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클래식(2009년)

오페라 『마술피리』- 2009.10.8.목/예당. 오페라하우스

나베가 2009. 7. 25. 14:29

오페라 『마술피리』- 


 

전 세계를 감동시킨 불멸의 모차르트 오페라
독일 도르트문트 극장 초청
 



2009 오페라 마술피리는
밤의 여왕의 아리아를 비롯하여 모짜르트의 천재성이 돋보이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음악과 함께 새잡이 파파게노, 밤의 여왕, 타미노 왕자,
파미나 공주, 지혜로운 자라스트로 등
온갖 진귀한 캐릭터들이 작품 곳곳에 살아 숨 쉬는
마치 마법과도 같은 오페라입니다.
최초의 위대한 독일어 오페라로 손꼽히는 마술피리는
멜로디의 아름다움이나 음성의 매력을 내세우는 이탈리아 오페라와 달리
극적인 표현에 중요한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이 특징으로,
음악을 단순한 아름다움 보다는 극적인 표현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독일 도르트문트 국립극장과 함께 야심차게 준비한
2009 오페라 마술피리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베세토 오페라단의 3년 연속 전석 매진 시켰던
오페라 마술피리가 4년 만에 다시 한국에 상륙!
오페라 역사상 전세계 최고 1위의 공연기록과
객석 점유율 1위의 독일 오페라 마술피리를
독일 도르트문트 극장을 초청 9月 독일 공연을 마치고 한국을 찾는다.
전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도르트문트 상임지휘자 Ekhart Wycik
독일의 영향력 있는 연출가, 한국 3번째의 기발한 연출 Patrick Bialdyga
독일 최상의 밤의 여왕의 Anja Maria Kaftan
자라스트로만 90여 회 공연기록의 Viodar Gunnarsson
독일 도르트문트의 타미노 전문가수 김석철
지휘자 주빈 메타가 극착한 타미노 Andreas Scheidegger
유럽 전역에서 활동하는 미성의 파미나 Esthe Hilsberg
민첩하고 수려한 액팅으로 관객을 사로잡을 Gerald Schon
세계 동아 콩쿨의 영예를 안은 익살스런 연기의 소유자 공병우


[THE MAGIC FLUTE]

      모차르트 (W.A.Mozart 1756-1791) 
      1막 3장, 2막 - 독일어
등장인물  밤의 여왕 (소프라노)
파미나 (Pamina, 여왕의 딸) 소프라노
3명의 시녀 (메조소프라노, 소프라노, 소프라노) 
타미노 (Tamino, 이집트의 왕자) 테너 
파파게노 (Papageno, 새를 잡는 사람) 바리톤 
파파게나 (Papagena, 그의 정해진 신부) 소프라노 
자라스트로 (Sarastro, 이시스와 오시리스신을 섬기는 대제사장) 
모노스타토스 (Monostatos,이시스 신전의 노예 우두머리로 흑인) 
신전의 세 수호신 (메조소프라노,소프라노,소프라노) 
두 제사장 (테너,바리톤) 무장한 두 사나이 (테너,바리톤) 연설자 (베이스) 
때와 곳  고대 이집트 아시스와 오시리스의 신전 부근 
      1791. 9.30. 빈 교외의 비덴 극장 
주요 아리아  내 가슴은 지옥의 복수심으로 끓어오르네 - 밤의 여왕의 아리아
(Der Hölle Rache kocht in meinem Herzen) 




[FEATURE]

2막으로 이루어 짐. 가창(歌唱)과 대사를 포함한 이른바 징슈필에 속한다. 슈카네더의 대본에 의하여 1791년 3월부터 작곡, 9월 30일 완성하고 빈에서 초연하였다. 큰 구렁이에게 쫓긴 왕자 타미노는 밤의 여왕의 시녀 세 사람에게 구출되어 여왕의 딸 파미나의 아름다운 화상(畵像)을 보고 나쁜 수도자 자라스트로에게서 그녀를 구해 내려고 결심한다.

새장수 파파게노를 데리고 자라스트로에게로 가는데, 실은 자라스트로가 덕이 높은 인물이고 여왕이 악의 화신인 것을 알게 된다. 자라스트로가 내놓은 시련을 이겨낸 타미노는 파미나와 맺어진다. 파파게노도 파파게나라는 상대를 얻는다. 한편 밤의 여왕과 그 부하들은 복수를 하려고 찾아오지만, 천둥과 함께 지옥으로 떨어지고 막이 내린다.

이 오페라는 서곡을 비롯하여 뛰어난 아리아 등이 많으며, 모차르트는 이 작품에서 독일 전통 오페라로서의 징슈필을 하나의 장르로 완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페라 세리아와 오페라 부파의 요소도 도입, 종합적인 작품을 완성하고, 이 작품 초연 2개월 후에 죽었다. 한국에서는 1973년 6월 연세대학 오페라단(정희석 지휘)에 의해 초연되었다.

모짜르트의 창작활동은 매우 다양하여 당시의 음악의 장르에서 거의 모두를 다루고 있다. 그는 생애의 모든 시기에 걸쳐 극음악 창작에 종사했는데 대부분 오페라로서 그 가운데는 이태리어를 원본으로 한 오페라 세리아(정가극), 오페라 부파(희가극), 독일어로 된 징슈필(창극의 일종)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마술피리>은 모짜르트 최후의 오페라로서 그는 이 곡이 초연 된지 2개월 뒤에 사망하였다.

이 작품은 1791년 9월말에 완성하여 작곡자 자신의 지휘로 뷔덴극장에서 초연된 뒤 해를 거듭할 수록 인기를 더하고 있다.
대본은 모짜르트의 옛 친구이자 그 당시 빈에서 활약했던 작사가 겸 흥행주, '시카네더'가 작성한 것으로 환상적 내용을 갖고 있다. 독일 고래(古來)의 민속적 오페라인 징슈필의 가사와 대사로써 작곡되었는데 단순한 징슈필의 세계를 넘어서 독일 오페라의 고전을 창조하고 낭만파 오페라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친 걸작이다.

특히 당시의 모든 스타일이 종합되어 표현 내용으로서 프리메이슨의 사상도 엿볼 수 있다. 즉 독일민요풍의 노래와 이태리 오페라풍의 아리아, 그 밖의 성악과 기악의 여러 가지 형태를 흡수하여 변화무쌍하고 예술성 높은 작품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파파게노와 파파게나는 빈풍의 민요로 되어 있긴 하지만 이태리 부파의 음조를 띄고 있으며, 또 타미노와 파미나 두 사람은 이태리풍의 영창조와 독일풍의 가곡조가 각각 나타내주고 자라스트로는 엄격한 글룩의 스타일을, 밤의 여왕은 이태리의 오페라 세리아적 양식을 따르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바로크적, 바하적 코랄의 엄격한 양식도 눈에 띄는데, 이와 같은 다양한 요소들은 상호 긴밀한 관계를가지고 곡 전체에 통일을 주고 있다.

이 작품에는 두 개의 다른 차원의 세계가 펼쳐지는데, 파파게노의 세속적인 익살과 타미노, 파미나의 보다 숭고한 사랑이 양립한다. 여기에서 작곡자 모짜르트는 이 극히 모순된 주제를 교묘히 뒤엮어 일체화하여 결국 파파게나와의 지극히 단순한 행복을 추구하는 파파게노의 서툰 행위가 타미노, 파미나 간의 보다 영묘한 사랑의 추구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으로 이 작품이야말로 모짜르트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드러내준 통쾌한 작품이다.


[STORY]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밤의 여왕의 왕국이다. 막이 오름과 동시에 타미노가 커다란 뱀에 쫓겨 뛰어오다가 도와달라는 외침과 함께 바닥에 쓰러진다. 이 때 궁전의 문이 열리고 배일을 쓴 세 명의 시녀가 나타나 마술을 부려 뱀을 죽이고는, 기절해 있는 타미노를 보고 그의 수려한 용모에 감탄한다. 서로 그의 용모를 찬미하며 바라보는데, 멀리서 파파게노의 피리소리가 들려온다. 그녀들은 이 사건을 여왕에게 보고하기 위하여 모두 그 자리를 떠난다. 밤의 여왕의 세 시녀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타미노 왕자는 새 장수 파파게노와 함께 도승 자라스트로에게 붙잡혀 있는 밤의 여왕 딸 파미나를 구하기 위해 마술 피리와 은 종을 가지고 자라스트로의 사원으로 간다.
사원에서 승려들을 만나 자라스트로가 잔악한 폭군이 아닌 고귀한 성직자로 악과 어둠의 세계를 지배하는 밤의 여왕으로부터 청순한 딸을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타미노와 파미나 두 젊은이의 사랑은 많은 고통과 시련을 참아 내야 사랑이 맺어지는 우면 인지라 두 사람은 힘든 시련을 극복 하고 마침내 사랑의 승리를 얻는다. 한편 새잡이 파파게노도 그에겐 천생연분인 파파게나를 아내로 얻게 된다. 그 뒤 밤의 여왕이 복수를 꾀하지만 이는 물론 실패로 돌아가고, 파미나를 탐냈던 검둥이 악당 모노스타토스와 더불어 지옥에 떨어짐으로써 행복한 결말을 맺게 된다.



[CONDUCTOR]
 
Ekhart Wycik
-독일 하겐 태생
-뒤셀도르프 Robert- schumann음대 졸업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지휘와 피아노, 음악학을 전공함
-거장 Sergiu Celibidache와 Heinz Rögner fort와 마스터클래스에서 Diplom수료
-2003년 모짜르트와 브르크너를 주제로 Jenaer Philharmonie를 지휘하여 큰 호평
-Bochumer Sinfonikern, Jenaer Philharmonie,  Staatsphilharmonie Rheinland-Pfalz, Haydn-Orchester Bolzano, Berliner Sinfonikern 를 지휘하였으며 두 번의 Berliner Philharmonie를 지휘하는 등 유럽을 무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에를에서 열리는 2005년 티롤 축제(Tiroler Festspielen)에서 Gustav Kuhn과 함께 Wagner 작품인 Ring des Nibelungen, Tristan, Elektra를 지휘
-Wichita Grand Opera에서 모짜르트의 Zauberflöte를 지휘하였으며 “Principal Guest Conductor“ 상 수상, 2006/07 는 La Traviata를 지휘
-도르트문트 극장에서 Carmen, Der goldene Hahn, Rosenkavalier, Rigoletto, Zuaberflote등 수십 개의 오페라를 매 시즌 지휘하고 있다.
-2009년도에는 미국 Wichita Grand Opera에서의 지휘스케줄이 있으며 Scottish National Opera Glasgow에서 데뷔하는 등 수많은 영역을 넓혀가며 지휘자로서의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현재 도르트문트 오페라극장 상임지휘자



[DIRECTOR]
 
Patrick Bialdyga 
-독일 Bonn의 Reinischen Friedrich Wilhelms 대학 독어독문, 예술사 수학
-1996년 독일 도르트문트 극장 연출가로 데뷔
-Bonn, Koeln, Hamburg, Dortmund, Krefeld, Weilkerscheim, Salvador, 후궁으로부터 도주,
  다윗왕, 사랑의 묘약 서울 및 광주(돈죠바니) 등 유럽의 여러 오페라 극장에서 연출가로 활동
-Christine Mielitz, Wolfgang Engel, Claus Guth and Kazuko Watanabe, Harry Kupfer,
  John Dew 등 세계적인 오페라 제작자들과 함께 연출
-2002 독일 Berlin, Erfurt, Neustrelitz, Heidenheim 등에서 오페라와 뮤지컬 연출
-La Bohème, L’elisir d’amore, The Coachman of Longjumeau, The Magic Flute, Don Giovanni  연출
-현재 독일 Jeunesses Musicales과 Weikersheim Castle의 Oper의 연출가이자  극장장
-독일 연출가 중 언론으로부터 좋은 평을 받고 있으며 향후 가장 영향력 있는 연출가로 주목




[CAST]

파미나  –  Esthe Hilsberg
 

- 독일 베를린 출신
- 여러 콩쿨 1등 및 여성 최고부문 수상
- 2006 독일 프라이부룩 시의 예술가상과 장학금 수여받음
- Ks.Kaja Borris 와 처음 성악을한뒤 퀠른 국립음대에 진학 Prof. KS Hans Sotin에게 사사받음.
- Klesie Kelly, Judith Lindenbaum, Prof. Lieselotte Hammes, Peter Hechfellner, Charlotte
   Lehmann, KS Julie Kaufmann sowie bei KS Edda Moser 마스터 클래스에 참가
- 오페라 Die lustigen Weiber von Windsor  (Bass Kurt Moll과 함께 출연),Pamina (in „Die
 Zauberflöte“)를 Koeln Kammeroper에서 하였으며 Bregenzer Festspielen에서Adele („Die
 Fledermaus“) 그리고 Gräfin („Die Hochzeit Figaro“)를 연주하였다.또한 그녀는 Berlin
 Deutschoper에서 ”Mio, mein Mio“ (Foyer-Produktion) 를 연주하였음.
 Deutschen Oper am Rhein Düsseldorf, Oper Bonn, Theater Nordhausen, Theater
 Annaberg-Buchholz, MainfrankenTheater Würzburg ,Theater Magdeburg (Königin der
    Nacht),
  Staatstheater Meiningen (Susanna in „Die Hochzeit des Figaro“, Karolka in „Jenufa“ und
  Eva in „Die Schöpfung“) Theater Plauen-Zwickau als Zeitel in „Anatevka“) 극장
 도르트문트 극장뿐 아니라 유럽에서 수많은 오페라와 그 외 부문에서 많은 역할을 하고 있음.


파미나 - 박미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졸업 및 줄리어드 석사
-러시아 모스크바 그네신 음악대학, 미국 파이퍼 대학 명예 박사학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국제 콩쿨 우승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뉴욕 시티 오페라단 단원으로 활약
-2002 한일 월드컵 기념공연. 파바로티, 도밍고, 카레라스와 합동공연
-2004 호세 카레라스와 듀오콘서트 체코 야니첵 필하모니
-2005 ‘한일 우정의 해’ 동경 개막 공연
-프라하 신년음악회 솔리스트, 모차르트 비엔나 오케스트라 솔리스트
-러시아 볼쇼이 극장 <춘희><라보엠> 주역으로 출연
-국내외 오페라 극장에서 <춘희><라보엠><리골렛또><카르멘><마술피리><춘향전><파가로의 결혼>
 <사랑의 모약><시집가는 날> 등에 주역으로 출연
-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


파미나 - 박혜진

-서울예원, 서울예고 졸업
-연세대학교 성악과 졸업
-미국 맨해튼 음대 성악과 석사졸업
-미국 뉴욕시립대학교 성악과 박사
-월간음악 콩쿨 1위 수상 및 연주 (호암아트홀)
-신춘음악회 뉴서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협연(KBS홀)
-<라보엠> 미미역 (Urbania, Italy)
-성악 앙상블 리사이틀 연주(Mitzi new house pavilion, new york city)
-Solo 독창회 연주(Green fild hall, New York city)
-Ashley Putnam 마스터클래스 공연(Merkin Hall 링컨센타)
-모차르트 ‘대관식 미사’, 포레 ‘레퀴엠’, 슈베르트 ‘G장조 미사’, ‘헨델’, ‘메시아’ 등 다수 공연
-2005 서울 베세토 오페라단 ‘마술피리’ 파미나 주역으로 한국데뷔(예술의전당)
-뉴욕 신인 데뷔 독창회 2005,11(카네기 홀)
-2007 모차르트 갈라 콘서트 연주 – 필라델피아 멀킨 홀
-2008 프라하필하모닉초청연주 –프라하 스메타나 홀
-2008 Metropolitan opera와 함게 하는 사랑의 음악회 – Alpine,NJ
-2008 프라하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음반 출시 – Vienna, Swiss
-2009 청운음악회 – 세종문화회관 챔버홀
-현 단국대 음대 초빙 교수, 추계예술대, 상명대 출강


타미노 - Andreas Scheidegger

- 스위스 베른 출신
- 영국바리톤 Dennis Hall 과 처음 공부를 시작하였고 5년동안 함께 공부하였음.
- 독일 비스바덴 국립극장 에서 처음 데뷔
 Il Duca di Mantova (Rigoletto), Alfredo (Traviata), Don Ottavio (Don Giovanni), Belmonte
   (Enführung), Tamino (Magic flute), Camille Rosillon (Lustige Witwe) 가 주 레퍼토리이며 Renaud
   (Armide, Gluck)을 May-Festival Wiesbaden, 과 Gluck-Festival Nürnberg (Germany), 그리고 마
   지 막으로 New Israeli Opera in Tel Aviv. 에서 노래함으로 그에게 큰 성공을 안겨주었다.
 2005년 그는 프리랜서를 선언하고 타미노 역으로 슈트트가르트 국립오페라극장과 비엔나 Volks 극
   장에서 데뷔를 한다. 또한그는 이스라엘 Tel Aviv 국립극장에 다시한번 초대받아 튼 성공을 이루었
   고 그에 스케줄은 2011년까지 잡혀져 있다.
 2007년 6월에는 거장 지휘자 쥬빈메타 와 이스라엘 필하모닉오케스라와 Mozart’s ‚Entführung aus
   dem Serail 을 함께 하였다. Osmin 역에는 베이스 Kurt Rydl 과 함께하는등 최정상급의 연주자들과
   함께하는 영광을 누렸다.
 2009년 1월에는 하이드 오페라 L’Infedeltà delusa 에서 Nencio라는 역할로 WDR Broadcast 오케
   스트라와 함게 퀠른에서 CD 프로덕션을 하였다.
 그는 앞으로  오페라 돈죠바니 를 스위스Avenches국제 페스티발에서 연출자 Giancarlo Del
   Monaco 와 함게 연주할 예정이며 2010 년에는 오페라 파우스트를 이스라엘 국립극장에서 연주일
   정이 잡혀있는등 활발히 활동중이다.


타미노 – 테너 김석철
 
- 서울대 졸업
- 미국 커티스 음악원 졸업
- 1996년 이대웅콩쿨 대상
- 1997년 중앙콩쿨 1위
- 2001년 메트로폴리탄 국제콩쿨 필라델피아/워싱턴 지역예선 1위 입상
- 2002년 독일 퀠른 국제 콩쿨에서 3위
- 일본 쉬츠오카콩쿨, 프랑스 뚤루즈 국제성악콩쿨등 다수 콩쿨 입상
서울대 음악대학 재학시 베르디의 "가면무도회"의 리카르도 역으로 국내 오페라 데뷔

 미국커티스 음악원에서 "Rake`s Progress-Tom Rakewell", 코지 판 툿떼, 리골렛토, 파우스트, 라
   보엠 등의 작품에서 주역으로 출연.
 2000년 미국 Chautauqua 썸머음악축제에서 오페라 "쟌니 스키키", 2003년 방콕 오페라에 "마술피
   리"의 타미노역에 데뷔.

- 2003년부터 독일 도르트문트 극장 주역가수로 활동
 대표작 ("라 트라비아타""후궁으로부터의 도주""코지 판 뚯데" "미소의 나라" "라인골트" "보첵" "나
   부코""예브게니 오네긴" "카르멘" "리골렛토" "호프만의 이야기""토스카"등)
 2005 년 성남 아트센터 개관기념 오페라 "파우스트" 타이틀 롤로 성공적인 데뷔를 하였으며, 2007
   년 성남 아트센터 기획작품이자 국내 초연작품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낙소스섬의 아리아드네“
   바쿠스 역으로 주목 받은 바 있다.


밤의 여왕 - Anja Maria Kaftan 
 
-1974년 6월 28일생
-뒤셀도르프 음대 졸업(Robert-Schumann- Musik hochschule)
-뒤셀도르프 음대에서 오페라 클래스 졸업
-퀠른 캄머 오페라단 솔리스트 역임.
-Lions 국제 콩쿨 1등
-District Rheinland und Förderpreis
-리차드 바그너 바이로이트 축제 장학생
-Sylvia Geszty 마스터클래스 콩쿨 장학생
-콜벤츠 국제 콩쿨 우승
-Schmolz+Bickenbach 콩쿨 우승
-NRW 콩쿨 2등
-2008/2009드레스덴 잼퍼 오페라하우스, 본,할레,자부뤼켄 등에서 마술피리 밤의여왕 역할
-2007/2008드레스덴 잼퍼 오페라하우스,뮌헨,뒤셀도르프,비스바덴,할레에서 밤의여왕 역할
-2006/2007드레스덴 잼퍼 오페라하우스에서 "Ariadne auf Naxos" Najade 역할 노래함.
-2006/2007잘쯔부르크,할레,본,플렌스부룩 에서 밤의여왕 노래함.
-외 수많은 극장에서 2002년도부터 밤의여왕 전문 주역 가수로 노래함.
-이외 리트와 오라토리오를 뒤셀도르프, 에센, 퀠른. 크레펠트, 비스바덴, 도르트문트 등에서
  밤의 여왕 전문 솔리스트로 맹활약.


밤의 여왕 - 박미자

-선화예고, 이화여대 성악과 졸업.
-이태리 빠르마 국립 음악원 수석 졸업 및 교육자 과정 이수.
-싼타 체칠리아 국립 아카데미아 졸업.
-스페인 Jaume Aragall 국제 콩쿨1위(1996), 이태리 Spazio musica 국제콩쿨1위(1998)를 비롯, Bilbao국제콩쿨(1994), G.Spontini국제콩쿨, G.Bizet국제콩쿨(1997), Lauri Volpi국제콩쿨(1998), Zandonai국제콩쿨 입상 및 Zandonai상 수상(1997)과 A.Catalani콩쿨 최고가수(1995) 수상.
-스페인 Arriaga극장에서 오페라 [Don Pasquale]노리나 역으로 데뷔하여 , 이태리 Mary Ward극장에서 [L'lelisir d'amor]아디나 역, [Rigoletto]질다 역, Vigano극장에서 [La Traviata]비올렛따 역,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김동진의 [춘향전]춘향 역, 윤이상의 [심청]심청 역, 이태리Mancinello극장에서 [Il Signor Bruschino]소피아 역, 서울세종문화회관,서울예술의전당,대구오페라하우스,대전예술의전당에서 [Die Zauberflote]밤의 여왕역, 일본 동경국립가극장에서 [류퉁의꿈]쯔이보역,예술의전당에서 [La Boheme]무제타역,창원 성산아트홀에서[세빌리아이발사]로지나역, 중국천진대극장 (춘향전)춘향역 예술의전당(피델리오)마르첼리네역 등을 다수 공연.
-모짤트[c moll미사] [대관식미사] [레퀴엠] [크래도미사], 하이든[사계] [천지창조], 헨델[메시아] , 바흐[요한수난곡][마니피캍], 로씨니[스타밧 마테르], 베르디[레퀴엠], 월콧[평화의왕], 베토벤[9심포니] 뻬르골레지[스타밧마테르], 칼오르프[까르미나브라나], 포레[레퀴엠], 구노[장엄미사], 비발디[글로리아], 존루터[마니피캍], 브람스[레퀴엠]등 다수의 오라토리오,미사,칸타타 공연.
-현, 이화여대 음악대학 성악과 교수


파파게노 - Gerald Schön 
 
-독일 출신의 바리톤 Gerald Schön은 코트부스 콘서바토리에서 학사를 취득
-드레스덴 국립음대를 졸업하였으며 Prof. Kammersängerin Nelly Ailakowa 에게 사사받음
-오스트리아 Graz 로 건너가 Graz 국립음대에서 Prof. Christian Pöppelreiter 에게 사사받음
-오페라를 본격적으로 공부하여 Graz시에서 수상하는 우수인재상을 수여받고 Graz시에서 장학금을
  받음
-프리랜서 성악가로 자유계약에 의해 독일 도르트문트를 비롯하여, 유럽 전역에서 모차르트 전문 가수
  로서 무대에서 관객을 압도하는 민첩성을 가진 오페라 가수
-여러 오페라하우스에서 노래를 하며 주 레파토리로는 J. A. Hasse 와 W. A. Mozart등
-보컬의 민첩성을 가진 배우의 역할이 특히 뛰어난 가수
-2008년 중국 초청공연 성공


파파게노 – 바리톤 공병우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강병운선생에게 사사하며 예술의 전당 오페라 무대에서 오페라 꼬지판뚜떼, 라보엠,사랑의 묘약등에서 주역으로 한국무대에 등장하게 되었다. 서울대 대학원 과정중 프랑스 국립오페라 센터에 전액 국비 장학생을 선발하는 콩쿨에서 1등을 하여 2000년 프랑스의 가장 유서깊은 4개의 국제콩쿨에서 우승을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뚤루즈 국제 콩쿨의 대상, 파리 국제 콩쿨(1위없는)2위,마르멍드 국제 콩쿨1위,마르세이유 국제 콩쿨 (1위없는)2위) 그에 콩쿨의 선전은 다른 나라에서도 이루어  졌는데(자코모 아라갈 국제 콩쿨 특별상,벨베데레 국제 콩쿨 특별상) 그리고 2007년  10년만에 다시 부활한 서울 국제 성악 콩쿨에서 심사위원들의 거의 완벽에 가까운 테크닉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영예의 1위를 차지 하였다.
  그의 유럽에서의 오페라무대는 2000년 스페인 지로나 극장의 라보엠의 마르첼로역을 시작하여 사바델극장에서 피가로의 결혼의 백작역을 맏았고 .프랑스 아비뇽극장에서 꼬지판뚜떼의 굴리엘모역 그리고 독일 라이프찌히 극장에서는 영화 파리넬리의 음악감독으로 유명한 크리스토프 루쎄와 함께 바로크오페라 렘피오 뿌니또의 아트라체역을 맏아 열연하였다. 또한 노르웨이의 오슬로 극장에서 라보엠의 쇼나르와 아그더 극장에서 돈죠바니의 타이틀롤을 하여  노르웨이 일간지 파드렌드스베넨에서 동양인성악가 문화면에 머릿기사로 나오는 극히 이례적인 일과함께 청중을 압도하는 재치있는연기와 풍부한 성량의 돈죠바니라는 극찬을 받았다.
  유니버셜 음반사의 제작으로 파리국립오케스트라와 라디오 프랑스 페스티벌에서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집시공작의 까르네로 백작역으로 음반을 출시하였고
네이브 음반사의 제작으로 몽펠리에 국립 오케스트라와 레스피기의 오페라 라깜빠나 쏘레르싸의 마에스트로 역할로 음반을 출시하였다
   바리톤 공병우는 오는 3월부터 리모즈 극장의 까르미나 부라나의 바리톤 솔로 와 낭트극장의 꼬지판뚜떼의 굴리엘모 역 쎈에티엔 극장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머큐쇼역을 준비 중이다.


자라스트로 - Viodar Gunnarsson 
 
  아이슬랜드 대학에서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뒤늦게 성악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는 Reykjavik 와 스톡홀롬에서 Dr.Folke Saellstroem 을 사사하며 본격적인 성악의 길로 입문하였다. 그는 스톡홀롬에서 계속 성악공부를 한뒤 이후 아이슬랜드 국립극장에서 Ramfis (Aida), Ferrando (Troubadour), Masetto und Komtur (Don Giovanni). 의 역할과 작품으로 데뷔하였다.
  그는 Isländischen Fernsehen 국제 콩쿨과 베르디 국제 콩쿨에 입상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Wien Kammeroper와 Schönbrunner Schloßtheater에서 Sarastro (Die Zauberflöte) 역할로 데뷔했었다. 1990년도에 비스바덴 국립극장의 전속솔리스트로 1995년인 5년동안 활동하였으며 그간 Rocco (Fidelio), Il Grand`Inquisitore (Don Carlos), Padre Guardiano (La Forza del Destino) und Don Basilio (Il Barbiere di Seviglia) 의 작품과 성악가로써 경지에 이르러 부를수 있다는 작곡가 Wagner 작품 Fasolt (Rheingold), Hunding (Walküre), Fafner (Siegfried), Hagen (Götterdämmerung) und König Marke (Tristan und Isolde) 을 하였다.
그의 주 활동 무대로는 독일 본, 에센, 만하임, 프랑크푸르트, 슈트트가르트, 비스바덴, 카셀, 베를린(Staatsoper Unter den Linden)등이 있으며 스위스 제네바, 베른, 오스트리아 비엔나 (Volksoper) , 체코 프라하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있으며 지휘자 Maurizio Barbacini, Bertrand de BILLY, Oleg CAETANI, Prof. Wolf - Dieter HAUSCHILD, Eliahu INBAL, Jiri KOUT, Armin JORDAN, Jonathan NOTT, Rico SACCANI, Petri SAKKARI, Ulf SCHIRMER, Prof. Rheinhard SCHWARZ, Marc SOUSTROT, Robin STAPLETON, Marcello VIOTTI, Simone YOUNG 그리고 Alfred WALTER 와 함께 작품활동을 하였다..
베이스 Vidar Gunnarsson 은 그간 80개의 역할을 하였으며 그에 주 레퍼토리로는
Colline (La Bohème), Pater Guardiano (La Forza del Destino), Fiesco (Simone Boccanegra), Zaccaria (Nabucco), Grand'Inquisitor (Don Carlos), Il Re and Ramfis (Aida), Sarastro (Die Zauberflöte), Komtur (Don Giovanni), Boris (d.) (Boris Godunow), Don Basilio (Il Barbiere di Siviglia), Fasolt and Fafner (Rheingold), Hunding (Walküre), Hagen (Götterdemmerung), König Heinrich (Lohengrin), Landgraf (Tannhäuser), Daland (Der fliegende Holländer), König Marke (Tristan und Isolde) und Titurel (Parsifal) 등이 있다.
지금까지 자라스트로만 80회 공연


자라스트로 – 양희준
 
- 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독일 Köln 국립음대 졸업
-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졸업
- 독일 뒤쎌도르프 오페라단에서 벨리니 오페라 “Puritani” Sir Giorigio 역으로 첫 데뷔
- 오스트리아 Bregenz-festspiel 출연
- 독일 칼스루에 오페라단에서 전속 솔리스트로 활동
- 독일 함부룩 오페라단에서 전속 솔리스트로 활동
- 로마 싼타세칠리아 “아우디토리움” 수차례 활동
- 오스트리아 비인 “Schonbrunn Sommerfestival”에서 “마적”그리고 후궁으로부터 도주 출연
- 오스트리아 비인 국립오페라단 솔리스트로 활동
- 일본 동경 및 나고야에서 오페라 출연
- 독일 베르린, 에센, 아헨, 도르트문트, 슈투트가르트, 슈베린 오페라단에서 솔리스트로 활동
- 그외 독일 여러도시, 덴마르크, 스페인, 그리스 아테네, 룩셈부룩크,
   일본, 등지에서 오페라와 오라토리오를 연주했으며, 2002년 귀국하여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로 재직하며 지금도 한국과 유럽에서 활동 중
- 바그너 오페라 “니벨룽의 가락지” 전곡 CD 출판
-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 DVD 출판
- 찜린스키의 오페라 “칸다울레스의 왕” CD 출판
- 독일 북부방송(NDR)에서 개인 Potrait 출연과 그외 오페라 녹화 출연
- 체코에서 체코필하모니 오케스트라 그리고 독일 함부룩에서
   함부룩필하모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두차례 베르디 진혼곡을 CD로 출판함
- 2007년 오스트리아 빈국립오페라극장과 돈카를로스, CD와 DVD 출판
- 2007년 오스트리아 샹마가렛오페라 페스티발에서 나붓코 DVD 출판함
- 동아콩쿨 입상, 중앙콩쿨 입상, 해외 파견콩쿨 입상
- 오스트리아 비인 벨베데레 국제 성악콩쿨 2위 입상과 7개 부문 특별상 입상
- 독일 함부룩 Dr. Wilhelm “Oberdorfer”상 수상




1.Dame-Lydia Skourides 
 
-토론토의 서정적인 소프라노 Lydia Skourides는 수많은 시상식에서 수상
-연주 경력 동안 많은 상금을 거두었음
-Skourides는 경이로운 수준의 서정 소프라노와 자연스런 연기..그리고 특유의 음색은 항상
  스위트하고 강하며 뚜렷하기 때문에 주위를 압도한다.(Paul Citron,Opera Canada).
-성학원에서의 학부 후에, 존경받는 McGill 대학에서 오페라 연주를  전공하여 석사학위 취득
-학위 후, Lydia Skourides는 NUOVO오페라의 Benjamin Britten의 ”한여름 밤의 꿈”에서 헬레
  나 역할과 “La Bohème”의  Mimì 역할을 미모와 음악성으로 인정받아 맹활약
-Malcolm Martineau의 지휘 아래 젊은 예술가 활동
-Vlaamse Operastudio에 참여하고 벨기에의 “Gent”라는 프로그램에도 참여
-현재 Lydia는 독일 도르트문트 극장과 계약하여 The Bartered Brid의  Marie의 역
  할과 Hänsel und Gretel의 Gretel, “마술 피리”에 있는 첫 번째 숙녀 등으로 열연
-최근에, Skourides는  프랑스 Arles에서 열린 Festiv'Arles에서 오페라 아리아에서 프랑스 결승
 자로 우승


2.Dame–Laurie Gibson
 
- Laurie Gibson는 뉴욕, Syracuse의 West Genesee  고등학교를 졸업
 Syracuse 음악대학에서 성학 학사
 Tallahassee에 있는 플로리다 주립대학에서 성학 석사
 그녀는 플로리다 주립오페라단에서 “TheBARTERED BRIDE”의 마리 역할과 “마술피리”의 파미나 역
   할과 그리고 “Madame Butterfly”역과  “La BOHÈME”에서 Mimi역할로 솔로 경력
 Gibson는 국제 취리히 오페라 스튜디오 뿐만 아니라, 피츠버그 오페라의 젋은 예술 일원으로 활동
- 오스트리아에 있는 Linz Landestheater, 취리히 오페라, Bielefeld, Gelsenkirchen, Meiningen,
   Dortmund and Wuppertal 에서 많은 오페라 주역 출연
- 1997년부터, Gibson는, Kaiserslautern의 Pfalztheater에서 예술가로 정기적으로 출연
 2005년의 9월, 푸치니의 토스카 주역으로 Pfalztheater의 새 시즌을 성공적으로 개막하며  현재 전
   유럽에서 활동
- 첫 한국을 내한한 광주오페라 페스티벌 공연에서 “Madame Butterfly”로 찬사를 받음


3.Dame–Carolin Neukamm
 

 Carolin Neukamm은 1984년 독일 프라이부르크 출생 - 2004년부터 프라이부르크 음악대학에서 Angela Nick교수님께 성악을 사사 - 2005년부터는 Hans Peter Mueller교수님께 가곡 사사
 2006년 베를린 콩쿨에 입상
 2007년 부터는 오페라과 과정에 입학하였고 많은 오페라 공연 활동
 Lied와 Oratorio 콩쿨에 우승 했으며 각종 많은 음악회에 출연 - 아직은 비록 젊은 성악가이지만 열정이 대단하여 F. Pollet, W. Rieger, M. Honig, N. Shetler 마스터클레스에
   참가
 Gilbert an Sullivan의 오페라 Or Bunthornes에서 Lady Jane역과 모짜르트의 마적에서 3. Dame역 독일 도르트문트 극장을 비롯하여 유럽 전역에서 공연


천사 -Kai Wycik

- Kai Wycik은 2000년 출생
- 미국 오페라 가수Laurie Gibson과 독일 지휘자 Ekhart Wycik의 아들
- 현재 독일 하겐에 있는 Overberg초등학교 4학년
- SG Boelerheide의 축구팀의 환상적인 축구선수
- HAPPY MUSIC Kiddie라는 빅 밴드의 드럼 연주자
- 고향 하겐의 소년합창단의 솔리스트



[THEATER DORTMUND]

독일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Nordrhein-Westfalen)주에 있는 도르트문트 극장은
오페라 뿐만 아니라 발레,  각종 클래식 콘서트 음악회,연극을 올린다.

도르트문트 극장은 연간 800여 개의 공연을 하며 1200석의 규모를 자랑한다.

1904년 9월 17일에 개관한 도르트문트 극장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며
독일 내에서도 오페라하우스이기 전에 하나의 유산과 마찬가지로 보존되고 있다.

연출과 캐스팅, 음악적으로 굉장히 까다로운 도르트문트 극장은 독일 내에서도 그만큼의 음악적 높은 퀄리티를 자랑하며 매년 5개 이상의 새로운 작픔을 올림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지루하지 않는 오페라를 선보이고 있다.
도르트문트 극장은 다른 독일내의 극장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까다로운 심사를 걸쳐 선발된 극장 솔리스트와 합창단, 오케스트라를 보유하고 있으며 외에도 유명한 오페라가수들과 지휘자를 초청하여 오페라 공연을 한다.

이 때문인지 도르트문트 극장은 매 공연 만석을 자랑하며 오페라계에서도 좋은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공연후기....

 

<마술피리>하면 밤의 여왕 아리아가 너무나 유명해서 마치 수도없이 본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제대로 본것은 별반 없는것 같다.

암튼...내가 갖는 기대치에 별로 대단치 않은 오페라단이란 소리를 듣고는 좀 실망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지만,

예당에 7시반까지 가기 위해서 난 다른 그 어느때보다도 서둘러 갔다.

 

사람이 참 간사하지??

대단치 않은 오페라단 이라는 소리를 들어서 일까....

무대에 등장한 가수들의 노래가 여엉 가슴을 뚫고 들어오지 않는거였다.

'아~ 좀 더 짝짝 뻗는 노래소리를 듣고 싶다'고 내 안에선 소리치고 있었다.

그리곤 깨달았다.

내 자리가 4층이라는것..

'그래~내가 오페라는 적어도 3층이상은 올라가지 말자'고 했었지~ㅠㅠ

망원경을 통해서 보면서 좀 더 집중을 하니 차츰 집중력이 생기면서 낳아지긴 했지만...

항상 엉뚱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오페라 강좌를 들으면서 보는 최고의 영상물의 최고의 장면을 떠올리며 그들이 저 무대에서 노래하는걸 봤으면....

그러면서 제대로 감동속으로 빨려들어가지 않는것이다. 이런~~

................

 

암튼...

초반부터 가수들이 무대를 떠나 객석 맨 앞줄까지 나와 뛰어다니기도 하고,  뱀으로 분장한 여인의 재밌는 캐릭터가 눈길을 끌기도 하고, 어린이들이 동물들의 옷을 입고 숲을 지나는 장면....등 재미를 주는 연출이 많이 등장해 웃음을 많이 주었다.

그중에서도 단연 백미는 파파게노와 파파게나의 익살스러움이었다.

노파로 변신해서 능청스럽게 연기하는 파파게나와 그에 대응하는 파파게노의 연기, 그리고 둘이 맺어지면서 부르는 이중창은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파파게노의 캐릭터가 무척 유쾌했고 노래, 연기도 잘 했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또하나의 이 오페라의 백미...

밤의 여왕 아리아....

듣는 이도 부르는 이 못지않게 항상 가슴이 조마 조마 해지는 .....그리고 얼마나 잘하나...내심 평가하는...ㅋㅋ

어쩌면 이 노래 하나 들으러 오는 이도 있지 않을까..싶을 만큼 이 아리아 하나만으로도 이 오페라는 볼만한 가치가 있는것이다. 그런만큼 다른 배역들이 아무리 자신들의 역할을 잘 해냈어도  이 아리아를 못불렀다면 이 오페라는 그만 실패작이 되버리는 것이다. 

사실...밤의 여왕은  주연도 아니고, 노래도 많이 부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이에겐 마술피리의 주연은 밤의 여왕이다. ㅋㅋ 

어쨋든 오늘의 배역인 Anja Maria Kaftan 의 아리아는 감동까진 아니었어도 실수 없이 듣는이가 불편하지 않을만큼

잘 불러주었다. 좀더 '지옥의 복수심은 불타오르고'의 제목처럼 감정을 폭발시켜 주었다면....바랬다면 무리였을까??

너무 외모도 이뻤고, 노래도 이쁘게 불렀다는 생각이다.

 

파미나의 아리아에 '브라보'를 외치는 이도 있더만....나는 좀...

그러나 전반적으로 초반에 가졌던 심드렁에서 나오면서는 즐겁고 유쾌한 마음 가득 안고 나왔으니까...

ㅎㅎㅎ

 

<마술피리>가 노래와 대사가 있는 징슈필 오페라였다는 걸 오늘 새삼스럽게 알았음...

올 봄에 베토벤 오페라 <피델리오>를 보면서 처음으로 대사가 있는 오페라를 접하곤 독일어가 아닌 우리말로 연기하는 모습이 엄청 낯설어서 옆자리 학생 말따나 "뭐야~깬다~"하며....

황당했던 순간이 떠올라 혼자 웃었다.ㅋㅋㅋ

정말 독일어가 아닌 우리말로 연기하는 오페라 가수들을 보니 정말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ㅋㅋㅋ

마술피리도 한국어 대사로 하면 또 그때처럼 깰까?? ㅋㅋㅋ

 

아!!

모짜르트의 죽음 직전의 모습도 떠 올라 마음 한구석이 좀 아파었다.

모짜르트의 작품을 접할때는 왜 그렇게도 영화 <아마데우스>에서의 모짜르트 모습이 떠오르는 지...

그래서 항상 그 짖궂음에 웃음 지어지고,

마지막 작품에 몰두하는 처절한 그 모습에 감정이 격해지고,

레퀴엠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 버려지는 그 초라한 장례식에..마음이 아프다.

모짜르트가 죽기 전 2개월 전에 이렇게 유쾌한 작품을 만들어 무대에 올릴 수 있었다니...

처절하리 만큼 장엄한 레퀴엠을 작곡하면서....  

 

그의 천재적인 작품을 접할 때마다 언제나 그의 짧은 생애가 너무나 안타깝기만 하다.

 

줄거리..... 

 

펌<http://blog.daum.net/polaris-agnes/16522899>

Overture 

 

제1막

제1장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밤의 여왕의 왕국이다. 막이 오름과 동시에 타미노가 커다란 뱀에 쫓겨 뛰어오다가 도와달라는 외침과 함께 바닥에 쓰러진다. 이때 궁전의 문이 열리고 배일을 쓴 세 명의 시녀가 나타나 마술을 부려 뱀을 죽이고는, 기절해 있는 타미노를 보고 그의 수려한 용모에 감탄한다. 서로 그의 용모를 찬미하며 바라보는데, 멀리서 파파게노의 피리소리가 들려온다. 그녀들은 이 사건을 여왕에게 보고하기 위하여 모두 그 자리를 떠난다.

    Fritz Wunderlichs(1930.9.26~1966.9.17)-Tamino

http://www.andreas-praefcke.de/wunderlich/recital.htm

 

겨우 정신을 차린 타미노는 파파게노의 피리소리와 그 옆에 죽어 있는 뱀을 보고 놀란다. 그는 새털로 만든 옷을 걸치고 있는 파파게노가 뱀을 퇴치하고 자신을 구해준 것으로 생각하여 고마워한다. 그리고 자신은 건너편에 있는 한 나라의 왕자라고 소개한다. 그러나 파파게노는 왕국이라든가 왕자, 영토 등이 무슨 말인지 모르고 그냥 신이 나서 자기 자랑을 한다. 자신은 새를 잡는 사냥꾼으로 여왕과 시녀들에게 새를 갖다 바치고 식량과 바꾸어 생활하고 있으며, 이 뱀도 자신이 죽였다고 흥겹게 말한다.

 

얼마 후 궁정문이 열리고 세 시녀가 다시 나타나, 파파게노가 거짓말을 한 것을 꾸짖는다. 그리고 다시는 말을 못하도록 그의 입술에 자물쇠를 채운다. 그녀들은 뱀을 퇴치한 장본인이 바로 자신들임을 말한 후, 여왕의 딸 파미나의 초상화를 보여준다. 파미나는 지금 악마에게 붙잡혀 있으며 여왕은 딸의 구출을 위하여 무척이나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Dies Bildnis ist bezaubernd schö- Fritz Wunderlichs   

 

타미노는 첫눈에 그녀의 미모에 반하여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Dies Bildnisist bezaubernd schön)" 라는 노래를 끓어오를 듯한 정열로 부른다. 이때 요란한 천둥소리와 함께 밤의 여왕이 나타난다. 그녀는 번쩍거리는 왕좌에 앉아 아주 하기 어려운 콜로라투라(coloratura)의 아리아를 부르면서 자기를 소개한다. 그리고 타미노에게 이시스와 오시리스의 두 신을 섬기는 고승 자라스트로에게 빼앗긴 딸을 구출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녀는 "너야말로 내 딸에게 자유를 갖게 할 자다 (Du du du wirst...)"라고 노래하며, 만약 자라스트로로부터 파미나를 되찾아올 수 있다면 그녀와 타미노를 결혼시키겠다고 약속한다. 타미노는 생명을 다해서 파미나를 구해 올 것을 맹세한다. 타미노가 신에게 기도드릴 때, 파파게노가 나타난다.

  

 

세 명의 시녀는 파파게노가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며 입에 잠궜던 자물쇠를 풀어주고, 한 시녀가 타미노에게 여왕의 선물인 마술피리(마적)를 전한다. 이 피리는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주며, 불행한 사람에게는 행운을, 외로운 사람에게는 연인을 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파파게노에게 동행할 것을 명령하고는 그에게는 은방울을 준다. 소년 셋이 자라스트로의 성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게 될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제2장

무대는 이집트에 있는 자라스트로의 성으로 바뀐다. 파미나는 평소 그녀에게 흑심을 품고 있던 흑인 모노스타토스의 감시를 받고 있었는데, 지금 그녀는 탈출을 시도하다가 그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모노스타토스는 이번 기회에 그녀를 겁탈하려고 작정을 한다.

 

이때 파파게노의 소리가 들리고 마치 괴물처럼 생긴 새의 모습을 한 그가 나타나자 모노스타토스는 겁에 질려 줄행랑을 친다. 잠시 후, 기절했던 타미나가 정신을 차리게 되고 파파게노로부터 그녀에게 매료된 젊은 왕자가 그녀를 구하러 이곳에 왔다는 말을 듣는다. 그들은 "그야말로 나의 연인 (Bei Mannern welche Liebefublen)"라는 이중창을 부른다.

   

 

제1막

제3장

장면이 바뀌어, 자라스트로의 사원 앞이다. 세 소년의 안내로 타미노는 이 곳에 당도한다. 그는 자신 앞에 놓여 있는 세 개의 문을 발견한다. 그가 첫째, 둘째의 문을 두들기자 '물러서라'는 경고의 소리가 울린다. 그러나 그가 세 번째 지혜의 문으로 다가서자, 한 사제가 나타나더니 자라스트로에 대한 정보를 전해준다. 즉 그는 여왕이 묘사한 것과 같이 그렇게 사악한 괴물 이 결코 아니며 오히려 고귀한 이상을 갖고 있는 매우 고상한 성품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따라서 파미나는 안전하니 염려할 것 없다고 말해준다. 타미노는 그녀의 안전을 감사하며 피리를 부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플루트 아리아 (Floten Arie)"이다. 이 아름다운 선율에 숲속의 모든 동물과 새들이 노래를 하고, 파파게노도 이 피리소리를 듣고 그의 행방을 쫓아 급히 서두른다.

 Tamino & Sprecher / Floten Arie

 

파파게노가 자유로이 "빠른 발걸음, 민첩하고 대담한 용기(Schnelle Fusse, rascher Mut! )" 라는 노래를 부르며 파미나를 데리고 들어온다. 그러나 이 노랫소리를 듣고 달려온 모노스타토스가 노예들을 불러 파미나를 결박하려 한다. 파파게노는 얼른 은방울을 꺼내어 그들을 향해 흔든다. 그러자 갑자기 그들은 그 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면서 사라진다. 두 사람은 안심하며 "착한 사람은 이 방울로 행복을 갖네 (Konnte jederbrave...)"라고 노래한다.

 

얼마 후, 군중들의 환호와 함께 자라스트로가 등장한다. 파파게노는 놀라 도망치려 하는데, 파미나가 그에게 상황을 설명해 보자는 제안을 한다. 그녀는 스스로를 낮추면서 겸손하게 도망가려고 한 것에 대해 용서를 빈다. 이때 모노스타토스가 타미노를 끌고 온다. 여기서 타미노와 파미나는 그들의 만남을 기뻐하고, 화가난 흑인은 타미노와 파파게노의 처벌을 부탁한다. 그러나 자라스트로는 오히려 모노스타토스가 매를 맞아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게 되고, 그들은 시련의 방으로 가야 하는 판결을 하지만 타미노는 그녀를 만난 기쁨에 그 시련을 참아낼 각오를 한다.

 

 

제2막

이시스 사원 밖의 묘지이다. 자라스트로는 엄숙한 표정으로 사제들에게 그 젊은 두 연인이 겪지 않으면 안될 험난한 시련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은 사악한 밤의 여왕의 교만을 좌절시키려 한다.

O Isis und Osiris  

 

합창과 함께 "오, 이시스 오시리스 신이여 (O,Isis und O'siris)"를 노래한다. 타미노 왕자는 정의감과 덕이 있는 자로, 그의 혼은 먼저 시련을 받음으로써 깨끗하게 되어야 한다며 그들이 시련을 이겨내기를 기도한다. 사원의 출입문이다. 두 사람의 사제가 타미노와 파파게노에게 주의를 주면서 여자들의 유혹을 경계하라는 노래를 부른다. 얼마 후, 밤의 여왕을모시는 세 시녀가 들어와서 사제들 곁에 있는 타미노와 파파게노를 유혹한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 그러자 사제들이 세 명의 시녀들을 쫓아낸다. 사제들은 두 사람이 첫번째 시험을 통과한 것을 축하한다.

 

다시 무대가 바뀌어, 아름다운 화원의 휘황한 달밤이다. 꽃이 만발한 가운데 파미나가 누워 자고 있다. 모노스타토스가 음탕한 생각으로 그녀의 아름다움을 훔쳐보고 있다. 그러자 그 때 갑자기 천둥과 함께 밤의 여왕이 나타나 "지옥의 복수가 내 마음을 불타게 한다 (Der Hölle Rache Kocht inmeinem Herzen)" 라는 아리아를 부른다. 이 노래는 매우 부르기 어려운 트레몰로 곡이다. 그녀는 잠에서 깨어난 파미나에게 단도를 건네주면서 어머니를 정녕 사랑한다면 자라스트로를 죽이라고 명령을 내리면서 그렇지 않으면 평생 의절하겠다고 위협한다.

Der Hölle Rache  

   

 

밤의 여왕이 떠난 후, 파미나는 도저히 자라스트로를 죽일 수 없다는 생각에 잠겨 고민한다. 이때 모노스타토스가 그녀의 손에 있는 칼을 빼앗고는 이 음모를 자라스트로에게 알리겠다고 위협하면서 파미나의 사랑을 요구한다. 거기에 자라스트로가 나타나 모노스타토스를 쫓은 후, 그녀를 안심시킨다. 그리고 그는 부드럽게 "이 신성한 전당에서는 복수를 생각할 수 없어 (In diesen be il'gen Hallen kennt man die rache nicht)"라는 아리아를 부르며 파미나와 함께 퇴장한다.

In diesen heil'gen Hallen 

 

 

제2막

장면은 넓은 방으로, 타미노와 파파게노는 아직도 가혹한 시련을 겪고 있다. 사제들이 침묵의 시련을 명령한 것이다. 이제 그들 둘만 이 남게 되고, 파파게노는 물 한 방울도 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는데 주름 투성이의 한 늙은 노파가 물이 든 쟁반을 들고 다가온다. 파파게노는 곧 말상대로 삼고 이야기하자, 노파는 자기가 파파게노의 애인이라면서 이름은 파파게나, 나이는 18살이라고 소개를 한다. 그러나 그때 천둥소리가 울리고 파파게나는 서둘러 달아나 버린다. 구제된 파파게노는 다시는 입을 열지 않아야겠다며 안도한다.

 

세 소년이 등장해서 음식과 마실 것을 가져와서는, 자라스트로에게 빼앗겼던 아적과 은방울도 돌려준다. 파파게노는 기뻐하며 음식을 먹기 시작하고, 타미노는 피리를 분다. 이 소리에 끌려 파미나가 등장하는데, 이것이 타미노의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었다. 침묵의 시련을 극복하고 있는 그로서는 그녀의 어떠한 질문에도 침묵을 지켜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에게 아랑곳없이 그가 침묵만을 고집하는 것을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고 슬픈 아리아 "아, 가버린 사랑이여 (Ach, ich fühl's)"를 부르고 달려 나가버린다.

Ach, ich fühl's

 

 

파미나, 타미노, 자라스트로의 아름다운 3중창이 어우러지는 장면이 짧게 연출되는 가운데 자라스트로는 시련을 견디어야 하는 타미노를 격려하고, 파미나는 사랑이 떠났다고 서러워한다. 타미노는 새로운 시련에 임하려 떠나고, 파파게노는 타미노를 찾기 위해 등장한다. 그는 자신의 소원은 사랑스런 아내라고 노래한다. 이때 그 노파가 다시 나타나서, 그것에 대한 대답을 하려고 든다. 무척 희극적인 장면으로, 그 노파는 그에게 자기 손을 잡고 사랑을 맹세하라고 요구한다. 파파게노가 그대로 따랐더니, 순간 그 늙은 노파는 통통하게 살이 찌고 예쁜 옷차림의 젊은 여자로 변한다. 이 또한 그에게는 가혹한 시련이 아닐 수 없다. 파파게노는 그녀를 보고 유혹을 받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때도 그녀는 한 사제에 의해서 아직 시련이 끝나지 않았음을 이유로 끌려가고 만다.

 

장면은 작은 정원으로 바뀐다. 파미나가 타미노의 냉정한 태도를 오해한 나머지 자살하려고 하는데, 하늘에서 날아온 세 소년이 그것을 말리며 타미노는 파미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전한다. 진정한 파미나는 소년들과 노래를 하고, 소년들은 그녀를 타미노에게 인도해 주겠다고 약속한다. 무대는 어두운 굴속이다. 타미노는 마지막 시련에 대비해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있다. 두 사제가 나타난 후, 무장한 사람들의 허락을 받고 파미나가 등장한다. 두 연인은 기쁨의 해후를 한다. 그들은 포옹을 한 채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참으로 아름다운 장면이 연출된다. 여기서 파미나는 마적의 유래를 말하게 된다.

 

그녀의 아버지가 심한 폭풍이 몰아치던 날에 천년 묵은 떡갈나무를 찍어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마지막 시험 관문인 불과 물을 통과하는데, 아무런 해도 입지 않고 무사히 빠져 나온다. 그사이 파파게노는 자기의 은방울을 흔들며 파파게나를 애타 게 찾다가, 그만 실망한 나머지 목을 매려고 한다. 그가 나무에 목을 매려 고 할 때 세 소년이 나타나 그에게 마법의 방울을 흔들어 보라고 말한다. 방울소리와 동시에 파파게나가 나타난다. 그들 두 사람은 포옹을 하고는 "파- 파-파-파-파-게노"라는 경쾌한 이중창을 더듬거리며 부른다. 그들은 이 노래를 부르면서 아예 가족 계획까지 세우는 희극을 연출한다.

Papageno & Papagena  

 

마지막 장면이다. 밤의 여왕은 모노스타토스와 그녀가 거느리고 있는 세 명의 시녀들을 대동하고 자라스트로의 사원에 침입한다. 복수를 하기 위해왔지만 항상 선은 악을 이기는 법인지, 갑자기 뇌성벽력이 일더니 이들 다섯 명은 지옥으로 떨어져 버리게 된다. 오페라의 승리를 찬양하는 합창이 울려 퍼지고, 태양이 빛나는 대사원에서 자라스트로는 "밤이 지나갔다"고 선포한다. 모두가 두 사람의 결혼을 축복한다.

 

 

3. <마술피리> 초연의 반응

1791년 9월 30일, 빈의 교외에 있는 프라이하우스 테아터(Theater im Freihaus auf der Wieden)에서 작곡가 자신의 지휘로 막을 올린 이 오페라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굉장한 성공을 거두었다. 당시엔 불행히도 오늘날과 같은 정규적인 신문의 리뷰가 시작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공연에 대한 공식적인 정보는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오페라를 관람했던 사람들이 남긴 <마술피리>의 공연이 빈의 관객들에게 얼마나 굉장한 사건이었던 가를 알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모차르트 자신이 오페라가 개막된 지 1주일 뒤 그의 처 콘스탄쩨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타낸 성공에 대한 지극한 만족감이 가장 생생한 증언이 되고 있다. "지금 마악 오페라에서 돌아왔소. 언제나처럼 만원이었소. 항상 그랬듯이 이중창인 <남자와 여자> 그리고 파파게노의 종(glockenspiel)소리는 되풀이해야만 했다오. 제 2막의 소년들의 트리오도 역시. 그러나 나를 가장 즐겁게 하는 것은 '침묵의 인정'이라오. 이제 당신은 이 오페라가 더욱 높은 평가를 받게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거요."

다음날도 극장은 여전히 만원이었다. "비록 토요일은 항상 나쁜 밤이지만 오페라는 또다시 만원인 극장에서 언제나처럼 대단한 갈채와 앙코르 속에서 공연되었소!"

한 달도 되기 전에 오페라는 결국 거의 매일 공연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모차르트는 당시 궁정의 음악감독이었던 안토니오 살리에리와 그 자신의 오페라 <후궁으로부터의 도주>에서 콘스탄쩨 역을 맡았던 살리에리의 연인 카테리나 카발리에리를 초청했다.

"그들이 얼마나 황홀했는지 당신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거요. 나의 음악뿐 아니라 리브레토와 그 외 모든 것을 그들이 얼마나 맘에 들어 했는가를 당신이 안다면! 그들은 이 작품이 가장 장대한 축제를 위해, 그리고 가장 위대한 군주 앞에서 공연할 가치가 있는 '그랜드 오페라'라고 말했소. 그들은 자주 공연을 보러 왔다오. 이보다 더 아름답고 즐거운 쇼는 여태 본 적이 없었노라면서. 살리에리는 최고의 주의력을 가지고 경청하고 지켜봤소. 그리고 서곡에서부터 마지막 코러스에 이르기까지 그가 "브라보!" 또는 "벨로(bello, 즉 멋져)"라고 소리치지 않은 곡은 하나도 없었다오. 그들은 나의 친절에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소."

이렇게 그는 콘스탄체에게 쓰고 있다. 살리에리와 모차르트의 적대관계에 대한 숱한 전설들에 익숙해 있는 독자들에게 이 대목은 참으로 흥미 있는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오페라가 얼마나 전례없는 성공을 누렸던가는 비교적 좋은 좌석을 얻기 위해선 개막 세 시간 전에 극장 앞에 와 있어야 했다는 당시의 보고에 의해서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처음 2주 동안 사람들은 7시에 시작하는 공연을 보기 위해 5시에 극장에 왔는데, 사실상 수백 명의 관객들이 표를 사지 못해 되돌아갔기 때문이다.

 

<마술피리>의 대본작가로, 최초의 파파게노 역을 맡기도 했던 에마누엘 쉬카네더가 프라이하우스 테아터를 관리한 10년 동안 이 극장에서 <마술피리>는 223회의 공연을 기록했다. (주 - 빈의 공연 통계에 의하면 1879년 이전의 90년 동안 <여자는 다 그런 것>은 75회, <피가로의 결혼>은 331회, <돈 죠반니>는 호프테아터(hoftheater)에서 476회, 교의 극장에서 180회의 공연을 기록한 데 비해 <마술피리>는 호프테아터에서 354회, 교외 극장에서 376회를 공연했다.) 어떤 평자는 확실히 1790년대에 이 오페라의 피아노 - 성악 스코어가 마인츠와 만하임, 오펜바흐, 라이프찌히, 베를린, 그리고 브룬스비크에서 출판되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러므로 1년 안에 그리고 같은 해에 여섯 번이나 출판되었으니, 그야말로 음악문학의 역사상 여태까진 전례가 없던 기현상이었다."

그러는 동안 <마술피리>는 독일의 다른 극장에서도 재빨리 채택하게 되어 1800년 무렵엔 거의 65개 지방에서 공연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1801년엔 모스크바와 파리에 상륙했으며,(프랑스의 제작은 <이시스의 신비>란 제목의 무자비하게 손질된 불구형의 버션이었다.) 1811년엔 런던, 1812년엔 스톡흘름, 1816년엔 코펜하겐과 밀라노, 1829년엔 브뤼셀, 그리고 마침내 1833년엔 뉴욕에까지 선보이게 되었다.

 

물론, 아래와 같은 또 다른 평가도 접할 수는 있었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는 1791년 9월 30일, 즉 모차르트가 죽기 몇 주전에 비엔나의 교외극장에서 초연되었다. 공연 상과는 처음에 신통치 않았다. 베를린의 <음악주간지> 특파원은 "새로운 기계희극 <마술피리>를 궁정음악가 모차르트가 많은 수고를 하여 음악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는데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그것은 작품의 내용과 언어가 지나치게 형편없기 때문이었다"라고 간결하게 보고하고 있다.

그후 <마술피리>가 애호되는 가극 레파토리 속에 들어갔을 때도 대본에 대한 비판은 그치지 않았다. 마술가극, 사치성 기계예술, 동양의 영롱한 분위기, 신비적이고 상징적인 표상 '프리메이슨' 비밀결사의 기본사상 등 많은 반론 때문에 의견이 통일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초연의 반응은 1991년 DECCA에서 녹음한 <마술피리>음반에 실린 소개지에 개재된 내용인데 신빙성이 없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글을 쓴 이의 성명 표기조차 되어있지 않다. 이 음반은 Wienna Philharmoniker가 연주했고 지휘자는 Sir Georg Solti(쏠티 경)이다. 우리에게는 조수미가 밤의 여왕을 맡았기에 잘 알려져 있다.

 

 

4. <마술피리>의 탄생배경: 쉬카네더(J. E. Schikaneder)에 대한 잘못된 전설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로서, 그의 모든 오페라 가운데 가장 심오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마술피리>가 탄생하게 된 배경에 대해선 오랫동안 잘못된 전설이 유포되어 있었다.

즉, 전적으로 평판이 나쁜 인물로 극장계의 방랑자 생활을 영위해 온 에마뉴엘 쉬카네더는 빈의 교외에 있는 '목조창고보다 더 나을 게 없는' 극장의 더러운 극단을 통솔하는 디렉터였다. 거기서 그는 빈의 대중에게 가장 저급한 취향의 쇼를 보여주면서 그 자신 자주 극중의 어릿광대 역을 연기하곤 했다. 1791년 초에 그는 절망적인 재정적 곤경에 처하게 되자, 프리메이슨의 형제요 친구인 모차르트에게 와서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파멸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자기와 더불어 오페라 한 곡을 만들자고 간청했다. 언제나 친구를 도울 용의가 돼 있었던 모차르트는 마지못해 동의하고 거의 문맹에 가까운 쉬카네더에 의해 마련된 리브레토를 가지고 다른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얻어 음악을 작곡했다는, 대강 이런 이야기였다.

이것은 모차르트 연구가 오토 얀이 그의 방대한 '모차르트 전기'에서 밝힌 것인데, 그의 기념비적인 저작의 권위가 너무나 막중했기 때문에 전혀 의심 없이 받아들여져서 널리 유포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이야기는 역사적으로도 진실이 아닐 뿐더러 쉬카네더를 위해선 참으로 불공평한 처우이며 통탄할 만한 불명예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최근까지 오페라를 논하는 글에서 자주 이같은 이야기가 아무런 검증 없이 반복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최근에 이르러 모차르트 학자들의 집요한 추적에 의해 쉬카네더와 또 <마술피리>의 창조를 주도한 상황에 다른 빛을 던져주는 사실들이 거의 파헤쳐지게 되었다.

사실, 에마뉴엘 쉬카네더는 더할 수 없이 흥미진진한 전기의 주인공으로 손색이 없는 인물이었다. 모차르트보다 다섯 살 연상이었던 그는 하인의 아들로, 일종의 만능 예술가라 할 만했다. 바이올리니스트로 이력을 시작한 그는 1773년에 극단원이 되었는데, 처음엔 음악가로 시작해서 다음엔 배우, 가수, 무대감독 그리고 시인도 겸했으며 작곡도 하고 발레 안무까지 했다. 그는 문맹이기는커녕 징슈필과 오페레타의 가사도 쓰고 작곡도 했으며, 햄릿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배역을 연기했다. 특히 그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능했으며, 사실 햄릿은 그의 가장 유명한 배역이었다. 1778년에 쉬카네더는 자신의 연극단 디렉터가 되어 그의 아내와 더불어 주역을 맡았는데, 1780년 9월 ∼1781년 2월에 이 극단은 잘쯔부르크에서 징슈필뿐만 아니라 셰익스피어와 괴테 및 보마르셰(<세빌리아의 이발사>) 등을 공연했다. 쉬카네더가 모차르트 가를 만나게 된 것이 이때였다. 그는 이 가족들과 너무나 친해졌기 때문에 레오폴트와 볼프강, 그리고 모차르트의 누나에게 자신의 모든 공연을 볼 수 있는 무료 입장권을 주기까지 했다. 그리고 모차르트는 쉬카네더가 제작한 코미디에 삽입되는 독일의 아리아를 작곡해주기도 했다.(지금은 남아 있지 않음)

1784년에 쉬카네더는 황제의 초청으로 빈에 와서 케른트너토어 테아터에서 제작 활동을 하게 되는데, 그의 첫 작품은 모차르트의 <후궁으로부터의 도주>였다. 그러나 얼마 안돼 그가 극단 여배우들과 복잡한 염문으로 인한 싸움에 휘말리게 되자 그의 극단은 해체되었다. 그의 처와 다른 단원들은 새 단체를 결성해서 빈을 떠났고, 그는 남았다. 그는<피가로의 결혼>을 각색해서 리허설에 들어갔지만, 마지막 순간에 황제의 금지로 공연은 좌절되었다. (아마도 모차르트가 보마르셰의 희곡에 친숙하게 된 것은 이 각색본을 통해서였을 것이다.)

국립극장에서 배우 겸 가수로 활약한 후 쉬카네더는 새 극단을 조직해서 순회공연 길에 올라 1786년엔 어린 시절을 보낸 레겐스부르크에 정착했다. 성공적인 3년을 보낸 뒤 그는 여기서도 다시 고위층의 '보호자'를 가진 두 여배우에 의해 발생한 사건 때문에 곤경에 처하게 된다. 마침 이때 그와 사이가 틀어졌던 아내가 파트너인 배우 프리델의 죽음으로 인해 물려받게 된 테아터 아우프 데어 비덴으로 그를 초청해서 그는 빈으로 오게 된다. 여기서 그는 새 극단을 조직했다.

테아터 아우프 데어 비덴은 슈타르헴베르크 공에게 속한 면세 복합 건물인 '프라이하우스(Freihaus)'의 일부였다. 이것은 '목조 창고'라는 전설과는 거리가 먼 석조 건물로, 두 단의 칸막이 좌석과 두 줄의 회랑을 지닌 거의 1,000명의 관객을 수용하는 규모였다. 쉬카네더는 35명 규모의 오케스트라와 30명으로 된 코러스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는 빈 교외의 다른 인기 있는 극장과 경쟁해야 했기 때문에 코미디와 스펙터클물을 강조하고, 정교한 무대의 기계장치와 발연물 및 동물들까지 효과로 사용했다. 그는 상당히 성공적으로 극장을 운영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그가 <마술피리>를 공동제작하기 위해 모차르트에게 접근했을 때 절박한 금전적 위기에 처해 있었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다.

 

5. 프리메이슨 교단과 <마술피리>의 연관성

당시 질병과 빚더미에 시달리고 있던 모차르트는 쉬카네더가 고안하고 있던 여흥물의 원시적 유형에 점차 참을 수 없게 되어 보다 고귀하고 깊은 관념, 특히 악에 대한 선의 승리와 인간의 형제애에 대한 프리메이슨적 신념을 도입할 것을 주장하면서 플롯의 변경을 강하게 요구했다. 그리고 이 견해에 쉬카네더는 쉽사리 동의했는데, 그 자신 이같은 진기함은 대중들을 즐겁게 하고 이러한 관념은 세력 있는 프리메이슨 단원들을 기쁘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까닭이다. 그에게는 결과적인 모순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쨌든 그들은 결국 동화적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이니 논리적 이야기의 일관성을 유지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에 대해 모차르트의 직접적인 의견이 밝혀진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충분히 근거 있는 견해가 아닌가 싶다.

동시대의 많은 다른 예술가들 및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모차르트 역시 프리메이슨 교단의 인도주의적이고 민주적인 이상에 강렬하게 이끌렸다.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는 단호하게 반대했지만, 그 아들 요제프 2세의 용인하에 프리메이슨 교단은 1770년대와 80년대의 빈에서 두드러진 존재가 되어 있었다. 모차르트는 1784년(12월 14일)에 프리메이슨에 가입했으며 특별히 프리메이슨을 위한 작품을 여러 편 작곡했다. 쉬카네더는 1788년에 모차르트가 속한 지부보다 훨씬 격이 떨어지는 저급한 지부의 단원이 되었다. 사실 <마슬피리>의 정교한 무대장치를 위한 비용은 프리메이슨 형제들의 재정적 후원에 도움을 입었다는 얘기까지 있었다.

한편, 음악적인 의미 외에 이 '마술피리'는 프리메이슨 비밀결사와 항상 논란이 되어왔다. 프리메이슨은 18세기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자유, 평등, 박애를 모토로 한 비밀결사로 알려져 있는데 모차르트도 그 조직원의 한 사람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이 작품을 쓰면서 프리메이슨의 이상과 비밀 의식을 교묘히 나타내고자 했다는 이야기인데, 어떤 연구가에 의하면 각 등장인물이 그 당시 프리메이슨과 연관된 사람들을 상징하고 있다고 그는 주장하고 있다.

즉, 타미노는 결사의 보호자 요셉 2세, 파미나는 오스트리아의 국민, 자라스트로는 프리메이슨의 지도자 이그나쯔 폰 보른, 밤의 여왕은 결사를 탄압했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모나스타토스는 프리메이슨의 적대관계였던 예수회를 상징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진위야 어떻든 오페라는 프리메이슨의 심벌과 이 교단의 특유한 의식에 대한 언급으로 가득 차 있다.

주인공인 완자는 입회자들의 서클에 속하기를 원한다. 그는 일련의 시험을 거치지 않으면 안된다. 오페라의 끝에 가서 그는 이시스와 오시리스 교단의 승려들 가운데 일원이 된다. 왕자의 입회의식과 그에 동반하는 많은 상징들은 프리메이슨 교단에 속한 것이다.

이를테면 신비로운 3의 숫자는 오페라의 도처에서 여러 방식으로 강조되는데, 이 3의 개념은 프리메이슨의 이상인 아름다움, 힘, 지혜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오페라는 E♭장조(세 개의 ♭)로 시작되고 끝 맺는다. 서곡 속엔 불길한 세 개의 화음이 있으며, 세 명의 여인들, 세 정령들, 타미노가 두드리는 세 개의 문, 그리고 타미노를 추격하는 거대한 뱀마저 세 토막으로 잘려져 살해된다. 이집트적 장치 역시 명백히 프리메이슨에 관계된 것이며, 리브레토의 초판 타이틀 페이지에는 프리메이슨적 도안들이 공공연히 인쇄되어 있다.

<마슬피리>에서 프리메이슨의 상징주의와 도덕성이 본질적으로 주제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 오늘날 보편적인 견해가 되어 있지만, 그러나 기묘하게도 이 오페라가 공연된 초기엔 오페라에 대한 프리메이슨적인 해석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그것은 당시의 사람들이 오페라의 프리메이슨적 연관을 간파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반대로 모차르트의 당대엔 귀족의 서클이나 부르주아 계급에게 모두 프리메이슨단에 대해 신비로운 것이라곤 전혀 없었다. 대중들은 프리메이슨 지부의 기장을 착용하고 다녔으며, 프리메이슨의 심벌은 보석에 새겨졌고 손수건에 수놓아졌을 뿐 아니라 장식품으로도 널리 애용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차르트가 <마술피리> 속에서 프리메이슨의 비밀을 폭로했기 때문에 프리메이슨의 단죄를 받아 독살되었다는 설이 한동안 상당히 유력했고, 오늘날도 역시 그걸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당시엔 아무도 <마술피리>를 프리메이슨의 비밀을 폭로한 배신행위라고 해석하진 않았다. 오히려 이와 같은 견해는 프리메이슨이 오스트리아 당국에 의해 금지되고 박해를 받아 대부분의 지역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어 대중의 의식 속에서 사라져간 시기에 생겨난 것이었다.

 

 

6. 복잡한 상징과 알레고리로 가득한 <마술피리>

사실 <마술피리>는 복잡한 상징과 알레고리로 가득 차 있어 표면적인 행위나 현상 밑에 깔린 이론상의 여러 요소에 대해 마치 비밀암호를 해독하는 작업처럼 숱한 해석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아마도 이 오페라가 수년 내에 그토록 굉장한 대중적 인기를 획득하지 않았다면 그 같은 구구한 해석들이 난무하진 않았을 것이다.

1790년대 동안 라인란트 지방에선 당시 들끓고 있던 프랑스 혁명의 시각에서 이 작품을 해석하는 경향이 유력했다. 즉 밤의 여왕은 전제군주 루이 16세를 상징하고, 타미노는 인민을, 파미나는 전제정치의 딸인 자유를, 그리고 파파게노는 부유한 계급을 상징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모든 등장인물과 줄거리의 세부에 이르기까지 자코벵식 해석이 쏟아져 나왔다. 결국 이 오페라의 근본사상은 보다 나은 입법의 지혜를 통해 오랜 전제주의의 속박으로부터 프랑스 인민들을 해방시킨다는 것으로, 모차르트와 쉬카네더는 자유를 위한 투사가 되는 것이었다. 마인츠의 한 자코벵 당원은 파파게노의 유명한 아리아 '나는 새잡이'에다 자코벵식 가사를 붙인 노래를 만들어 유행시키기도 했다.

한편 구체제를 옹호하는 오스트리아에선 즉각 이와 반대되는 해석이 유포되었다. 밤의 여왕은 자코벵 철학을 대변하고, 그 딸인 공화국은 제국의 왕자에 의해 구출되어 정통성을 회복한다는 식이었다. 후에 모차르트 시대 프리메이슨의 부침에 대한 알레고리로 이 작품을 해석한 견해도 나왔는데, 즉 밤의 여왕은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모노스타토스는 제수이스트들, 타미노는 요제프 2세, 파미나는 오스트리아 인민들, 그리고 자라스트로는 저명한 과학자로 빈 프리메이슨의 존경받는 지도자인 이그나츠 폰 보른을 대변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모차르트와 쉬카네더가 이 모든 구구한 해석에 대해 그들의 의견을 밝혔다는 기록은 아무 데도 없다.

 

 

7. <마술피리>, 독일의 위대한 징슈필이자 모든 양식의 집적체

다만 모차르트는 단순히 독일의 징슈필인 위대한 오페라 한 편을 창조했을 뿐이었다. 징슈필은 오페라 세리아나 오페라 부파처럼 스타일상의 일관성을 지니고 있지 않았으나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는 징슈필이면서도 기실 모든 양식의 집적체라 할 수 있었다. 거기엔 민요풍의 단순한 소곡들과 엄청난 기교적 어려움을 지닌 눈부신 아리아들이 공존하며, 부파적인 곡들, 정교한 트리오들, 그리고 '서정비극'에나 적합한 엄숙한 행진곡도 있다. 프로테스탄트의 코랄이 바로크의 대위법적 방법으로 처리되었으며, 이것은 <이도메네오> 이래 모차르트의 오페라에선 최초의 장대한 합창이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새롭게 주조된 '모차르트다움(mozarteam)'이다. 그의 오페라에서 처음으로 인물들은 개인적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유행이나 상징이 되고 있으며, 오페라 자체가 하나의 알레고리요, 그 주제는 관념이라 할 수 있다. 즉 어둠을 정복하는 빛, 악에 대한 선의 승리, 덕과 형제애의 승리가 뚜렷이 부각되는 것이다.

 

제2막의 자라스트로와 승려들의 장면에서 종교적 톤(tone)이 도입되는 것은 모차르트의 무대작품에선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극장에서 코랄을 사용한 것은 거의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타미노가 자라스트로를 찾는 동안 제 1막의 피날레 부분의 길게 진행되는 장면에서 모차르트는 레치타티보에 수반되는 독일어를 처리하는 방법을 확립했는데, 이것은 중요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차르트 음악의 위대한 '내면성' - 심각한 것을 리트 같은 직접적 표현과 결합시킨 - 은 독일의 오페라에선 전혀 새로운 요소였다.

 

베토벤도 거듭 찬탄했듯이 과연 모차르트는 <마술피리> 속에서 모든 종류의 형식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북독일의 코랄풍 전주곡으로부터 푸가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콜로라투라 아리아에서부터 민요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형식을 <마술피리>가 내포한 심원한 도덕적, 윤리적 특질은 독일의 음악가에게뿐 아니라 작가들에게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사랑과 보편적 우정의 찬양은 기실 독일 예술의 그 시대에 특별히 민감한 주제였다.(베토벤의 <제 9번 교향곡>은 바로 이같은 주제를 천명한 것이었다.) 괴테는 <마술피리>에 너무나 감동한 나머지 이 오페라의 후편을 쓰기까지 했지만 애석하게도 리브레토는 완성되지 못한 채 단편으로만 남아있다. 오페라의 심오한 내용뿐 아니라 음악의 특수한 성격은 베토벤의 <피델리오>와 독일의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들의 오페라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바그너도 지적했듯이 진실로<마술피리>는 '최초의 위대한 독일 오페라'였다. 그리고 초연 200주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마술피리>는 여전히 가장 위대한 오페라의 하나로 남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