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일찍 잠이 들은 탓인 지, 히말라야에서의 첫날이라서 인 지 새벽녘에 잠에서 깼다.
빗소리가 제법 세차게 들린다.
아!!
계속 비가 내리는 구나~
어젯밤 침대에 누워 양철 지붕에 떨어지던 빗소리가 그렇게도 낭만적이고 좋을 수가 없더니만, 새벽녘 심하게 쏟아지는 빗소리는 조금은 오늘 일정을 걱정스럽게 한다.
오늘은 종일 오르막이라고 했는데....
롯지의 방이 칸칸마다 합판으로 지어진 걸 생각하니 일찍부터 일어나 부시럭 거릴 수가 없다.
살그머니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테라스라고 해도 될까??
하긴 방을 잇는 복도가 오픈되어 멋진 시야를 트여주니 이보다 더 멋진 테라스도 없을 것이다.
방마다 앞에 놓여있는 의자를 끌어다 전등불 밑에 놓고 일기장을 펼쳤다.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일기를 한 번 써볼까....ㅎㅎ
언제나 시작은 장대하지만 끝은 ....
사실,,,해외 원정 산행을 하면서는 단 한 줄도 글을 쓰지 못했다.
정말 신비할 정도로 그 쉽게 써내려가는 글이 단 한 줄도 써지지 않는것이다.
그냥...
자연의 일부가 되어 터엉 빈 상태....
그 감동과 장엄함을 도저히 그 순간 글로 표현한다는게 불가능했다.
나를 감싸오는 대기의 에너지..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도저히 생각나지 않아서.....그리고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도 몰라서...
아!!
너무 좋네~
모든게 정지되어 있듯 깜깜한 어둠속에 그야말로 빗소리만이 깨어있음이....
그 속에 내가 홀로 있음이....
처마 밑에서 주루룩 떨어지는 빗줄기와 양철 지붕에 떨어지는 요란한 빗소리가 아니라면 비가 오는 줄도 모랐을 것이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어둠....
커다란 별빛 처럼 보이는 산허리의 마을 외등 불빛이 정말 맑은 밤하늘 별처럼 보였다.
그나저나 비는 좀체로 잦아들것 같지않다.
아무래도 오늘 반바지 차림으로 나서려 했던 계획은 취소해야 할듯 하다. 혹여라도 신발에 물이 흘러 들어가면 큰 낭패를 보기때문이다.
글쎄...
지금 이렇게 비가 쏟아져도 우기가 아니니 종일 비가 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그렇게 믿고 싶지만, 밤새 쏟아져 내린 빗소리를 생각하면....ㅠㅠ
아!!
근데 왜 이렇게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지??
이렇게 빗속 어둠속에 앉아있는 기분...
온 몸을 감싸고 도는 쌀쌀함 마저 너무나 좋은걸~
아!!
벌써 먼동이 터오네~
커다랗게 반짝이던 불빛이 옅어져 버리고 아스라이 높은 산 능선이 보이기 시작해~
어둠은 순식간에 걷혀버렸다.
이제 별빛...아니, 산허리 마을 외등 불빛도 몇개 남지 않았다.
하얀 하늘...
잿빛의 먼발치 산과 제법 초록의 느낌을 주는 눈 앞의 산과 그 사이를 메우는 잠자던 구름들이 연기처럼 새벽 풍광을 맞는다.
아!!
새가 울어대네~
닭이 새벽을 알리는 대신 이곳 히말라야에선 새가 아침을 깨워~
이제 일어나라고...
동이 훤히 텄다고...
빨리 히말의 깊은 계곡으로 걸어 들어가라고....
양철 지붕에 요란하게 떨어지는 빗소리에
맑디 맑은 새소리...
갑자기 어디서 생겨났는 지 하얗게 피어오르는 구름....
눈앞을 가득 채운 초록이랑...
다랑이 밭이랑 ....
와아!! 정말 이쁘네~
조금은 걱정스러웠던 마음에 온통 평화스러움이 가득 채워왔다.
그냥 이대로 따끈한 밀크 티 한 잔으로 아침을 시작해
종일 맛있는 거 해먹고, 커피도 마시고, 럼콕도 한 잔 하면서
음악듣고...
책 읽으며 오늘 하루쯤 이곳에서 이대로 보내고 싶다는 간절함 마저 생긴다.
어느새 6시가 되었나부다.
쿡이 정성껏 탄 모닝 티가 배달되어졌다.
손끝에 닿는 따스함이 행복속으로 마냥 빠져들게 한다.
짐을 꾸리고....
준비를 마친 뒤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전망 좋은 식당으로 내려갔다.
사방으로 틔인 유리창 속 풍광과 우리 일행들의 모습이 최고급 스카이 라운지와 비교될 바 아니다.
오늘 아침 메뉴는 소고기 미역국....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미리 담그었는 지 맛있게 맛들은 김치까지 있다.
계란 푸라이와 김, 그리고 깻잎....
정말 미역국도 어쩌면 이렇게도 맛있게 끓였는 지...
대장님께서 한국에서 사 온 깻잎도 입맛을 착 착 돌게 만드는 주 메뉴다. ㅎㅎ
디저트로 진한 커피에 설탕을 듬뿍 쳐서 마셨다.
산행을 할때는 영양가가 높은 음식보다는 바로 열량을 낼 수 있는 단당류를 먹어주는게 좋단다.
그러니 평소엔 블랙을 즐기지만 히말라야에선 진하고 조금은 달달한 히말라얀 커피로....ㅎㅎ
오늘은 힐레(1400m) 에서 고라빠니(2750m)까지 계속 오르막으로 오르는 빡센 일정이다.
더우기 등산 초보인 박언니를 위해 첫날의 힘듦을 좀 덜기위해서 티르케둥가까지 올라 머물기로 했던것을 그 전 힐레에서 머물었으므로 일정이 더욱 길어진 것이다.
일정도 길어지고, 빗속에서 1350m의 오르막을 오른다는건 결코 쉽지않음이 예상된다.
무엇보다도 박언니가 여간 걱정스럽지 않다.
포터들은 벌써 출발했고, 우리도 단단히 챙겨입고 출발했다.
비가 잦아들기는 커녕 점 점 더 세어진다.
그래도....
빗속을 걸음이 싫지 않다.
여기 저기 산허리 마다 걸려있는 구름은
고개를 들어 바라볼때 마다 매 순간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며 다른 풍광을 보여주고,
촉촉한 물기를 머금고 있는 온갖 초록의 향연은 그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나무의 모습이다.
어디 그 뿐인가~
물기에 함뿍 젖어 끝없이 펼쳐진 반짝이는 돌 길은 ....저 곳을 올라야 된다는 가위눌림보다는
그곳을 오르고 있는 멋진 한 장의 풍경화....
그야말로 영화속 주인공이 된것 처럼 낭만적 운치 마저 준다.
빗속에서 카메라를 꺼냈다 넣었다 하며 사진을 찍느라고 일행들 보다 뒤쳐져서 걸었다.
조금은 급한 맘으로 돌계단을 올라서 보니, 저 만치 가게에서 대장님이 담배를 태우시며 나를 기다리고 계신다.
ㅎ~
이참에 나도 잠시 쉬며 따듯한 레몬 티 한 잔을 시켜서 마셨다.
히말의 인적 없는 빗속 오두막에서의 따듯한 레몬 티라~~
아!! 모든게 그저 영화속 장면 처럼 낭만적이다.
그때 저만치 아래서 눈길을 끄는 트래커가 보였다.
다름아닌 엄마와 어린 딸이다.
아마 빗속 오르막을 계속 오름이 힘들어서 어린 딸이 '더 이상 못 가겠다' 고 투정을 부리는 것만 같다.
근데, 엄마의 표정이 아주 쿨~ 하다.
맘대로 해~
하고 손을 흔들며 오르는 듯한 엄마의 표정이 그렇게 멋지고 상큼 발랄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지~
엄마는 바로 이러한 어려움과 힘듦을 스스로 결정하고 견디어 내는 인내와 끈기를 가르치려 이곳에 함께 왔을거야~
대 자연속에서의 가르침...
가장 원초적이고...
가장 확실한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그린색의 커플 룩으로 갖추어 입은 맵시도 눈을 즐겁게 한다.
따듯한 레몬 티로 조금은 축축해진 몸을 데우고 다시 출발했다.
바람개비 처럼 후다닥 오르고, 멈춰서서 아래로 펼쳐지는 몽환적 히말의 장관을 감상하고를 반복하며 오르는 일도 여간 즐겁지 않다.
대나무 숲이 우거져 더욱 낭만적인 작은 쉼터에서 일행들이 쉬고 있었다.
우리의 쿡-채링이 뭔가 낭만을 아는것 같다.
숙소도 그렇고, 가장 멋진 곳에서 늘 자리잡고 쉬고 있으니....ㅎㅎ
우리를 지나쳐 먼저 올랐는데....이제사 저만치 아래 계단을 오르고 있는 모녀 트래커가 보인다.
뉴질랜드에서 왔다는 멋진 이들 모녀 트래커....
여전히 엄마 트래커가 씩씩하게 앞장서고, 아이는 그래도 뒤쳐지지 않고 엄마 뒤를 따라 오른다.ㅎㅎ
구불 구불 휘어진 촉촉히 빛나는 돌계단....
그 자체만으로도 그림인데, 그 곳을 오르고 있는 그린 색 쟈켓의 두 모녀가 있어 그 풍광이 더욱 아름답고 생동감이 있어 보인다.
아!!
이럴땐 가만 있으면 안되는 거야~
눈이 마주친 순간 환하게 웃는 그녀에게 너무나 아름답다고...소리쳐 주었다.
정말 그렇게 밝고 환한 미소를 가진 여인을 본 적이 있을까...싶을 만큼 그녀의 미소는 아름다웠다.
그녀는 지금 어떤 심정일까....
무엇이 그녀를 사로잡고 있기에 저토록 천상의 미소를 피워내고 있는 걸까...
어린 딸과 히말라야를 오르고 있다는 그 벅찬 감동....
아!! 그럴것 같아~
오래도록 그녀의 미소는 결코 내안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전망 좋은 찻집에서 밀크 티를 마시며 잠시 쉬다가 다시 출발했다.
끊임없는 오르막을 돌로 쌓아놓은 계단을 보면서 산 꼭대기까지 밭을 일구어 농사를 짓고 있는 이들의 삶에 감동을 먹은 것과 똑같은....
감동이 차 올랐다.
감히 이렇게 높은 곳까지 끊임없는 돌계단을 쌓아 올린것에 대한 이들 노고에 대한 경의랄까....
계단 길을 오르는데도 불구하고 힘겨움을 전혀 못느끼고 걷는데는 계단을 오른다는 관념과는 달리
그냥 아름다운 자연 속을 오르고 있다는 느낌이 더 들기 때문인 지도 모른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며 수도 없이 아래를 내려다 보기를 반복했다.
눈앞에 가득 펼쳐진 그 몽환적인 아름다움과 거대한 히말의 장관이 궁금해 위만 바라보고 걷기에는 너무 안타까워서....
그래서 였을까...
한시도 힘듦을 느끼지 못했던게....
잠시 멈춰서신 대장님께서 혀를 차시면 안타까움을 토로하신다.
다름아닌 이곳 오르막 길 양 옆으로 판타스틱하게 펼쳐진 아니지, 이 산 전체에 펼쳐진 고목들이 다 랄리구라스라는데....
지금쯤 완전히 만개하여 온통 산이 빨갛게 달구어져 있어야 하는데.....
이미 다 져버렸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이곳도 이상기후로 기온이 더 빨리 올라간것만 같다.
아직은 비 올때가 아닌데, 이처럼 비도 종일 처럼 내리고....
아!!
이 말을 들으니 평온했던 맘에 파도가 치기 시작한다.
머리에 꽃을 이고, 발은 꽃을 즈려밟고 간다고 했던 곳이 바로 이곳이었단 말이야~??
아!!! ㅠㅠㅠ
하지만 바로 뒤이은 말씀에 맘이 금새 놓인다.
더 올라가면 또 있어~
워낙에 산이 높으니 올라가면서 기온 차가 생겨, 꽃 피는 개화시기도 같이 따라 변해 위로 올라가면 피어 있을거야~
히말의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라리구라스가 만개해 있을 거라는 말에
그 아름다움을 상상하며 또 토끼처럼 튀어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 본다.
아!!
햇볕이 쨍한 풍광보다 하얗게 피어오르는 거대한 구름 띠를 두르고 이리 저리 휩쓸리며 다랑이 밭을 보여주는 그 모습이....
지그재그로 나 있는 끊임없는 돌 계단이.....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가슴을 쓸어 내릴 만큼 환상적인 풍광이다.
나는 마치 이솝의 우화에 나오는 토끼와 거북이의 주인공이 된것 마냥 행동했다.
나의 역할은 주인공 거북이가 아니라 토끼....
빠르다고 잘난 척을 한게 아니라
너무 아름답고 판타스틱한 분위기에 휩쓸려 그만 깡총 깡총 뛸 수 밖에 없는....
그리곤 내가 잠을 자면서 가도 너보다 빨라~ 하는 자만심에서가 아니라 그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느라 수도 없이 멈춰서서
사진을 찍곤 했다.
정말 그랬어~
그렇게 걱정했던 거북이인 박언니는 쉬지않고 걸어 올라 언제나 나보다 한 참 앞서서 늘 걸었거든~ ㅎㅎ
'히말라야 안나푸르나BC (2013.4)'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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