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클래식 2013년)

서울시향 러시안 나이트/유라이 발추하 con/발레리 소콜로프 vn/7.5.금/예술의 전당

나베가 2013. 7. 5. 16:46

 

 

 

슬로바키아 출신의 젊은 지휘자 유라이 발추하는 지금 가장 바쁜 지휘자입니다. 토리노 RAI 교향악단 수석지휘자로서 유럽의 기라성 같은 오케스트라를 섭렵하고 있습니다. 그가 지휘할 곡은 차이콥스키의 명곡인 5번 교향곡입니다. 슬라브의 감수성을 갖춘 라이징 스타의 지휘로 가슴 벅찬 피날레를 만나십시오.

 
[프로그램]
 
바그너 - 지그프리트 목가
Wagner - Siegfried Idyll
쇼스타코비치 - 바이올린 협주곡 1번
Shostakovich - Violin Concerto No.1
차이콥스키 - 교향곡 5번
Tchaikovsky - Symphony No. 5
 
[출연자]
 
지휘 : 유라이 발추하 Juraj Valcuha, conductor


유라이 발추하는 현재 토리노의 RAI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이다. 슬로바키아 지휘자 발추하는 브라티슬라바 음악원에서 작곡과 지휘를 공부하였으며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2년을 보내며 일랴 무신을 사사하였다. 1998년 파리로 옮겨 야노스 퓌어스트를 사사하였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몽펠리에 국립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보조를 하였으며 이 시기에 프랑스 국립 교향악단과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에 데뷔하였다.
 
2005-07년에 프랑스 국립교향악단과 몬테카를로 필하모닉을 지휘하였으며 파리, 볼로냐에서 <라 보엠>을 리옹 오페라에서 버르토크의 <푸른 수염 영주의 성>과 풀랑의 <인간의 목소리>를 지휘하였다.
 
2007-08년에 로테르담 필하모닉, 토리노 RAI 오케스트라, 필하모니아, 오슬로 필하모닉, 베를린 도이체 심포니를 지휘하였고 뮌헨 필하모닉과 피츠버그 심포니에 데뷔하였다.
 
2008-09 시즌에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와 스웨덴 방송교향악단에 데뷔하였고 밀라노 베르디 오케스트라와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였다. 뮌헨 슈타츠오퍼와 베를린 도이체오퍼에 <나비 부인>으로 데뷔하였고 LA 필하모닉에도 데뷔하였다.
 
2009-10 시즌에 뮌헨 필하모닉의 오프닝 콘서트를 지휘하였으며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에 데뷔하였다. 필하모니아, 로테르담 필하모닉, 피츠버그 심포니, 워싱턴 내셔널 심포니 등을 지휘하였고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에서 <사랑의 묘약>을, 슈투트가르트에서 <피가로의 결혼>과 <투란도트>를 지휘하였다.
 
2010-11년에 뮌헨 필하모닉, 산타체칠리아 오케스트라, 파리 오케스트라, 휴스턴 심포니, LA필하모닉 등을 지휘하였으며,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 극장에서 <라 보엠>을 지휘하였다. RAI 오케스트라와 함께 '아부다비 클래식스' 시리즈에 출연하였다.
 
2011-12년에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베를린 필하모닉, 보스턴 심포니, 신시내티 심포니 등에 데뷔하였으며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뮌헨 필하모닉, 필하모니아 등을 다시 지휘하였다. RAI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베를린 필하모니 외에 프라이부르크, 빈 무지크페라인, 브라티슬라바에서 공연을 가졌다.
 
2012-13 시즌에 그는 뉴욕 필하모닉,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라 스칼라 필하모닉 무대에 데뷔하며 워싱턴 내셔널 심포니, 필하모니아, 뮌헨 필하모닉, 파리 오케스트라를 다시 지휘한다.
 
바이올린 : 발레리 소콜로프 Valeriy Sokolov

 

발레리 소콜로프는 바이올린 레퍼토리의 난곡들을 놀랍도록 능숙하게 소화하면서 많은 공연장과 교향악단의 초청을 받고 있다. 그는 최근에 필하모니아, 로열 리버풀 필하모닉, 로열 스톡홀름 필하모닉,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 북독일 방송교향악단 등과 협연하였다.
 
이번 시즌에 버밍엄 심포니, 슈투트가르트 필하모닉, 모스크바 필하모닉, 함부르크 심포니에 데뷔하는 그는 실내악 활동으로 살 플레옐과 액상프로방스 부활절 페스티벌에 출연한다. 그는 베르비에, 아스펜, 그슈타트, 생드니, 콜마르 페스티벌에 정기적으로 초청받으며, 우크라이나 하르코프에서 자신의 페스티벌을 3년째 직접 기획하고 있다.
 
아시케나지, 아이버 볼튼, 안드레이 보레이코, 야닉 네제세겡, 바실리 페트렌코, 얀 파스칼 토르틀리에 등과 협연하였으며, 로테르담 필하모닉,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 브레멘 도이체 카머필하모니,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등과 협연하였다. 2008년 2월 그는 보리스 티첸코의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을 카네기홀에서 미국 초연하였다.
 
그는 파리 샤틀레 극장에서 리사이틀을 계속 가져왔으며, 위그모어홀과 리옹 극장의 '위대한 해석' 시리즈에 자주 초청받고 있다. 또한 키싱어, 로켄하우스, 라벤나,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페스티벌에서 연주하였고, 링컨 센터, 바덴바덴 축제극장, 에센 필하모니 등의 극장에 데뷔하였다.
 
EMI/버진 클래식 아티스트로서 최근에 버르토크와 차이콥스키 협주곡을 진만이 지휘하는 톤할레 오케스트라의 반주로 녹음하였다. 그밖에도 에네스쿠의 소나타 3번을 녹음하였으며, 아시케나지가 지휘하는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와의 시벨리우스 협주곡이 DVD로 나와있고, 2004년 툴루즈에서의 리사이틀을 녹음한 브뤼노 몽생종의 DVD <내추럴 본 피들러>는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1986년 우크라이나 하르코프에서 태어난 그는 1999년 스페인의 사라사테 콩쿠르에서 입상하여, 영국 예후디 메뉴인 학교에서 나탈리아 보야르스카야를 사사하게 되었다. 2005년 에네스쿠 국제 콩쿠르에서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여 그랑프리를 받았으며, 에네스쿠 재단상과 에네스쿠 소나타 3번 최고연주상도 받았다.
 
액센추어 재단의 젊은 예술가 후원 프로젝트가 그를 후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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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후기....

 

왠만해선 공연시간에 늦은 적이 거의 없는데, 오늘...공연시간에 늦었다.

글쎄...예전처럼 미친듯이 뛰었다면 첫 곡을 놓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실황으로 접하기 힘든 '바그너'의 '지그프리트 목가' 였는데 말이다.

 

눈앞에서 15분 마다 다니는 경의선을 놓치고...

곧바로 3호선 전철역으로 향했지만,

늘 이럴땐 왜 그렇게도 모든게 걸리는 지...

마을 버스를 타기위한 횡단보도 신호에서 마을 버스를 놓치고...

그리고 도로 가운데 버스 정류장에 하차, 또 횡단보도 신호에 걸려 초를 다투는 시간을 또 흘려보내고....

그리고 또 눈앞에서 3호선 전철 떠나 보내고....ㅠㅠ

예전같으면 안타까움에 조바심을 내곤 했지만 그러나 즈음은 그저 여유롭다.

한 곡쯤 못 들으면 되니까...

 

이런 편안한 내마음과는 달리 미치도록 예술의 전당 마을버스에서 내려 달려가는 젊은 학생을 보고는

내 예전의 모습이 떠 올라 미소가 지어졌다.

글쎄~ 그 학생은 늦지않고 콘서트 홀에 들어갔을까....??

 

이런 편안했던 마음과는 달리 콘서트 홀 문앞 모니터를 바라보며 협주곡 한 곡쯤 되는 기인 서곡...바그너 지그프리트 목가를 듣고 있자니,

게으름을 피며 빠듯한 시간에 출발한 것과 달리지 않은 것에 대한 자책과 함께 속은 좀 상하긴 하더라는....

어쨋든 그래도 오늘 가장 기대하고 온 프로그램은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의 '발레리 소콜로프'의 연주였으니까....

 

재빨리 자리를 찾아 들어가 망원경을 꺼내들고 무대로 나오는 소콜로프에 집중했다.

망원경에 잡힌 소콜로프는 아주 거구 처럼 보였다.

왠지 쇼스타코비치 음악을 접하기 전엔 정결례식 이라도 치뤄야 할 것 처럼 마음이 경건해진다.

고인 침을 꼴딱이며 그의 연주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저현부가 음울할 정도로 좌악 깔리며 그의 활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곡을 듣기 위해선 그 어떤 움직임도 용납할 수 없다는 그런 느낌....

사람을 옴짝 달싹도 못하게 하는 쇼스타 코비치의 마력앞에서 마치 속수무책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콘서트 홀엔 오로지 소콜로프의 바이올린 소리만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그 많은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의 다른 소리는 점점 더 깊은 심연속으로 침잠해 들어가고 오직 바이올린 소리만이 점 점 더 피어나는 듯한...

그건 분명 마력이었다.

 

2악장에서는 잠시 그 고요가 깨지고  신들린 듯 연주되는 소콜로프의 바이올린 연주에 또 속수무책으로 빨려들어 갔다.

그렇게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내 달리던 연주는 오케스트라 총주까지 합세하여 너무나 거대하게 끝을 맺어 자칫 마지막 악장인 줄 알고

박수라도 터져 나올 기세다.

그러나 뭐니 뭐니해도 이 곡의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3악장이다.

팀파니와 금관까지 합세한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총주로 시작되는 3악장은 그 시작부터 압도적이다.

그리고 듣는 이 조차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고 난이도의 기인 카덴쨔....

세상에 그렇게도 아름답고,가냘프고, 아프고,위험할 정도로 극한으로 치닫고,하염없이 깊은 심연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바이올린 소리가 있을까....

사실, 그 소리와 연주자의 연주 모습에 사로잡히다 보면 시간 조차 아니, 자신의 존재 조차 인지할 수 없는 상태로 4악장을 맞게 된다.

그야말로 완전 무아지경....

온 몸에 전율이 일어 찬 기에 휩쌓일 정도의 짜릿함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런 무아지경의 상태를 얼마나 자주 경험할 수 있을까....

 

그런가 하면 4악장은 또 얼마나 신명이 나는가~

러시아 농민 무곡의 리듬에 휩쓸리게 만드는....

무대 위 연주자들과 소콜로프를 보고 있자니 모두가 마치 엑스터시에 빠진 듯 한 분위기다.

그야말로 연주가 끝나면 객석이 분위기를 못이겨 정신없이 환호를 질러대며 박수갈채를 보낼 수 밖에 없는듯한....

물론 기막히게 연주를 해 냈을때의 일이다. ㅎㅎ

당근으로 오늘 '유라이 발추하'가 이끈 서울시향과 '발레리 소콜로프' 의 연주 반응은 예술의 전당이 떠나갈 듯 대단했다.

 

아!!

언제 또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다시 실황으로 들어볼까....

연주가 끝나자 마자 벌써 사랑에 빠진 연인 처럼 헤어짐이 아쉽기만 하다.

 

그러나 아쉬움도 잠깐으로 끝난다.

오늘 2부 프로그램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이기 때문이다.

너무 자주 연주되어 이젠 좀 시큰둥 해질만도 할텐데...그런 맘이 들다가도 막상 연주장에 앉아 이 곡이 울려퍼지기 시작하면

가슴이 절절해지면서 온 몸이 감동으로 감싸오니 이 곡에 대한 사랑은 변치 않을 듯 하다.ㅎㅎ

 

오늘은 예외적으로 '정명훈' 지휘자가 아닌데도 악장 '스베틀린 루세브'와 첼로 객원 수석 '피오바노' 가 나왔다.

그래서 일까...

오늘 현악파트의 소리가 유난히 좋았던게...

차이콥스키 5번 교향곡 1악장과 2악장을 주도하는 저현 파트가 아주 좋아서 다른 때와 달리 귀에 화악 와 닿았다는...

1악장 도입부의 저현부 위에서 연주되는 클라리넷 연주는 시작부터 온 몸을 사로잡고야 마는 차이콥스키 5번 교향곡은 압도적이다.

그래서 그런 지, 늘 내게 러시아는 끝없이 광활한 백색의 시베리아 평원이었다.

이 곡을 들을때면 언제나 가슴 시린 백색의 끝없는 평원 위에 내가 있었다.

그 한기가 무엇인 지도 모르면서 그냥 그렇게 온 몸을 파고드는 그 한기를 경험하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이미지가 바뀌었다.

그래, 차마고도 여행직 후 부터였어~

깊고 깊은 란찬 강을 까마득한 아래로 흘려보내고, 메리설산을 오르는 그 중턱에서 야영을 하던 날이었지~

야생화가 만발한 해발 3000m고지에 서서 그 광활한 평원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내 머릿속에 가슴속에

차이콥스키 5번 교향곡 2악장이 흐르는거야~

아!!

그때의 그 벅찬 감동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까...

이제까지 막연하게 나를 끌고갔던 그 시베리아 벌판이 아닌 눈 앞에 펼쳐진 장대한 심연의 계곡.....

그 장엄함과 광활함이 현실로 직시되는 순간이었지.

집에 돌아와서 종일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음반을 크게 틀어놓고 있었어.

여행 후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던것 같아~

 

그 후부터 나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차마고도 그 깊은 심연의 란찬강 계곡과 메리설산이 눈앞에 훤히 나타나 사로잡히곤 했다.

2악장 도입부...혼의 그 깊은 울림이 무대를 메워올 때면 가슴이 터질듯해지지.

이 곡의 백미중의 백미가 아닐 수 없다.

오늘도 서울 시향 혼 수석은 이 곡을 그런대로 멋지게 연주해 냈다.

혹시라도 틀리면 어쩌나~ 실망시키면 어쩌나...그런 병아닌 병이 생기기까지 했다는...ㅎㅎ

어쩌면....

나는 이 곡을 들으면서 끝까지 이 2악장의 잔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선율과 깊이가 너무 강렬하여.....

3악장의 왈츠가 그렇게 아름답고...

4악장의 휘몰아 치는 거대한 울림앞에서도.....

 

암튼...

첫곡 바그너의 지그프리트 목가를 놓쳤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멋지고 판타스틱한 연주회였음엔 틀림없다.

아직 너무나 젊은 나이에 이미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를 줄줄이 지휘한,

그리고 앞으로 세계적 오케스트라와의 연주가 줄줄히 예정된  이 멋지고도 잘생긴 '유라이 발추하'를 

어쩌면 수년내에 세계적 오케스트라와 함께 내한해 지휘하는 모습으로 또 보지 않을까...생각 들었다.

그때는 합창석을 예매해서 코 앞에서 유라이 발추하를 봐야지.ㅎ~

 

순간 오래 전, 잘생긴 젊은 지휘자 '하딩'에게 완전 반해서 난리 굿을 폈던 기억이 떠 오른다.

유라이 발추하가 세계적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모습을 코앞에서 본다면 또 그때 하딩의 연주회때 처럼

기립 박수치며 환호성을 질러 댈 수 있을까....

그 열정과 용기가 그때까지 남아 있을까....

ㅎㅎ

 

또 다른 기대감을 갖는다는 것은 실황을 보고난 직후의 감동과는 또다른 짜릿함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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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이올린 협주곡 1번 a단조, 작품.77

지독한 압제에 대한 저항의 표현
글 : 황장원 (음악 칼럼니스트)

작곡 1948년
연주 시간 약 36분

 이 작품이 완성된 후부터 초연되기까지 오랜 시일이 소요된 데에는 기막힌 사연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소련 정부는 전쟁 기간 동안 용감해진 인민들을 다시 순종적인 상태로 돌려놓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집단 체포와 유형이 재개되었고, 가혹한 반유대주의 운동이 자행되었다. 아울러 러시아 민족주의가 수시로 찬양되었고, 문화계에서도 ‘즈다노프 비판’으로 대표되는 여러 결의와 조치들이 시행되었다. 그들은 ‘부르주아 데카당스 미학’에 오염된 모더니스트들이 수백만 인민을 타락시키고 있다면서, 그러한 성향의 작가들과 연극·영화 연출가들, 그리고 작곡가들을 공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쇼스타코비치는 특유의 반골 기질과 비판 정신이 투영된 바이올린 협주곡의 작곡을 진행했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불리하고 위험하게 그를 조여오고 있었다. 그는 이미 스탈린의 노여움을 샀고, 그 결과 종전 직후 발표했던 교향곡 제9번이 뒤늦게 무참한 비판에 직면했다. 결국 1948년 이후 그는 움츠러들었고, 다 완성해놓은 바이올린 협주곡의 발표를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 이중적으로 처신해야 했다. 겉으로는 정권에 동조하는 척 행동하며 명령에 따라 공개 석상에서 반성문이나 선언문을 낭독하기도 했지만, 속으로는 자기가 쓰지도 않은 글들을 읽을 수밖에 없는 처지를 역겨워하고 괴로워했다.

 그 시기에 그가 발표한 작품들, 이를테면 오라토리오 <숲의 노래>, 합창곡 ‘10개의 시곡’, 영화음악 ‘베를린 함락’ 등은 대부분 정권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와 협력하면서 서랍 속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꾸준히 손질하며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던 1953년 스탈린이 세상을 떠났고, 이내 악랄했던 독재자에 대한 격하 운동이 벌어졌다. 그해 쇼스타코비치는 스탈린 시대의 초상이라고 할 수 있는 교향곡 제10번을 발표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2년 후, 마침내 그의 첫 번째 바이올린 협주곡이 오이스트라흐의 독주와 므라빈스키가 이끄는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협연으로 공개되었다.

 이 협주곡에서 우선 눈에 띄는 점은 리스트, 브람스, 부조니 등을 연상시키는 4악장 구조의 독특한 악장 구성 및 배치이다. 전반 두 악장과 후반 두 악장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후반의 두 악장 사이에는 장대한 카덴차가 자리하고 있다. 이 곡의 초연자이자 피헌정자인 오이스트라흐는 독주부가 ‘의미심장한 셰익스피어 극의 배역과도 같다’고 말했다. 그만큼 독주자가 감성적·지성적으로 음악에 깊숙이 몰입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그는 각 악장의 성격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에 따르면 제1악장은 감정의 억압이자 인종 정화의 비극에 관한 것이고, 제2악장은 사악하고 악마적이며 가시투성이이며, 제4악장은 러시아 민속 축제와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제1악장 ‘야상곡’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전반적으로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는 환상곡풍의 느린 악장으로 마치 무한 선율처럼 이어지는 독주부의 선율에는 이디시(Yiddish)어로 된 유대인 민요의 울림이 배어 있다.

제2악장 강렬한 악센트와 기계적인 리듬, 풍자적인 뉘앙스를 지닌 스케르초 악장이다. 독주 바이올린의 날렵한 기교가 부각되는 장이기도 하다. 아울러 쇼스타코비치가 여러 작품에서 자신의 음악적 지문처럼 사용한 ‘DSCH’ 동기가 처음 발견되는 사례로 꼽히기도 한다.

제3악장 주제와 8개의 변주로 이루어진 파사칼리아이다. 바로 뒤에 따라붙는 카덴차에 이르기까지 독주자에게 특별한 집중력과 표현력을 요구하는 악장으로 전곡의 중핵을 이룬다. 또 시작 부분에서 교향곡 제7번에 사용된 ‘침공의 주제’와 베토벤의 ‘운명의 동기’가 나란히 울려 퍼지는 대목도 주목할 만하다.

제4악장 이 악장의 제목인 ‘부를레스케’는 풍자곡, 해학곡이라는 뜻이다.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 속에서 제2악장에서도 모습을 내비쳤던 러시아 농민 무곡의 리듬이 선명하게 부각되고, 유랑 악사들의 피리 소리도 들려오는 듯하다. 무척 쾌활하고 흥겨우면서도 동시에 신랄한 느낌까지 전달하는 열광적인 피날레이다.

 

 

Violin Concerto No.1 in A minor, Op.99 쇼스타코비치 / 바이올린 협주곡 1번 Shostakovich, Dmitrii Dmitrievich (1906~1975) Hilary Hahn, Violin Hugh Wolff, Conductor Oslo Philharmonic Orchestra Shostakovich, Dmitrii Dmitrievich Hilary Hahn, Violin 2악장 (Scherzo (Allegro non troppo) 3악장 (Passacaglia (Andante) Cadenza 4악장 (Burlesque (Allegro con brio) 이곡은 1947년 초연 예정이었다가 소비에트 문화성의 비판을 받은 쇼스타코비치가 스탈린 사후까지 고이 간직해 두었다가 1955년에서야 초연된 작품이다. 그만큼 사연이 담겨있는 이곡의 초연은 러시아의 두 거장... 오이스트라흐와 므라빈스키가 맡았다. 쇼스타코비치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길고 까다로운 솔로 카덴차 때문에 왠만한 바이올리니스트들은 감히 도전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대곡으로 엄청난 긴장감이 흐르는데 특히 3악장 파사칼리아에서 극대가 된다.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가는 오케스트라와 그위에 수놓는 바이올린 어둠의 정서에 묻혀 있다가 카덴짜 부분에선 오케스트라가 침묵한 가운데 바이올린이 독백을 시작하는데 이부분이 이곡에서의 절정이라 할수 있는 곳이다. 독백이 끝나고 빠른 악장으로 넘어가도 오케스트라와 바이올린이 전혀 냉정을 잃지 않아서 추위가 느껴질 정도다.

 

Violin Concerto No.1 in A minor, Op.99

쇼스타코비치 / 바이올린 협주곡 1번

Shostakovich, Dmitrii Dmitrievich, 1906~1975

 

 

David Oistrakh, Violin


전악장 이어듣기




1악장  Nocturno -Moderato


2악장  Scherzo -Allegro


3악장  Passacaglia -Andante- attacca



4악장  Burlesque -Allegro con b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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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그프리트 목가

     

바그너의 생애를 비춘 햇살, 아내에게 바치는 곡
글 : 황장원 (음악 칼럼니스트)

작곡 1870년
연주 시간 약 20분

 1870년 크리스마스 아침, 코지마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꿈결 같은 음악 소리에 눈을 떴다. 한동안 그녀의 감각과 의식을 무아지경으로 빠트린 그 음률이 잦아들자, 다섯 명의 화동(花童)을 앞세운 바그너가 침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에게 한 다발의 악보를 건네는 게 아닌가. 그것은 조금 전 들려왔던 곡을 담은 악보였다. 루체른 호숫가에 위치한 바그너의 저택에 모여든 악사들이 이른 새벽부터 그녀의 침실 밖 계단에서 그 곡을 연주했던 것이다. 그제야 상황을 알아차린 그녀는 감동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것은 남편 바그너가 크리스마스 전날에 서른세 번째 생일을 맞은 아내 코지마를 위해 준비한 ‘깜짝 선물’이었던 것이다.

 ‘지그프리트 목가’로 불리는 이 곡은 바그너가 남긴 관현악곡 가운데 가장 사랑스럽고 친숙해지기 쉬운 작품이다. 제목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평화로운 목가적 분위기가 지배적이고, 전편에 따스하고 부드러운 기운이 흘러넘친다. 또 바그너가 당시에 마무리하고 있었던 오페라에서 가져온 다채로운 선율이 절묘하게 녹아들어 아기자기한 맛과 여유로운 멋을 자아내며, 클라이맥스에서는 환희에 찬 밝은 음률이 은은히 울려 퍼진다.

 제목의 ‘지그프리트’는 바그너의 대작 <니벨룽의 반지> 연작 가운데 세 번째 작품의 제목이면서, 바그너와 코지마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의 이름이기도 하다. 지그프리트 바그너는 1869년 6월 6일에 태어났는데, 그의 탄생은 아버지 바그너의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가 열리는 신호탄과도 같았다. 지그프리트가 태어나기 직전에 바그너와 코지마는 이미 트립셴의 저택에서 동거하며 두 명의 딸을 두고 있었지만, 두 사람은 합법적인 부부로 인정받지 못한
상태였다. 바그너의 첫 번째 아내인 민나는 1866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코지마는 아직 지휘자 한스 폰 뷜로의 아내였던 것이다. 더구나 뷜로는 바그너의 제자였고 코지마의 아버지는 바그너의 친구인 프란츠 리스트였기에, 두 사람의 결혼은 축복받을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조우한 아들의 탄생은 바그너에게 무한한 기쁨이자 일종의 계시였다.

 그는 오랫동안 중단했던 악극 <지그프리트>의 작곡을 재개했고, 코지마는 결심을 굳히고 뷜로에게 정식으로 이혼을 요구했다. 그런가 하면 그해 9월과 이듬해 6월에는 뮌헨에서 <라인의 황금>과 <발퀴레>의 초연이 거행되었다. 비록 바그너 자신의 의도에 반하는 사건이었지만, 덕분에 당대 음악계를 주도하는 ‘위대한 작곡가’로서 그의 입지는 한층 공고해졌다.

 그리고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발발한 1870년 여름, 바그너의 가정에는 경사가 연이었다. 우선 7월 18일에 코지마와 뷜로의 결혼 무효 신청이 법적 인가를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마침내 바그너와 코지마는 루체른의 중앙교회에서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지그프리트 목가’에는 그 시절 바그너의 성취감과 행복감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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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향곡 5번 e단조, 작품 64

     

운명과의 정면 승부, 그리고 눈부신 승리
글 : 황장원 (음악 칼럼니스트)

작곡 1888년
연주 시간 약 48분

 1880년대의 차이콥스키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은밀한 후원자 폰 메크 부인의 재정적 지원에 힘입어 풍족한 생활을 누리며 작곡에 전념할 수 있었고, 유럽 각지를 돌며 자신의 작품을 지휘하여 성공을 거두면서 국제적인 명성도 쌓아나갔다. 브람스, 그리그, 드보르자크, 구노, 들리브, 생상스 등을 만나 친분을 쌓은 것도 바로 이 시기의 수확이었다. 이제 그는 세계적인 작곡가이자 지휘자였으며, 러시아 내에서의 평판도 확고부동해졌다.

 차이콥스키가 1888년 여름에 작곡한 교향곡 제5번은 그의 생애와 창작력의 정점을 보여준다. 교향곡 제4번 이후 무려 10년 만에 선보인 새 교향곡에서 그는 ‘운명의 모티브’를 반복적으로 등장시키는 순환형식을 취함으로써 고질적인 ‘형식 콤플렉스’를 극복해냈다. 그리고 비록 초연 직후 그 스스로 ‘지나치게 꾸며낸 어떤 것’이라고 고백하기는 했지만, 고난과 비애를 딛고 일어서 승리와 환희를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는 감동적인 드라마를 연출했다.

제1악장 클라리넷이 어둡고 무거운 선율을 꺼내놓는 안단테의 도입부로 시작된다. 흔히 ‘운명의 모티브’로 불리는 이 선율은 첫 악장과 끝 악장의 극적이고 역동적인 흐름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으로 기능하는 한편, 둘째 악장의 절정부와 셋째악장의 종결부에서도 등장하여 전곡에 강력한 일관성과 통일감을 부여한다. 주부로 넘어가면 템포가 알레그로로 빨라진다. 먼저 6/8박자의 리드미컬한 흐름을 타고 폴란드 민요풍의 제1주제가 클라리넷과 파곳으로 제시되고, 한결 온화한 느낌의 제2주제는 바이올린으로 제시된다. 이 두 개의 주제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제1악장의 흐름은 매우 유연한 듯하면서 대단히 다이내믹하고 극적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제까지의 투쟁이 멀어져가듯 마무리되어 매우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제2악장 차이콥스키가 애용했던 ‘안단테 칸타빌레’라는 지시어를 달고 있는 완서악장이다. 감미로우면서도 애상에 잠긴 듯한 호른 선율이 듣는 이의 가슴을 파고드는 이 악장이야말로 전곡의 백미이다. 그 선율은 현악기들로 번져나가면서 애잔한 정서를 사무치게 만드는데, 그것이 더욱 열정적으로 고조되어 갈망의 절정에 이를 때 터져 나오는 ‘운명의 모티브’가 의미심장하다.

제3악장 이 춤곡 악장에서 차이콥스키는 통상적인 스케르초 대신에 왈츠를 도입했다. 화려한 선율을 중심으로 몽환적인 춤곡이 펼쳐지지만, 마지막에는 마치 꿈에서 깨어날 때임을 알려주려는 듯 다시 한 번 ‘운명의 모티브’가 등장한 다음 단호한 울림으로 마친다.

제4악장 안단테의 장엄한 서주로 출발한다. 앞에서는 단조로 등장했던 ‘운명의 모티브’가 이제는 장조로 바뀌어 처음에는 현의 합주로, 다음에는 관의 합주로 씩씩하게 이어진다. 이것이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 뒤 주요부로 진입하면 템포가 급속히 빨라지고, 강렬한 수직 화음으로 이루어진 제1주제와 호흡이 긴 제2주제를 중심으로 현악군의 힘차고 유연한 움직임과 강력한 금관군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긴박한 전개를 보인다. 팀파니의 강렬한 연타로 재현부가 마무리되면 잠깐 동안 음악이 멈췄다가(이 부분에서 박수를 치지 않도록 주의하자), 마침내 승리의 팡파르가 드높이 울려 퍼지며 차이콥스키의 모든 피날레 중에서 가장 찬란하고 웅장한 종결부가 펼쳐진다

 

Symphony No.5 in E minor, Op.64

차이코프스키 / 교향곡 5번

Pyotr Il'ich Tchaikovskii 1840∼1893

5번 교향곡은 4번과 녹음 시기가 약 20년이나 차이가 있어서 그런지 4번에 비해서 상당히 세련되고 정갈하게 다듬어져 있다. 어느 한순간 템포의 급한 변화가 있는 부분도 있지만 적어도 4번에 비해서는 좀더 다듬어지고 아름다운 선율로 이루어져 있다.

 

Gergiev conducts Tchaikovsky's Symphony No.5

Valery Gergiev, conductor

Mariinsky Theatre Orchestra

2010

작품 구성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 중 하나인 민해경의 명곡 가운데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라는 노래가 있다. "그대를 만날 때면, 이렇게 포근한데..."로 시작하는 이 노래의 이 첫 부분이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동기이다. 그런데 이 동기가 이 곡 첫 머리에서부터 조성을 바꿔가며 마지막 악장 끝까지 사용되는 순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분명히 들리는 동기는 이 곡을 처음 듣는 사람에게도 '민해경'을 떠올리게 할 만큼 유사하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이나 베토벤 비창의 선율을 팝 음악에 인용하듯이 이 곡의 작곡가도 그런 시도를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이 곡은 '민해경 교향곡'이라는 별칭을 가질 만하다.

앞서 언급한 '민해경 주제'는 곡 전체를 관통하며 흐르는데, 흔히들 이 멜로디가 운명을 상징한다고 한다.

1악장 서주가 붙은 소나타 형식. ‘콘 아니마’는 직역하면 ‘영혼을 담아서’라는 뜻이다. 보통 ‘활기차게’ 정도로 해석되지만 악상 전개를 들어보면 여기서만큼은 달리 파악될 여지가 많기 때문에 그냥 직역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E단조 4/4박자의 서주 첫머리에 등장하는 어두운 클라리넷 선율은 교향곡 전체를 지배하는 핵심 악상이다. 이것을 ‘운명의 동기’라고도 부르는데, 굳이 추상적인 것을 꼭 주관적인 개념을 틀에 맞춰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이런 식의 고착화된 해석은 주로 일본 쪽에서 넘어온 것으로, 개인적으로는 그냥 되돌려주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서주 악상이 별다른 발전 없이 몇 차례 반복된 후 주부로 들어가면 6/8박자로 변한다. 클라리넷과 바순이 옥타브로 연주하는 1주제는 서주 악상과 마찬가지로 어둡지만 한층 생동감이 있으며, 이 주제가 여러 가지로 변화해 등장한 뒤 B단조의 유려한 경과구 주제를 거친 뒤 D장조의 온화한 제2주제로 넘어간다. 발전부는 주로 1주제에 기초하고 있는데, 대부분 전개라기보다는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재현부에서는 경과구 주제가 C샤프단조, 2주제가 E장조로 등장한다. 코다는 강렬한 1주제 동기로 클라이맥스를 구축한 뒤 조용히 끝난다.

 2악장은 괴상한 암호처럼 들리기도 하는 이 악장의 악상지시어는 ‘안단테로 노래하듯이, 다소 자유롭게’라는 뜻이다. 박자 역시 악상지시까지는 아니더라도 특이한 편이어서 12/8박자이다. 조성(D장조)과 형식(세도막 형식)은 상대적으로 평이하다(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현의 간단한 도입에 이어 호른이 주선율을 노래한다. 매우 달콤하면서도 그리움에 찬 듯한 느낌을 주는 이 선율은 앞서 말했듯이 대중음악에 차용되었을 정도로 유명하다. 얼마 후 오보에가 연주하는 F샤프장조의 부주제가 부드럽고 밝은 표정을 띠고 나타난다. 이 주제는 확대되어 정점에 이른 뒤 가라앉고, 이어 F샤프단조 4/4박자의 중간부로 넘어가면 클라리넷이 새로운 악상을 연주한다. 이것이 점차 고양되어 악상이 다시 정점에 이르면 서주 악상이 강렬하게 덮어씌우듯이 연주되며, 여기서 중간부가 끝난다. 세 번째 섹션은 첫 번째와 거의 동일하지만 오케스트레이션 등에 약간의 변화가 있다. 코다에서 서주 악상이 다시 한 번 활약한 뒤 조용하게 끝난다.

3악장 A장조, 3/4박자. 보통 교향곡의 3악장에는 미뉴에트(고전파 교향곡)나 스케르초(낭만파 이후)가 오지만 차이코프스키는 왈츠를 사용하는 파격을 감행했다(이 시도는 당시 꽤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유려하고 몽환적인 느낌의 왈츠 섹션과 민활하게 움직이는 무궁동풍의 악상을 지닌 중간부가 멋진 대비를 선보인 뒤 다시 왈츠 섹션으로 돌아간다. 말미에 서주 악상이 다시 등장하는데, 바순으로 연주되어 음색 면에서 원 악상과 상당히 이질적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알아차리기 힘들다. ‘북방의 왈츠 왕’으로 불리기도 했던 차이코프스키의 왈츠 가운데서도 손꼽을 정도로 우아하고 아름다운 곡이다.

4악장 ‘안단테 마에스토소’(안단테로 장엄하게)로 지정된 긴 서주(악장 전체의 1/3 가량을 차지한다)는 E장조, 4/4박자이며 론도의 요소가 가미된 소나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여기서는 서주 악상이 장조로 바뀌어 처음에는 현악 합주로, 그 다음에는 현이 반주하는 관악 합주로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갑자기 팀파니와 더불어 현악기군이 강렬하게 질주하기 시작하는 1주제가 주부의 첫머리를 장식하며, 이를 받는 8분음표+점4분음표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오보에 독주가 경과구를 형성해 잠시 전개된 뒤 목관이 연주하는 희망에 찬 느낌의 2주제가 연주된 뒤 금관이 서주 악상을 다소 거칠게 연주하면서 발전부에 접어든다. 여기서는 1주제와 2주제 모두 발전하며, 재현부 말미의 강렬한 팀파니 연타 뒤 전 관현악이 잠시 침묵에 빠졌다가(여기서 박수를 치는 것은 공연장 예절을 이야기할 때 실수로 흔히 거론되는, 아주 ‘고전적’인 예이다) 다시 트럼펫이 서주 악상을 당당하게 연주하면서 코다로 접어드는데 여기서부터는 일종의 행진곡으로 볼 수 있다. 악상은 점차 고조되어 잠시 프레스토로 휘몰아친 다음 1악장 1주제가 6/4박자로 변형된 채 당당하게 연주되면서 끝난다..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들은 러시아 민족주의적인 면모를 포함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독일 낭만주의 전통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에서 광활하고 화려한 슬라브적인 정서를 분명히 느낄 수 있지만, 무소르그스키나 림스키-코르사코프 등의 음악만큼은 아니다. 차이코프스키는 독일 낭만주의를 배운 사람이며, 서유럽을 향한 창이라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서유럽 낭만주의를 벗어나지 않는 음악을 작곡했다. 따라서 드보르작이 보헤미안의 정서를 그렇게 한 것처럼, 차이코프스키도 독일 낭만주의를 바탕으로 러시아의 정서를 표현했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따라서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러시아 연주자나 러시아의 오케스트라가 가장 잘 연주할 것이라는 예측은 보통 보기 좋게 빗나가는 경우가 많다.

1888년 8월에 완성되어 11월에 작곡가 자신에 의해 초연되었을때, 평론가의 반응은 나빴지만 청중들은 큰 갈채를 보냈다. 이 곡은 차이코프스키의 6개의 교향곡 가운데에서 가장 변화가 많고 또한 가장 열정적인 곡으로 뚜렷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어서 순음악형식을 취하면서도 표제악적인 요소가 짙다. 여기에 나타난 것은 고뇌하여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이며 인간을 막다른 골목까지 몰아치는 운명의 마수이어서 처참한 느낌을 듣는 사람에게 던져준다. 극도의 멜랑콜리한 감성과 광분적인 정열사이의 갈등, 또는 회환과 낙관적인 마음간의 갈등은 차이코프스키의 본성이었다. 마음 깊은데서 우러나온 패배의식뿐만 아니라 불같은 열정의 분출은 차이코프스키의 창작열에 불씨를 당겼다. 차이코프스키의 독특한 특성인 선율의 어두운 아름다움과 구성의 교묘함, 그리고 관현악의 현란한 묘기등이 이 곡의 가치를 한층 드높여준다.

Evgeny Mravinsky cond.

Leningrad Philharmonic Orchestra

1st Mov.

2nd Mov.

3rd Mov.

4th Mov.

 

인간의 슬픔을 처절하게 통곡하는 교향곡.

교향곡 제5번 E단조 OP.64를 쓰던 즈음 차이코프스키는 작곡가로서 최고의 전성기에 잇었다. 그는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으며, 유럽에서도 인기가 좋아 자주 해외여행을 하였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녀야 했다. 유럽에서도 인기가 좋아 자주 해외 여행을 하였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녀야 했다. 그런 와중에도 차이코프스키는 잊을 만하면 규치적으로 재발하는 우울증으로 괴로워했다.

그럴 때 마다 그가 찾은 것은 메크 부인이었으며, 힘들 때마다 그녀에게 열렬히 편지를 썼다. 그러나 차이코프스키가 힘들 즈음에 메크 부인의 건강이 나빠졌으며, 그녀는 요양을 위해 모스크바를 떠나 프랑스의 니스로 갔다. 그녀와 헤어짐-아니 그녀의 편지와의 헤어짐이라고 해야하나-은 그를 더욱더 힘들게 했다. 그는 그녀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제가 얼마나 오랫동안 당신의 글씨를 그리워했는지 아십니까?"

이때 작곡된 대표적인 곡이 교향곡 제5번이다. 그녀에 대한 차이코프스키의 애증과 미련과 갈망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것도 이 곡이다. 이 교향곡 느낌은 일견 슬픈 것 같지만, 그 보다는 내적으로 침잠하는 철학적인 깊이가 느껴지는 명곡이다. 이 곡이 주는 아름다움은 참으로 뛰어나며 어두운 색체가 주는 질감은 부드럽고 그 직조는 탄탄하다. 슬프면서도 달콤한 멜로디가 선사해주는 조형적인 아름다움은 세련되기 그지없다. 베토벤이나 브람스 같은 작곡가들이 슬픔을 그릴 때 그것에 대한 극복과 관조에 주력했다면, 차이코프스키는 오로지 통곡만 하는 느낌이 강렬하다. 이처럼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만큼 인간의 슬픔을 그토록 처절하게 울면서 그린 작품도 흔치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