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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증-고은주

나베가 2006. 4. 27. 01:56

'사소한 편지'란 소제목을 걸고...

벤처 케피탈리스트인 김서인이 중견작가 신유진에게 보낸 .....

교통사고로 신유진이 죽어 끝내 받지 못한...

 

" 너는 내게 예쁜 발코니가 딸린 볕이 잘 드는 집.

 나는 마당을 뛰놀며 집을 지키는 검둥개가 되고 싶다." 는

이 기막힌 편지한통으로 글은 시작된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기습적으로 우리를 찾아온다'' 이 편지 또한 내게는 기습이었다. 라면서 .....

 

잡지사 기자이면서 주인공 '신유진'의 친구인 '나(오민영)'에게 유진의 사랑은 조각난 퍼즐처럼 여기 저기 구멍난 모자이크 그림이 되어 던져진다.

'나'는 그녀의 자취를 쫓아 웹하드를 끝없이 두두리며, 마침내 찾아낸 김서인이 유진에게 보낸 편지 24통과 유진의 일기 12편이 맞물리면서 구멍난 모자이크가 완벽한 그림으로 탄생한다.

 

그들의 사랑의 실체를 알아버린 '나'는 그들의 아찔한 사랑에 현기증을 느끼며,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한다.

천성적으로 축축한 것, 눅눅한 것, 뜨거운 것, 끓어넘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나...

그래서 나의 집에는 가스 레인지 대신 버튼하나로 스스로 다되면 열이 차단되는, 전기기구만이 있는....

무엇에 완전히 몰입하지 못하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실용적 목적만 추구했던 '나'는 그래서 이들의 사랑이 치명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자신이 녹아버릴 수도 있는,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어 버리는 거침없는 사랑 앞에서 한없이 가벼움과 건조함으로 살았던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며 준오와의 관계를 정리한다.

피차에 한없이 가벼움으로 만났던 '준오'와의 헤어짐은 단순한 헤어짐이 아닌 '나'의 삶의 자세를 바꾸겠다는 의지를 담고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과정'을 부각시키고 있다.

살아갈 수록 '결과'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며, 겉으로 드러난 것은 더욱 그렇다.

본질은 그 과정에 있으며, 실체는 보이지 않는 다른 곳에 있는 것은 아니냐면서...

 

살아가는 깨닫는 발견하는 과정,

무언가의 존재를 찾아 두리번 거리는 과정,

그리고 그 모든것들의 흔적....

 

서인의 편지와 유진의 일기에 함축된 그들의 사랑이....음악 묘사와 함께 가슴 절절하게 느껴질 만큼 생동감이 있다. 그리고 마치 그녀의 일기는 작가가 말하려는 모든것인것 처럼 느껴진다. 

비록 서인과의 사랑을 끝내 이루지 못하고, 더우기 이 애절한 사랑고백 조차 읽지 못하고

딴 세상으로 갔지마는  작가가 그토록 외친 '과정'에의 몰입으로 그녀는 충분히 행복을 가진 여자처럼 보인다.

두점 사이의 최단 거리는 오로지 하나의 직선밖에 없듯이 ...아무런 조건 없이 몰두할 수 있는 사람, 그 몰두를 통해 내 모습을 투영하는 사람, 그리하여 마침내 나의 존재를 드러나게 하는 사람, 그런사람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그런 사람을 만나 그토록 몰입할 수 있었으니까...

 

열정...

두려움...

도피...

어쩌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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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움을 선택하면 삶이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허무함과 고통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무거워지는 것은 또한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가벼워지는 것도, 무거워지는 것도 마음을 주는 것도 거두는 것도, 모두 우리의 의지대로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두려움....빠져들 때의 상황을 너무도 잘 알기에 차라리 피해버리고 싶은것,

"냉동차에 실수로 갇혔다가 얼어 죽은 남자가 있었어요. 하지만 그 냉동차, 실은 냉동장치가 고장난 상태였대요. 남자를 죽인건 추위가 아니라 두려움이었던 거죠."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왜 그렇게 그를 설득하려고 했는지........

 

사랑의 실체!!  정신없이 휘몰아치다가 결국엔 모든 것을 빼앗고 사라져버리는 그 혼돈을, 그 허망함을.....하지만 그 혼돈을 피할 수 없다는 것도 나는 안다.

 

"결과가 뻔히 보이는데 왜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지?"

"그 결과로 향하는 과정을 생략할 수 없으니까요. 그런 과정의 총합이 곧 인생이기도 할 테니까요. 어쩌면 결과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것인지도 몰라요. 그렇다면 그 결과에 이르는 거리를 최대한 길게 만드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겠죠."

최대한 길게.

그것 이외에 대체 뭘 기대할 수 있을까. 순간의 몰두, 순간의 평화, 순간의 쾌락, 어차피 사랑은 그런 것들의 총합일 뿐이다. 영원을 기대할 수 없다면 순간을 늘여가는 수밖에. 순간에 취해서 살아가는 수밖에...

 

지나간 사랑이 이처럼 객관적으로 보일 때, 그것은 추억조차도 되지 못하고 생의 하찮은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그 황당한 스러짐을 바라보면서 나는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할 힘을 얻는다. 그래, 나는 이런 사람. 자기혐오 마저 넘어서면서 또 다른 설렘을 찾아나서는 사람.

 

설렘과 익숙함과 지루함의 반복, 혹은 변주. 그것이 바로 삶의 실체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어떤 경우에도 영원을 꿈꾸지 않는다. 죽음을 인정할 때 삶이 소중해지듯이 사랑의 영속성을 부정할 때 그 순간이 더욱 애틋해진다는 것도 알고 있다. 삶은 한 번뿐이지만 사랑은 거듭될 수 있으므로 더더욱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것도....

 

그래서 나는 매번 순간의 열정에 몸을 맡기면서 매번 순간의 행복을 누린다. 열정이 식어가는 과정을 알고 있기에 그 열정이 살아 있는 순간의 행복은 더욱 애틋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울면서 그에게 매달리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렇게 매달리는 것을 집착이라고만  여겼던 것은 잘못이었다고,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이라고. 심산유곡에 빠진 사람에게 의연함을 바란다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나는 그때서야 깨닫고 있었다.

 

도저히 벗어날 수 없다면, 최소한 에너지를 다 빼앗기지는 말아야 할터이다. 소유할 수 없다면은 다만 그 소유욕만으로도 충만함을 느끼도록 스스로를 다스려야 할 터.

 

충족- 사실, '정말로' 충족될 가능성은 내게 거의 중요하지 않다. 오직 빛나는 것은 파괴될 수 없는, 충족에의 의지이다. 이 의지에 따라, 나는 표류한다. 나는 억압에서 벗어난 한 주체의 유토피아를 내 안에 만든다.

 

그를 알게 되면서 나 역시 타인을 통해 나를 발견하는 경험을 하고 있는것 같다....

 

이제는 깨어나고 싶다.....하지만 그의 자의식은 더욱 큰 힘으로 나를 이끈다. 그 힘에 이끌려 흔들리면서 나는 스스로 위로한다. 흔들리는 삶은 불행하지만, 이러한 흔들림 조차 누릴 수 없는 삶은 더욱 불행할 것이라고.

 

물고기와의 싸움, 바다와의 싸움,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싸움....그것이 아무리 무모한 것이라 해도 포기하지 않았으므로 노인은 긍지를 얻을 수 있었다. 상대가 거대한 물고기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 또한 이 삶의 망망대해에서 거대한 물고기와 싸워나갈 것이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비유로-

 

그래, 나는 이제 횐상에 몸을 맡기기로 한다. 나를 일깨운 현기증을 진짜라고 믿어보기로 한다. 환상을 버리면 너무 많은걸 잃을 테니까. 환상을 버리고 사랑을 부정하려면 우선 나 자신을 부정해야만 할테니까.

모든것을 받아들이고 나니 이제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