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클래식(2008년)

랑랑 피아노 리사이틀

나베가 2008. 9. 30. 20:08

지구촌 클래식 음악계를 가장 뜨겁게 달구는 아티스트

랑랑 피아노 리사이틀

Lang Lang Piano Recital


“지금 클래식 음악계를 가장 뜨겁게 달구고 있는 아티스트로는 중국 출신 피아니스트 랑랑을 꼽아야 할 것이다.- 「뉴욕 타임즈」

“The hottest artist on the classical music planet may well be the Chinese pianist Lang Lang.” - The New York Times

“끓어 넘치는 열정의 소유자 랑랑이 예술가로서 성숙해가고 있다. … 그의 연주는 품위 있고 정제되었으며, 엄격해졌다. 그는 지적인 방식으로 프레이즈를 만들고, 강약의 서법을 조절했으며, 다양한 아티큘레이션을 형상화했다. 정말 매혹적인 공연이다. 청중을 너무나 흥분시켰던 요소만큼이나, 소리 없이 확장된 그의 음악세계가 기억에 깊게 남을 그런 공연이다.-「뉴요커」

전통과 자존심의 피아노사가 창사 이래 최초로 제품에 붙인 그 이름 ‘랑랑 스타인웨이’!
랑랑의 이름은 중국어로 ‘빛’을 의미하는데, 그는 탁월한 재능으로 이미 세계 음악팬들과 미디어를 사로잡고 있다. 「뉴욕 타임즈」는 그의 연주를 ‘숨을 멈추게 하는’, ‘센세이셔널한’, ‘스릴 가득한’ 것이라 평가했고, 「시카고 트리뷴」은 그를 ‘몇 년에 한 번 만나는, 가장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대단한 재능의 피아니스트’로 칭해, 그 ‘놀랄 만한 테크닉’을 극찬한 바 있다. 「틴 피플」은 ‘세계를 바꾸어놓는 10대들 톱 20’의 한 명으로 랑랑을 선정했고, CNN의 ‘아론 브라운의 뉴스 나이트’에서는 골든 타임에 그의 프로필을 방송했다. 「뉴욕 포스트」는 그를 가리켜 ‘클래식 음악계의 타이거 우즈’로 부르기도 했다. 스타인웨이는 창사 150년 이래 처음으로 제품에 연주자의 이름을 붙인 ‘랑랑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생산하고 있다. 그가 태어난 고향 중국에서 랑랑은 이미 우상과도 같은 존재이며 장편의 전기도 출판되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세계의 주목 속에 클래식 음악계의 슈퍼스타로 부상 중
1982년에 중국의 셴양에서 태어난 랑랑은 3세 때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 5세 때 첫 연주회를 했고 이후 셴양 피아노 콩쿠르에서 1위 입상했다. 9세에 북경의 중앙 음악학원에 입학, 13세에 제2회 차이코프스키 국제 청소년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그 후 필라델피아로 이주해 커티스 음대에서 게리 그라프먼을 사사하고 2002년에 졸업했다. 랑랑은 유명한 국제 음악 페스티벌에 참가할 뿐만 아니라, 세계 최정상급의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유명한 콘서트홀에서 공연하고 있으며 도이치 그라모폰과 전속계약을 맺고 음반 활동을 하고 있다.
2008년에는 유로 컵의 폐막 행사로 쉔브룬 궁전에서 빈 필과 협연했고, 야외 공연 투어를 가져 뉴욕 센트럴 파크, 헐리우드 보울, 시카고의 라비니아 페스티벌, 그리고 드레스덴과 함부르크에서 공연을 가졌다. 2008년에 랑랑은 런던 프롬스에서 독주회를 갖고, 소니의 글로벌 브랜드 홍보대사로도 활동하기 시작했다. 또한 올해 여름에 랑랑의 자서전 ‘천 마일의 여정 Journey of a Thousand Miles’이 출간되었다. 최근, 랑랑은 올해로 제50회를 맞은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허비 행콕과 함께 피아노 듀오로 연주했고, 이 장면은 세계 4천5백만 명의 시청자에게 생중계되었다. 가장 최근인 2008년 8월 8일,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서 랑랑은 중국의 13억 인구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로 출연하여 피아노 연주를 함으로써 지구촌을 감동에 젖게 했다.



§ PROGRAM §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제13번 B플랫 장조, K.333
WOLFGANG AMADEUS MOZART      Piano Sonata No. 13 in B flat Major, K.333
(1756 ~ 1791)
                                         Allegro
                                                               Andante cantabile
                                                               Allegretto grazioso

슈만                                            환상곡 C장조, Op. 17
ROBERT SCHUMANN                     Fantasie for piano in C major, Op. 17

(1810 ~ 1856)                                       Sempre fantasticamente ed appassionatamente 
                                                               Moderato. Sempre energico
                                                               Lento sostenuto e sempre piano


                                                     INTERMISSION

여섯 개의 중국 전통 음악                   Songs Album 음반 <드래곤 송> 중에서 발췌하여 연주하며 
                                                                곡명은 랑랑이 무대에서 직접 소개.
SIX TRADITIONAL CHINESE WORKS  To be named on stage by LL from Dragon

엔리케 그라나도                              고예스카스 H. 64
ENRIQUE GRANADOS                     Goyescas, H.64
(1867 ~ 1916)                               No. 1: Los Requiebros

리스트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이졸데의 사랑의 죽음’ S.447
FRANZ LISZT                              Isoldens Liebestod: Schlufszene aus Tristan
(1811 ~ 1886)                              und Isolde, transcription for piano (after Wagner), S. 447
 
                                                헝가리안 랩소디 제6번 D플랫 장조 S.244/6
                                                Hungarian Rhapsody for piano No. 6 in D flat major, S.244/6


Robert Schumann
Fantasie for Piano in C major Op.17
Sviatoslav Richter, piano


I. Durchaus Phantastisch Und
Leidenschaftlich Vorzutragen (13'53)
 

II. Massig - Durchaus Energisch (06'46)


III. Langsam Getragen
Durchweg Leise Zu Halten (11'17) 

1838년 완성해 리스트에게 헌정한 피아노곡이다. 전3악장 구성의
걸작으로 작품의 서두엔 다음과 같은 실레겔의 시가 적혀 있다.

"갖가지 색깔의 대지의 꿈 속에 모든 음을 꿰뚫고 하나의 조용한
음이 은밀하게 귀를 기울이는 사람에게 들려오누나" 여기서 음은
클라라를 가리키고 있다.

이 작품은 충동적인 고양과 부드러운 몽상이 교차되어 있으며 열정
에 찬 제2악장도 개성적이나 제3악장은 꿈꾸듯 로맨틱한 정감에 찬
음악으로 이는 마치 슈만과 클라라가 속삭이는 달콤한 밀어와 같다.


랑랑에 관한 일화

 Anecdote 1.   ‘대타무대의 대성공

1999년 라비니아 페스티벌에서 열 일곱의 나이로 앙드레 와츠를 대신해 차이코프스키 협주곡을 연주했던 일을 랑랑은 자신의 커리어에 있어서 가장 중요했던 순간으로 꼽는다. 와츠를 대신했던 것은 그가 국제적인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크리스토프 에센바흐의 지휘로 시카고 심포니와 협연을 했는데 연주 직전에 아이작 스턴이 청중에게 랑랑을 직접 소개해주었다. 연주는 예상 외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날 밤 콘서트가 끝난 뒤 관계자들과 출연자들이 가진 파티가 있었는데 랑랑은 거기서 연주를 요청 받았고, 결국 새벽 2시가 될 때까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전곡을 쳤다.

 

 

Anecdote 2.   테러리즘도 불사한 이스탄불 연주회

 

그가 생각하는 ‘음악의 존재 이유’를 잘 알 수 있게 해준 사건이 있었다. 2003년 연말, 랑랑은 터키 이스탄불에서의 콘서트가 계획되어 있었는데 테러리스트들이 그곳의 HSBC 은행을 공격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랑랑의 연주회장이 여기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아 안전상의 이유로 연주회는 공식적으로 취소되었다. 2001년에 9.11 테러가 발생했을 때 많은 클래식 음악가들이 해외공연을 일제히 취소하는 등 패닉 상태를 보여준 지 불과 2년만의 일이었다. 이스탄불 연주회의 공연표는 이미 매진된 상태였는데, 사람들은 환불을 해가기 시작했다. 주최측은 랑랑의 의사에 모든 걸 맡긴다고 하면서 결국은 오지 않는 거냐고 물었다. 랑랑은 음악은 평화와 이해를 의미한다. 내 느낌을 고난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도 함께 나누고 싶다며 이스탄불에 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이 일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언론은 흥분했다. 현지 신문들은 랑랑이 테러리즘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왔고 연주를 했다라며 대서특필했고, CNN에서도 인터뷰를 요청했다. 훗날 그는 당시 일을 이렇게 회상했다. “내가 무슨 영웅이라도 된 듯한 분위기였어요. 하지만 그런 걸 의도해서 이스탄불에 갔던 것이 아닙니다. 단지 나는 연주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그곳 사람들을 음악으로 위로하고 싶었어요.”

 

 

 Anecdote 3.   베르비에 페스티벌에서 거장들과 함께 2003. 7. 26. 랑랑의 일기 중에서

2003년 여름, 나는 스위스에서 열린 베르비에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그곳에 도착해 제임스 레바인과 사라 장, 미샤 마이스키 등을 만났다. 7 22일에 열린 콘서트 프로그램에는 바흐의 네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을 비롯해서 네 손을 위한 피아노곡부터 열 여섯 손을 위한 곡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포함되었다. 연주자 라인 업이 환상적이었다.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 마르타 아르헤리치, 이매뉴얼 액스, 에프게니 키신, 제임스 레바인, 미하일 플레트네프, 스테판 쉐야, 정말 기라성같이 쟁쟁한 피아니스트들이었다. 그리고 나도 끼었다. 여덟 대의 피아노를 위한 작품을 리허설했는데 한마디로 재미있는 카오스였다. 첫 리허설에서 우리는 서로 아무 것도 들을 수가 없었다. 피아노 여덟 대의 뚜껑을 전부 열어 세워놓아서 마치 크고 시꺼먼 여덟 대의 보트가 서있는 것 같았고, 이들이 함께 내는 소리는 ‘아르르르르르르’하는 걸로만 들렸다. 그래서 음표 하나도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점점 우리는 서로의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날 연습에서 드디어 제대로 된 음악이 나왔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소리였다. 오케스트라를 세 개 정도 합쳐놓은 것보다 더 큰 소리가 났다. 농담이 아니다! 만약 여덟 명의 피아니스트가 전부 트리플 포르테(fff)로 연주했더라면 아마도, 음악제를 위해 쳐놓은 천막이 다 찢어졌거나, 지붕이 날아가버렸을 거다. 이 콘서트는 완전히 매진되었다. 모든 스타들과 함께 한 가장 대단한 밤이었다!”

 

 

싸인을 받기위해서 모여든 팬들.....

 

본 공연이 끝나자 마자 벌써 객석은 하나 둘씩 일어나 나가기 시작했다.

헉!!

앵콜도 안했는데??

드디어 앵콜연주...

리스트의 사랑의꿈의 꿈결같은 연주...그리고 격정....

관중의 환호도 그리 길지 않았다.

우르르 일어서 나가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이게 아닌데....

앵콜 더 들어야 하는데...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앵콜은 단 한곡으로 여기서 끝이났다.

지난번의 열광적인 앵콜의 행렬과는 정말 상반된 분위기였다고 할까???

 

그러나

로비에 나와보니, 그들은 싸인을 받기위해 튀어나온 열성팬들이었던 것이었다.

순간...

나역시 한때는 싸인에 목숨(?)걸어 '이쯤이면 더이상 앵콜이 없겠지?' 하고 나왔던...

그러다가 계속 이어진 앵콜을 포기해야만 했었을때의 속상했었음이 떠올랐다.ㅎㅎ

 

그뿐인가!! 동이 나버린 CD를 구하지 못한 젊은 팬들의 안타까워하던 상황을 일숙언니가 얘기하며 웃는다. ㅎㅎ

지난번 한나 공연때의 상황같다.

아예 그의 얼굴을 가까이서 볼 엄두조차 내지못하고 그냥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