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C의 제왕, 그를 위한 변명
루치아노 파바로티 타계 1주기 특집
국적:이탈리아
출생: 1935.10.12
사망:2007.9.6
성부: 테너
요약: 청아한 미성과 빼어난 고음, 수더분한 인간미로 최고의 인기를 누린 스타 테너.
그러나 지나친 대중적인 인기 탓에 오페라 가수로서의 이미지에 손상을 입기도 했다.
강의를 되돌아 보며....
사람이 이렇게 간사하다.
나는 강의를 듣고 돌아온 날, 그동안 등한시 했던 파바로티 음악을 밤새도록 인터넷을 유영하며 그의 노래를 들었다.
이처럼 강의라는게 내 마음속을 파고드는 효과가 크다.
공연장에 직접가서 연주자를 직접 보고 난 뒤 그 연주자에게 푸욱 빠지게 되는것과 같은 이치일 지도 모르겠다.
루치아노 파바로티만큼 열광적인 환호와 사랑을 받은 테너는 결코 없었으리라.
카루소조차 누리지 못한 인종과 계층, 취향을 초월한 불가사의한 인기를 누렸다.
반면 파바로티처럼 질시와 비난, 심지어 중상과 멸시에 시달린 성악가도 없다.
그러나 그 부정적인 얘기의 대부분은 커리어의 만년에 흘러나온 것이며 음악적 성취와는 무관한 것도 많다.
여하튼 여러 관점에서 오페라계의 최고의 슈퍼스타였던 파바로티는 끝내 은퇴를 미루다가 2007.9.6 세상을 떠났다.
사실 2004년 3월 메트로 폴리탄 오페라 <토스카>를 마지막 오페라 무대라 선언했고 동년 12월 기자회견에서 전 세계를 돌며 고별 투어를 가질 것이고 만 70세 생일인 2005년 10월 이전에 완전히 은퇴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이 은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극심한 허리통증과 심지어 췌장암 수술까지 받은 뒤에도 병상에서 재기 의지를 불태웠다 한다.
이제 파바로티가 온갖 영욕을 뒤로 한 채 세상에서 사라졌으니, 사람들은 그리 오래지않아 그에 대한 모든 소문을 잊고
그의 전성기 음반을 들으며 가장 훌륭한 순간들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재평가하리라.
파바로티야말로 이탈리아 오페라의 새로운 매력을 일깨워준 진정 위대한 테너였다고.
마리아 칼라스에 견줄만한 거대한 존재였으나 너무 탄탄대로을 달렸기에 시샘을 받았을 뿐이라고.
서정성과 장대함을 겸비한 전대미문의 초대형 테너
파바로티의 음성에 잘 어울리고 자신 스스로도 좋아했던 배역으로 <사랑의 묘약>의 <네모리노>를 꼽을 수 있다.
어수룩하지만 정말 순수한 성품과 한결같은 뚝심을 지닌 시골 총각 네모리노...그것은 바로 파바로티 자신의 이미지로 세계인에게 각인되었으며 인기의 비결이 되었다.
스스럼없는 인간미, 언제나 활짝 웃는 선량한 미소, 가족중심적인 이탈리아식 사고, 심지어 최악이라고 할 만한 육중한 체구조차도 그에게 친근감을 더하는 매력으로 작용했다.
파바로티는 1935년 10월 12일 이탈리아 중북부의 <모데나>에서 태어났다.
같은 동네 동갑내기 친구로 소프라노<미렐라 프레니>가 있었다. 집안끼리도 잘 아는 사이며 둘이 많은 것을 함께 경험했지만, 연애는 따로 했다고...
파바로티 부친 <페르난도 파바로티>는 위대한 테너들의 음반을 방대하게 모은 오페라 광이자 아마추어 테너였다.
파바로티가 1975년 녹음한<루이자 밀러>음반<데카>에 잠깐 부친의 노래가 나온다.
이런 음악적 환경에서 자랐지만 파바로티는 음악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19세에 사범학교를 졸업하면서 초등학교 교사자격이 생겼지만 교사생활은 전혀 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때부터 개인교습을 받으면서 성악가의 길을 선택했다.
첫 스승은 고향의 <아리고 폴라>, 두번째 스승은 만토바의 <에토레 캄포갈리아니>였는데 그는 <미렐라 프레니>의 스승이기도 했다.
파바로티가 악보를 볼줄 모른다는 소문이 있는데, 악보를 전혀 못보는 것은 아니고 초견을 잘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것은 그의 스승이었던 <캄포갈리아니>때문이기도 한데, 그녀는 악보를 보지 못하게 하고 피아노 소리를 듣고 니 감정대로 부르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그래서 파바로티는 익숙한 오페라는 기막히게 잘 불렀지만 현대 오페라는 부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가 최고음을 내면서도 리드미컬하게 잘 불렀던 것은 본능적으로 음악을 맛있게 부를수 있도록 첫 선생에게 교육받은 영향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에 같이 배운 프레니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프레니의 남편은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였는데 자신의 아내가 악보를 볼줄 모르는 것이 부끄러워서 그녀에게 악보를 배우게 하기위해 피아노를 가르쳤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녀가 악보에 치중을 해서 노래를 못부르더란다. 그래서 악보 보는걸 가르치는걸 포기했다고...
26세가 되는 1961년 레지오 메밀리아의 작은 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그곳 극장에서<라보엠>의 로돌프역으로 데뷔했다.
성악공부를 하다 만난 첫 아내 아두아와 결혼한 것도 이때였다.
이듬해 툴리오 세라핀이 지휘하는 <리골레토>에 발탁된 행운은 진정한 커리어의 시작이었다.
이를 계기로 1963년 코벤트 가든, 1965년 라스칼라, 1968년 메트로폴리탄에 데뷔하면서 점차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것이다.
특히 1966년 런던에서 <연대의 딸>중 8번의 하이 C가 등장하는 아리아 <친구들이여, 오늘은 즐거운 날>을 120년 만에 악보대로, 게다가 마지막 음까지 모두 9번의 하이 C 를 불러냄으로써 공전의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연대의 딸>은 1972년 메트로 폴리탄 공연에서도 미국 음악계를 뒤흔든 대사건으로 기록되면서 파바로티에게 <하이C의 제왕>이라는 영광스런 별명을 안겨주엇다.
그의 청아한 음색과 고음을 쉽게 넘나드는 솜씨는 애초부터 성공의 열쇠를 보장했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나름대로 파바로티도 힘든 수련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특히 가장 큰 계기는 소프라노 <존 서덜랜드>.
그녀의 남편인 지휘자 <리처드 보닝>과의 만남이었다. 파바로티는 1965년 시즌을 이들과 함께 보내면서 서덜랜드로 부터 새로운 발성법을 터득했다고 고백한다. 심하게는 일주일에 여덟번의 공연을 소화해내면서도 언제나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서덜랜드에게 감탄해 그녀로 부터 노래에 필요한 근육, 횡경막을 단련하는 훈련을 전수 받았단다.
리처드 보닝의 회상에 따르면 자신이 보는 앞에서도 노래하는 서덜랜드의 배를 만져보면서 발성이나 호흡법을 이해하려고 애썼다고 한다. 그런 노력의 결실은 성량의 확대로 나타났다. 이전까지 아름다운 <레제로 테너>였던 파바로티는 서정성과 장대함을 겸비한 전대미문의 초대형 테너로 거듭날 수 있었다.
서덜랜드와의 협력은 리처드 보닝의 지휘로 데카에서 출반된 도니제티, 벨리니, 그리고 베르디 중기 오페라 음반들은 1950년대 마리아칼라스와 주세페 디 스테파노 콤비의 성과에 못지않은 벨칸토 오페라의 결정판이자 오페라 음반사에 길이 남을 파바로티의 공헌이다.
1970년대 중반부터는 파바로티는 레파토리를 확장..프랑스 오페라에서의 평판은 신통치 않았고, 독일 오페라는 아예 부르지도 않았지만 이탈리아 낭만 오페라만큼은 모두 자신의 영역에 포함시켰다.
파바로티는 본질적으로 <리릭테너>이지만 성량이 대단히 우렁차고 남성적인 표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어딘지 가냘픈 그 이전의 리리코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특히 벨칸토 오페라에서 대단한 성과를 이루었는데, 작곡가가 요구한 엄청난 고음, 심지어 <청교도>중 아르투로의 아리아 <사랑하는 사람이여, 그대에게 사랑을>처럼 하이C를 뛰어넘는 음마저도 악보대로, 거기에 고난도의 기교까지 고스란히 불러냈으니 찬탄이 절로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뿐만이 아니라 파바로티의 음악성이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단연 <가사의 소화능력>이다. 딕션이 명료한 것은 말할것도 없고, 그처럼 가사의 운율을 리드미컬하게 읽어내는 가수는 없었다. 이점에 대해 파바로티는 자신의 우상인 <주제페 디 스테파노>를 모범으로 삼았다고 한다.
로시니의 <윌리엄 텔>을 들어보라. 이 작품은 너무 테너를 혹사시키기 때문에 파바로티조차 리카르도 샤이 지휘로 딱 한번 녹음하고 무대 공연은 끝내 사절했다고 하는데, 그가 얼마나 맛깔스럽게 마치 꼭꼭 씹어 숙성시킨 다음에 내뱉는 것인가를 들려주는 최고의 모범사례일 것이다.
<리리코레제로 테너- 부드러우며 가벼운...>
<드라마틱 테너- 남성적이고 목소리가 큰...>
<벨칸토 오페라의 특성:아름다운 선율과 풍부한 성량-오페라 내용은 중요치 않다.다만 아름답고 노래를 잘해야한다는 것.
따라서 아름다운 선율을 부를 수 있는 뛰어난 가수가 있어야 한다.
벨칸토 오페라 작곡가로는 롯시니, 도니제티, 벨리니가 있는데, 파바로티는 롯시니작품은 안부르고 주로 도니제티와 벨리니
의 작품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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