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글들.../책....

지상에 숟가락 하나-현기영

나베가 2006. 4. 27. 01:57

이 책을 읽기  전에, 이 책이 작가의 유년시절을 그린 책이란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무척 재미있을 것이란 생각이 먼저 들었던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게 까마득하게 시간이 흐른 어린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암울했던 우리 현대사의 한 단면을 그렇게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게 믿기지 않을정도였다.

오히려 역사적 사실로서 교과서적으로 공부를 했다면 그 아픔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불운했던 가정사를 비롯해서 아버지에 대한 어린시절의 적대감과 사춘기 시절에 겪은 성의 묘사등  숨김없이 표현한 용기도 작가 답다고 느껴졌다.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을 어쩌면 그렇게도 되살릴 수 있었는 지....

그 어린나이에....아버지마저 부재한 -증오심마저 들게한- 힘들고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그토록 건강하게 자아정체성을 확립해 나가고 있음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평생에 할일을 이미 그 나이에 시작이 되고 있었음에, 우리 아이들의 지금의 삶을 한번 돌아보게도 했다. 

작가와는 나이차도 있고, 무엇보다 여자이기때문에 작가와 똑같은 느낌으로 느낄 수는 없었지만....같은 연배이고 같은 남자라면 그 때가 그리워서 눈물이라도 훔치면서 이 책을 읽었으리라 생각들었다.

그의 중학시절의 내용을 읽으면서는 나도 옛생각이 그대로 떠올라서 정신없이 웃다가도 가슴이 찡하기도 했으니까....

특히 쏟아지는 잠을 쫒기위해서 쓴 비상수단 - 석유 남폿불 대신에 양초에 불을 붙이고 촛불이 다 탈때까지 잠들지 않기 위해서 애쓴모습. 그것도 못 미더워 식칼까지 그 옆에다 갖다놓았다는 대목에선 박장대소를 하였지만.....작가가 그 청년시절을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 지 극명하게 나타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 옛날 수마를 쫒기위해 애쓰던 우리들....노력하던 우리들도 생각났다.

 

이토록 유년의 기억을 쫒아 찾아간 그 시간 여행들... 더우기 글로써 되살릴 수 있었던 작가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그 말따나  지나간 인생을 다시 한 번 살아본 느낌이었을 테니깐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살아온 날들도 되돌아 보게 되었지만, 더불어서 우리 아이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했다.

어리게만 보이는 우리 아이들에 대한 끝없는 간섭...

지칠줄 모르고 빨라지고 있는 이 속도의 시대에 정신없이 한쪽으로만 몰고가는데 일조하고 있는 나...

애들에게 여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렇듯 자신의 삶을 추억할 수 있는 삶의 거리가 있을까?

나름대로의 고통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었는가?

책하나 제대로 읽을 여유를 가지고 있지 못한 우리애들은 삶의 모티브를  어디서 찾고 있는 것일까?

시작부터 끝까지 '시험'과 '경쟁'이라는 압박감속에서 언제나 헤어날 수 있을 것인가?

진정 그들이 가고 싶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정말 중요한 것은  어린시절과 청소년 시절의  여유에서 얻어지는 마인드일텐데...

그런데도 어쩌지 못하고 시류에 휩쓸려 내 몰고 있으니....

그 어떤 시절보다도 부모의 용기가 필요한 때인지도 모르겠다.

 

훗날에 추억거리를 만들기 위해서  사소한 글들을 써놓고 있는 요즈음의 나에게 아주 유효적절했던 책이었다.

먼 훗날을 미리 그려보며 웃게 만든 책이었다.

 

********************************

 

 숨죽이고 화면을 응시하던 나는  문득, 그 세 할머니   중에 한 분이 나의 옛 담임선생님이라는 걸 알아본 것이다.......45년 세월을 단숨에 뛰어넘고 전광석화처럼 나에게 달려온 그 이름, 그 생생한 이름과 함께 주름진 노인의 얼굴은 어느덧 스무 살 안쪽의 아리따운 처녀 선생의 모습으로 변하지 않던가!  그것은 형언하기 어려운 벅찬 감동이었다. 그렇다! 내가 이 글을 쓰면서 보람을 느낀다면, 잊혀진 과거로부터 기적처럼 다시 태어나는 그러한 순간들 때문이다. .......나는 마치 그때 그 순간을 다시 한 번 사는 것처럼 희열에 휩싸이는 것이다.

 

폭풍의 밤이 무서웠던 어린 시절, 광란의 밤이 물러간 뒤, 새 아침은 그러한 모습으로 밝아왔던 것이다. 위대한 아침, 시련을 이겨낸 장하고 거룩한 신생의 빛, 아마도 나는 그러한 아침으로부터 진정한 기쁨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깨달았을 것이다. 진정한 기쁨은 시련에서 온다는것을. 신생의 찬란한 햇빛 속에서 종횡무진 환희에 찬 군무를 벌이던 제비 떼, 그 눈부신  생명의 약동! 실의에 빠지기 쉬운, 변덕스러운 성격의 내가 신통찮은 삶일망정 그런대로 꾸려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러한 아침의 기억들 덕분이 아니었을까?  삶이란 궁극적으로 그러한 아침에 의해 격려받고, 그러한 아침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리라.

아침으로부터 병든 자는 삶의 의욕을 얻고, 절망한 자는 용기를  얻고, 그리고 용기 있는 자가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따라 더 밝고 더 아름다운 아침을 위해 기꺼이 목숨 바칠 결심을 하는 순간도 그러한 아침의 햇빛 속에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