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클래식 2013년)

2013 서울시향/정명훈과 카바코스/2013.8.30.금/예술의 전당

나베가 2013. 8. 30. 00:30

정명훈과 카바코스 

 

 

그리스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가 서울시향 무대에 복귀합니다. 2007년 브람스 협주곡 협연을 통해 잊지 못할 무대를 선사한 카바코스는 낭만주의 협주곡의 대표작인 멘델스존을 협연합니다. 정명훈 예술감독은 큰 애착을 가지고 있는 말러의 마지막 교향곡 9번을 통해 깊은 감동을 전달합니다.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Mendelssohn, Violin Concerto
말러 교향곡 9번
Mahler, Symphony No. 9
 

 

Myung-Whun Chung지휘자 

 

세계 정상의 지휘자 정명훈은 1974년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제5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피아노 부문 준우승을 차지하며 국제무대에 데뷔했다. 뉴욕 매네스 음대와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공부한 그는 1978년 거장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가 상임지휘자로 재직하던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부지휘자로 새로운 음악인생을 시작한다. 

이후 정명훈은 1984년 독일 자르브뤼켄 방송교향악단 상임지휘자(~1990)로서 마에스트로의 길을 걷게 된다. 오페라 지휘에도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그는 1986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시몬 보카네그라>로 데뷔한 이후 1989년부터 1992년까지 피렌체 테아트로 코뮤날레의 수석객원지휘자를 역임하고, 1989년부터 1994년까지 파리 오페라 바스티유의 음악감독을 지냈다.

정명훈은 그동안 베를린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 로열 콘서트헤보우, 런던 심포니,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뉴욕 필하모닉, 시카고 심포니,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등 세계 최정상의 교향악단을 지휘했으며, 뉴욕 메트로폴리탄과 파리 바스티유를 비롯한  전 세계 오페라 극장에서 오페라를 지휘했다.

1990년부터 세계적인 음반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DG)의 전속 아티스트로서 20여 장의 음반을 레코딩하며 음반상을 휩쓸었으며, 특히, <사중주를 위한 협주곡>을 그에게 헌정하기까지 한 메시앙의 음반들(<투랑갈릴라 교향곡>, <피안의 빛>, <그리스도의 승천> 등)과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 로시니의 <스타바트 마테르>,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세헤라자데>, 베르디의 <오텔로>, 쇼스타코비치의 <므첸스크의 맥베드 부인> 등은 최고의 음반으로 평가받고 있다. 

1988년 이탈리아 비평가들이 선정한 ‘아비아티 상’과 이듬해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상‘을 받았으며, 1991년 프랑스 극장 및 비평가 협회의 ’올해의 아티스트 상‘, 1992년 프랑스 정부의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1995년 프랑스에서 ’브루노 발터 상‘과, 프랑스 음악인들이 선정하는 ’음악의 승리상‘에서 최고의 지휘자상을 포함 3개 부문을 석권한 데 이어, 2003년에 다시 이 상을 수상했다. 

일본에서는 1995년 영국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가진 일본 데뷔 공연으로 “올해 최고의 연주회”에 선정된 이래, 이듬해 런던 심포니 공연 역시 최고의 공연으로 기록되었으며, 2001년 도쿄 필하모닉의 특별예술고문 취임 연주회 등 열광적인 찬사와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국내에서 1995년 유네스코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바 있는 정명훈은 음악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정부가 수여하는 최고 문화훈장인 ‘금관 훈장’을 받았고, 1996년 한국 명예 문화대사로 임명되어 활동한 바 있다. 2002년 국내 방송사에서 실시한 문화예술부문 전문가 대상 설문조사에서 음악분야 최고의 대표예술인으로 선정되었다.

프랑스 <르 몽드>지가 ‘영적인 지휘자’라고 극찬한 마에스트로 정명훈은 1997년 아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창단하여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를 맡았고, 같은 해 가을부터 2005년까지 이탈리아 산타 체칠리아 아카데미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를 역임했다. 2000년 5월부터 프랑스의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의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 2001년 4월부터 일본 도쿄 필하모닉의 특별예술고문을 맡고 있으며, 재단법인 서울시립교향악단에서 2005년 예술고문으로, 2006년부터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Leonidas Kavakos바이올린

 

레오니다스 카바코스는 최고 수준의 비르투오시티, 뛰어난 음악성, 연주의 완전함 등으로 인해 높은 경지에 올라있는 바이올리니스트이다. 그는 이미 십대 시절인 1985년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 우승하였고, 3년후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우승하였다.

빈 필하모닉, 베를린 필하모닉,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런던 심포니, 보스턴 심포니,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등 세계 최고의 교향악단과 협연하였으며,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빈 필하모닉, 로열 콘세르트헤바우의 투어 협연자로 활동하였고, 2012-13 시즌에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상주 아티스트이자 런던 심포니의 아티스트 포트레이트로 선정되었다.

카바코스의 레퍼토리는 방대하며, 주특기인 19세기와 20세기 협주곡에 더해 바흐와 모차르트 해석, 뒤티외와 하르트만과 같은 현대작품의 해석으로도 명성을 얻고 있다.

실내악 연주자이자 독주자로서, 베르비에, 몽트뢰, 에든버러,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자주 출연하였다. 위그모어홀에서 이매뉴얼 액스와 베토벤 소나타 사이클을 진행하였으며, 이는 2012-13 시즌 무지크페라인으로 옮겨진다. 카바코스는 엔리코 파체와 함께 카네기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홍콩 페스티벌,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바우, 밀라노, 피렌체 등에서 연주한다. 그의 실내악 파트너로는 고티에 카퓌송, 르노 카퓌송, 앙투안 타메스티, 나탈리아 구트만, 니콜러스 앤절리치, 니콜라이 루간스키, 엘리자베스 레온스카야, 유자 왕 등이 있다.

지휘자로서도 이미 뛰어난 재능과 음악성을 보여주고 있는데, 최근에 그는 보스턴 심포니와 애틀랜타 심포니를 지휘한 바 있다. "카바코스는 베토벤 교향곡 4번을 암보로 지휘봉 없이 지휘하였다. 그는 온 몸으로 유연성을 가지고 선율을 만들어내었으며, 오케스트라는 뛰어난 연주로 이에 응답했다." (보스턴 뮤직 인텔리젠서, 2012. 3)

객원 지휘자로서 그는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로테르담 필하모닉, 베를린 도이체 심포니, 라 스칼라 필하모닉, 산타 체칠리아 아카데미, 스톡홀름 필하모닉, 예테보리 심포니, RAI 심포니 등을 지휘하였다.

그는 데카와 전속 계약을 맺고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를 출시할 예정이다. 그는 이미 수많은 음반으로 호평받아왔다. 소니에서 출시한 멘델스존 협주곡은 2009년 최고의 협주곡으로 ECHO 클래식상을 수상하였고, 카메라타 잘츠부르크와 함께 한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은 <슈피겔>이 꼽은 30장의 클래식 명반에 선정되었다.

이미 오래전인 1991년 시벨리우스 협주곡 음반으로 그는 그라모폰상을 수상한 그는 ECM 레이블로 에네스쿠와 라벨의 소나타와 바흐와 스트라빈스키 작품 등을 녹음한 바 있따. 그는 1724년 스트라디바리우스 '애버개브니'로 연주한다.



Mendelssohn, Violin Concerto in E Minor, Op. 64

Violin Concerto in E Minor, Op. 64: I. Allegro molto appassionato


 

 

1st Mov. Allegro molto appassionato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마단조 Op.64

Felix Mendelssohn 1809-1847

Sarah Jang vs Maxim Vengerov

and Anne Sophie Mutter

 

서주부터 부드럽고도 우아한 곡선같이 바이올린이 연주되면서 화려한 선율에 의한 순수한 아름다움과 발랄한 정서가 가미되어 그윽한 향기를 내뿜습니다. 이 곡이 최고의 명곡으로 인정 받는 이유가 바로 1악장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작곡 당시의 멘델스존의 악상 표시에는 정열적인 연주로 요구되어 있었다고 하는데요, 현재는 우리들이 익히 감상하고 있는 대로 실제로는 우아한 분위기로 연주되고 있기도 합니다.

현악기의 화음을 타고 먼저 제2소절부터 독주 바이올린이 제1주제인 일말의 우수가 감도는 멜로디를 연주합니다. 이에 이어서 독주악기가 화려한 기교를 과시하면 전 관현악이 다시 힘차게 제1주제를 노래합니다. 우아한 느낌의 제2주제는 오보에와 바이올린의 화음을 따라 목관악기(클라리넷과 플루우트)의 앙상블로 아주 여리게 이어집니다.

전개부에서는 주로 제 1주제가 활약하며, 멘델스존 자작의 카덴짜가 연주되는데, 이와같이 전개부와 재현부 사이에 카덴짜를 삽입한 것은 그 당시로서는 매우 희귀한 일이었다고 합니다. 카덴짜에 뒤따르는 재현부에서는 독주 바이올린이 아르페지오를 연주하는 동안 플루우트와 클라리넷의 선율을 타고 제1주제가 다시 나타납닌다. 이는 최약주(pp)에서 전 관현악의 최강주(ff)로 이어지고 이어 코다로 들어갑니다. 이 코다는 매우 긴데, 특히 여기에서는 독주 바이올린이 종횡무진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며 템포도 점점 빨라져서 정열적인 끝맺음을 하고 있습니다.

 

Kyung Hwa Chung

Montreal Symphony Orchestra

dir. Charles Dutoit

Maxim Vengerov

 

 

 

Sarah Jang

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dir. Mariss Jansons

Anne Sophie Mutter

 

Anne Sophie Mutter

Berliner Philharmonic Orchestra

Herbert von Karajan : Conductor

 

Hilary Hahn

Oslo Philharmonic Orchestra

dir. Hugh Wolff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마단조 Op.64


 

Berliner Philharmonic Orchestra - Sarah Jang

 

I악장 Allegro appassionato


Johanna Martzy, violin
Paul Kletzki
Philharmonia Orch
2악장 Andante


Anne Sophie Mutter, Violin
Herbert von Karajan, cond
Berliner Philharmoniker
3악장 Allegro molto vivace

 

음악의 역사는 작곡가들의 역사이고, 그 역사의 명단은 대부분 천재들이 차지하고 있다. 멘델스존은 그 천재들 중에서 제일 행복한 천재였던 것 같다.

천재들이 보통 어렵게 산 것에 비하면, 멘델스존은 부잣집에서 태어나서 자신의 재능을 다 뽐내고, 인정 받고, 이쁜 부인과 다섯이나 되는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던 보기 드문 천재 였다. 그래서 그런지 자신의 천재성을 짜내고 짜내여 먹고 살 수 있었던모차르트나 슈베르트, 쇼팽 같은 전형적인 천재들 보다는 남겨 놓은 것이 적은 편이다. 하지만 혹자는 멘델스존이 이 바이올린 협주곡 한 곡만 작곡하고 죽었더라도 음악사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을 것이라고 말한다.

멘델스존이 6년전에 시작해서 이 바이올린 협주곡을 완성했던 1844년, 그는 그 당시 음악계의 정상의 위치를 지키고 있었다. 그는 서른 다섯의 나이에 라이프치히 음악원의 설립자이자 원장으로서의 바쁜 음악계 활동을 잠시 접어두고 프랑크푸르트 근처의 조덴(Soden)이라는 온천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중, 이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했다.

이 바이올린 협주곡은 그의 작품 가운데서 가장 기품있고 독창적인 작품으로 여겨진다. 4대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꼽히는 베토벤, 멘델스존, 브람스, 차이코프스키의 네 작품 가운데 다른 작품은 D단조인데 멘델스존의 것은 유일하게 E단조를 취하고 있다. 흔히 멘델스존을 바이올린 협주곡의 여왕이라 부르고, 베토벤의 곡을 왕이라 부른다. 여왕이라는 말이 꽤나 잘 어울리는데, 그것은 이 작품에 가득 차있는 낭만성과 부드럽고 귀에 잘 들어오는 멜로디 때문일 것이다. 귀에 쏙 들어오는 달콤하고, 꽃향기나는 1악장 처음 부분을 들어보라! 어느 계절에 그 음악을 듣든 우리는 곧바로 4월의 봄날로 직행하게 된다. 또 3악장에서 줄기찬 대화 사이에서 바이올린 줄을 손으로 튕기는 피치카토의 느낌 또한 멋지다.

구조적으로 보았을 때도 이 작품은 이전의 모차르트, 베토벤, 슈포어, 그리고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들과는 다른 독자적인 방향이 보인다. 비록 멘델스존의 작품이 고전적인 틀을 존중하고 있지만 확실히 독특한 시도가 여러 군데 보인다. 예를 들어, 곡의 처음 부분에 긴 오케스트라의 서주에 뒤이어 바이올린 독주가 이어지는 전형적인 방식과는 달리 이 곡은 단지 두박자만 기다리다가 바로 바이올린이 나오기 시작한다. 또한 협주곡에 포함시킨 카덴차도 기교 과시용이 아니라 협주곡의 구조를 통합하는 부분으로서 필수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확실히 눈에 보이는 것은, 세 악장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인데, 1악장에서 2악장으로 갈 때는 바순이 한 곳에서 지속된 음표를 잡고 있고, 2악장에서 3악장으로 갈 때는 간결한 인터메초가 있다는 것이다.

이 아름다운 협주곡의 매력은 들으면 들으수록 다른 느낌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아름답다는 것에서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그리고 물론 다른 음악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들을 때의 내 상태에 따라 느낌이 전혀 달라진다. 화창한 봄날에 독주자와 오케스트라가 한 마디씩 주고 받으면 대화하는 듣기 좋은 분위기는 건강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내 감정의 농도가 좀 진해질 때면, 예를 들어, 무언가 실망할 일이 생겼다든지, 아니면 맥주 두 잔 마신 덕분에 누군가가 보고 싶어질 때라든지, 피곤함과 스트레스에 지친 몸을 질질 끌고 기숙사 침대에 누웠다든지 할 때 느낌은 사뭇 다르다. 그 아름다움에 대한 질투 때문일까, 아니면 아름다움 그 자체의 퇴폐성이 있기 때문일까. 특히 2,3악장 사이의 인터메초 첫부분에서 그렇다.

어쨌든 이 바이올린 협주곡의 퀸카와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것은 무척 행복한 일이다. 곡이 그리 길지도 않을 뿐더러, 하나 지루할 것도 없다. 꽃향기와 달콤함에 더하여, 멘델스존의 이 협주곡에서 '퀸카' 생각이 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많은 명연주가 여성 바이올리니스트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하이페츠나 밀스타인의 명연주도 있지만, 정경화나 안네-조피 무터나 힐러리 한의 연주가 이 곡과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얼굴도 예쁜 이 천재 연주자들의 연주가 멘델스존의 '이브'다움을 잘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무시무시한 여왕님보다 젊고 아리따운 공주같은 여왕을 원한다면, 하이페츠의 연주보다 힐러리 한의 연주가 좋을 듯 싶다. 역시 완벽한 테크닉에 당돌하고 분명한 연주를 보여주는 힐러리 한을 선택한다면 후회는 없을 것이다. 투명한 얼음처럼 맑은 톤과 야무지고 단단한 음표들, 어려운 부분에서도 밀리거나 늦추지 않는 적극적이고 시원한 태도가 앨범 재킷 사진과 잘 어울린다. 최영훈씀

 

◈ 카덴짜(cadenza) ◈

원래는 카덴짜 디 브라부라(cadenza di bravura), 카덴짜 피오리투라(cadenza ioritura)가 줄어든 것이다. 악곡의 끝 앞에 삽입되는 연주하기가 매우 곤란하고 자유로운 무반주의 부분을 가리킨다. 기악곡에서는 콘체르토의 제1악장 밑 끝악장에 두어지며 독창곡에서는 콜로라 투라의 아리아에 두어지는 것이 대표적이다.

클래식에 쓰이는 이탈리아어로 록에서 애드 리브나, 재즈에서 임프로비제이션에 해당하는 말로 '즉흥연주'를 뜻한다.

클래식에서는 보통 즉흥 연주를 하면 건방지다거나 무식하다고 치부되지만, 아주 예외적으로 곡의 끝 부분 같은 데에 연주자 맘대로 연주할 수 있게 해주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그 부분을 카덴짜라고 한다.

협주곡에는 '카덴짜(cadenza)' 부분이 삽입된다. 카덴짜란 협주곡 각 악장 끝 부분에서 관현악은 멈추고 독주악기가 혼자 가장 화려한 기교를 과시하는 부분이다.

원래는 독주자가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부분이었다. 앞에서 연주 되어온 제1주제, 제2주제를 장식도 화려하게 고난도로 멋지게 변주하는 것이다.

작곡가도 그 부분을 여백으로 남겨 독주자에게 일임하는 형식을 취했다. 후에는 카덴짜 부분까지도 작곡가가 직접 작곡하는 협주곡도 더러 생겼다.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그 좋은 보기가 되겠다. 또, 카덴짜를 악장 머리에 놓고 작곡가가 직접 작곡하는 경우도 있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제5번(일명 황제)>가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작곡가가 독주자에게 일임해 공백으로 남겨두는 카덴짜를 '자유카덴짜'라고 한다. 지금은 대부분의 독주자들이 과거 유명한 연주가들이 작곡한 카덴짜를 차용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있다. 예를 들면 정경화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1악장에서 금세기 전반부의 거장 크라이슬러가 작곡한 카덴짜를 쓴다. 워낙 잘된 카덴짜인 까닭에 다른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들도 많이 애용한다.

독주자가 다른 똑같은 협주곡 디스크를 몇 장 가지고 있는 사람이 카덴짜 부분에 와서 서로 틀리기 때문에 갸우뚱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자유 카덴짜에 대한 상식이 없는데서 비롯되는 의문이라고 하겠다. 동일 협주곡에서는 카덴짜를 비교해 보는 재미 또한 괜찮다.

멘델스존은 낭만주의 작곡가답게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몇 가지 새로운 시도를 했다. 우선 카덴짜도 자신이 직접 작곡했다(따라서 누가 연주하는 디스크를 들어도 똑같다). 또 주제 제시가 관현악으로만 연주되지 않고 곡이 시작하자마자 약 2초 후에 벌써 독주 바이올린도 시작된다. 3개의 악장을 인터벌 없이 계속 연주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말러, 교향곡 9번 '이별과 죽음'

Mahler Symphony no.9 D major

Gustav Mahler 1860-1911

 

Mahler Symphony No 9 Seoul Philharmonic Myung-Whun Chung



 

Concert of Concert of 2011 International Mahler Festival

in Leipzig at Gewandhaus Leipzig on 28th May 2011.
Gustav Mahler (1860-1911) : Symphony No. 9

Wiener Philharmoniker / Daniele Gatti

 

 

- '죽음과 정화'를 다룬 대작이며 1910년 4월 완성 1912년 6월 부르노 발터에 의해 초연 -

 

말러의 [교향곡 제9번]은 죽음에 관한 음악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자필악보에 남아있는 수수께끼 같은 메모 덕분이다.

1악장 267마디에는 “오! 젊음이여! 사라졌구나! 오 사랑이여!

가버렸구나!(O Jugendzeit! Entschwundene! O Liebe! Verwehte!”라는

글귀가 적혀 있고, 독주 바이올린의 멜로디가 나오는 434마디에는

“안녕! 안녕!(Leb'wol! Leb' wol!)”이라 적혀있다.

 

이별을 암시하는 말러의 메모로 인해 후대의 여러 음악가들은

말러의 [교향곡 9번]을 ‘죽음의 교향곡’으로 해석했다.

음악학자 파울 베커는 “이 교향곡에 표제가 있다면 아마도

‘죽음이 내게 말하는 것’이 될 것”이라 말했으며, 지휘자 브루노 발터는

“이별(Der Abschied)야말로 제9번 교향곡의 제목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열광적인 말러 팬이었던 윌리엄 리터는 이 교향곡의 의미를

“죽음과 정화”로 해석하면서

“이 작품에서 죽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가장 완벽한 표현과

그 감미로움을 발견하게 된다”고 말했다.

 

죽음에 대한 완벽한 표현과 그 감미로움
실제로 말러가 그의 [교향곡 제9번]의 작곡에 착수한

1909년 당시 그는 심각한 심장병으로 고통 받으며 그 자신의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아마도 당시의 말러는 베토벤과 브루크너, 드보르작 등, 몇몇 위대한 작곡가들이 9번째 교향곡을 작곡한 후

세상을 떠난 것을 의식하며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던 것 같다.

그는 앞서 작곡한 교향곡에 ‘제9번’이란 번호를 붙이지 않고 ‘대지의 노래’라는 타이틀로 대신해 ‘9’라는 불길한 수를 의도적으로 회피하기도 했다.

그러나 새로운 교향곡 작곡에 착수하면서 그는 이 불길한 숫자를

더 이상 피할 수 없었다.

 

죽음에 대한 예감은 말러의 [교향곡 9번] 곳곳에 배어있다.

1악장에는 죽음에 대한 체념과 이별의 느낌을 암시하는

제1주제와 죽음에 대한 필사의 저항을 담은

제2주제가 극명하게 대비된다. 또한 부정맥을 나타내는 독특한 리듬 형이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강렬하게 연주되며 공포의 그림자를 드리우기도 한다.

2악장에선 저승사자의 깡깡이 소리가 들려오는가 하면 3악장에는

삶을 조롱하듯 난폭한 푸가가 펼쳐진다.

 

4악장은 느린 아다지오의 찬송가 풍의 숭고한 음악으로 시작하지만

마지막에는 마치 죽어가듯 사라져간다. 이는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의

서서히 꺼져가는 종결부와 매우 유사하다.

 

이렇듯 말러 [교향곡 9번]은 몰락과 죽음의 느낌을 강하게 전달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이 작품을 새롭게 보는 이들도 있다. 음악학자 피터 브라운은

[교향곡 9번]의 메모에 나타난 ‘이별’은 ‘젊음과의 이별’이지

 ‘삶과의 이별’이 아니라는 점을 주지시키며 [교향곡 1번 ‘거인’]과의

유사성을 지적했다. 장 파울의 소설을 바탕으로 작곡된 [교향곡 1번]에는

젊은 날을 그린 활기찬 팡파르와 장례식 음악이 나타나는데,

이는 [교향곡 9번] 1악장과 유사하다.

또한 음악학자 스폰호이어는 말러의 [교향곡 9번]의 의미를 지나치게 죽음과

이별 쪽으로 몰고 가는 식의 해석은 “애매한 죽음의 신비주의”와 “지나치게

피상적이고 하찮은 형이상학”이라

비판하면서 이 교향곡이 “이별과 슬픔의 분위기가 깔려있는 작품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 작품은 거대하고 구조적이며 건축적인 힘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신음악의 첫 장을 열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말러의 [교향곡 9번]을 지나치게 죽음과 관련시킨 기존의 해석 때문에

이 교향곡이 얼마나 현대적이고 혁신적인 음악인지 간과하기 쉽다.

말러의 [교향곡 제9번]은 ‘전통적인 교향곡과의 이별’이기도 하다.

물론 그 이별은 교향곡이라는 장르 자체를 해체하거나

기존 조성 체계를 붕괴시킬 정도의 완전한 결별은 아니지만

말러의 [교향곡 9번]에서 우리는 기존의 교향곡 형식과 기법들이 서서히

부패하고 무너져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미지의 세계로 인도하는 ‘죽어가는 교향곡’


우선 1악장 도입부부터가 그렇다. 만일 선율적인 음악에 익숙한 사람이

말러의 [교향곡 제9번] 1악장의 도입부를 처음 듣는다면

매우 혼란스러울 것이다.

간단한 모티브와 음의 단편들이 그저 툭툭 던져지듯 나열되는 이 음악은

마치 점묘주의 회화와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수수께끼 같은 여섯 마디의 도입부를 지나 제2바이올린에 의해

처음으로 제시되는 D장조의 주제 역시 기묘한 느낌을 주는 건 마찬가지다.

이 주제는 F#에서 E로 하행한 후 으뜸음인 D로 결코 해결되지 않은 채

 그대로 E음에 머무르면서 강한 긴장감과 불안정한 느낌을 준다.

 

이 주제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고별’]의 주제 선율과 화성이 유사해

‘이별’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해석되고 있다.

 

2악장은 조금 느린 랜틀러(L?ndler, 오스트리아 고지대에서 추던 춤곡으로

모차르트와 베토벤, 슈베르트, 말러 등의 작품에 자주 나타남)와

빠른 왈츠가 교대되는 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전통적인 랜틀러와 왈츠의 3박자는 우스꽝스럽고 과장된

제스처로 표현되어 기존의 정형화된 춤곡 형식을 비웃는 것 같기도 하다.

특히 빠른 왈츠에서 타악기와 관악기가 거칠고 노골적으로 연주하는

 ‘쿵작작’ 리듬은 우리가 ‘왈츠’에 대해 통상적으로 갖고 있는 우아하고

가벼운 춤곡의 이미지를 산산조각 내버린다.

 

시끄럽고 야만스럽기는 3악장도 만만치 않다. ‘풍자와 희화화,

그로테스크’를 뜻하는 ‘부를레스크’(Burleske)라는 타이틀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음악은 풍자와 조소로 점철되어 있다.

 

여기에는 경음악을 연상시키는 단순한 선율과 복잡하고 정교한

푸가토(Fugato, 교향곡이나 협주곡 등 ‘푸가’라는 장르가 아닌 기악곡에서

푸가와 같은 방식으로 모방기법이 사용된 부분)가 교대로 나타나면서 마치 인생을 조롱하는 듯 과장되어 있다.

 

놀랍게도 이 악장의 후반에 현란한 대위법 속에 펼쳐지는

그 모든 조롱과 비웃음이 갑자기중단되고 더없이 황홀하고 아름다운

음악이 나타난다.

이때 트럼펫이 연주하는 고귀한 선율은 우리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이 황홀한 에피소드가 끝나갈 무렵에 갑자기 클라리넷이

트럼펫의 고귀한 주제를 비틀고 왜곡한다.

 

이 장면은 상당히 충격적이어서 말러의 제자이자 지휘자인 멩겔베르크는

특히 이 부분에 주목해 “사탄” 또는 “공포의 찡그림”처럼

연주하라는 지시를 첨가하기도 했다.

 

4악장에 이르면 그 모든 풍자와 비웃음은 사라지고 삶과 죽음을 받아들이고

긍정하며 정화하는 분위기가 흐른다.

여기서는 1악장에서 으뜸음으로 해결되지 않은 불완전한 형태로 제시되었던

이별의 주제가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마치 찬송가와 같이 감동적으로 연주된다.

 

그러나 종결부에 이르면 다른 악기들은 연주를 멈추고 오로지

현악기만이 남아 말러가 악보에 적어놓은 ‘죽어가듯이’(ersterbend)라는

악상 지시어를 끊어질 듯 여린 소리로 구현해낸다.

 

그리고 그 순간 갑자기 말러의 가곡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중

네 번째 곡 ‘아이들은 잠깐 외출했을 뿐이다’의 선율이 환영처럼 나타난다.

 “아이들은 우리보다 먼저 천국으로 떠났을 뿐이다.

우리도 곧 그 광명 넘치는 천국으로 아이들의 뒤를 따라가는 것이다.”

 

말러는 그의 교향곡이 죽어가는 순간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장녀 마리아를 생각했던 것일까?

어린아이의 선율은 채 마무리되지 못하고 피아니시시모(ppp)의

여리고 긴 음의 여운이 우리를 미지의 세계로 인도한다.

 

 

인생에 대한 회한과 미련, 마지막 동경과 체념
글 : 황장원(음악칼럼니스트)

연주 시간 약 90분

 말러는 이른바 ‘9번 징크스’를 유난히 의식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베토벤, 슈베르트, 브루크너, 드보르자크 등의 선배들이 ‘제9번’에서 교향곡 창작을 마감했던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였고, 훗날 쇤베르크가 남긴 말처럼 9번 교향곡을 작곡한다는 것은 곧 ‘죽음과 너무 가까워졌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던 듯하다. 그래서인지 그는 자신의 아홉 번째 교향곡에 번호 대신 ‘대지의 노래’라는 제목을 붙였다. 하지만 그 역시 다음 교향곡에는 ‘9’라는 번호를 붙이지 않을 수 없었고, 그 후 ‘제10번’을 미처 완성하지 못한 채 저 세상으로 떠나갔다.

 ‘제9번’이 마지막이 되리라는 숙명! 말러는 그 사실을 얼마나 예감하고 있었을까? 많은 이들이 그의 ‘교향곡 제9번’이 ‘죽음’과 ‘고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한다. 파울베커는 곡의 표제로 ‘죽음이 내게 말하는 것’을 제안했고, 윌리엄 리터는 곡의 의미를 ‘죽음과 정화’로 해석했다. 물론 반론도 있지만, 말러 자신이 악보의 초안에 끼적여 놓은 다음과 같은 문구들은 예의 심증을 굳히게 만든다.

 “오, 젊음이여! 사라진 것이여! 오, 사랑이여! 흩어진 것이여!” (제1악장),
 “오, 아름다움이여! 사랑이여! 안녕! 안녕! 세상이여! 안녕히!” (제4악장 종결부)

제9번의 고별인사
 말러의 마지막 완성작인 이 교향곡은 1909년 여름휴가 기간에 토블라흐에서 작곡되었다. 그 여름이 끝나갈 무렵, 말러는 브루노 발터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 소식을 이렇게 전했다. “내 가족 같은 작품들에 또 하나의 만족스러운 식구가 추가되었다네. 마치 오랫동안 혀끝에서 맴돌던 걸 비로소 말하는 기분이랄까. 아마 이 작품은 ‘교향곡 제4번’과 비슷한 위치에 놓일 걸세, 물론 둘은 완전히 다른 작품이기는 하지만, 1907년에 흔히 ‘운명의 세 타격’으로 불리는 일련의 불행한 사건들(빈 궁정 오페라 감독직 사임, 큰딸 ‘푸치’의 죽음, 심장병 진단)을 겪은 후, 말러는 지휘 활동의 근거지를 미국의 뉴욕으로 옮기고 ‘부활’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1908년 1월 1일에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메트)에 데뷔했고, 이후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베토벤의 ‘피델리오’ 등을 지휘하며 음악감독의 직분을 이행했다. 그 해 여름에는 유럽으로 돌아와 남부 티롤 지방의 토블라흐에 새로 마련한 별장과 작곡 오두막에서 그간의 소회를 담은 ‘대지의 노래’를 작곡했다. 현실의 고뇌와 청춘에 대한 동경을 절절히 토로하면서도 한편으론 희미하게나마 새로운 희망을 꿈꾸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11월에 복귀한 뉴욕에서는 뜻밖의 악재가 기다리고 있었다. 메트에서 새로 채용한 지휘자 토스카니니와 공연 레퍼토리를 놓고 신경전을 벌였고, 그 여파로 이듬해 3월에는 메트에서 물러났다. 대신 그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맡아 콘서트 지휘자로서 새로운 모험을 감행했다. 막강한 권한을 쥐고서 악단에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했고, 의욕적인 프로그램으로 뉴욕 음악계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그런 그의 예술을 향한 의지와 인생에 대한 애착은 그 어느 때보다 왕성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해 여름, 다시 찾은 토블라흐에서 친구와 산책하며 노을 지는 풍경을 바라보던 그는 문득 한숨을 쉬며 “삶이란 덧없는 것”이라고 뇌까렸다.

 사실 미국에서도 ‘운명의 세 타격’으로 인한 상처는 계속 그를 괴롭혔다. 푸치에 대한 아픈 기억을 떨치기 위해 더욱 일에 몰두했지만, 현저히 떨어진 체력은 어쩔 수 없는 한계로 다가왔다. 아마도 그는 늘 의식해왔던 죽음의 그림자가 이제는 등 뒤에 성큼 다가서 있음을 직감하고 있었으리라. 그리고 ‘교향곡 제9번’은 그가 이 세상을 향해 남긴 ‘고별사’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는 여기에 너무도 사랑했던 인생에 대한 회한과 미련을 토로해 놓았고, 그토록 갈망했던 이상을 향한 마지막 동경과 체념을 담아 놓았던 것이다.

[제1악장]
 첫 악장의 구조는 소나타 형식에 기초하고 있지만, 그 전개방식은 극도로 자유로워 기존의 개념을 초월한다. 그래서 알반 베르크는 이 악장에 대하여 “기존의 분석 틀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곡이며, 차라리 반복되고, 확장되고, 폭발하는 거대한 크레셴도라고 생각하는 편이 낫다”고 말하기도 했다. 먼저 6마디의 짧은 도입부가 나오는데, 여기서 첼로와 호른이 새기는 리듬, 하프가 꺼내놓는 음형, 비올라의 6연음 등은 이후 큰 역할을 하는 주요 모티브들이다. 어렵사리 말문을 여는 것처럼 들리는 이 도입부에 이어 제2바이올린이 조심스레 제1주제를 꺼내 놓는다. 그런데 그 첫머리에 나오는 두 음은 직전 작품인 ‘대지의 노래’의 마지막 장면을 장식했던 후렴구 ‘영원히(Ewig)’의 음을 이어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 ‘영원 모티브’는 다음 악장들에서 본격화되는 ‘고별 모티브’의 일부이기도 하다. 
 D장조의 제1주제는 유려하면서도 애틋한 기운을 머금고 흘러간다. 그 안에 담긴 정서는 역시 ‘대지의 노래’의 연장선상에 놓인 것으로, 인생의 ‘새 봄’을 소망하는 동경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반면 d단조의 제2주제는 어둡고 강렬한 투쟁의 기운을 내포하며 삶에 대한 열망과 이상을 향한 의지를 드러낸다. 이후 음악은 이 두 개의 주제를 바탕으로 때론 활화산처럼 격렬하게, 때론 물 흐르듯 유연하게 발전해 나간다. 하지만 그 동경과 열망, 의지는 ‘숙명’ 또는 ‘죽음’이라는 벽에 부딪히고, 결국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처절한 추락을 맛본다. 다시금 ‘장송곡’이 흐르고, 통한의 눈물을 삼키는 듯한 장면이 이어진다. 그리고 조용한 마무리 장면에서 말러는 인생을 향하여 마지막 미련과 동경의 눈길을 던진다.

[제2악장]
 말러의 음악에서 삶의 활력과 유희를 상징했던 두 민속춤곡, 랜틀러와 왈츠를 섞어놓은 이 스케르초 악장은 일종의 블랙유머이다. 첫머리에서 비올라와 바순이 새기는 C장조의 오스티나토 음계는 순진하기 그지없고 클라리넷이 꺼내놓는 ‘고별 모티브’도 장난스러운 느낌인데, 랜틀러 가락은 시골악사의 연주처럼 거칠고 촌스러우며 왈츠는 지나치게 흥분되어 우스꽝스럽다. 춤은 갈수록 속도와 열기를 더하며 거의 서커스 수준의 현기증과 광란으로 치달아간다. 그러나 중간에는 ‘영원 모티브’가 흐르며 아련한 그리움을 자아내는 장면도 삽입되어 있다. 마치 ‘가을에 술 취한 자’가 봄날을 추억하는 듯하다.

[제3악장]
 사뭇 격앙된 ‘론도-부를레스케’가 펼쳐진다. ‘부를레스케(burleske)’란 익살, 풍자, 희화화 등을 뜻한다. 말러는 자필악보에 ‘아폴론의 사도들에게’라는 헌사를 기입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비평가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여기서 그는 고도의 대위법을 구사함으로써 자신을 공격하는 비평가들에게 격렬한 항의와 신랄한 야유를 보낸다. 또 그 복잡
하고 교묘한 푸가토들 사이에는 그와 대조적인 단순한 형식의 경음악 풍 트리오를 삽입하여 조롱하는 듯한 분위기도 연출한다. 혹자는 이 악장에서 ‘말러의 자화상’을 들춰내기도 한다. 그 야단스런 외양과 상처 입은 내면의 대비, 특히 후반부에 등장하는 ‘트럼펫 에피소드’야말로 그의 진짜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 슬프도록 감미로운 가락에서는 짧지 않은 세월 고통스런 ‘지상의 삶’을 견뎌내고 치열하게 투쟁하며 끊임없이 희망과 절망, 영광과 좌절 사이를 오갔던 한 영혼의 진솔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제4악장]
 이제 음악은 고별과 정화, 그리고 평안을 향해 나아간다. 말러는 마치 차이콥스키가 ‘비창 교향곡’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 교향곡의 피날레를 ‘느린 악장’으로 장식했다. 우선 조성이 첫 악장의 D장조에서 D♭장조로 하강한다. 그리고 상승하며 시작되는 도입부에 이어, 마침내 제 모습을 갖춘 ‘고별 모티브’가 찬가풍의 칸타빌레 선율을 이끌어낸다. 유장하고 풍부한 느낌의 이 제1주제는 고별사 내지는 기도처럼 들린다. 반면 고음역과 저음역으로 갈라진 두 개의 선율이 성긴 텍스처 속에 짜여 있어 공허하고도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제2주제는 작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말해주는 듯하다. 이 두 개의 주제가 점진적으로 발전하여 마침내 정점에 도달하는데, 도입부에 나왔던 상승선율에 기대어 찬란히 비상한 후 단계적으로 하강하는 이 클라이맥스는 지상의 삶에 대한 마지막 미련과 체념을 나타내는 듯하다.
 이제 작별의 시간. 첼로가 자장가를 연주하고, 음악은 ‘아다지시모(adagissimo)’로 지시된 코다로 들어가 ‘죽어가듯이(ersterbend)’ 사라져간다. 그런데 이 종결부에서 말러는 자신의 가곡집 ‘죽은 아이들을 그리는 노래’의 네 번째 곡인 ‘아이들은 잠시 외출했을 뿐’의 마지막 대목을 환영처럼 떠올린다. “그들은 우리보다 일찍 길을 떠났을 뿐이라네. 우리도 곧 그 뒤를 따라 저 햇빛 가득한 언덕 위로 올라가겠지. 저 위에서는 아름다운 날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