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위에 백건우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회 예매 쿠폰이 놓여 있다. 이따금 수첩을 펼치고 쿠폰을 들여다본다. 일주일 동안 계속되는 대장정이 시작되는 12월 8일 첫날에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베토벤 클럽 데스크에서 총 8회 연주회 티켓과 프로그램북을 교환할 수 있는 쿠폰이다. 이 쿠폰을 소지하게 된 순간부터 멋진 보석을 가슴에 품은 듯 해 자꾸 달력을 들여다본다. 아직 10월인데 벌써 축제가 시작된 기분이다. 그 축제를 즐기기 위해 내가 할 일을 열심히 하는 요즘이기도 하다. 12월의 나날들을 충문한 마음으로 백건우의 피아노소리와 함께 하려면 우선은 밀린 일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일이 밀려 있으며 연주회장에 가는 일주일의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기에, 그런 것으로 방해받고 싶지 않기에. 초등학교 5학년 때던가.
내가 다니던 소읍의 그 학교에 J시에서 전학을 온 창백한 얼굴빛을 정희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가 있었다. 그애는 낯선 존재였다. 흰 얼굴이나 에나멜구두나 붉은 책가방 때문이 아니다. 그애가 피아노를 칠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나의 담임은 핸드볼 코치였다. 선생님이 풍금을 칠 줄 몰라(나도 안 믿긴다) 음악시간이 없던 우리에게 그애가 음악시간을 선사했다. 나는 어려서 키가 컸고 키 큰애들은 저 뒤에 앉았다. 맨 뒤에 앉아 저 앞자리의 그 애를, 풍금 건반 위를 날아다니는 그애의 손가락을 물끄러미 보곤 했다. 그애는 어딘가가 아팠으므로 오전수업만 마치고는 집으로 가곤 했다. 교실 유리창가에 서서 그애가 혼자 운동장을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가끔 지켜보곤 했다. 그애네 집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는 날도 있었다. 안에서 새어 나오는 피아노 소리 때문이었다. 봄에 왔던 그애는 가을이 지날 무렵에 쓰러져 누군가의 등에 업혀 나간 후로 돌아오지 않았다. J시로 돌아갔다고도 하고 그애가 병을 치료하기 위해 서울로 갔다고도 했으나 어쨌든 그 이후로 그애를 다시 볼 수가 없었다. 내 귀엔 그애가 치던 피아노 소리만 남았다.
이십대에 들어서면서 내가 피아노를 무척 편애 하는다는 걸 깨달았다. 이 도시에 독립적인 방 한 칸도 없으면서 피아노앞을 지나가다보면 그걸 갖고 싶은 욕망으로 목을 길게 뻬내고 기웃거리고 있는 나를 느꼈다. 어디서든 피아노소리가 들리면 발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는 나를. 가끔은 토큰을 살 돈이 떨어져 여의도에게 집까지 걷기도 하던 그 시절에 돈이 생기면 피아노곡이 담긴 테이프를, 차츰 발전하여 LP판을, 좀 더 발전하여 피아노 연주회를 �아 다녔다. 아, 한때 내가 섭렵하듯 다니던 그 숱한 음악회들.
피아노 앞의 백건우를 처음 봤을 때의 그 놀라움을 뭐라 할까. 그 자리에서 얼어붙는 듯 했다. 피아노 소리만 남기고 돌아오지 않았던 그 애가 커튼 뒤로 확실히 물러나는 순간이었다. 아, 피아노는 슬픔이 아니구나. 기쁨이며 환희이며 아름다움이구나. 인간이 피아노 앞에서 저렇게 늠름하고 당당하고 멋질 수가 있구나. 파도처럼, 강풍처럼 내 마음을 휘젓고 다니는 백건우의 손이 이루어내는 피아노소리들은 나를 벅찬 감동 속으로 휘몰아 넣었다. 그의 외모는 상냥하고 자상해 보이는데 피아노 앞의 그는 산맥을 질주해 내려오는 사자 같았다. 손으로 저런 소리를 낼 수 있다니...감탄과 함께 뭇 인간의 손에 대한 신뢰가 동시에 싹텄다. 아마도 나는 백건우의 손가락들이 내는 피아노 소리를 들은 다음부터 인간의 신체 중에 손이 가장 사랑스럽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또 오랜 세월이 어느 초겨울에,
배우이며 그의 아내인 윤정희와 함께 약속시간에 약간 늦어 머쓱한 미소를 띠운 채 교보문고 2층에 있는 프랑스 식당으로 들어서는 백건우와 마주쳤다. 두 사람은 참 잘 어울렸다. 청춘의 그들을 보았으면 어떤 생각을 가졌을지 모르나 피아노와 함께 나이 들어가고 있는 그들은 마치 이렇게 아름답게 나이를 먹을 수도 있다는걸 보여주고 있는 사람들 같았다. 둥근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이편 저편에 앉아 식사를 하는 동안 나는 마음이 흐뭇해서 혼자서 자꾸만 웃었다. 배우 윤정희와 영화제 심사를 함께 하게 된 인연을 진짜 감사해 했다. 그랬으니 그를 그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었을 것 아닌가. 만약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배우 윤정희의 남편으로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도 까탈스러운 예술가로 보였다면 실망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윤정희의 남편으로서도 매우 아름다웠다. 기름기 없이 약간 건조한 듯한 얼굴빛엔 온화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 대한 친절한 배려가 과잉이 아니라 진심으로 느껴지는 소탈한 모습이었다. 음식을 참 맛있게 먹는다고 생각했는데 화제가 그가 파리 아파트에서 만들어내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는 음식을 만드는 걸 아주 즐기며 특별히 음식을 하는 게 아니라 음식을 만드는 게 자연스레 손에 붙은 사람인가 보았다. 자리에 있던 그의 지인들은 하나 둘 그가 만들어준 음식들을 추억하며 행복해 했다. 그냥 듣고만 있어도 모두들 그를 사랑하는 걸 감지할 수 있었다. 정작 사랑받는 그만 쑥스러워했다.
어느 순간 나는 그의 손을 보았다. 저 손인가. 저 손이 그리 영혼이 흔들리는 것 같은 피아노 소리를 들려주었던 열정의 손인가. 저 손으로 아내를 위해 지인들을 위해 요리를 또 그리 멋지게 한단 말인가. 피아노 앞에서의 그가 아닌 소탈한 생활인으로서의 부드러움과 타인에 대한 배려가 자연스럽게 온 몸에 배여 있는 그를 가까이서 지켜보는 나도 행복해졌다. 아, 저이는 남에게 행복을 주려고 이 세상에 온 사람인가 보다, 생각했다. 그랬다. 그 저녁시간 내내 그로 인해 모두들 행복했다. 이후로 나는 그의 연주회에 어쩌든 가보려고 하며 가보고 있다. 단 한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다. 이 세상에 그 같은 사람이 살고 있고 같은 공간에서 한 순간을 같이 한다는 것만으로 좋다.
지난 9월 초에 북경에서 책이 번역 출간되어 북경도서전에 갔을 때였다. 북경에 있는 한국 문화원 원장이 백 건우 부부가 북경에 와 있다는 얘기를 했다. 이곳에 그가 와 있다고? 너무 반가워서 연주회가 있는 시간을 물어보니 내 일정과 겹쳐 있었다. 그래도 그냥 내일은 젖혀 두고 북경에서 피아노 앞에 앉아있는 그를 보러가고 싶은 마음이 꿀떡같았다. 마음이 그러해서 북경에서 내게 주어진 일을 소화해내며 문득 그의 연주회 시간이 되었을 때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아, 지금 그도 여기 북경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겠구나....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이제 곧 눈이 오는 십이월이다. 십이월의 일주일간 예술의 전당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에 도전한다는 그에 대한 기사를 읽고 흥분했다. 그는 “죽을 때까지 베토벤만 쳐도 행복할 것 같다” 고 말했다. 그 말은 요즘 나를 깊은 사색에 잠기게 한다. 그렇게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그의 인내와 노력이 눈앞에 보이는 듯 하다. 은근히 나도 내가 하는 일을 두고 그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긴다. 백 건우와 베토벤은 잘 어울린다. 분명 베토벤의 불행과 상처의 결실이랄 수 있는 피아노곡들을 백건우의 열정과 겸손이 위로할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의 십이월은 불꽃아래 모인 것 같이 황홀할 것이다. 그래서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주일 내내 베토벤과 백건우와 함께 할 것을 상상하는 일은 행복을 느끼게 한다. 한해가 어땠을지라도 그가 우리에게 선물한 2007년 12월의 일주일로 인해 우리의 일년이 빛이 날 것이다.!
- 이 글은 동아일보에 실린 글을 바탕으로 새로 쓰여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