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포인트에서 사진을 찍고는 대장님을 만나러 하산 길로 접어 들었다.
그런데 얼마 안가서 있을 거란 예상을 뒤엎고 가도 가도 대장님은 보이지 않았다.
생각보다 뷰포인트 까지는 상당한 거리에 있었나 보다.
바람은 불고...
배는 고프고...
아!!
차라리 이럴줄 알았으면 애초에 내 배낭을 매고 따로 오르는거였는데...
바보같은 처사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그런데 아까 헤어졌던 자리에도 대장님은 계시지 않았다.
얼마동안을 더 걸었는 지...
급기야 저 아래로 고락셉 롯지가 보였다.
세상에~
이럴줄 알았으면 차라리 대장님 롯지로 돌아가시라고 할걸 그랬어~
이 추위에 바람까지 부는데....
그리고 뭐야~
베이스캠프까지 다시 가려면...거의 두번 왕복하는 거잖아~
아놔~~
어이없는 처사에 화가 날 지경에 이르러 커다란 바위 밑에서 바람을 피하고 계신 왕다와 대장님을 만났다.
겨우 점심으로 쿠키 몇개 먹으려고..... ㅠㅠ
배낭도 무겁지도 않았거늘, 내가 매고 갔으면 그냥 베이스 캠프까지 갔을걸~
아침도 오트밀 죽을 먹고, 점심도 쿠키 몇개를 먹으려고 여기까지 다시 내려온걸 생각하니, 그리고 베이스캠프까지도 안간다고 하고....
좀체로 언짢은 기분이 풀어지지 않는다.
배고픔과 달리 쿠키도 맛없고....
펨파가 베이스캠프까지 함께 해주겠다고 했는데, 마침 왕다도 한국 원정대팀 주방에 친구를 찾아가 양념을 얻으러 간다고 해서 왕다와 둘이서만 다시 발길을 돌렸다.
발걸음을 서둘렀다.
왕다야 워낙에 날아다니니 나만 왕다 걸음을 쫓아가면 되었다.
험준한 빙하 너덜지대를 건너니, 그야말로 이제는 쩍 쩍 벌어진 빙하 바로 곁을 지난다.
언짢았던 기분은 언제 사라졌는 지, 다시 감동과 흥분이 가슴을 벅차오르게 했다.
저만치에 타르초가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드디어 베이스캠프에 다달은 것이다.
그래도 아직 원정대 팀들이 쳐놓은 캠프가 콩알만하게 보이는 걸 보니,우리 원정대팀을 찾아 가려면 아직 까마득한것 같다.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었으니까...
"아~
저쪽 이탈리아 원정대 팀을 지나 훨씬 안쪽으로 들어와야 보인다고 했지~"
타르초가 휘날리는 곳....
인증 사진 찍어야 되는곳인것 같잖아~??
아놔~
또 팔을 들었어~
제발 이제는 팔좀 그만 들으라고 했는데....
내가 생각해도 그래~ 팔 절대 들지 말아야지...하는데, 저곳에 서면 절로 두 팔이 번쩍 들어지니 어쩌겠어~~"
우와~
여기 좀 봐~
로라와 웨스턴 쿰 앞으로 흘러내린....
눈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려 생겼다는 아이스폴이 마치 뾰족 산 처럼 솟아 있어~
그 앞으로는 크레바스가 쩍 쩍 벌어져 있고....
헐~
그러고 보니, 이 위가 지금 빙하잖아~
사진을 한바탕 찍고는 쿰부체 쪽을 향하여 한참을 더 걸었다.
이탈리아 원정대 팀의 베이스캠프가 보인다.
우리나라 원정대 팀 대장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우리나라 원정대팀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얘기를 듣지 못했으면 분명 그냥 돌아갔을 터였다.
사진에서는 평지처럼 보이지만 구릉이 심해서 ....언덕배기를 또 넘었다.
그제서야 바윗돌 위에 꽂혀진 자그마한 태극기가 보인다.
"아!! 태극기야~
그리고 저 아래 우리나라 로체 남벽 원정대팀 베이스캠프....."
순간 울컥 하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래~ 그랬었지.
내가 아주 아주 오래 전 독도에 갔을때도 그랬었어.
가슴이 뜨거워지며 애국심이 마악 불타올랐었지~
단숨에 캠프지로 달려 내려갔다.
어느분인가....흥분에 겨워있는 내게 손짓을 하며 '저쪽이라고...'
왕다는 어느새 주방캠프로 사라졌고, 나는 그가 손짓하는 텐트로 갔다.
그곳은 일종의 다이닝 룸...
마침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전날에 대장님은 제 3 캠프지를 구축하기 위해 없을거라고 했었는데, 오늘 날씨가 안좋아서 마침 제1캠프지에 계셨다.
사실 안좋은 일이지만, 어쨋든 나는 더없이 반가웠다.
들어서자 마자 내가 한 소리는...
"아~ 저도 밥좀 주세요!!"
오랫만에 죽순을 비롯한 온갖 야채가 들어있는 라면을 얻어먹고, 커피 향 그윽한 드립 아메리카노 커피도 얻어 마시고...
이야기 꽃을 피웠다.
이번 '로체 남벽 원정대' 홍성택대장님은 3극점 2극지...세계 최초 배링해협,그린란드,북극점, 에베레스트, 남극점을 성공하시고 책(아무도 밟지 않은 땅-5극지)까지 편찬하신 대단하신 분이시다.
3극점이란 남극,북극, 그리고 에베레스트를 일컫는 것이고.
2극지는 배링해협과 그린란드를 일컫는다.
세상에~
순간 옛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산언저리도 안갔을때의 일.... 처음으로 네팔에 여행을 갔을때 호텔에서 만난 에베레스트BC를 올랐다는 트래커를 만나고 그가 '신'처럼 보였었던 일....ㅎㅎ
아~ 이분이야말로 진정 '신' 이잖아~
내가 지금 신과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마주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는거야~
그분이 쓴 책 서막에서 읽은 부분이다.
언제나 등정을 떠날때의 각오.....
실패할 수도 있다....
신체의 어느 한 부위를 잃을 수도 있다....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자신 신체의 일부를 잃을 수도...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각오를 갖고 사는 삶....
그 두려움을 잊고 끊임없는 도전을 할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나는것일까....
남편과 수많은 다큐들을 보며 늘 하는 얘기가 있다.
세상은 용기있는 자들의 것이란거......
그들의 목숨건 용기와 도전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용기와 꿈을 갖게 만들고....
아름다움과 장엄함과 경이로움을 보고,느끼게 만든다는 것...
한없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꿈꿀수도 없었던 세계에 발을 딛게 만들고 그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준다는 거...
바람이 그렇게 불었는데....
그렇게도 추웠었는데....
거짓말 처럼 지금 이곳은 뜨거웠다.
하얀 설산과 아이스폴이 쏟아져 내린 이곳의 복사열때문에....
9월 23일에 이곳에 도착했다는데, 오늘이 10월 7일....이제 겨우 보름지났는데, 홍성택 대장님을 비롯한 대원들의 얼굴은 까맣게 타서 진한 구릿빛으로 빛이 났다.
하긴 내 얼굴도 새까맣게 타서 사진에서도 구릿빛이긴 하다만....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대원이 안내하는 라마제단으로 갔다.
아!!
눈앞에서 눕체를 보자니, 그 눈골 하나 하나가 얼마나 선명한 지...감동을 너머 가슴이 시려왔다.
제단앞엔 우리나라 원정대원들이 제를 올리면서 매단 수많은 염원이 담긴 깃발들이 날리고 있었다.
나도 잠시 묵상을 하며 이분들...대한민국 로체 남벽 원정대원들의 등정 성공을 빌었다.그리고 더불어 우리의 로왈링 여정의 성공도....
대장님의 명령을 받고 대원은 나를 식량 창고로 데려갔다.
그곳엔 갖가지 식재료들과 간식이 가득하였다.
아!
먹을거 앞에서의 감동이란....ㅋㅋ
그분이 커다란 봉지에 초쿄파이와 초콜릿, 쿠키등을 담아주시는 가운데 내 눈을 사로잡은건 '스팸' 통조림...
"저 이거 가져가도 돼요?"
ㅋ~~
먹을것도 한 보따리 얻었겠다..
TV에서나 보았던 분들과 잠시나마 함께 했었다는 의기양양함까지 더해져 마치 내가 로체 등정대원이라도 된 양 신나서 힘찬 발걸음으로 귀가길에 들어섰다.
가던 길을 되돌아 보며 그분들이 보이지 않을때까지 손을 흔들며.....
트래킹이후 처음으로 머리가 띵한것이 두통이 왔다.
아까 공연한 짜증을 냈던것이 원인일까...
아님, 심한 바람때문에 감기 기운이 있는 건지...
해발고도 5,364m라는 고지대에 올라서 약간의 고소증세인 지....
평소에도 체력이 고갈되었을때 심한 두통을 유발하는 지라
겁이 덜컥 났다.
얼른 두통약을 먹고 서둘러 롯지를 향해 걸었다.
왕다의 걸음으로 걸었으니, 모든 트래커들을 쓱 쓱 재치고 대략 1시간 남짓한 시간으로 롯지에 도착을 했다.
트래킹이후 처음으로 속보로 인해 땀으로 옷이 흥건히 젖었다.
몸의 열기는 아직도 남아 숙소에 들어와서도 더위를 못참고 훌 훌 옷을 벗었다. 그러나 얼마못가 이내 다시 주섬 주섬 옷을 다 껴입었다는...ㅎㅎ
로체 원정대 베이스캠프와는 달리 하산할 수록 바람은 여전히 심하게 불어재꼈고, 롯지에 도착하니, 아침에 출발할 때와 다름없이 바람이 심했다.
아무래도 내일 칼라파타르에 오를 일도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도 바람부는 날은 구름이 없으니, 오늘처럼 환상의 풍광을 볼 수 있음에 기대 만땅이다.
저녁으로 볶음밥과 모모, 애플파이를 먹었는데, 여전히 입맛이 별로다.
고산증은 아닌것 같은데,아무래도 감기에 걸린것 같다.
감기약을 먹고 자야겠다.
여전히 심란한 꿈을 꾼다.
혹시...엄마에게 무슨 일이 있나...불안함때문인 지...
오늘밤은 감기약을 먹고 푸욱 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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