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 「어머니가 가르쳐 준 노래」
본문
중에서
그리운 어머니. 이제는 어머니를 생각해도 별로 눈물이 나오지 않아요. 이제는 어머니를 생각해도 가슴이 아프거나 절실한 슬픔이
밀려오지 않습니다. 세상살이에 바빠서 어머니의 추억을 드문드문 잊어버린 탓은 아니에요.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기심으로 더러는 버리고 더러는
잊어버린 탓도 아니에요. 어머니를 이별하였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원할 때 어머니를 언제나 만날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에요. 어머니는 죽지
않았습니다. 영원히 죽지 않았고 하나의 붙박이별이 되어 항성(恒星)이 되어버렸습니다.
Violin/Arthur Grumiaux
어머니. 지상의 나그네 되어 머물러 있었을 때의 그 애틋함 그대로 언제나 나를 보호하여주세요. 당신은 내가 이 지상에서 만났던 단
하나의 소중한 분입니다... 어머니. 당신은 죽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어머니의 이름으로 내 가슴에 영원히 살아 있고 이 지상에 영원히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제일 먼저 배운 말 한마디가 '엄마'이었듯 어머니가 가르친 말, 어머니가 가르친 노래는 내 가슴에 마르지 않는
샘이 되어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Joshua Bell
......
나는
어머니의 낡은 묵주에 대해서 많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기억할 수도 없는 수많은 어린 날들에 어머니는 촛불을 켜고 앉으셔서 이 묵주알을 굴리시며
가슴을 쾅쾅 치셨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 어머니가 기도를 하실 때 나는 옆에서 자고, 책을 보고, 숙제를 하고,
라디오를 듣고, 때로는 촛불에 일렁이는 어머니의 그림자가 벽에 유령처럼 흔들리는 것을 지켜보기도 하였다. 외출할 때면 어제나 묵주가 내 오른쪽
주머니에 들어 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걷는 것이 보기에 좋은 일은 아니지만 나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묵주를 만지면서 걷는다. 묵주 알을
만지면 나는 언제나 어머니의 손과 마주잡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어머니의 손은 두터운 농부의 손이셨다. 어머니의 손은 커다란 광부의
손이셨다. 키는 땅꼬마이셨지만 손만은 거인의 손이셨다. 그것은 후천적인 노동과 수고와 길쌈의 대가였을 것이다. 묵주를 만지면 어머니의 손을
느낀다. '어디 있으세요, 어머니?' 하고 내가 찾으면 어머니는 '여기 있다.'하고 묵주로서 대답하신다." 소설가 최인호 / '어머니가 가르쳐
준 노래' 에서
빅토리아 로스 데
앙헬레스
저자
소개 최인호 : 1945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63년 단편 ‘벽구멍으로’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입선되고,
1967년 단편 ‘견습환자’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저서로는 소설집 「타인의 방」, 「잠자는 신화」, 「영가」,
「개미의 탑」, 「위대한 유산」등과, 장편소설「별들의 고향」, 「도시의 사냥꾼」, 「지구인」, 「잃어버린 왕국」, 「길 없는 길」, 「왕도의
비밀」, 「상도」등이 있다.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카톨릭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