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스플로러 시리즈 Ⅱ Explorer Series Ⅱ
지휘 : 스테판 애즈버리 Stefan Asbury, conductor
협연 : 주연선 (첼로) YeonSun Joo, cello
프로그램
슈트라우스,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 R. Strauss, Till Eulenspiegels lustige Streiche
하이든, 첼로 협주곡 2번 D장조 Haydn, Cello Concerto No. 2 in D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 Shostakovich, Symphony No. 7 "Leningrad"
서울시향에서 버르토크의 <이상한 중국 관리>를 지휘하며 찬사를 받았던 지휘자 스테판 애즈버리가 쇼스타코비치의 전쟁 교향곡 “레닌그라드”로 서울시향에 돌아옵니다. 쇼스타코비치가 나치 독일에 점령당한 도시와 민중에 바치는 7번 교향곡은 전쟁과 승리를 노래함으로써 전세계적인 격찬을 받았습니다. 전반부에는 서울시향의 첼로 수석으로 활동 중인 주연선의 협연으로 하이든의 협주곡을 연주합니다.
지휘 : 스테판 애즈버리
전세계 주요 교향악단을 객원 지휘하고 있는 스테판 애즈버리는 혁신적인 프로그래밍과 새로운 음악에 대한 열정적인 옹호로 명성이 높다. 바젤 신포니에타, 앙상블 콩트르샹, 타피올라 신포니에타(2007/08 시즌에 협력 아티스트를 역임) 등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 외에도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런던 심포니, 드레스덴 필하모닉, 세인트 루크 오케스트라 등을 지휘해 왔다. 2009/10 시즌에는 LA 필하모닉, 북독일 방송교향악단, 서울시립교향악단, 뮌헨 비엔날레 등을 지휘한다.
애즈버리는 DG레이블로 진은숙의 작품을 녹음하였으며,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과 녹음한 조너선 하비의 음반은 '음악의 세계 쇼크상'을 수상하였고, 서독일방송교향악단과 녹음한 그리제의 '음향의 공간' 전작 녹음은 독일 비평가상을 수상했다. 또한 베를린 도이체 심포니와 윤이상의 작품을, 앙상블 소스페소와 엘리엇 카터의 작품을, 버밍엄 현대음악그룹과 필랍 캐시언의 음악을, 무직파브릭과 레베카 손더스의 음악을 녹음하였다.
협연 : 주연선 (첼로)
첼리스트 주연선은 미 캔사스시티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수석보로 활동한 바 있고 또한 솔리스트, 실내악 연주자로서 활발한 활동중에 있다. 그녀는 미국 커티스 음악원과 라이스 음악대학원을 전액 장학금을 받고 졸업하였다. 그녀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KBS교향악단, 이스턴 커네티컷 오케스트라, 서울시립교향악단, 월드 심포니 등과 협연한 바 있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로베르토 디아즈, 킴 카쉬카쉬안, 엘마 올리베이라, 초량린, 정명훈, 이경선 등과 같이 실내악 연주를 하였으며, 이차크 펄먼, 로린 마젤의 바이올린 연주와 함께 듀오 연주를 하였다.
첼리스트 주연선은 소란틴 국제 음악 콩쿠르 대상, 이스턴 커네티컷 심포니 음악콩쿠르 1등,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콩쿠르에서 우승하였고, 국내에서는 한국일보 콩쿠르 대상, 세계일보 콩쿠르 대상, 부산MBC 콩쿠르 대상, 이화경향 콩쿠르 1등 등을 차지하였다.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첼로 수석주자로 활동 중이다.
공연후기.....
근래 계속 실내악이나 독주 공연을 보다가 오랫만에 무대를 꽉 채운 대편성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들으니
시작부터 가슴이 벅차오는것 같다.
첫곡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은 거대함 속에 독주의 얄궂은 소리들이 마치 슈피겔이 거짓말을 장황하게 늘어놓고는
'거짓말이야' 하고 장난을 친 짖궂음이 느껴진다. 그야말로 제목이 주는 느낌 그대로 유쾌한 장난이다. ㅎㅎ
2번째 곡 <하이든 첼로협주곡 2번.>의 주연선 연주를 들으면서 든 생각은
참~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담백하면서도 아름답게 연주한다고...
카덴짜 연주는 훌륭했고,
2악장을 들으면서는 너무나 아름답게 가슴을 파고 드는 연주에....'정말 잘한다고' 속으로 뇌였다.
특히 여린 선율이 어찌나 곱고 단아한 맛을 풍기는 지 ...기품이 있었다고 표현할까....?? ㅎㅎ
그녀의 이미지와 딱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오늘 가장 기대를 하고 온 쇼스타코비치 7번 교향곡인 <레닌 그라드> 연주다.
피콜로와 제1 바이올린의 아름다운 솔로 연주는 신비감 마저 불러일으켰고,
이어진 작은북의 타닥 타닥 행진곡 리듬과 현과 플릇의 여린음이 내는 긴장감이...
그리고 첼로와 바이올린의 단순 반복되는 피치카토의 리듬위에서의 오보에와 파곳의 대화....
클라리넷은 나팔끝을 치켜세우고 불어대고 북소리 드세어지고, 급기야 오케스트라 총주로 이어지며
점점 강도가 세어지는 것이 라벨의 '볼레로'를 떠오르게 한다.
아닌게 아니라 라벨의 '볼레로'에서 힌트를 얻어 작곡했다는데 정말 역시나 멋드러진다.
혁명의 긴박감을 표현하는데 이 보다 더 극적일 수는 없다고 생각하면서 나 역시 흥분의 도가니로 슬슬 빠져들어간다.
와아~ 금관의 나팔이 번쩍 들어 올려져 힘차게 불어대고, 심벌즈는 쉴새없이 힘껏 부딪혀지며 피아노 건반과 마림바 마저 아름답게 연주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힘차게 두둘겨진다.
아!! 이 거대함을.....실황이 아니면 어찌 음반으로 이 소리와 벅참을 감당해 낼 수 있으랴~
거대함이 어느 순간 사라지고 찾아든 적막감....
플릇과 클라리넷, 파곳이 둔탁하게 두둘겨지는 피아노 리듬에 맞추어 나직이 불어대며 적막감을 더욱 고조시킨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그저 한없이 깊은 심연속으로 마치 블랙홀에 빨려들어가는 듯이...
목관의 꿈같은 선율과 바이올린 선율은 전혀 딴세상에 와 있는 듯한 평화로움이었다.
무려 25분이나 되는 1악장이 이렇듯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 휘몰기도 하고 한없이 빨려들어가는 극적 적막감으로 몰고 가기도 하면서
끝을 냈다.
표효한다고 할 만큼 거대함속에 마치 숨겨져 있다가 간간히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은
아름다운 선율은 마치 인간 본연의 심성같기고 하고...
태초의 자연의 모습 같기도 해 너무나도 아름답고 평화롭기 그지없는 2악장이다.
하프와 바닥에 깔리듯 연주하던 금관악기.... 두 선율의 대비.
그리고 클라리넷과 바이올린의 선율은 너무나도 가녀려서 마치 우리 몸속 실핏줄까지 타고 들어갈 만큼이었다고 할까??
정말 숨이 막힐만큼 짜릿함을 주었다.
2악장을 마쳤을때의 지휘자의 포즈 또한 압권이었다. ㅎㅎ
베이스의 피치카토 위에 바이올린과 첼로가 대화를 하듯 연주되던 3악장의 아름다움에 또 사로잡힌다.
간간히 하프는 퉁 퉁 울려대고...
플릇과 오보에....목관의 소리는 천상의 소리같이 감싸고....
정말 짜릿한 순간이었다.
그러다간 또 어느순간 폭풍처럼 현이 휘몰아친다.
오케스트라 총주는 또 얼마나 극적이며 멋진 지....
세상 밖 우주의 광할함이 느껴진다.
그 무한한 곳 한 복판을 부유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티끌에 불과한 나....
무중력 상태에서의 편안함이 느껴져온다.
갑자기 쇼스타코비치는 어떠한 사람인가!! 생각했다.
스탈린 체제에서 극도의 공포심과 자기 모멸감에 시달렸다는 그....
그러나 어쩌지 못하는 그의 예술혼은 이렇듯 그의 작품속에 그대로 녹아들어 최고의 경지로 승화시켜낸 것은 아닐까..
그냥 이대로 우주속을 부유하며 편안한 무중력 상태로 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세상것....아무것도 필요없다고.. 훌훌 털어내 버리고...
2차 세계대전 당시 레닌그라드를 침략한 독일군에 항거하던 시민의 고통과
레닌그라드를 지켜낸 승리의 함성을 기린 작품이라고 하지만
나는 쇼스타코비치 내면의 고통...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그의 우주와 같은 거대함과 예술의 경지에 이른
그의 삶의 승리를 ..... 내내 생각했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 C장조 "레닌그라드"
Dmitri Shostakovich: Symphony No.7 in C major "Leningrad"
<폭력에 의해 그려진 음악>
"마직막 콘서트 준비는 군대가 해결했다. 누군가가 작곡가의 연미복 셔츠를 위해 새로 풀 먹인 칼라를 마련했다. 연주자들은 군복을 입고 나타났지만 분장실에서 옷을 갈아 입었다. 외투와 군복 벨트가 벽에 걸려 있었고, 기관총과 권총이 벽에 기댄 채 서 있었다. 그 옆에 악기상자들이 놓여 있었다." 1942년 8월 9일에 레닌그라드에서 열린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7번 C장조> 공연은 예술 체험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 공연은, "우리는 승리를 원한다"는 확신을 서로에게 심어주기 위한 음악회였던 것이다. 쇼스타코비치의 <레닌그라드>는 독일이 침공에 맞선 러시아의 저항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히틀러의 군대가 1944년 1월까지 총 9백일 동안 레닌그라드를 점령하게 된다. 이때 63만 2천명의 사람들이 기아나 동사로 죽음을 맞았다. 이것은 공식적인 숫자이고, 역사학자들은 전체 시민의 3분의 1인 1백만명정도가 죽었을 거라고 추정한다. 레닌그라드 점령은 2차 세계대전중 러시아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되었다.
드리트리 쇼스타코비치는 두 번 의용군으로 지원했다. 그러나 소련은 뛰어난 예술가들을 군대로 징집하지 않았다. 쇼스타코비치는 음악원에 남아 레닌그라드 시민들을 위해 '그들의' 교향곡을 썼다. 초연은 1942년 3월 5일에 쇼스타코비치가 머물던 쿠이비셰프에서 열렸다. 이 작품은 곧바로 하나의 신호탄으로 이해되고, 세계적으로 연주되었다. 악보는 당시로서는 모험적인 방법인 마이크로필름형태로 외국에 전해졌다. 비행기 한 대가 봉쇄를 뚫고 들어가 마침내 레닌그라드에도 악보를 전달했다. 전선에 나가 있던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 연주자들은 휴가를 받아 공연에 참가했다.
이 작품은 곡이 생성되던 당시의 상황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승리를 확신하는 피날레가 있는 <교향곡 7번 C장조>는 사람들이 절망적인 사황을 극복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어야 했고, 이 목적은 이루어졌다. 이 곡은 작곡가의 최고의 작품은 아니다. 오늘날 <레닌그라드>보다 <교향곡 10번 e단조>나 <교향곡 5번 d단조>가 훨씬 자주 연주된다. 그렇지만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많은 사람들조차도 그의 이름을 자동적으로 이 작품과 연결시킨다.
<교향곡 7번 C장조>에서 30분간 연주되는 서곡 악장의 핵심은 이른바 침공 에피소드다. 이 에피소드가 음악에 감정적인 추진력을 부여한다. 북소리의 냉혹한 리듬에 밀려가면서 점점 거대한 음향이 형성된다. 이 기본원칙을 쇼스타코비치는 라벨의 <볼레로>에서 배워 자신의 작곡에 응용했다. 대수롭지 않은 작은 테마가 11회 반복되면서, 모든 것을 휩쓸어가는 무게로 고양된다. "나의 교향곡에서 행진테마는 공격적인 독일 파시즘의 침입을 구체화하고 있다." 생애가 끝날 때쯤 쇼스타코비치는 이와는 다른 보충적인 해석을 제공한다. 교향곡의 텍스트 토대이자 영감의 원천은 다윗의 시편 79편, 예루살렘의 파괴를 한탄하는 '힘든 전쟁의 고난에 처한 주님 백성의 기도'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쇼스타코비치는 '흘린 피를 위해 주님께서 복수한 시다'라는 결론을 끌어낸다. 그는 레닌그라드 점령 전에 이미 이 시편에 몰두했다. 그후 레닌그라드 시민들의 절망적인 상황을 통해 비로소 <교향곡 7번 C장조>에 거대한 의미가 덧붙여진 것이다.
이 내용은 조금 다르게 들릴 수도 있다. 독일에 저항하는 레닌그라드 시민들에 대한 찬가일 뿐만 아니라, 도시를 파괴하고 스탈린식의 숙청으로 사람들을 불안과 공포에 빠뜨린 소련 국가기구에 대한 비판으로 들릴 수도 있는 것이다.
아마도 작곡가협회 제1서기장 크레니코프는 그와 같은 것을 예견감했던 것 같다. 종전 직후에 그가 <레닌그라드>에 대해 쇼스타코비치를 비난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의미에서, 쇼스타코비치가 재앙을 불러오는 침략의 음조들에 대항해 낙관적으로 올려퍼지는 러시아 민족의 멜로디를 대비시켜야 했다고 그는 말했다. 그런 식의 비난은 곧바로 상대를 위험에 처하게 만들 수 있었다. 국가지도부의 칭송, 그리고 추방, 다시 새로운 신봉으로 바뀌는 변덕을 쇼스타코비치는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교향곡 7번 C장조>로 그가 스탈린 상을 받기는 했지만, 그 뒤에도 '민중의 적'이라는 비난은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성공을 거두면서 크게 칭송을 받은 오페라 <므첸스크의 레이디 맥베스>가 스탈린의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1936년에 스탈린은 즉흥적으로 이 공연을 중단시키기도 했다. 이것은 소련에서 예술가에 대한 사형선고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 이후로 쇼스타코비치는, 독재자에게서 유일하게 예측 가능한 것은 바로 그의 독단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 체험은 쇼스타코비치에게 지울 수 없는 영향을 미쳤다. 평생 동안 불안감이 그를 따라다닌다. 가까운 친구들도 숙청의 희생물이 되었다. 이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1936년에 '음악이 아닌 혼돈'이라는 <프라우다>의 비방 기사에서 그의 작품을 혹평한 "이 공연은 위험하다"와 같은 한 문장을 쇼스타코비치는 실질적인 위험으로 인지했다. 그리고 순응했다. 자신의 순종을 증명하기 위해 그는 사회주의적인 삶의 기쁨에 대해 더 많은 작품을 썼다. 그래서 전후의 소련은 그를 사회주의 노선에 충실한 인물로 보고, 서방세계는 그를 오랫동안 단순히 국가에 충실한 작곡가로 보았다. 사람들과의 교제를 꺼리고 거의 공포를 느낄 정도로 두려워하는 쇼스타코비치는 사진에서 웃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그런데 이런 쇼스타코비치를 소련 국가지도부는 사회주의 예술의 대표자 역할로 떠다 밀었고, 그도 그것을 허용했다. 압력을 받은 쇼스타코비치는 당원이 되었다.
인간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충성선언에 좌절하고 자존감을 상실했다. 그래서 음악가 쇼스타코비치는 예술에 은밀한 메시지들을 숨겨 넣는 것으로 출구를 찾았다. 예를 들어 오늘날까지 매우 성공적인 1937년의 <교향곡 5번 d단조>는 소련의 뜻에 맞게 모든 것을 제대로 만들었고, 공식적인 칭송도 받았다. 쇼스타코비치는 사적인 대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교향곡 5번>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누구나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완전한 바보가 되어야 한다. 환호는 위협에 의해 강요된 것이다. 마치 누군가가 몽둥이를 들고 때리면서 '그들이 환호해야 해, 그들이 환호해야 해'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1953년에 스탈린 사망 후에 완성된 장엄한 <교향곡 10번 e단조>는 거의 숨기지 않고 끔직하게 독재자의 무시무시한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 이처럼 쇼스타코비치는 가끔 이념을 선전하는 작업들을 해 사람들이 한동안 자신을 편히 내버려두도록 할 수 있었고, 그 사이 그런 독창적인 작품을 완성할 기회를 획득했다.
쇼스타코비치는 수치심에 가득 차서 자기 자신을 겁쟁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자신이 정말로 생각하는 바를 음악에만 털어놓았던 것 같다. 그래서 종종 음악에 치밀한 이중적 토대를 부여했다. 첼로 연주자이자 지휘자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의 설명에 따르면, 쇼스타코비치의 풍부한 교향악 작품이 그렇게 조화롭지 않게 들리는 이유가 바로 이런 분열에 있다. "쇼스타코비치는 <숲의 노래>를 스탈린을 위해 작곡했고, 레닌에게 헌정하는 교향곡을 썼으며 <1905년>이라는 제목의 교향곡도 썼다. 그러나 그의 양심은 이 작품들을 역사에 남을 정도로 훌륭하게 쓰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
Dmitrievich Shostakovich 1906 ~1975
1 mov. Allegro moderato
2 mov. Adagio
3 mov. Rondo Allegro
Haydn, Franz Joseph (1732-1809 Aust.)
Capella Istropolitana
Cello : Anto Noras
director : Bohdan Warch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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