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기악

브란덴브르그 제 5번/바흐

나베가 2006. 7. 21. 03:23
실내악 (0/222)
바하 / 브란덴브르그 협주곡 제5번 2004/12/05
philharmonic http://planet.daum.net/jychoi-57/ilog/540891 복사

Brandenburg Concerto No.5 in D major BWV 1050

바흐 /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5번 BWV 1050

Johann Sebastian Bach (1685 ~1750)


제1악장 Allegro

작품설명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5번>은 여섯곡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중 가장 규모가 크고 또한 화려한 작품이다. 이것은 쳄발로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쳄발로 성부에 상당히 비중을 두고 있는 관계이겠으나 쳄발로의 기다란 카덴차까지 가지고 있어서 다분히 쳄발로의 협주곡 같은 느낌을 준다. 따라서 이 "제5번"은 바흐가 1720년 베를린에서 새로이 도착한 쳄발로의 훌륭한 성능에 자극을 받아 작곡한 것으로 짐작이 된다. 이 시대의 쳄발로는 대부분 저음과 화음을 연주하는 보조 악기로 사용한 정도에 그쳤으나 이 곡에서는 전체를 주도하는 독주 악기로 사용하고있다. 즉, 쳄발로와 바이올린과 플루트를 콘체르티노, 다시 말해서 독주부로 하고 이에 대항해서 현악 합주가 콘체르토 그로소로서 들어와있다. 물론 전체적인 곡취는 바로크적인 합주 형태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다. 악기 편성은 독주부가 플루트, 바이올린, 쳄발로, 합주부가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비올로네로 되어있다.

구성과 특징
플루트, 바이올린, 각 1개와 쳄발로를 독주부에 넣었다. 보조적인 합주군은 현악 5부로 되어 있다. 여기서 쳄발로의 활약은 눈부실 정도이다.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전곡 가운데서 가장 늦게 작곡된 것으로 여겨지는 곡이다. 전곡중 가장 내용적으로 충실하면서 규모도 제일 크다. 특히 제1악장에서 유난히 화려하게 연주되는 발로의 독주는 통주저음으로 사용되면서도 한편으론 완전히 쳄발로 협주곡 적인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다분히 바로크적인 곡으로서 매우 장대하고 화려하다.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전 6곡 가운데서 대중적으로 가장 인기높은 곡이 바로 제 5번 D장조이다.

제1악장 Allegro, D장조, 2/2박자이다
처음 전합주로서 힘찬 화음적인 주제가 바이올린에 나타나고 이 주제가 쳄발로, 플루트, 바이올린 독주부의 새로운 악구를 사이에 두고 다시 전후 2부로 나뉘어져 나타난다. 이 두개의 음형이 이 악장의소재가 되고 있기도 하다. 제1부는 처음 독주부에 나왔던 악구의 발전과 모방적 진행, 제2부는 D장조 b단조의 조바꿈과 쳄발로가 활동하는 부분이다. 독주부의 바이올린이 주제의 동기로 플루트와 모방을 하고, 이어 새로운 소재가 들어와 간주곡과 같은 부분을 이룬다. 제3부는 주제가 A장조로 나타나고, 제1부와 대체로 같은 형태로 진행하는 동안 쳄발로가 첨차 섬세한 음형을 연주하고 화려한 카덴차를 연주하게 된다. 그리고 끝에 주제가 주도를 하고 곡을 끝맺게 된다.


1. Allegro
Emmanuel Pahud : Flute
Berliner Barock Solisten
Conducted By: Rainer Kussmaul

제2악장 Affettuoso, b단조, 4/4박자이다
'감동적으로' 라고 씌어 있는 이 악장에서는 합주부가 쉬고, 독주부의 플루트, 바이올린, 쳄발로만이 3중주를 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아페투오소'라는 악상 표어도 그렇지만, 바흐 자신이 붙인 악상 표어로서는 희귀한 예가 된다고 하겠다.


2. Affetuoso Emmanuel Pahud : Flute

제3악장 Allegro, D장조 4/4박자.
둑주 스케르초풍의 기본 주제는 3개의 악기에 의하여 푸가의 수법으로 시작된다. 2박자이지만 3잇단음표가 많아 경쾌한 6/8박자으 성격을 지니고 있다. 쳄발로는 자유로운 발전을 하면서 새로운 주제를 연주하고 그 후에 푸가로 시작하여 끝나게 된다.


3. Allegro Emmanuel Pahud : Flute

쾨텐시대
바하는 루터 교의 충실한 신도였다는 바하관의 지지자들이 있다. 여러 가지를 감안해도 바하는 확실히 루터 교의 신도였음을 그들은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틀이 잡힌 교회음악을 계속하기 위하여'라는 그의 사명을 버리고 칼빈파의 레오폴트공의 악장이 되는데 그토록 열성적인 바하를 보고는 당황해 마지않았다.

23살의 레오폴트공은 음악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바하에게 20명에 가까운 음악가들을 붙여줄 정도로 음악에 조예가 깊은 아마추어 음악가였다. 그러나 칼뱅은 구약성서를 율법적인 관점에서 연구하여 교회에서는 간단한 서법으로 쓰여진 시편 송만을 허용했고, 더구나 기악의 반주를 금했기 때문에 칼뱅 파였던 레오폴트공의 밑에선 교회 작곡가로서 그의 천직이 크게 손상을 입지는 않더라도 교회음악에 대해 마냥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실제로, 쾨텐에서 그에게 의뢰된 오직 한 편의 칸타타는 레오폴트공의 탄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쓰여진 칸타타뿐이었다.

쾨텐시에는 루터 교도를 위한 성 아그네스 교회와 학교 하나가 있었기에, 바하 일가로서는 개인적인 종교생활에 지장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테리는 그의 '바하 전기'에서 바하의 생애 중 이 시기의 생활에 대해 솔직하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래서 바하가 쾨텐으로 옮아가는 대목을 이렇게 적었다. "바야흐로 그는 자신의 예술에 바쳤던 고상한 목적으로부터 자기 예술을 떼어놓고 말았다".

그러나 바하는 그 시절에 대해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심오한 음악의 재능을 지니고 있는 레오폴트 대공 아래에서 나는 여생을 보낼 생각이라네"
바하의 개인적인 감정과 신앙을 어떤 식으로 판단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아마추어이기는 하지만 열심히 신학을 배웠던 바하로선 자기가 섬기고 싶은 레오폴트 아래서 창작 활동을 하는 것이 '틀이 잡힌 교회음악을 계속하기 위하여'라는 그의 사명을 잊어 서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어찌되었던 간에 1718년에서 20년까지는 행복과 창조적 자유의 시기였다고 가정할 수 있다. 쾨텐 궁정의 직무는 장년기에 들어간 위대한 작곡가를 자극할 정도로 많은 것을 요구하지는 않았음에 틀림없다.

오르간 작품은 이 시대에 극소수밖에 쓰지 않았으나, 바하의 건반음악의 대다수는 쾨텐시대에 쓰여졌다. 다만 연대 설정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그때까지 쓰여진 작품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예술이라고 할 이들 중 어느 하나도 출판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바하의 유명한 동시대인 헨델, 쿠프랭, 라모 등은 한결같이 그들의 쳄발로 모음곡들을 인쇄하여 판매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바하가 6곡의 '파르티타'의 제 1번 BWV825를 출판한 시기는 1726년이었다. 바하의 사후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이 유럽 전역에 퍼졌을 때, 비로소 평균율 조율법은 일반에게 받아들여졌다. 바하의 푸가양식이 지닌 그 절대적인 거장의 기법은 연구의 재능을 과시하는데 있지 않고, 구성력의 자유로움 가운데 있다. 물론 바하가 그 연구의 재능을 나타내고자 한다면, 그것만으로 그는 누구 못지 않게 뛰어난 음악가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