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클래식(2009년)

고양시립합창단-베르디 레퀴엠/함신익초청/2009.6.9.화/아람누리 음악당

나베가 2009. 6. 13. 20:02

공연명 고양시립합창단 제17회 정기연주회
호국의 달 특별기획 앵콜공연
마에스트로 함신익 초청
<베르디 레퀴엠>
일시/장소 2009. 6. 9(화) 저녁 8시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주    최 고양시
주    관 고양시립합창단
입장권/관람등급 공연티켓 :
모시는자리 60,000원 | 으뜸자리 50,000원 |
좋은자리 30,000원 | 편한자리 20,000원

(만7세이상 입장가능 / ※예매가 빠르면 좌석이 좋습니다.)
공연예매 공연예매 :
고양문화재단 서비스플라자 : 1577-7766 (www.artgy.or.kr)
인 터 파 크 : 1544-1555 (www.interpak.com)
티 켓 링 크 : 1588-7890 (www.ticketlink.co.kr)
공연문의/홈페이지 공연문의 : 031)967-9155~7 (고양시립합창단 사무실)

공연후기....

 

베르디의 레퀴엠 공연공지를 보고는 설레이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고양시립 합창단과 지휘자 함신익의 실력은 익히 알고 있었던 터....

더우기 베르디의 레퀴엠이 작은 아람음악당에 울려퍼질 것을 상상하니 벌써 내 마음은 감동으로 가슴이 시려왔다.

 

화욜은 오전에 유형종의 '오페라 파라디소' 수업이 있고, 오후엔 한창호의 '영화와 오페라' 수업이 있는 날이라

종일 아람에서 사는 행복한 날이기도 했다.

오후수업이 끝나고 도서관으로 행차해  읽던 '발터가 만난 말러'를 마저 읽었다.

그 또한 당시의 생생함이 얼마나 세세히 묘사가 되어있는 지 ...

발터가 곁에서 본 말러의 삶은 물론 교향곡에 대한 전반적인 해설까지 상세히 적혀있어 공연장의 그 엄청난 선율까지 오버랩되며

감동의 물결이 가슴을 메아리쳤다.

 

함께 보기로 했던 베네딕다 언니네가 예상보다 훨씬 빨리 도착을 해서 난 가까스로 다 읽은 책을 반납하고 서둘러 음악당으로 나섰다. 어느사이 비가 뿌리고 있었다.

로비에서 만난 우린 비가 부슬 부슬 내리는 그 분위기가 더없이 좋아 샌드위치와 커피를 사들고 밖의 파라솔이 있는 까페로 나왔다.

 어쩌다 보니 하루종일 굶은 난 샌드위치도 2개, 남의 커피까지 빼앗아 2잔을 먹어치웠다. ㅎㅎ

 

우리 자린 2층 앞자리....

이렇게 웅장한 레퀴엠을 듣기엔 더없이 좋은 자리였다.

 

드디어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합창단원이 무대에 오르고 함신익 지휘자가 올랐다.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키리에'가 아주 아주 여리게....까마득한 가슴 저 밑바닥에서 부터 올라오듯 그렇게 울려퍼졌을땐 그 어떤 웅장함보다도 더 가슴을 짜릿하게 했다.

그러다가 '진노의 날'이 울려 퍼질땐....와아~ 정말 하늘 문이 열린것 처럼 철렁 가슴이 내려앉았다.

'최후 심판의 나팔'이 무대와 합창석에서 울려퍼지고, 너무나 감동적인 솔리스트들의 활약....

특히 소프라노의 활약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우려와는 달리 아주 잘 불러 감동을 주었다.

'라크리모사'는 단연 압권이었다.

가슴 저 밑바닥부터  끓어오르는 감동은 목의 통증을 느낄만큼 복받쳐 오르게 했다.

이 순간 그 어떤 것...어느 곳에서 느꼈던 것보다도  강한 신앙심이  솟구쳐올랐다.

죽음앞에서 하느님께 간절히 염원하는 가장 완벽한 아름다운 모습....

 

 

곡의 특성상 인터미션없이 진행된 ....

그 아름다움과 웅장함에 빠져들다 보니 한시간 반이라는 시간이 한 순간에 끝나버린 느낌이었다.

 

베네딕도 오빠도 너무나 감동적이었다고...

근래에 본 공연이래 제일 좋으셨다고...

더불어 아람누리가 너무 좋으시단 말씀까지....ㅎㅎ

 

비가 제법 내렸다.

때를 맞춘 듯 내리는  비까지도 감동을 더욱 깊이 적셔주는 것만 같았다. 

 

 

 

베르디 진혼미사곡 중 눈물의 날
Giuseppe Verdi 1813~1901 이탈리아
Dies Irae - 9. Lacrymosa
 
     
Tomowa-Sintow / Baltsa / Carreras / Van Dam
Herbert von Karajan - Wiener Philharmoniker - Staatsopernchorg
 
Lacrymosa
Lacrimosa, dies illa
qua resurget ex favilla
judicandus homo reus
huic ergo parce Deus.
Pie Jesu, Domine,
dona eis requiem.
Amen
눈물의 날
눈물과 슬픔의 그날이 오면!
땅의 먼지로부터 일어난 심판 받을 자들이
대우주 자연의 주인 앞에 나아오리
천지 대우주여 자비로써 그들을 사하소서
긍휼의 대우주의 주인이여 축복하사
그들에게 당신의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
     
 
출처 : opazizi[베르디 눈물의 날 - Karajan│종교 聖음악]
   

베르디가 진혼 미사곡을 작곡하게 된 경위는 이탈리아 낭만주의의 두 거장, 로시니와 만조니의 죽음을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1868년 아탈리아 오페라의 선구자 로시니의 사망 소식을 들은 베르디는 그를 기념하기 위한 진혼 미사곡을 작곡할 것을 밀라노의 악보 출판사 리코르디에 제안하여 Messa a ossini 작곡에 몰두한다. 이 곡은 당대 명성이 높은 13명의 이탈리아 작곡가들이 각 부분별로 작곡하여 1869년에 완성된 공동 작품으로서 베르디는 맨 마지막 부분인 'Liverame'를 맡게 되었다. 그러나 로시니 사망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이 작품은 연주상의 난해함과 베르디의 절친한 친구이자 지휘자였던 마리아니의 불성실함으로 인해 연주되지 못하였다. 베르디는 격분하였지만 연주회는 성사되지 못하였고 그는 다시 오페라 작곡에 몰두하여 Aida를 완성하게 된다.
한동안 Aida 공연에 몰두하던 베르디는 진혼 미사곡 전곡을 완성 하기로 결심 하고 로시니를 위해 작곡했던 'Livera me'를 중심으로 하여 전곡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1873년 5월에 그가 매우 존경하던 도 다른 인물인 만조니가 89를 일기로 밀라노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그와 더불어 가장 순결하고 거룩한, 우리들의 최고의 영예가 사라졌다." 그의 죽음에 너무 상심한 나머지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뒤늦게 그의 묘소를 방문하기 위해 밀라노로 향하게 된다. 리코르디를 통해 베르디는 밀라노 시장에게 만조니 사망 1주년 추모행사를 위한 진혼 미사곡을 작곡할 의사를 전했다. 그는 시 당국에서 초연에 드는 비용을 지불한다면 악보를 인쇄하는데 드는 비용을 자신이 부담할 것을 제의했고 시장은 그의 제안을 수락하였다.
1874년 4월 진혼 미사곡을 완성한 베르디는 최고의 음향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밀라노의 San Marco 성당을 연주장소로 선택했고 120명의 합창단, 100명의 관현악단과 함게 연습을 했다. 베르디 자신의 지휘로 초연된 연주회는 대단히 성공적이었고 3일 후 베르디는 La Scala에서 두번째 공연을 했다.
초연 전일부터 밀라노에 머물렀던 독일의 지휘자이자 바그너 숭배자인 뷜로우는 신문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내일 밀라노의 San Marco 성당에서 자신이 작곡한 곡을 그 자신이 지휘하는 기괴한 진혼 미사곡 -염치없이 로시니의 불멸성을 소멸시키고 이탈리아의 예술적 기호를 파괴하는 작품-연주회가 열릴 것이다. 교회 음악의 옷을 입은 베르디의 최후의 오페라는 또한 3일 연속 La Scala에서 연주될 것이다....."
다음 날 신문에, 그는 다시 "뷜로우는 San Marco 성당에서 어제 장관을 이룬 연주회에 참석하지 않았으며 베르디의 교회 음악을 듣기 위해 밀라노로 모인 외국인들 가운데 결코 함께 하지 않았다."라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했다. 그러나 뷜로우의 이러한 혹평은 오히려 베르디의 진혼 미사곡을 돋보이게 하는 도구로 전락하였다. 당대 독일 고전주의 음악의 전통을 고수하던 브람스는 진혼 미사곡의 증보를 연구한 후 "뷜로우는 스스로 바보가 되었다. 이것은 천재의 작품이다."라고 단언했다. 뷜로우는 몇 년 후에야 자신의 진정을 토로하면서 이 작품을 높이 평가하였으며 베르디에게 사과의 편지까지 썼다. 그러한 가운데 빌로우의 청중은 점점 줄어드는 반면 베르디의 명성은 유럽 각지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 곡은 한마디로 '극적인 교회 음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베르디 자신은 결코 이 곡을 오페라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이러한 일면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는 초연 한 달 전 리코르디에 보낸 다음과 같은 편지에서 볼 수 있다.
"이 작품이 당신이 원하던 대로 쉬울지는 모르겠지만 표현과 악보에 있어서 쉽지 않은 의도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이 미사곡을 오페라를 부르는 방식으로 부르지 말아야 하는 것을 저보다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극작용 음악에 적합하지만 이 곡에는 어울리지 않는 악구와 다이나믹은 결코 나를 기쁘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의 진혼 미사곡에서 그는 죽음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자유롭게 나타냈으며 그의 관심은 사후세계에 대하여 너그럽게 감수하는 마음이나 즐거운 기대감 등에 있지 않았다. 베르디는 작곡 당시 모짜르트, 케루비니, 베를리오즈의 진혼 미사곡을 연구하였으며 그들의 작품보다 훨씬 현실감 있게 최후의 날의 공포를 표현하려고 하였다. 즉, 베르디는 진혼미사곡의 가사에서 고통 가운데 괴로워하고 참회하는 인류의 모습을 발견하여 이러한 광경을 극적으로 표현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베르디의 진혼 미사곡은 단순히 죽은 이들을 위로하는 미사곡이 아닌, 살아 있는 이들을 위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해는 미사곡이다.

 

베르디 - 레퀴엠 (Abbado,BPO)

 

 

베르디 - 레퀴엠

클라우디오아바도 / 베를린필하모닉오케스트라 / 안젤라 게오르규

>전곡감상
1. REQUIEM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2. DIES IRAE (분노의 날)
3. TUBA MIRUM (최후 심판의 나팔)
4. LIBER SCRIPTUS (적혀진 책은)
5. QUID SUM MISER (가엾은 나)
6. REX TREMENDAE (지엄대왕)
7. RECORDARE (자비로운 예수님)
8. INGEMISCO (자는 탄식하나이다)
9. CONFUTATIS (심판받은 이들 불꽃에서)
10.LACRYMOSA (눈물의 날)
11. OFFERTORIO (봉헌)
12. SANCTUS (거룩하시도다)
13. AGNUS DEI (하느님의 어린양)
14. LUX AETERNA (영원한 빛을)
15. LIBERA ME (저를 용서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