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ethoven, Symphony No.5 in C minor Op.67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Christian Tilleman, conductor
Wiener Philharmoker
Großer Saal, Musikverein, Wien
2010.04
Christian Tilleman/Wiener Philharmoker - Beethoven, Symphony No.5 in C minor
1804년에 교향곡 3번 E플랫장조, 즉 ‘영웅 교향곡’을 발표하며 음악사에 새 장을 연 베토벤은 그 여세를 몰아 곧바로 다음 교향곡에 착수했다. 그것은 전작 이상으로 베토벤 자신의 개성이 강조된 작품으로서, 한층 절약된 소재와 극도로 치밀한 기법, 그리고 더없이 강렬한 극적 전개를 통해서 교향곡사에 또 한 번의 변혁을 일으킬 운명이었다. 이 작품이 바로 오늘날 모든 교향곡, 나아가 ‘클래식 음악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고 있는 교향곡 5번 C단조, 일명 ‘운명 교향곡’이다.
그런데 그 작업은 얼마 후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1806년, 베토벤은 어둡고 강렬한 ‘C단조 교향곡’ 대신에 한결 밝고 유려한 교향곡 4번 B플랫장조를 먼저 완성한다. 또 피아노 협주곡 4번 G장조,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등 주로 밝은 성향의 작품들을 연이어 완성시켰다. 아울러 ‘여성에 의한 구원’이라는 주제를 내포한 그의 유일한 오페라 <피델리오>의 초기 형태가 모습을 드러낸 것도 그 무렵이다. 대체 그 당시 베토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고난의 삶에 잠시 비춘 햇살
1804년, 베토벤에게 필생의 사랑이 찾아왔다. 그녀의 이름은 요제피네 폰 다임. 그녀는 원래 헝가리의 귀족인 브룬스비크 가문의 둘째 딸로, 1799년 봄부터 빈에 체류하면서 언니 테레제와 함께 베토벤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시절에 그들 자매와 베토벤은 ‘생명이 다할 때까지 지속될 마음의 우정’을 맺기도 했다. ▶19세기에 그려진 요제피네 초상화.
1799년 여름, 요제피네는 어머니의 결정에 따라 27세 연상의 요제프 다임 백작과 결혼식을 올리고 빈에 정착했으며, 이후 ‘다임 백작부인’으로서 네 명의 자식을 낳았다. 그녀는 꾸준히 피아노 레슨을 받고 때때로 집에서 음악회를 개최하면서 베토벤과의 인연을 이어 나갔는데, 한편으론 문학과 음악에 별 관심이 없는 남편 밑에서 외롭고 불행했다. 더구나 집안의 경제사정은 갈수록 악화되었고, 급기야 1804년 1월에는 남편이 병사하고 말았다. 꽃다운 20대 중반의 나이에 미망인이 되어 경제적 곤궁에다 신경쇠약에까지 시달리고 있었던 요제피네에게 위로의 손길을 뻗친 사람이 바로 베토벤이었다. 이제 우정은 연정으로 발전했고, 두 사람은 1804년 가을부터 한동안 연인 관계로 지냈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밝은 성향의 작품들이 작곡된 것이 바로 그 시기였다. 덕분에 ‘C단조 교향곡’의 완성은 무기한 연기되었는데, 아마도 요제피네와의 행복한 시간이 베토벤의 마음을 어둡고 격렬한 음악에서 밝고 온화한 음악 쪽으로 돌려놓았던 것이 아닐까? 그 시절의 작품들에 잘 나타나 있듯이, 요제피네와의 사랑은 베토벤의 고달픈 삶에 비친 가장 찬란하고 감미로운 햇살이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애초부터 오래 지속되지 못할 운명이었다. 요제피네가 귀족이었던 데 비해 베토벤은 평민이었고, 만일 베토벤과 결혼하게 되면 요제피네는 법에 따라 자신의 아이들에 대한 양육권을 상실하게 될 처지였다. 또 베토벤은 예나 지금이나 앞날이 불투명한 ‘음악가’라는 직업에 몸담고 있었고, 치명적인 청각 이상에 시달리고 있기까지 했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요제피네의 고민도 깊어졌고 베토벤의 호소는 절박해졌다. 그러나 결국 요제피네는 집안사람들의 반대에 굴복하고 만다. 1807년이 저물어 갈 즈음 그녀는 베토벤에게 결별을 선언했고, 그 후 두 사람의 사이는 소원해졌다.
베토벤을 소재로 한 영화 <불멸의 연인>의 한 장면. 청각에 이상이 있는 베토벤이 피아노 뚜껑의 울림으로 연주 상황을 체크하는 장면.
Paavo Järvi/DK Bremen - Beethoven, Symphony No.5 in C minor
Paavo Järvi, conductor
Deutsche Kammerphilharmonie Bremen
Funkhaus Kopenick, Berlin
2006.08
교향곡과 드라마
베토벤이 어둡고 투쟁적인 음악으로 복귀한 것은 요제피네와의 연애전선이 하강곡선을 그리던 무렵의 일이었다. 즉 1806년 말의 <32개의 변주곡 C단조>와 1807년 초의 <코리올란 서곡>을 거쳐, 베토벤은 마침내 ‘C단조 교향곡’을 다시 붙잡았던 것이다. 그 사이 번호가 4번에서 5번으로 밀린 새 교향곡은 1808년에 완성되었고, 같은 해 12월 22일 안 데어 빈 극장에서 베토벤 자신의 지휘로 자매작인 ‘전원 교향곡’과 함께 초연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베토벤의 가장 성공적이고 상징적인 역작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런데 때때로 이 교향곡의 표제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운명’이라는 호칭은 베토벤 자신이 붙인 것은 아니다. 엄밀히 말해서 ‘운명’은 그저 별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 별명은 베토벤의 후년에 비서 노릇을 했던 안톤 신틀러의 증언에서 유래했는데, 그가 곡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유명한 ‘4음 모티브’가 무엇을 나타내는 것이냐고 물었을 때 베토벤이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신틀러의 여러 증언이나 주장들이 후대에 와서 거짓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에 이 증언도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데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이 곡을 ‘운명 교향곡’이라고 부른다. 거기에는 편의상의 이유도 있겠지만, 아마도 이 곡이 ‘어둠과 고난을 헤치고 광명과 환희로!’라는 베토벤 고유의 모토를 다른 어떤 곡보다도 명료하게, 효과적으로 응축해서 구현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첫 악장에는 일평생 청각장애, 신분의 장벽, 정치적 격변기의 혼란 등을 겪으며 숱한 역경과 맞서 싸워야 했던 베토벤의 처절한 투쟁 상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는 듯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이것은 한 편의 교향곡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감동적인 휴먼 드라마라고 해야 할 것이다. ▶빈의 베토벤 광장에 서있는 베토벤 기념상. 아래 기단부 왼쪽에 바위에 묶인 프로메테우스가, 오른쪽에 뮤즈상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원래 이 작품이 ‘영웅 교향곡’의 바로 다음 작품으로 구상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전작이 ‘이상적 영웅 상’ 혹은 ‘이상향에 대한 동경과 의지’를 펼쳐 보인 것이라면, 이 ‘운명 교향곡’은 그 이상을 향한 인간의 투쟁과 고뇌, 그리고 궁극적 성취 과정을 형상화한 음악적 드라마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이 작품을 ‘운명’이라는 표제 아닌 표제에 묶어 둠으로써 범할 수 있는 오류 또한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잠시 시선을 돌려 보면, 이 작품이 당시 나폴레옹의 프랑스와 전쟁을 벌이고 있었던 독일-오스트리아의 민족주의 또는 애국주의와 관련되어 있다는 역사적 고찰도 존재하며, 베토벤이 즐겨 언급하던 고대 그리스-로마의 비극을 암시한다는 견해도 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한 편의 ‘교향곡’이다. 베토벤이 딛고 서있었던 ‘고전주의의 총아’이자 ‘기악음악의 꽃’으로 일컬어지는 장르를 대표하는 작품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작품에 담긴 베토벤의 정신이나 주제의식을 논하는 것에 못지않게, 그 순수한 음악적 측면을 주시해야 한다.
다시 말해, 상상을 초월하는 리듬의 응집력, 주제 재료의 경제성(‘운명의 동기’로 대변되는), 진취성과 혁신성(1악장 중간의 절묘한 오보에 카덴차, 3악장에서 콘트라베이스가 빚어내는 효과, 관악 파트에 피콜로와 콘트라파곳을 추가한 것, 피날레에서 트롬본을 등장시킨 것, 스케르초 악장의 주제를 피날레 악장에서 다시 등장시킨 것 외) 등을 두루 살펴야만 비로소 이 작품의 진정한 매력과 가치를 온전히 가늠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첫 악장에서 두드러지는 변화무쌍한 리듬 및 프레이징의 변화, 즉 ‘리듬의 역동성’이야말로 우리가 이 곡을 들을 때마다 감탄하며 압도되는 이유의 핵심일 것이다. 또한 그것은 외형적으로 고전적인 틀을 유지하고 있는 이 교향곡이 종래의 모든 규칙과 제약을 뛰어넘어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원동력이기도 하다.
Donald Runnicles/BBC Scottish SO - Beethoven, Symphony No.5 in C minor
Donald Runnicles, conductor
BBC Scottish Symphony Orchestra
Royal Albert Hall, London
Proms 2013
1악장: 알레그로 콘 브리오
C단조, 2/4박자. 첫 악장은 이른바 ‘운명의 동기’가 갑작스럽게 포르티시모로 터져 나오며 시작된다. ‘세 개의 짧은 음표와 한 개의 긴 음표’로 이루어진 이 유명한 동기는 처음에 현악기들과 클라리넷에서 음높이를 달리하여 두 번에 걸쳐 나오는데, 그 마지막의 붙임줄과 페르마타까지를 아우르는 다섯째 마디까지가 이 악장의 제1주제이다. 이후 ‘운명의 동기’는 열띤 흐름 속에서 꾸준히 반복⋅변형⋅확장되면서 곡 전체를 지배하게 된다. 호른 신호와 함께 시작되는 제2주제는 제1바이올린에서 부드럽게 흘러나오는데, 리듬적인 속성이 강조된 제1주제와는 달리 다분히 선율적이다. ▶카를로스 클라이버 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 음반(DG).
이 악장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투쟁적인 열기’로 요약될 수 있겠지만, 사실 이 긴박한 드라마에는 꽤나 다양한 장면들이 밀집되어 있다. 즉 투쟁의 강렬함 외에도(그 투쟁의 주인공으로 상정될 수 있는) 영웅의 늠름함과 유연함, 그리고 다소 때 이른 환희의 쾌활함까지도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것은 '운명의 동기'의 가공할 마력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며, 결국 비극적인 파국과 패배 속에서 막을 내리는 것처럼 보인다.
2악장: 안단테 콘 모토
A플랫장조, 3/8박자. 격렬한 전장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는 듯한 이 느린악장은 두 개의 주제에 기초한 변주곡 형식을 취하고 있다. 첼로와 비올라로 제시되는 제1주제는 느긋하고도 리드미컬하게 흐르며, 클라리넷과 파곳으로 제시되는 제2주제는 우아한 춤 또는 행진의 느낌을 자아낸다. 이후 이 주제들은 때로는 장대하거나 당당하게, 때로는 유려하거나 소박하게 모습을 바꾸면서 다채롭게 변주되어 나간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우리는 휴식과 위안, 사색과 명상 등 실로 다양한 감정과 이미지들을 경험하게 된다.
3악장: 알레그로
C단조, 3/4박자. 다시 전장으로 복귀한 듯한 스케르초 악장이다. 저현부에서 음산하게 솟아오르는 주제로 시작되고, 이어서 트럼펫이 ‘운명의 동기’의 변형을 장렬하게 연주하며 다시금 투쟁의 분위기를 곧추세운다. 중간의 트리오로 들어가면 급속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첼로와 베이스에서 출발하여 점차 밝아지는 푸가토가 등장하는데, 베를리오즈는 이 부분을 ‘코끼리 춤’이라고 부른 바 있다. 이후 다시 처음의 주제가 나오는데, 이번에는 어딘지 기묘한 풍자 또는 해학의 기운을 띠고 있다.
혹자는 이 스케르초가 마무리되고 다음 악장으로 넘어가기 전에 나오는 조용한 이행부가 이 교향곡의 진정한 절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긴장감과 신비감을 함께 머금은 이 이행부는 실로 경이로운 것이어서, 베를리오즈는 그 뒤에 이어지는 부분에서 그 수준을 능가하기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고, 같은 맥락에서 슈포어는 마지막 악장을 ‘무의미한 바벨탑’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4악장: 알레그로
C장조, 4/4박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부신 팡파르와 함께 시작되는 피날레 악장은 우리에게 언제나 벅찬 감흥을 안겨준다. 음악이 찬란한 C장조로 전환된 가운데 먼저 금관이 이끄는 투티로 ‘승리의 노래’라고 할 수 있는 제1주제가 힘차게 부각되고, 바이올린에서 흘러나오는 제2주제는 마치 흥겨운 춤을 추듯 쾌활하게 펼쳐진다. 영웅은 다시금 투쟁에 임하지만 이번에는 승리에 대한 확신에 차 있고, 발전부 말미에서는 앞선 악장의 기묘한 주제가 잠시 모습을 드러내지만 이내 사라진다. 재현부 이후는 마침내 승리를 쟁취한 영웅의 개선행진곡이자 환희의 노래라고 할 수 있다.
끝으로, 이 초월적인 걸작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언젠가 베토벤은 “보다 아름다운 것을 위해서라면 파괴하지 못할 규칙이란 없다.”라는 말을 남긴 바 있다. 낭만주의 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슬로건으로 통용되기도 했던 이 발언은, 그러나 과도한 일탈이나 방종을 의미하지 않는다. 베토벤의 파괴는 고리타분하고 정체된 낡은 질서를 허물고 보다 참신하고 역동적인 새 질서를 창출하기 위한 것이었다. 낭만적인 동시에 고전적이고, 고전적인 동시에 낭만적인 ‘운명 교향곡’은 그에 관한 가장 뜨겁고 힘찬 웅변이라 하겠다.
추천음반
1. 카를로스 클라이버(지휘)/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DG
2.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지휘)/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DG
3. 존 엘리어트 가디너(지휘)/혁명과 낭만의 오케스트라. SDG *시대악기 연주
4. 파보 예르비(지휘)/브레멘 도이치 캄머필하모니. RCA or Sony/DVD *절충식 연주
5. 마리스 얀손스(지휘)/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Arthaus/DVD *영상물
6.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지휘)/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DG, Audite 외 *모노 녹음
글 황장원(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 음악 감상실 ‘무지크바움’ 실장과 한국바그너협회 사무간사를 역임하였다. 무지크바움, 부천필 아카데미, 성남아트센터, 풍월당에서 클래식음악 교양강좌를 맡고 있다. <객석>, <스테레오뮤직>, <그라모폰>, <라무지카> 등에 칼럼을 기고했고 현재 서울시향 프로그램 노트를 담당하고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클래식>명곡 명연주 2013.12.06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66&contents_id=42836
Beethoven, Piano Concerto No.5 'Emperor'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Krystian Zimerman, piano
Leonard Bernstein, conductor
Wiener Philharmoniker
Grosser Saal, Musikverein, Wien
1989.09
Krystian Zimerman/Leonard Bernstein/WPh - Beethoven, Piano Concerto No.5
1809년 초, 베토벤의 생활은 비로소 든든한 반석 위에 올라선 것처럼 보였다. 일단 3월 1일부터 ‘평생 연금’을 받기 시작했는데, 세 명의 젊은 고위 귀족, 로브코비츠 공작, 킨스키 공작, 루돌프 대공이 그에게 매년 4천 플로린이라는 거금을 지급하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다만 베토벤이 ‘빈 혹은 오스트리아 황실 폐하의 다른 세습 영지를 거주지로 하는 대신’이라는 조건이 붙었다. 이로써 안정적인 재정 기반을 확보한 베토벤은 들뜬 기분에 여행이나 결혼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었고, 특히 친구인 글라이헨슈타인 남작에게 편지를 보내서 자신의 신붓감을 찾아봐 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러한 희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그 해 5월, 나폴레옹 군대가 빈을 점령했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의 바이에른 침공에 대한 대응에 나선 프랑스군이 에크뮐 전투에서 오스트리아군을 격파한 다음 내친 김에 빈까지 진격해 왔고, 그러자 오스트리아의 왕족과 귀족, 부유층들은 서둘러 빈을 탈출했다. 뒤에 남은 시민들이 나름대로 도시를 수호하겠다고 나섰지만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무기가 턱없이 부족해서 극장에 있던 총과 창, 칼 등의 소품들까지 꺼내 왔지만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결국 빈은 포위된 지 일주일 만인 5월 13일 함락당하고 말았다.
장대한 스케일, 찬란한 색채
빈에 남게 된 베토벤의 상황은 절박했다. 적군의 포탄이 쏟아지는 동안에는 약해진 청력을 보호하기 위해 책상 밑으로 들어가 베개를 머리에 두르고 있어야 했다. 또 프랑스군이 도시를 점령한 뒤에도 한동안 오스트리아군의 반격으로 인한 전투가 계속되어, 그는 사방을 뒤덮은 전쟁의 참화와 진군의 북소리, 군화소리로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게다가 후원자들이 모두 도시를 떠나면서 경제적 원조가 끊기는 바람에 생계를 꾸려나가기도 힘겨웠는데 피난하기도 여의치 않았다. 가까스로 동생의 집에 의탁한 그는 여름에 쓴 한 편지에서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가장 심각한 형태의 비참함을 겪고 있었습니다. 5월 4일 이후 나는 일관성 있는 작품을 거의 하나도 쓰지 못했습니다. 기껏해야 단편 이것저것뿐입니다. (...) 바로 얼마 전에 내가 쌓아올린 생존의 기반이 불안정해졌습니다. (...) 주위에서는 온통 파괴적이고 무질서한 행태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온통 북소리, 대포소리, 모든 형태의 비인간적인 처참함뿐입니다.”
나폴레옹의 빈 함락 시기에 작곡한이 곡은 베토벤의 시대적 경험을 반영하고 있다.
베토벤의 마지막 협주곡은 바로 이러한 경험에 기초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9월에 베토벤은 자선 연주회에서 ‘영웅 교향곡’을 지휘했고, 전황이 정리되어 감에 따라 빈의 질서와 생활도 점차 정상적인 상태를 되찾아갔다. 일련의 상황은 10월 14일 쇤브룬 궁전에서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사이에 강화조약이 체결되면서 일단락되었고, 베토벤도 다시금 기지개를 켰다. 그 전란의 와중에 작곡한 것으로 알려진 피아노 협주곡 제번 E플랫장조는 베토벤 최고의 역작 가운데 하나이다.
이 작품의 장대한 스케일, 왕성한 추진력, 찬란한 색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심지어 베토벤 자신조차도 이 정도로 대담하고 격렬한 협주곡은 쓴 적이 없었다. 그는 이 곡에서 특유의 강력한 피아니즘을 그 어느 때보다 과감하게 펼쳐 보였고, 그 결과 이전의 피아노 협주곡 4번 G장조에 이어 다시 한 번 피아노 협주곡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Maurizio Pollini/Karl B?hm/WPh - Beethoven, Piano Concerto No.5
Maurizio Pollini, piano
Karl B?hm, conductor
Wiener Philharmoniker
Grosser Saal, Musikverein, Wien
1978.05
영웅적인 기개와 경이로운 조성 전개
이 협주곡은 베토벤 자신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더불어 훗날 슈만과 브람스가 계승하게 되는 ‘교향적 협주곡’(Symphonic Concerto)의 본격적인 출발점으로 간주된다. 이 곡은 분명 협주곡이지만 관현악부가 독주부 못지않은 중요성을 지니며, 두 파트가 긴밀하게 어우러져 더없이 절묘하고 역동적인 음악세계를 펼쳐 보인다. 발터 리츨러의 말을 빌리자면 “이 작품은 첫 악장과 마지막 악장에서 영웅적인 기개를 과시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경이로운 조성 전개의 극치를 보여준다. 강렬한 개시 화음들은 경이로운 조성 전개의 건물 안으로 이끄는 웅장한 입구와도 같다.” ▶클림트가 그린 <베토벤 프리즈>의 한 장면. '황제'라는 별칭은 영웅적인 기개가 돋보여 붙여졌다.
1악장: 알레그로
약 20분간에 걸친 장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첫 악장은 시작부터 특별하다. 관현악의 힘찬 화음에 이어 피아노가 곧바로 등장하여 화려하고 당당한 카덴차를 연주해 보이며 출발하는 것. 협주곡의 고전적인 틀에서 벗어난 이런 시작은 이후 슈만, 그리그, 차이코프스키 등 수많은 후배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혁신적인 개시부에 이어 관현악이 강렬하고 박진감 넘치는 제1주제와 스타카토 리듬에 실려 등장한 후 유려하게 펼쳐지는 제2주제를 제시한다. 이후 피아노가 다시 등장하고 음악은 때로는 충만한 열기와 긴장감 속에서 강력하게, 때로는 섬세하고 유연하면서도 멋스럽게 진행된다. 이 악장은 두 차례의 장쾌한 클라이맥스에 도달한 후 힘차게 마무리된다. 여기서 또 한 가지 특별한 점은 통상 재현부와 종결부 사이에 놓이는 독주자 임의의 카덴차가 허용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부분에 관해서 베토벤은 ‘카덴차는 필요 없음. 그대로 계속해서 연주할 것’이라고 지시하는 대신 카덴차에 상당하는 독주부를 직접 채워 넣었다. 즉, 자신이 의도한 흐름이 독주자의 기교 과시에 의해서 단절되거나 왜곡될 위험을 차단했던 것이다. 이 역시 슈만과 브람스를 비롯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었던 부분이다.
아울러 이 악장에서는 트럼펫과 팀파니의 활약을 통해서 팡파르 풍의 울림과 행진곡 풍 리듬이 유난히 부각된다. 또한 전편의 치열하고 박진감 넘치는 흐름은 다분히 전투적이다. 그래서인지 알프레드 아인슈타인은 이 협주곡을 ‘군대 개념의 변증론’이라고 불렀는데, 혹시 베토벤은 이 곡에서 나폴레옹 군대, 혹은 그로 상징되는 ‘적군’에 대한 자기 나름의 투쟁을 전개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폴레옹이 빈을 점령했던 시절, 베토벤은 프랑스군 장교와 마주친 자리에서 주먹을 불끈 쥐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내가 대위법만큼 병법에 정통했더라면 당신들을 가만두지 않았을 텐데...” 도처에서 포탄이 터지는 듯한 장면마저 연출하는 이 곡을 들으며 (물론 비유적인 견지에서) 관현악을 병사들로, 피아노를 그들을 이끄는 장수로 상정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2악장: 아다지오 운 포코 모소
앞선 악장과 사뭇 대조적인 완서악장이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분위기, 온화하게 이어지는 흐름, 그리고 그 위에 신중하게 얹히는 독주 피아노의 선율. 이 명상적인 악장에는 숭고하고 성스러운 기운마저 서려 있다. 베토벤의 제자 체르니에 따르면 찬미가 풍의 주제는 오스트리아의 순례의 노래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나폴레옹이 빈에서 물러간 얼마 후인 11월 22일에 베토벤이 라이프치히의 출판업자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다.
“격렬한 파괴,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고난을 겪은 뒤에 우리는 약간의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나는 몇 주 연속해서 작업했지만 불멸성보다는 죽음을 위한 작업으로 여겨집니다. (...) 이 죽어버린 평화에 대해 당신은 뭐라고 하겠습니까? 나는 이 시대에 더 이상의 안정을 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확실성은 우연한 기회뿐입니다.”
하지만 베토벤은 다시 한 번 절망을 딛고 일어섰다. 이 악장은 그 극복의 통로가 아니었을까? 여기서 그는 반추하고, 기도하고, 음미한다. 그리고 새 희망을 꿈꾼다. 그의 후기 음악에 나타나는 영적인 차원의 환상적인 음률이 이미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이 악장은 베토벤이 남긴 가장 심오하고 감동적인 음악 가운데 하나이다.
3악장: 론도. 알레그로
앞선 악장의 끝부분에서 중단 없이 이어지는 이 악장에서 음악은 다시금 첫 악장의 기세와 분위기로 복귀한다. 이 ‘승리’를 향한 행진곡에서, 춤곡 풍의 주제는 마치 곡예를 펼치는 듯하며, 피아노와 관현악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술래잡기를 하는 듯하다. 협주곡 고유의 경쟁의 묘미와 돌파의 스릴을 만끽할 수 있는 박진감 만점의 멋진 피날레이다.
자크 다비드의 <나폴레옹의 대관식>. 610x931cm, 1807
흔히 이 곡의 제목처럼 통용되는 ‘황제’라는 별명은 정작 베토벤 자신과는 별 관련이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베토벤이 한때 존경하던 나폴레옹이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서 격노하여 ‘영웅 교향곡’의 원래 표지를 찢어버렸다는 일화를 떠올리자면, 베토벤의 가장 돋보이는 걸작 중 하나에 '황제'라는 별명을 붙이는 것은 심히 불경스러운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별명을 누가 붙였는지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설에는 크라머라는 영국의 출판업자가 거론된다. 그는 이 작품이야말로 모든 피아노 협주곡들 가운데 황제의 자리에 놓일 만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도 꽤나 그럴듯한 발상 아닌가? 더구나 젊은 시절에는 혈기왕성했던 베토벤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차 보수적인 성향으로 변해 갔으며 한때 황실 악장의 직함을 원하기도 했었다는 사실을 돌아보면, 굳이 거부할 필요도 없는 일 아닌가 싶다.
추천음반
다른 어떤 곡보다도 이 곡에 있어서만큼은 근래의 음반들보다 왕년의 거장들이 남긴 음반들이 먼저 떠오른다. 모노 시절의 명반으로는 역시 에트빈 피셔를 가장 먼저 거론해야 할 것이고, 이후에도 빌헬름 박하우스, 빌헬름 켐프, 루돌프 제르킨, 클라우디오 아라우, 프리드리히 굴다, 알프레드 브렌델, 에밀 길렐스, 레온 플라이셔, 아르투로 미켈란젤리 등등이 남긴 기라성 같은 명연들이 즐비하다.
그 중에서 몇 가지만 추려낸다는 건 전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 후대의 음반들 중에서 피아노와 관현악의 조화, 독주 스타일의 다양성, 그리고 음질적인 측면 등을 고려하여 입문자들에게 우선적으로 권할 만하다고 생각되는 음반들로 마우리치오 폴리니, 크리스티안 치머만, 머레이 페라이어 등이 있다.
글 황장원(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 음악 감상실 ‘무지크바움’ 실장과 한국바그너협회 사무간사를 역임하였다. 무지크바움, 부천필 아카데미, 성남아트센터, 풍월당에서 클래식음악 교양강좌를 맡고 있다. <객석>, <스테레오뮤직>, <그라모폰>, <라무지카> 등에 칼럼을 기고했고 현재 서울시향 프로그램 노트를 담당하고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클래식>명곡 명연주 2011.03.30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66&contents_id=4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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