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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은 고전주의의 절정이자 최초의 낭만주의자였다. 50세를 간신히 넘긴 이 단 한 사람의 작품 세계 안에서 수백 년 동안 여러 명이 달려들어도 이루지 못했던 변혁과 발전이 이루어졌다. 아직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베토벤에게서 획기적인 전환의 조짐이 처음으로 엿보인 작품은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다. 비가노의 안무를 위해 작곡한 이 발레 음악은 훗날 '에로이카' 변주곡과 교향곡 3번 '에로이카'로 발전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베토벤의 초상을 다져주었다.
3년 전부터 데카 레이블을 통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집을 작업하고 계십니다. 당시에 처음부터 전곡 공연도 염두에 두셨나요? _“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닙니다. 녹음을 하면서 기나긴 시간이 필요했고, 이 작업을 이대로 끝내는 것보다 뭉쳐서 시도하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요. 한 곡 한 곡이 뜻이 있는 곡이니까요.”
_“예전에 내가 시도했던 라벨이라든가, 프로코피예프 협주곡 전곡 연주회와는 또 다른 시도라 할 수 있지요. 그리고 부담스럽기도 하고요. 베토벤은 많은 거장들이 이미 시도해왔고, 또 유명한 곡이라서 감출 수 있는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전곡을 녹음하다 보니 그 음악들이 생각한 것보다도 월등히 풍부하고 무궁무진한 세계를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세계를 우리가 체험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했고 결국 연주회를 결심하게 됐지요. 이번 공연은 우리 자신에게 이러한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는 기회를 준다는 데 의의를 두고 싶습니다. 실은 워낙 큰 프로젝트인지라 나 자신도 두려워요(웃음).”
선생님의 베토벤 소나타 음반을 살펴보면 트랙 순서에 어떤 일관성이 보이질 않는데요. 1집도 하필 한가운데 중기 소나타를 가지고 발표하셨지요. 그런데 이번 연주회 일정도 별다른 순서가 엿보이지 않습니다. 어떤 다른 의도가 있는 건가요? _“32곡을 순서대로 순례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좀 더 청중들이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입니다. 녹음을 중기 소나타부터 시작한 것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소나타들이고 그래서 가깝게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였어요. 반대로 후기 소나타를 제일 마지막에 둔 것은 작곡가의 의도를 존중해서였습니다. 베토벤은 3대 후기 소나타를 하나의 세계로 창조했으니까요.”
개인의 성취보다 청중들에게 전달하는 데 더 큰 비중을 두시는 거군요.
단편적으로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그동안 베토벤 소나타를 무대에서 꾸준히 연주해오셨습니다. 예전에 선생님이 후기 소나타 3곡을 연주하시는 걸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시절과 비교할 때 요즘 선생님의 음반을 들으면 미묘한 차이가 느껴집니다. 보다 섬세하고 정적인 침묵이 강조된다고 할까요? 해석상의 변화가 실제로 있는지요? _“내 연주가 변했다기보다는 아마 소나타들의 개개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느꼈을 겁니다. 베토벤이 말씀하신 그러한 성격들을 중요하게 여긴 것만은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림과 비유할 때, 화가는 백지에서 시작해 선을 긋고 색을 칠하고 공간을 메우지요. 하지만 음악은 침묵에서 시작해서 침묵으로 끝나지요. 하지만 침묵을 소리를 주도하는 매우 중요한 또 다른 소리이며, 또 음악 속에서 침묵은 텅 빈 것이 아닌 꽉 찬 침묵입니다.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 이행되던 이 시끄러운 격동의 시기에, 침묵을 이만큼 이해한 작곡가는 베토벤밖에 없었습니다.”
이번 연주회를 통해 청중들에게 의도적으로 전달하고 싶은 바가 있다면? _“저는 ‘의도’라든가 ‘유도’라는 표현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것을 계산하고 연주한다는 것은 결코 좋은 연주가 아닙니다. 모든 것을 사전에 깨닫고 이해하고 난 다음에도 공연을 하는 그 순간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이해가 있습니다.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바로 연주입니다. 이해와 관점이란 과거에도, 현재에도 변해왔고, 미래에도 변할 겁니다. 그리고 계속 변화할 수 있어야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해석’에 대해 물으면 참 곤란해요. 음악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건데.”
요즘 점점 보편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원전 연주'에 대해서는 그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_“저는 받아들이는 편은 아닙니다. 하나의 연주 과정을 과거의 연구를 통해 공부하고 실험하는 시도는 그 자체로 유익하다고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대마다 그 시대를 위한 음악이 있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그 시대의 사회와 같은 수는 없지요. 악보에 담긴 진리야 변함이 없겠지만 전달하는 방법에 설득력이 없다면 그 연주는 무의미한 것입니다.”
어째서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하시는지요? _“일단 공연의 조건이 바뀌었지요. 당시 많은 소나타가 지금처럼 2000석 규모의 대형 공연장이 아닌 소박한 살롱에서 연주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연주 형태를 반대한 것이 베토벤이었습니다. 베토벤은 그 누구보다도 음악의 대중화를 꿈꾸었던 작곡가입니다. 그는 귀족의 도움을 받았지만 서민의 편에 섰고, 그들을 지지했으며 서민층에 서서 음악을 작곡했습니다. 베토벤의 그러한 면모가 내가 가장 가슴 깊이 와 닿습니다. 베토벤은 칸트, 실러로부터 영향을 받은 깨인 사람이었습니다. 유희를 위한 살롱 음악이 아니라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음악을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본인의 비참한 인생 또한 자신의 음악으로 위로받고자 했지요. 그러한 베토벤의 작품세계에서 우리는 위로가 아닌 공감을 느낍니다.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 새로운 세상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요.”
정말로 바보 같은 질문이긴 하지만, 그래도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32개의 소나타 중에 어떤 작품을 가장 좋아하시나요? _“허허. 정말 대답하기 곤란하네요. 알다시피 각각의 소나타들은 나름의 보물을 간직하고 있으니까요. 심지어 알려지지 않은 소나타들까지요.” 그렇다면 알려지지 않은 소나타 중에서 특별히 애착을 가지는 작품이 있다면? _“1번, 2번, 7번, 11번, 16번입니다. 이런 작품들을 보면 인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돼요. 이번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회뿐 아니라 인생도 그렇잖아요? 항상 남에게 인정받고, 화려하고, 좋은 시절만 있는 것이 아니지요. 그 와중에 슬픈 날도 있고, 분노하는 날도 있고, 좌절하는 날도 있는 게 인생이니까요. 사회 또한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모여서 하나의 세계를 이루지요. 세계란 모든 것이 대조적이기 때문에 존재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강약과 불협화음이 협화음과 함께 조화를 이루는 것이지요. 이와 같은 무명의 작품들과 더불어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세계가 완성되듯, 세상을 이루려면 모두가 다 필요한 존재이지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이번 공연은 정말 나무가 아닌 숲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_“순간순간은 존재하지만 부분만으로는 완성되지 못하는 것이 세상이니까요. 시간을 들이고 노력을 해서 전체를 완성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끝까지 모르고 남기는 것들이 있을 거예요. 그래도 시도는 해야지요. 그런 면에서, 연주가로서의 인생이 짧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우리 아파트를 수리하면서 방 하나를 다 악보로 채웠는데도 아직 들여다보지조차 못한 악보들이 너무 많아요.”
이번 베토벤 사이클을 끝내고 나면 또 새로운 구상을 준비해두셨는지요? _“그런 걸 따로 준비해두지는 않습니다. 앞으로 이런 걸 하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해놓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건 아무것도 없어요. 하지만 음악을 하면서,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매번 눈앞에 닥치더군요.”
베토벤 사이클을 끝내고 나면 반드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요? 음악적인 것 말고요. _“바캉스! 이번에는 정말 기필코 가고 싶어요. 18년 동안 못 가봤답니다. 이번에는 꼭 가고야 말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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