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15일...타메 휴식날...
새벽에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반긴것은 요란한 빗소리...
비는 어제부터 밤새도록....더욱 거세게 쏟아졌다.
그냥 침낭속에서 처절하리 만치 내리치는 빗소리를 들으며 누워 있자니...막막한 느낌에 휩쌓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다 내려 놓으니...아니, 그럴수 밖에 없으니 또 이렇게 침낭속에 누워 가장 단순한 삶을 살고 있음도 괜찮다 싶기도 하다.
걱정하지 말고 매 순간을 즐길것.....
비오는 거...무지 좋아하잖아~
요란하리 만큼 울리는 빗소리는 또 얼마나 낭만적이야~
언제 여행중에 이렇게 늦은 아침까지 침낭속에 누워 빗소리를 들으며 사색에 빠질 수 있겠어~
한동안 그렇게...방안 가득...아니, 내 맘 가득 울려대던 빗소리를 텅빈 머리와 가슴에 담았다.
아!! 이런 순간도 정말 좋네~
어느 순간 누가 먼저 시작했는 지도 모를 하릴없는 우스개 소리로 우린 또 방안을 가득 메우며 깔깔댔다.
새벽 6시에 일어나 무려 3시간동안을....
슬슬 배가 고파오기 시작한다.
헐!!
근데 아무리 휴식날 이긴 하지만, 이 시간까지 모닝 티도 안 가져다주고, 밥먹으러 오라는 기별도 없는거지??
의아함에 벌떡 일어나 다이닝 룸으로 갔다.
아무도 없다.
맘씨 좋은 주인장이 우리를 보더니 얼른 난로 불을 지펴줄뿐.....
난로불을 쬐며 기다리고 있자니, 10시가 되서야 아침 식사가 들어온다.
알고보니, 쿡 왕다가 여러가지 일을 보기위해 남체 바자르엘 새벽같이 내려갔고, 아침은 대장님이 준비하신것...
오늘 메뉴는 맑은 소고기 장국 이었는데, 물소 고기로 끓인 장국이라서 좀 질기긴 했지만 그래도 고기 국물이라서 맛있었다는...ㅋㅋ
딱히 방에서 할 일도 없고 추우니, 따듯한 난로가 있는 다이닝 룸에서 애플 파이를 먹으며 점심때까지 시간을 보냈다.
어제부터 말리던 등산화와 옷가지들을 난로가에 대고 다시 말리며 별 의미없는 말들과 우스개 소리들을 해대며 웃음으로 채웠다.
어쩌면 포터와 키친 보이들도 우리들 만큼이나 불안함이 가슴 가득 메워져 있을 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누구도 표시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우리의 예상을 뒤엎고 로왈링으로 들어가신다는 거였다.
포기한다는 말을 듣는것 보다는 반가웠지만, 야르주를 만난 이 상황에서의 위험성을 생각한다면 과연 올바른 결정인 지...또 불안감이 엄습한다.
아!!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마음에 이렇듯 불안감이 들어차기 시작한 걸까...
떠날때 가졌던 대장님에 대한 완전한 신뢰에 자꾸 불안요소가 더해진다는 것이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이렇듯 언뜻 언뜻 차고 들어오는 불안함속에서도 창으로 들어오는 먼발치의 풍광에 또 하염없이 빠져든다.
빗속의 타메...
정말 좋다..아름답다...라는 말이 절도 터질 정도로 매혹적이다.
하긴 이 아름다운 풍광을 보기위해 여기까지만 트래킹을 오는 여행자들도 많다고 한니.....
12시 반에 점심으로 볶음국수와 수프, 튀김모모를 시켜 먹고는 방으로 들어왔다.
낮잠이나 한 숨 잘까....침낭속에 누웠지만....잠이 올리가 없다.
배터리때문에 그동안 제대로 듣지도 못했던 음악을 이어폰으로 들으며 핸폰 갤러리에 있는 사진을 보았다.
느닷없이 긴머리의 내 모습이 그립고...
식구들 사진이 나오니 갑자기 마음이 울컥해지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러면서 갑자기 뜬금없는 다짐을 했다.
"다시는 히말라야에 오지 않을거야~
이젠 여행도 그만 하고, 차분히 집에서 살림만 할거야~
애들에게도 남편에게도 잘할거야~"
이런 맘을 먹고 있자니, 갑자기 식구들에게 미안한 맘이 들어 또 울컥해진다.
비때문인 지...
음악 때문인 지...
힘든 맘 때문인 지....
모든게 뒤엉켜 주체할 수 없는 맘으로 헤메고 있다가 밖의 소란스러움으로 깨어났다.
왕다가 온것이다.
남체바자르에 간 일들이 잘 해결되었는 지, 왕다의 표정과 목소리가 의기양양이다.
로왈링 여정을 함께 할 세르파와 천막 포터도 함께 왔다.
아일랜드 피크 등반 세르파 일을 끝내고 우리와 합류하기로 했었던 카투만두에서 보았던 세르파가 역시 날씨가 안좋아서 그의 일이 연기되어
다른 세르파가 대신 왔기는 하지만, 인물이 매우 핸썸한데다가 인상이 아주 좋아 굿이다.ㅋㅋ
나이는 26살, 이름은 총바...에베레스트 써밋까지 했던 실력파다.
거기다 싱그러움이 완전 죽음이다. 살인 미소에....ㅋㅋ
나이도 불구하고 그의 모습에 반해서 시선 집중하다가...ㅋㅋ 뒤늦게서야 옆의 천막 포터에게 얼굴을 돌리니 왠 애기가 앉아있다.
17살 ...이름은 도루치...저 애기가 그 무거운 천막을 질 포터라고??
쏘시지 볶음과 나물, 김치,미역국으로 저녁을 먹고나서 식구들과 연락을 하기위해 와이파이를 쓰기로 했다.
처음엔 약간의 돈을 요구했다가는 이내 프리란다.
헐~~
공짜라고???
몇번의 시도끝에 드디어 카톡이 터졌다.
세상에나~ 도대체 얼마만에 식구들과 연락을 하는건가~
더구나 야르주때문에 일정이 늦춰질 수도 있는 상황이어서 얼마나 안타까웠었는데...문자 통신뿐만이 아닌 카톡을 할 수 있다니....
시간의 흐름도 잊은 채 카톡으로 소식을 주고 받았다.
무려 1시간 동안이나...
연일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그 사이에 혹시나...하는 두려움이 있었는데,
그나마도 아직은 우려하던 일은 없었으나 엄마의 건강이 매우 좋지 않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니 무거운 맘은 여전하다.
더우기 일정이 일주일 정도 늦춰진다하니, 어머님 제사를 못지내게 된 부담감까지 감당하기가 벅차온다.
친정엄마도 아직은 괜찮으시고 식구들도 다 잘 있으니 걱정말고 잘 지내라고....그렇게 말하는 남편...
미안한 맘에 '다시는 히말라야에 오지 않겠다고....'
어젯밤 굳게 먹은 맘을 문자로 보냈다.
그나마 낮에도 안터졌던 와이파이가 되서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 인지 모른다.
앞으로 여정은 그야말로 히말의 오지-로왈링으로 들어서는데...일정도 변경되니 애간장이 탔었다.
그나저나 지금 로왈링 타시랍차 패스는 폭설이 와서 눈이 가슴팍까지 쌓였다고 한다.
눈치로 봐서 대장님 경비도 빠듯한데, 이대로 이 험란한 여정길에 들어서도 되는건 지,
집 걱정, 엄마 걱정, 우리들의 로왈링 여정...모든 걱정은 여전히 진행형이었다.
왜 이렇게 걱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드는 걸까...
모든 걸 내려놓을 순 없을까....
그냥...히말의 정령에게....
갑자기 피곤이 밀려들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2013.10.16. 타메 휴식 이튿날째....
타메 휴식이 하루 더 늘어났다.
어제 왕다가 남체바자르에 내려갔던 일이 잘못되었는 지,
아니면 기타 다른 일들때문인 지,
새벽 5시에 대장님께서 직접 남체바자르엘 다녀오신다더니,
옆방에서의 기척에 우리도 깼다.
오늘 하루 동안에 이곳 타메에서 남체까지 왕복을 하신다니,
노인네의 체력으로 버텨내실까....
궁금증과 함께 걱정이 된다.
어제도 왕다가 내려갔었는데,
왜 오늘 또 대장님께서 일정까지 늦추시고 남체엘 가실까....
우리들 나름 추측해 보건데,
항공권 연장일과 함께 경비를 찾으러 가신게 아닐까...생각든다.
암튼 모든 일이 우리에게 행운이 따랐던 첫날 인천공항과
트래킹 첫날 루크라에서 처럼 잘 해결되길 바랄 뿐이다.
오늘은 이곳 마음씨 좋은 주인장의 숙소를 떠나
아랫집으로 이사를 간다.
프리 챠지는 물론 와이파이 까지도 공짜였는데....
이 황금 숙소를 떠난다니...
섭섭함으로 가득했지만
오늘 이 숙소에 단체 손님이 오기때문에 어쩔 수 없단다.
아랫집이 더 좋다고 하니,
일단 기대를 해본다.
이사를 가기 전에 따듯한 물 한 양동이를 사서 샤워를 했다.
그리고 된장국에 아침을 먹고,곧바로 이사....
화창한 날씨에 동네는 여기 저기 빨래 터가 되었다.
가즈런히 쌓아진 돌담에는 이부자리가 벌써 예쁘게 널려있고,
빨래줄에는 빨래감으로 가득하다.
나도 양말과 속옷을 세탁해서 널고,
침낭은 돌담에 펴서 널고,
모든 옷가지들을 창문 틀에 널어 거풍을 했다.
*************
주변 풍광이 화창한 날씨에 빛을 발한다.
빗속에 묻혀버렸던 거대한 설산이 사방으로 우뚝 솟아있고....
마치 설치 작품처럼이나 가지런하게 쌓아있는 돌담들 하고 돌집...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섰다.
주변 풍광도 담고....
현지 여행사인' 랑탕 리' 피킷을 들고 있는 왕다와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파상도 담아본다.
우리가 이사를 한 롯지는
EVEREST SUMMITEER RODGE 라고 에베레스트를 5번이나 등정하여 기네스북에 오른 아주 유명한 세르파의 집이었다.
우리 방은 2층이었는데, 하얀 시트가 깔려 있는 침대가 있고, 방 크기도 넓직한것이 창으로 가득 들어오는 햇살과 또 뷰는 얼마나 환타스틱한 지....
펨파말따나 윗집보다 인지도 면에서나 시설면에서 더 좋은 집이 확실하다.
롯지 앞마당도 얼마나 넓은 지...우린 파아란 잔디가 심겨져 있는 마당의 하얀 식탁에 앉아서 점심을 시켜 먹었다.
600루피 하는 작은 피자 한 판과, 350루피 하는 마카로니 치즈 한 접시를 시켰는데, 이건 뭐 가격대비 얼마나 밋도 좋고 분위기가 좋은 지...천상의 점심 식탁이었다.
이 얼마나 오랫만에 느껴보는 행복감과 호사스러움인 지....
다이닝룸에 들어가 보니, 온 벽을 장식하고 있는 세르파의 경력이 화려함 그 자체다.
아!! 그러고 보니, 이 집 주인장이 텐진 노르가이 인가보네~
에베레스트를 힐러리 경과 최초 등반한 네팔의 영웅 세르파...
벽면 가득히 걸려있는 액자속의 사진들을 탐독하며 카메라에 일일이 담았다.
왠지 꼭 그래야만 할것 같아서...
다이닝룸을 나와 주방을 빼꼼히 들여다 보았다.
세르파족들의 근명성과 명랑함이 대단하다더니, 이 집 역시 어찌나 주방이 정갈하게 정리가 되어있는 지...
우리를 보고 조금은 수줍음 머금은 표정으로 인사를 건네는 쥔장 딸 정도 되는 그녀에게 '정말 예쁘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면서 사진을 찍으니 정말 좋아한다. ㅎㅎ
아!!
정말 이들의 소박한 삶이 참 좋다.
이들의 소박한 모습이 차암 이쁘다.
예의상 한 말이 아니라 정말 너무 좋고, 이쁘다란 생각이 든다.
점심 식사 후 펨파와 함께 타메 산 중턱에 있는 곰파에 오르기로 했다.
자욱을 뗄때마다 시야에 들어오는 타메의 풍광은 환상적이었다.
언덕배기에 오르니, 반대편으로 엊그제 오르기 전에 우리의 숙소를 찾아 헤맸던 윗동네 타메땡 마을이 시야에 들어온다.
거대한 산군아래 깨알같은 집들의 풍광이 기가 막히고, 설산 앞산에는 풀을 뜯는 야크들로 가득하다.
절벽끝에 붙어있는 듯 보이는 곰파에서 타메를 내려다 보자니, 거대한 히말의 설산 한 가운데 포옥 파묻혀 있는 것이 아래에서 보는것과는 또 사뭇 다른 풍광을 보여준다.
설산 아래로 길게 뻗어 흐르고 있는 콜라 계곡도 환상적이고....
돌담과 돌 지붕, 돌 벽으로 된 매혹적인 집들이 주변 풍광과 어우러져 얼마나 매혹적인 지, 그 아름다움에 정신줄을 놓고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그동안 렌조라를 넘어 룽덴을 거쳐 타메에 오기까지 단 한 장의 사진도 못찍었는데...곰파에 오르며 오랫만에 사진을 많이 찍었다.
드디어 곰파 입구에 다달았다.
먼저 눈에 띄는 마니차를 힘껏 돌리며 소원을 빈다.
와아~
절벽에 붙어 있는 건축물들의 아름다움에 탄성이 인다.
돌 축대 사이 사이로 피어있는 야생화하며 켜켜이 쌓아놓은 듯한 아름다운 티벳식 건축물들과 장식이 돋보이는 티벳 건물의 창...
낡은 창 앞에 나란히 놓여있는 깡통화분의 꽃...
그 집 주인인 할머니...
고양이....
앞으로 보이는 거대한 하얀 설산...
아!!
정말 판타스틱하네~
Symphony No.5 in C sharp minor - 4. Adagiet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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