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와 관련된 인간적인 이야기들은 언제 들어도 재미있습니다.
아마도 그들에게서 음악을 걷어내고 나면 나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꾸만 포장하기보다는 ‘생얼’이 더 소중하다는 걸 요즘 새삼 더 느끼고 있습니다.
자고 나면 새롭게 포장이 벗겨진 사람들 때문에 기분이 우울해지는 요즘입니다.
모짜르트는 뮌헨 서쪽의 아우그스부르크 출신입니다. 그 지역 근처에는 모짜르트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았는데 주로 상인이나 물건을 만드는 장인들이었습니다.
모짜르트 증조할아버지 이름은 모쩨르였고 할아버지는 Mozarth 였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이름 맨 끝에 있는 h를 옮겨서 Mozahrt라고 싸인을 했습니다.
왜 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의 단어가 다른지 더 공부를 해 보아야겠지만 모짜르트도
훗날 ‘아마데우스’라는 이름을 생략해서 ‘아마데’라고 사인을 하거나 기분이 좋을 때는
트라좀이라고 사인을 했습니다. 트라좀은 Trazom이라고 쓰는데 모짜르트의 이름을
거꾸로 쓴 것입니다. 재기 발랄한 솜씨입니다. 저도 제 이름을 놓고 뒤집어 보았는데,
아무런 말도 되지 않아 포기했습니다. 억지로 하면 ’이크’가 되는데, 이건 뭐 --.
모짜르트 전기나 영화를 보면 상스러운 말을 쓰는 대목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천한 말을
태연하게 쓰는 풍습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모짜르트의 어머니가 남편에게 보낸
편지가 남아 있습니다. 중간을 잠시 드려다 보면
‘--- 안녕히 계세요. 당신은 입에 엉덩이를 쳐 넣고 주무셔요. 하지만 그 전에 침대 위에
똥을 누어 그것을 터뜨리고 --- ‘
머리채를 잡고 싸운 뒤에 보낸 편지 같지만 일반적인 편지였다고 합니다.
참 냄새 나고 괴기스러운 편지입니다.
베토벤의 집안은 할아버지 때 벨기에에서 독일로 이사를 왔습니다.
할아버지는 궁정 악단의 악장까지 지냈지만 부업으로 술집을 시작했습니다.
베토벤의 할머니는 독일인이었는데, 그만 부업으로 시작한 술집 때문에 지독한
알코올 중독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알코올 중독은 막내 아들인 요한에게 유전되고
말았는데 요한은 베토벤의 아버지입니다. 훗날 베토벤이 귓병으로 몹시 고생한 것은
그 자신이 건강 관리를 소홀히 했을 뿐 아니라 할머니와 아버지의 알코올중독의 영향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특이한 것을 물려주신 두 분입니다.
베토벤의 아버지 요한은 궁정의 테너가수였습니다.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자신도 모짜르트의 아버지처럼 자식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베토벤에게는 힘든 나날이 시작됩니다. 충동적이자 체계적이지 못했던 베토벤의 아버지는
자신이 가르치다가 친구인 다른 음악교사에게 베토벤의 지도를 의뢰합니다.
그런데 이 친구도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둘이 술을 마시고 와서 한밤중에 베토벤을
깨워 아침까지 피아노를 치게 하는 일이 자주 있었는데 베토벤이 까다로운 성격을
갖게 된 원인이라고 합니다.
부모 노릇 잘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베토벤 아버지에게 강의라도 한 번 해 주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자격이 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음악가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베토벤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손에 쥐고 있던 악보는 젊은 작곡가 슈베르트의
작품이었습니다. 베토벤이 운명하고 슈베르트는 베토벤의 관 옆을 따라갑니다.
장례가 끝나고 슈베르트와 그의 친구들은 술집에 모여 이제는 고인이 된 베토벤을
위하여 건배를 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잔은 슈베르트를 위하여 건배를 외쳤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다음 해에 ‘베토벤이 없다’라는 헛소리를 하면서 잠들듯이
슈베르트는 세상을 떠납니다.
죽을 때까지 슈베르트의 악보를 손이 쥐고 있었던 베토벤과 베토벤이 없다라고 하면서
숨을 거둔 슈베르트, 지금은 하늘 어딘가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계실겁니다.
슈베르트가 죽고 60년이 지나 일단의 과학자들이 슈베르트의 유골을 조사하기 위하여
그의 무덤을 파 헤치게 됩니다. 무덤이 헤쳐지고 과학자들이 슈베르트의 유골을 들어
조사를 하는 도중에 과학자들의 손에서 뼈가 떨어지려고 하자 주위에 있던 한 사내가
손을 내밀어 얼른 받는 시늉을 했습니다. 물론 그 사내는 도저히 받을 수 없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 사내는 발굴이 시작되면서부터 계속 숨을 죽이고 슈베르트의
유골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내에게 슈베르트는 그렇게 숭고한
경배의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유골 조사가 끝나자 그 사내는 관 위에 있는
슈베르트의 뼈에 입을 맞췄습니다. 그 사내의 이름은 브루크너입니다.
브루크너는 물건을 세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혼자 심심하거나 특별한 관심거리가
없을 때는 물건을 무턱대고 세었는데, 나뭇잎, 돌, 집에 있는 창문 등이 대상이었고
마지막에는 도나우강의 모래알까지 세었다고 합니다. 늙은 홀아비가 강가에 앉아서
모래알을 세는 모습은 가슴 아픈 광경이었을 것입니다. 브루크너는 그렇게 셀 수 없는
환경이 되면 강박관념 같은 것이 그를 눌렀다고 합니다. 브루크너는 물건을 세는 것
이외에도 면허증, 증명서 같은 것도 계속 수집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브루크너는 다른 사람의 말을 곧이 곧 대로 믿는 착한 남자였습니다.
한 번은 주위 사람들이 그를 놀리느라고 그에게
‘ 사람들이 당신을 국왕으로 추대하였습니다’ 라고 하자 브루크너는 굉장히 진지한,
그러나 어색한 얼굴과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 이런 꼴로는 좀 ---‘
하늘에는 셀 것이 참 많지요? 브루크너 선생님!
레스까페님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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