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바키아 출신의 젊은 지휘자 유라이 발추하는 지금 가장 바쁜 지휘자입니다. 토리노 RAI 교향악단 수석지휘자로서 유럽의 기라성 같은 오케스트라를 섭렵하고 있습니다. 그가 지휘할 곡은 차이콥스키의 명곡인 5번 교향곡입니다. 슬라브의 감수성을 갖춘 라이징 스타의 지휘로 가슴 벅찬 피날레를 만나십시오.
[프로그램]
바그너 - 지그프리트 목가
Wagner - Siegfried Idyll
쇼스타코비치 - 바이올린 협주곡 1번
Shostakovich - Violin Concerto No.1
차이콥스키 - 교향곡 5번
Tchaikovsky - Symphony No. 5
[출연자]
지휘 : 유라이 발추하 Juraj Valcuha, conductor
유라이 발추하는 현재 토리노의 RAI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이다. 슬로바키아 지휘자 발추하는 브라티슬라바 음악원에서 작곡과 지휘를 공부하였으며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2년을 보내며 일랴 무신을 사사하였다. 1998년 파리로 옮겨 야노스 퓌어스트를 사사하였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몽펠리에 국립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보조를 하였으며 이 시기에 프랑스 국립 교향악단과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에 데뷔하였다.
2005-07년에 프랑스 국립교향악단과 몬테카를로 필하모닉을 지휘하였으며 파리, 볼로냐에서 <라 보엠>을 리옹 오페라에서 버르토크의 <푸른 수염 영주의 성>과 풀랑의 <인간의 목소리>를 지휘하였다.
2007-08년에 로테르담 필하모닉, 토리노 RAI 오케스트라, 필하모니아, 오슬로 필하모닉, 베를린 도이체 심포니를 지휘하였고 뮌헨 필하모닉과 피츠버그 심포니에 데뷔하였다.
2008-09 시즌에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와 스웨덴 방송교향악단에 데뷔하였고 밀라노 베르디 오케스트라와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였다. 뮌헨 슈타츠오퍼와 베를린 도이체오퍼에 <나비 부인>으로 데뷔하였고 LA 필하모닉에도 데뷔하였다.
2009-10 시즌에 뮌헨 필하모닉의 오프닝 콘서트를 지휘하였으며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에 데뷔하였다. 필하모니아, 로테르담 필하모닉, 피츠버그 심포니, 워싱턴 내셔널 심포니 등을 지휘하였고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에서 <사랑의 묘약>을, 슈투트가르트에서 <피가로의 결혼>과 <투란도트>를 지휘하였다.
2010-11년에 뮌헨 필하모닉, 산타체칠리아 오케스트라, 파리 오케스트라, 휴스턴 심포니, LA필하모닉 등을 지휘하였으며,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 극장에서 <라 보엠>을 지휘하였다. RAI 오케스트라와 함께 '아부다비 클래식스' 시리즈에 출연하였다.
2011-12년에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베를린 필하모닉, 보스턴 심포니, 신시내티 심포니 등에 데뷔하였으며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뮌헨 필하모닉, 필하모니아 등을 다시 지휘하였다. RAI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베를린 필하모니 외에 프라이부르크, 빈 무지크페라인, 브라티슬라바에서 공연을 가졌다.
2012-13 시즌에 그는 뉴욕 필하모닉,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라 스칼라 필하모닉 무대에 데뷔하며 워싱턴 내셔널 심포니, 필하모니아, 뮌헨 필하모닉, 파리 오케스트라를 다시 지휘한다.
바이올린 : 발레리 소콜로프 Valeriy Sokolov
발레리 소콜로프는 바이올린 레퍼토리의 난곡들을 놀랍도록 능숙하게 소화하면서 많은 공연장과 교향악단의 초청을 받고 있다. 그는 최근에 필하모니아, 로열 리버풀 필하모닉, 로열 스톡홀름 필하모닉,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 북독일 방송교향악단 등과 협연하였다.
이번 시즌에 버밍엄 심포니, 슈투트가르트 필하모닉, 모스크바 필하모닉, 함부르크 심포니에 데뷔하는 그는 실내악 활동으로 살 플레옐과 액상프로방스 부활절 페스티벌에 출연한다. 그는 베르비에, 아스펜, 그슈타트, 생드니, 콜마르 페스티벌에 정기적으로 초청받으며, 우크라이나 하르코프에서 자신의 페스티벌을 3년째 직접 기획하고 있다.
아시케나지, 아이버 볼튼, 안드레이 보레이코, 야닉 네제세겡, 바실리 페트렌코, 얀 파스칼 토르틀리에 등과 협연하였으며, 로테르담 필하모닉,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 브레멘 도이체 카머필하모니,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등과 협연하였다. 2008년 2월 그는 보리스 티첸코의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을 카네기홀에서 미국 초연하였다.
그는 파리 샤틀레 극장에서 리사이틀을 계속 가져왔으며, 위그모어홀과 리옹 극장의 '위대한 해석' 시리즈에 자주 초청받고 있다. 또한 키싱어, 로켄하우스, 라벤나,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페스티벌에서 연주하였고, 링컨 센터, 바덴바덴 축제극장, 에센 필하모니 등의 극장에 데뷔하였다.
EMI/버진 클래식 아티스트로서 최근에 버르토크와 차이콥스키 협주곡을 진만이 지휘하는 톤할레 오케스트라의 반주로 녹음하였다. 그밖에도 에네스쿠의 소나타 3번을 녹음하였으며, 아시케나지가 지휘하는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와의 시벨리우스 협주곡이 DVD로 나와있고, 2004년 툴루즈에서의 리사이틀을 녹음한 브뤼노 몽생종의 DVD <내추럴 본 피들러>는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1986년 우크라이나 하르코프에서 태어난 그는 1999년 스페인의 사라사테 콩쿠르에서 입상하여, 영국 예후디 메뉴인 학교에서 나탈리아 보야르스카야를 사사하게 되었다. 2005년 에네스쿠 국제 콩쿠르에서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여 그랑프리를 받았으며, 에네스쿠 재단상과 에네스쿠 소나타 3번 최고연주상도 받았다.
액센추어 재단의 젊은 예술가 후원 프로젝트가 그를 후원하고 있다.
공연후기.... 왠만해선 공연시간에 늦은 적이 거의 없는데, 오늘...공연시간에 늦었다. 글쎄...예전처럼 미친듯이 뛰었다면 첫 곡을 놓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실황으로 접하기 힘든 '바그너'의 '지그프리트 목가' 였는데 말이다. 눈앞에서 15분 마다 다니는 경의선을 놓치고... 곧바로 3호선 전철역으로 향했지만, 늘 이럴땐 왜 그렇게도 모든게 걸리는 지... 마을 버스를 타기위한 횡단보도 신호에서 마을 버스를 놓치고... 그리고 도로 가운데 버스 정류장에 하차, 또 횡단보도 신호에 걸려 초를 다투는 시간을 또 흘려보내고.... 그리고 또 눈앞에서 3호선 전철 떠나 보내고....ㅠㅠ 예전같으면 안타까움에 조바심을 내곤 했지만 그러나 즈음은 그저 여유롭다. 한 곡쯤 못 들으면 되니까... 이런 편안한 내마음과는 달리 미치도록 예술의 전당 마을버스에서 내려 달려가는 젊은 학생을 보고는 내 예전의 모습이 떠 올라 미소가 지어졌다. 글쎄~ 그 학생은 늦지않고 콘서트 홀에 들어갔을까....?? 이런 편안했던 마음과는 달리 콘서트 홀 문앞 모니터를 바라보며 협주곡 한 곡쯤 되는 기인 서곡...바그너 지그프리트 목가를 듣고 있자니, 게으름을 피며 빠듯한 시간에 출발한 것과 달리지 않은 것에 대한 자책과 함께 속은 좀 상하긴 하더라는.... 어쨋든 그래도 오늘 가장 기대하고 온 프로그램은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의 '발레리 소콜로프'의 연주였으니까.... 재빨리 자리를 찾아 들어가 망원경을 꺼내들고 무대로 나오는 소콜로프에 집중했다. 망원경에 잡힌 소콜로프는 아주 거구 처럼 보였다. 왠지 쇼스타코비치 음악을 접하기 전엔 정결례식 이라도 치뤄야 할 것 처럼 마음이 경건해진다. 고인 침을 꼴딱이며 그의 연주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저현부가 음울할 정도로 좌악 깔리며 그의 활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곡을 듣기 위해선 그 어떤 움직임도 용납할 수 없다는 그런 느낌.... 사람을 옴짝 달싹도 못하게 하는 쇼스타 코비치의 마력앞에서 마치 속수무책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콘서트 홀엔 오로지 소콜로프의 바이올린 소리만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그 많은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의 다른 소리는 점점 더 깊은 심연속으로 침잠해 들어가고 오직 바이올린 소리만이 점 점 더 피어나는 듯한... 그건 분명 마력이었다. 2악장에서는 잠시 그 고요가 깨지고 신들린 듯 연주되는 소콜로프의 바이올린 연주에 또 속수무책으로 빨려들어 갔다. 그렇게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내 달리던 연주는 오케스트라 총주까지 합세하여 너무나 거대하게 끝을 맺어 자칫 마지막 악장인 줄 알고 박수라도 터져 나올 기세다. 그러나 뭐니 뭐니해도 이 곡의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3악장이다. 팀파니와 금관까지 합세한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총주로 시작되는 3악장은 그 시작부터 압도적이다. 그리고 듣는 이 조차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고 난이도의 기인 카덴쨔.... 세상에 그렇게도 아름답고,가냘프고, 아프고,위험할 정도로 극한으로 치닫고,하염없이 깊은 심연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바이올린 소리가 있을까.... 사실, 그 소리와 연주자의 연주 모습에 사로잡히다 보면 시간 조차 아니, 자신의 존재 조차 인지할 수 없는 상태로 4악장을 맞게 된다. 그야말로 완전 무아지경.... 온 몸에 전율이 일어 찬 기에 휩쌓일 정도의 짜릿함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런 무아지경의 상태를 얼마나 자주 경험할 수 있을까.... 그런가 하면 4악장은 또 얼마나 신명이 나는가~ 러시아 농민 무곡의 리듬에 휩쓸리게 만드는.... 무대 위 연주자들과 소콜로프를 보고 있자니 모두가 마치 엑스터시에 빠진 듯 한 분위기다. 그야말로 연주가 끝나면 객석이 분위기를 못이겨 정신없이 환호를 질러대며 박수갈채를 보낼 수 밖에 없는듯한.... 물론 기막히게 연주를 해 냈을때의 일이다. ㅎㅎ 당근으로 오늘 '유라이 발추하'가 이끈 서울시향과 '발레리 소콜로프' 의 연주 반응은 예술의 전당이 떠나갈 듯 대단했다. 아!! 언제 또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다시 실황으로 들어볼까.... 연주가 끝나자 마자 벌써 사랑에 빠진 연인 처럼 헤어짐이 아쉽기만 하다. 그러나 아쉬움도 잠깐으로 끝난다. 오늘 2부 프로그램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이기 때문이다. 너무 자주 연주되어 이젠 좀 시큰둥 해질만도 할텐데...그런 맘이 들다가도 막상 연주장에 앉아 이 곡이 울려퍼지기 시작하면 가슴이 절절해지면서 온 몸이 감동으로 감싸오니 이 곡에 대한 사랑은 변치 않을 듯 하다.ㅎㅎ 오늘은 예외적으로 '정명훈' 지휘자가 아닌데도 악장 '스베틀린 루세브'와 첼로 객원 수석 '피오바노' 가 나왔다. 그래서 일까... 오늘 현악파트의 소리가 유난히 좋았던게... 차이콥스키 5번 교향곡 1악장과 2악장을 주도하는 저현 파트가 아주 좋아서 다른 때와 달리 귀에 화악 와 닿았다는... 1악장 도입부의 저현부 위에서 연주되는 클라리넷 연주는 시작부터 온 몸을 사로잡고야 마는 차이콥스키 5번 교향곡은 압도적이다. 그래서 그런 지, 늘 내게 러시아는 끝없이 광활한 백색의 시베리아 평원이었다. 이 곡을 들을때면 언제나 가슴 시린 백색의 끝없는 평원 위에 내가 있었다. 그 한기가 무엇인 지도 모르면서 그냥 그렇게 온 몸을 파고드는 그 한기를 경험하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이미지가 바뀌었다. 그래, 차마고도 여행직 후 부터였어~ 깊고 깊은 란찬 강을 까마득한 아래로 흘려보내고, 메리설산을 오르는 그 중턱에서 야영을 하던 날이었지~ 야생화가 만발한 해발 3000m고지에 서서 그 광활한 평원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내 머릿속에 가슴속에 차이콥스키 5번 교향곡 2악장이 흐르는거야~ 아!! 그때의 그 벅찬 감동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까... 이제까지 막연하게 나를 끌고갔던 그 시베리아 벌판이 아닌 눈 앞에 펼쳐진 장대한 심연의 계곡..... 그 장엄함과 광활함이 현실로 직시되는 순간이었지. 집에 돌아와서 종일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음반을 크게 틀어놓고 있었어. 여행 후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던것 같아~ 그 후부터 나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차마고도 그 깊은 심연의 란찬강 계곡과 메리설산이 눈앞에 훤히 나타나 사로잡히곤 했다. 2악장 도입부...혼의 그 깊은 울림이 무대를 메워올 때면 가슴이 터질듯해지지. 이 곡의 백미중의 백미가 아닐 수 없다. 오늘도 서울 시향 혼 수석은 이 곡을 그런대로 멋지게 연주해 냈다. 혹시라도 틀리면 어쩌나~ 실망시키면 어쩌나...그런 병아닌 병이 생기기까지 했다는...ㅎㅎ 어쩌면.... 나는 이 곡을 들으면서 끝까지 이 2악장의 잔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선율과 깊이가 너무 강렬하여..... 3악장의 왈츠가 그렇게 아름답고... 4악장의 휘몰아 치는 거대한 울림앞에서도..... 암튼... 첫곡 바그너의 지그프리트 목가를 놓쳤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멋지고 판타스틱한 연주회였음엔 틀림없다. 아직 너무나 젊은 나이에 이미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를 줄줄이 지휘한, 그리고 앞으로 세계적 오케스트라와의 연주가 줄줄히 예정된 이 멋지고도 잘생긴 '유라이 발추하'를 어쩌면 수년내에 세계적 오케스트라와 함께 내한해 지휘하는 모습으로 또 보지 않을까...생각 들었다. 그때는 합창석을 예매해서 코 앞에서 유라이 발추하를 봐야지.ㅎ~ 순간 오래 전, 잘생긴 젊은 지휘자 '하딩'에게 완전 반해서 난리 굿을 폈던 기억이 떠 오른다. 유라이 발추하가 세계적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모습을 코앞에서 본다면 또 그때 하딩의 연주회때 처럼 기립 박수치며 환호성을 질러 댈 수 있을까.... 그 열정과 용기가 그때까지 남아 있을까.... ㅎㅎ 또 다른 기대감을 갖는다는 것은 실황을 보고난 직후의 감동과는 또다른 짜릿함 중의 하나다.
바이올린 협주곡 1번 a단조, 작품.77 지독한 압제에 대한 저항의 표현 Violin Concerto No.1 in A minor, Op.99 쇼스타코비치 / 바이올린 협주곡 1번 Shostakovich, Dmitrii Dmitrievich, 1906~1975
글 : 황장원 (음악 칼럼니스트)
작곡 1948년
연주 시간 약 36분
이 작품이 완성된 후부터 초연되기까지 오랜 시일이 소요된 데에는 기막힌 사연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소련 정부는 전쟁 기간 동안 용감해진 인민들을 다시 순종적인 상태로 돌려놓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집단 체포와 유형이 재개되었고, 가혹한 반유대주의 운동이 자행되었다. 아울러 러시아 민족주의가 수시로 찬양되었고, 문화계에서도 ‘즈다노프 비판’으로 대표되는 여러 결의와 조치들이 시행되었다. 그들은 ‘부르주아 데카당스 미학’에 오염된 모더니스트들이 수백만 인민을 타락시키고 있다면서, 그러한 성향의 작가들과 연극·영화 연출가들, 그리고 작곡가들을 공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쇼스타코비치는 특유의 반골 기질과 비판 정신이 투영된 바이올린 협주곡의 작곡을 진행했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불리하고 위험하게 그를 조여오고 있었다. 그는 이미 스탈린의 노여움을 샀고, 그 결과 종전 직후 발표했던 교향곡 제9번이 뒤늦게 무참한 비판에 직면했다. 결국 1948년 이후 그는 움츠러들었고, 다 완성해놓은 바이올린 협주곡의 발표를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 이중적으로 처신해야 했다. 겉으로는 정권에 동조하는 척 행동하며 명령에 따라 공개 석상에서 반성문이나 선언문을 낭독하기도 했지만, 속으로는 자기가 쓰지도 않은 글들을 읽을 수밖에 없는 처지를 역겨워하고 괴로워했다.
그 시기에 그가 발표한 작품들, 이를테면 오라토리오 <숲의 노래>, 합창곡 ‘10개의 시곡’, 영화음악 ‘베를린 함락’ 등은 대부분 정권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와 협력하면서 서랍 속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꾸준히 손질하며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던 1953년 스탈린이 세상을 떠났고, 이내 악랄했던 독재자에 대한 격하 운동이 벌어졌다. 그해 쇼스타코비치는 스탈린 시대의 초상이라고 할 수 있는 교향곡 제10번을 발표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2년 후, 마침내 그의 첫 번째 바이올린 협주곡이 오이스트라흐의 독주와 므라빈스키가 이끄는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협연으로 공개되었다.
이 협주곡에서 우선 눈에 띄는 점은 리스트, 브람스, 부조니 등을 연상시키는 4악장 구조의 독특한 악장 구성 및 배치이다. 전반 두 악장과 후반 두 악장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후반의 두 악장 사이에는 장대한 카덴차가 자리하고 있다. 이 곡의 초연자이자 피헌정자인 오이스트라흐는 독주부가 ‘의미심장한 셰익스피어 극의 배역과도 같다’고 말했다. 그만큼 독주자가 감성적·지성적으로 음악에 깊숙이 몰입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그는 각 악장의 성격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에 따르면 제1악장은 감정의 억압이자 인종 정화의 비극에 관한 것이고, 제2악장은 사악하고 악마적이며 가시투성이이며, 제4악장은 러시아 민속 축제와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제1악장 ‘야상곡’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전반적으로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는 환상곡풍의 느린 악장으로 마치 무한 선율처럼 이어지는 독주부의 선율에는 이디시(Yiddish)어로 된 유대인 민요의 울림이 배어 있다.
제2악장 강렬한 악센트와 기계적인 리듬, 풍자적인 뉘앙스를 지닌 스케르초 악장이다. 독주 바이올린의 날렵한 기교가 부각되는 장이기도 하다. 아울러 쇼스타코비치가 여러 작품에서 자신의 음악적 지문처럼 사용한 ‘DSCH’ 동기가 처음 발견되는 사례로 꼽히기도 한다.
제3악장 주제와 8개의 변주로 이루어진 파사칼리아이다. 바로 뒤에 따라붙는 카덴차에 이르기까지 독주자에게 특별한 집중력과 표현력을 요구하는 악장으로 전곡의 중핵을 이룬다. 또 시작 부분에서 교향곡 제7번에 사용된 ‘침공의 주제’와 베토벤의 ‘운명의 동기’가 나란히 울려 퍼지는 대목도 주목할 만하다.
제4악장 이 악장의 제목인 ‘부를레스케’는 풍자곡, 해학곡이라는 뜻이다.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 속에서 제2악장에서도 모습을 내비쳤던 러시아 농민 무곡의 리듬이 선명하게 부각되고, 유랑 악사들의 피리 소리도 들려오는 듯하다. 무척 쾌활하고 흥겨우면서도 동시에 신랄한 느낌까지 전달하는 열광적인 피날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