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클래식(2009년)

길샤함&세종솔로이스츠 /12.11.금/세종대극장

나베가 2009. 12. 15. 16:59

 

 

 

 

 

 

공연날...후기....

 

길 샤함.....

도대체 어떤 연주자길래 일숙언니가 휴가까지 내고 머언~ 울산까지 내려가서 공연을 보고왔을까....

언니가 ' 너무나 좋았다!!! '고...

연주뿐만이 아니라 공연 분위기도 너무나 좋았다고...감탄의 일색에 괜히 나도 내려가서 볼걸 ...했던 연주자.

 

그러다가  모 사이트에 들어가  당시의 길 샤함 울산 연주회가 감동의 일색인 걸 보고는 한번도 연주자를 본적도 없은 사람인데 언제나 이 연주자의 연주를 들을 수 있을까~ 학수고대를 하게 했던 연주자...

 

아니~

그런데 어느날 소문도 없이 연주자의 이름이 떠 있는게 아닌가!!

더구나 내가 좋아해서 이들 연주자의 연주는 한번도 놓치지 않고 다니는 세종 솔로이스츠 와 함께한다니....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서둘러 예매를 했다.

그리고도 아쉽다면  이를 기다리기엔 너무나 머언~ 12월이었다는 것!

 

그러나 내 생활이 정신없이 바쁜고로, 어느새 길샤함 공연은 눈앞에 선뜻 와있었다.

그러나 또 쬐끔 아쉬움이 생겼다면 고 사이에 같은 날 하필 아람누리에서  '하이든 트리오'의 공연이 생겼다는 것...

아!! 동네에서 이렇듯 좋은 공연이 있을때 마다 이미 다른 공연이 예매되어 있거나 또 다른 좋은 공연이 겹쳐 있다는 것이,

그래서 모처럼 시간적으로나 육체적으로의 호사를 누리지 못함에 안타까움이 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야 뭐...그리고 오늘 길 샤암 연주회도 교통이 판타스틱한 세종이잖아??

하~~근데 세종 체임버홀이 아니고 그 어마 어마하게 큰 세종 대극장이라니//// 

거대한 규모의 오케스트라 공연도 아니고....안습이다.ㅠㅠ 

 

세종 공연은 다른 공연장과 달리 시작시간이 7시 반인 지라 집에서 가까워도 그렇게 여유가 많지는 않다.

그래서 오늘도 여전히 빠듯...스타벅스서 나를 기다리던 야옹이 뭥뭥이는 지친 채

그냥 발걸음을 세종으로 향해야만 했다.

전날 예쁜 털실을 본 탐욕으로  목도리를 짠다고 밤을 샌지라, 혹시라도 졸을까봐 

난 세종 로비에서 그 짧은 시간에 커피를 한잔 마시고 홀에 들어갔다.

 

세종 솔로이스츠 단원들이 무대서 들어섰다.

어?? 그 사이 단원들이 많이 바뀌었다~~??

익숙한 얼굴들이 많이 보이지 않음에 약간은 섭한 마음이...

그런 느낌도 잠시...드디어 고대하던 길 샤함이 들어섰다.

와우~~

왠지 그렇게도 연주를 잘한다고 하니, 오매불망 고대하며 맘속에 그려지던 연주자는 좀 경력이 있어보이는  늙수그레한 모습이었었는데....이건 완전 미끈 매끈한 청춘남....

오옷~

거기에다 입고리가 귀에까지 닿을 듯 지어주는 미소는 소년같은 청순함까지....

참 웃긴것이 실물을 보기까지 내 블로그에 이미 그의 환하게 웃는 모습의 사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맘속 이미지의 모습이 더 강해서 그런 나이 지긋한 연주자가 나올것이라고 고대했다는 것이다. ㅋㅋ

 

먼저 세종 단원들의 기인 서주가 연주되었다.

길 샤함은 고개를 푸욱 떨구고 기다리고 있다가 악장을 바라보며 씨익 또 웃어준다.

그러기를 연주내내....나는 그런 살인적 미소를 보고 있다가 망원경을 악장에게 돌려봤다.

헉!! 그런데 악장은 악보를 보며 연주하기에 여념이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면...길 샤함의 이 미소는??

그래~ 선율과의 교감을 나누는 미소였던 것이야~

 

그는 시종일관 연주에 몰입했다가 또 미소를 던져주기도 했다가 또 격정적이기도 했다가를 반복하며 사람들을

빨아들였다.

정말 깨끗하고 아름답고 매혹적인 소리..

가끔은 격앙되어 들리는  현이 부딪히는 소리라든가...하는 일체의 잡소리도 없이 오직 바이올린 선율만이 있을뿐이었다.

아니, 이상하리 만큼 객석에서 조차 미동도 없었다.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 사람들이 말하던 울산 연주회에서의 분위기가 이거였구나!! 하는 것을...

그의 연주는 그런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마력같은 힘을 지니고 있었다.

 

어느새 시간의 흐름도 망각한 채 1부의 연주가 끝나버렸다.

길샤함은 세종단원들을 향해 박수를 힘껏 쳐 주었다.

그들 연주자 모두는 얼굴에 미소를 함뿍 담은 채 서로 얼굴을 맞대고 기뻐하였다.

커튼 콜은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그의 앵콜 연주는 없었다.

아아~~ 너무해!!

우린 2부에까지 길 샤암이 나와서 연주하리라곤 미처 생각 지 못하고 앵콜 연주 하나 없음에 섭섭해했다.

그래도 너무나 훌륭한 연주를 들려줬음에 만족하고 로비로 나왔다.

그런데, 2부...멘델스존의 현악 8중주 연주에서도 길 샤함이 나온게 아닌가!!

헉!! 소희씬 바쁘다고 1부 길 샤함 연주만을 보고 간다고 공연장을 나섰건만...ㅉㅉ

 

멘델스존의 8중주 연주에서도 당연히 길 샤함 연주는 빛이 났다.

 

우린 너무나 행복했다.

"세종 체임버홀도 아니고, 대극장에서 이렇듯 매혹적인 바이올린 선율을 듣다니..."

 

이렇게 감동의 도가니에 빠진 날은 쉬이 발걸음이 집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7시반에 시작해서 항상 여유가 있기도 하지만,,,우린 저녁도 미처 먹지 못해서 배도 고픈 터

처음으로 가보는 세종극장 뒷편 골목으로 들어가 봤다.

영화속에서나 봤음직한 복잡하고 누추한 좁은 골목엔 수많은 초라한 70년대 간판이 그대로 걸려있는 채 영업을 하고 있었다.

세상에나~ 이런 곳이 있었다니...

 

"아무데나 들어가자!! 원래 이런데가 음식은 다 맛있어~ 진짜 원조인 거쥐~"

사실이었다.

우린 앞으로 이 곳이 개발되어 다 없어지기 전에 이곳을 섭렵하기로 했다. ㅋㅋㅋㅋ

그리고

마지막으로 커피 한잔까지....

 

아~~

근데 사고를 쳤다.

핸드폰을 커피숍에 놓고 간것...

다행히 한 정거장 가서 눈치를 채서  문닫기 직전 핸폰을 찾았다.ㅠㅠ

에잇~다 좋았는데....2% 부족했던 날....

 

 

 

 

 

 

 

 

하이든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1악장 (Allegro Moderato)
Salvatore Accardo, Violin
English Chamber Orchestra


2악장 (Largo)
Salvatore Accardo, Violin
English Chamber Orchestra


3악장 (Allegro)
Salvatore Accardo, Violin
English Chamber Orchestra

 

 

 

하이든 [Franz Joseph Haydn 1732∼1809]

로라우 출생.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린다. 100곡 이상의 교향곡, 70곡에 가까운 현악4중주곡 등으로 고전파 기악곡의 전형을 만들었으며 특히 제1악장에서 소나타형식을 완성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만년에는 미사곡과 《천지창조(天地創造) Schpfung》(1798), 《사계(四季) Die Jahreszeiten》(1801) 등 오라토리오풍의 교회음악의 명작을 남겼다.

오스트리아 동부의 작은 마을에서 수레를 만드는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5세 때 친척인 초등학교 교장이자 교회음악가인 프랑크라는 사람의 집에 가서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1740년 빈의 성스테파노대성당의 소년합창대에 들어간 그는 당시의 오스트리아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의 총애를 받았으나 1749년 변성기에 들어가자 합창대를 나와 그때부터 빈에서 자유롭기는 하였지만 불안정한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 생활이 1759년까지 10년간이나 계속되고 그 동안의 자세한 경위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독학으로 작곡을 공부하는 한편, 어느 시기에는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인 N.포르포라에게 작곡을 배우기도 하고 음악 애호가인 귀족 툰백작부인의 하프시코드 교사가 되기도 하였으며, 오스트리아의 귀족 퓌른베르크남작 집안의 실내음악가로 고용되기도 하였다 한다. 또 스테파노대성당 등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거나 가수로서 예배주악에 참가하기도 하였으며 밤에는 세레나데악단에 참여하여 빈거리로 나와 돈을 버는 일도 하였다.

이처럼 고생을 하면서 음악과 더불어 살아간 그는 10년 후인 1759년 마침내 보헤미아의 모르친백작 집안 궁정악장(宮廷樂長)에 취임하였다. 보헤미아에 부임한 하이든은 그곳에서 초기의 교향악과 관악합주인 디베르티멘토를 작곡하였다. 그러다가 백작의 집안 재정상태가 핍박하여 악단이 해산되는 바람에 다시 실업자가 되어 빈으로 돌아왔고, 1760년 11월 가발업자의 딸 마리아 안나 켈라와 결혼하였다. 1761년 5월 1일 하이든은 헝가리의 귀족 에스테르하지후작 집안의 부악장(副樂長)에 취임하였다. 당시의 악장은 G.베르나였으나 그가 사망한 1766년부터는 하이든이 명실상부한 그곳 악장으로 승진하였다.

에스테르하지후작의 집에서는 하이든이 1790년까지 거의 30년에 가까운 세월을 충실한 악장으로 근무하였다. 그 동안에 많은 교향곡·현악4중주곡·오페라 등을 작곡하였는데 특히 교향곡과 현악4중주곡 등 실내악·클라비어소나타 등 기악곡에 있어서는 고전파의 규범이 되는 형식을 창조하고, 1781년에는 소나타형식의 전형으로 간주되는 6곡으로 된 《러시아4중주곡》을 완성하였다. 이것은 모차르트에게도 영향을 준 작품이다. 그리고 1780년대에는 파리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6곡의 《파리교향곡》을 비롯하여 《토스토교향곡》(2곡) 《도니교향곡》(3곡) 등 명작을 잇달아 작곡하였다. 1790년 9월 그가 오랜 세월을 모시던 니콜라우스 에스테르하지후작이 사망하자 그는 명예악장이라는 칭호를 받음과 함께 그 직을 물러나 빈에서 살았다.

이 무렵 독일의 바이올린 연주자로서 런던에서 오케스트라를 거느리고 성공을 거둔 J.D.잘로몬의 권유로 그는 영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1791년부터 이듬해에 걸쳐 런던에서 오케스트라시즌에 출연하였는데 그는 《잘로몬교향곡》(제1기, 6곡)을 작곡하여 크게 성공하고,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명예음악박사의 칭호를 받았다. 그런 성과에 크게 자극을 받은 하이든은 1794년에서 이듬해에 걸쳐 다시 영국을 방문, 《잘로몬교향곡》(제2기, 6곡)을 작곡하였다. 만년의 하이든은 다시 에스테르하지 집안의 악장으로 되돌아갔으며 뛰어난 미사곡 6곡을 작곡하고 또 두 개의 오라토리오의 대작 《천지창조》와 《사계》를 작곡하였다.

하이든은 젊은 모차르트와 친교가 있었는데 첫번째 영국 체류 중이던 1791년에 모차르트는 35세로 세상을 떠났다. 런던에서 독일로 돌아가던 1792년, 본에 들렀던 하이든은 거기서 처음으로 젊은 베토벤을 만났으며 그후 잠시 빈에서 그에게 음악을 가르쳤고 베토벤이 왕성한 작곡활동을 하게 될 무렵에는 은퇴하여 여생을 즐겼다. 그리고 나폴레옹의 제2회 빈 공략의 포성을 들으면서 77세의 나이로 생애를 마쳤다.

글출처: 웹사이트 / 음원출처: http://boyunglee.com

 

 멘델스존/Octet E Flat Major Op.20 For Strings

현악 8중주는 현악 4중주곡을 두 배로 편성한 16세 때 작품이다. 

 우아하고 색채적이며 화려한 환상미에 넘친 이 곡은

구성이 뛰어나고 실내악의 효과를 극대화 한

교향악적 울림을 가지고 있는 이 부류의 작품으로는

가장 잘 알려진 곡이다

 
2. Andante
06_-_CD25_
 
3. Scherzo: Allegro Leggierismo 
07_-_CD25_
 
4. Presto 
08_-_CD25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