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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나타 테발디 /세기의 프리마돈나

나베가 2006. 6. 3. 16:43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전 이탈리아가 파괴되었다. 폭격을 당한 스칼라 극장도 지붕조차 없는 잿더미가 되었다. 오페라를 너무나 사랑하는 이탈리아인들이 전후에 가장 먼저 복구한 것 중의 하나가 오페라 하우스였다.

스칼라는 다시 건설되기 시작했으며, 외국으로 망명했던 토스카니니가 스칼라로 돌아오기 위해 밀라노의 중앙역에 내리는 사진이 신문 1면을 장식했다. 드디어 1946년 수많은 밀라노 시민들과 오페라 팬들이 눈물로 박수를 보내는 가운데 스칼라의 '재개관 콘서트'가 열렸다.

 

 

 

지휘자 토스카니니가 등장하자 복도까지 꽉 채운 관객들은 극장이 떠나갈 듯 박수를 쳤으며 아무도 박수를 그칠 줄 몰랐다.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테발디는 스물 넷의 나이에 이 역사적인 콘서트로 스칼라에 데뷔한다.

전 이탈리아의 환호하에 열린 이 무대가 앞으로 테발디가 쓸 역사의 시작이라는 것을 관객들은 알 수 있었을까.

레나타 테발디의 전설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Giuseppe Verdi / La forza del destino 中 Pace, pace mio dio

(신이여, 평화를 주소서) with Renata Tebaldi

 

 


마리아 칼라스와 더불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 소프라노로 평가되는 이탈리아의 레나타 테발디가 2002년 82세의 일기로 19일 별세.

사진은 1958년 타임지 표지모델로 등장했던 그녀의 모습./연합.


 

<이탈리아 소프라노가수. 페사로 출생. 1944년 로비고에서 A. 보이토의 오페라 《메피스토펠레》로 데뷔하였으며 46년 A. 토스카니니에게 인정받아 47년 밀라노 스칼라극장 무대에 섰다.

그 뒤 10여 년에 걸쳐 해마다 스칼라극장에 출연하면서 세계의 주요 오페라하우스에서 활동,

50년대에는 M. 칼라스와 명성을 겨루었다. 풍부하면서 맑고 투명한 목소리, 자연스러운 발성법,

작품 스타일에 의거한 극적이며 정교한 감정표현을 특징으로 하였다.

G.F.F. 베르디와 G. 푸치니의 곡을 주로 노래하였다.

 

 

 

 

 

 

 

 

 

 

 

 

 

 

 

 

 

 

 

 

 

 

 

 

 

 

 

 

 

 

 

 

 

 

 

 

 

 

 

세계적인 프리마돈나중 한사람

베르디 풋치니가수로 잘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