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클래식(2010년)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 내한공연/11.12.Fri.

나베가 2010. 11. 7. 15:41

 

 

 

 

마리스 얀손스,Mariss Jansons (January 14, 1943 -     )

                                                     

 라트비아 태생의 지휘자.

1979년부터 오슬로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해 온 마리스 얀손스(Mariss Jansons)는 이 시대의 가장 훌륭한 지휘자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그는 레코딩,콘서트,투어,수 많은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 출연으로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무명의 오슬로 필하모닉을 이끌고 차이코프스키 등을 녹음하면서 새로운 러시아 지휘자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로린 마젤의 후임으로 피츠버그 심포니를 맡은데 이어 곧 리카르도 샤이를 이어 로열 콘서트헤보우의 포디엄에 올랐다.

또한 현재 로열 콘서트헤보우의 상임지휘자는 물론 바이에른 교향악단의 수석자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전집 녹음은 정열과 중용,화려함과 차분함 등 모든 것을 갖춘 빼어난 레코딩으로 평가받고 있다

마리스 얀손스는 1943년 1월 14일,라트비아의 리가(Riga)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리가음악원을 졸업하고 레닌그라드 필하모니에서 예프게니 므라빈스키(Yevgeny Mravinsky)를 보좌하면서 지휘자를 지낸 아르비드 얀손스(Arvid Jansons, 1914 -    )이다.

유태계였던 어머니 이라이다(Iraida Jansons)는 성악가로 활동하였는데,나치의 홀로코스트로 인하여 리가 게토(ghetto, 유태인 집단거주지역)에서 아버지와 형제를 잃고 라트비아 리가로 숨어 들어 마리스 얀손스를 길렀다.

그는 어려서 아버지로부터 바이올린을 배웠다.

아버지 아르비드 얀손스는 1946년에 전(全) 소련 청년 지휘자 콩쿠르에서 2등을 차지하였고,1952년에 레닌그라드 필하모니의 지휘자로 취임하였다.

이후 장기간에 걸쳐 므라빈스키를 보좌하면서 전임 지휘자로 있었다.

1956년 가족이 다시 모여 생활하게 되자,마리스 얀손스는 러시아의 레닌그라드 음악원에 입학하여 바이올린 공부를 계속하라는 부친의 기대와는 달리 피아노와 지휘를 공부했다.

1969년 빈 음악원에서 아바도,주빈 메타 등이 사사한 명 교수 한스 슈바로프스키(Hans Swarowsky) 밑에서 지휘를 사사하였고,
이어 잘츠부르크에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에게도 지휘법을 배웠다.

1971년,카라얀 국제 지휘 콩쿨에서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주목 받기 시작했으며,카라얀은 베를린 필하모닉의 보조지휘자로 그를 초청했으나 소련당국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후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면서 명성을 쌓았으며,특히 1979년부터 음악감독을 맡았던 노르웨이의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Oslo Philharmonic Orchestra)를 훌륭하게 이끈 공로는 높이 평가되고 있다.

1973년,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Philharmonic Orchestra, 현재의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부지휘자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1979년,마리스 얀손스는 오코 카무(Okko Kamu)의 후임으로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하여 이 악단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 성공하였다.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오슬로를 거점으로 하고 있는 노르웨이의 대표적인 관현악단이다.

노르웨이 최초의 전문 관현악단은 1879년에 에드바르드 그리그(Edvard Grieg)와 요한 스벤센(Johan Svendsen) 등이 주축이 되어 창단한 '크리스티아니아 음악연맹 관현악단'(Christiania Musical Association)이었으나,1차 세계대전으로 운영 상태가 악화되어 해체되었다.

이 악단의 단원들이 음악 애호가들의 사적 지원을 받아 '오슬로 음악애호협회 관현악단'을 새로이 창단했으며,초대 음악 감독으로 요한 할보르센(Johan Halvorsen)과 폴란드 출신의 이그나츠 노이마르크(Ignaz Neumark),핀란드 출신의 게오르크 슈네보익트(Georg Schnéevoigt) 세 사람이 공동으로 취임했다.

이외에도 국내외 유명 독주자들과 지휘자들이 객원으로 초빙되었고,자금 부족으로 인한 운영난에도 불구하고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921년에는 독일 출신의 요제 아이벤쉬츠(José Eibenschütz)가 단독 음악 감독으로 취임했고,1925년에는 노르웨이 방송협회(NRK)와 계약을 맺고 연주회를 정기적으로 방송하기 시작했다.

이후 이사이 도브로벤(Issay Dobrowen)과 올라프 킬란(Olav Kielland),오드 그뤼너-헤게(Odd Grüner-Hegge) 등이 공동 음악 감독으로 활동했으나,2차 세계대전 중에는 나치스 독일의 통제로 인해 침체 상태에 있었다.

이후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Herbert Blomstedt)와 외이빈 피엘드스타(Øivin Fjeldstad),밀티아데스 카리디스(Miltiades Caridis),오코 카무,마리스 얀손스,그리고 2002년 앙드레 프레빈(André Previn)이 뒤를 이었다.

2006년부터는 핀란드 출신 지휘자인 유카-페카 사라스테(Jukka-Pekka Saraste)가 음악 감독으로 취임해 현재까지 재직 중이다.

1979년에 악단 명칭을 현재의 것으로 바꾸었고,얀손스 부임 후 활발하게 진행한 해외 연주 여행과 영국 음반사인 EMI 전속으로 개시한 음반 취입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유럽을 비롯해서 미국과 일본에서 순회연주를 이 악단이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오로지 얀슨스의 조련의 결과였다.

그의 지휘 아래 오케스트라는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오케스트라중의 하나가 되었다.
지난 몇해 동안 얀손스와 오슬로 필하모닉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루체른 페스티벌,에든버러 페스티벌,BBC프롬,바티칸 센터,런던의 로열 페스티벌 홀,빈의 뮤지크베어아인,로열 콘서트해보우,암스테르담,뉴욕의 카네기 홀,도쿄 산토리 홀 등지에서 콘서트를 가졌다.

 

마리스 얀슨스는 오슬로에 가기 전에 므라빈스키의 초청을 받고 보조 지휘자로 1973년부터 쌍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관계를 맺기 시작했었다.
이어서 1985년부터는 음악감독 유리 테미르카노프(Yuri Temirkanov)의 밑에서 이 악단의 수석지휘자로 격상되었고,1997년까지 재임하면서 동 악단과 함께 유럽과 일본,미국에서 연주하기도 했다.
1992/1993년 시즌부터는 런던 필하모닉(London Philharmonic Orchestra)의 수석객원지휘자로 1998년까지 재임하였고,런던 교향악단(London Symphony Orchestra)의 객원지휘자로 활동하면서 말러 <교향곡 제6번> 연주 실황을 녹음하기도 하였다.

1997년 3월,마리스 얀손스는 로린 마젤(Lorin Maazel)의 후임으로 피츠버그 교향악단의 음악감독으로 활약하였으며,2004년 앤드류 데이비스(Andrew Davis)에게 지휘봉을 넘겨주고 사임하였다.

얀손스 재임시절 피츠버그 교향악단은 호화로운 객원지휘자들과 독주자들을 불러들일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연주회의 수준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고 과감히 유럽순회공연을 다닐 정도로 발전의 기세가 대단했었다.

이는 오로지 얀손스의 능력에 의한 것이었다.

얀슨스와 피츠버그 교향악단은 2000년에 유럽의 6개 도시에서 연주했고,2002년에는 호주와 극동에서,2003년에는 뉴욕을 비롯한 미국의 여러 도시들과 서부 해안도시에서 순회연주를 했다.

그는 7년간 음악감독으로 재임하면서 피츠버그 교향악단을 세계 최정상의 수준으로 올려놓았다.

1996년 4월,그는 오슬로에서 푸치니 <라보엠(La Boheme)>의 마지막 소절을 지휘하다 심장 마비를 일으켰다.(그의 부친인 지휘자 아르비드 얀손스도 1984년 연주회에서 할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도중,심장병으로 사망하였다.)

스위스에서 요양을 마친 그는 6개월의 공백기를 거친 후,장영주(바이올린)와 협연 무대로 병석 후 처음 협주곡 레코딩 작업을 재개했다.

전속사는 얀손스를 "올해의 아티스트"로 정하고 순회연주와 레코딩 등 올 한해 다양한 스케줄을 준비했으나 예기치 않았던 건강문제로 일정은 취소되었고,그는 6개월간 안타까운 공백기를 가져야 했다.

그리고 필하모니홀에서 필하모닉을 지휘,장영주와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협주곡>을 실황녹음함으로써 활동을 재개하였다.

 

2003/2004년 시즌 시작과 함께 마리스 얀손스는 독일에서 베를린 필하모닉 다음으로 인정받고 있는 최고의 오케스트라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Bavarian Radio Symphony Orchestra)의 수석지휘자로 취임하였다.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은 2002년 로진 마젤이 수석지휘자의 자리를 사임한 뒤,1년 동안 공백으로 있었다.

얀손스는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과 최초 3년 계약을 했으나,2006년과 2007년에 각각 계약을 연장해 2012년 8월까지 재임하기로 하였다.

2007년,루터교 신자인 얀손스는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과 함께 베토벤 <교향곡 9번 - 합창>을 교황  베네딕토 16세(Benedict XVI)와 7000명의 청중이 참여한 가운데  교황청의 'Papal Audience Hall' 에서 연주하엿다.
이 연주는 세계 각국에 방송되었다..

2004년 1월,마리스 얀손스는 리카르도 샤이(Riccardo Chailly)의 후임으로 네델란드의 자랑이자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인 암스테르담 로얄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Royal Concertgebouw Orchestra)의 여섯번째 상임지휘자로 취임했다.

1888년에 창단된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는 네덜란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국민들의 지대한 사랑을 받고 있는 네델란드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이다.
지금까지 명 지휘자들이 동 악단을 이끌어 왔는데,1895년부터 1941년까지 거의 반세기 동안 이 악단을 이끌어 왔던 전설적인 지휘자 빌헬름 멩겔베르크(Willem Mengelberg 1871~1951)는 RCO를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만드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하지만 멩겔베르크는 나치와 협력한 혐의로 1947년 추방되어 스위스에서 여생을 보냈다.
지금도 그의 영향은 이 악단의 기조(基調)를 형성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며,이 악단을 맡는 지휘자들에게는 떨쳐버리기 힘든 짐이 되고 있기도 하다.
그 후 에두아르트 반 베이눔(Eduard van Beinum),베르나르드 하이팅크(Bernard Haitink),리카드로 샤이를 거쳐 마리스 얀손스에게 지휘봉이 넘겨졌다.
2004년 9월 4일에 있었던 얀손스와 RCO의 취임연주회 실황이 자체 레이블을 통해 음반과 DVD로 발매되어 애호가로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이 취임 연주 실황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의 <영웅의 생애(Ein Heldenleben)>가 연주 프로그램으로 담겨 있으며 녹음 상태는 매우 훌륭하다.
특히 DVD는 화질과 음향이 매우 훌륭하며 연주 실황과 같이 담겨 있는 다큐멘터리 “The Sixth Maestro”는 RCO의 역사와 지휘자 얀손스를 이해하는 데 좋은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이 취임 연주 실황과 더불어 2003년 6월 6일에 있었던 얀손스와 RCO의 드보르작 <교향곡 9번 “신세계”>도 같이 발매되었는데,이 음반 역시 매우 훌륭한 녹음 상태와 얀손스의 명연이 돋보이는 수작으로 추천할 만한 음반이다.

2006년,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의 지휘봉을 잡아 요한 슈트라우스(Johann Strauß) 일가의 왈츠와 폴카는 물론,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을 맞아 특별히 <피가로의 결혼> 서곡과 요제프 란너(Joseph Lanner)의 <"모차르트 연주자> 왈츠를 연주하였다.

 

음반은 EMI 레이블로 발표되고 있다.

1986년 부터 그는 EMI Classic과 독점적인 계약을 맺어 왔으며,1991년 재계약을 맺었다.
지금까지 베를리오즈,드보르작과 바르톡에서 부터 말러,프로코피에프,라흐마니노프,라벨,레스피기,쇼스타코비치,시벨리우스,스트라빈스키,차이콥스키,바그너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작품들을 포함하고 있다.
오슬로 필하모닉,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베를린 필하모닉,로열 콘서트헤보우,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레코딩했다.

그의 레코딩에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10번>과 <죽음의 노래와 춤(Songs and Dances Death)> 등이 있다.
그밖에도 런던 필하모닉과 함께 한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세헤라자데>와 <스페인 기상곡>,오슬로 필하모닉과 함께 한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제3번>,<제5번>,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 한 쇼스타코비피의 <제1번 교향곡>,<제1번 피아노 협주곡> 등이 있다.

최근에는 오슬로 필하모닉과 함께 레스피기의 <로마 전작 시리즈>,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11번>,빈 필하모닉과 함께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5번>을 발매하였다.
1998년 3월에는 장영주와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 시벨리우스와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4월에는 오슬로 필하모닉과 <World Encore> 앨범을,7월에는 바이올리니스트 프랑크 페터 침머만(Frank Peter Zimmerman)의 협연으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쿠르트 바일(Kurt Weil)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교향곡 제2번>을 발매하였다.

우리 나라 출신의 장영주와도 녹음을 했는데,시벨리우스와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높은 인기를 차지하고 있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mitry Shostakovich)의 최고 해석가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지휘자 예프게니 므라빈스키다.
작곡가와 동시대를 살았던 므라빈스키는 <교향곡 5·6·8·9·10·12번>을 직접 초연했고,특히 <교향곡 8번>은 므라빈스키에게 헌정되기도 했다.
므라빈스키 녹음에서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전집(全集) 형태로 묶여나온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레닌그라드 필하모닉(현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에서 므라빈스키의 부지휘자를 지냈던 마리스 얀손스가 최근 스승 므라빈스키가 못다 이룬 과업을 완성했다.
그가 녹음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전곡(15곡)이 최근 10장짜리 음반 전집(EMI)으로 발매되었다.

첫 녹음이 1991년이니,무려 18년에 걸친 노작(勞作)이다.
므라빈스키는 평생의 ‘음악 반려자’였던 레닌그라드 필하모닉과 반 세기 동안이나 호흡을 맞춰왔다.
하지만 얀손스는 음악 감독을 맡고 있거나 맡았던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과 오슬로 필하모닉,피츠버그 심포니 외에도 베를린 필하모닉,런던 필하모닉,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빈 필하모닉 등 무려 8개 악단을 전집 녹음에 동원했다.
마리스 얀손스의 몇몇 레코딩은 국제적인 상을 수상하였다.
레닌그라드 필하모닉과 함께 연주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7번>은 1989년 에디슨 상(Edison Award)을 수상했다.
로열 콘서트헤보우와 함께 한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 앨범은 도이치 루이스터 상(Dutch Luister Award),오슬로 필하모닉과 함께 연주한 드보르작의 <교향곡 제5번>은 펭귄 상(Penguin Award)을 수상했다.

또한 1995년에 노르웨이 국왕 훈장을 받았고,1998년에는 피츠버그 해리 예술상을,2006년에는 프랑스 칸느에서 "MIDEM 올해의 아티스트상"를 수상하였다.(펌:http://blog.naver.com/chaos719kr/60089862246)

 

 

 

 

 

 

 

 

 

 

 

 

 

 

공연후기.....

 

온 몸을 감싸고 돌았던 전율.....

감동에 겨워 소리를 지를 뻔 했던....주체할 수 없었던 감동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힘들었던 공연이었다.

 

작년인가??....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 순위가 발표되었었다.

놀랍게도 세계 최고라고 내게 깊이 각인되었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재치고 오늘 이 공연의 주체...

암스텔담 로열 콘서트 헤보우 오케스트라가 1등의 자리를 차지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놀라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들의 내한공연이 확정 공지된 것이었다.

Olleh~~

 

이럴때 또 함께 수반되는 것이 혹시라도 이 공연의 티켓 오픈날짜를 놓칠까봐 노심초사함이다.

주변의 아는 사람들 모두에게 부탁을 해 놓는것은 당근이고 나 역시 거의 매일이다시피 금호 홈피를 들락거렸다.

그렇게 금호 평생회원들에게 먼저 티켓팅 자격이 주어지는 걸 알았고 궁언니에게 부탁 ....하늘의 별보다도 따기 어려운

합창석 좌석을 양 이틀...모두 잡았다.

 

그러나 또 하늘의 청천 날벼락 같은 일이 벌어졌다.

하필 이틀째 공연날이 돌아가신 아버님 제사....ㄷㄷㄷㄷ

하늘이 노오래졌다.

그래도 일단 일은 저질렀고, 어떻게 해서든 지 이 공연을 보고자 머리를 굴려보았다.

밤새서 음식장만해 상차림까지 해놓고 나만 살짝 빠지면 안될까???

원래 제사는 남자들만 지내는 거 아니었남??

대신 난 음식 다 차리고 미사....기도...왕창 하면...??

온갖 머리를 굴려가며 핑계거리를 찾던 중, 집안 식구들의 의견이

일주일 상간으로 아버님과 어머님 제사가 함께 있으니 같이 지내자는...

 

오옷~하느님....아버님, 어머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파란만장한 우여곡절 끝에 딸과 생애 최고의 판타스틱한 데이트를 나섰다.

혹시라도 늦장부리다 늦을까봐 아침 일찍부터 화장까지 다 마치고...

그래도 모처럼 딸과의 데이트니 근사한 저녁식사와 커피 타임은 기본....오늘같은 날은 돈도 써 줘야쥐~

맛있는 저녁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티켓을 찾고, 팜플릿을 사고....

콩딱거리는 가슴을 쓰다듬으며 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의외로 빈자리가 많이 보여서 놀라웠다.

생각해 보니, 이들의 공연이 이틀, 바로 겹쳐서 주빈메타의 이스라엘 필 공연이 이틀, 다음주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공연이 이틀,

또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의 최고의 환상발레 공연이 5일....

아무리 상류층의 주머니 사정이 든든하다 해도 시간적으로도 그렇고 또 아무리 매니아라고 하더라도 한달 내내 밥을 굶을수는 없는 일.... 저 빈좌석의 비싼 티켓값을 다 감당하기는 무리이다 싶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무대로 나와 자리를 메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이름만으로도 감동스런 마에스트로 '마리스 얀손스'가 등장했다.

나의 망원경은 그의 얼굴에 꽂힌 채 그를 따라 움직여 지휘대까지 닿았다.

그의 팔이 올라가고 소리가 무대위에 퍼지기 시작했다.

 

와아~~~

이 소름끼침!!

그의 얼굴은 그 순간부터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

입을 쫑긋이 오무리고 똥그랗게 뜬 눈의 눈동자는 어딘 가 무대 위 공중에 떠 있을 소리들을 하나 하나 찾아 콕콕 집어 올리는것 같은 신비로움으로 가득했다.

그렇게 우리에겐 아직 들리지 않는 소리들이 그의 눈동자와 입과 두팔과 다리...아니, 온 몸으로 콕콕 집어낼때 마다

그의 온 몸에서 풍겨나는 소리들이 딱 그만큼....한 치의 오차도 없이 흘러나왔다.

순간 내 머릿속엔 수없이 나를 감동으로 몰고 갔던 거물급 마에스트로들의 얼굴과 지휘모습들이 스쳐지났다.

그중에서 가장 막강한 지휘자....

아바도....

사이먼 래틀....

 

그래~

아바도는 영혼만이 보이는 듯 했었고....사이먼 래틀이지~

그들 볼때도 하나의 판토마임을 보고 있는 것 같았었어~

온통 신비로움으로 가득한....

그런데 오늘 마리스 얀손스는 그보다 더했다.

더 풍부한....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

저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소리 빛깔들이 지금 쏟아져 나오고 있는 거 아냐~

마리스 얀손스의 모습을 연주가 끝날때까지 순간 순간 찍어서 펼쳐 놓으면....얼만큼 될까...

수초마다 변하니까.....0.1 초 사이로 그런 쓸데없는 생각이 스치며 그 시시각각 다른 모습의 사진들이 내 눈앞을 번개처럼 스쳤다.

그건 실로 어마어마함이었다.

 

그렇게 신비로움과 아찔함으로 시작한 베토벤의 레오노레 서곡 3번에 이어 처음으로 들어보는 야나체크의 <타라스 불바>이어졌다.

 

 <타라스불바>는 16∼17세기에  드네프르강() 하류의 섬을 근거로 하는 소위 자포로제 카자크와 폴란드 귀족과의 치열한 싸움을 배경으로, 대장() 타라스 불바를 중심으로 한 카자크들의 불굴의 투혼과 조국애를 그린 작품이다.

타라스는 폴란드의 도시 도브느의 공방전이 한창일 때 적장의 딸과 사랑에 빠져 우군을 배반한 차남을 자기 손으로 처단해 버린다.

장남은 포로로 잡혀 처형되고 그 후 자신도 또한 드네스트르 강변의 전투에서 붙잡혀 화형으로 장렬한 최후를 마친다는 내용.....

첫곡은 적장의 딸을 사랑했던 풍부한 감수성의 소유자 둘째 아들-안드리의 죽음을 그린 내용이고,

둘째곡은 카자크를 위해 싸우다가 적군에게 사로잡혀 처형을 당하는 장남-오스타프의 죽음을 그린 내용이고...

마지막 세번째 곡은 자신-타라스 불바도 적에게 잡혀 화형을 당하는...그러면서도 끝까지 의연함을 잃지않고 장렬히 산화되는....

그러나  카자크가 궁극적으로는 승리할것임을 예언하며 미래의 환상을 보는 장면으로 끝난다.

 

스토리가 어마 어마한 표제음악인것 만큼

마리스 얀손스 표정과 헤보우 오케스트라의 소리는 걷잡을 수 없이 확장되어졌다.

마리스 얀손스의 표정이 활작 개이면 매혹적인 소리는 하늘로 비상해 떠올랐고

그가 표효하면 오케스트라단의 소리들은 거대한 해일을 일으켰다.

사랑에 빠지고 아버지 손에 죽임을 당하는 장면의 애절함과 처절함이 그대로 느껴졌고,

격렬한 전투씬과 장렬한 죽음이...고통이...가슴을 에이고 들어왔다.

그가 숨죽이면 오케소리도 딱 그만큼 숨죽였고, 그가 얼음땡 하고 서면 오케도 그 순간 0.1초의 오차도 없이 얼음 땡이 되었다.

어느 순간 나는 그의 모습에서 검투사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실로 놀라움이었다.

 

아!! 오르간의 소리....

어떻게 무대위에서 연주하는 오르간 소리가 그렇게 아득하게 들릴 수 있지 ? 십리 쯤 밖에서 들려오는 듯한 아련함을 연주해 내다니..

마지막에 승리에 표효하는 ...마리스 얀손스의 모습이라니....

그 어떤 올림픽 경기에서도 볼 수 없었던....

 

기대를 뛰어넘는 짜릿함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2부를 기다렸다.

차이콥스키 스스로가 이제껏 작곡했던 내 작품중 최고라고 ....어느곳 하나에도 나의 깊게 숨겨진 마음을 반영 안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그의 삶 모두가 너무나도 리얼하게 반영되어 있어서 차이콥스키의 '운명교향곡'이라고도 불리는....

너무나도 대단하고 다이나믹하고 변화무쌍한 곡이다.

차이콥스키의 드라마틱한 삶때문에 그의 고통과 번민을 주제로 심지어는 발레 작품까지 이어져 그 또한 소름돋는 감동을 주고

있기도 하지만......

가끔 생각을 해본다.

아이러니하게도 고통은 또다른 축복으로 이어진다고...

어쩌면 그건 진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고통은 그냥 고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희생을 바탕으로 눈부신 아름다움으로 표출되니까....

모든 과학의 발달이 그렇고...

모든 예술가들이 토해내는 아름다움이 또한 그렇고....

세상 보이지 않은 오지와 불행의 끝에서 홀로 뛰어들어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삶이 그렇다.

 

어쩌면 하느님은 잔인하신거야~

그냥 재능과 함께 모든 걸 다 주시면 안되었을까??

그건 불가능 한걸까??

인간의 교만함때문에..??

 

그 짧은 시간에 차이콥스키의 불행한 삶이 이것 저것 그의 음악과 발레들이 오버랩되면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쳐지났다.

드디어 거대하고 장렬하게 4번 교향곡은 시작되었다.

마치 자신의 삶은 불행했지만 그거에 좌절하지 않고 이처럼 아름답고 대단한 음악으로 완성해 세상사람들의 고통과 애환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켜 생을 이어갈 수 있게 했다는....승리를 예언하듯이....

 

1악장과 4악장에서 아프리카 대 자연의 사자가 표호하듯이 연주되었던....

그리고 지구의 핵까지 파고 들어갈 만큼의 깊이로 연주되었던 심오함과

바다가 뒤짚힐 만큼의 파괴력으로 뒤덮쳤던 엄청난 스케일에도 압도당했지만

최고로 전율을 일으켰던 순간은

2악장과 3악장이었다.

 

엄청난 헤일을 잠재우고 오롯이 홀로 쓸쓸하게 오보에가 울려 퍼지는 그 장면은 그야말로 모든 사람들의 고통이 그 순간 치유되는 최고의 선율이다.

그 처절한 외로움....

그리고 점점 확장되어 가는....

아!! 목관악기들의 선율은 이미 천상것이 된 지는 오래고....

정말 하나 하나 음이 살아서 떠다니는....어찌 이럴 수가 있을까...싶을 만큼...

아!! 정말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건 이런거였구나~ 이런 소리가 나는구나~

감동을 주체할 수 없었다.

숨도 못쉬고 목젖이 아플때까지 꺼억 꺼억 감동을 삭히던 여늬때와는 달리 복받치는 감동을 주체할 수 없어서

아~~ 아~~ 아~~ 하면서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보에와 클라리넷의 매혹적인 선율이야  익히 알고있었지만....

파곳!!

파곳의 소리가 이렇게 아름답고 매혹적이고 가슴 절절했었어??

2악장을 끝내고 난 딸에게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딸도 고개를 끄덕이며 같이 주먹을 불끈 쥐어 주었다.

반대쪽 옆자리 궁언니의 얼굴을 바라보며 '죽음이지요??' 했으나 궁언닌 이미 뭐에 홀린 사람처럼 내가 한 말도 듣지 못하는것 같았다.

 

감동을 추스리지 못하고 헤메고 있을때 환상의 피치카토....3악장 펼쳐졌다.

수없이 많은 차이콥스키의 4번 교향곡을 들어왔지만...

그때마다 이 3악장의 피치카토 연주에 열광했지만...

오늘 이들의 연주는 뭐라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그것이었다.

이게....이렇게 연주하는 거였구나~~

이걸 이 100여명의 오케스트라 단원이 명암의 단계를 10단계가 아닌 100단계로 표현해 낸것같은....

0.1초가 아닌 0.0001초의 오차도 없이 마리스 얀손스의 표정을 따라 그대로 만들어 내었다.

꿈의 소리

꿈의 선율...이었다.

 

차이콥스키가 그의 작곡 노트에 적어놓은 것처럼...

"3악장은 이렇다 할 뚜렷한 정서나 확정적인 표출도 없다. 여기에 있는 것은 들뜬 마음과 같은 것이다.

술을 마시고 취했을때 우리들의 뇌리에 스며들어 오는 어렴풋한 모양....그 기분은 명랑하거나 비탄에 빠지기도 하여 빙빙 돌아간다.

별달리 생각하는 것도 없이 공상을 제멋대로 달리게 하면 놀라운 선의 교착에 의한 화면을 즐기게 된다........

이것은 모두 잠자는 사람의 머리속에서 헝클어진 그림.... 현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분간할 수 없는 혼란..."

 

혼란??

헝클어진 머릿속의 혼란을 이런 소리로 표현...마음을 승화시키는 구나~

 

얀손스는 때로는 오른손에 들었던 지휘봉을 왼손으로 옮겨쥐고 맨 손으로 지휘를 하기도 하고

가만히 서서 눈동자 만으로도 지휘를 했고

그런가 하면 4악장 마지막 부분을 지휘할땐 난 느닷없이 어릴 적 교과서에 나왔던 '큰 바위 얼굴'이 솟아 나온 줄 알았다.

거대함...

아니, 감히 거룩함....이었다고.....

 

연주가 끝나고 나는 흥분하며 말했다.

마지막에 얀손스 표정 봤어??

아바도의 거대한 영혼을 봤다면 오늘 난 또다른 표효하는 거대한 영혼을 보았다.

 

오랫만에 기립박수...환호... 열렬히 보냈다.

그리고 이어진 2개의 앵콜....

 

차이콥스키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중 <아다지오>에서 하프소리 ...

발레를 볼때마다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소리가 발레리나가 무대에서 춤출때 나는 하프소리라고 생각했었다.

하프는 그렇게 내겐 큰 공명을 일으키며 환상에 젖게 하는 매혹적인 악기였다.

그러나...오늘....발레리나도 없는데.....아!!~~ 정말....

그런 별빛이 쏟아지는 하프의 선율은 처음 들어봤다.

 

첫 앵콜이 끝나자 마자 또 벌떡 일어서 환성을 지르며 열광했다.

와아~~ 감격!!  감격!!  그런데 두번째 앵콜 들어간다.

불새라니~~

그야말로 모든게 숨도 쉴수 없을 만큼 압도해 왔다.

감히 가위가 눌려서 망원경을 들 힘 조차 없어졌다.

그저 무아지경으로 마리스 얀손스에....그리고 그와 일체가 되어서 나는 소리들에 압도당해 있었다.

마리스 얀손스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성인으로 우뚝 서서 표효하고 있었다.

감히...정말 감히... 하느님의 영역인 거룩한 존재로 자리매김 되어 있었다.

 

 

최고의 기량을 가진 연주자들로만 구성된 로얄 콘체르트헤보우...

눈빛만으로도 제압하는 카리스마 짱인 67세의 거목 마리스 얀손스...

 

감동을 주체 못해 나의 수다는 집에 돌아오는 버스에서도 계속되었다.

딸이 하는 말....

"엄마, 안 피곤해??"

"엉?? 뭐가 피곤해~ 이렇게 엄청난 공연을 봤는데...에너지가 넘쳐나지~~"

아닌게 아니라 딸인데도 쫌 민망해지긴 했다.

 

내일도 정말 기대된다~

멘델스존과 브람스가 어떻게 또 내 가슴을 울려댈 지....

아니 이들 오케스트라와 마리스 얀손스, 길 샤함까지...

 

 

차이콥스키 작곡노트에서 마지막 악장에 쓴말을 다시 되새겨본다.

"제 4악장. 당신이 자기 자신속에 환희를 찾지 못한다면 주위를 살펴보는 곳이 좋습니다.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삶을 즐거워 하고 환락에 몸을 던지는 가를 보는 것이 좋습니다.

 민중의 축제일의 묘사.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고 우리들이 자기를 잊혀지느냐 잊혀지지않느냐 할 때, 패배하지 않는 운명은 다시 우리들 앞에 나타나서 그 존재를 상기시킵니다.

아이들은 우리들에게 관심을 갖지않습니다. 그들은 우리들을 돌아다 보지 않고 또한 우리들이 외롭고 슬프다는 것을 보기위해서 발을 멈추려 하지도 않습니다. 얼마나 그들은 유쾌하며 즐거운 것입니까!

그들의 감정은 소박하고 단순한 것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세상은 비애에 빠져있다"라고 할 수 있을까요?

행복은, 단순하고 소박한 행복은 아직 존재합니다. 사람들의 행복을 기뻐하십시요.

그러면 당신은 더욱 살 수 있을 것입니다." 

 

 

 

 

 

 

 

 

 

 

 

 

 

 

 

 

■ 참고

 

*.마리스 얀손스의 음반을 다시 들으며 - 글 : 최은규 (음악칼럼니스트)

        1.EMI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3번 & 제14번

        2.RCO Live 말러 교향곡 제6번

        3.RCO Live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7번

 

바야흐로 마리스 얀손스의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지난 2004년 9월 로열콘서트헤보오케스트라(RCO)의 상임지휘자로 취임한 이후,얀손스의 명쾌하고 설득력 있는 음악은 점점 더 많은 이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얻어내고 있다.

오슬로 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재직할 당시 이 무명의 오케스트라를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로 끌어올리며 일약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그는, 피츠버그심포니를 거쳐 RCO의 상임지휘자로 취임하면서 음악적 변화를 거듭해왔다.

베를린필과 함께 했던 실황 영상물에서 볼 수 있는 RCO시대 이전의 얀손스는 매우 다이내믹하고 드라마틱한 연주를 들려준다. 그의 음악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단순명쾌하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복잡하고 난해해 보이는 음악이 그의 손을 거쳐 이해하기 쉬운 명확한 구조로 거듭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무척 유쾌한 일이다.

특히 적절한 시점에서 강렬한 클라이맥스를 시원하게 터뜨리는 그의 호탕한 연주는 듣는 이의 가슴을 벅차오르게 한다.

때때로 힘이 넘치는 정력적인 연주와 과격한 악센트는 다소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바로 그런 폭발적인 에너지와 과장된 표현으로 인해 그의 음악은 대중적인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2004년 9월 RCO의 취임과 더불어 얀손스는 음악적으로 새로운 도약의 시기를 맞이했다.

취임 기념연주회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애’를 지휘한 얀손스는 그 특유의 다이내믹한 에너지에 세련미와 위엄을 추가하면서 더 한층 거장적인 풍모를 보여주었다.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홀의 탁월한 음향과 RCO의 뛰어난 기량이 이런 변화에 일조한 바도 없지 않았겠지만,확실히 그의 음악적 호흡은 전보다 더 한층 더 깊고 길어졌다.

얀손스의 음악적 변화의 흔적은 최근 속속 발매되고 있는 그의 음반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최근 EMI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전곡 녹음 프로젝트의 마지막 과제인 교향곡 3번과 14번 음반으로 쇼스타코비치 사이클을 멋지게 완성해낸 바 있다.

교향곡 14번은 성악이 들어가는데다가 편성이 특이해서 결코 연주하기가 쉽지 않지만 얀손스는 그의 최대 장점인 명쾌한 해석력을 무기로 음악적 흐름을 쉽게 풀어나간다.

 

이와 함께 최근에 발매된 RCO 실황음반들은 음질에 있어서나 연주의 질에 있어서나 최상급이다.

그 압도적이면서도 명징한 사운드는 음악을 떠나 그 소리 자체만으로도 우리를 황홀케 한다.

말러 교향곡 6번 음반에서 얀손스는 적절한 템포 설정과 추진력 있는 리듬감으로 설득력 있는 연주를 들려주었으며,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 음반에서 극적인 드라마를 생생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얀손스가 RCO 상임지휘자 취임 이후 더불어 이처럼 성공적인 연주를 거듭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음악적 능력과 더불어 탁월한 커뮤니케이션 기술 덕분이리라 생각된다.

얀손스의 리허설 장면을 담은 필름을 보며 그의 효율적인 리허설 진행방식과 음악적 전달능력에 감탄한 적이 있다.

지휘자가 갖춰야할 가장 중요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그가 앞으로 RCO와 함께 빠른 속도로 음악적 도약을 거듭하리라 믿는다. 앞으로 그의 음악행로에 큰 기대를 걸고 싶다.

 

 

 

 

 

 

 

 

 

<사진 펌/ http://blog.naver.com/chaos719kr/60089862246>

 

 

 레오슈 야냐체크(1854~1928)에 대하여

http://billybudd.blog.me/100113400790 (클릭)

 

첫번째 앵콜곡/ 차이콥스키 <잠자는 숲속의 미녀>중 아다지오 듣기

http://blog.naver.com/tscha953/30092566052(클릭)

 

두번째 앵콜곡/ 스트라빈스키 <불새>중 피날레 듣기

http://blog.naver.com/abraham70/100113665674(클릭)

 

 

 

차이코프스키 / 교향곡 4번 (Symphony No.4 in F minor, Op.36) - Leningrad Philharmonic Orchestra

 

이 곡은 차이코프스키의 6개의 교향곡 가운데에서 가장 변화가 많고 또한 가장 열정적인 곡으로 뚜렷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어서 순음악형식을 취하면서도 표제악적인 요소가 짙다. 여기에 나타난 것은 고뇌하여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이며 인간을 막다른 골목까지 몰아치는 운명의 마수이어서 처참한 느낌을 듣는 사람에게 던져준다. 극도의 멜랑콜리한 감성과 광분적인 정열사이의 갈등, 또는 회환과 낙관적인 마음간의 갈등은 차이코프스키의 본성이었다. 마음 깊은데서 우러나온 패배의식뿐만 아니라 불같은 열정의 분출은 차이코프스키의 창작열에 불씨를 당겼다. 차이코프스키의 독특한 특성인 선율의 어두운 아름다움과 구성의 교묘함, 그리고 관현악의 현란한 묘기등이 이 곡의 가치를 한층 드높여준다.

차이코프스키는 그의 친구 작곡가 타네에프에게 "제 4교향곡의 한 마디라 할지라도 내가 진실히 느낀 것을 표현시키고지 않는 것이 없으며 또한 나의 깊게 숨겨진 마음을 반영 안하는 것이 없다"고 써보냈다. 또한 성 페테스부르크에서 1878년 2월 22일의 연주를 마친 뒤 자신의 친구에게 "이곡은 내가 작곡한 작품중 최고"라는 말이 담긴 편지를 보냈다. 이 곡은 차이코프스키가 불행한 결혼에 괴로워하던 시대의 산물로 그 괴로움이 무척 리얼하게 반영되어있어서 차이코프스키의 "운명 교향곡"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1악장 - Andante sostenuto - Moderato con anima


1악장 - Andante sostenuto - Moderato con anima
Leningrad Philharmonic Orchestra / Evgeny Mravinsky, Cond

서주는 안단테 소스테누토, F단조, 3/4박자, 소나타형식이다. 호른과 파곳만의 최강주로 격렬하게 나오는 선율은 전곡의 주된 테마인 운명을 나타내며 이것이 반복되면서 확장되는 모습을 보인다. 주부로 들어가서 모데라토 콘 아니마 F장조, 9/8박자 ("원무곡의 움직임으로")로 바뀌며 현으로서 시름에 잠긴 듯한 괴로움을 표현하는 제1주제와 감미로우면서 서정적인 2주제가 클라리넷의 달콤한 소리로 이어진다.이어 제1주제의 변형인 3주제가 뒤를 잇고 다시 주상선율이 나와 전개부로 들어가며 다시 주상선율이 재현부, 마지막으로 주상선율이 나와 종결부로나아간다. 위와같이 2개의 주제가 여러갈래로 발전하면서 인간의 괴로움과 이와는 상반된 꿈에서 맛볼 수 있는 행복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차이코프스키가 폰 메크 부인에게 직접 쓴 1악장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우리들의 교향곡은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주는 이 교향곡 전체의 핵심과 정수이며 주상입니다. 이것은 "운명"입니다. 즉, 행복에의 추구가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막고 평화와 위안이 성취되지 않는 것이나 하늘에는 언제나 그름이 끼어 있는 것을 질투, 깊게 주장하고 있는 숙명적인 힘입니다. 머리위에 언제나 달려있는 다모레스크의 칼처럼 흔들려, 영혼에 끊임없이 독을 부어넣는 힘입니다. 이 힘은 압도적이며 패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에 복종하여 잠잠히 불운을 슬퍼할 길밖에 없습니다 (제 1주제). 절망은 깊어집니다. 도피하여 꿈속에 잠기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제 2주제). 얼마나 즐거운 것이겠습니까. 달콤하고 부드러운 꿈이 나를 포옹합니다. 밝은 세계가 나를 부릅니다. 영혼은 꿈 속에 젖어 우수와 불쾌함을 잊습니다. 이것이 행복입니다. 그러나 꿈일 뿐입니다. 운명은 우리들을 참혹하게 일깨워 일으킵니다 (주상 선율). 우리들의 생활은 괴로운 현실과 행복한 꿈과의 교착에 지나지 않습니다. 완전한 도피처는 없습니다. 인생의 물결은 우리들을 삼켜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2악장 - Andantino in modo di canzona


2악장 - Andantino in modo di canzona
Leningrad Philharmonic Orchestra / Evgeny Mravinsky, Cond

내림 B단조, 2/4박자, 세도막형식이다. 이 악장에서는 그의 독특한 애상, 그러나 밝고 북방적인 전원 무곡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한편,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적적한 기분과 아울러 피로에 지쳐있던 분위기도 엿볼 수 있다. 오보에가 외로운 으뜸선율을 내고 이것이 발전되어 흥분에 가득찬 부선율로 이어지는대 으뜸선율은 여전히 쓸쓸함을 드러내자 F장조의 피우모소의 거칠은 농민무도 혹은 러시아 무곡이라고 할만한 소박하면서 쾌활한 주제가 중간부를 이루며 거칠고 단단한 클라이맥스에 다다른다. 그러나 다시 주부에 돌아가서 으뜸선율은 교대로 여러 가지의악기로 되풀이되며 느리고 목가적인 주제로 표현된 어두운 색조를 표현해주면서 조용히 마친다.

2악장에 대한 차이코프스키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제 2악장은 비애의 다른 일면을 보입니다. 여기에 나타난 것은 일에 지쳐 쓰러진 자가 밤중에 홀로 앉았을 때 그를 싸고 도는 우울한 감정입니다. 읽으려고 든 책은 그의 손에서 떨어지고 많은 추억이 샘솟습니다. 이렇게도 많은 여러 가지들이 모두 지나가 버렸고 사라져 버렸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것이겠습니까. 그래도 지난날을 생각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우리들은 과거를 슬퍼하며 그리워합니다만 그러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용기와 의지는 없습니다. 우리들은 생활에 지쳐버렸습니다."

3악장 - Scherzo - Pizzicato o stinato


3악장 - Scherzo - Pizzicato o stinato
Leningrad Philharmonic Orchestra / Evgeny Mravinsky, Cond

알레그로, F장조, 2/4박자. 제 1부는 현악기만으로 연주되는데 현악기 전부는 피치카토를 계속한다. 으뜸 선율은 초조해있으나 몽상적이면서 황막한 느낌을 느낄 수 있다. 제 2부분은 A장조로 현악기는 침묵하여 목관악기만이 러시아 민속무용을 허물은 것 같은 유쾌한 가락을 탄다. 그것이 ff로 나아가 멈추고 제 3부분은 내림 D장조로 변하여 금관만이 pp로 행진곡모양의 고른음을 낸다. 목관은 도중에 들어와 제2부분과 오버랩된다. 제 4부분은 제 1부분과 같이 현악기만이 피치카토로 으뜸선율을 내며 제 5부에서는 목관이나 금관이 참여하여 여태까지의 선율을 단편적으로 전개시켜 pp로 마친다.

"3악장은 이렇다 할 뚜렷한 정서나 확정적인 표출도 없습니다. 여기에 있는 것은 들뜬 마음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들이 술을 마시고 얼근히 취했을 때에 우리들의 뇌리에 스며들어 오는 어렴풋한 모양입니다. 그 기분은 명량하거나 혹은 비탄에 빠지기도 하여 빙빙 돌아갑니다. 별달리 생각하는 것도 없이 공상을 제멋대로 달리게 하면 놀라운 선의 교착에 의한 화면이 즐겨집니다. 갑자기 이 공상속에 취한 농부와 흙냄새 풍기는 노래와의 화면이 뛰어 들어옵니다. 먼데서 군악대가 주악하여 지나가는 울림이 들립니다. 이것은 모두 잠자는 사람의 머리속에서 헝클어진 그림인 것입니다. 현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분간할 수 없는 혼란입니다."

4악장 - Allegro con fuoco


4악장 - Allegro con fuoco
Leningrad Philharmonic Orchestra / Evgeny Mravinsky, Cond

피날레, F장조, 4/4박자. 자유스러운 론도형식으로 힘찬박력과 빛나는 색채감이 나는 오케스트라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다. 전합주의 ff로 숨막히는듯한 강렬한 제1주제가 나오고 이어지는 제2주제는 러시아민요에 의한 소박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나온다. 다시 1주제가 격렬하게 등장하고 난무 (亂舞)와 같은 제 3주제가 나타난다. 이 세주제는 서로 교대로 나와 각각 서로 얽혀 발전하며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제 1악장의 서주에 나온 주상선율이 안단테를 위협하듯이 나타나 다시 원래의 알레그로로 돌아가서 세 개의 주제에 의한 강렬함이 극도에 달한 종결부를 형성한다.

"제 4악장. 당신이 자기 자신속에 환희를 찾지 못한다면 주위를 살펴보는 곳이 좋습니다.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삶을 즐거워 하고 환락에 몸을 던지는 가를 보는 것이 좋습니다. 민중의 축제일의 묘사.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고 우리들이 자기를 잊혀지느냐 잊혀지지않느냐 할 때, 패배하지 않는 운명은 다시 우리들 앞에 나타나서 그 존재를 상기시킵니다. 아이들은 우리들에게 관심을 갖지않습니다. 그들은 우리들을 돌아다 보지 않고 또한 우리들이 외롭고 슬프다는 것을 보기위해서 발을 멈추려 하지도 않습니다. 얼마나 그들은 유쾌하며 즐거운 것입니까! 그들의 감정은 소박하고 단순한 것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세상은 비애에 빠져있다"라고 할 수 있을까요? 행복은, 단순하고 소박한 행복은 아직 존재합니다. 사람들의 행복을 기뻐하십시요. 그러면 당신은 더욱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작곡과 초연

1876년 말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36세의 차이코프스키는 자신의 마음에 내재되어있는 동성애적인 기질에서 벗어나고자 한 오페라 여가수에 사랑에 빠지지만 매몰찬 거절을 당한다. 그리고 나서 1877년 한 음악원 제자의 권유로 28세의 안토니아 이바노브나 미류코바라는 음악원 여학생을 만나게 된다. 이는 푸시킨의 오네긴에 나데지나 피라레토브나 폰 메크 나오는 결혼과정과 이야기가 흡사한데 다른 점은 오네긴은 그 여인을 거절함으로 평생을 후회한 것이고 차이코프스키는 받아들임으로서 평생을 후회하게끔 되었다는 점이다.

그녀의 폭풍같은 정열은 그를 당황하게 하였고 결국 7월 18일에 결혼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평범한 여자였고 차이코프스키의 예술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차이코프스키의 내적인 동성애의 본능이 정신적 문제를 일으켜 차이코프스키는 그녀의 곁을 떠나게 되었다. 차이코프스키는 모스크바가에 투신자살까지 시도하였으나 사람들의 극적인 도움으로 병원에 입원한 에피소드까지 일으키고 말았다.

정신적 재충전을 위해 스위스와 이탈리아로 요양을 떠나 Clarence에서 Venice로, 다시 San Remo에서 Florence로 옮겨 다니면서 그의 걸작 오페라 "에프게니 오네긴"과 4번 교향곡의 작곡에 전념하였다. 그의 실패한 결혼 2달전인 1877년 5월에 착수한 4번 교향곡은 1878년 요양 여행중이던 1878년 1월 7일에 이탈리아 북서부의 해안 산모레에서 이 교향곡의 관현악 편성을 완성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렇듯 다시 작곡에의 의지를 불태우게 한데에는 또 다른 여인의 힘이 있었는데 그 여인은 철도 갑부의 미망인인 나데지나 피라레토브나 폰 메크부인이었다.

폰 메크부인은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에 깊은 감동을 받고 연간 6천 루불이라는 막대한 연금을 제공하여 차이코프스키가 작곡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후원을 하였다. 이러한 후원은 무려 15년동안 (1876년부터 1890년까지)이나 계속되었다. 이 두 사람은 편지의 왕래만으로 끝까지 서로 한번도 만나지 않았는데 편지는 무척 장황한 내용이었으며 그들의 편지에서 "우리의 교향곡"이라고 표현한 4번 교향곡의 자세한 설명이 의미가 그 좋은 예라 하겠다.

차이코프스키는 4번교향곡의 작곡도중 편지로 "저는 이것을 당신에게 바치고 싶습니다. 당신은 이 속에 당신의 가장 절친한 생각과 느낌이 반영된 것을 반드시 찾아내리라 믿습니다."라고 적었다. 4번 교향곡의 표지에는 "나의 가장 좋은 벗에게"라고 적혀있는데 이것은 폰메 크 부인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하겠다.

초연은 1878년 모스크바의 러시아 음악협회 연주회에서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의 지휘로 행해졌다. 차이코프스키는 이때 이탈리아 여행중이어서 피렌체에 체재하고있었고 그에게 전보로 이 초연의 성공이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