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전시회

류병엽 큰 그림展

나베가 2007. 3. 30. 21:27

류병엽 큰 그림展

 

 

가을의 월출산,1995,Oil on canvas, 218.2x333.3

 

 

 

갤러리 현대

 

2007. 4. 4(수) ▶ 2007. 4. 22(일)

110-190 서울시 종로구 사간동 80 | 02-734-6111

 

 

 

비상,1994,Oil on canvas, 162.2x112.1

 

 

 

작가는 많아도 밀도 있는 대작을 꾸준히 그려낼 수 있는 작가는 많지 않다. 대작을 많은 사람이 소유할 수 없는 것도 이유가 될 수도 있겠고, 작가의 역량 때문일 수 도 있지만, 올해로 고희를 맞는 류병엽 화백이 혼신의 힘을 기울여 이루어낸 이 대작들은 작가의 작품이 절정에 이르렀다는 것을 반증한다. 갤러리 현대가 원로작가 류병엽의 전시를 20년 만에 열게 된 것 또한 이러한 점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동안 작가가 혼신의 힘을 다해 작업한 100호에서 500호에 이르는 미공개 대작 40여점을 공개한다. 월출산, 내장산, 인왕산 등을 비롯, 우리 땅 남쪽 끝 한라산부터 백두산까지 산의 웅장한 자태를 대형 화폭에 표현한 작품들은 작가를 한국 산천의 대가로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이중섭, 박수근, 장욱진, 박고석 등과 최근 타계한 원로작가 이대원이 사후에 재평가를 받는 미술계의 최근 상황을 볼 때, 유병엽은 한국적 구상의 명맥을 잇는 현존하는 대가로 재조명을 받기에 손색이 없는 작가다.   

류병엽은 프랑스 파리 시절이나 귀국 후 한국에서 활동하던 어느 시기에도 그 당시 유행하던 어떠한 유파에도 물들지 않았다. 60년대 프랑스 파리로 떠나 국제 무대에서 활동을 하던 당시뿐만 아니라, 귀국 후 60년대나 70년대의 엥포르멜, 추상표현주의 등 한국 미술이 집단적인 미술로 한 시대를 주도해 왔던 시기조차 흔들림없이 자신만의 길을 걸어온 신념있는 작가이다. 이 때문에, 작가로서는 좀 늦은 감이 있던 40대 중반인 1980년대부터 화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고 그 이후로도 한결같이 과감한 색채와 평면적인 처리로 화려하면서도 전통적인 미감을 느끼게 해주는 작업으로 주목받아 왔다.

강렬한 원색, 단순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류병엽의 명쾌한 그림은 어떤 일관된 주제를 지니고 있다. 그의 작품은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그에게 있어서의 낙원은 고향이다. 늘 ‘새로움’을 찾아 전진만을 거듭해 온 현대미술의 잃어버린 꿈을 찾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그림은 희망을 가지고 있다. 질박한 한국 산천의 아름다움을 특유의 붓터치로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약 20년 만에 갤러리 현대에서 다시 만나게 될 류병엽의 큰 그림전은 화려한 색채와 강렬한 생명력, 그리고 절정기에 이른 작가의 역량을 느낄 수 있는 다시없는 기회가 될 것이다,.

고희를 맞은 작가 류병엽과의 인터뷰

 

 

 

영월의 강,1995,Oil on canvas,218.2x290.9

 

 

 

20년 동안 정말 조용하게 지냈다. 산이 친구가 돼주었다

프랑스 지하철 노동자가 쓴 ‘사막’이라는 시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 있다.

“사막에서 나는 너무 외로워 뒷걸음 질을 친다. 내 앞에 찍힌 발자국으로 보려고”.

내 그림 속에는 산이 자주 등장하는데 주로 혼자서 떠난 여행의 결과물들이다. 혼자서 하는 여행에 장단점이 있겠지만 고독이 절대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자신을 가장 솔직하게 돌아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외로움을 느끼는 생활을 하고 있다.큰 캔버스를 뭘로 채울까 생각을 하게 될 때는 아주 가끔 긴 여행을 떠난다. 백두산 여행이 그러했다. 1주일 동안의 중국 여행을 다녀와 그리게 된 작품인 <백두산 천지>는 1000호 정도 되는데 작품 속에 민족의 밥그릇 의식을 담아내고 싶었다. 반년이라는 시간이 걸려 완성한 작품인데, 그리고 나면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그리고 또 다시 그리고 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했다. 자연히 물감도 두껍게 칠해지고 분위기도 웅장하면서 무거워졌다. 그리고 작품에 등장하는 새의 눈을 찍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과정이 손에 잡히지 않아 무지 애를 먹었다.

<가을의 월출산>에는 여자와 남자, 그리고 그녀를 위한 보디가드로 개도 함께 등장한다.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새는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그들 남녀를 바라보는 부러움과 그들을 축복해 준다는 의미다. <영월의 강>이라는 작품을 자세히 보면 구석에 조그마하게 그려져 있는 인물이 배를 타고 있는데 이는 단종의 영혼이며 학과 어울리고 있는 모습이다. 내 작품에는 황토산이 종종 등장하곤 하는데 지금은 모든 산에 나무가 심어져서 볼 수 없지만, 6.25 시절에는 땔감으로 산에 있는 나무를 모두 베어가서 벌거숭이 산이 많았고, 붉은 색감의 황토를 그대로 드러낸 산의 풍경을 볼 수가 있었다. <탑이 있는 마을>은 전주의 금산사를 다녀와서 그린 작품이다. 전국의 많은 사찰을 다녀봤지만, 금산사가 가장 사찰답고 좋았다. 아무튼 산을 좋아하는 나는 참 많이도 산을 다녔다. 특히 그림에도 등장하는 북한산을 각별히 좋아해서 무릎을 다치기 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등산을 가기도 했었다.

나는 제주도도 무척 좋아한다. 제주도에 갈 때마다 그곳이 우리의 영토라는 점이 늘 고맙게 느껴진다. <탐라 환타지>는 한라산을 배경으로 제주도의 말과 주변 풍경을 보며 그린 작품이다. 또 울릉도를 다녀와서 시리즈로 20여점을 그리기도 했다.

 

 

인왕산 추경, 2003, Oil on canvas, 290.9x193

 

 

“유병엽의 작품이 무슨 서양화냐, 동양화지”

내 그림들 속에서 보여지는 선과 색채는 상당히 한국적이다. 언젠가 문득 고찰의 단청이나 석가래의 색들을 보면서 ‘저 속에 내 그림이 있구나’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지인들 중 한명이 내 그림을 보고 ‘유병엽의 작품이 무슨 서양화냐. 동양화지.’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면 분할, 오일 컬러, 화려한 색감 등은 서양화에 가깝다. 하지만 내용은 전혀 서양적이지가 않다. 내용은 동양적이라고 볼 수 있다. 내 그림과 meditation(명상)을 견주어보라. 우리의 민족성 속에 있는 불교성과 명상의 맥락에서 내 작품을 보면 된다. 내 작품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 중 첫째는 나의 할머니이다. 어릴 적 할머니가 나를 참 예뻐해주셨다.  여든아홉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이 없이 함박 웃음을 지어 보이시며 안아주시던 모습이 작업을 할 때 종종 떠오른다. 둘째는 직선이 아닌 구불구불한 곡선의 논두렁길, 그리고 고궁의 하늘과 맞닿아있는 기와선, 오래된 소나무 등 한국적인 산과 정취다.

또한 내 그림에는 명암이 없다. 본래 바탕이 나와야지 명암으로 볼륨을 넣는 것은 하지 않는다. 공간감과 원근감은 스며들어 있다. 작품의 마띠에르도 두꺼워 오전와 오후 어떤 햇빛에서 보느냐에 따라 뉘앙스가 달라지기도 한다.

 

 

 

탐라환타지,2002,Oil on canvas,248.5x333

 

 

 

일백리를 가는 데 구십리까지가 반

한 달전 대학 미술학과 학생 60여명과 교수가 함께 이 곳으로 찾아와 미술관을 둘러보고 나에게 1시간 정도의 강의를 해달라고 해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 10명 이상의 사람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운 사람인 나에게 강의를 해달라고 해서 처음으로 강의라는 것을 해보았다. 나는 이 때 두 가지를 이야기했다. 첫째는 소묘의 보존성에 대한 것이고, 둘째는 화가로서의 내 좌우명을 이야기해주었다.

行百里者半九十 사람이 100리를 가는데 90리까지가 반이라는 이야기다. 즉, 나머지 10리가 90리 가기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다.

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 사람들은 한번 해내는 일을 어리석은 나는 백번까지 해서 달성하고, 보통사람이 열 번으로 해내는 일은 나는 천번이라도 노력해서 달성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나는 이래저래 오늘날까지 왔다.

그림이 안 되고 무척 힘들었던 어느 날 성산대교 교각을 세우는데 갔었다. 사람의 머리카락처럼 새까만 물이 흐르는 그 곳을 내려다보는데 뒤에서 나를 꼬옥 끌어안는 것이 있었다. 바로 그림이었다. 그래서 도중하차를 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올 수 있었다.

나를 꼭 끌어안은 그림. 그림이 없었으면 나는 죽었을 것이다.

나는 이제 행복할 일만 남았다.

 

 

하얀산이 보이는 마을,1992,Oil on canvas, 112.1x1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