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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 백건우

나베가 2007. 11. 23. 12:48
아름다운 사람, 백건우
  커버스토리_피아니스트 백건우
  신경숙소설가





 


책상위에 백건우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회 예매 쿠폰이 놓여 있다. 이따금 수첩을 펼치고 쿠폰을 들여다본다. 일주일 동안 계속되는 대장정이 시작되는 12월 8일 첫날에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베토벤 클럽 데스크에서 총 8회 연주회 티켓과 프로그램북을 교환할 수 있는 쿠폰이다. 이 쿠폰을 소지하게 된 순간부터 멋진 보석을 가슴에 품은 듯 해 자꾸 달력을 들여다본다. 아직 10월인데 벌써 축제가 시작된 기분이다. 그 축제를 즐기기 위해 내가 할 일을 열심히 하는 요즘이기도 하다. 12월의 나날들을 충문한 마음으로 백건우의 피아노소리와 함께 하려면 우선은 밀린 일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일이 밀려 있으며 연주회장에 가는 일주일의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기에, 그런 것으로 방해받고 싶지 않기에.  초등학교 5학년 때던가.



 내가 다니던 소읍의 그 학교에 J시에서 전학을 온 창백한 얼굴빛을 정희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가 있었다. 그애는 낯선 존재였다. 흰 얼굴이나 에나멜구두나 붉은 책가방 때문이 아니다. 그애가 피아노를 칠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나의 담임은 핸드볼 코치였다. 선생님이 풍금을 칠 줄 몰라(나도 안 믿긴다) 음악시간이 없던 우리에게 그애가 음악시간을 선사했다. 나는 어려서 키가 컸고 키 큰애들은 저 뒤에 앉았다. 맨 뒤에 앉아 저 앞자리의 그 애를, 풍금 건반 위를 날아다니는 그애의 손가락을 물끄러미 보곤 했다. 그애는 어딘가가 아팠으므로 오전수업만 마치고는 집으로 가곤 했다. 교실 유리창가에 서서 그애가 혼자 운동장을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가끔 지켜보곤 했다. 그애네 집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는 날도 있었다. 안에서 새어 나오는 피아노 소리 때문이었다.  봄에 왔던 그애는 가을이 지날 무렵에 쓰러져 누군가의 등에 업혀 나간 후로 돌아오지 않았다. J시로 돌아갔다고도 하고 그애가 병을 치료하기 위해 서울로 갔다고도 했으나 어쨌든 그 이후로 그애를 다시 볼 수가 없었다. 내 귀엔 그애가 치던 피아노 소리만 남았다.



 이십대에 들어서면서 내가 피아노를 무척 편애 하는다는 걸 깨달았다. 이 도시에 독립적인 방 한 칸도 없으면서 피아노앞을 지나가다보면 그걸 갖고 싶은 욕망으로 목을 길게 뻬내고 기웃거리고 있는 나를 느꼈다. 어디서든 피아노소리가 들리면 발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는 나를. 가끔은 토큰을 살 돈이 떨어져 여의도에게 집까지 걷기도 하던 그 시절에 돈이 생기면 피아노곡이 담긴 테이프를, 차츰 발전하여 LP판을, 좀 더 발전하여 피아노 연주회를 �아 다녔다. 아, 한때 내가 섭렵하듯 다니던 그 숱한 음악회들.
  피아노 앞의 백건우를 처음 봤을 때의 그 놀라움을 뭐라 할까. 그 자리에서 얼어붙는 듯 했다. 피아노 소리만 남기고 돌아오지 않았던 그 애가 커튼 뒤로 확실히 물러나는 순간이었다. 아, 피아노는 슬픔이 아니구나. 기쁨이며 환희이며 아름다움이구나. 인간이 피아노 앞에서 저렇게 늠름하고 당당하고 멋질 수가 있구나.  파도처럼, 강풍처럼 내 마음을 휘젓고 다니는 백건우의 손이 이루어내는 피아노소리들은 나를 벅찬 감동 속으로 휘몰아 넣었다. 그의 외모는 상냥하고 자상해 보이는데 피아노 앞의 그는 산맥을 질주해 내려오는 사자 같았다. 손으로 저런 소리를 낼 수 있다니...감탄과 함께 뭇 인간의 손에 대한 신뢰가 동시에 싹텄다. 아마도 나는 백건우의 손가락들이 내는 피아노 소리를 들은 다음부터 인간의 신체 중에 손이 가장 사랑스럽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또 오랜 세월이 어느 초겨울에, 
 배우이며 그의 아내인 윤정희와 함께 약속시간에 약간 늦어 머쓱한 미소를 띠운 채 교보문고 2층에 있는 프랑스 식당으로 들어서는 백건우와 마주쳤다. 두 사람은 참 잘 어울렸다. 청춘의 그들을 보았으면 어떤 생각을 가졌을지 모르나 피아노와 함께 나이 들어가고 있는  그들은 마치 이렇게 아름답게 나이를 먹을 수도 있다는걸 보여주고 있는 사람들 같았다. 둥근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이편 저편에 앉아 식사를 하는 동안 나는 마음이 흐뭇해서 혼자서 자꾸만 웃었다. 배우 윤정희와 영화제 심사를 함께 하게 된 인연을 진짜 감사해 했다. 그랬으니 그를 그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었을 것 아닌가. 만약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배우 윤정희의 남편으로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도 까탈스러운 예술가로 보였다면 실망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윤정희의 남편으로서도 매우 아름다웠다.  기름기 없이 약간 건조한 듯한 얼굴빛엔 온화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 대한 친절한 배려가 과잉이 아니라 진심으로 느껴지는 소탈한 모습이었다. 음식을 참 맛있게 먹는다고 생각했는데 화제가 그가 파리 아파트에서 만들어내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는 음식을 만드는 걸 아주 즐기며 특별히 음식을 하는 게 아니라 음식을 만드는 게 자연스레 손에 붙은 사람인가 보았다. 자리에 있던 그의 지인들은 하나 둘 그가 만들어준  음식들을  추억하며 행복해 했다. 그냥 듣고만 있어도  모두들 그를 사랑하는 걸 감지할 수 있었다.  정작 사랑받는 그만 쑥스러워했다. 
 어느 순간 나는 그의 손을 보았다. 저 손인가. 저 손이 그리 영혼이 흔들리는 것 같은  피아노 소리를 들려주었던 열정의 손인가. 저 손으로 아내를 위해 지인들을 위해 요리를 또 그리 멋지게 한단 말인가.  피아노 앞에서의 그가 아닌  소탈한 생활인으로서의 부드러움과 타인에 대한 배려가 자연스럽게 온 몸에 배여 있는 그를 가까이서 지켜보는 나도 행복해졌다. 아, 저이는 남에게 행복을 주려고 이 세상에 온 사람인가 보다, 생각했다. 그랬다. 그 저녁시간 내내 그로 인해 모두들 행복했다. 이후로 나는 그의 연주회에 어쩌든 가보려고 하며 가보고 있다. 단 한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다. 이 세상에 그 같은 사람이 살고 있고 같은 공간에서 한 순간을 같이 한다는 것만으로 좋다.     



 지난 9월 초에 북경에서 책이 번역 출간되어 북경도서전에 갔을 때였다. 북경에 있는 한국 문화원 원장이 백 건우 부부가 북경에 와 있다는 얘기를 했다. 이곳에 그가 와 있다고? 너무 반가워서 연주회가 있는 시간을 물어보니 내 일정과 겹쳐 있었다. 그래도 그냥 내일은 젖혀 두고 북경에서 피아노 앞에 앉아있는 그를 보러가고 싶은 마음이  꿀떡같았다. 마음이 그러해서 북경에서 내게 주어진 일을 소화해내며 문득 그의 연주회 시간이 되었을 때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아, 지금 그도 여기 북경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겠구나....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이제 곧 눈이 오는 십이월이다. 십이월의 일주일간 예술의 전당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에 도전한다는 그에 대한 기사를 읽고 흥분했다. 그는 “죽을 때까지 베토벤만 쳐도 행복할 것 같다” 고 말했다. 그 말은 요즘 나를 깊은 사색에 잠기게 한다.  그렇게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그의 인내와 노력이 눈앞에 보이는 듯 하다. 은근히 나도 내가 하는 일을 두고 그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긴다. 백 건우와 베토벤은 잘 어울린다. 분명  베토벤의 불행과 상처의 결실이랄 수 있는 피아노곡들을 백건우의 열정과 겸손이 위로할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의 십이월은 불꽃아래 모인 것 같이 황홀할 것이다. 그래서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주일 내내 베토벤과 백건우와 함께 할 것을 상상하는 일은 행복을 느끼게 한다. 한해가 어땠을지라도 그가 우리에게 선물한 2007년 12월의 일주일로 인해 우리의 일년이 빛이 날 것이다.!                


- 이 글은 동아일보에 실린 글을 바탕으로 새로 쓰여진 것입니다-


 




 

8분 1초가 지난 뒤
  음악 에세이
  신경숙소설가






‘음악 에세이’는 국내 최고의 작가들이 써 내려가는 음악 수필입니다. 그 음악과, 또는 그 음악가에 대한 기억을 글에 담습니다. 문학과 음악의 멋진 만남을 소개합니다.


 


8분 1초가 지난 뒤


 


아주 오래전,
신새벽에 침대 옆 사이드 테이블에 놓여 있던 수화기가 내 방 안의 정적을 깨고 울려댔다. 잠결에 무심코 수화기를 들었다. 사람 목소리 대신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런 때가 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생각하기도 전에 그냥 그 상황에 가만히 놓여 있게 되는 때. 그때 그랬던 것 같다. 잠을 깨운 전화벨 소리에 아무 저항도 하지 않고 마치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수화기를 귀에 대고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었다. 친숙한 피아노 소리가 매우 멀리서 전해졌다. 아주 먼 곳으로 나를 이끄는 것도 같고 아주 가까이서 다정하게 내 목덜미를 휘감는 것도 같았다. 뜻밖의 신새벽의 전화벨 소리에 놀랐던 내 마음이 아주 부드럽게 풀리는 걸 느꼈다. 나는 수화기 저편의 그가 누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누구나 그런 느낌이 드는 때가 있을 것이다. 전화벨이 울렸을 때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구라는 것을 그냥 직감적으로 알게 되는 그런 때.


8분쯤 지났을 때 그가 말했다.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황제 2번입니다.


나도 알고 있었다.
-8분 1초짜리입니다.


나는 그때까지 클래식 라디오 방송의 DJ 외의 다른 사람이 ‘이 음악은 몇 분짜리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8분 1초라는 그이의 말에 피식 웃었던 것 같다. 그 순간에 터져 나온 짧은 웃음과 8분 1초 동안의 음악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음악이 흘러나오던 그 8분 1초 동안 나는 그동안의 수화기 저편의 그이와의 마음의 갈등을 접었다. 사랑의 감정이란 그야말로 바늘구멍으로 코끼리가 들어가는 것처럼, 아니다 낙타라고 해두자, 낙타가 들어가는 것과 같이 어렵고 귀한 감정이다. 그것을 모른 채 젊은 날 내버려둔 사랑의 감정들. 그 잃어버린 시간을 생각하면 해 저물 녘에 내리는 비를 바라다보고 있을 때처럼 고적해진다.
 음악에 대한 한마디 설명도 하지 않았지만 그가 신새벽에 수화기를 통해 들려준 그 8분 1초의 베토벤의 음악으로 인해 나는 어쩐지 그와는 그러면 안 될 것 같아 망설이기만 하며 다가오고 있는 그를 그냥 바라보고만 마음을 열었다. 그 짧은 순간에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음악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늘 무엇인가를 사랑해서 집중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음악도 그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그 신새벽의 8분 1초로 인해 이후 나도 베토벤에 집중했다. 덕분에 지금도 나의 CD장엔 베토벤의 것이 가장 많다. 그가 지휘자 프랭크 뱅글러를 좋아했으므로 나 또한 지휘할 때면 거의 문어처럼 몸이 흐물거리는 그를 좋아하려고 노력했다. 독일 여행 때는 알프레드 브란델이 연주하는 베토벤 피아노곡 전집을 사 들고 오기도 했고 로망롤랑이 쓴 베토벤의 생애를 몇 번이고 읽었다. 그와 나 사이의 관계란 마치 베토벤에 집중 혹은 열광하기인 것 같기도 했다. 모든 사랑엔 폭풍의 시간이 지나면 고요의 순간이 찾아든다. 다채롭고 웅대하고 역동적인 황제의 1악장이 지난 뒤 그 느리고 침울한 그러나 한없이 아름다워 넋을 빼고 마는 2악장의 8분 1초가 다가오는 것처럼 말이다.
작별의 시간도 그렇게 다가왔다.
 그냥 그냥 알고 지내는 사람도 어려움에 처해 있으면 덜어줄 수 있는 한 덜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럴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면 미안한 마음이라고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여기다는 밝힐 수 없는 일로 그가 매우 어려워졌다. 나는 그때 그를 나처럼 느끼고 있는 때였다. 마음이 그러하니 그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는 척했던 결과로 그는 내게서 멀어졌다. 세상에는 나 같은 종류의 인간이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또 그이와 같은 종류의 인간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 두 계절이 필요했다. 
 이해는 했지만 지금도 나는 도움을 받아야 할 때는 받고 줄 수 있을 때는 주는 것이 훨씬 인간적이라고 생각한다.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살기엔 세상은 너무 복잡하며 우리 인간은 개개인이 모든 것을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기엔 너무 연약하다. 어느 날 그는 나와 갈치찜을 먹고 어둠 속을 걸어서 나를 집까지 바래다주며 다정하게 잘자, 라고 인사까지 한 다음 날 그는 다른 이와 속초엘 갔다. 그랬다. 음악만이 아니라 사람 또한 늘 사랑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그였기에 다른 이와.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떠나는 사람을 붙잡을 방법을 알지 못한다. 누군가 간다 하면 왜 가는지 정확히 이해가 되지 않는데도 따지거나 붙잡는 대신 멀어지는 그의 집 주변을 두어 번 배회해볼 뿐이다. 그때도 그랬던 것 같다. 그의 방 앞에 물봉숭아든가 석란이든가 하는 화분을 하나 놓고 온 뒤로 그가 내 마음속에서 타인이 되기를 기다리며 나는 혼자서 베토벤을 들었다. 불면을 위해서는 베토벤을 듣지 말아야 한다. 내 불면은 베토벤으로 인해 더욱 깊어졌다. 간혹 아름답다고 느꼈던 모든 대목들이 사실은 비애를 품고 있다는 것을, 베토벤의 불굴의 정신 가장 바닥엔 늘 비애가 깔려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던 것 같다. 그를 담담히 생각할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신새벽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옛날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가 잠결에 전화를 받는 듯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수화기를 통해 황제의 2악장을, 예전엔 아름다웠으나 어느덧 비애만 남겨준 곡을 그에게 들려주었다. 느리디느리게 8분 1초가 지난 뒤 수화기를 내려놓고 혼자 중얼거렸다.
안녕…. 나와 함께가 아니더라도 잘살아.   


 


이 글을 쓴 신경숙은 1985년 소설 <겨울 우화>로 등단해, 지금까지 깊이 있고 작가의 개성이 가득 담긴 작품으로 국내 소설계의 최고 작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풍금이 있던 자리>(1993), <외딴방>(1997), <바이올렛>(2001)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그녀가 쓴 첫 역사소설로 주목받은 조선일보에 연재된 <푸른 눈물>이 곧 책으로 출간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