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Rachmaninov, Sergey
Vasilyevich 1873~1943, 러시아)
'라흐마니노프'는 1873, 4월 1일 러시아의 북부지방 노브고로드의
오네그라는 조그마한 마을 에서 태어나, 1943년 3월 28일 미국 캘리포오니아에서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피아노의 거장인 동시에
작곡가이다. '라흐마니노프'는 보기 드문 거인적인 스케일의 피아니스트로서, 뛰어난 테크닉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이에 못지 않게 화려하고 호담한
지극히 개성적인 표현을 하는 피아니스트였기 때문에 작곡가로서의 '라흐마니노프'의 창작 중심은 역시 피아노 음악이라 하겠다. 라흐마니노 프는
차이코프스키, 안톤 루빈스타인, 그라즈노프, 이런 사람들 처럼 러시아적인 경향을 다분 히 갖는 작곡가로서, 같은 러시아 작곡가인 무소르그스키나
보로디 등의 국민악파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그러기에 이 보편성으로 그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라흐마니노프'는 9살 때, 페테부르그 음악원에 들어갔다가 3년후에 모스크바 음악원으로 전 학을 하였다. 여기서는 피아노를 시로티에게,
작곡을 타니에포와 알렌스키에게 배웠다. 재학 중에는 작곡과 피아노에 비범한 재능을 보여 유명했고, 1892년 그가 학교를 나올 무렵에는 오페라
<아레코>를 써서 작곡의 특별상인 금 메달을 타기도 하였다. 학교를 나온 '라흐마니노프'는 우선 피아노연주가로서, 러시아의 여러 곳을
순회하면서 연주활동을 했고 외국에도 연 주 여행을 함으로써 차차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897년부터 99년까지 3년간은 모스크바의 시립
가극장에서 지휘자로 활약을 하였다. 그 후 런던 필하모니 관현악단의 초청을 받아 지휘자로서, 독주자로서의 명성을 떨친 후 1902년에는
비인악단에 나타나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1903년 러시아에 돌아온 그는 모스크바의 마린스키 여자 음악 학교 교수로, 이듬해에는 황실가극장의
지휘자로 임명되어 3년간 그 자리에 있었다. 1906년에는 독일 드레스덴으로 옯겨 작곡 생활을 하면서 연주자와 지휘자로 구라파 여러 나라의
무대에 서기도 하였다. '라흐마니노프'는 1909년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했고 그 이듬해부터 1913년까지 모스크바 교향악 협회 지휘자로 활약을
하였다. 1917년 러시아에 공산혁명이 일어나자, 그는 가족을 이끌고 미국으로 건너가 그 곳에서 영주하였다. 후기 낭만파에 속하는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주관적인 정서를 앞세운, 지극히 환상적인 데가 있으며, 이것을 명확하고 힘찬 형식감에 담아 구성하고 있다. 그
특색이라면 감미롭고 풍부한 정감으로 노래시키는 선율, 그리고 기복의 선이 굵은 다이너미즘의 형식과 당당하고, 대범한 긴장도에 있다고 하겠다.
러시아 민속적인 소재를 서구적, 특히 독일 낭만적인 수법으로 처리하고, 여기에 슬라브적인 끈질긴 정서와 애수가 흐르는 환상이 빚어진다.
<주요작품> "아레코" [1892] "파가니니의 주제에 의한 랩소디' "죽음의 섬"
교향곡2번 1악장~4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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