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에서 내려다 본 풍광...>
어젯밤 철저하게 푼힐에 오를것을 준비했지만 그것이 거의 기적을 바라는 것임을 모두 알고 있었다.
새벽 일찍 눈이 떠졌지만 빗소리는 어젯밤 그대로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큰 기대를 안했고, 사실 푼힐에 오른다는 것은 지금 우리앞에 놓인 시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섭섭함이나 실망감도 크지 않았다.
다시 짐을 꾸리고...
쿡이 가져다 준 모닝 티를 마시면서 창밖을 내다 보았다.
히말의 깊은 계곡에서 마치 정령이 불을 피워 올리는 것 처럼 하얀 연기가 피어 올랐다.
분명히 구름이란걸 아는데 입에선 '연기'라는 단어가 먼저 튀어 나온다.
정말 신비롭게도 구름이 하늘을 떠다니는 것이 아니라 계곡에서 연기 처럼 피어 올랐다.
밤새 그렇게도 퍼 붓던 비는 잔잔하게 내리고 있고, 얼마나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지 랄리구라스 꽃은 나무에 끄떡없이 메달려 있었다.
어제 마지막 깔딱 오르막의 환상적인 랄리구라스 길을 오르면서 오늘 새벽에 나가 사진 찍자고 했었는데....
아직 비는 계속 내리고 있고, 또 착잡한 마음도 여전하여 식사 시간까지 그냥 침대에 누워 있기로 했다.
식사 시간에 맞춰 식당으로 내려갔는데....
다 죽어가던 언니가 컨디션을 많이 회복하고 살아서 식당에 내려와 있었다.
"아!! 세상에나~~언니가 살아났어~"
그것은 지금 비가 그친것 보다도 우리에겐 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어제 너무 걱정이 되어 대장님께 여쭸더랬다.
어디까지 언니가 올라야 우리가 ABC를 갔다가 내려와 합류할 수 있냐고....
그때 대장님께서 말씀하셨었다.
'못간다고 ...떼만 쓰지 않으면 ABC까지 갈 수 있다고....'
어제 힘들었던건 그동안 그 만큼 체력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고, 이제 이틀간 몸이 적응을 했으니,오늘 부터는 좀 수월해 질거라고 하셨었다.
우리가 보기엔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거늘,
대장님께서는 감히 ABC까지도 갈 수 있다고 하시니....
그저 놀라울 뿐이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살아나서 환하게 웃고있는 언니를 보니, 왠지 우리가 밤새도록 걱정하고 궁리했던 것이 무색해 질 정도였다.
언니의 회복을 보고 모두 기운이 나서 아침으로 닭죽을 그 어느때 보다도 맛있게 먹은것 같다.
오늘은 고라빠니(2750m)에서 데우랄리(2990m)를 거쳐 반단티 (3180m)까지 올랐다가 다시 2630m의 타다빠니에서 머물 예정이다.
고도가 3000m가 넘게 올라가지만 다시 2600m고지로 내려와서 잠을 자므로 고소 적응이 훨씬 쉽고 몸 컨디션도 좋을 것이라고 한다.
아마 언니도 오늘은 어제보다는 훨씬 좋은 컨디션으로 걸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들으니 아침까지 착잡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어제보다는 훨씬 따듯한 복장으로 출발을 했다.
비에 젖은 손이 너무 시려워서 오늘은 방수가 되는 고어텍스 장갑을 꼈다.
바지도 혹시라도 젖으면 도저히 말릴 방법이 없기에 스패치를 하고....
우비를 입고도 우산을 따로 챙기고, 체온을 보존하기 위해서 패딩 쟈켓과 고어텍스 쟈켓은 항상 배낭에 휴대를 하고 출발을 했다.
오늘은 배터리도 얼마 안 남았으니, 미러리스 카메라는 작은 가방에 집어넣고
50mm 단렌즈를 부착한 DSLR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혹시나 우리가 어제 걸어 올랐던 그 환상적인 계단쪽 길로 통하지 않을까....기대를 했지만 반대쪽으로 발길을 잡으셨다.
헐!!
잠깐 그 오르막 길의 랄리구라스를 카메라에 담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믿을 수 없는 풍광이었다.
완전 랄리 구라스 터널...
랄리구라스 사이에 돌계단을 쌓아 바로 그 계단으로 오른다는....
여전히 구불 구불한 나무 등걸은 이끼로 덮여져 있고, 랄리구라스 꽃은
어젯밤 그렇게도 쏟아졌던 폭우속에서도 반듯한 모습으로 매달려 있었다.
아니 물기까지 그대로 품고 있어서 반짝이는 보석 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아!!
출발 직후부터 사진을 찍느라 걸을 수가 없었다.
헐~ 어쩌지??
오늘 배터리 충전을 못해서 사진 많이 찍으면 안되는데....
정말 아껴서 꼭 찍을 곳만 찍어야 하는데....ㅠㅠ
하지만 이것은 참을 수 없는 유혹이잖아~
이렇게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꽃 터널을 어케 그냥 지나갈 수가 있어~
랄리구라스 군락지...정말 대단하군~
어제 저녁의 풍광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는 걸~
비는 여전히 오늘도 종일 내릴 기세로 쏟아졌다.
사진을 찍느라 장갑을 벗을때 마다 손끝이 시려왔다.
아!! 이렇게 고도에서 오는 기온 차가 심하구나~
첫날 나야풀에서 출발할땐 반바지를 입었었거늘~
오늘도 빨간 쟈켓에 빨간 모자를 쓰고 올리브 그린색 우산을 쓰시고 걷는 대장님은 그야말로 히말라야 밀림....
아니, 랄리구라스와 어우러진 한 폭의 그림이었다.
어쩌면 그렇게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낭만적으로 보이는 지....
비때문에 오히려 아련한 느낌까지 얻을 수 있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랄리구라스 군락지는 어마 어마해서 그야말로 오늘 우리가 걷는 길은 모두 꽃 길....
집채만큼 거대한 나무에 빼곡히 핀 랄리구라스는 왠 만큼 꽃잎이 떨어지기 시작해도 감 조차 올것같지가 않았다.
바닥엔 거대한 나무 뿌리가 겉으로 훤히 들어내며 마치 밀림 사이로 일광욕을 하려 안깐힘을 쓰는 듯 보인다.
그 사이로 가득 채워진 랄리구라스 꽃잎은 또 다른 작품...
카메라 렌즈를 들이밀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랄리구라스에 정신줄을 놓고 있는 나를 기다리시는 건가?
고개를 들어 저 만치 바라보니, 대장님께서 멈춰 서 계셨다.
어디를 저렇듯 하염없이 바라보고 계시는 거지?
그 나무 뿌리 위에 초연히 서서 계신 모습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같아 나는 촬영 기사가 된 듯 대장님을 찍어댔다.
"대장님~
여기 좀 바라보세요~
지금 빗속 대장님이 얼마나 멋진 지 아세요??
올리브 그린색 바지에 빨간 색 쟈켓과 그린 색 우산...
정말 멋지세요!!"
나는 정말 세상에서 처음 맞는 이런 풍광에 매혹되어서 걸을 수가 없었다.
일행들은 이미 내 앞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저 만치 다른 트래커들의 뒷 꽁무니를 놓치지만 않게 신경을 쓰면서 나는 계속 이 길을...이 랄리구라스 터널을 만끽했다.
어떻게 이 이쁜 랄리구라스를 사진 작가들 처럼 찍어볼까....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가며 렌즈에 담아본다.
추운 날씨에 물기에 함뿍 젖어 있는 여린 랄리구라스 꽃잎은 너무도 투명하여 파르르 떨고 있는 듯 보였다.
아!!
세상에~~
비가 아니라 눈이 내리고 있는 거였어~
정말 환상적이네!!
이곳 해발 2900m 의 고라빠니에 눈이 내리니, 지금 4000m 고지의 ABC엔 얼마나 많은 눈이 쌓였을까....
뒤돌아 보니, 저 만치에서 한 무리의 트래커들이 또 올라오고 있다.
아!! 저 핑크색 비닐을 뒤짚어 쓴 포터 좀 봐~
핑크색 랄리구라스와 어울려 그대로 한 편 작품이네~~
나는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이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눈발이 날리는 랄리구라스 터널을 걷고 있는 트래커들....
어쩌면 이렇게 근사할 수가 있을까....
나는 거의 밀림의 랄리구라스에 넋을 빼앗겨 존재감을 잊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돌아보니, 주위엔 아무도 없다.
허어걱!!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해
나는 미친 듯이 뛰어 올랐다.
그럼 그렇지~
저 만치 다른 트래커들 옆으로 대장님이 서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그제서야 맘이 놓인다.
헐~
그런데 뭔가 허전하다~
아악!!
스틱!!
사진 찍느라 스틱을 짚어 던져 놓고는 사람들이 안보이니까 그냥 넵따 달려온거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만약 스틱을 못 찾으면 어떡하나...이제 트래킹 시작점인데....
정신없이 달려 내려가 넋을 잃고 사진을 찍던 장소를 헤맸다.
다행히 스틱은 그곳에 그대로 있었다.
"아아!! 정신 차려!!
넋을 잃으면 절대 안돼~ 이곳은 지금 히말라야란 말이야!! "
대장님께 죄송했다.
정신줄을 놓지않고 잘 따라가겠다고...스틱을 잃어버리고 와서 다시 내려갔다가 왔다고 고백했다.
그리고는 이 판타스틱함에 완전 매료되어 정신이 없다고 ....
도저히 그냥 걸어갈 수가 없다고....고백했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지?
나중에 블로그에 올릴때 그렇게 제목 붙여~"
환하게 웃으시며 한 말씀 하시고는 또 걸어가신다.
안개가 자욱한 랄리구라스 터널을 걸어가는 그 뒷 모습이 그렇게 근사할 수가 없다.
나는 정신줄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대로 선 채 다시 카메라를 꺼내 연속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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