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지역,이스라엘(2010.3)

82.이스라엘/예루살렘/성묘교회내부/예수님 무덤

나베가 2010. 5. 29. 08:34

성묘교회(예수님 무덤교회 [Church of the Holy Sepulchre] )

 

예수가 안장되었던 묘지에 세워진 교회로 '십자가의 길'의 제10지점부터 제14지점까지가 이 교회 안에 위치한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을 맞이한 뒤 안장된 묘지에 세워진 교회로 오늘날의 구예루살렘 북서쪽의 골고다 언덕 위에 위치한다. 성분묘교회, 무덤교회라고도 한다. 성경에 따르면 예수의 시신이 안장되었던 아리마테아 요셉의 무덤이 십자가가 세워진 근처에 있었다고 한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정원이 있었는데, 그 정원에는 아직 아무도 묻힌 적이 없는 새 무덤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요한복음 19:41).

성묘 교회는 오늘날의 구 예루살렘 북서쪽에 위치해 있다. 동로마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서기 336년에 처음 교회가 만들어 졌으나, 페르시아인에 의해 614년에 파괴되었다. 그 후 테도시우스 수도원장인 모데스터스(Modestus)에 의해 다시 건립 되었으나, 1009년 이슬람 아바스조의 알 하킴 빈 아므르 알라(al-Hakim Bi-Amr Allah) 칼리파에 의해 파괴되었다. 현존하는 교회는 십자군의해서 다시 세워진 것이며 그 후 여러 번에 걸친 개축과 보수가 이루어졌으나 오늘날까지 원래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교회 내부는 카톨릭교, 그리스 정교회, 콥틱 기독교, 시리아 정교회, 아르메니안 정교회 등의 여러 교파가 각각 구획을 나누어 사용하고 있으며, 교회의 열쇠는 이슬람 측이 소유하고 있다.

 

 

 

 

오늘날 순례자들은 무덤성당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지만, 이슬람이 통치하던 1187-1832년에는 항상 닫혀 있었다. 현재 광장에서 볼 때 오른쪽에 있는 문은 아예 봉해져 있는데 1187년 예루살렘을 접수한 살라딘은 성당에 들어가는 그리스도 신자들의 수가 많지 않다는 이유로 모든 문들을 폐쇄하고 하나의 문만을 남겨 놓고 순례자들로부터 성지순례 세금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1246년부터는 두 이슬람 가정에 무덤 성당 열쇠를 맡겼는데 한 집은 성전 문을 열고 닫는 권한을 그리고 다른 한 집은 성전 문의 열쇠를 보관하는 권한을 주었다. 이것은 현재도 유효하게 적용되고 있다.

 

그리스도교 종파들이 내부 성전의 소유권과 관할권을 놓고 다툼하고 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열쇠를 가지고 있는 이슬람 신자가 실질적인 무덤 성당의 주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세금은 일정하게 정해지지는 않았고, 기간에 따라 달랐다고 한다. 이때 이미 무덤 성당 안에 프란치스칸들은 수도원을 가지고 있었는데, 프란치스칸들이 순례자들을 인솔할 땐 세금이 면제 되었다고 한다. 무덤 성당 안의 수도원에 살고 있는 형제들은 연중 몇 달씩은 성당 문이 닫힌 상태에서 갇혀 살아야 했습니다. 성당 출입문에 있는 작은 문은 형제들의 음식을 공급받거나 외부와 연락을 취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문이었다.

호노리오 3세 교황은 1217년, 순례자들이 무덤성당에 들어가기 위해 이슬람에 세금을 내는 것을 금지하며 이것을 어길 경우 파면하겠다고 경고하였다.

 

그러나 세금은 폐지되지 않았고, 순례자들은 파면의 위험을 무릅쓰고 순례를 감행(?) 하였다. 무덤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세금만 내면 되는 것이 아니었고, 시간을 엄수해야만 했다. 오후 3시 이후에는 무덤 성당에 들어갈 수 없었고, 다음날 아침 9시경까지는 나올 수도 없었다. 이들은 잠긴 성당 안에서 밤을 지새워야 했다. 성당에 들어가는 세금이 면제되는 것은 연중 두 번이었는데 한번은 성금요일부터 부활절 월요일까지이고, 다른 하나는 십자가 발견 축일 전야이다. 순례자들이 내야 했던 순례 세금은 1832년에 폐지되었다.

 

 현재 그리스 정교회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그리고 아르메니안 정교회에서는 20쉐켈(4달러 정도)을 성당 문을 열고 닫고 보관하는 가정에 매월 또는 특별한 장엄 전례가 있을 경우 상징적인 액수인 세금을 내고 있다고 한다. 무덤성당에서는 수난 감실을 예수님 무덤 안에 만들었다. 성체가 모셔져 있는 무덤 안은 빈 무덤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함께 하고 있는 무덤이었다.

(http://blog.daum.net/terrasanta/17464788)

 

아담의 배꼽(?) 천장 모습

 

 

제 13처: 제자들이 예수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림.....

 

            구세주 예수님, 주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 품에 안으신 성모님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도 성모

            님 품안에서  효성스러운 자녀로 살다가 마침내 그 품안에서 죽게 하소서....

 

 

 

예수님 시신을 염한곳......

신자들이 절규하듯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나도.....

 

 

 

 

 

여인들이 서있던 자리

성당 문을 들어서 왼쪽으로 향하면 바로 보이는 곳에 있는 모자이크이다. 십자가 모자이크 앞에 보면 4개의 기둥으로 지어진 타워가 있는데 이곳은 아르메니안 소유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때 멀리서 지켜보던 여인들이 서 있던 곳이다.(마태 27,55). 

  

 

 

 

 

 

골고타로 오르는 계단            

 

 

 

제 14처: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

            

             돌무덤에 묻히신 구세주 예수님, 저희가 주님의 죽음을 생각하며 언제나 깨끗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사랑의 성체를 받아 모시게 하소서....

 

예수님 무덤

 

예수님께서 묻히신 곳은 골고타 근처에 있는 정원의 새 무덤이었다(요한 19,41-42). 그 무덤은 바윗돌을 깎아서 만든 것으로서 무덤 입구에는 커다란 석문(굴려서 입구를 막을 수 있는 둥형의 문)이 놓여져 있었다. 그 무덤의 주인은 당시 유다 최고의회의 의원인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었다(마르 15,43; 루가 23,50). 그는 예수님을 몰래 따르던 자였고(마태 27,57; 요한 29,38), 동료 니고데모와 함께(요한 19,39) 예수의 시신을 무덤에 안치하였다(마태 27,58-60; 마르 15,46; 요한 19,38-40). 

예수님의 무덤은 커다란 석문으로 굳게 닫혀졌고, 경비병은 그 무덤을 지키고 있었다(마태 27,62-66). 그러나 안식일 다음 날 무덤에 가서 봤더니 굳게 닫혀진 석문은 열려 있었고, 그 무덤 안은 텅 비어 있었으며,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났다(마르 16,1-8; 마태 28,1-10; 루가 24,1-12; 요한 20,1-10). 골고타는 예수님 당시에 성벽 밖의 불모지였고, 주로 무덤들이 즐비해 있었다고 한다. 골고타와 예수님 무덤의 원래 모습이 사라진지는 이미 오래 되었다.

 

예루살렘을 정복한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명에 의해 골고타 언덕은 깎여지고 메꾸어져(135년) 그 위에 로마 신전과 쥬피터와 비너스 상이 세워졌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인 헬레나 성녀는 324년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왔고, 쥬피터와 비너스 신전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 골고타와 예수님의 무덤이라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황제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 후 326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명에 의해 신전은 헐리고, 예수님의 무덤이 발굴하여 기념 성전을 세웠다.

 

그 후 614년 페르시아군에 의해 기념성전은 파손되었고, 629년 보수되었지만 1009년 카이로 출신 칼리프 엘 하킴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이것은 십자군 운동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십자군에 의해 성전은 보수 및 개조되어(1149-1180년) 오늘날 성전의 모체가 되었으며 이후 예수님 부활성당에서 무덤성당으로 명칭이 바뀌게 되었다. 1545년 지진으로 인해 종탑을 비롯하여 상당한 많은 부분이 파손되었고, 1917년과 1728년 두 차례에 걸쳐 파손된 부분을 보수하였으나 1808년 화재로 인해 많은 부분이 타버렸다. 이때 유럽은 나폴레옹의 전쟁시기라 라틴교회는 성전을 보수하기 위한 여건이 좋지 않았던 반면, 그리이스 정교회 측에서는 러시아로부터 경제적 원조를 받고 오스만 터키의 외교정책을 힘입어 성전을 보수하고 보수한 부분을 자기들의 소유로 만들었다. 이 당시가 성전의 소유권을 놓고 치열하게(?) 각축전을 벌이던 시기였다. 

 

그 후 1834년 지진으로 성전은 다시 많은 부분이 파손되었으며, 라틴교회와 정교회가 공동으로 성전을 보수하였으나 1927년 지진으로 다시 많은 부분이 파손되었다. 그 후 1959년 라틴, 아르메니아, 정교회가 합의하여 1961년부터 재건 및 보수가 되었다.     (글 출처- http://blog.daum.net/terrasanta/17464788)

 

 

 

예수님 무덤 조배를 하려는 순례객들로 근처에 가기도 힘들정도다.

강력하게 통제를 하고 있어 한줄로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그 주변으로도 사람들로 가득하니 자칫 줄을 선줄 모르고 근처에 붙었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

 

성지순례로 왔다면 우리도 오랜 시간이 걸려도 다른 일정을 포기하고 줄을 서서 조배를 했을 터지만,

우리는 신자가 아닌 일반 여행을 온것이었으므로 안타까웠지만 그냥 주변에 서서 기도만 하고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기독교 신자가 꽤 있었던거 같다.

 

 

 

 

예수님 무덤 위의  쿠폴라 - 12개의 별을 형상화 했는데 이것은 12제자를 의미

                                    잦은 지진으로 최근에 보수할때 지진에 대비해서 철구조물로 만들었다고 한다. 

 

 

무덤 정면에 켜져 있는 초들은 맨 아래가 그리스 정교회, 가운데가 아르메니안 그리고 제일 위쪽이 가톨릭 교회 소유

 

 

 

 

 

예수님 무덤 밖에는 소망이 담아 봉헌한 촛불들과 순례객들이 소망을 적어서 끼워놓은 쪽지들이 빼곡이 꽂혀져 있었다.

마치 통곡의 벽 틈새란 틈새에 모두 끼워넣은 소망의 쪽지들처럼...

 

 

 

 

 

그리스 정교회의 "롱기누스(Longinus)의 경당"         

예수님의 감옥 오른쪽 복도를 따라가면 둥근 복도가 이어지는데 먼저 나타나는 작은 경당이 그리스 정교회의 "롱기누스(Longinus)의 경당"이다. 요한복음 19장 34절에 의하면 예수님이 죽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한 병사가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러 거기서 피와 물이 흘러 나왔다고 하는데 전승에 의하면 이 병사의 이름이 롱기누스라고 한다. 그는 눈병에 걸려 있었는데 예수님의 핏방울에 의해 병이 나았다고 한다. 정교회에서는 롱기누스를 성인으로 공경한다

 

 

 

"조롱 경당"(Chapel of the Mocking, Mt  27,27)      
지하 경당에서 올라와 다시 복도를 따라 왼쪽에 있다. 병사들은 예수님을 총독관저로 데리고 가서 옷을 벗기고 붉은 망토를 입힌 다음 가시관을 씌우고 유대인의 왕 만세를 외치며 조롱했다. 그리고 침을 뱉고 조롱했다. 제대 아래의 돌은 예수님을 앉힌 돌이라고 한다. 이곳은 그리스 정교회의 소유이다. 

 

제대밑 유리관속에 무언가 들어있는데...  순례객의 얼굴을 묻고 있는 간절한 모습이 가슴이 찡하다.

 

 

 

아담경당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골고타 바로 아래이다. 유대인들의 전승에 의하면 전 세계의 중심이요, 전 인류의 심장에 속하는 예루살렘에 아담의 묘가 있다고 하고, 이 전설이 좀더 구체화 되어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세워진 바로 아래에 아담의 묘가 있다고 믿었다. 이런 전설이 초대 교부들 치쁘리아누스, 오리게네스 교부에게 전해졌고, 십자가에서 흘린 예수님의 피는 바위 틈으로 스며들어 아담의 두개골을 흠뻑 적시게 되었고, 이 피로 인해 아담은 구원되었되는 신학적인 해석까지 생겼다. 그러므로 아담의 후손들인 전 인류가 골고타에서 구원 된다는 것이다. 아담 경당은 그리스 정교회 소유입니다.

아담 경당옆에 있는 바윗돌(유리박스속에 있는 것)

 

 

 

 

성묘교회에서의 순례를 마치고 나오다...

 

이날 나의 컨디션은 그야말로 최악!!

내 머리 무게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기운이 없어서 목이 부러질 것만 같았다는...

그런데 또 오늘 일정이 점심 먹고 나서 하루 종일 걷는 힘든 코스....

그래도 생각해 보니, 예수님 수난 길을 쓰러지기 직전의 최악의 컨디션으로 함께 했으니

나름 좀 의미가 있지않았나....

 

사진에서도  얼굴이 죽어가는 모습이다.

성지 순례 하기엔 옷차림도....민망하고....

원래 이날 일정은 사해에 가서 수영을 하는 날이었다.

그래서 룸메이트였던 인도 머플러로 어깨 두루고, 또 다른 머플러로 롱스커트 만들어 두르고....ㅠㅠ

 

 

 

 

참회의 노래-다성합창곡/Gregorio Alleg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