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지역,이스라엘(2010.3)

79.이스라엘/예루살렘-OLD CITY

나베가 2010. 5. 27. 03:08

점심을 공원벤치에 앉아서 한식 도시락으로 먹었다.

여행시작해서  처음으로 먹어보는 한식이었다.

그래서였을수도 있겠지만 한국사람이 집에서 제대로 한 음식이어서 왠만한 식당에 가서 한식을 먹는것 보다 훨씬 맛있었다.

그리고 공원에서 도시락을 먹는 기분도 괜찮았다는....ㅎㅎ

 

도시락이다 보니 점심시간은 그리 길지않았다.

곧바로 우리는 Scopus산으로 올라 예루살렘 구시가지로 들어가 그 유서깊은 신앙의 본거지를 걸었다.

얼마나 시간이 촉박했는 지는 모르나 거의 뛰어도 따라잡기가 힘들정도로 투어는 빨리 진행되었다.

카메라도 고장나서 촛점도 맞추기 어려운데다가 그나마 빨리 찍으면서 쫓아가려고 디카로 찍었지만

그 카메라 마저도 렌즈커버가 고장이 나서 한번 작동이 안되면 계속 작동이 안되는 바람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 지.....컨디션도 최악....몸살이 났는 지 고개를 까딱할 수 조차 없이 어깨가 결렸다.

무게감을 전혀 느끼지 못했던 카메라를 목에 멜수가 없어서 손으로 받치고 다녀야만 했다.

 

예루살렘-OLD CITY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성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각기 자기네 성지라고 주장하는 예루살렘의 옛 시가지는 총면적이 1km²에 불과한 지역으로, 한 변의 길이가 1km쯤 되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좁은 지역을 두부 자르듯 네 구역으로 나눠 유대인, 아르메니아인, 무슬림, 기독교인 3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그리고 이 좁은 지역에서 우리는 다윗과 솔로몬, 예수 그리스도, 마호메트를 동시에 만난다.

 

옛 시가지를 둘러싼 예루살렘 성벽은 전체길이가 약 4km로 살짝 어긋난 정사각형 형태이다. 기원전 10세기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하던 당시에도 이곳에는 견고한 성벽이 있었고, 이후 수많은 증축과 파괴, 재건 과정을 되풀이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현재의 성벽은 16세기 오스만투르크의 슐레이만 대제(Suleyman the Magnificent)가 쌓은 것으로 약 5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평균 높이는 17미터, 망루 34개, 시온문, 사자문, 헤롯문 등 총 8개의 출입문이 있다.

 

평화를 갈구하나 평화롭지 못한 곳
예루살렘이라는 명칭은 ‘준비된 평화’라는 의미라고 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예루살렘의 역사는 평화와는 거리가 멀다. 기원전 1000년경 다윗이 무력으로 예루살렘을 점령한 이래 예루살렘의 역사는 그야말로 전쟁과 대립으로 점철되어 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서로 자기네 성지라 주장하는 예루살렘 옛 시가지는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면서도 국명(國名)을 표기하지 못한 곳이기도 하다. 이 지역을 실제 관장하는 국가는 이스라엘이지만 문화유산 신청을 한 곳은 요르단이라는 웃지 못할 풍경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3대 종교의 성지를 비롯해 220여 개의 역사적인 기념물이 있는 예루살렘 옛 시가지가 파괴 위험에 직면한 ‘위기유산’으로 분류된 데는 것도 이를 둘러싼 대립과 반목의 탓도 있다 할 것이다.<출처:네이버백과>

 

 

 

이슬람지구로 들어가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 간다.

 

 

 

 

 

비아 돌로로사(슬픔의 길)

 

 

 

 

 

 

십자가의 길

 

라틴어로 비아돌로로사 (Via Dolorosa)라고 불리는 ‘십자가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가 본디오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은 곳으로부터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갈라비아언덕)을 향해 걸었던 약 800m의 길과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 처형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의미한다. 이 길은 복음서에 근거한 역사적인 길이라기보다는 순례자들의 신앙적인 길로써 14세기 프란치스코 수도사들에 의해 비로소 확정된 길이다. 오늘날 순례자들이 걷는 이 길에는 각각의 의미를 지닌 14개의 지점이 있으며, 이는 18세기에 확정된 것이다. 이 중 일부는 19세기 이후 고고학 발굴을 통하여 확인되었다. 현재 매주 금요일 순례자들은 십자가 수난을 기리는 의식을 거행한다.
 
비아 돌로로사가 시작되는 제1지점은 예수가 재판을 받은 본디오 빌라도 재판정으로, 이 곳에서 심문을 받았고, 예수의 십자가형이 확정되었다. 이곳은 헤롯왕(헤로데스)이 그의 친구 마가 안토니를 위해 지은 안토니아 성채 내에 있다. 예수 당시의 로마 총독부는 가이사랴(카에사리아)에 있었으며, 당시 총독 빌라도는 유월절 기간 동안에 자주 일어났던 반(反) 로마 시위를 진압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와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곳에 선고교회 (채찍교회Church of Condemnation)가 서 있다.

 

 

 

 

 

 

제 1처 :예수님께서 사형을 선고받으신 선고교회(채찍교회 Church of Condemnation)

 

 

 

 

 

 

 

 

 

 

 

 

 

비버 / 로자리오(묵주) 소나타 제6번 '슬픔의 신비 : 올리브 산에 오른 예수'


1악장 (Lamento)-2악장 (Aria)-3악장 (Adagio)-4악장 (Adagio)
Eduard Melkus , Violin
Lionel Rogg, Organ
Karl Scheit, Lu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