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소란스러움과 어느 방에서 나는 소린 지, 그칠 줄 모르는 기침 소리에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었는데, 이젠 아예 모두들 일어났는 지
새벽부터 밖이 소란스럽다.
더 잘수도 없어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니, 어젯밤 그 늦은 시간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팀들은 벌써 떠날 차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그런데 뭔가 모를 어두운 그림자....눈이 마주친 사람에게 인사를 건냈는데도 무표정하다.
다이닝룸의 모든 테이블과 의자가 복도로 나와 있는걸 보니, 모두들 그곳에 자리를 펴고 잔듯하다.
그러나 밖으로 나와보니, 천막도 쳐져있다.
하긴, 40명의 남자들이 이 작은 롯지에 들이닥쳤으니 빈자리가 남아날 리가 없다.
모두들 얼마나 고생을 했는 지, 마치 에베레스트를 정복하고 내려온 사람들 처럼 꼴이 엉망이었다. 표정도 모두 무표정이다.
젖은 양말과 신발들을 말리느라 밖의 돌담마저 빈자리가 없다.
나중에 알고보니,
포터 5명이 동상이 심해서 손가락과 발가락을 자르러 급히 카투만두로 내려갔다고 한다.ㅠㅠ
순간 가슴이 철렁 무너져 내린다.
아~~!!
미국인 팀은 대원 3명 포함 18명....
아마다블람 정상에 오를 정식대원들이다.
그중엔 여자 대원도 한 명이 있었다.
어제밤 이들 미국팀이 가장 먼저 도착을 하고, 그 뒤를 이어서 일본팀이 도착을 한 것이다.
일본인 팀은 대원 6명중 2명이 고산증이 와서 가이드 한 명과 급히 카투만두로 하산하고 나머지 대원 4명과 포터등 18명만이 이곳에 왔다.
식사를 하러 식당에 들어온 일본인을 보니, 이건 뭐 꼴이 말이 아니다.
얼굴은 아주 새~까맣게 타고, 입술은 허옇게 일어난 것이 퉁 퉁 부르트고...영락없는 사진에서 본 에베레스트 정복자의 모습이다.
ㅠㅠ
날씨는 화창했다.
우리 아이들은 로왈링을 향해 떠난다는 들뜬 기분에 사로잡힌 듯한 모습이다.
그러나 난 마음이 편치않았다.
아니, 이제까지 가졌었던 불안함 마음이 이젠 마치 현실이 된 양 극으로 치달았다.
이들 팀들에 비해 우리 아이들은 옷과 신발등 장비도 훨씬 더 허술하고, 그나마도 현지 여행사에서 온 총바와 도루치, 왕다를 제외하곤 보험조차도
들어있지 않단다.
세상에~~
이제 푸리는 겨우 19살, 다와파상도 그렇고, 락파도 그렇고....
이 어린 것들을 데리고 저 장비로 험준한 로왈링으로 들어선다는 것이....떠나서는 안될것 같은 맘이 한켠에서 자꾸 괴롭혔다.
그래서 그런지, 텡보에서 골레로 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40명이 러셀을 하고 왔다고 해서 마치 4륜 마차가 달려온 듯 평평한 길이 나 있을거란 착각과는 달리
겨우 사람 하나 지나갈 만큼의 깊이 패인 골과 발자국이 다였다.
그 발자국을 따라 무릎 이상 쌓인 눈길을 지나가자니 여간 힘이 든게 아니었다.
그나마 오늘은 이풀의 아이젠을 빌어 한 쪽발에 신었던 4발 아이젠 마저도 없다.
몸도 마음도 다 힘이 들었다.
이 험준하고 미끄러운 눈길 오르막을 우리 포터들이 오르는 것을 보니, 기가 터억 막혔다.
이제까지 날아다녔던 것과는 달리 애들이 얼마나 힘들어 하는 지, 수없이 쉰다.
우리 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던 아이들이...오늘은 가다가 눈위에 서고....잠깐 오르다가 또 눈위에서 쉬고....
장엄한 미지의 풍광속으로 한 발 한 발 걸어 들어갔다.
파아란 하늘 아래 오직 하얀 색깔만이 존재하는 세상....
끝도 깊이도 도저히 간음할 수 없는....
길 조차도 깊게 골패인 단 한줄이 다인....
그곳을 향해 우린 걸어 올랐다.
뜨거운 태양과 사방에서 반사되어 쏟아 붓는 복사열은 점 점 견디기가 힘들게 했다.
순간 사막을 떠올렸다.
이 백색의 세상에서 어찌 황톳빛 사막을 떠올릴 수 있을까....
이글 이글 타오르는 태양과 모래알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열기에 지쳐 결국은 쓰러져 버리는 영화의 한 장면이 아스라히 눈앞에 보였다.
순례자....
그래, 히말라야의 설산을 오르는 트래커가 아니라 작렬하는 태양속 사막을 걷는 처절한 순례자가 된듯한 기분이 들었다.
배낭을 눈밭에 던져 놓은 채, 아이들과 함께 겨우 한개씩 돌아가는 초콜릿과 사탕을 먹었다.
물병과 보온병에 담아온 뜨거운 물을 물병조차 제대로 없는 아이들과 함께 나누어 먹느라고 뜨거운 물 반잔에 눈을 타서 녹여 마셨다.
위생적인가...그런 호사스런 생각은 할 여지도 없었다.
생존하기 위한 본능.....
그야말로 이제부턴 생존 본능만이 살아있을 뿐이었다.
아무 말도 할 수도 없었다.
아니, 이 장엄하고도 굉장한 풍광앞에서 '멋지다! 판타스틱하다!' 란 단어는 너무나 사치스런 단어였다.
그저 우리가 서로 쏟아낸 말은....
"데레 과로차 (매우 힘들다 )"
뿐이었다.
그래도 가끔씩 멈춰서서 사진을 찍는 우리들 보다는 세르파와 포터들이 앞서갔다.
세르파인 총바는 가장 앞서가며 우리나 포터들이 가기 쉽게 힘든 곳을 다시 길을 잘 터주었다.
그리고 험한 곳은 우리를 서서 기다렸다가 도와주고는 또 앞서서 휘익 가곤 했다.
역시 세르파다.
****************
드디어 저 만치 앞에 우리 아이들이 보인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 눈밭인데 오늘의 목적지 해발고도 5,110 m 의'골레'란다.
헐~~
'골레'라는 이름이 붙었길에 텡보처럼 그래도 뭔가 한개는 있을 줄 알았더니...
어찌 이 허허벌판에 그래도 이름이 다 있을까나~
모두들 나와서 발을 구르며 눈을 다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나와 이풀의 텐트와 대장님 텐트, 그리고 아이들이 함께 자고 음식을 할 커다란 천막텐트가 구축되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 또 하나....
화장실도 멋지게 구축해서 길까지 잘 터놓았다.
그도 그럴것이 사방이 허벅지까지 쌓인 눈밭이라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기때문이다.
텐트엔 우리의 침낭이 겨우 두개 펴지고, 배낭이 들어갈 여유만이 있었다. 커다란 카고백은 덧 댄 차양 아래에 비닐을 깔고 놓은 뒤 비닐을 덮어 놓았다.
텐트속에 들어가 코인 티슈를 적셔 씻고 정리를 하는 사이에 텐트로 식사 배달이 왔다.
메뉴는 짜장면....
아이고~~이런~~
그런데 짜장면을 그만 라면처럼 물을 넣고 끓여 수프를 타서 해온거다. ㅉㅉ
아마도 오늘의 힘든 여정에 그만 대장님도 탈진하셔서 짜장면을 어떻게 끓여야 하는 지 감독을 안하시고 텐트에 쓰러져 계신 모양이었다.
대충 먹고는..짜장면을 잘못 끓였다고 끓이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알아 들었는 지...암튼 다 알아들은 척 한다. ㅎㅎ
부실한 점심을 아껴 둔 비스켓에 치즈를 얹어서 때우고, 진짜 로왈링에서 먹으려고 아껴두었던 육포를 먹었다.
근데 왜 갑자기 가슴 한 켠이 울컥해 오는 지...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육포...이 맛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아!! 난 절대 채식주의자는 될 수 없을거야~
저녁도 텐트로 배달이 되어졌다.
그야말로 이제부턴 원푸드의 삶이 시작된거다.
밥에 찌개 한개.
눈위에 친 캠프사이트 치곤 산에 포옥 둘러 쌓인 곳이라 그런 지, 그다지 추위를 느낄 수 없었다.
그나마도 다행스러운 일이지만,장비가 다 갖추어진 우리에 비해 아이들은 얼마나 추울 지 또 걱정이 된다.
암튼....식사도 커피도 다 텐트까지 배달해 주니, 눈위에서의 야영 생활에 또다른 편안함의 극치를 누리고 있다.
ㅋㅋ
그나저나...
이 멋진 곳에 텐트 사이트를 구축했건만, 사진 한 컷을 찍지를 않았네~
매끼 식사도 텐트로 배달을 해주었느니, 아마 텐트속에 들어가 아침까지 꼼짝않고 있었나 부다.
그러나 저러나 ....편안함의 극치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날씨가 나빠진다.
먹구름이 하늘을 가득 메우더니 이내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아악!!!
안돼에에에~~ㅠㅠ
텐트에 부딪히는 눈 내리는 소리가 점 점 세차게 들리는 듯 하다.
아마 평생에 가장 두렵고 고통스런 소리가 아니었을까.....
눈이 오면 100% 로왈링 여정을 포기한다고 했었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란 생각도 언뜻 언뜻 들었다.
그러나 다시 오늘 오른 험란한 길을....
오늘 밤 ...어쩌면 밤새 쏟아져 훨씬 더 심해져 있을 골레에서 텡보로의 700m의 눈길 하산 길을 생각하니
그것 또한 두려움의 또 다른 대상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밤 생애 최고의 높이인 5,110m 에서 잠을 자는데, 그것도 설국에서의 야영....
고산증을 조심해야 하는데...날씨까지 이렇게 안좋고 맘까지 불안하니....
묵주를 손에 꼬옥 쥐고 기도를 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아!!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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