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스타 교육관에서 우편물이 왔다.
"어! 이게 웬거야?"
생각해보니, 지난번 사목위원 피정에 따라갔을 때 성모님께 봉헌한 내 '결심' 을 적은 편지였다. 순간 읽어보지 않아도 훤히 알것같은 한달동안의 내 생활에 쓴웃음이 지어졌다.
그러나 봉투를 뜯어 꺼내들은 편지에는 전혀 내가 예상치 못했던 결심들이 빼곡히 적혀있는 것이었다. 정말 기가 꽉 막히는 듯 했다.
기억도 못하는데 지키지 않은 것은 당연한 것이다.
내가 일상을 살면서 이토록 많은 결심들을 단 한달도 기억에서 조차 남기지 못하고 백지수표 남발하듯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에 순간 소름이 끼쳐왔다.
또 속는거겠지만.... 다시 결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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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에 친구가 호수공원 앞 오피스텔로 이사를 왔다.
이사오면 당장 그날로 만날것 같았는데, 오늘에서야 ...
그것도 레슨 끝나고 저녁 늦게서야 만났다.
저녁을 간단하게 먹고, 오피스텔 근처 '노블레스'라는 바에가서 맥주를 마셨다.
중후한 분위기에..음악도 조용하고..소파도 안락하고..괜찮았다.
친구의 첫마디는 '부끄럽다'로 시작했다.
'이혼한 것'이 왜 부끄러운가!
걔가 정말로 부끄러워 하는것이 무엇인지를...알거 같았지만....
뜻밖이었다.
자신의 삶을 그렇게 학대하고 있을 줄은...
"지금 주어진 이자리에서 자신이 홀로설수 있는 길이 무엇인 지... 그것만 생각해.
설령 사람들이 너에대해 손가락질하고 지껄여 댄다해도 그 말들은 다 연기같은 거야. 그들은 그 자리를 뜨면 아무도 네생각 안해. 자기들 살기도 바쁜데 누가 너의 삶에 연연하고 있니? 그런 지껄임 때문에 네 삶을 힘들게 해? 그렇게 스스로 초라하게 만들어?
누군가는 네가 이렇게 비참하다고 생각하는 삶을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다는 거야.
다 떨쳐버리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것을 찾는거야.
나라면...월요일 부터 금요일까지 문화센터에 등록을 해서 매일 그림을 그리러 가겠어.
지금 니 심정으론 혼자서 작업하기보단 그게 낳아.
그리고 주말엔 영화 (비디오) 를 본다든 지, 여행을 하겠어. 아님 푸~욱 잠을 잔다든 지...
그리고 매일 일기를 쓸거야.
아마 이것이 나중에 내 삶의 버팀이 되줄거야. 허망하지 않게...아주 재밌고 행복해서 미소지을 거야.
"야~ 너무 이쁘다! "
"얼마전에 딸이 책을 뒤지다가 아들녀석 초등학교 때 일기장을 들고나와 읽게 된거야.
우리 온 식구는 그날 1시간이 넘게 배를 잡고 뒹굴었다는거 아니니~
일기는 못쓸수록 말이 안될수록 더 재밌고 웃기는거야.
순간 나는 그 일기장이... 그 삶이 '보석'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우리들의 하루 하루의 삶은 보석이야. 그게 고통스러울수록 ...지나고 나면 더 그럴거야.
까마득해진 지난날들이 순간 스쳤다.
아픈 시어머니, 아픈 시누이... 새벽 6시, 정오, 저녁 6시, 자정...어머니 투석해 드리고...식이요법으로 음식 다 따로 하고... 애들 2~30명씩 가르치고... 어머니도 아픈데 집 초라한거 싫어서 이틀밤을 새워 페인팅하고 - 붓들고 앉아서 졸았다는거 아냐~- 애들 옷 다 만들어 입히고...밤새워서 작품하고...성당일 하고..
이제껏 살아온 중에 그때가 가장 열심히 살은거 같아.
너가 그랬는데 기억해?
' 이집은 참 이상해. 아무리 생각해도 웃을일이 하나도 없을것 같은데...모두가 다 웃고 산다는게 불가사이야.'라고...
이건 내가 어려움을 극복할 때 가장 힘이 되었던 건데...
나는 나한테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불행한 일이 무엇인 지 생각해 봤어.
그랬더니 지금 내게 닥친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더라구... 그리고 그제서야 내가 가지고 있는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어.
포기하지 말고 끓어 안아봐. 그럼 지치지 않고 힘이 생겨."
마음을 다 털어 놓을 수 없었겠지만,
이런 저런 옛이야기로 맘을 달래고 웃기도 하다가 오피스텔로 갔다.
그쳤던 비가 또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시다가 ..친구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그에게서 처절한 외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혼자'라는 느낌... 혼자 이 방에 들어온다는게 너무 싫다고 했다.
인간의 속성이란.....
혼자있음을...나만의 공간을 갖기를 그렇게 그리워 하는데....
막상 주어지면 또 이토록 힘들어 하니까....
웬지 한없이 나약해 보이는 친구가 엉망으로 살아갈까봐~ 무너져 내릴까봐~ 걱정도 됐다.
내주에 출발해서 일본에 3개월쯤 가 있는다고 했다.
그리곤 내게 키를 주었다. 빈집같지 않게~ 혼자 있고 싶을 때 가끔씩 와서 차마시고 가라고..
"그래. 너 오기 전에 꽃도 사다 꽂아 놓을께. 힘내!
비는 그쳤다.
힘차게 살아가는 줄 알았더니...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내일 십자가 고상과 성모님을...그리고 묵주를 선물해야 겠다.
기도 하고 싶다는 친구에게
6. 14. 토. 새벽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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