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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yes on Stage_영국 | ||
김수현 | SBS 문화과학부 기자 | ||
한국에서 공연 담당 기자로 일하는 몇 년 동안 나도 모르게 초대권에 익숙해졌었나 보다. 영국에 와서 내 돈 내고 공연 표 사면서 새삼스럽게 재미를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물가 비싸다는 영국에 가족들까지 다 끌고 왔으니 내 형편이 그리 넉넉할 리 없다. 한국에선 그렇게 자주 하던 외식도 한 번 안 하고, 세 끼 꼬박꼬박 집에서 해 먹고 산다. 가계부도 쓰기 시작했다. 중고품 사서 쓰는 데에도 익숙해졌다. 이런 형편이라면 공연 관람은 어쩌면 '사치'일지도 모르지만, 영국에 와서 돈 때문에 공연 못 본 적은 별로 없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워릭 대학교에는 영국 중부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아트센터가 있다. 콘서트홀과 연극 공연장 두 곳, 갤러리와 영화관까지 갖추고 있어 거의 매일 저녁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열린다. 하지만 매번 아직 어린 둘째를 남편에게 맡기고 혼자만 공연을 볼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날마다 아트센터를 지나다니면서도 정작 여기서 본 공연은 한 편밖에 없다. 하지만 그 한 편의 포만감은 굉장히 컸다. 내가 본 공연은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공연이었다.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가 지휘를 맡았고, 바딤 레핀이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했다. 좀 미안하지만 남편에게 둘째를 맡기고 첫째만 데리고 아트센터로 달려갔다. 여기서 오케스트라 공연은 가장 비싼 티켓도 보통 30파운드 정도면 살 수 있으니 영국의 비싼 물가를 생각하면 싼 편이다. 한국과 비교해도 저렴하다. 그런데 이 학교 학생이라고 하니 할인을 받을 수 있단다. 가격은 불과 5파운드! 1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훌륭한 음악회를 보면서 어찌나 흐뭇했던지. 내가 이렇게 싼 표를 살 수 있었던 것은 'Student Standby'라는, 특별한 학생 할인 제도 덕분이었다. 'Concession'으로 불리는 통상적인 할인 표와는 다르다. Concession으로는 많아야 2, 30% 정도의 할인을 받을 수 있지만, Student Standby는 그야말로 파격가다. 공연이 임박해서 팔리지 않고 남아있는 자리를 학생들에게 아주 싼 가격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알고 보니 이런 제도를 운영하는 공연장이 아주 많았다. 시티 오브 버밍엄 심포니 오케스트라도 역시 이런 Student Standby 제도를 운영한다. 처음 한 번은 이런 제도가 있는 줄 몰라서 그냥 제 값 주고 공연을 봤다. 버밍엄 심포니는 당일 오후 1시부터, 그때까지 안 팔리고 남아 있는 좌석을 학생에 한해 4파운드에 판다. 피아니스트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가 버밍엄 심포니와 협연한 지난 연말 공연을 이렇게 볼 수 있었다. 인터넷으로 매표 상황을 보니 매진은 아닌 것 같아 공연 당일 첫째 은우를 데리고 공연장으로 갔다. 매표소 직원이 처음에 은우는 R석 정상가인 31.5파운드를 내라고 하기에 '어린이도 초등학교 학생인데 Student Standby 가격을 적용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직원은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잘 모르겠다며 매니저에게 갔다 오더니 은우도 4파운드만 내면 된다고 했다. R석 두 장에 63파운드 줬어야 할 공연을 불과 8파운드, 1만5천 원 정도에 본 것이다. 호두까기 인형 모음곡과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 그리고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을 감상하고 나오니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마침 안스네스와 지휘자 사카리 오라모가 사인회도 한단다. 구내 음반가게에서 집에 없는 안스네스 음반을 한 장 사서 사인을 받고 은우와 함께 기념사진까지 찍었다. 4파운드 내고 공연 본 게 미안할 지경이었다. 아무래도 앞으로 버밍엄 나들이를 더 자주 해야 할 것 같다. 다음 목표는 내가 사는 곳에서 좀 멀긴 하지만,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는 트래블엑스(Travelex)라는 기업의 후원을 받아 Student Standby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로열 발레나 로열 오페라 공연을 10파운드에 볼 수 있다. 일단 온라인이나 전화로 학생 등록을 해놓고 나서, 이메일이나 이동전화 문자 메시지로 10파운드에 입장할 수 있는 공연을 통보 받아 티켓을 온라인 구매하는 방식이다. 나는 며칠 전 온라인으로 학생 등록을 마쳤다. 내셔널 시어터도 트래블엑스 후원으로 공연 시작 45분 전부터 10파운드짜리 티켓을 학생들에게 판다. 학생들은 5파운드에 공연을 볼 수 있는 Student Night도 있다. 내셔널 시어터는 'Student Reps'라는 제도도 운영하고 있는데, 내셔널 시어터 홍보 활동에 참여하는 학생들에게 공연 티켓을 무료로 제공한다. 학생들은 공연 홍보 유인물이나 포스터를 정기적으로 대학 구내에 비치하고, 지역. 대학 신문에 공연 관련 소식을 기고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홍보 활동에 참여한다. 웨스트엔드 뮤지컬 공연장 대부분이 회원인 런던 공연장 협회(Society of London Theatre)도 Student Standby 제도를 운영한다. 16~25세의 학생들은 당일 공연 시작 30분에서 1시간 전에 15파운드에 티켓을 살 수 있다. 단, 일찌감치 매진되는 인기 공연들은 대개 해당되지 않는다. 협회에서 발간하는 런던 공연장 공식 가이드(The Official London Theatre Guide)에 [S]로 표시된 공연들만 해당된다. 'C145'도 있다. 'See one show For Five pounds'에서 따온 말이다. '쥐덫 극장 프로젝트(Mousetrap Theatre Project)'가 운영하는 청소년 할인 제도다. 15~18세의 학생들이 온라인으로 가입하면 할인 공연 행사가 있을 때마다 안내를 받을 수 있다. 런던 시내의 공립학교들이 단체로 가입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Rent>, <Avenue Q> 같은 인기 뮤지컬뿐 아니라,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토스카>도 5파운드 관람 공연 목록에 끼어 있다('쥐덫 극장 프로젝트'는 웨스트엔드 최장기 공연인 애거서 크리스티의 <쥐덫> 공연 프로듀서가 '런던 공연 관객들에게 보답하고 싶어' 설립한 비영리단체다). 영국에 와 있는 동안 십수 년 만에 다시 얻은 '학생 신분'을 맘껏 활용해야겠다. 한국에도 다양한 공연 할인 제도가 있지만, 영국의 Student Standby 같은 할인 제도는 별로 못 본 것 같다. 100% 매진되는 공연은 그리 많지 않은 만큼, 어차피 비는 좌석은 공연을 보고 싶어 하는 학생들에게 싼값에 팔아도 괜찮을 듯하다. 이건 학생들을 위한 '서비스'이기도 하지만, 미래의 유망 고객을 상대로 한 훌륭한 '마케팅'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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