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만 (요르단 수도) [라바, 필라델피아]
영)Amman (그)Philadelphia (히)Rabbah/Rabbat Bene ⁽Ammon
('암몬 자손들의 거대한 도시' 또는 '암몬 자손들의 수도'라는 뜻).
요르단 하심 왕국의 수도이자 암만 주의 주도.
요르단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현대적인 사회간접자본을 갖춘 유일한 도시이기도 하다. 자발아질룬 산맥 동쪽 가장자리의 기복 있는 구릉지대에 자리잡고 있으며, 1년 내내 물이 흐르는 수로를 포함하는 와디 암만과 그 지류들이 지난다. 오랜 시기에 걸쳐 이곳의 거주지는 와디 바로 북쪽의 면적이 얼마 되지 않는 3각형 고원지대(지금의 알칼라 산)에 집중되어 있었다. 청동기시대(BC 4000~3000경)의 것을 비롯해, 먼 고대시대에 세워진 요새도시들의 자취가 남아 있다. 그후 이 도시는 성서에 자주 나타나는 셈족 일파인 암몬족의 수도가 되었다. 성서상의 명칭인 라바와 지금의 명칭은 모두 '암몬'에서 비롯되었다. 다윗 왕의 장군 요압이 점령한 '왕의 도시'(Ⅱ 사무 12:26)는 고원지대 꼭대기에 있던 아크로폴리스였던 것으로 짐작되며, 다윗 왕이 우리야의 아내 바쎄바와 결혼하기 위해 우리야를 전쟁터로 보내 죽게 했을 때(Ⅱ 사무 11) 그가 전사한 곳도 이 도시의 성벽 앞이었다.
이 사건은 이슬람 민담의 일부로 전해지기도 한다.
그후 몇 세기 동안 쇠퇴하던 라바 시는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푸스(BC 285~246 재위)에게 정복당했다. 당시 정복자의 이름을 따서 새로 붙인 필라델피아라는 명칭은 비잔틴 및 로마 시대까지 쓰였다. BC 1~AD 2세기에 존재했던 헬레니즘 도시 동맹체 데카폴리스(그리스어로 '10개의 도시'라는 뜻)의 일원이었으며, 그뒤 로마인들이 다시 세웠기 때문에 로마 지배 당시 아름다운 유적 가운데 일부가 아직까지 남아 있다. 이슬람교가 일어난 후 635년 아랍의 장교 야지드 이븐 아비 수피안에게 점령당했으며, 이후 1300년 무렵까지 역사가들도 밝혀내지 못한 결과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1878년 오스만 투르크인들이 러시아에서 온 체르케스 난민들과 함께 이 지역에 다시 정착하기 시작했으며,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작은 마을로 남아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트란스요르단이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의 일부가 되었으나 위임통치국이었던 영국이 1921년 팔레스타인 서부지역에서 트란스요르단을 분리해내어 당시 헤자즈의 왕이자 메카의 샤리프로서 후세인 이븐 알리의 아들이었던 아브둘라를 군주로 삼고 트란스요르단 보호 토후국을 세웠다. 암만은 곧 이 새로운 국가의 수도가 되었으며, 이때 시작된 현대화가 1946년 요르단이 독립한 후 더욱 가속화되면서 빠른 성장을 이루었다. 1948~49년의 아랍-이스라엘 전쟁 후에는 팔레스타인의 아랍인 난민들이 엄청나게 쏟아져들어왔다. 이를 계기로 시작된 난민문제는 1967년 '6일전쟁'으로 요르단이 요르단 강 서쪽 영토 모두를 이스라엘에 빼앗긴 후 더욱 심각해졌다. 요르단 정부와 팔레스타인 반군 게릴라 사이의 정치적인 갈등이 마침내 1970년 암만의 시가지에서 공공연한 내전으로 폭발하기도 했다. 결국 정부군이 반군 게릴라를 진압하기는 했지만 암만 시는 이 사건으로 심하게 파괴되었다.
암만은 오늘날 요르단의 중요한 상업·금융·국제무역 중심지이다. 동쪽에는 왕궁이, 서쪽에는 의회 건물이 자리잡고 있으며, 요르단대학교 소재지이기도 하다. 주요산업으로 식품·담배 가공, 직조, 제지, 플라스틱·알루미늄 주방기구 제조 등이 이루어지며 도시 변두리에는 전지(電池) 및 관련제품을 제조하는 공장과 시멘트 공장이 있다. 암만은 또한 요르단의 교통 중심지로서 서쪽에 예루살렘으로 가는 2개의 간선도로가 연결되어 있다. 주요도로 가운데 하나가 북서쪽의 앗살트까지 연결되며, 알아카바 항을 남부 종점으로 하는 요르단의 남북 간선도로는 암만 시 한가운데를 지난다. 바로 동쪽으로 옛 헤자즈 철도 선로 부근에는 암만 국제공항이 있다. 유적으로는 고대 요새 유적과 고고학박물관, 잘 보존된 거대한 로마식 원형 극장이 유명하다
암만시는 2010년 새해를 맞아 암만의 대표 명소인 암몬성 유적지(현지명; 자발 알 깔라아)를 새롭게 단장했다. 4~5천년의 역사를 지닌 암몬성은 로마시대 헤롯대왕이 헤라클레스를 위해 봉헌한 신전과 비잔틴시대의 교회 터, 우마이야 왕조 때 축조된 성과 주거지흔적 등 중요한 고고학적 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암몬성은 성서에 기록된 이스라엘과 암몬의 전투에서 다윗왕의 계략으로 그의 충신 우리야가 전사한 장소로도 유명하다. 유적지 안쪽에는 1951년에 세워진 요르단 고고학 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는데, 사해사본(Dead Sea Scrolls)과 선사시대부터 AD1700년대까지 출토된 유물들을 시대별로 전시해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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