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C쿰부히말,로왈링트래킹39일(2013

38.룽덴(4,380m)에서 타메(3,680m)까지 가기까지의 폭설속 험란한 여정...

나베가 2014. 2. 27. 17:46

 

<이번 룽덴에서 타메까지 가는 여정은 날씨가 더욱 험악해서 카메라를 아예 카고백에 넣어 포터에게 보냈습니다.

  아래 몇 컷의 사진은 타메에 머물며 날씨가 좋은 날 찍은것입니다.이번 여정도 글로써 대신합니다.> 

 


어제부터 쏟아지던 눈이 밤새 쏟아져 창문을 열으니 세상이 온통 하얗다.

어짜피 타메에서 하루 휴식이 있으므로 눈이 계속 오면 오늘 하루 여기에서 더 머무를 수도 있다고 해서...

우린 당연히 오늘 이곳을 떠나지 않을 줄 알고 늦장을 부리며 침낭속에 누워 있었다.

 

어제 종일 추위에 떨며 내려왔기에 아침까지도 몸에 한기가 남아 있다.

그래도 침낭속에 누워있으니 포근한게 좋다.

그런데 쿡 왕다가 아침을 먹으라고 우리 방에 와서는 아직도 침낭속에 있는 우리를 보고는 깜짝 놀란다.

사실 놀라기는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뜻밖에도 오늘 이 폭설속을 뚫고 타메로 간다고 하니....

 

조금 남은 떡국에 밥을 말아 먹고는 서둘러 짐을 꾸려 출발했다.

무릎까지 쌓인 눈에 계속 내리고 있는 눈속을 뚫고 서둘러 걸었다.

앞서 떠난 포터들이 내 놓은 길을 따라 걷는데, 습설인데다 날씨가 그리 춥지않아 러셀되어진 좁다란 길은 마치 도랑 처럼 물길이 흘렀다.

이런 길을 종일 걸어야 한다는 생각에 기가 터억 막혀왔다.

우리야 오버 방수 바지에다 방수 등산화를 신었지만 포터들의 허접하기 짝이 없는 복장을 생각하니 ....

어쩌면 그들의 발은 벌써 다 젖어있을 터였다.

 

암튼 우리도 여간 신경이 쓰이는게 아니었다.

종일 이런 도랑물을 걸어도 등산화에 물이 들어가지 않을 지 장담할 수 없었다.

오늘도 이풀의 한 쪽 4발 아이젠을 얻어 신고 스틱에 의존해 안깐힘을 쓰며 내리막을 걸었다.

 

어느곳은 정말 도랑물을 피할 길이 없어 속수무책으로 풍덩 빠지면서 걸어야만 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눈발은 잦아드는게 아니라 더욱 심해졌다.

그뿐만 아니라 포터들이 내어놓은 길도 내려가기가 점점 힘이 들었다.

긴장과 힘씀으로 온몸은 땀에 젖은 지 오래....

눈발을 피하기 위해 쓴 고글엔 뭐가 잘못되었는 지...되려 물이 차 들어 뿌옇게 되어 시야를 방해했다.

고글을 벗어 손에 들고 걷고 있는데, 그때 저만치 앞에 작은 가게가 나타났다.

누구한테 물어볼것도 없이 그곳으로 들어갔다.

 

일단 셔츠도 하나 벗고, 고글도 배낭에 집어넣고 몸을 추스린 뒤, 그냥 나오기가 미안해서 비스켓을 하나 사주고는 가게를 나왔다.

시야도 좋아지고 덥지도 않으니 한결 수월해지긴 했지만, 끊임없이 내리는 눈은 우비를 입었어도 고어 장갑을 비롯해 모든걸 흠씬 젖게 했다.

카메라는 아예 아침에 짐을 꾸릴때 카고백에 넣어 포터들에게 보내 버렸다.

어제 렌조라 패스를 넘을때도 단 한장의 사진도 못찍었는데....

오늘은 폭설에 아예 포터들의 짐에 꾸려 보내버린 것이다.

아쉽지만...아니, 지금에 와서야 그런 생각이 들지 사실 당시엔 그런 맘의 여유조차 갖을 틈도 없었다.

정말 땅바닥만 보고 걸었다.

잠시라도 한 눈을 팔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 어느 순간....

잠시 멈춰서 고개를 드는 순간....어제와 똑같이... 거대한 설산이 마치 허상처럼 떠서 내게 달려들듯 나타나 있는 것이었다 .

그리곤 이내 또 멀어지는 것이었다.

 

아!!

뭐야~

지금 나...탈진된거야??

아니면 영양실조??

정말 현기증을 일으키고 있는 거라면 이 험한 길에서 큰 일이 날 일이었다.

 

앞서가던 이풀을 불러세워 '산이 자꾸 움직인다고...' 말했다.

그런 상태로 계속 걸은거냐고...미쳤다고...한바탕 난리를 친다.

'빨리 사탕이라도 먹어~'

 

눈이 금방 비처럼 녹아 내리는 습설속에서 젖은 우비를 재치고 배낭 주머니 속에서 사탕과 물을 꺼내 마신다는 것은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그 순간 손이 흠씬 젖어서 고어텍 장갑속도 젖어 버리고, 소매 끝으로도 물이 흘러 들어가기때문에...

그래도 위험에 빠지는 것보다는 순간을 수습하는게 우선이니, 잠시 서서 초콜릿과 뜨거운 물을 한 잔 마시고는 또 걸음을 재촉했다.

 

앞선 포터들은 벌써 시야에서 사라진 지 오래고, 대장님과 대장님 비서격인 왕다는 우리보다 한 참 뒤쳐져 있으니

우리 둘이 길을 잘 찾아 가야만 했다.

발자욱이 한 길로 잘 나있던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사방으로 흘러 내리는 물줄기를 피해 포터들이 사방에 발자욱을 내어 놓아

순간 순간 혼선을 빚어 당췌 길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럴땐 시야를 멀리 봐야한다.

일단 먼 시야로 주변과 길을 훑어보고, 그리고 그중 멀리까지 이어지는 발자욱을 따라 걸었다. 

순간 순간 눈앞에 펼쳐지는 환상적인 풍광에 잠시 흥분에 휩쌓이기도 하고,

또 이 멋진 풍광을 사진 한 장을 남길 수 없다는 안타까움에 한 참을 멍하니 서 있기도 했다.

 

아!! 맞아~

긴 털이 정말 멋진 한 마리의 야크가 온 세상이 하얀 히말의 한 복판에 서 있었어.

완전 작품이었지!!

그걸 카메라에 담지 못함에 가슴을 치기도 했어.

아!! 정말 환타스틱한 풍광이었는데....ㅠㅠ

 

몇 시간을 걸었을까....

기막힌 정경의 마을이 보였다. 

운무로 휩쌓인 아득한 정경 뒤로는 중간 위까지만 하얀 설산의 자태를....

앞으로는 너무나도 이쁜 마을이 있고, 그 마을 앞으로는 수십미터의 엄청난 계곡이 흐르고 있었다.

순간 또 이 기막힌 풍광을 카메라에 담을 수 없음을 통탄해 했지만, 이내 또 마음을 추스렸다.

 

"아~ 다 왔나봐~ 드뎌 타메인가보다."

흥분에 겨운 우린 그만 길을 잃고 그 마을 주택으로 들어갔다.

자기네 담장을 넘어오는 외국인을 보고는 2층 창문 난간으로 주인장이 얼굴을 내민다.

 

'타메'냐고 의기양양하여 물었더니....

헐~ 아직 20여분을 더 걸어야 한단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관광객을 맞는 롯지들이 모여 형성된 마을이 아니고, 주민들이 살고 있는 예쁜 마을이었다.

내일 날씨가 좋다면 이곳에 다시 오자고...

야무진 생각을 하면서 또 걸음을 재촉했다.

 

어느새 눈은 고도가 낮아 비로 바뀌어져 있었다.

아직 날씨가 그리 춥지는 않아 3600m대만 내려와도 눈대신 비를 내리고 있었다.

한쪽 발에 나누어 신었던 4발 아이젠을 벗고 걸었다.

사방에서 눈이 녹은 물이 흘러내려 폭포가 되어 흘러내렸고, 계곡의 물은 무서울 정도로 거칠고 세찼다.

우리가 걷는 길바닥은 눈이 녹아서 온 천지가 도랑이었다.

 

<이틀뒤 날씨 좋은때 찍은 사진임-윗 타메마을...> 

 

 

 

 

그곳에 다시 찾아가고플 정도로 예뻤던 마을을 벗어나 그들이 말한대로 30여분을 더 걸은것같다.

드디어 마을이 나타났다. 이젠 타메 마을이 확실한 거지~

우리의 예상을 뒤엎은 큰 마을...그리고 돌담으로 지어진 이곳 역시 매우 이쁜 마을이었다.

그런데 오늘도 우리가 사진을 찍지 않고 걸어 너무 빨리 도착을 한 건지, 평소 포터들이 우리를 마중나와야 하는데 어디에도 보이질 않는거다.

 

"헐~~이 많은 롯지들 중에 어느 곳이 우리가 묵을 롯지인 지 당췌 알수가 있나~"

난감한 마음으로 우린 지나가며 계속 묻고, 소리쳐 포터들 이름을 불러보기도 하였다.

그때 대장님과 뒤쳐져 오던 왕다가 우리앞에 불쑥 나타났다.

아마 대장님께서 우리를 위해 보내셨음이 확실하다.

그러나 왕다도 우리의 숙소 위치를 확실히 모르는것 같다.

결국 우린 마을 끝지점까지 다달았다.

왕다가 어느 집을 찾아가 한 참을 묻고 오더니, 앞을 가로막고 있는 높다란 언덕을 또 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생각으론 아무리 생각해도 저 높은 언덕 너머 마을이 있을것 같지 않았다.

체력도 고갈되어 힘도 들고....꼼짝도 하기 싫어서 왕다보고 먼저 가서 정찰을 해보고 오라고 시켰다.

그러나 확실하다는 왕다의 말에 결국은 그를 따라 또 힘든 발걸음을 떼어 높은 고갯마루를 넘었다.

 

진짜 그곳에도 또 다른 타메 마을이 또 넓다랗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틀뒤 날씨 좋을때 찍은 사진...아래 타메 마을..>

 

 

"와우!!

타메가 이렇게도 큰 마을이었어??"

 

 

 

그때 저 만치 아래에서 우리 포터들이 양손을 들고 흔들고 있는 것이었다.

'이녀석들...이렇게 큰 마을인데 어떻게 찾아오라고...마중도 안나왔다고...'섭섭해 하고 있었는데...

어제 오늘 우리가 사진을 안찍고 마냥 걸으니 그들의 예상 시간보다 우리가 너무나 빨리 와서 그랬던 것이었다.

숙소에 들어가 보니, 그들의 점심으로 시켜놓은 국수가 마악 나와있었다.

그들은 점심을 먹자마자 곧바로 tea를 들고 대장님 마중을 나갔다.

우리도 배가 너무 고파서 대장님 오시기 전에 점심을 시켜서 먹었다.

3,680m 타메로 내려오니,생각보다 물가가 현저히 싸서 이것 저것 정신줄을 놓고....

피자도 시키고, 파스타도 시키고, 모모까지... 

참으로 오랫만에 럭셔리한 점심 식사를 했다.

 

 

 

난로가 후끈 후끈 따듯했다.

눈,비에 흠씬 젖은 트래커들과 포터들을 위한 주인장의 배려가 더없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열기가 식지않도록 연료 자루를 가져다가 연료를 거침없이 더 넣으며 따듯하게 계속 불을 지펴주는 것이었다.

얼마만에 느껴보는 따듯함...따듯한 마음이던가~

흠씬 젖어 있는 포터들을 보니, 주인장의 이 따듯한 배려가 얼마나 감동을 주는 지... 갑자기 마음 한 구석이 울컥 해진다.

 

비는 계속 쏟아졌다.

그러나 비교적 좋은 롯지에 주인장의 인심까지 후덕하니, 그동안 힘들었던 여정이 순식간에 녹는듯 하다.

루크라에서 첫 트래킹을 마치고 묵었던 탕낙에 이어 처음으로 욕실까지 딸린 롯지다.

1시간에 350루피를 주고 배터리 챠지를 했었는데, 방에 콘센트까지 있다.

물론 고장이 나서 다이닝룸에서 했지만 배터리 챠지가 공짜였다는 것...

그야말로 황홀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또다른 문제가 또 터졌다.

짐을 풀다가 보니, 연일 눈속 산행을 했었던 지라 방수 카고백임에도 불구하고 가방으로 물이 새어 들어온 것이다.

어느새 바위등을 스치며 닳아버린 가방 모서리 바느질 땀새로 물이 스며 들어온 것....

다행히 난 카고백안에 넣은 물품들도 또 다른 방수 압축쌕에 넣었기에 괜찮았는데, 이풀은 상황이 난감해졌다.

그나마도 이곳 타메에서 하루 여유 일정이 있으니 다행이었지, 그렇잖았으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었다.

 

다행히 둘다 침낭은 안전하니, 대충 짐을 풀고 침낭속에 들어갔다.

빗 소리는 점 점 더 요란해졌다.

정말이지 잠시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쏟아졌다.

 

'야르주'가 분명했다.

우기 뒤끝으로 며칠동안 쏟아지는 집중호우(고산엔 집중 폭설...)로 트래킹을 하는 트래커들에겐 매우 위험한 날씨다.

처음 우리가 맞은 흐린 날씨가 야르주라고....그후 맑아진 날씨에 이젠 절대 구름 조차 끼지 않을거라고 장담을 했었거늘...

아~ 야르주가 바로 이런거였어~

이렇게 끊이지 않고 연일 죽어라고 쏟아지는 비(폭설) ....

 

젖은 장갑과 등산화, 쟈켓, 우비, 배낭등을 말리면서 저녁 식사를 했다.

역시 물가가 싸지니, 저녁 메뉴도 풍성하다.

얼마만에 고기 맛을 보는 지...고추장 고기 감자 찌개를 끓여주었는데, 얼마나 맛이 있던 지...정신없이 먹은것 같다.

 

어제 오늘 흠씬 젖은 등산화가 불안하다.

아직 속에까지 물이 새어 들어오지는 않았어도,,,방수액을 뿌려서 가지고 와야 한다는걸 몰라서...

다행히 대장님께서 방수액을 가져 오셨다니, 방수액을 뿌리기 위해서도 등산화를 완전히 말려야 할텐데, 불에 화악 가까이 대서 말려도 안된다 하니...

조급한 마음에 답답해진다.

 

아이들에게 부탁을 하고는 방으로 들어왔다.

종일 눈과 빗속을 쉬지않고 걸은데다 저녁까지 든든히 먹었으니, 온몸이 나른해져서 꼼짝도 하기 싫어졌다.

일기도 쓰지않고 그냥 침낭 속에 쏘옥 들어가 푸욱 잠겼다.

 

빗소리는 더욱 거칠어 졌다.

 

"아~ 야르주 진짜 무섭구나~

히말라야가 아니라 한국에서도 이렇게 비가 쏟아지면 단 하루만에 홍수가 나는데..."

이 거친 히말라야에 ...지금 로왈링엔 엄청난 폭설을 쏟아붓고 있을테니 우리의 앞으로의 여정이 막연해지기만 했다.

그나마도 오늘 룽덴에 머물지 않고 타메로 내려오기를 얼마나 잘한일인 지...

아마 지금쯤 룽덴은 얼마나 많은 눈이 쌓여있을까...아마 꼼짝없이 갇힌 채로 몇 날을 기다려야 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뿐만이겠는가~ 우리가 내려올때도 이미 온 천지가 폭포고, 도랑물 처럼 흘러 물줄기를 피해 걷기가 힘들었거늘...

 

콩마라 패스, 촐라패스, 렌조라 패스는 이미 패쇄되었다고 한다.

모든게 그저 하루 이틀 차이였는데, 그래도 기막히게 그 아찔한 순간들을 피해서 지나왔다.

그나 저나 우린 이제 어떡해야 할까!!

 

로왈링을 포기하게 되는걸까??

그럼 지리로 걸어가나...

아님 루크라로 가서 비행기를 타고...??

 

심란해진 맘으로 잠이 들었다.

그러나 수없이 잠을 깼다.

집과 연락이 불통된지도 까마득한데...

우리의 여정이 어떻게 바뀌게 될지....도착하자 마자 어머님 제사에 남편 생일인데....ㅠㅠ

이것 저것 고민은 태산처럼 커져만 갔다.

 

히말라야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여주는구나!

그동안 너무나 쉽게 내뱉었던 말들이 방안을 가득 메워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