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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기념일...모임...삶을 생각하다.

나베가 2006. 4. 17. 14:18

아이가 대학생이라는것보다 결혼 20주년이란 뉘앙스가 훨씬 세월의 깊이를 더 해준다.

아마도 아이들은 나와 동일시 되어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하는데 반해,

남편과의 관계는 '사랑'이라는 매개체가 서로를 묶어주고 있어서  그런것 같다.

 

20년!

정말 얼마만큼 서로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면서 살았을까...

가장 소중한 사람이면서 오히려 가장 상처주고 서로에게 무관심하지는 않았을까....

아니라면 서로에게 너무나 익숙해져서 이 안타까운 시간들을 느낌없이

그저 살아가고 있는것은 아닐까...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사랑'이라는 단어는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한다.

그냥 살아가는 것이 아닌  사랑을 표현하면서 살아가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오히려 젊은시절 사랑보다 지금의 사랑고백이 더 애틋하고 삶의 의미와 힘을 주지 않겠는가!

시간도 없고 기회도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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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탓일까...

결혼기념일이란 생각조차  못하다가 문득 '아니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에게선 종일 아무 연락이 없다.

이미  집수리에 홈시어터를 구비하는것으로 20주년을 마무리지어버렸지만,

웬지 말 한마디 없는 것에 섭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언제나 기대감과 함께 생기는 것이 방어벽이란 녀석이다.

8시쯤 퇴근해온 남편.....

그리고 아무말도 없이 시간은 흘러갔다.

 

어~~이렇게 보내면 안되는거야.......

섭섭했지만, 먼저 말을 꺼냈다.

 

"우리 영화보러 갈래?"

"그러던지..."

 

라페스타는 어느틈엔가 번화한 거리가 되어 있었다,

브레드피트가 나오는 10시 50분 '트로이'표를 예매하고,

괜찮은 레스토랑에 들어가 맥주를 마셨다.

근사한 분위기로 업그래이드된 시원한 맥주는 섭섭했던 기분을  떨구워 내기에 충분했다. 

 

그냥 TV보면서 섭섭함을 쌓지않고 이렇게 나온것이 얼마나 잘한 일인지...

누가 뭘 꼭 이렇게 해주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없애는것이 나은거야.

먼저 그렇게 하고 싶은 사람이  제안을 하는거야.

감동스런 이벤트는 없어도 슬프지는 않잖아.....

 

카프리 한병을 다 마셨더니, 얼굴이 화끈 화끈 달아올랐다.

술기운 때문이었는 지...영화가 시작되자 마자 나는 고개를 끄덕거릴 만큼 한참을 졸았다.

세상에....

후훗^^

 

상영시간이 2시간 반이 넘고 스케일도 큰 대작이었지만,  그리 흥미진진하지는 않았다.

 브레드피트의 몸매가 끝내주게 섹시했다는것!

역사적으로 너무나 유명한 .... 전쟁영화였지만,

내겐 사랑이 주체인 멜러물처럼 느껴졌다.

첫눈에 눈멀고, 사랑은 국경도 없다는....것이 새삼스러웠던

나는 차라리 브레드피트의 액션보다는 이 사랑이 더 볼만하다고 느꼈는 지도 모르겠다.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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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 모임이 집에서 있었다.

어제 늦게 잔터라 아침에도 늦게 일어난데다 페인팅을 몇군데 마무리 짓다보니,

시간이 그만 훌쩍 가버렸다.

오후가 되서야 집치우고, 장봐오고....

간소하게 모임을 갖기로 아무리 약속을 했지만는 저녁을 먹어야 되는 만찬모임이었다.

다급한 마음으로 딸을 일당을 주고 고용(?)했다.

기대이상으로  내 말만 듣고도 척척 보조역할을 훌륭하게 해낸 딸덕분에 4시반부터 시작한 요리를 8시까지 테이블 셋팅까지 완벽하게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초여름이니까 가능한 시원한 요리를 준비하고, 밥은  그냥 요리로도 먹을 수 있는 '유산슬 덮밥'으로 준비했다.

그리고 만약 요리를 다하지 못할것을 대비해서 마른 안주를 여러가지로 충분히 준비해두었다.

 

이모임에선 늘 금테가 있는 파란색  테두리가 있는 그릇을 풀셑으로 썼었기 때문에 이번엔 금박테두리가 있는 흰그릇과 흰냅킨을  쓰고  대신 촛대와 잔을 파란색 크리스탈로 시원하게 셋팅 했다.그리고 요리는 같은 금박테두리가 있는 흰접시와 유리그릇을 쓰기로 했다.

 

양상치, 치커리, 비타민과 각종 과일을 넣고 키위소스를 뿌려 담은 그 선물받은

샐러드 그릇은 이번에도 대 히트를 쳤다.

샐러드가 담긴 그 그릇은 내가 봐도 탐낼만큼 근사했다.

내 스타일에 딱 맞는 사람이라고, 그 사람하고 살아야 할거같다고 해서 한바탕 웃기도했다.  

 

살짝 얼음기가 있는 훈제연어를 양상치에 얹고 무우순과 붉은 레시디, 케이퍼,

날치알과 함께 된장소스를 넣고 싸서 먹으면 그 시원함과 고소한맛이 일품이다.

내가 개발해 낸 이 요리는 쉽고 보기도 좋아서 우리집에 와서 먹어본 사람은

모두 배워가서 써먹는 요리이기도 하다. 후후...

내 주특기인 양장피잡채도 하고, 해파리 냉체도 하고 영양식 샐러드도 하고........

 

모두들 너무나 맛있게 먹고 행복해 했다.

웃고 얘기하고, 기도도 하고, 음악도 듣고, TV도 보다가.....2시에 갔다.

아주 예전에는 울집에 오면 밤새 얘기하고 담날에 갔었는데...

이제는 나이들이 먹어서 그런지, 예전보단 술도 덜먹고, 다들 밤에 간다.

그러고 보니, 이모임도 거의 15년째가 되 가는거 같다.

누구랄것도 없이 전국 어느곳에서든지 '보고싶다' 말하면 달려오고 또 달려 갔던 사람들이었는데.... 이제는 그때만큼 여유들도,열정들도 식어버린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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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에 남편이 뭐라 말한거 같았는데, 일어나 보니 어느새 잠도 안자고 낚시를 간것이다.

그랬는데....덥고 고기도 안잡힌다고 1시에 온 남편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어제 음식도 남았고해서 저녁땐 이웃에 사는 교우이자 같은회사 직원부부를 초대했다.

남아있는 음식에다 유산슬만 새로 만들었기 때문에 힘들것은 없었다.

한참 웃고 떠들고 재미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커피를 준비하는데, 설겆이를 도와주던 자매가 '우리 아직도 그냥 그래요.' 했다.

 

'아직 화해 안했어? 자기가 화해해."

 

"그렇게 단순한일이 아니예요.

 나는 지금 배가 고픈데, 그래서 밥을 먹어야되는데,  그이는 나중을 위해서 참으라는 식이에요.

 나는 지금 현재를 살고 싶거든요....."

 

시간은 삶을,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냥 지금의 우리들 이 모습 그대로를 열심히 살면 최선인 것이다.

좀더 낳은 삶을 살겠다고 모든것을 나중으로 미루는 삶...

나중을 위해서 지금이 너무 아프고 힘들면 잘 사는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잘사는것이  꼭 '돈의 가치'로만 따질수는 없기 때문이다.

 

삶은 습관이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배어지는것이다.

지금 주어진 내 삶의 틀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고싶은것들을

하면서 살면 되는거 아니겠는가!

모든 삶의 잣대가 '돈'과 외향적인것으로만 몰아쳐가는것이 안타깝다.

돈이 그리 많지 않아도, 바뻐도, 힘들어도, 모든건 맘이 더 우선이다.

큰 욕심보다는 작은것들을 주워담는...삶은

그 어떤삶보다도 마음에 풍요로움을 주고 채워짐을 주지 않을까?

 

배웅을 하느라고 나왔는데 ...

살갗에 닿는 밤바람이 아주 기분을 상쾌하게 했다.

언제 시간내서 진부에 함께 가자고...

이들 부부와 함께 가긴 좀 시간이 걸릴것 같고, 요즘 힘든 단장님하고 우리 여자들 몇몇이서 한번 가야겠다.

모닥불도 피고...

속내음 털어내긴 참으로 좋을것이다.   

 

2004. 5. 30.  (31일 새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