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룩스 3국,파리(2012.9)

23.벨기에/ 브뤼셀/빅톨위고가 아름다움을 극찬한 그랑플라스 광장-1

나베가 2013. 3. 4. 14:20

 

벨기에 브뤼셀이다.

이곳 방문은 이번이 두번째...

아마 그래서 어쩌면 첫날 스케줄이 이렇게 뒤늦은 날로 바뀌었어도 섭섭치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도 계절이 다르니, 피부에 와닿는 느낌은 완전 다르다.

 

일단 벨기에와 브뤼셀에 대해서 좀 알아볼까??

 

 

 

 

벨기에(Belgium)

 

 

 

 

 

유럽 대륙의 북서부에 자리잡고 있으며, 수도는 브뤼셀이다. 남북길이는 약 193km, 동서최대너비는 약 240km이다. 북쪽과 북동쪽은 네덜란드, 동쪽은 독일·룩셈부르크, 남쪽과 남서쪽은 프랑스와 경계를 이루며 북서쪽은 66km 길이로 북해와 접한다. 면적 30,528㎢, 인구 10,779,000(2009 추계).

유럽 국가 가운데 가장 작은 국가이고 인구밀도는 가장 높은 나라에 속한다. 1830년 독립 이래로 의회 형태의 정부를 갖춘 세습에 의한 입헌군주제를 실시하고 있다. 벨기에는 처음에는 중앙집권정부 형태였다. 하지만 1980, 1990년대 플랑드르, 왈론니아, 브뤼셀 수도권 지역들로 권력을 분산하는 연방국가 형태로 변모했다.

 

문화적인 면에서 벨기에는 서부 유럽의 로망스어와 게르만어족 사이에 있는 복합적 문화를 가진 국가이다. 나라는 동부 지역에 독일어를 사용하는 소수의 국민들을 제외하고는, 프랑스어를 쓰는 사람들과 네덜란드어에서 파생한 플라망어를 쓰는 사람들로 나뉜다. 왈론인이라 불리고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전체 인구의 약 1/3을 차지하고, 남부의 5개 주인 에노·나무르·리에주·왈론브라반트·뤽상부르에 주로 거주한다.

 

 

플라망인(플랑드르인)은 전체 인구의 절반이 넘고, 북부와 북동쪽에 있는 5개 주인 서플랑드르·플랑드르·동플랑드르·플랑드르브라반트·안트웨르펜·림뷔르흐

 

에주로 거주한다. 왈론브라반트와 플랑드르브라반트 사이의 경계 바로 북쪽에 해당되는 브뤼셀 수도권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공식적으로는 두 언어를 사용할 수 있지만 대다수가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이들은 전체 인구의 1/10 정도를 차지한다.

 

벨기에와 후에 벨기에로 통합되는 정치적 독립체들은 풍부한 역사적·문화적 관련성들을 지녀왔다. 중세 대학의 고딕적 웅장함과 상업도시 및 그 도시의 작은 마을은 강을 끼고 깎아지른 절벽 위의 성채가 지배한다. 이들은 16세기에 북부 르네상스의 정점 중 하나를 차지했던 회화와 음악에 있어서 폭 넓은 전통들을 통해 20세기 예술에 기여했으며, 지난 시대의 전통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벨기에는 수세기 동안 유럽의 주요한 전쟁터였고, 특히 현대에 들어와서는 워털루 전투(1815)와 20세기에 발생한 2차례 세계대전을 겪었다. 면적과 인구를 고려하면, 벨기에는 오늘날 유럽에서 가장 산업화되고 도시화된 국가들 가운데 하나이다. 벨기에는 네덜란드 및 룩셈부르크와 함께 베넬룩스 경제동맹을 결성했으며, 유럽연합(EU)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회원국이다. 이러한 국제기구들은 모두 수도 브뤼셀이나 그 근교에 본부를 두고 있다.

 

 

 

 

 

 

 

 

 

 

 

브뤼셀 [Brussels]

(플) Brussel (프) Bruxelles.

벨기에의 수도이며 브라반트 주의 주도.

스헬데 강의 지류인 센(젠네) 강 유역에 자리잡고 있다. 벨기에의 최대 도시권인 대(大)브뤼셀은 19개의 자치체로 구성되어 있으며, 국제경제 및 정치의 중심지이다.

프랑스어와 플라망어를 공용어로 하는 브뤼셀은 플라망어 사용지대에 위치해 있지만

대도시지역에 있는 주민들은 대부분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19세기에 들어와 원래의 도심지역은 급속도로 확장되었다. 센 강을 포함한 여러 수로를 복개하여 하수도로 만들었으며, 연못은 매립했고 웅덩이에는 제방을 쌓았다.

 

대도시의 여러 경계지역은 끊임없이 변화했는데, 이로 인해 1963년 이전까지 플랑드르인·왈룬인 들과 대부분 지중해 연안국가에서 이주해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계속 유입되어 인구가 불어나게 되었다.

1963년에 대의원선거권을 갖고 있던 19개 자치체 경계선을 넘어 도시가 확장하는 것을 금지하도록 하는 법령이 통과되었다.

 

기후는 온화하여 알맞은 강우량과 연중 적당한 기온을 유지한다.

공업·상업·서비스 활동이 이곳 경제활동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대브뤼셀의 산업으로는 광업, 식품가공업과 의복·화공약품·기계류·시계·전기장비 등의 제조업이 있다. 남북으로 뻗은 공업지대가 센 강 유역을 따라 생겨났는데, 이 강의 항구에는 운하와 갑문이 있으며 철도도 연결되어 있다.

 

도심지역의 서쪽 반을 이루고 있는 상업 중심지에는 주요 증권거래소뿐만 아니라 국내 및 국제 금융기관 및 보험회사들이 있다.

 

 

 

 

 

 

 

 

 

 

브뤼셀에는 유럽 공동체(EC)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같은 국제기구의 본부가 있으며, 국내 및 다국적 기업들의 지역사무소들이 있다.

중앙 대로 근처에는 대(大)광장(옛 도심지의 중심부)과 고딕 양식의 시청박물관이 포함된 왕궁(1873~95 재건) 등이 자리잡고 있다.

 

기념물로는 오줌 누는 어린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는 마네캉피 분수(1619)가 있다.

도심의 동쪽 시가지에는 왕궁과 국가궁전을 포함하여 주요정부청사들이 들어서 있다.

부근에는 알베르 1세 왕립도서관, 현대예술 박물관, 고대예술 박물관, 예술궁전을 포함한 몇 개의 문화센터가 있다.

 

프랑스어 사용 학부와 플라망어 사용 학부로 나누어져 있는 브뤼셀자유대학교(1834) 이외에 브뤼셀의 학문기관으로 생루이스 연구소, 몇몇 왕립학회 및 기타 여러 연구기관과 대학들이 있다.

브뤼셀에서는 연극과 음악 활동도 활발히 행해지고 있다.

인구:시 133,900(2000), 도시권 999,899(2004).

 

참고/브리테니커 백과

 

 

 

 

 

 

 

 

 

 

 

 

 

 

 

 

 

 

 

그랑플라스 (La Grand-Place)

<시청사 건물>

 

<광장을 중심으로 왼쪽이 시청사,맞은 편의 왕의 집)

 

드디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 중 하나인 벨기에 브뤼셀의 그랑플라스 광장에 들어섰다.

 

오래전 왔었던 곳으로 조금은 익숙한 풍광이다.

그래도 예전에 왔을땐 년초, 그것도 일요일에 와서 한 겨울의 쓸쓸한 풍광이 자리를 메웠다면....

 오늘 시야에 들어오는 풍광은 그야말로 활기참 그 자체다.

당연히 아름다운 광장의 본 모습을

이제서야 제대로 보는 듯한 느낌이다.

 

그랑플라스는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광장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뽑히며, 벨기에 서북부에 있는 브리헤는 북쪽의 베니스로 불리는 운하 도시로 도시 전체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중세도시다.

이 두 곳 외에도 벨기에에는 8개의 세계유산이 더 있다.

 

그랑플라스는 큰 시장,또는 큰 광장이라는 의미로 빅톨 위고는 이곳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 이라고 극찬했던 곳이다.

주로 17세기 후반의 고딕양식, 바로크 양식, 르네상스 양식등 각종 화려한 건축 기술들이 총 망라되어 있어 유럽적인 분위기를 잘 느낄 수 있으며, 월요일을 제외한 모든 요일에는 꽃시장이 열리고 각종 행사와 이벤트가 끊이지 않아 항상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다. 

 

199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본래는 낮은 시장이라는 뜻의 네더마르크트(Nedermarckt)라 불렸다가 18세기 중.후반기부터 '그랑플라스' 라는 이름으로 붙여졌다.

 

 

 

 

 

 

 

저습지였으나 12세기경에 말라버린 이곳에 중요한 건축물들이 대거 들어서게 되었다.

14세기 후반 광장의 남쪽에 지어진 거대한 직물회관(클로스 홀-Cloth Hall)과 1405년 북쪽에 세워진 브레드 홀(Bread Hall) 등이 그들이다.

이 브레드 홀은 1512년에 철거되고 '왕의 집(la Maison du Roi)이라는 이름의 대형 건물로 대체되었는데, 실지로 이곳에 왕이 산 적은 없다고 한다.

 

1695년 8월에는 프랑스 루이 14세의 명령에 의해 브뤼셀은 대규모 폭격을 받았는데,그때 받은 폭격으로 그랑플라스에는 겨우 시청과 왕의집, 그리고 주택 몇 채만이 간신히 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엄청난 폭격에도 불구하고 그랑플라스는 4년 만에 원래의 모습을 완전히 회복할 수 있었다.

 <시청사..>

 

 

 

오홋~

광장에서 아름다운 건축물 못지않게 눈길을 끄는 것....

역시나 거리 화가가 직접 그림을 그리고 그 자리에서 팔고있는 작품들이다.

현장에서 그려진 작품을 보고 있으려니 리얼리티가 훨씬 더 살아나는 듯하다.

문화적인 자유로움도 왠지 더 피부에 와닿는 느낌이고....

또 바로 그게 매력이기도 하다.ㅎㅎ

 

 

한 바탕 사진을 찍고는 일행들과 헤어졌다.

나는 꽃과 사람들과 광장의 풍경이 어우러진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카메라 앵글에 사로잡혔다.

모두들 '오줌싸게 동상'을 보러 간 사이에 나는 그냥 광장을 누비고, 광장으로부터 뻗어나간 골목들을 걸었다. 

 

 

 

 

 

 

 

 

 

 

 

<오른쪽 건물이 왕의 집>

 

<Carolo Alexandro 동상이 꼭대기에 있는 Maison des Brasseurs 라는 건물에는 양조 박물관이 있으며

맥주와 관련된 전시품 뿐만 아니라 길드 하우스의 내부를 살펴볼 수 있는 장소이다.> 

 

 

 

 

꽃과 사람들로 가득한 까페와 그 뒤로 배경이 되어준 아름다운 시청사와 왕의 집....

그 외에도 브라반트의 공작, 에스파냐의 왕, 작은 나팔, 백조, 맥주 양조자의 저택, 사슴,재단사의 저택 등등

각각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건축물들은 더없이 매력적인 모습으로 렌즈에 잡혀주었다.

흥분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아름다운 시청사 건물은 아헨의 대성당 외벽처럼 수많은 조각상이 건물 외벽을 빼곡히 메우고 있다.

 

 

 

 

 

 

Ernesto Cortazar - Just For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