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안나푸르나BC (2013.4)

13.빗속의 울레리-고라파니...히말라야 밀림 속에 빠져들다.(2)

나베가 2013. 7. 10. 00:30

 

 

 

 

 

 

어느덧 시간이 많이 흘러 고라빠니로 가는 밀림엔 나즈막한 어두움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이젠 언니가 지치고 힘들어 하는 모습이 역력히 보인다.

이미 체력의 한계를 훨씬 뛰어넘은 수준까지 온것이다.

평소 하루 3시간 나즈막한 동네 산을 오른것이 다 인 언니가 오늘 도대체 얼마 동안을 걸어 오른 것인 지....

고산 증세까지 온것일까....

벌써 해발 2000m를 훨씬 넘었으니까...

보통은 해발 3000m에서 고산 증세를 보이지만 몽블랑 트래킹에서 정숙언니를 보더라도 전혀 고산에 오르지 않았던 사람들은 해발 2000m에서도 고산 증세를 보이기도 하니까...

글쎄,,,다 토해내고 하는것 보면 고산증세도 좀 있긴 하지만 아마 그보다는 체력의 한계를 넘어선 힘듦이리라.

 

말이 없어졌다.

아니 단 한 마디도 말할 기운이 없을 터다.

그래도 묵묵히 가는 언니가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제부턴 좀 서둘러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산에서는 어둠이 금새 찾아들기 때문이다.

오늘 일정이 어제 덜 걸은 일정까지 합하여 ABC의 일정중 가장 길고 가장 많이 오르는 일정인데, 비까지 왔으니 더욱 늦어진 것이다.

이제부턴 사진 찍는 것도 자제하고 좀 빨리 걸어야 겠다.

 

아~~ 그런데 그게 지켜질까....

끝없이 나타나는 비경과 생소함 앞에서 그것을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오옷~~

이런 굳은 결심이 무색하게도 금새 눈을 현혹 시키는 풍광이 나타났으니, 바로 랄리구라스 군락지였다.

얼마 만큼 고도를 올라왔는 지, 기온이 얼마 만큼 떨어졌는 지, 드디어 흐드러진 랄리구라스가 보이는 것이다.

 

아!!  랄리 구라스가 저렇게 피는 구나~

저 수백, 수 천년은 되었음직한 집채보다도 큰 거대한 고목에서 랄리구라스를 피워내고 있어~

저렇게 오래 된 고목에서 꽃을 피워내고 있다니....

마치 용트림을 하고 있듯 휘휘 뒤틀린 이끼 가득한 나무 가지에서 저토록 이쁜 핑크 빛 꽃을 피워내고 있음이 놀라웠다.

 

 

 

날씨도 흐린데다가 이미 해가 없어 사진이 잘 나올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풍광을 그냥 지나쳐 갈 수가 없었다.

굳게 먹었던 맘은 순식간에 풀어지고 나는 또 그 앞에서 폼을 잡았다.ㅎㅎ

 

안타깝게도 이곳 랄리구라스도 벌써 지고 있는 상태였지만,

그래도 여기 이렇게 피어있으니, 내일은 분명 만개한 랄리구라스 군락지를 만날 수 있을거라는 기대감에 또다시 흥분이 되었다.

 

 

 

서둘러 가야된다는 맘과는 달리 앞서 가던 친구도 자꾸 발걸음을 멈춘다.

밀림 가득했던 초록의 색깔이 핑크빛으로 바뀌어졌으니까...

이미 지고 있는 상태였지만 거대한 고목이 피워내고 있는 랄리구라스의 풍광은 상상을 초월했으니까....

 

정말 가는 길 섶에는 고목에서 떨구어 낸 랄리구라스 꽃잎으로 또 다른 꽃 길을 만들어 냈다..

나의 발걸음도 자꾸 멈춰섰다.

이런 나를 보고,,,대장님께서 사진 그만 찍으라고.... 빛이 없어서 나오지도 않는다고....

내일이면 더 멋진 풍광을 볼 수 있을테니, 그냥 서둘러 가라고...재촉하셨다.

그래도 난 말 안듣는 말썽장이 처럼 끊임없이 셔터를 누르며 뛰듯이 걸었다.

 

 

 

 

 

말은 그렇게 하셨어도 대장님도 자꾸 서셨다.

글쎄, 이 지는 랄리구라스지만 그 풍광에 사로잡히신 걸까....아님, 70 노장에 힘드셨을까...

대장님도 서고...

친구도 서고....

나도 섰다.

 

 

 

 

 

 

 

잠시 소강상태였던 비가 또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이젠 진짜 사진 찍지 말아야지~

 

 

 

 

 

 

길섶에 뿌려져 있던 랄리구라스 꽃잎이 이젠 아예 길을 덮었다.

그제서야 난 대장님께서 하신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다.

'꽃을 머리에 이고, 발은 꽃을 즈려 밟고 간다' 던 말씀....

내가 알프스에서 본것 같은 야생화가 아니었어.

하늘을 덮고 있듯 이 밀림에 가득한 랄리구라스 꽃잎을 즈려밟고 간다는 말이었어~

 

 

 

와아~~~ 드디어 다왔다.

고라빠니야~

 

물안개와 초저녁 어둠에 휩쌓인 고라빠니는 더없는 운치를 느끼게 했다.

 

 

우리의 흥분과는 달리 언니는 이미 지칠대로 지쳐서 넋을 빼고 앉아 있었다.

지금 언니의 심정은 어떨까....

어쩌면 언니에게는 오늘이 인생에 있어서 육체적으로는 최악의 고난의 날이었는 지 모른다.

거의 실신 직전이었으니까....

태어나서 가장 오래 걷고, 가장 높은곳엘 올랐으니까...

아무것도 못 먹고, 다 토하고,....

되돌아 갈 수도 없는 이 고행 길...

이 길을 선택했음을 수없이 질책하며 자신을 채찍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몸은 절대 그대로 죽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걸....

의지가 있으면 끊임없이 몸이 그 상황에 맞게 대처해 간다는 것...

그래서 그 순간은 초인이 된다는 것!

 

삶이란 그런 것인 지 모른다.

많이 훈련되어진 누구에게는 너무나 쉬운 길이지만, 처음 시작한 누구에게는 초인이 되어야만 갈 수 있는 길이란걸!

그렇게 극과 극으로 다가오지만 누구나 시작은 똑같았다는 것!

 

종일 히말라야의 밀림속 풍광에 사로잡혀 힘듦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걸은 우리와는 달리 죽을 힘을 다해 걸은 언니...

한없이 착잡해 있을 언니의 심정을 잠시 헤아려 본다.

종일 낭만에 젖어 흥분해 있던 맘이 순식간에 언니 못지않게 착잡한 심정으로 변해갔다.

 

 

앞에서 언니를 리드하며 걷던 채링이 어느 사이  사라졌다. 아마 우리가 도착하는 시간에 저녁을 지어놓기 위해서 서둘러서 앞질러 갔을 터다.

 

우린 언니 곁으로 가서 애썼다고....

분명 여기 어디 우리 숙소가 있을 거라고...위로해 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도착 사진을 한 컷 찍자고 했는데,얼마나 힘든 지 언니는 시선도 주지 않는다.ㅠㅠ

 

뒤에 대장님이 오시니, 언니보고 더 쉬었다가 같이 오라고 하고 우린 앞서 숙소를 찾아 걸었다.

그러나 이게 왠 일인가?

롯지가 끝나도록 우리의 포터들과 짐이 보이질 않는거다.

 

오 마이 갓!!

우리의 숙소가 여기가 아니었나봐~

 

롯지가 끝나는 지점에 깔딱 오르막 계단길이 보였다. 좌우는 환상적으로 랄리구라스가 피어있고 그 한 가운데 마치 터널을 뚫은 양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 길이 이어졌다.

그 풍광은 가히 판타스틱했는데....

그 아름다움에 젖기 보다는 언니가 걱정이 되어서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누르는 대신 탄식이 쏟아져나왔다.

 

"아~ 어떡하면 좋아~"

언니 체력이 완전 바닥이 났는데, 거기다 아까 그곳이 숙소인 줄 알고 긴장까지 풀어져 꼼짝도 못하고 있는데...

 

까마득한 악마의 계단을 오르고 나니, 그곳에 또 다른 롯지가 이어져 있었다.

설마 이곳이겠지~ 그러나 우리를 맞이할 포터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

그리고 저쪽 길 끝을 보니, 끝없는 계단 길이 아직도 또 주욱 이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오오~~설마 여기도 아니야??"

사실 우리는 아직도 한 참을 더 걷는다 해도 걱정이 없었다. 문제는 언니때문에 끝없는 탄식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그러고 있는 사이 저쪽에서 우리의 포터가 활짝 웃으며 마중을 나온다.

 

 

우린 먼저 들어가 숙소 식당에 피워져 있는 난로 가에 자리를 잡았다.

먼저 우비와 쟈켓을 벗어 난로 위 빨래 줄에 널고, 등산화도 벗어서 난로 가에 놓고, 배낭, 우산등도 다 펴서 말렸다.

 

그중에서도 가장 급한 것은 카메라 배터리 충전이었다.

어제 오늘 워낙 사진을 많이 찍은데다가 날씨까지 좋지 않아서 배터리가 거의 바닥이 났기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왠 말이란 말인가~

배터리 충전을 할 수 없다는 청천 날벼락 같은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이곳에 벌써 오랜 기간 동안 비가 와서 이 동네가 솔라 발전을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아!!

아까 대장님께서 사진 그만 찍으라고 할때라도 멈췄으면 좋았을걸~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그야말로 내일은 최소의 사진만을 찍어야 할 터다.

인물 사진 찍으려고 가져온 또 다른 단 렌즈의 DSLR 카메라가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

이참에 내일은 꽃과 인물 사진만 찍어야 할까부다.

하긴 어제 오늘 친구가 전혀 사진을 찍질 않아서 배터리가 그냥 있으니, 친구 카메라로 찍으면 되고,

또 대장님 카메라도 아직 배터리 여분이 많으니까.....

대장님께 찍어달라고 하지 뭐~

 

 

한 참 뒤 대장님과 언니가 들어왔다.

아!! 드디어 언니가 해냈구나~~

우린 달려가서 언니를 안아 주었다.

그러나 이내 언니는 2층 방으로 올라가 쓰러져 내려오지 못했다.

 

 

오늘 저녁 메뉴는 환상적인 삼계탕이었는데...

맛있는 양념장에 양배추 쌈...

그리고 컬리플라워 튀김까지.....

 

이곳 히말라야에서 자란 닭은 우리네 토종 닭보다도 더 운동량이 많아 그런 지, 조금 질깃하긴 했지만, 우리 토종닭으로 한 백숙보다 더 맛있었다.

그리고 컬리플라워 튀김....

고소한게 얼마나 맛있던 지...

이젠 채링이 야채 튀김까지 기막히게 튀겨낸다.

럼콕에 기막힌 안주로 저녁을 먹었지만 전 날 처럼 환한 이야기 꽃을 피울 수는 없었다.

'자기는 도저히 더 이상 못갈것 같다'는 언니때문에 모두 걱정이 되어서....

 

저녁을 일찍 끝내고 방으로 올라와 짐을 정리했다.

내일은 해발 3210m의 푼힐 전망대에 오르기 때문에 새벽 4시에 출발을 해야한다.

 

 

대장님과 언니는 이곳에 그냥 있고, 채링과 나와 친구만이 가기로 했다.

날씨가 무척 추우니 가장 따듯한 복장으로 배낭은 가장 가볍게 하고 나서라고 하신다.

 

가장 두꺼운 바지와 폴라 폴리스 셔츠, 고소내의를 입고, 그 위에 고어 쟈켓을 입기로 했다. 양말도 가장 뚜꺼운 울양말과 털모자,그리고 버프, 스패치, 고어장갑과 털장갑, 헤드랜턴, 고글, 카메라등을 챙겨놓고, 내일은 해발 3200m까지 오르니 고산 약을 먹고 잠을 청했다.

 

그러나 이것도 내일 날씨가 좋을 때 얘기다.

날씨가 안 좋으면 전망대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때문에 올라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간절한 맘을 담으며 그 어느때 보다도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뜨거운 물을 담은 물병을 가슴에 끓어안고 침낭속으로 들어갔지만, 이런 저런 걱정으로 좀체로 잠이 오질 않았다.

 

비는 잦아드는게 아니라 더욱 거칠게 쏟아졌다. 마치 홍수라도 날것 처럼.....

이상기온으로 우기가 벌써 찾아 들은건 아닐까...두려움 마저 생겼다. 아무래도 내일 푼힐 전망대에 오르기는 힘들것 처럼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아니, 지금 이 순간은 푼힐이 문제가 아니었다. 언니가 저 컨디션으로는 도저히 ABC까지 오를 수 있을것 같지 않았다.

어쩌면 최악의 경우 나와 친구만이 채링과 포터와 오를 수도 있음을 감안해야 했다. 만약 그러한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지금 심정같아선 ABC에 오를 수  있기를 바랬다.

 

깜깜한 어둠속에 내리는 비는 더욱 거세게 내리는 것 처럼 느껴졌다,

 

"아무래도 우기에 접어 들었나봐~

이건 우기때나 내릴 법한 빗줄기 잖아~

벌써 일주일 동안 이곳엔 비가 내렸다잖아~

일정이 바틋한 사람들은 이곳 푼힐에서 다 내려간거 같고...."

 

비가 와서 그런 지, 방안의 온도는 한기를 느낄 만큼 추위가 느껴졌다.

그나 저나 짐을 정리하다 보니, 왜케 여름옷만 가져왔는 지, 두꺼운 겨울 옷은 한 개씩 밖에 없는데, 이렇게 계속 비가 오면 

마르지도 않고 꿉꿉하고 추워서 어쩌면 좋지?

갑자기 걱정은 산더미 처럼 부풀어 올라 온 몸의 힘을 쫘악 빼갔다.

 

잠이 오지않아 가까스로 터진 핸폰에 지금의 상황과 심정을 남편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단 한 마디로 답장이 왔다.

"그냥 집으로 와~"

 

그래서 잠깐 우리는 폭소를 터뜨렸다.

친구는 자기 남편같으면 '끝까지 올라 장렬하게 전사하라' 고 왔을 거라고 해서 더욱 웃었다.

더이상 문자는 가지 않았다.

그 말을 들으니 불길한 예감으로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그래, 오를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냥 집으로 가면 되는 거야!"

이렇게 비가 와서 안타까운 사태가 벌어지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오늘 얼마나 분위기 있었어~

평생에 언제 운무에 휩쌓인 빗속 히말라야 밀림을 하루 종일 걸어 보겠어~

 

불을 끄고 잠을 청했다.

깜깜한 어둠속에 오로지 빗소리만이 천둥 처럼 가슴 속을 파고 들었다.

나는 그제서야 나의 오만함을 뉘우쳤다.

 

세계 최고의 산....

영험한 영으로 가득한 이 영산을 내가 얼마나 쉽게 대하고 출발했는 지...

히말의 여신이 나를 또 다시 불러주었다고....

힘듦과 두려움 보다는 평화로운 맘으로 가득하다고....

얼마나 자신 만만함을 가지고 출발했는 지....

 

나는 출발하면서 블로그에 올린 글을 떠 올렸다.

그제서야 나는 최대한으로 납작 엎드려 하느님께, 히말라야의 정령에게 깊은 사죄를 올리고 간절한 맘으로 기도했다.

 

 

 

Cecilia - Silver Win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