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ing Quartet No.14 in d minor D. 810
Der Todund das Madchen | |
1824년에 완성된 ''죽음과 소녀''는 제2악장의 변주곡 테마에 그의 유명한 가곡 ''죽음과 소녀''의 멜로디를 사용했기 때문에 이 이름이 붙게 되었다. 이 곡은 그의 만년의 작품으로,그가 병에 걸려서 죽음을 직시했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사상을 이같이 음악으로 표현했을 것이다. 자유로운 악기 사용, 샘솟는 듯 하는 아름다운 선율 등으로 보아 그의 천재적인 기질이 유감 없이 발휘된 것 같다.
[작품 해설]
슈베르트는 모두 15곡의 현악 4중주곡을 작곡했는데 24세 때에 쓴 제12번 c단조 이후의 4곡이 내용도 충실하고 그의 성숙된 음악성을 잘 보여준다. 그 중에서 이 현악 4중주 제14번 "죽음과 소녀"가 절정기에 쓰여진 걸작으로 평가 받고 있다. 그의 다른 대부분의 실내악곡이나 기악곡에서 볼 수 있듯이 현악 4중주곡에 있어서도 슈베르트는 베토벤과는 달리 심각한 사상이나 인생관보다는 다분히 낭만적인 요소가 강해서 개인적인 감상을 노래하듯 들려준다.
현악 4중주 제14번에 "죽음과 소녀"라는 부제가 붙은 이유는 제 2악장이 슈베르트 자신이 쓴 "죽음과 소녀"라는 가곡의 반주부분을 도입해 그 음울한 멜로디를 바탕으로 한 변주곡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의 가곡 "죽음과 소녀"는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 (M. Claudius)라는 시인의 시에 곡이 붙여진 것인데, 죽음에 다다른 소녀와 그녀의 생명을 거두어 가려는 죽음의 사자와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그 기본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소녀의 간절한 소망, "나는 아직 어려요. 그냥 지나가 주세요." 사자의 달콤한 대답, "나는 친구란다. 괴롭히려 온 것이 아니야. 내 팔 안에서 꿈결같이 편히 잠들 수 있단다."
슈베르트가 죽기 2년 전인 29세 때 (1826년)에 완성된 이 현악 4중주 제14번은 비교적 가벼운 분위기인 다른 대부분의 소규모 곡들과는 달리 깊이 있는 사색과 가볍지만은 않은 내용을 담고 있으며, 형식적인 구조와 전개과정에 있어서도 두드러진 성숙도를 보여 준다. 모든 악장이 단조로 쓰여 있어 그 어둡고도 슬픈 분위기를 짐작케 한다. 그중 일반적으로 2악장이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지만 강렬한 1악장이 시고니 위버가 주연한 "진실"이라는 영화에 삽입되면서 (DG 아마데우스 쿼텟 연주) 주목을 받기도 했다.
제 1악장, Allegro
애수를 띤 멜로디가 힘찬 리듬으로 생기 있게 제시된다. 제1테마가 전체를 구성하는 요소인데, 전반적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감도는 것이 하나의 특징이다.
고전적인 소나타 형식이지만 곳곳에서 슈베르트의 독창성을 엿볼 수 있다. 죽음과의 투쟁을 나타내는 1악장은 마치 베토벤의 C단조 교향곡 "운명"을 연상시키는 강한 동기로 시작되며, 이 동기는 이후에도 계속 사용되어 1악장의 성격을 지배하고 구성을 튼튼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 무렵 슈베르트는 병고와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고 자신의 작품연주가 취소되는 등 정신적으로도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의 생애와 연결시켜 혹자는 이 동기가 삶과 죽음 사이에서 번민하는 그의 "운명의 소리"라고 말하기도 한다. 제시부는 제1주제부, 제2주제부, 종결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제 1주제부를 이끌어 가는 연속된 셋잇단 음표와 강렬한 포르잔도 (forzando; fz, 세차게)는 긴박감과 초조함 그리고 절망감을 표출하고 있어 슈베르트의 삶의 투쟁을 의미하고 있다고도 한다. 제 2주제부는 대조적으로 부드럽고 아름다워 어려운 삶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찾고자 하는 낭만주의 음악가 슈베르트의 인생관이 드러나 있다. 하지만 조금씩 드러나는 첼로는 일말의 불안감을 보여 준다. 잦은 셋잇단 음표의 움직임에서 빠르고 힘찬 16분 음표로 바뀌면서 종결부로 들어간다. 제시부의 반복 후에 이어지는 전개부는 길이는 짧지만 삶과 죽음 사이의 격렬한 투쟁을 묘사하고 있고, 재현부는 앞에서 제시된 주제들을 변형시켜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마지막 코다는 마치 죽음 직전에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마지막 안간힘을 쓰는 듯 하다가 조용히 마무리된다.
제 2악장, Andante con moto
2악장은 위에서 언급한 가곡 "죽음과 소녀"의 반주를 바탕으로 한 주제와 5개의 변주 그리고 코다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적으로 어둡고 애잔한 2악장은 현악 4중주곡 "죽음과 소녀"의 작품에서 그 중심을 담당하고 있으며, 죽음과 죽음에 대한 슬픔 그리고 그것을 체념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듣는 이로 하여금 가슴 뭉클하게 하는 감동을 자아낸다.
처음 주제는 마치 장송곡처럼 느릿하며 장중하게 그 어두움이 낮게 깔리며 제시된다. 뒤이은 제 1변주에서는 잔잔한 첼로의 피치카토 위에 등장하는 여리고 울먹이는 듯한 바이올린의 선율이 심금을 울린다. 제 2변주에서는 제 1변주와는 대조적으로 바이올린이 뒤에서 16분 음표의 배경을 담당하고, 첼로가 나서서 애잔한 선율을 노래한다. 바이올린과 첼로가 서로 사이 좋게 한번씩 나서는 제1, 2변주 후 제 3변주에서는 분위기가 갑자기 힘차게 변한다. 바로 이어서 약해진 배경 위로 길고 가늘게 끊어질 듯 이어지는 애절한 바이올린. 그리고 다시 힘찬 선율과 반복.... 격렬함과 애절함이 함께 존재하는 이 변주는 양면성이 아닌 하나의 슬픔으로 연결되어 들린다. 연결된 셋잇단 음표를 조용히 엮어 가는 바이올린과 그것을 보조해 주는 나머지 세 악기들의 제 4변주 그리고 제 5변주는 앞 제 2변주의 첼로 선율의 변형이 첼로와 16분음표를 노래하는 바이올린으로 옮겨지며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격정적인 총주로 몰아 간다. 그 뒤 16분음표의 바이올린 위로 살포시 첼로가 얹혀진다. 코다에서는 바이올린과 첼로의 탄식이 느리고 길게 드리워지며 이 2악장은 끝을 맺는다.
제 3악장, Scherzo (Allegro molto) & Trio
경쾌한 멜로디와 흥분된 리듬으로 제2악장과는 대조적이다. 중간에 트리오를 가진 3단으로 된 스케르쪼이다. 모든 구조는 명쾌하고 리듬은 매혹적이다.
3악장은 스케르초 악장으로 주부와 트리오 다시 주부의 재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죽음의 춤곡을 표현한다. 스타카토와 액센트 위주의 힘찬 리듬으로 전개되는 주부는 이어서 감미롭고 서정적인 선율의 트리오에 자리를 양보한다. 다시 한번 처음의 주부가 고개를 내밀고는 3악장은 짧은 막을 내린다.
제 4악장, Presto
발랄하고 생기에 차 있어 로맨틱한 정취가 찬연한 빛을 발하고 있다. 화려함을 강조한 것은 물론 교묘한 조바꿈으로 환희의 정점에 이른다. 죽음이라든가 그에 관한 연상 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3악장의 죽음의 춤곡이 이제는 광란의 경지로 발전된다. 4악장은 주부, 중간부, 주부의 재현 , 중간부의 재현, 다시 한번 주부의 재현, 그리고 코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악장 전체가 빠르고 힘차게 진행된다. 이 4악장은 스타카토와 액센트로 숨가쁘게 노래해 나가는 주부의 주제, 그리고 포르잔도의 강한 액센트와 더불어 약간의 여유를 주는 중간부의 주제, 이 두 주제가 몇 차례 주고 받음으로써 전개된다. 중간부의 후반부에서 아주 빠른 속도로 음표를 타는 바이올린은 마치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유사한 선율과 활 놀림을 들려준다. 마지막 주부의 재현 후 코다 역시 빠르고 힘차게 그 끝을 향해 돌진함으로써 이 현악 4중주 제 14번은 종결을 고한다. http://www.goclassic.co.kr
<죽음과 소녀>
X세대로 대표되는 신세대, 그리고 자신만의 개성, 솔직한 자기주장과 포스트 모더니즘의 조류속에 살면서 강렬하고 복잡한 리듬과 랩음악을 선호하는 현대인과 그 문화. 그 화려한 감성이 당연하게 생각되기 이전엔 긴 암흑의 세계가 있었음을 우리는 알고있다. 서양의 고전음악에 있어서 작곡가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는 낭만주의, 질풍노도의 신조류가 등장하고 있던 18세기의 유럽에서 그 음악과 예술이 감성으로 꽃피기 시작한 것은 인간의 본질에 접근하고자 하는 선각자들의 노력이다.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1797 - 1828, 오스트리아) 역시 이러한 선각자들중의 하나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작곡가이다. 이른바 초기 낭만주의자의 한 사람으로 분류되는 슈베르트. 알프레드 아인쉬타인은 슈베르트를 ''음악사상 최후의 대가''라는 말로, 벤저민 브리튼은 ''그토록 암울한 시기에 그토록 빛나는 작품을 창조한 거장''이라고 언급함으로써 음악사에서 그의 위치를 잘 보여준다. 가곡의 왕, 선율의 창조자, 역사상 가장 미묘하고도 영감적인 화성의 창조자로 인정받는 이 천재의 현실은 매우 불행하였다. 너무나 뜨거운 가슴을 지녔지만 그것을 음악으로만 드러냈기에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서 버림받은 슈베르트. 그의 음악은 그의 절친한 친구들로 구성된, 슈베르티아나라 불리우던 소수의 그룹에 의해서만 이해 되었고 그 시대의 작곡가들과 청중들은 그를 외면하여 31살 이라는 젊은 나이로 단명케 하였다. 그의 사후, 차칫하면 영원히 묻혀버릴수도 있었을 그의 보석같은 음악들이 로베르트 슈만에 의하여 재발견되었고, 오늘날에 우리가 느낄수 있는 이 작곡가의 낭만성은 그의 음악에 실려서 아직도 많은 사람 들의 마음을 그 자신의 포근한 선율로 감싸준다.
대다수의 작곡가들에 있어서, 죽음이라는 개념은 그들의 주변을 떠나지 않고 있었으며, 그것이 그들의 예술에 있어서 창조의 원동력과 감성의 시발점이 되었음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모차르트의 편지에 나타나는 "나는 죽음을 친구와 같이 생각하고, 언제든지 그 친구를 맞을 준비가 되어있답니다."라 는 구절은 그의 음악이 주는 맑고 투명한 느낌을 통하여 역설적으로 받아들여지고, 베토벤의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 이후에 나타나는 불멸의 교향곡과 피아노 소나타, 말년의 현악사중주들은 이러한 심증을 더욱 굳게 하여준다. 당시 유럽 사회에 은밀하게 풍미하였던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 사상을 떠올리기 이전에, 작곡가 내부의 영혼과 창조력이 그러한 영혼의 부르짖음을 낳게 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은 슈베르트의 경우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다. 슈베르티아나의 일원이었던 프란츠 폰 쇼버의 영향으로 그 당시의 불치병인 매독에 걸려 있었던 20대의 젊은 슈베르트가 그 자신의 절망스러운 건강 과 미래 속에서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을리는 없고, 그의 참담한 심정은 레오폴드 쿠펠바이저에게 보낸 편지의 한 귀절 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 ''내 마음의 평화는 사라지고, 내 마음은 무겁다네. 다시는.... 다시는, 마음의 평화는 돌아오지 않으리...'' 이처럼 나는 매일처럼 노래할 수 있겠지. 매일밤 나는 잠자리에 들면서 다시는 깨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다음날 아침이면 다만 어제의 비참을 상기할 뿐이라 네.."
하지만 이처럼 슬픈 편지의 내용과는 어울리지않게 이 편지에는 그의 신작들에 대한 언급이 나타나고 있다.
"나는 두대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위한 현악 사중주 두곡과, 한곡의 8중주를 작곡하였다네... 그리고 다른 사중주 한곡을 계획하고 있다네. 이러한 방법으로 나는 대 교향곡을 쓰기 위한 나 자신의 길을 닦아 나갈 것이네."
이 편지에서 언급되고 있는 것이 바로 그의 현악 사중주 "죽음과 소녀", "로자문데"의 두 곡이다. 숭어 오중주와 말년의 현악 오중주를 포함한 일련의 걸작 실내악군에 속하는 두 곡의 현악 사중주는 바로 이러한 암담한 시기에 작곡되었고, 응축된 절망과 회한은 창조력으로 승화되어 숭고함과 아름다 움으로 가득찬 현악 사중주, "죽음과소녀"를 낳기에 이른다.
"죽음과 소녀"라는 현악 사중주의 이름은 그의 동명 가 곡 "죽음과 소녀(D.531)"에서 비롯된 것이다. 선율의 천재, 가곡의 왕 등의 별칭으로 불리우는 슈베르트이니만큼 그의 창조력은 당연히 가곡에 집중되었고, 가곡 "죽음과 소녀"의 선율은 다시 한번 걸러져서 그의 현악 사중주 "죽음과 소녀" 의 2악장에 나타난다. 마티아스 클라디우스의 시, 죽음과 소녀에 곡을 붙인 1817년 작곡의 이 노래는 죽음앞에 놓인 소녀와 죽음의 대화를 통하여 그 당시 슈베르트의 심경을 거울에 비친 것처럼 나타내고 있다.
소녀 : 저리로, 아 저리로. 지나가다오, 사나운 죽음이여 나는 아직 젊다. 가거라. 그리고 나를 다치지 말아다오 나를 다치지 말아다오.
죽음 : 그대, 손을 다오. 아름답고 상냥한 소녀여. 친절한 나는 그대를 해치지 않는단다. 편안한 기분으로! 나는 두려운 존재가 아니란다. 나의 품 안에 고이 잠들거라.
앞의 편지 귀절에 언급되었던 바와 같이 슈베르트는 구성력을 갖춘 교향곡을 쓰는 대 작곡가가 되고 싶어하였고, 죽기 전까지도 끝없이 음악의 구성과 대위법등의 작곡기법에 숙달되고 싶어하였다. 내면에 감추어진 죽음을 비웃듯이 끝없이 미래에의 완성을 추구하였던 슈베르트의 정신은 그 암울한 시기에도 일련의 걸작들을 양상해 내었고, 교향곡 8번 <미완성>, 교향곡 9번 , 현악 사중주 <로자문데>, <죽음과 소녀>, 마지막 3개의 피아노 소나타, 현악 오중주, 거울나그네를 작곡하여 숱한 빛을 인류의 음악사에 던져 주고, 그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려는 노력을 끝까지 다했던 것이다.
1824년에 작곡된 그의 현악 사중주, 죽음과 소녀 D.810 은 슈베르트가 죽은 후에 출판된 유작이다. 극도록 소심하였던 슈베르트는 그의 친구 프란츠 라흐너의 우회적인 한마디에 이 작품의 공개를 포기하였고, 그 결과 그의 사후 5년후 에서나 공개연주가 이루어졌다. 소심한 그의 성격으로 인하여 그 당시에 그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였고, 그가 괴테의 시에 붙인 가곡 "마왕"은 괴태로부터 형편없는 푸대접을 받을 뿐이었다. 당시의 대 작곡가가 오늘날에 잊혀지고, 그 당시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작곡가가 오늘날에 각광받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지만, 오늘날의 사람들이 슈베르트에게 보내는 찬사와 경외를 생각하여 볼때, 그리고 세상의 수많은 성악가들이 그에게 빚지고 있는 레퍼토리들을 볼 때, 슈베르트의 경우는 예외적으로 심한 것이 아닐 수 없다.
현악 사중주, 죽음과 소녀는 그 당시 현악 사중주의 전례를 받아서 알레그로의 1악장, 안단테 콘 모토의 2악장, 알레그로 몰토의 스케르쵸인 3악장, 프레스토의 4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특이한 것은 모든 악장이 단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1악장은 애수를 띈 멜로디가 힘찬 리듬으로 생기있게 제시되고,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1악장을 상기시키는 부분이 종종 나온다. 전반적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깔려있지만 자유로운 창의가 종종 눈에 뜨이며, 이것은 죽음에 대한 슈베르트 나름대로의 투쟁 방식이다. 2악장은 가곡 죽음과 소녀의 멜로디가 주제로 된, 6개의 변주와 코다로 이루어져 있다. 슈만은 이 변주곡 형식을 그때까지의 모든 음악의 범위 안에서 가장 영감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유로운 표현의지는 마지막의 코다로 수렴되는데, 모든 악기가 흔들리듯이 연주하는 주제는 허무한 꿈과 같은 여운을 남긴다. 2 악장의 느낌과는 대조적으로 경쾌한 멜로디와 흥분된 리듬으로 나타나는 3악장은 명쾌한 구도를 보여준다. 스케르쵸의 주부에서 보이는 싱코페이션은 죽음의 무도가 벌어지는 듯한 분위기여서 듣는 사람을 현혹시키기까지 한다. 4악장의 프레스토라는 빠르기는 소녀에게 남아있는 생명의 불꽃의 마지막 연소를 연상시킨다. 죽음을 위한 타란텔라 리듬의 춤이 지나간 후에 나타나는 선율은 사신의 어두운 미소를 연상케 하는 것으로, 깔려있는 조용한 그늘이 인상적이다. 글 : 송하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