하였다. 이 작품은 1885년 빈의 굿만 회사에서 출판되었으나 변경된 프레이징을 포함하고 있었으며, 브루크너의 제자인 요제프 샬크와 페르디난드 뢰베에 의한 템포 지시도 첨가된 것이었다.

초기의 악보 출판과 유럽과 미국에서의 수많은 연주회를 통해 이 작품은 음악인들뿐만 아니라 청중들에게 심오한 영향을 미쳤다. 브루크너의 어떤 작품도 이 작품과 같이 음악계와 청중들에게 그렇게 빨리 그리고 광범위하게 강력한 감동을 주지는 못했다. 그것은 결코 '쉬운' 작품이 아니었다. 기존의 교향곡 형식의 원리에 비추어볼 때 이 작품의 본질은, 심지어 현대에 이르러서도 논란의 대상이 된다. 이 작품에는 엄청난 화성적, 동기적 긴장이 내재되어 응축된 에너지를 형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곡은 뛰어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으며 즉각적인 만족과 즐거움을 주는 듣기 쉬운 음악이다.

그리고 브루크너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사람들의 회상에 의하면 2악장은 아마도 브루크너가 바그너의 죽음을 예견하고 쓴 것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브루크너가 펠릭스 모틀에게 쓴 편지에 의하면,

"어느 날 나는 집에 돌아와서 매우 슬픈 기분이 들었다네... 머지않아 그분이 돌아가실거라는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쳐갔지. 그때 아다지오의 c# 단조 주제가 떠올랐다네."

죽음의 소식이 그에게 전해졌을 때 브루크너는 코다까지 작곡을 마친 상태였다. 브루크너는 튜바와 호른을 위한 악구를 그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은 상황에서 썼으며 '대가의 서거를 추모하는 애도의 음악'으로 이것을 작곡했다.

1884년에야 겨우 완성된 <테 데움. 종결부의 "희망이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Non confundar in aeternam)는 아다지오 악장의 주제와 관련되는데, 이는 7번 교향곡에 깔린 기독교 신앙의 흔적을 보여준다.

제1악장(Allegro moderato) 2/2. 역시 브루크너의 다른 교향곡들과 같이 처음은 현의 트레몰로로 시작되면서 첼로등의 저음현과 호른이 도입부를 열어간다. 이 선율은 다른악기가 반복연주되면서 계속 발전해간다. 그러다가 마치 춤추는 듯한 리드미컬한 선율이 등장하고 본격적으로 연주해간다. 처음의 도입부는 나중에 가서 더욱 발전하고 등장하여 전 오케스트라가 크게 연주하며 끝맺는다.


1악장 (Allegro moderato)
Berliner Philharmoniker / Herbert von Karajan, Cond
사용판본:1885년 원전판, Haas편집 1944년 / 1970. 10. & 1971. 2 .녹음

제2악장(Adagio. Sehr feierlich und sehr langsam) 이 악장은 바그너의 죽음을 추도하는 의미가 끝에 가서 있다. 그레서 그런지 '극히 장엄하고 느리게'라고 지시하고 있다. 도입은 네 대의 바그너 튜바에 의해 장엄하게 펼쳐지는 애도의 주제는 여러 가지 복잡한 특징들을 지니고 있다. 넓은 음역에 걸쳐 제시되는 이 선율은 규칙적인 프레이즈로 나뉘어지지 않는 불균형한 대구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여덟 마디 안에서도 단조와 장조가 무수히 교차하면서 복잡한 감정의 음영을 암시한다. 그리고 <테 데움>의 선율 중에서 "영원에의 희망이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Non confundar in aeternam) 부분을 인용하고, 6마디에서 그레고리오 성가를 연상시키는 성가적인 유니즌을 사용하여 그의 깊은 신앙심을 반영한다.


2악장 (Adagio. Sehr feierlich und sehr langsam)
Berliner Philharmoniker / Herbert von Karajan, Cond
사용판본:1885년 원전판, Haas편집 1944년 / 1970. 10. & 1971.2 . 녹음

아다지오의 평안한 장송 음악에 이어, 브루크너가 쓴 다른 어떤 작품들보다도 정열에 넘치는 확신과 환희로 가득찬 스케르쪼와 피날레가 뒤따른다. a단조의 스케르쪼는 거칠고 쾌활한 기쁨을 드러내는 음악으로서 전통적인 소나타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이 악장 전체 구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들은 처음 열두 마디 안에서 모두 언급된다. 첫 열두마디 동안 제시되는 스케르쪼 주제는 현악기의 끈질긴 오스티나토(반복음형)를 배경으로 제시되는 트럼펫의 모티브와 이에 대한 클라리넷과 바이올린의 응답으로 이루어진다. 곡은 클라이맥스를 형성한뒤 차차 고요해지면서 바그너 튜바가 바그너를 위한 장송곡을 연주한다. 그 밖에 호른도 다른악기도 가담하면서 장송곡은 위엄있게 발전된다. 그리고 악장을 엄숙하고 조용하게 끝맺는다.

제3악장(Scherzo. Sehr schnell) 매우 빠르게 3/4 스케르초. 전체적인 구성은 트리오 부분을 포함하여 다섯부분으로 나누어지고 집약하면 겹 3부 형식이 된다. 다소 공격적이며 활기찬 멜로디를 첼로등의 저음현이 계속반복하며 이 반주위에 트럼펫이 연주한다. 트럼펫의 모티브는 자연 배음렬에서 가장 기본적인 음정이라고 할 수 있는 옥타브와 완전 5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원초적인 자연의 모습을 암시하며, 옥타브 도약 후에 다시 아치형을 그리며 시작음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정적인 성격을 지닌다. 반면 7도 하행 도약하면서 전체적으로는 순차 하행하는 클라리넷과 바이올린 모티브는 거대하게 우뚝 선 자연의 침묵에 저항하려는 몸짓을 보여준다. 3악장의 스케르쪼 모티브에서 다시 행위자와 반대자의 긴장을 읽어낼 수 있다. 1, 2, 3악장을 거치는 동안 점차 상승되어온 표현과 의미는 마지막 피날레에 이르러 종합된다.


3악장 (Scherzo. Sehr schnell)
Berliner Philharmoniker / Herbert von Karajan, Cond
사용판본:1885년 원전판, Haas 편집 1944년 /1970. 10. & 1971. 2.녹음

제4악장(Finale. Bewegt, doch nicht schnell) 율동적으로, 그러나 빠르지 않게 2/2. 바이올린이 상쾌하게 연주를 시작한다. 현악기의 트레몰로를 배경으로 제시되는 피날레의 도입. 이 선율은 계속 반복되며 조금씩 변화한다. 그러다 갑자기 1악장 제1주제를 인용한 금관부가 천둥같이 강하게 등장한다. 변화를 거듭하여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그리고 현이 또 앞의 갸냘픈 선율을 느릿하게 똑같이 연주한다. 계속되는 제1주제의 동기로 발전하고 나중에 제1주제 전체가 연주된다. 더욱 크게 영광스럽게 연주하면서 코다로 진입한다. 코다는 제1주제의 요소를 소재로 활용하면서 전 관현악단이 화려하고 강하게 전 곡을 마무리 짓는다.


4악장 (Finale. Bewegt, doch nicht schnell )
Berliner Philharmoniker / Herbert von Karajan, Cond
사용판본:1885년 원전판, Haas 편집 1944년 /1970. 10. & 1971. 2 .녹음

[브루크너 교향곡 7번 E장조]

안톤 브루크너는 오늘날 곳곳에서, 베토벤과 함께 말러 사이에 가장 중요한 교향곡 작곡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에 반해 생전에는 동료 작곡가들 사이에서 거의 인정 받지도, 이해되지도 못했다. 말년에 이르러서야 사람들이 그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난뒤에야 그가 남긴 작품들은 그 위대성을 인정 받았다. 차츰 사람들은 브루크너 초기 교향곡 작품들이 아방가르드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브루크너가 새롭고 기념비적인 교향곡 양식과 대담하고 현대적인 음언어를 창조해 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브루크너는 예순 살이 되도록 빈에서 작곡가 대접을 받지 못했다. 1884년까지 빈에서 그의 작품은 거의 연주되지 않았다. 1877년에 교향곡 제3번의 초연은 누가 보아도 실패였다. 1881년에는 교향곡 제4번이 그런데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으나 제5번은 브루크너 생전에 빈에서 연주된 바 없고, 제6번은 1883년에 가운데 두 악장 만이 연주되었다. 후고 볼프도 1891년, 브루크너가 빈에서 좀처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탄하 였다.

빈의 음악정치학적 상황이 브루크너의 교향곡이 전파되는데 불리하게 작용했음은 명백하다. 에두아르드 한슬릭을 중심으로 하는 보수주의자들은 브루크너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신봉자임을 자처한다는 이유로 그에 대해 적대적이었다. 보수주의자들은 브루크너를 극단적인 아방가르드, 또 신성한 교향곡의 세계를 어지럽히는 '무서운 아이'(enfant terrble)로 보았다. 보수주의자들은 집요하게 브루크너를 '무정부주의자' '질풍노도의 예술가' '야생의 작곡가' '화성의 이단자' 따위로 불렀다. 브루크너에 공감을 보이던 동시대인들도 그의 음악을 정확히는 이해하지 못했다. 브루크너의 제자들마저 그의 교향곡의 합법칙성과 엄격한 구조적 논리를 언제나 이해한 것은 아니다. 이해받지 못하고 비웃음마저 당하던 브루크너의 교향곡 작법은 교향곡 제7번에서 처음으로 돌파구를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제7번은 브루크너에게 성공을 가져다준, 그리고 그 결과 다른 교향곡들도 연주회장에 오를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첫 작품이다.1885년 3월 10일 뮌헨에서의 역사적인 연주가 있고 나서 오래지 않아 교향곡 제7번은 세계음악의 수도 빈에 당당히 입성하였다. 이 작품의 초연 이야기를 간략하게 밝혀 두는 것이 좋겠다.

브루크너는 교향곡 제7번을 쓰는 데 1881년 9월부터 1883년 9월까지 만 2년을 할애했다. 총보가 완성된 뒤에도 브루크너의 충실한 두 제자 요제프 샬크와 페르디난트 뢰베가 1884년 빈 리하르트 바그너 학회에서 이 교향곡을 두 대의 피아노로 소개했다. 샬크는 라이프치히에서도 피아노 연주를 계획하여 이를 라이프치히 시립극장의 초대 악장으로 있던 아르투르 니키쉬와 의논했다. 니키쉬는 이 교향곡을 보고는 당장에 흥분하여, 자신이 손수 이 작품을 4,5월에 있을 바그너 추모 연주회에 올리겠다고 나섰다. 연주회는 9월로 미루어졌다가, 다시 브루크너가 '제자들이 많이 오는 데 큰 의미를 두어 강의가 없는 기간에 연주할 수는 절대로 없다'고 하여 12월 30일에야 개최되었다. 기대하던 대성공이 처음부터 온 것은 아니었으나 이제까지의 냉담하던 반응은 깨뜨릴 수 있었다. 바그너 계열의 지휘자 헤르만 레비는 이 곡에 감명을 받아 1885년 3월 10일 뮌헨에서 있는 한 연주회 프로그램에 이 곡을 집어넣었다. 이 날 연주가 브루크너에게는 승리의 신호가 되었다. 작품의 음악적인 질뿐만 아니라 다른 요소들도 이례적인 성공을 거두는데 이바지했다. 당시 뮌헨은 바그너주의자로 자처했으며, 교향곡의 아다지오 악장이 리하르트 바그너의 비명으로 받아들여지기 바란다는 말이 돌고 있었던 것이다. 이어 있은 뉴욕, 암스테르담, 런던, 보스턴, 프라하 등지의 연주에서도 교향곡 제7번은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교향곡 제7번의 놀라운 힘의 근원이 어디에 있을까? 이 교향곡은 기본적으로 음건축적인 면에서 앞의 교향곡들의 그것과는 거의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첫 악장은 여러 개의 차원으로 나뉘어 있고 나머지 악장들을 세 개의주제복합체 위에 쌓아져 있으며 예외 없이 브루크너의 다이내믹의 형식원리는 크게 보아 상승하는 모습을 띠고 있다. 그러나 세밀히 관찰해 보면 섬세한 특수성을 느낄 수 있다. 형식상의 분절의 개관이 쉽고, 동기들이 이전보다 더 우아하고 인상적이다. 주제들은-브루크너 작품에서 늘 그러하듯-강한 대조를 보이지만 끈임없는 흐름을 이루며 움직이도록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즐겨쓰던, 악장 중간에 모든 악기군을 입다.

물게 하는 수법도 매우 드물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밝은 E 장조로 된 이 제7번은 점점 밝아지면서 진행한다는 점에서 두드러진다. 이점에서 제7번과 견줄 것은 제4번 교향곡뿐으로, 둘은 '낭만적' 음향효과에 대한 편애를 공통점으로 지니고 있다.총보를 자세히 분석해 보면 개념의 대담성과 음언어의 현대성과 독특한 구조적 논리에 놀라게 된다. 음악의 대담성과 현대성은 화성에서 가장 뚜렷이 드러난다. 화성면에서도 브루크너는 브람스보다도, 그리고 스스로 속한다고 느끼던 신독일악파보다도 진보적이다. '진보적'이라 함은 3도의 가온 관계가 브루크너의 창작에서 브람스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며, 변화음을 사용한 화성에 더욱 큰 의미가 주어지고, 반음계 화성과 뚜렷한 불협화음을 자주, 자유로이 사용하며-무엇보다도-동시대 다른 작곡가들에 비해 조순환의 확장이 훨씬 넓다는 점을 가리킨다.

교향곡 제7번의 아다지오 악장에 대해 몇 가지 언급하는 것이 설명에 도움이 되겠다. 이 아다지오 악장이 명성을 얻은 데는 그 뒤에 숨은 이야기가 이바지한 바 크다. 브루크너의 편지에 따르면 아다지오 악장은 1883년 1월 22일, 리하르트 바그너의 죽음을 예견하면서 완성한 것이다. 바그너의 부음을 받았을 때 브루크너는 코다 부분을 쓰고 있었다. 부음에 접하자마자 써내려간 튜바와 호른의 패시지가 '거장의 서거에 부치는 애가'로 받아들여지기를 브루크너는 원했다. <테 데움>의 마지막 패시지와의 주제적 연관은 아다지오 악자의 밑바닥에 "non cofunder in aeternum"이란 기독교적 내세관이 깔려 있음을 보여준다. 형식적으로는 두 개의 대조적 주제를 가진 론도로 되어 있으며, 제1주제는 다시 나타날 때마다 점점 고조되는 물결로 강하게 뻗어나가고 있다. 마지막 상승은 여러 단계로 이루어지면서 화성적으로 극도로 대담하게 써내려간 인상을 주며 C장조로 절정에 이른다. 시작 부분의 음울한 C#단조와 이 밝은 C장조의 절정은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다. 브루크너가 여기서 펼쳐나가고 있는 힘차고 대담한 선율의 움직임은 당대의 (그리고 이후에도) 교향악에서 다시 그 예를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에두아르드 한슬릭이 브루크너의 작품들 가운데서 가장 압축된 것에 속하는 이 교향곡을 하필이면 "거대한 뱀과도 같은 교향곡"이라 불렀는지 이는 기이한 느낌을 준다. 한 평문에서 한슬릭은 거침없이, 이 교향곡이 "너무나 부자연스럽고 거만하고 병적으로 부패한 것으로" 보여 무어라 말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교향곡을 "수십번의 트리스탄 연습으로 신경과민이 된 한 관현악 작곡가의 허황된 꿈"이라 표현한, "독일에서 가장 인정받는 작곡가"의 한 사람과 의견을 같이 하는 셈이다. 한슬릭은 브루크너 속에서 바그너의 아류만 발견하고 그의 독창성은 전혀 찾지 못할 정도로 브루크너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로 일관한 것이다. 한슬릭은 브루크너의 부분적으로 격앙되고 고조된 언어를 못마땅해하고, 그로서는 일부러 꾸민 것같이만 생각되는 새롭고 낯선 음에 혼란을 느꼈다. "표현의 병적인 고조", 이것은 그가 브루크너는 물론 바그너에게도 늘상 퍼부은 비난의 말이다.

예술의 역사는 번복의 역사이기도 하다. 당대보다 더 나은 판단을 내릴 수 있었던 당대의 사람들은 에두아르드 한슬릭이 놓친 그의 음악의 질을 깨닫고 마침내 브루크너를 인정하고 아끼고 그에 대해 경탄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브루크너를 듣는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을 열광에 빠뜨리는 것은 그의 표현의 강도와 폭, 불타는 열정, 뜨겁고 장중하고 환상적인 것에 대한 그의 애착, 환호하는 듯한 마무리, 그리고 그의 교향악에 깃든 숭고함이다.


 

Bruckner, Symphony No.7 in E major

브루크너 교향곡 7번

Anton Bruckner

1824-1896

Sergiu Celibidache cond.

M?nchner Philharmoniker 1990

Karl B?hm cond.

Wiener Philharmoniker 1943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은 브루크너에게 진정한 성공을 가져다준 의미 있는 작품이다. 브루크너의 교향곡들은 뛰어난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동안 청중의 이해를 받지 못했으나 교향곡 7번이 1884년 초연 당시 대성공을 거두면서 그 동안 외면당했던 다른 교향곡들도 대중의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때 작곡가의 나이가 60세였으니 브루크너의 성공은 지나치게 늦은 감이 있다.

 

브루크너에게 찬란한 영광을 가져다준 교향곡 7번은 언뜻 보기에 음악 양식이나 구성 방식에 있어 브루크너의 다른 교향곡들과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교향곡을 잘 들어보면 귀에 쏙 들어오는 아름다운 선율이 많고 노래하는 현악기와 서정적인 목관악기가 부각된데다 금관악기의 강한 음색이 절제되어 있어 듣기에 무리가 없다. 아마도 이런 점들이 초연의 성공 요인으로 작용한 듯하다. 오늘날에도 교향곡 7번은 브루크너의 교향곡들 가운데 가장 인기가 있으며 특히 2악장은 바그너의 죽음과 관련된 음악으로 전 악장 가운데서 가장 유명하다.

 

바그너의 죽음을 애도하는 2악장

브루크너는 교향곡 7번을 작곡할 당시 존경하던 바그너의 죽음을 예감하고 영감에 휩싸여 2악장을 작곡했다고 전해진다. 브루크너가 2악장을 작곡하던 1883년에 펠릭스 모틀에게 쓴 편지를 보면 “머지않아 그분이 돌아가실 거라는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쳤을 때 아다지오의 단조 주제가 떠올랐다”는 구절이 나온다. 그때 브루크너가 떠올린 2악장의 주제 선율은 바그너가 그의 음악극 <니벨룽의 반지>에서 사용했던 ‘바그너 튜바’의 어두운 음색으로 표현되고 있어 바그너를 향한 애도의 느낌은 더욱 강조된다.

 

‘바그너 튜바’라는 낯선 악기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악기는 아니다. 모양이 작은 튜바처럼 생겼으나 소리는 호른과 튜바의 중간 정도 되므로 부드럽고 풍부한 튜바 소리를 들려주는 악기다. 브루크너는 교향곡 7번에 처음으로 바그너 튜바를 편성한 이후 교향곡 8번과 9번에 이 악기를 사용했으나 다른 관현악곡에 바그너 튜바가 나오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에 악기와 연주자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교향곡 7번의 초연 당시 이 곡의 바그너 튜바 파트는 호른 주자들이 연주했고 오늘날에도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의 바그너 튜바를 호른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 2악장은 브루크너의 종교 합창곡인 <테 데움>과 관련되어 더욱 의미심장하다. 본래 ‘테 데움’이란 “주님을 찬양하라”는 뜻을 지닌 교회 합창음악으로, 브루크너는 교향곡 7번의 작곡에 착수하기 직전까지 <테 데움>의 작곡에 매달리고 있었다. 그러다 1881년에 작곡을 잠시 중단하고 9월 23일부터 교향곡 7번의 작곡을 시작해 바그너가 세상을 떠나던 1883년에 2악장을 완성했다. 브루크너는 존경하던 바그너를 잃은 슬픔을 가톨릭 신앙으로 이겨내려 했던 것일까? 바그너의 죽음을 애도하는 2악장에는 브루크너가 잠시 작곡을 미뤄두었던 <테 데움>의 선율이 나와서 더욱 종교적이고 신성한 느낌을 준다. 브루크너는 2악장에서 바그너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브루크너가 교향곡 7번 전 악장의 작곡을 모두 마친 것은 1883년 9월 5일의 일로, 브루크너는 약 2년여의 시간을 교향곡 7번의 작곡에 바친 셈이다. 이는 브루크너의 다른 교향곡에 비해 비교적 빠른 편이다. 또한 교향곡 7번의 악보는 몇 군데만 수정됐을 뿐 대대적인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교향곡은 브루크너에게 최초의 성공을 가져다주었으니 교향곡 7번은 브루크너의 교향곡들 가운데서도 여러 모로 이례적인 작품이다. 브루크너의 이 특별한 교향곡은 1884년 12월 30일, 아르투르 니키슈가 지휘하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에 의해 대중에게 소개됐고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브루크너는 그의 교향곡 7번을 바이에른의 루트비히 2세에게 깊은 존경을 담아 헌정했다.  

 

G?nter Wand cond.

NDR Sinfonieorchester 1992

1. Allegro moderato

2. Adagio. Sehr feierlich und sehr langsam

3. Scherzo. Sehr schnell - Trio

4. Finale. Bewegt, doch nicht schnell

 

신에 대한 긍정과 환희를 향한 여정

1악장은 브루크너 교향곡의 전형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 현악기의 잔잔한 트레몰로로 시작해 서서히 해가 떠오르듯이 주제 전개된다. 전형적인 ‘브루크너의 개시’를 보여주는 도입이다. 이윽고 호른과 첼로가 연주하는 제1주제는 호른과 첼로가 합해진 독특한 음색으로 3마디에 걸쳐 무려 2옥타브나 상승하는 급격한 움직임으로 깊은 인상을 심어준다. 브루크너가 꿈속에서 들었다는 이 주제는 추진력 있고 대담한 후반부 선율로 인해 더욱 드라마틱하게 전해된다. 교향곡 7번은 신의 존재에 대한 브루크너의 숙고가 돋보이는 음악이다.

 

1악장에서 시작된 장대한 드라마는 바그너의 죽음을 슬퍼하는 2악장 아다지오의 탄식으로 이어진다. 2악장은 연주시간이 20분이 넘는 느리고 긴 음악이지만 브루크너가 남긴 아다지오 악장 가운데서도 매우 뛰어난 작품으로 손꼽힌다. 바그너 튜바와 비올라로 장엄하게 연주되는 2악장의 제1주제는 복잡 미묘한 느낌을 자아내는데, 이는 이 선율이 상당히 넓은 음역에 걸쳐있을 뿐 아니라 단조와 장조가 끊임없이 교차하고 있는 까닭이다. 복잡한 감정의 음영을 암시하는 이 선율은 신비한 황홀경마저 느끼게 한다. 특히 이 주제의 후반부는 브루크너의 <테 데움> 제5곡 중 “저희가 주님께 바라오니 영원히 부끄럼이 없으리이다”의 선율에서 온 것으로 종교적인 분위기를 강하게 풍긴다. 2악장 후반에 이르면 한 차례의 클라이맥스에 다다르게 되는데, 이때 브루크너 교향곡에서는 드물게 나오는 심벌즈와 트라이앵글과 같은 타악기가 등장해 듣는 이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3악장 스케르초는 2악장의 장송음악과는 대조적으로 간결하고 명쾌하다. 3박자로 이루어져 있는 이 악장에는 독특한 기본 리듬이 깔려 있다. 현악기들이 연주하는 이 음형은 첫 박이 8분 음표 2개로 이루어졌고 그 다음 두 박은 각각 4분 음표 하나로 구성된다. 이 리듬은 강박인 첫 박이 짧은 음표로 돼 있고 약박인 2째 박과 3째 박이 긴 음표로 돼 있기에 3박자 음악의 자연스런 강세구조에 반하고 있다. 따라서 음악에 강한 추진력을 부여하는 것이 특징이지만 잘못 연주하면 자칫 급해지거나 부정확해질 위험이 있어 연주자들에게는 매우 까다로운 리듬이다. 이 까다롭고 끈질긴 반복 음형을 배경으로 트럼펫이 마치 질문을 던지듯 연주하면 클라리넷과 바이올린이 이에 답한다. 그 중 트럼펫이 연주하는 부분은 브루크너가 수탉의 울음소리에 영감을 받아 작곡한 선율이라고 전해진다. 빠르고 역동적인 스케르초 부분에 비해 3악장 중간에 등장하는 트리오 부분에는 좀 더 부드러운 선율이 나타나 추진력 있는 스케르초 주제와 대비된다.

 

4악장에 이르면 1,2,3악장을 거치는 동안 상승되어 온 긴장과 이완의 드라마가 마침내 종합된다. 4악장에서 브루크너는 1악장과의 통일성을 위해서 1악장 제1주제의 우아한 아치형 선율을 좀 더 활기찬 리듬으로 표현해 강렬한 인상을 준다. 리드미컬하게 변형된 아치형 주제는 4악장 마지막 종결부에서 웅장한 결말에 도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4악장 종결부에서 처음의 주제가 점진적인 상승을 통해 확신에 찬 음악으로 변모하는 과정은 경이롭다. 그것은 마치 신에 대한 완전한 긍정과 환희 그 자체를 표현하는 것 같다. 일찍이 지휘자 브루노 발터는 브루크너와 말러의 음악을 비교하면서 “브루크너는 이미 신을 찾았고, 말러는 끊임없이 신을 찾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아마도. 브루크너 교향곡 7번 4악장 종결부야말로 신을 찾은 브루크너의 음악적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음악이 아닐까 싶다.

 

트레몰로 트레몰로(tremolo)는 떠는 소리를 내는 연주법을 뜻하며, 현악기 연주에서는 대개 활을 아래위로 재빠르게 그으며 떠는 효과를 내는 주법을 가리킨다.

 

브루크너의 개시 브루크너의 거의 모든 교향곡의 도입부는 고요하게 시작해 점차 해가 떠오르듯 더 큰 소리로 발전해가는 특징이 있기에, 이런 식의 도입 방식을 ‘브루크너의 개시’라 부른다.

 

트리오 ‘트리오’란 본래 3중주를 뜻하지만, 교향곡이나 현악4중주의 스케르초 악장이나 미뉴에트 악장에선 중간 부분에 나오는 부분을 일컫는 뜻으로 사용된다. 이 부분을 ‘트리오’라 부르는 까닭은 예전에 미뉴에트의 중간 부분을 3대의 악기만으로 연주했기 때문이다.

 

추천음반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의 추천음반으로는 귄터 반트와 베를린 필하모닉(RCA), 세르지우 첼리비다케와 뮌헨 필하모닉(EMI), 클라우스 텐슈테트와 런던 필하모닉(BBC), 프란츠 벨저-뫼스트와 런던 필하모닉(EMI)의 음반이 있다.

 

최은규(음악평론가) <교향곡은 어떻게 클래식의 황제가 되었는가>의 저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및 동대학원 석사,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부수석 및 기획홍보팀장을 역임했다. 월간 <객석> <연합뉴스> 등 여러 매체에서 음악평론가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술의 전당, 풍월당 등에서 클래식 음악을 강의하고 있다.

 

 

피에르 블레즈 -노타시옹 보기

http://phogn.tistory.com/23

 

 정말 오랫만에 DSLR 카메라를 가져가서 공연이 끝나고 박수갈채를 받을때 몰래 사진을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