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클래식(2009년)

KBS교향악단 제630회 정기연주회/2009.5.8.금/예당

나베가 2009. 5. 8. 03:39

KBS교향악단 제630회 정기연주회
The 630th Subscription Concerts of the KBS Symphony Orchestra


영국의 자랑, 엘가 그리고 줄리안 로이드 웨버

□ 연주소개

영국의 첼로 아이콘, 첼리스트 줄리안 로이드 웨버와의 첫 만남!
영국 출신의 세계 최고의 뮤지컬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친동생으로 웨버家의 천부적인 음악성을 이어받은 줄리안 로이드 웨버, KBS교향악단과 첫 만남을 가집니다.
수많은 명반으로 이미 국내에서도 잘 알려져 있는 줄리안 로이드 웨버는 이번 연주회에서 영국의 자랑,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연주합니다. 가장 영국적인 음악성으로 KBS교향악단과 호흡을 맞추게 될 줄리안 로이드 웨버! 엘가의 최후의 대작으로 손꼽히는 낭만적이며 서정적인 아름다움, 그리고 애잔한 우수성을 느낄 수 있는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베토벤 교향곡 제7번, 그리고 지휘자 곽승.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부지휘자를 역임한 지휘자 곽승, 그리고 그의 손끝에서 전하는 KBS교향악단의 베토벤. 각 악장마다 독특하고 인상적인 리듬을 지녀 리듬의 대향연, 리듬의 화신이라 불리는 베토벤 교향곡 제7번이 한국의 대표적인 지휘자 곽승과 펼쳐냅니다. 국내 클래식 동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베토벤의 작품으로 꼽은 교향곡 제7번! KBS교향악단만의 깊은 음색으로 베토벤이 빚어내는 흥분에 빠져보시기 바랍니다.

 

출연자
- 지휘 : 곽승 Sung Kwak
- 첼로 : 줄리안 로이드 웨버 Julian Lloyd Webber


 

프로그램
- 로시니 / 비단사다리 서곡
G.Rossini / The Overture to La scala di seta

- 엘가 / 첼로 협주곡 E단조 작품85
E.Elgar / Cello Concerto in E minor, Op.85

- 베토벤 / 교향곡 제7번 A장조 작품92
L.v.Beethoven / Symphony No.7 in A minor, Op.92

 

출연자 프로

지휘 l 곽승
.뉴욕 메네스 음대졸업
.뉴욕 아메리칸 발레단 부지휘자, 조프리 발레단 지휘자 역임
.아틀란타 심포니 부지휘자 역임/로버트 쇼 발탁
.로린 마젤이 이끄는 미국 최고의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부지휘자 역임
.오스틴 심포니 음악감독 역임
.서울시교향악단 음악감독 겸 지휘자 역임
.KBS교향악단 수석객원지휘자 역임

Conductor l Sung Kwak
.Graduated from Mannes College of Music in New York.
.conducted extensively as Music Director of New York's Joffrey Ballet.
.The Exxon/Arts Endowment Conductor with the Atlanta Symphony Orchestra(By Robert Show).
.Tenure of Cleveland Symphony Orchestra (under Lorin Maazel).
.The Music Director of the Austin Symphony.
.Artistic Director & Conductor of Seoul Philharmonic.
.Worked as Principal Guest Conductor of KBS Symphony Orchestra.

 

첼로 l 줄리안 로이드 웨버
.16세, 영국왕립음악원 장학금 수혜
.프랑스 첼로 연주자 피에르 푸르니에 사사
.예후디 메뉴힌에서 엘튼 존까지 다양한 음악가들과 작업
.엘가 협주곡으로 브리트상을 받은 것 포함 및 수많은 명반 출반
.크리스탈 상과 클래식 FM 레드상 수상
.데일리 텔레그라프 월간칼럼게재
.런던 지하철노선에 첫 번째 공식악사 지정
.'Barjansky' Stradivarius cello(c.1690) 사용

Cello l Julian Lloyd Webber
.Won a scholarship to the Royal College of Music at the age of sixteen.
.Study in Geneva with the acclaimed French cellist, Pierre Fournier.
.Collaborated with an extraordinary array of musicians, from Yehu야 Menuhin to Elton John.
.Made many recordings, including his BRIT Award winning Elgar Cello Concerto, etc...
.Won the awards of the Crystal Award at the World Economic Forum in 1998 and a Classic FM Red Award.
.Write a monthly opinion column for The Daily Telegraph, commending on recent developments in the music world.
.The first official busker on the London tube network.
.Plays the 'Barjansky' Stradivarius cello(c.1690).

 

공연후기.....

 

BC플래티늄 회원으로 쉽게 갈 수 있었던 KBS 정기 연주회 공연이 이젠 좀체로 가기가 쉽지않다.

예매가 단 2분도 채 안되서 끝이 나 버리기 때문에....

그것도 미리 컴터 켜놓고 기다리고 있다가 정각 9시에 딱 클릭을 하면 일시에 많은 사람들이 예매를 하기때문에 컴터가 다운되는 바람에 그야말로 운에 달렸다고나 할까....

더우기 이번 공연같은 경우엔 만원하던 말석이 삼만원으로 껑충 뛰어 있엇다.

그것도 합창석과 3층 맨 뒤 별도로 마련되어 있는 두줄 좌석만이 ....

좀 심하다 싶을 정도였다 .

암튼 이렇게 심한 경쟁률을 뜷고 당첨된 초대권....한장을 추가 예매하여 베네딕다 언니네랑 함께 간 공연이었다.

그런데 이런~~

금욜이라 도로가 너무나 막혀서 언니네가 도저히 제 시간에 오기는 커녕 서곡 한곡쯤만 포기를 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1부 전체를 못볼 지경이 된 것이었다.

차라리 현장예매를 할걸....10%할인 받는다고 아침에 예매를 했거늘...

만원짜리도 아니고...좋은 일 한다고 했다가 예상치 못했던 돌발 상황에 찜찜한 맘으로 티켓을 보관소에 맡겨두고 들어갔다.

 

첫곡-로시니의 비단사다리 서곡을 듣고 있노라니 오보에와 바이올린의 장난끼 어린 경쾌한 선율에 그의 희극적 이미지가 떠 올라서 연주 내내 미소를 머금게 했다. 성악가들에게 뿐만이아니라 악기에 조차도 꾸밈음이 수없이 달려있어  단번에 그의 곡임을 알아차릴 수 있는....아주 단순한 멜로디만을 가지고도 반복하고 꾸미고 해서 너무나도 풍성한 선율처럼 들리게끔 만든 독특한 로시니만의 천재성에 다시 감탄도 하면서 , 그리고 비단 사다리 내용도 떠올려 보면서 그야말로 아주 유쾌한 공연의 서곡을 맞았다.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 영국의 자랑 <줄리안 로이드 웨버>다.

바로크 시대의 <헨리퍼셀>후 200년만에 나타난 영국의 자랑- 엘가의 첼로협주곡을 연주한다.

워낙 아름다운 곡이라서 실황으로 이 곡을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달려 올 판인데,

<줄리안 로이드 웨버>는 이 곡으로 <브리트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니 정말 기대 만땅이다.

 

커다란 피치카토의 울림으로 가슴에 서늘하리 만큼 깊은 인상을 주며 시작하는 엘가의 첼로협주곡 ....

한창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던 상황에서 온몸이 굳어오는 경화증에 걸려 너무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쟈크린 뒤프레>의 연주가  워낙 깊이 박혀 있는 곡이라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슬픔이 온몸으로  엄습해 들어오는 것이다.

늙어가고 있는 엘가 자신의 고뇌와 함께  쇠락해 가고 있는 자신의 모국에 대한 애틋함...그리고 그의 마지막 곡이기도 하고

또한 발표직 후 아내의 죽음까지...그 모든 상황들이 이처럼 무겁고 깊은 심연속으로 몰고 들어가는 ...그러면서도 그 아름다움이 눈물이 날만큼 매혹적이기도 한....그래서 객석의 매니아들 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첼로 연주자들이 이 곡을 앞다투어 연주를 하는것 같다.

 

이 곡은 음의 폭이 워낙 커서 연주하기가 매우 까다롭다고 한다.

줄이안 로이드 웨버의 연주는 매우 정직한....흔들림없는 깨끗하고 명징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크게 감동의 깊이에 오버하지도 않고 자세도 매우 안정적인...그야말로 영국 신사같은  연주였다고나 할까...

 

이 작품에서는 오케스트라는 비교적 적게 사용되는데 그것도 주로 높은 영역과 낮은 영역에서만 연주되고, 텅 빈 중간 음역에서만 첼로가 연주되기때문에 더 없이 첼로 연주가 돋보이도록 만들어진 곡이다.

상실하는 것들,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애도...

가을날의 우울함으로 가득차 있지만, 그 우울함은 비관적이지 않고 연민에 대한 그리움으로 승화되어 더없이 아름다음으로 가슴깊이 파고드는 것이다.

 

연주가 끝날때까지  베네딕다 언니는 내 옆자리로 찾아들지 않았다.

그래도 이 아름답고 멋진 곡을 뒷자리에서라도 보았길 바랬는데....

인터미션에 로비로 나가보니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좀 전에 도착했다고....세상에 도대체 얼마동안 도로에 서 있었다는 거야~~

일부러 티켓팅까지 했는데 괜스레 미안한 맘이 더욱 커져가기만 했다.

 

이제 2부다....

베토벤 7번 교향곡...

한마디로 말하면 이렇게 멋지고 웅장한 곡에 관심쓰지 않았었음에 안타까워지기까지 ....

특히 2악장은 너무도 웅장하면서도 조용한 저력이 느껴지는 힘있는 곡이었다.

너무도 멋져서 옴딱 달싹도 할 수 없었던...마치 베토벤 5번 교향곡 2악장 아다지오를 듣고 있는 것마냥 ....

3악장 프레스토에선 활기차고 목관이 더없이 예쁘다. 새들이 지저귀고 들판은 푸르고 수목은 한참 물이 올라있는 듯한...

마지막 피날레의 웅장함이란...베토벤의 저력을 맘껏 즐길 수 있는 멋진 시간이었다.

 

로비로 나오니 <줄리안 로이드 웨버>의 팬 싸인회가 열리고 있었다.

언니네는  아쉬움에 음반을 여러개 사서 싸인을 다 받았다. 그렇게라도 아쉬움을 달래보려...ㅎㅎ

첼로 협연만이라도 볼 수 있었다면 더없이 즐겁고 행복한 날이었거늘....

아쉬움으로 기억될 공연!!

 

 

 

 

 


 

- 로시니 / 비단사다리 서곡
G.Rossini / The Overture to La scala di seta

 

조아키노 안토니오 로시니(1792-1868)는 19세기 전반의 가장 중요한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로서 당시 사람들로부터 최고의 작곡가로 불렸다.
독일의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는 로시니의 음악을 매우 높이 평가했다.
“로시니 선생은 최고의 마에스트로이며, 음악의 햇살을 온 세상에 비추는 이탈리아의 태양입니다. 선생의 예술적 깊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가련한 우리 독일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이들이 선생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선생의 음악이 장미꽃으로 뒤덮여 있어서 사색적인 무게와 철저함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독일 사람들은 선생의 음악이 너무나 가벼운 날개를 달고 천상을 날아다닌다고 생각합니다.”
하이네가 로시니에게 쓴 편지이다.

어느 젊은 작곡가가 로시니에게 오페라 서곡은 언제 작곡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하는 질문을 했다. 이에 로시니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이렇게 알려주었다. “ 초연 전날 저녁까지 기다리게. 상황이 절박할 때야말로 영감이 가장 잘 떠오르는 때니까. 자네의 작품을 사보하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고, 기획자들이 초조해져서 자기 머리를 쥐어뜯을 때까지 기다리란 말일세. 내가 오페라를 작곡하던 시대에는 이탈리아의 모든 공연 기획자들이 서른 살에 모두 벌써 다 대머리가 되어 있었지.”

로시니의 창작과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시간’이었다. 이탈리아 오페라는 시즌제로서 상연일을 지정한 계약서는 1년전에 이미 계약되지만 무엇을 상연하는지는 거의 결정되지 않았다. 대본은 항상 늦어지고 다 되었더라도 검열관의 허가를 얻어야 했다. 검열관은 반드시 개정을 요구했다. 그래서 작곡가가 대본을 처음 받는 것은 거의 상연 1개월 전이었다. 자세한 줄거리를 모르는 채 작곡을 시작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시간이 이처럼 급박하기 때문에 정성어린 개작도 할 수 없다. 따라서 많은 장면은, 특히 막이 오른 첫 장면은 하나의 정형화된 스타일로 쓰고 만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이런 형편에 있으면서도 로시니의 작품은 변화와 창의에 넘쳐있다는 사실이다. 그의 경우는 시간이 너무 급박해 손이 팽이처럼 움직이지 않으면 안될 만큼 급박했다고 전해진다. 이런 이상 한가지 법칙이나 스타일에 따라 음악을 쓸 필요가 있었고 적당하건 그렇지 않건 자신의 옛 작품에서도 뽑아다 쓰지 않으면 시간을 맞출 수 없었다. 물론 모든 경우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대부분 이러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알고 나면 로시니가 “훌륭한 작곡가는 빨리 쓰는 작곡가”라고 한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유명한 스테이크 요리<투르네도 로시니>가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일 정도로 식도락가였던 로시니. 그가 게으르고 거들먹거리는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늘날 로시니에 대한 자료는 거의 찾을 수 없다. 묘사는 잘 되었으나 신빙성은 없는 스탕달의 <로시니의 생애>에 의한 이야기이거나, 확인 할 수 없는, 전해지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그의 <세빌리아의 이발사>나 <신데렐라>같은 희가극이 18세기 즐겁고 웃기는 오페라 부파양식이라고 해서 로시니를 과거의 작곡가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그는 <오페라 세리아>의 작곡가로써 중요하다. 이 분야에서 그가 창조하고 완성한 새로운 방식은 그 후 50년, 그보다 더 오래 이탈리아 오페라에 영향을 끼쳤다. 그는 노래 스타일을 변화시켰고, 연극적 소재를 바꾸었다. 그는 또 오페라 형식과 리듬에 생기를 불어넣었으며, 음악이 드라마를 규정하고 틀을 꾸며 나가는 방법으로 새바람을 일으켰다.

19년 동안 그는 모두 39편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그러나 서곡은 39편이 되지 않는다. 베토벤은 자신의 오페라 <피델리오>를 작곡할 때 서곡을 네 개나 만들어 두었다. 그러나 로시니는 서곡을 하나 작곡해서는 오페라 세편에 함께 쓰는 경제적인 작곡가였다. 그래도 그는 청중으로 하여금 분위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재주가 있었고, 로시니만큼 그 일을 잘 해내는 작곡가는 또 없었다. 18세기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로시니의 서곡들은 언제나 극장 커튼 오픈용이었다. 그래서 그 뒤에 무대에서 펼쳐지는 오페라의 내용이나 분위기와는 별 상관이 없었다.

1816년부터 1830년까지 유럽을 휩쓸었던 로시니의 인기는 그야말로 1960년대의 비틀즈의 인기 못지않은 것이었다. <비단 사다리>는 주세페 호파(Giuseppe Hoppa 1760-1845)의 대본에 의한 1막짜리 오페라 부파로서 1812년 5월 9일 베네치아의 산 모제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반응은 썩 좋지 않았고, 오늘날 거의 상연되지 않는 오페라이지만, 밝고 아름다운 선율로 만들어진 서곡은 많이 알려져 있다. 오페라의 줄거리는 이렇다. 도르몬은 각각 사랑하는 연인이 있는 줄리아와 브란삭, 이 두 남녀를 결혼시키려고 한다. 어느날 밤 줄리아는 창으로 비단 사다리를 내려 연인 돌만과 만나려하는데 브란삭은 그것을 자신을 위해 내려준 것이라 오해하고, 브란삭의 연인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오해가 쌓여가는데, 여기에 줄리아의 연인이 나타나고 도르몬도 등장하면서 일대 소동이 벌어지다가 결국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는 이야기이다.
오페라 부파에 어울리는 경쾌하고 우아한 작품으로 로시니의 서곡 중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선율을 갖고 있다.

- 엘가 / 첼로 협주곡 E단조 작품85
E.Elgar / Cello Concerto in E minor, Op.85

 

Elgar - Cello Concerto in E minor, Op. 85 - II. Lento -

Elgar - Cello Concerto in E minor, Op. 85 - III. Adagio

04.Edward Elgar - Cello Concerto in E minor, Op. 85 - IV. Allegro 

 

 

 

 

 

1차 세계대전은 엘가의 세계도 파괴해버렸다.
그는 ‘공적’인 음악을 써야했다. 벨기에가 함락될 때 세 개의 작품을 썼고, 폴란드를 기념하기 위해 <폴로니아>Op.76을 썼으며, 다른 음악당의 연회용곡으로 <함대의 공격>을 작곡했다. <영국의 정신>에서 <전사자를 위하여>까지 그는 음악가로서 공식적인 발언을 했다.

전쟁이 끝날 무렵 그는 런던의 대저택이 아닌 서섹스 지방의 외딴 오두막집에서 비로소 오랫동안 꿈꾸던 실내악 작곡을 하게 된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와 <현악 4중주 2번 E단조>에 이어 <피아노 5중주 A단조>까지 1918년 말에서 1919년 초, 사라진 시대의 유언장과도 같기도 하고 엘가 아내의 말대로 “숲의 마술”과도 같은 작품들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 일련의 작품들은 1919년 마지막 오케스트라 작품인 <첼로 협주곡>으로 확대된다.

이 작품에서 오케스트라는 비교적 적게 사용된다. 오케스트라는 주로 높은음역과 낮은 음역의 양극단의 음역에서 움직이며, 중간 음역은 텅 빈 채로 시작한다. 여기에 독주 첼로가 간결하고 깊은 감동을 주는 4개의 악장 사이를 관통하며 누빈다. 어떻게 하면 현대적인 교향곡 오케스트라의 사운드의 사이를 뚫고 낮은 음역인 독주 첼로의 소리를 들리도록 할 것인가 하는 첼로 협주곡의 오래된 화두를 훌륭하게 해결해 준 작품이다.

이 <첼로 협주곡>이 초연된 지 5개월 후에 엘가의 아내가 죽었다. 마치 그에게 어머니와도 같은 따뜻한 격려와 후원이 사라진 것이다. 엘가는 창작에 대한 의욕을 잃었다. 그는 런던의 대저택을 팔고 방랑자가 되어 그의 어린시절 살았던 시골마을의 작은 셋집을 전전하게 되었다. 그에게 왕실의 음악담당직위를 비롯한 많은 명예가 주어졌지만, 대규모 곡을 다시 작곡해 달라는 모든 권유를 거절했다. 때문에 이 첼로 협주곡은 엘가의 마지막 대작이 되었다.

“이 작품은 정말 대작이며 나는 이 작품이 대단하고 살아있다고 생각 한다” 엘가 자신의 말대로 이 작품은 오늘날까지 살아있는 가장 사랑받는 첼로 협주곡이 되었다. 이후 자클린 뒤프레라는 전설적인 첼리스트의 명연주도 이 작품의 인기에 한 몫을 한다.

다이애나 맥베그(Diana Mcveagh)는 "이 작품은 가을날을 우울함으로 가득차있지만, 그 우울함은 비관적인 것이 아니라 연민에 대한 우울이다“ 라고 했다. 상실하는 것들,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애도를 담은 엘가의 첼로 협주곡이지만 당시 초연에서는 별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평론가 어니스트 뉴만(Ernest Newman)은 불완전했던 초연에서 “아름답고 매우 간단하다. 지난 2년간 엘가의 음악에서 볼 수 있었던 간결함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그러한 단순함의 밑바닥에는 깊이 있는 현명함과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평생을 지상의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에 잠겨 이를 동경해온 훌륭한 영혼을 느낄 수 있다” 는 호평을 남겼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엘가를 두고 “최초의 영국의 진보주의자”라고 극찬한 바 있다. 독학으로 바이올린과 피아노, 작곡 기술에 대한 지식을 익힌 엘가가 모범을 삼은 작곡가들은 독일 오스트리아의 작곡가들이었다. 엘가의 작품에 멘델스존, 바그너, 말러, 리하르트 슈트라우가 엿보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현실적인 작곡가였던 엘가는 “나는 작곡가의 천직을 옛날 이탈리아의 음유시인이나 켈트족의 서정시인이 했던 것처럼 생각하고 싶다. 당시 군대에 앞장서서 분위기를 돋우는 것이나 노래로 사람들을 고취시키는 것은 수치가 아니었다. 음악으로 행사를 축하하려는 사람들에게 음악을 선사하는 것. 그것이 잘못된 일일까? 사람들이 그들에게 자극이 될 만한 것을 원하고 있는 때에 아무에게도 호소력 없는 푸가 같은 것을 작곡해야만 하는가?”라고 했다.

1921년 출판업자가 엘가에게 지난 5년간 그의 작품들이 정확히 256파운드밖에 못 벌어들였다고 하자 엘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한 번도 진정으로 음악세계에 속한 적이 없었소. 그들과의 어쩔 수 없었던 사소한 연결이 혐오스럽소. 제발 그들과의 관계를 끊고, 다시 내 개들과 말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면 기쁘겠소.”
당시 음악가란 품위 없는 직업이었다. 자신이 작곡가 엘가씨로 소개되는 것보다 젠틀맨 엘가씨로 소개되기를 원했던 작곡가. 기차를 탈 때는 일등석을 탔고, 완벽하게 멋을 내고 사람들 앞에 나타났으며, 여우사냥과 크리켓시합에 열광한 엘가. 그러나 그는 점심을 땅콩 한 봉지로 때워야하는 그늘을 갖고 있었다.

40대에 버밍검 대학의 교수로 재직했던 엘가의 강의 제목은 <영국음악의 미래>였다. 그는 강의에서 ”영국음악의 다양한 미래는 가능하다. 내가 바라는 것은 우리자신의 혼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것은 크고 고상하고 기사적이며 건전하고 외향적인 정신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이것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모든 모방을 버려야한다.” 고 했다. 이는 그 자신을 향한 말이기도 했다.
물론 엘가는 시대를 앞선 선지자는 아니었다. 그의 동시대인들은 그가 말하는 것을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더욱 세상을 향해 이야기했는지도 모른다. “젊은이들이 좀 더 그들 자신의 나라, 고유의 문학으로부터, 그리고 고유의 기후로부터 영감을 얻기를 바란다. 진정 영국적인 영감의 원천에 의지할 때만 우리가 영국적 문화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 베토벤 / 교향곡 제7번 A장조 작품92
L.v.Beethoven / Symphony No.7 in A minor, Op.92

 

1악장: Poco sostenuto / Vivace

2악장: Allegretto

3악장 : presto

4악장: Aleegro con brio

 

 

교향곡 5번과 6번이 발표된 이듬해인 1809년. 베토벤은 39세였다.
빈은 프랑스군에게 포위되고 침략 당했다. 원숙기의 베토벤은 이러한 사회혼란 속에서 한동안 작품을 쓸 수 없었다. 프랑스군이 물러가고 사회가 안정을 찾은 1811년, 3년이 흐른 뒤에야 베토벤은 새 교향곡에 착수한다.
그리고 이 교향곡이 초연되기 위해 다시 2년을 더 기다렸다.
1813년 12월 8일 하나우 전투에서 부상당한 오스트리아와 바이에른의 군인을 위한 자선 음악회가 바로 그 자리였다.
음악 평론가 파울 벡커(Paul Bekker)는 교향곡 7번과 8번을 비교하며 “제7번은 높은 곳으로의 등반을 나타내고 제8번은 겨우 다 올라간 정상의 행복한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고 했다.
로맹 롤랑은 “이 작품 속에는 다른 작품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던 솔직하고 자유로운 힘이 나타나 있다. 그것은 초인적인 힘의 엄청난 낭비, 그렇다. 그 낭비의 즐거움이다. 넘쳐서 범람하는 대화의 즐거움이다.” 라고 했다.

제 1번과 2번, 제 4번 교향곡처럼 베토벤은 이 교향곡을 느린 서주로 시작한다. 힘찬 화음에 이어 오보에 독주 선율이 나오고 화음들이 만들어가는 선율적인 요소들이 현악기들이 상행 스케일을 시작할 때까지 쌓여간다. 첫 주제에 대한 엄숙한 대위법이 이어지고, 잠시 뒤에 목관악기 합주를 지나면, 베토벤의 거의 의례적인 장중한 행진곡이 등장한다. 행진곡과 첫째 주제는 긴장을 놓지 않고 곡을 끌고 간다. 플루트와 오보에가 섬세하게 1악장의 주요 동기가 될 주제 리듬을 연주해서 청중들이 안도의 숨을 쉬게 될 때까지 말이다. 결국 플루트가 서주와 대조되는 경쾌하고 즐거운 제 1주제를 드러낸다.
이 악장에서 중요한 것은 거의 쉴 줄 모르고 앞으로 밀고 나가는 리듬이다. 리듬에 주목해야 한다. 고요한 패시지에서도 전진하며 밀고 나가는 리듬의 힘은 시들지 않는다.
음악학자 발터 리츨러(Walter Riezler)는 “그 전에도 또 그 후에도 베토벤은 이 제1악장 같은 최고도의 함축성을 지닌 하나의 리듬에 의해 거의 독점적으로 지배되는 음악을 작곡한 적이 없었다.“ 고 했다.

이 교향곡에서 특별히 언급해야 할 특징은 바로 악장마다 나타나는 리듬의 일관성이다. 제7번 교향곡을 운명을 걷어차고 나아가는 활기와 강렬한 에너지의 폭발이라고 하는 것은 이 리듬에 비밀이 있다.
베토벤의 7번 교향곡을 리스트가 “음악의 신격화”라고 한 것도, 바그너가 “춤의 성화” 라고 한 것도 모두 이 곡의 핵심인 넘치는 생명력과 열광적 리듬 때문일 것이다. 베를리오즈는 이 1악장의 주제부분을 “농부들의 윤무”라고 했다. 정말이지 1악장은 생명력 넘치는 농민들의 힘찬 윤무를 떠올리게 한다.

리듬이 전체를 지배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교향곡의 오케스트레이션을 설명하기 어렵다. 화성적인 구조가 리듬에 못지않게 풍요롭다.
생명력과 유머가 넘치는 스케르초나 느린 악장의 집요함, 한 조성이 다른 조성으로 불쑥 옮아가는 대담함, 그 사이 사이에 자그마한 푸가가 숨겨져 있기도 하고, 더듬거리며 갈 길을 찾아가는 패시지들이 존재하면서 베토벤은 청중을 온전히 자신의 마음대로 휘어잡고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하고 춤추게 하기도하고, 저 멀리 날려 보내기도 한다.

마지막 악장의 거대한 에너지는 리듬을 결정하는 악센트를 쉬지 않고 넣어야하는 연주자들을 숨 돌릴 사이도 없이 몰고 간다. 베토벤은 이렇게 격렬한 연주를 고집하면서 거장의 어마어마한 지적 에너지를 보여준다. 이 작품의 마지막 몇 페이지들은 베토벤이 오케스트라를 위해 남긴 작품 가운데 가장 화려한 패시지중 하나로 손꼽힌다.

당시 비평가들은 이러한 베토벤의 에너지를 못내 버거워했다. “마치 술주정꾼의 작품 같다” “베토벤은 술집에서 이곡을 쓴 모양이다”라고 혹평했다. 그러나 당시 일반 청중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고 전한다. 이토록 리듬을 절묘하게 전개시킨 교향곡은 지금까지도 없었다.
이 작품은 초연된 이후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수없이 되풀이 연주되었고, 특히 제2악장은 따로 앙코르를 받았다.
“나는 인류를 위해 향기로운 술을 빚는 신 박카스이다. 정신의 거룩한 취기를 베풀어 주는 자는 바로 나다”
7번 교향곡에서 베토벤은 진정 인류 정신의 박카스임을 증명하고 있다.

글. 박진영 (음악평론가, 김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