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클래식(2009년)

정명화 세계무대 데뷔 40주년 음악회/40년 음악인생의 멋과 혼/4.22.수/

나베가 2009. 4. 24. 18:26

한국을 대표하는 첼리스트 정명화 세계무대 데뷔 40주년 기념 음악회
40년 음악인생의 멋과 혼(魂)


피아노 피아니스트 김대진

 


첼로와 동고동락한지 52년, 프로로 데뷔한지 40년, 정명화 음악의 진수!

1969년 디트로이트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협연으로 본격적으로 세계 무대에 데뷔한,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첼리스트 정명화가 데뷔 40주년 기념 연주회를 갖는다. 정명화는 1969년 디트로이트 심포니와 미국 투어를 하면서 처음으로 미국 전역에 첼리스트 정명화라는 이름을 각인시켰고 그 후 2년 뒤인 1971년 참여한 제네바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1등으로 입상하면서 유럽 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안정감 있는 기교를 바탕으로 한 개성 있는 음색으로 세계 무대의 각광을 받아 온 정명화는 LA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 등 전 세계 유수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및 독주회, 그리고 정트리오의 일원으로 왕성한 연주 활동을 펼쳐 왔고, 1994년부터는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직, 국내에서 후학 양성에 심혈을 기울이면서 한국 첼로계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오고 있다. 고봉인, 최완규, 주연선, 강승민과 같은 차세대 한국 첼리스트들이 정명화에 의해 발굴되어 현재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번 40주년 연주회는 세계를 무대로 한 1세대 음악인 첼리스트 정명화의 40년 음악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자리이면서 동시에 정명화로부터 그 제자들로 이어져 온 한국 첼로계의 현 주소를 함께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40주년 기념 연주회를 위해 정명화가 선택한 곡은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슈트라우스의 첼로 소나타, 그리고 바버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이다. 1700년대의 슈베르트의 곡과, 1800년대의 슈트라우스, 1900년대의 바버 등 각각 다른 한 시대를 대표하는 곡들이다.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는 아름다운 선율과 짙은 우수가 느껴지는 곡으로서 원래 아르페지오네라는 악기를 위해 작곡된 곡이라 높은 음을 많이 사용한다. 이를 현대의 첼로로 연주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교를 필요로 한다. 슈트라우스의 첼로 소나타는 슈트라우스 초기 작품 가운데서 작품성이 가장 뛰어난 곡 중 하나로 곡 전체를 흐르는 서정성이 아름답다. 바버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는 현대곡임에도 불구하고 고도의 서정성과 낭만성을 가진 현대의 고전이라 불리며 첼로 연주가들이 가장 애호하는 현대음악으로 알려져 있다.

첼로와 동고동락한지 52년, 프로로 데뷔한지 40년, 시간이 지날수록 큰 무대보다는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작은 무대가 많이 끌린다는 정명화의 이번 연주회는 40년 음악 인생의 멋과 혼을 담은 정명화 연주의 진수를 유감없이 보여줄 것이다. 

한편 이번 세계무대 데뷔 40주년 기념 연주회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함께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김대진이 기꺼이 피아노 반주를 자청하여 정명화의 40주년을 축하하는 따뜻한 동료애를 과시한다.




[프로그램]

사무엘 바버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Op.6
S. Barber  Sonata for Cello and Piano Op.6

프란츠 슈베르트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F. Schubert  Sonata for viola and piano D.821 in a minor“Arpeggione”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첼로 소나타 F장조 Op.6
R. Strauss  Sonata for Cello and Piano Op.6

 

첼리스트 정명화


초등학교 졸업 선물로 어머니에게서 받은 첼로로 40여 년을 첼로와 함께 살아온 정명화는 이제 원숙한 예술가의 반열에 우뚝 서 있다.

서울에서 출생한 정명화는 서울시향과 협연으로 국내 무대에 데뷔한 후, 1961년 뉴욕의 줄리어드에서 레너드 로즈에게, 1965년 부터 남부 캘리포니아 대학의 마스터 클래스 과정에서 3년간 피아티고르스키에게 수학하였다.

1971년 동생 정명훈을 반주자로 동반하고 참여한 제네바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1등으로 입상하면서 정명화의 이름은 유럽 무대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1967년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재단상 수상을 시작으로 미국에서 이미 많은 상을 수상한 정명화는 1969년 주빈메타 지휘의 LA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으로 데뷔한 후 루돌프 캠페, 안달 도라티, 줄리니 등의 명지휘자들과의 협연으로 정상의 첼리스트로서의 위치를 다져왔다.  그는 유럽의 거의 모든 국가의 유수 오케스트라와 독주자로 협연하였으며, 이스라엘,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에서 연주했고 세계적인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했으며 UN본부, 백악관 등에서 특별 연주를 했다.
뉴욕 타임즈는 정명화의 기교적인 안정감과 개성있는 음색이 많은 첼로 연주자를 제치고 그가 정상에 올라설 수 있는 이유이며 '멋과 재능, 그리고 기교의 연주가' 라고 하였고,
로마의 Il Messaggero지는 그의 첼로 음악을 빼어나고 우아한 구사로 극찬하였다.
특히 정명화, 정경화, 정명훈으로 구성된 정 트리오의 활약은 1978년 시작부터 세인들의 관심을 끌며 방송과 언론으로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각자의 연주 활동과는 별도로 바쁜 공연 일정을 보내야 했다.
1992년 5월 30일, 정 트리오는 유엔마약퇴치기구(UNDCP)의 친선대사로 임명되어 5년여 활동을 하는 동안 비엔나 본부와의 협조하에 마약퇴치를 위한 음악회를 열었고, 이후 정명화는 1999년 12월 한국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임명되었다. 2008년에는 세계 한인의 날 홍보대사직을 맡아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첼리스트임을 알렸다. 정명화는 개인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 트리오와 함께 데카, EMI, 도이치 그라마폰 등을 통해 앨범을 출반했다.  2004년 일본과 한국에서 정트리오 공연을 가졌으며 뉴욕 메네스 음악대학의 첼로 및 실내악 교수로 본격적으로 강단 활동을 시작한 정명화는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후학 양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또한 매년 독주회나 협연 등을 통한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다.


피아니스트 김대진

2008년 5월 수원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로 취임하며 피아니스트에서 지휘자로 그 영역을 넓힌 피아니스트 및 지휘자 김대진. 그의 음악적 재능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주목을 받아 11세 때인1973년 국립교향악단과 협연을 해서 호평을 받았으며 다음해 10월에는 데뷔 독주회를 가졌고 예원콩쿠르(1974), 이화.경향콩쿠르(1975), 중앙음악콩쿠르과 동아음악콩쿠르(1979)에서 차례로 모두 1위에 입상하여 촉망 받는 연주자로 두각을 나타내었다. 특히 동아음악콩쿠르에서는 전 부문에 걸쳐 가장 우수한 연주자에게 주는 대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음악적 탐구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줄리어드 음대에 재학 중이던 1985년 클리브랜드 에서 개최된 제6회 로베르 카사드쉬 국제 피아노 콩쿠르(현, 클리브랜드 국제 콩쿠르)에서 영예의 1위에 입상하여 한국인의 음악적 예지를 빛낸 피아니스트로의 탄탄한 길을 약속 받게 되었다. 1987년 미국 머킨홀에서 가진 뉴욕 데뷔 리사이틀 에선 “솔리스트가 되기 위한 모든 능력을 갖춘 훌륭한 연주자”(뉴욕타임즈) 라는 찬사를 받았고 스위스의 티보 바가 국제음악제, 미국 보드윈 국제음악제, 일본 이시카와 국제 페스티벌 등 유명 음악제의 초청독주회 및 클리브랜드 오케스트라, 프랑스 빠드루 교향악단, 프랑스 릴 국립 교향악단, 뉴욕 화이트 플레인즈 오케스트라, 줄리어드 오케스트라(남미 순회연주), KBS교향악단, 서울시향(88서울올림픽 문화 페스티발, 교향악 축제, 한국의 아티스트 시리즈), 부천필하모닉(모차르트 서거 200주년 기념연주), 등 국내외 정상급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어느 작품을 대하든지 여러 가지 모양의 접근 방식을 모색함으로써 연주자의 의식이 작품 속에 투영되어야 한다는 음악관을 갖고 있는 그는 줄리어드 음대와 대학원에서 학사, 석사, 박사과정을 마친 후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에 관한 연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제18회 난파음악상을 수상하였다. 항상 다양하고도 의욕적인 기획연주 시도와 자신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보여주는 그는 슈베르트 탄생 200주년 기념 독주회, 쇼팽 서거 150주년 기념 협주곡 전곡 연주회 등을 통해 호평을 받은 바 있다. 특히 2000년 4월 2일에 있었던 베토벤 협주곡 전곡 1일 연주회는 우리나라 악단의 한 획을 그은 연주회로 음악과 한 인간으로서 자신에 대한 열정적 노력을 통해 청중을 감동시켜 그의 음악세계를 함께 공감하고픈 욕구를 만들어 줌으로써 많은 이들의 지지를 이끌어 냈다. 이어 2001년 <낭만 콘체르토 시리즈 - 건반 위의 낭만>은 슈만, 그리그, 라흐마니노프의 명 협주곡을 한 무대에 올림으로써 그만의 색채로 대곡들을 표현하여 그야말로 건반 위에 그린 낭만이었다는 감탄과 찬사를 끌어내었다.
2002년 5월 호암아트홀에서 John Field Nocturnes 전곡연주회를 가졌고 <김대진 렉처 콘서트 2002 교감>은 참신한 기획과 진행으로 2002년 최고의 공연으로 선정되기도 했으며(국민일보), 2001년에 시작한 모차르트 협주곡 전곡 연주회는 2004년 12월 막을 내리기까지 매회 마다 매진을 기록하였다. 음반 작업도 활발히 진행되어, Chopin 4 Ballade and Poulenc 8 Nocturnes 과 John Field the Complete Nocturnes 음반이 출시되었다. 2003년에는 Chopin Nocturnes 전곡이 출시되어 "연륜의 굴곡이 그대로 묻어나는 듯 정과 동의 세계가 한을 풀어내듯 허공을 향해 울려 퍼졌다"라는 호평을 받았고, 2004년 자신의 지휘로 폴란드 국립 라디오 교향악단과 함께한 Mozart Piano Concertos가 출시되었다.
한국에서는 오정주 교수를 줄리어드 에서는 마틴 캐닌 교수를 사사한 그는 1994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손열음, 김선욱등 우수한 제자들을 배출한 명교수로도 인정받고 있으며 현재 가장 두터운 순수 팬을 확보하고 있는 연주자임과 동시에 헌신적인 교육자로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2002년 12월에 한국음악협회에서 기악부문 한국음악상을 수상 받아 다시 한번 우리나라 음악계에 큰 공헌을 인정받은 그는 '주간 동아'가 선정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분야별 40대 리더 40인 중 유일하게 음악인으로 선정 되었고, 또 2003년과 2005년 '동아일보사'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프로들이 뽑은 우리 분야 최고' 설문에서 '국내 최고의 연주가'로 연속 선정되었다. 또한 2005년 믄화관광부 올해의예술상 음악부분, 예총예술문화상 음악부분에서 대상을 차지하였으며 2007년에는 2005년 1회 수상에 이어 금호음악스승상을 다시 수상하였다.
2003년 11월 26일 그는 마렉 야노프스키가 이끄는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내한 공연에서 협연을 했으며, 한국예술실연자연합회에서 수여하는 제 5회 실연자 대상(음악부문)을 수상하였다. 2005년에는 미국 링컨 센터에서 독주회, 한국인 최초로 아일랜드 더블린 국립교향악단가 협연, 프랑스 쿠쉬빌(Courchevel) 국제음악제 연주, 일본 삿포로 교향악단과 동경 산토리 홀에서의 협연을 했으며 또한 같은 해 7월 강동석, 조영창과 함께 프라하심포니와의 협연을 가졌다. 또한 2007년부터 금호아트홀 챔버 뮤직 소사이어티를 창단, 음악감독으로 활동을 하고 있으며 클리브랜드(2005), 에트링겐(2006), 센다이(2007), 클라라 하스킬(2007), 파다레프스키(2007), 라흐마니노프(2008) 국제 콩쿠르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어 세계무대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