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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삶이 완성시킨 거대한 우주/피아니스트 백건우

나베가 2007. 11. 23. 12:50
작은 삶이 완성시킨 거대한 우주
  피아니스트 백건우
  노승림음악칼럼니스트 alephia@hotmail.com





“용기를!
육체가 제아무리 허약하더라도
정신이 지배할 것이다.
금년에는 완전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
모든 것을 완성시켜야만 한다.”


 


-1794년 1월 1일, 베토벤의 일기 중에서


 


백건우의 삶은 단출하다. 음악을 제외한 그의 일상은 단순하고 소박하기 그지없다. 현대인의 필수 덕목인 컴퓨터조차 그에게는 익숙지 않은 대상이다. 아직도 백건우의 장거리 연주계약은 이메일이 아닌 팩스로 이루어지고 있다. 제자를 키우지 않는 그에게는 정치적인 추종자가 전무하다. 매번 여행에 함께 따라다니며 그의 일정을 체크하고 돌봐주는 이는 매니저가 아닌 그의 부인이다. 일상에서 그가 필요로 하는 공간은 가족이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식탁, 잠을 자기 위한 침대, 그리고 피아노를 치기 위한 건반 앞이 전부이다.
그러나 음악을 포함시키면서, 백건우의 삶은 광활하게 넓어진다. 그의 무대는 오대양 육대주이다. 인간관계의 폭을 넓히고자 애쓰는 것도 아닌데, 그의 콘서트는 매번 그를 정신적으로 지지하는 수많은 순수한 청중들로 북적거린다. 백건우의 존재감은 그처럼 많은 관객이 들어찬 콘서트홀을 매번 압도한다. 그가 ‘백건우입니다’라며 내세우는 카드는 단 하나, 음악일 뿐이다.
소박한 삶 속에서 깊이 있는 정신을 추구하는 그에게 '건반 위의 구도자'라는 수식어는 참으로 타당한 표현이다. 그의 걸음걸이, 그의 인사, 그의 제스처, 심지어 건반을 두드리는 모양새까지 그는 꾸밈을 모른다. 나비 넥타이를 싫어해 언제나 캐주얼한 흰색 터틀넥을 고집하는 그이지만 그의 손가락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음악은 본질적이다. 화려한 무대 매너와 외양에 치중하는 상대등급의 반짝이 별과는 차원이 다른, 이른바 절대등급인 것이다.
그러한 구도자의 시선이 그러나 대단히 근시안적이라는 점 또한 뜻밖이다. 1972년 뉴욕에서의 라벨 전곡 연주회를 시작으로 그는 끊임없이 한 작곡가의 모든 피아노 작품을 집중 공략해왔다. 무소르그스키, 리스트, 프로코피예프, 쇼팽에 이르기까지 피아노의 거장들이 남긴 작품들 가운데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작품은 거의 없을 지경이다. 무엇인가 장기적인 전략이 있을 법한 자취임에도 백건우는 아니라고 난색을 표한다. 매번 하나의 산을 목표로 삼으면 그 산을 등정하는 데 집중하며, 그 산을 넘고 나면 그 다음에 넘어야 할 산이 눈앞에 나타날 뿐이라고. 그는 자신의 순례의 여정을 그렇게 말한다.
“음악이라는 작업을 일생동안 해오고 있지만, 그것은 정복할 수 없는 산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올라도 끝이 안 보이기 때문이지요. 즉,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작업을 계속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느 정도 와 있다는 것을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인생의 어느 지점이라는 것을 말하기는 어렵지요.”
구도자는 소유로부터 자유롭기에 정신 이외에 정해진 목적지가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갔던 길을 되돌아오는 여정 속에서도 매번 새로운 깨달음을 완성시키고 우리에게 전달해주는 그의 콘서트는 무대라기보다는 제단이며 공연이라기보다는 의식이다. 오는 늦은 가을 혹은 이른 겨울 구도자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슈베르트(피아노 에튀드 2번)며 바그너의 곡을 리스트가 편곡한 <사랑의 죽음>이며, 모차르트의 론도가 함께 엮여 있기는 하지만 세간의 시선은 역시나 베토벤의 소나타에 집중되어 있다. 지난해 그가 마침내 피아노의 신약성서라 불리는 베토벤 소나타 사이클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활화산같이 폭발했던 백건우의 ‘열정’ 소나타는 청중들의 기립박수를 끌어냈다. 콘서트와 더불어 발매되었던 베토벤 중기 소나타 음반은 만장일치의 호평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함께 공연을 지켜보았던 모 피아니스트는 “남들이 안 다니는 길보다 남들이 닦아놓은 길을 걸어가는 것이 예술가에게는 더 큰 고통”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백건우가 베토벤 소나타를 선택했을 당시, 일부 사람들은 의구심을 가지기도 했다. 숱한 거장들이 거쳐간, 그래서 모두에게 익숙한 이 작품들로부터 그가 새롭게 추구할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가 자신의 이름으로 구축할 수 있는 성은 어떤 모습일까. 이러한 의구심에 대해 화답한 연주가 바로 지난해의 ‘열정’ 소나타였던 것이다.
지방 순회공연을 포함한 이번 내한 공연에서 백건우가 가지고 온 베토벤 카드는 소나타 28번 A단조 Op.101와 14번 소나타, 저 유명한 ‘월광’ 소나타이다. 하지만 지난해 백건우의 연주를 목격했던 사람들이라면 그때와 같은 의구심을 더 이상 가지지 않을 것이다. 백건우가 자신만의 연주로 베토벤이 일구어낸 소우주를 재구축하고 있음을. “명성? 그런 건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네. 그렇다면 왜 작곡을 하냐고? 한 번도 명예 때문에 음악을 한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 다만 나는,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을 밖으로 드러내야 할 뿐이야”라며 어린 제자 체르니의 질문에 퉁명스럽게 대답한 베토벤의 음악관과 백건우의 그것은, 실은 일란성 쌍둥이처럼 몹시도 닮아 있다.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의 세계는 무한정한 것입니다. 지금 내 연습실에 많은 악보가 쌓여 있지만 아직 들춰보지 않은 것도 많고,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요. 결국 거짓 없이 끝까지 성실하게 작업을 계속하다가 이 세상을 마치는 것이 내게 주어진 삶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힘이 들더라도 현재 할 수 있다는 게 행복한 일이지요.”(백건우)


 


이 글을 쓴 노승림은 1997년부터 2004년까지 월간 <객석> 클래식 음악 담당 기자로 재직하였으며 현재 연합뉴스 객원기자 및 음악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