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
서울에 볼일도 있어 나간 길에 일찌감치 예술의 전당으로 갔다.
평소엔 이 시간이면 콘서트 홀이 터엉 비어 있을 시간인데, 왠일로 사람들이 가득하여 시끌법적하다.
어제의 감동을 추스리며 오늘 있을 연주의 감동까지 가슴을 채우며 책을 보려고 커피도 내려 갔건 만...
맛있는 커피가 있는데 까페로 가자니 그것도 그렇고...
오페라 하우스로 가서 자리를 잡고 책을 보았다.
진한 커피 향도 좋고....
유리창으로 가득 들어오는 예술의 전당의 알록 달록한 가을풍광이 멋지다.
그야말로 늦가을의 정취를 제대로 느끼고 있는것만 같다.
그렇게 2시간여의 시간은 또 한 순간에 지나갔다.
오늘은 약속대로 내가 저녁을 쏘기로 했기에 모두 만나 저녁을 먹고 서둘러 예술의 전당으로 다시 오니,
발 디딜 틈도 없이 로비엔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렇게 대 공연이 펼쳐질땐 유명 인사들을 많이 볼 수 있는 재미도 있다.
다음 달에 '도이치 캄머필'과 협연을 펼칠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여전히 늘 함께 하는 그의 아내 윤정희와 나타났고...
피아니스트 '김대진'씨를 비롯해서 수많은 유명인사와 칼럼니스트들이 눈에 띄었다.
그렇지~
왠만한 연주자와 칼럼니스트들, 그리고 내놓라 하는 음악애호가들은 다 왔을거야~ ㅎㅎ
오늘도 일숙언니의 처음 예매부터 끝까지 노력해준 덕택으로 어제와는 반대쪽인 합창석을 또 차지했다.
어제의 공연에서 드볼작을 연주했던 첫 무대와는 달리 오늘은 처음부터 무대에 더 이상 들어설 자리도 없이 연주자들로 가득하다.
오늘은 2014년 탄생 150주년을 맞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보석같은 명곡....
교향시(Tone Pome=음시)'돈 주앙'과 '장미의 기사' 모음곡이 1부 곡으로 연주되고,
2부에선 쇼스타코비치 최고의 걸작 교향곡 5번- 혁명이 연주된다.
모두 다 4관 편성의 꽉 찬 오케스트라 편성이기에 무대만 바라보아도 그냥 압도되는 듯 하다.
드디어 어제보다 더 큰 함성속에 얀손스는 무대에 섰다.
그의 두 팔이 올려지면서 무대를 표효하듯 가득 메운 오케스트라의 울림....간담이 서늘하다.
14세기 무렵 스페인에 살았던 전설적 바람둥이 돈 후안의 등장을 묘사라도 하듯....
이내 실로폰의 울림속에서 간을 녹여내듯 연주되는 바이올린 독주는
그의 수많은 여성 편력의 묘사 같기도 하고....ㅎㅎ
그러나 다시 이어지는 엄청난 오케스트라의 질주와 하염없이 아름답게 흐르는 독주들과 아름다운 선율들은
슈트라우스가 강하게 이끌렸던 시인 레나우가 다른 시각으로 그린 이상주의자 - 돈후안의 방황을 묘사하는것도 같다.
지고의 사랑을 찾아 방황하는 낭만주의자이자 이상주의자- 돈후안....
코앞임에도 불구하고 망원경을 얀손스의 얼굴에 고정시켰다.
그의 온 몸으로 표현이 되는 선율들은 단순한 지휘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눈 동자...입...손...전신에서 퍼져 나오는 변화무쌍한 그의 모습과 딱 그 만큼의 느낌과 아찔하도록 정확하게 퍼져나오는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정말 소름이 돋게 만들었다.
혼의 기세등등함으로 시작된 2번째 곡의 장미의 기사...
'장미의 기사'란 장미 문장(紋章)이 새겨진 방패를 든 기사(騎士)가 아니라 18세기 빈의 귀족사회에서 행해진
우리의 함진아비격인 청혼의 전령을 뜻한다고 한다.
혼담이 이루어진 뒤에 신랑쪽 친척 한 사람이 신부될 처녀에게 은으로 만들어진 장미를 선물로 전달해 정식 청혼의 예를 갖추는 풍습....
그 과정에서 함진아비가 신부와 눈이 맞아버린 사건을 오페라로 만든 것이 바로 '장미의 기사' 다
내용이 이렇듯 드라마틱 하다보니, 연주도 더없이 매혹적이고 엄청난 폭풍을 일으키기도 한다.
역시 그 드라마틱함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얀손스와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은 연주해내며 객석의 혼을 빼앗아 갔다.
아~ 바이올린 독주는 어찌도 그리 매혹적인 지...
그때의 얀손스의 표정은 또 어떻고...
표효하는 그의 모습도 엄청나지만, 섬세하고도 디테일한 연주를 해낼때의 그의 표정은 뭐라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다.
1부의 연주가 끝나고 모두 밖으로 나와 그제서야 큰 숨을 쉬며 한바탕 또 감동을 토해냈다.
모두가 하나같이 내뱉는 말...
어떻게 하면 저렇게도 지휘자와 연주자들이 혼연 일체가 되어 한 치의 오차도 없느냐는 거였다.
일흔의 거장이 연출하는 감각적 표현력은 현장 예술에서 극치를 이룰것이라고....
전단지에 쓴 모든 미사여구들 중에서 이처럼 더 보탬도 없이 딱 맞는 표현을 쓴 작가가 누구인 지....
분명 얀손스의 실황연주를 많이 본 사람임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아!!
이제 2부의 시작 시간이 왔다.
쇼스타코비치 5번 혁명...
내가 이 곡을 접하고 감정이 복받쳐 감당하기 힘들었던 것이 2006년 '유리테미르카노프'가 이끌고 내한 한 상트페테르부르크 연주회에서 였다.
아!!
정말 그때의 압도되었던 그 감동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후 2008년에 에센바흐와 함께한 필라델피아 연주에서도 그랬고...
2012년 게르기예프가 이끌고 내한 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에서도 그랬다.
한번 들으면 블랙홀에 빠져들어 헤어나올 수 없는 마력같은 곡....
무라빈스키가 초연한 공연에서 본 연주시간 45분 보다도 더 기인 1시간이 넘는 기립 박수를 받았다는 이 곡을...
오늘 무라빈스키가 스승이었던 마리스 얀손스와 그의 오케스트라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의 연주로 듣는다.
스승 무라빈스키에게서 물려받은 아찔한 기계적 테크닉과 정확성의 지평이 무엇인가를 보여줄 것이라는 칼럼니스트의 말처럼...
얀손스는 이미 여러 오케스트라에서 수행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5개의 전곡을 EMI를 통해서 발표하며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얀손스의 거장성은 이미 입증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세기의 지휘자였던 카라얀에게서 지휘 교육을 받았을 뿐만아니라 제 2회 카라얀 국제 지휘자 콩쿨에서 우승을 거머쥔 경력이다.
이런 모든 미사여구를 제쳐놓고 라도 어제 첫곡 연주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나의 넋을 온전히 빼앗아 간 얀손스와 BRSO는
과연 이 곡을 어떻게 연주해 낼까...
객석은 숨소리 조차 들리지 않았다.
드디어 얀손스의 지휘아래 연주가 시작되었다.
아!!
드디어 가장 좋아하는... 블랙홀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하는 선율이 흐르기 시작한다.
하프와 저현부의 울림속에 제1 바이올린이 연주해내는 기막힌 선율...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 선율은 1악장 전반을 두고 반복되면서 사람을 정신 못차리게 끌고 들어가는 것이다.
인간 내면에 깔린 가장 원초적인 복잡 미묘한 심성이라고 할까...
아님, 삶의 원동력이 되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에너지 같은걸까 ....
한없이 여리지만 엄청난 에너지로 분명 폭발할 힘을 가진 저력같은거...
아니나 다를까...이내 오케스트라는 엄청난 에너지로 표효하며 홀을 울려댄다.
작렬하는 팀파니...
표효하는 관...
일사불란하게 질주하는 현...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지휘자....
그러다가 일순간에 모두 스러지고 시작되는 하프의 선율...
그 울림을 시작으로 플릇과 혼, 클라리넷 그리고 오보에,피콜로,바이올린 솔로가 주제 선율을 연주해낼때의 전율은
온몸에 소름이 돋게 할 정도로 짜릿하다.
어쩌면 저런 선율을 탄생시켰을까...절절해지는 것이다.
하프의 선율...간간히 울리는 실로폰..거기다 영롱한 첼레스타의 선율로 마무지지어지는 1악장의 피날레는 아찔할 정도다.
2악장의 도입부 역시...
인간의 모든 감성을 초월한 그 이상의 감성까지 자극하는 쇼스타코비치....
표효했다가 스러져가고....
기막힌 바이올린 독주와 목관악기들의 독주 퍼레이드가 이어지고...
가냘픈 현의 피치카토....
그 어느것 하나 얀손스가 표현해 내고자 하는것에 한치의 오차도 없이 BRSO는 연주해내었다.
3악장의 기막힌 선율의 연주를 들으면서 문득 생각했다.
글쎄...혁명이란 제목이 왜 붙었을까...
혁명이란 무시 무시한 곡에 이처럼 인간의 모든 감성이 녹아 들어가 스러져 버리게 만들다니 ...
어쩌면...
억압된 감정의 표출이 아니었을까...생각들었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 억압된 삶에서 더욱 증폭이 되어 내면에서 한없이 녹아 쌓이고 쌓이면서 그 한계를 뛰어넘는 감성까지 닿은건 아닐까 하는....
한 천재적 예술가가 승화시켜낸 엄청난 에너지....
극한에 까지 닿은 모든 선율과 소리 빛깔과 힘이 그저 내 온몸으로 파고 들어오고 있다는 거...
그 이외의 그 어떤 설명과 해설도 필요치 않는다.
3악장을 들으면서 간간히 망원경을 통해 얀손스를 바라보니...
이미 그는 이승의 사람이 아니었다.
어떻게 저런 표정이 나올 수 있는 지...
이미 천상의 사람이 되어 비상을 하고 있는 듯 했다고나 할까....
3악장 역시 모든게 소멸되어 가듯 스러져 가는 피날레가 아찔하다.
4악장은 표효한다.
지휘자도 엄청나고...연주자들도 엄청나다.
이제까지 비축했던 모든 숨은 에너지들을 더 이상 가둘데가 없어 폭발하듯 일순간에 표출해내는 연주는 정말 대단했다.
큰북에서 더 이상 큰 울림을 내지 못할 어마 어마한 울림을 필두로 해일처럼 일어난 마지막 피날레는 사람의 감정을 터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혁명가들이 이 부분에서 열광을 한걸까...
그렇다면 어떤 선율이 한때 우리나라에서 이 곡의 연주를 금지시킨 걸까....
단지 제목때문이었을까...
제목이 두렵고....이 블랙홀에 빠져들어 헤어나올 수 없는 인간의 모든 감성을 자극하는 매혹적인 선율과 내재된 에너지 때문일까...
엄청난 폭발음과도 같은 피날레와 지휘자의 몸짓에 객석은 일순간에 환호성으로 휩쌓였다.
수없이 많은 커튼 콜이 있었다. 혼신을 다한 개별 연주자에 대한 박수와 격려도 계속 이어졌다.
오랜 시간동안 한 순간도 잦아듦없이 환호성은 계속되었다.
드디어 얀손스 다시 지휘대에 오르고 홀안을 일순간에 또 숨죽이게 만든 앵콜곡...
너무나도 아름다워 눈과 가슴까지 시린 북 유럽의 대가-그리그의 솔베이그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아!!
이렇게 폭발한 가슴을 다시 녹여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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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폰을 켜니, 남편과 딸이 드라이브 삼아 데릴러 온다는 문자가 떠 있다.
5분 뒤면 도착한다고...
일행들이 모두 한마디씩 한다.
"에구~ 맨날 예술전당서 사는 여자를 뭐가 이쁘다고 데릴러까지 오고...암튼 딸바보에 부인바보...ㅋㅋ"
"그게 아니라 식구들과 가끔 야간 드라이브 하는걸 좋아해서...한강변의 야경도 멋지고...
내가 또 좋아라 방방 뜨니까....ㅋㅋ"
주차장 쪽으로 나가는데, 출연자 입구에 사람들로 북적대었다.
연주자를 좀 더 보려고 기다리는 사람들과 또 같은 연주자로서 아마 독일에서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친구들을 만나려고 기다리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의외로 우리와 같은 속도로 연주자들이 나오고 있었다.
혹시 이곳에 서 있으면 얀손스를 볼 수 있지 않을까...생각도 들었지만 발길을 돌려 밖으로 나왔다.
여늬때는 출연자들 버스가 오페라 극장쪽에 있는데, 오늘은 콘서트홀 쪽에 4대의 차량이 좌악 줄지어 있었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연주자들이 서둘러 차량으로 이동하는 것을 한참 동안이나 서서 보았다.
얼굴이 마주칠때 마다 인사를 했더니, 그들도 반가히 인사를 한다.
아이고~
남편이 기다리겠다~ㅋ~
제작년에 왔을땐 하루는 딸과 하루는 남편과 왔었기에 차안에서의 이야기 꽃이 마치 같이 연주를 본 양 자연스럽다.
이번에도 함께 했으면 좋았을 텐데....
행복에 겨운 밤이다.
Richard Strauss, Tone Poem 'Don Juan', Op.20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돈 후안'
Richard Strauss1864-1949
Herbert von Karajan, conductor
Berliner Philharmoniker
Symphony Hall, Osaka, Japan
1984.10.18
Herbert von Karajan/Berliner Philharmoniker - Richard Strauss, Don Juan, Op.20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보통 'R. 슈트라우스'로 약칭하는데, 이것은 '왈츠의 왕'으로 유명한 'J.(요한) 슈트라우스'와 구별하기 위해서이다)는 1864년 뮌헨에서 태어나 1949년 가르미슈에서 타계한 독일의 후기 낭만파 작곡가이다. 85년에 이르는 긴 생애 동안 세기가 바뀌고 세계대전이 두 차례나 일어나는 등 세상은 격변했지만, 그의 음악 스타일은 기본적으로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19세기 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신(新)독일악파의 후예였고, 여러 후기 낭만파 음악가들 중에서 재능과 실력 면에서 가장 걸출한 인물이었다.
R. 슈트라우스는 특히 교향시와 오페라에서 두각을 나타냈는데, 흥미롭게도 교향시는 주로 경력의 전반부에, 오페라는 주로 후반부에 내놓았다. 이 가운데 교향시 분야에서 그는 리스트의 후계자이자 궁극적인 완성자로 간주되는데, 여기에 소개하는 <돈 후안>은 그런 그가 독자적인 개성을 확립한 첫 교향시라는 의의를 지닌다. 다만 그는 리스트가 사용했던 '교향시(Symphonic Poem)'라는 명칭보다는 '음시(Tone Poem)'라는 명칭을 선호하여 그의 교향시들 대부분은 '음시'라는 명칭을 달고 있다. ▶R. 슈트라우스와 아내 파울리네 데 아나, 아들. 1910년.
사실 슈트라우스는 <돈 후안> 이전에 <맥베스>라는 교향시를 썼지만, 선배 지휘자 한스 폰 뷜로가 문제점을 지적하자 발표를 미루고 개작에 들어갔다. 또 그 작품은 넘치는 의욕에도 불구하고 리스트와 바그너의 영향이 채 가시지 않았고, 초연 직후 곡에 불만을 느낀 작곡가가 개정에 들어가는 바람에 출판이 더욱 지연되었다. 그러는 동안 <돈 후안>이 완성되어 초연되었고, 악보까지 출판되었던 것이다.
바이마르 궁정극장에서 슈트라우스 자신의 지휘로 치러진 <돈 후안>의 초연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 결과 슈트라우스는 일약 독일 음악계의 주요 작곡가로 부상했는데, 당시 그의 나이 겨우 24세였다. 이후 그는 교향시 창작에 박차를 가하여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돈 키호테>, <영웅의 생애>와 같은 명작들을 연달아 발표하여 독일 음악의 기수로 우뚝 서게 된다.
바람둥이에서 이상주의자로
돈 후안은 17세기의 티르소 데 몰리나(Tirso de Molina)와 몰리에르(Molière)로부터 20세기의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백 년 동안 예술가들의 시선을 사로잡아 온 캐릭터이다. 돈 후안은 14세기 무렵 스페인에 살았던 것으로 알려진 전설적인 바람둥이로, 일생 동안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여인들을 유혹하고, 사랑을 나누고, 떠나버리는 일을 무수히 반복했다. 그런 돈 후안을 어떤 이는 몹쓸 호색한으로 묘사했는가 하면, 어떤 이는 허식과 색욕으로 가득한 궁정 및 귀족사회를 풍자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기도 했다. 그중 모차르트의 유명한 오페라 부파 <돈 조반니(Don Giovanni)>는 돈 후안이라는 캐릭터의 한 전형을 음악화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시인 레나우(Nikolaus Lenau, 1802-1850), 1839년
그런데 19세기 중엽에 활약한 시인 니콜라우스 레나우(Nikolaus Lenau)는 돈 후안을 사뭇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헝가리 출신으로 슈바벤 파의 영향을 받은 그는 1843년에 쓴 극시에서 돈 후안을 지고의 사랑을 찾아 방황하는 낭만주의자이자 이상주의자로 그렸던 것이다. 레나우의 시 속에서 돈 후안은 늘 이상의 여인을 동경하며 모험을 감행하지만, 끝내 궁극의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쓸쓸한 고독 속에서 생을 마감한다. 사실 이런 변형은 헝가리인 특유의 정열과 집시들의 방랑벽, 슬라브적 우수와 독일적 정신성, 그리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정신병적 인자 등 레나우의 개인적 기질과 성향에 기인한 것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동시대의 낭만적 예술가들로부터 관심과 애호를 받기에 충분한 캐릭터를 창조한 것이기도 했다.
슈트라우스 역시 레나우의 세계에 매료되었는데, 돈 후안의 이상주의자적인 면에 호감을 느꼈고, 특히 그의 심리에 대한 레나우의 묘사에 강하게 이끌렸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그는 나중에 아내가 되는 여가수 파울리네 데 아나와 교제 중이었다. 파울리네는 아주 독특한 성격을 지녔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슈트라우스는 그녀의 성격을 “매우 복잡하고, 매우 여성적이며, 조금 괴팍하고, 조금 요염하며, 매 순간 기분이 달라진다.”고 묘사한 바 있다. 어쩌면 그처럼 수수께끼 같은 여성을 사랑했기에, 레나우가 표현한 ‘여성 탐구의 여정’을 거울삼아 한 편의 장대하고 변화무쌍한 음시를 작곡했던 것이 아닐까?
Fritz Reiner/Chicago Symphony Orchestra - Richard Strauss, Don Juan, Op.20
Fritz Reiner, conductor
Chicago Symphony Orchestra
Orchestra Hall, Chicago
1954.12.06
격정과 탐미, 그리고 허무의 음시
슈트라우스의 <돈 후안>은 3관 편성 오케스트라를 위한 관현악곡으로 전곡 연주에는 약 17~18분 정도가 소요된다. 이 작품의 최초 출판 악보에는 레나우의 시가 실려 있는데, 그 첫머리와 마무리는 대강 다음과 같다.
참으로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여성이기는 하나
헤아릴 수 없이 광대한 마(魔)의 나라여.
열락의 폭풍 속을 지나서
최후의 여인에게 입 맞춘 뒤 바로 죽어도 좋으리라!
이제 아름다운 폭풍은 멎고 정적만이 남았다.
모든 희망과 소원은 죽은 듯하다.
아마도 하늘의 섬광이 우리를 비웃고
우리 사랑의 힘을 흩어버리는 듯하다.
세상은 갑자기 황량한 어둠으로 변한다.
▶독일 화가, 막스 슬레포크트가 그린 돈 조반니(또는 돈 후안).
여인을 유혹하는 돈 후안(돈 조반니)의 모습을 그린 오페라 장면.
정열적인 D장조로 시작되어 음울한 e단조로 마감되는 슈트라우스의 음시는 이러한 구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처음에는 ‘열락의 회오리’를 나타내는 격렬한 주제로 출발하여, 빠르고 열광적인 흐름과 느리고 부드러운 흐름이 수차례 교대로 나타나 서로를 희롱하며 진행된다.
빠른 부분에서는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여성의 상징, 광대한 마의 나라’를 나타내는 선율과 돈 후안을 나타내는 주제가 복잡하게 얽히는 가운데 돈 후안이 종횡무진 세상을 누비는 모습이 그려지고, 느린 부분에서는 매혹적인 여인의 등장(바이올린 독주), 아름다운 여성 앞에 무릎을 꿇는 돈 후안의 모습, 돈 후안의 구애와 유혹 등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부친의 뜻을 거스르며 그에게 순종하려는 여인, 그가 정열을 바치지만 그를 거부하는 여인, 어둠 속에서 그에게 속아 유혹을 당하는 여인, 그의 열정적인 독백 속에서 떠오르는 여인, 그로 인해 상심한 나머지 갑자기 죽어버린 여인 등 레나우의 극시 속에서 암시되는 다양한 유형의 여인들 사이를 헤매며 ‘이상의 여성’을 찾아 방황하는 돈 후안의 모습이 압축적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돈 후안의 희망과 실망, 그리고 한때의 영웅적 승리 등이 한 폭의 장대하고 화려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이 정열적이고 매혹적이며 변화무쌍한 음악은, 그러나 결국 허무를 암시하듯 안타까운 여운을 남기며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간다.
추천음반
1.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지휘)/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DG
2. 루돌프 켐페(지휘)/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Warner/EMI
3. 프리츠 라이너(지휘)/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RCA
4. 마르크 알브레히트(지휘)/스트라스부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PentaTone
5. 마리스 얀손스(지휘)/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EuroArts *DVD
글 황장원(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 음악 감상실 ‘무지크바움’ 실장과 한국바그너협회 사무간사를 역임하였다. 무지크바움, 부천필 아카데미, 성남아트센터, 풍월당에서 클래식음악 교양강좌를 맡고 있다. <객석>, <스테레오뮤직>, <그라모폰>, <라무지카> 등에 칼럼을 기고했고 현재 서울시향 프로그램 노트를 담당하고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오늘의 클래식>명곡 명연주 2014.03.07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66&contents_id=50642
Shostakovich, Symphony No.5 in D minor, Op.47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Philippe Jordan, conductor
Gustav Mahler Jugendorchester
Royal Albert Hall, London
Proms 2013 Classical Music Festival
Host: Katie Derham
Philippe Jordan/GMJO - Shostakovich, Symphony No.5 in D minor, Op.47
이 교향곡은 열다섯 곡에 달하는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들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도 높으며, 종종 그의 최고 걸작으로까지 칭송되는 작품이다. 이 곡은 의미심장한 구도와 진지하고 치열한 흐름으로 인해 곧잘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에 비견되곤 한다. 무엇보다 이 곡은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가혹한 운명에 대한 저항, 투쟁을 통한 극복, 그리고 승리의 쟁취라는 베토벤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쇼스타코비치 자신도 작품의 발표에 즈음하여 작곡 의도를 다음과 같이 밝히기도 했다.
“이 교향곡의 주제는 인간성(인격)의 확립이다. 이 작품은 시종 서정적인 분위기로 일관하며, 나는 그 중심에 서서 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체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피날레에서는 이제까지 등장한 모든 악장의 비극적 긴박함을 해결하고 밝은 인생관과 삶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도록 유도했다.”
그런데 1979년, <증언>(쇼스타코비치가 만년에 구술한 내용을 망명한 소련의 음악학자 솔로몬 볼코프가 정리한 회고록)이라는 책이 미국에서 출판되면서, 종래의 인식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 책에 따르면, 이 교향곡 속에 표현된 즐거움은 무소륵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에서처럼 ‘강요된 즐거움’이며 ‘위협 속에서 만들어진 환희’라는 것이다. 또 당시 작가조합의 의장이라는 괴로운 직무를 수행해야 했던 파데예프는 자신의 비밀일기에 이 곡의 피날레에 대하여 “어찌할 길 없는 비극”이라고 썼다는 것이다.
물론 <증언>에 담긴 내용의 신빙성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논란이 지속되고 있지만, 자녀들을 비롯한 작곡가의 측근들이 대체로 수긍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책이 제기한 관점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성질의 것임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일까? 우선은 이 교향곡이 작곡되던 시점으로 돌아가 보자.
‘정당한 비판’에 대한 창조적 답변
이 교향곡을 작곡할 즈음 쇼스타코비치는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쇼스타코비치는 이미 1925년, 불과 19세의 나이에 음악원 졸업 작품으로 발표한 교향곡 1번이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소련 내에서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천재 작곡가로 급부상했다. 그 후 그는 교향곡을 두 편 더 발표했고 여세를 몰아 발레음악, 영화음악, 극음악 분야에도 진출하면서 승승장구했고, 그 결과 1930년대에 들어서자 ‘소련의 국보급 인물’로 추앙되기에 이른다. ▶교향곡 1번을 발표한 1925년 19살의 쇼스타코비치.
그러나 1932년, 스탈린 치하의 소비에트 정부가 국내의 체제 정비 강화책의 일환으로 예술계에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교의 지침을 내리면서 이 전도 유망한 작곡가는 위기에 직면한다. 그가 1934년에 의욕적으로 발표한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이 뒤늦게 스탈린의 불만을 사면서, 1936년에 당 기관지인 프라우다로부터 “음악이 아니라 황당무계”라는 혹평을 받았고, 후속작인 발레음악 <맑은 시냇물>도 무시무시한 비난을 들었다.
당시 소련 사회 전반을 공포로 짓눌렀던 숙청의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작품들에 ‘부르주아적’, ‘형식주의적’, ‘좌익 편향적’이라는 낙인이 찍히자 그는 심각한 신변의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결국 전위적인 신작 교향곡 4번의 초연을 몇 차례의 리허설까지 마친 상태에서 돌연 무기한 연기하게 된다. 이제 그는 위기를 타개하고 작곡가로서의 입지와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 결과 ‘당국의 정당한 비판에 대한 창조적 답변’이라는 명목으로 내놓은 새 작품이 바로 교향곡 5번이었던 것이다.
쇼스타코비치가 태어난 상트페테르부르크 겨울 궁전 야경.
1악장: 모데라토
d단조, 4/4박자. 상당히 복잡한 구성의 첫 악장은 변형된 소나타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조표는 없으나 주조성은 d단조로 파악된다. 곡이 시작되면 저현부와 고현부가 옥타브 간격으로 서로를 모방하는 카논으로 출발하며, 거친 도약이 이어지는 이 진행에서 제1의 주요 악상이 만들어진다. 곧이어 제1바이올린이 이와는 대조적으로 부드럽게 흐르는 듯한 선율을 꺼내 놓는데, 이것이 제2의 주요 악상이다. 이후 이 두 악상이 결합되고 발전하면서 점차 일정한 리듬이 부각되는데, 이 리듬은 이후 작품 전편을 관통하게 된다. 이 리듬이 반복되는 가운데 제1바이올린이 조용히 도약하며 불규칙한 라인을 그리는 부악상을 꺼내 놓고, 이후 플루트에서 인상적인 선율이 나오고 클라리넷이 그것을 이어받으면 제시부에 해당하는 부분이 마무리된다.
발전부는 이제까지 제시된 악상들의 자유로운 변형과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우선 비올라가 앞서 나온 부악상을 연주하다가, 그 마지막 부분이 저현부로 옮겨지면서 첼로와 콘트라베이스의 피치카토에 피아노가 더해져 무거운 분위기를 조성하면, 4대의 호른이 유니슨으로 제2의 악상을 확대하여 엄숙하게 연주한다. 이제 트럼펫에 이어 목관이 가세하면 템포가 빨라져 알레그로 논 트로포 부분으로 들어가고, 음악의 흐름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긴박해지면서 고조되어 격렬한 클라이맥스에 도달한다. 클라이맥스는 팀파니와 스네어드럼(작은북)의 연타 위에서 금관의 팡파르가 부각되어 마치 취주악으로 연주하는 행진곡의 양상을 띤다. 그리고 그 말미에서 실로폰이 가세하여 열띤 분위기 속에서 그대로 재현부로 진입한다.
재현부에서는 먼저 제1의 악상이 긴박하게 등장하여 악기군을 옮겨 다니며 숨 가쁜 카논을 이루다가 템포가 조금 떨어지면, 저음부를 제외한 옥타브 유니슨으로 격앙된 흐름이 한동안 이어지다가 마침내 강렬하고 준엄한 파국이 찾아온다. 이후 제시부의 템포로 돌아가서 부악상이 D장조로 재현되고, 플루트와 호른의 카논, 오보에 독주를 거쳐 코다(종결부)로 넘어간다. 차분하고 자유로운 흐름을 보이는 코다에서는 반음계적으로 상승하는 첼레스타의 울림이 인상적이다.
2악장: 알레그레토
a단조, 3/4박자. 전통적인 구성의 스케르초 악장. 저현부에서 빠르고 거칠게 부각되는 주제로 출발하며, 기저의 리듬은 거친 왈츠 또는 렌틀러 풍이다. 이 악장은 전체적으로 첫 악장에서 제시된 주요 악상에 대한 변주의 성격을 띠며, 스케르초답게 익살맞고 풍자적이며 요란하고 신랄한 느낌을 준다. 특히 이 악장에서는 온갖 다채로운 악기 사용법이 두드러지는데, 중간의 트리오에서는 마치 위태로운 곡예를 하는 듯한 바이올린 솔로와 조심스레 눈치를 보는 듯한 플루트 솔로가 등장하고, 이후 제1바이올린의 몽환적인 움직임은 다소 유령 같은 느낌마저 자아낸다. 또 후반부에서 실로폰의 활약도 인상적이다.
3악장: 라르고
f♯단조, 4/4박자. 아주 느린 템포로 진행되는 정서적인 악장으로, 호른을 포함한 모든 금관악기가 제외되어 있고, 현악부는 바이올린이 세 그룹, 비올라와 첼로는 각각 두 그룹, 그리고 한 그룹의 콘트라베이스로 세분화되어 있다. 따라서 극히 섬세하고 미묘한 음률을 엮어 보이는데, 각 성부는 명료하게 다루어져 전체적으로 깨끗하고 투명한 음색을 빚어낸다. 그리고 긴 호흡의 선율들이 면면히 이어지는데, 그중 하나는 첫 악장의 주요 악상에 기초하고 있다. 러시아의 민요를 연상시키는 이 선율들에는 복잡다단한 감정의 편린들이 새겨져 있으며 그중에는 엘레지(비가) 풍의 선율도 나오는데, 그 흐름이 점진적으로 고조되어 도달하게 되는 클라이맥스는 폐부를 찌르는 통절함을 자아낸다.
4악장: 알레그로 논 트로포
d단조, 4/4박자. 행진곡 풍의 피날레 악장으로 축약된 소나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취주악기들이 일제히 트릴로 불어대는 D음에 이어 팀파니의 강타 위에서 트럼펫과 트롬본이 용감한 행진곡 풍의 팡파르 주제를 연주하면서 출발한다. 이후 긴박하고 투쟁적인 흐름 위에서 팡파르 주제가 다양하게 변형되며 등장하다가, 어느 순간 템포가 떨어지면 팡파르 선율의 변형에 이어 바이올린에서 유려하면서도 고통스러운 선율이 새롭게 나타나 앞서의 느린악장을 떠올리게 한다.
다시 팡파르 주제가 등장하면, 스케르초 악장의 주제를 연상시키는 선율이 나타나 함께 어우러진다. 이제 음악은 열기와 박력을 가중시키면서 고조되어 마침내 장쾌하고 통렬한 클라이맥스에 도달하고, 마지막에는 팀파니의 당당한 타격 위에서 현악부의 반주 위에서 금관악기들이 힘차고도 의미심장한 팡파르를 연주하다가 베이스드럼(큰북)의 강력한 타격과 격렬한 투티로 마무리된다.
Bernstein/New York Philharmonic - Shostakovich, Symphony No.5 in D minor, Op.47
Leonard Bernstein, conductor
New York Philharmonic
Bunka Kaikan, Tokyo
1979.07.03
은폐된 혹은 굴절된 진실
이 새로운 교향곡은 1937년 11월 21일, 소비에트 혁명 20주년 기념일에 예브게니 므라빈스키가 지휘하는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초연되었다. 어떻게 보면 다분히 신고전주의적 어법으로 후퇴한 듯한 모습이었지만, 청중의 반응은 열광적이었고 쇼스타코비치는 당의 신뢰를 회복했다. ▶1930년대 쇼스타코비치 모습.
당시 한 비평가는 이 작품에 대해서, 1악장은 “자문… 또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며, 2악장은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대한 야유의 미소”, 3악장은 “눈물의 고뇌”에 넘쳐 있으며, 4악장은 작곡가의 말을 빌려 “이제까지의 악장들에 부쳐진 모든 의문에 대한 해답”이라고 해석했다. 또 다른 비평가는 이 곡이 “쇼스타코비치의 리얼리스트 예술가로서의 최초의 등장이며, 좁은 공간에서가 아니라 비로소 광범위한 청중에게 간명하고 표현적인 어조를 가지고 호소한 작품”이라고 추켜세웠다. 그러나 그러한 해석과 평가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우리는 당시 스탈린 독재 하의 소련에서 예술가들이 느꼈을 위협과 고뇌가 어느 정도였는지 실감할 수 없다. 소련의 붕괴 이후 공개된 갖가지 사료들을 통해서, 또 여러 증언들을 통해 당시의 억압적인 상황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해 볼 수는 있다.
필자는 이 교향곡의 2악장을 들으면서 앞서 언급한 <증언>에 나와 있는 다음과 같은 언급이 참으로 그럴듯하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건 마치 어떤 사람이 당신을 몽둥이로 때리며 ‘네 임무는 기뻐하는 것이다, 네 임무는 기뻐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당신은 부들부들 떨면서 일어나 행진하며 ‘우리 임무는 기뻐하는 것이다, 우리 임무는 기뻐하는 것이다’라고 중얼거린다.” 이렇게 보면 종종 이 교향곡에 따라붙곤 하는 ‘혁명’이라는 별명은 얼마나 아이러니한 것인가?
같은 책에서 쇼스타코비치는, 기분이 한껏 좋은 상태로 초연에 왔던 사람들조차 이 곡을 듣고 ‘울었다’고 증언했다고 한다. 과연 그들은 왜 울었던 것일까? 이 교향곡의 피날레는 과연 ‘마침내 쟁취한 승리’를 의미할까? 물론 과도한 해석이나 억측은 경계해야겠지만, 때때로 사람들은 자신이 흘리는 눈물의 진정한 의미를 미처 깨닫지 못하기도 하는 법이다.
그때 그들이 흘렸던 눈물이 환희의 눈물이었는지 비애의 눈물이었는지 지금 우리는 알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교향곡에서부터 쇼스타코비치의 곡예가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외적 현실에 대한 타협과 내적 진실을 통한 저항 사이에서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마치 그가 존경했던 말러가 그랬던 것처럼, 쇼스타코비치 역시 다섯 번째 교향곡을 통해서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미처 의도하지 않았던 ‘굴절된 이중성’의 시발점이기도 했다.
추천음반
1. 예브게니 므라빈스키(지휘)/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Erato
2. 레너드 번스타인(지휘)/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Sony
3. 베르나르트 하이팅크(지휘)/로열 콘세르트헤보우 오케스트라. Decca
4. 바실리 페트렌코(지휘)/로열 리버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Naxos
5. 마이클 틸슨 토머스(지휘)/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 SFS Media, DVD 영상물
글 황장원(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 음악 감상실 ‘무지크바움’ 실장과 한국바그너협회 사무간사를 역임하였다. 무지크바움, 부천필 아카데미, 성남아트센터, 풍월당에서 클래식음악 교양강좌를 맡고 있다. <객석>, <스테레오뮤직>, <그라모폰>, <라무지카> 등에 칼럼을 기고했고 현재 서울시향 프로그램 노트를 담당하고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클래식>명곡 명연주 2014.02.07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66&contents_id=48257
‘장미의 기사’라는 제목을 보고 상상하게 되는 모습은 아마도 ‘장미 문장(紋章)이 새겨진 방패를 든 기사(騎士)’ 같은 낭만적인 그림일 것입니다. 그러나 ‘장미의 기사’란 우리말로 옮기면 '함진아비’쯤 되는, 청혼의 전령을 뜻합니다. 18세기 빈의 귀족사회에서는 양가의 혼담이 이루어진 뒤에 신랑 쪽 친척 한 사람이 신부 될 처녀에게 은으로 만든 장미를 예물로 전달해 정식 청혼의 예를 갖추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사실 이런 ‘은장미 전달식’이 존재했다는 증거는 남아있지 않고, 그저 [장미의 기사]를 쓴 작가가 지어낸 전통이라고도 합니다). 그때 은장미를 들고 오는 친척 청년을 ‘장미의 기사’라고 불렀다는 것이죠.
모차르트를 모방한 20세기 오페라
1막은 베르덴베르크 후작부인(군사령관 부인)의 화려한 침실에서 시작됩니다. 서른 두 살의 후작부인(소프라노)과 부인의 정부(情夫)인 열일곱 살의 옥타비안 백작(메조소프라노)이 은밀한 사랑의 밤을 보내고 난 침대에서 두 사람의 사랑을 노래합니다. 둘이 정답게 아침식사를 마쳤을 때 밖이 소란스러워지면서 부인의 친척인 옥스 남작(베이스)이 들어오지요. 도망갈 곳이 없어 옷장 속에 숨었던 옥타비안은 옷장 속에서 하녀로 꾸미고 남작 앞에 나타나는데, 바람둥이 옥스 남작은 옥타비안이 진짜 여자인 줄 알고 옥타비안에게 집적댑니다.
침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후작부인과 그녀의 정부 미소년 옥타비안
슈트라우스는 이 옥타비안 역을 원래 소프라노 배역으로 작곡했지만, 후작부인과 음색을 달리 하기 위해 대부분의 경우 메조소프라노가 이 역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성 가수가 남장을 하고 남자 역할을 하다가 극중에서 다시 여장을 한다는 설정은 물론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을 모방한 것입니다. 메조소프라노가 분장한 미소년 옥타비안의 모습에서 관객은 누구나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10대 바람둥이 케루비노를 연상하게 되지요.
옥스 남작이 후작부인에게 자신의 결혼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는데, 그 사이에 다양한 사람들이 부인을 찾아와 인사를 하고, 유명한 테너 가수가 와서 사랑의 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후작부인은 장난으로 옥타비안의 초상화를 보여주며 그를 옥스의 결혼을 위한 ‘장미의 기사’로 추천합니다.
옥스 남작의 신붓감은 수도원에서 자랐고 열다섯 살이 채 안된 처녀로, 신부의 아버지 파니날(바리톤)은 작위를 돈 주고 사서 이제 막 귀족이 된 부호였습니다. 후작부인은 호색한에다 책임감 없는 옥스 남작을 경멸하지만, 어린 애인과 밀회하는 자신도 별로 나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 회의에 빠집니다. 자신이 늙어간다는 생각에 서글퍼진 부인은 ‘시간이 흐르는 걸 우리는 모르고 살지만 시간은 모래시계의 모래처럼 끊임없이 흘러내리지. 때로 한밤중에 그 소리를 듣고 시계란 시계는 모조리 멈춰놓지만 소용없는 일’이라고 노래합니다. 옥타비안이 머지않아 젊은 연인을 사귀고 자신을 떠나 갈 것이라는 생각에 괴로워진 후작부인은 옥타비안에게 맘에 없이 냉랭한 태도를 보입니다. 옥타비안은 부인이 자신을 멀리하려 한다며 화가 나 가버리고, 부인은 곧 후회합니다.
2막은 장미의 기사를 맞이할 준비로 온통 들떠 있는 파니날의 저택에서 시작됩니다. 수도원에서 자란 딸 조피(소프라노)는 결혼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으로 들떠 있습니다. 마침내 장미의 기사 옥타비안이 찾아와 조피에게 신랑감 옥스가 보낸 은장미를 건넵니다. 슈트라우스의 영롱하고 환상적인 음악이 무대를 채우는 순간 옥타비안과 조피는 첫눈에 반해 서로에게 빠져듭니다. ‘제가 이 영예로운 임무를 맡았습니다’로 시작되는 두 사람의 듀엣에 작곡가는 천상의 행복을 실감하게 하는 음악을 썼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서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함진아비와 신붓감이 첫눈에 반해 주위를 잊고 꿈속을 헤매는 이런 장면은 상당히 희극적이죠.
옥타비안보다 조금 뒤에 옥스 남작이 도착해 조피를 예의 없이 희롱하자 격분한 옥타비안은 칼로 남작에게 상처를 입히고, 파니날의 집은 아수라장이 됩니다. 조피가 남작과 결혼 안 하겠다고 버티자 아버지 파니날은 다시 수도원으로 보내버리겠다고 딸을 위협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옥타비안은 사람을 시켜 옥스 남작에게 편지를 보내죠. 남작이 눈독 들인 그 하녀(옥타비안 자신)가 내일 밤 남작을 몰래 다시 만나고 싶어 한다는 내용입니다. 신이 난 옥스는 ‘내가 없으면 그대는 날마다 슬픔에 싸여 살겠지. 하지만 나와 함께라면 어떤 밤도 길지 않을 걸...’이라는 자신의 왈츠 주제 선율을 되풀이하며 즐거워합니다. 대본가 호프만스탈은 몰리에르의 희극에서 이 호색한의 캐릭터를 얻어왔지만 슈트라우스는 옥스를 음악적으로 표현하면서 베르디 최후의 작품 [팔스타프]의 음악을 모방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 테레지아 재위기간(1745-65)의 빈 궁정에는 왈츠가 없었다고 합니다. 왈츠가 궁정에서 본격적으로 인기를 끈 건 프랑스 대혁명 이후의 일이라는 것이죠.
시간과 노쇠와 죽음에 대한 성찰
3막은 빈 근교의 조용한 레스토랑입니다. 옥스 남작은 이 음식점에 방을 잡아놓고 후작부인의 하녀를 기다립니다. 옥타비안은 다시 여장을 하고 나타나 옥스를 유혹하는데, 옥스는 하녀를 포옹하려 할 때마다 자기를 찌른 옥타비안의 얼굴이 그 하녀 얼굴에 오버랩되어 두려움에 떨죠. 그때 옥타비안이 밖에 대기시켰던 하녀와 고아들이 나타나 옥스를 남편, 아빠라 부르며 아우성을 칩니다. 그러자 경찰이 출동해 ‘풍속을 해친 죄’로 옥스 남작을 체포하려 하죠. 옥타비안의 전갈을 받고 현장에 들이닥친 파니날은 사윗감의 형편없는 행태를 보고 파혼을 선언합니다. 하지만 그곳에 나타난 후작부인은 다 장난이라며 경찰을 돌려보내 남작을 궁지에서 구해줍니다. 옥스 남작은 후작부인과 옥타비안의 은밀한 관계를 눈치 채지만, 조피 앞에서 침묵을 지킨 채 그 자리를 떠납니다.
옥타비안과 후작부인, 그리고 조피만 남게 되자 부인은 옥타비안이 새로운 사랑에 빠졌음을 알아차리고, 옥타비안을 조피에게 양보하기로 합니다. 부인이 먼저 떠나자 조피와 옥타비안은 뜨겁게 포옹하며 ‘이건 꿈일 거야’, 하는 아름다운 듀엣으로 극을 마무리합니다.
조피에게 은장미 장식을 전달하는 ‘장미의 기사’ 옥타비안. 이 순간 옥타비안과 조피는 첫눈에 반하게 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 [돈 후안] 등의 교향시로 유명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바그너 다음으로 비중이 큰 독일어 오페라 작곡가입니다. 궁정음악가인 아버지 덕분에 뮌헨 궁정악장에게 음악 수업을 받았고, 대학에서 철학과 미학을 전공하며 쇼펜하우어를 탐독했다고 합니다. 바그너와 리스트에 심취해 초기에는 그들의 아류로 평가되는 작품들을 작곡했지만, 차츰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찾아내 매끄럽고 감각적인 선율의 오페라들을 남겼습니다. 초기 오페라인 [살로메]와 [엘렉트라]에서 음악적으로 아방가르드의 최첨단으로 치달았던 슈트라우스는 [장미의 기사]에서 다시 조성음악과 ‘멜로디 오페라’로 복귀했고, 이후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 [그림자 없는 여인], [아라벨라] 등 최고의 소프라노 배역을 위한 작품들을 썼습니다. 뮌헨, 바이마르, 베를린, 빈 오페라극장 지휘자를 역임하며 활발하게 음악활동을 펼친 그는 말년에 나치 정권에 동조했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장미의 기사]의 성악부 형식은 가벼운 레치타티보와 아리오소(arioso. 아리아와 레치타티보의 중간 형태)를 오가다가 차츰 고조되는 감정을 이따금 풍성한 멜로디로 폭발시킵니다. ‘시간과 노쇠와 죽음에 대한 성찰’을 주제로 택한 이 오페라의 대본가는 “행복하고 황홀한 한 순간에 영원한 시간이 깃들어 있는가?”라고 관객에게 묻고 있는 듯합니다.
추천 음반 및 영상물
후작부인-옥타비안-옥스 남작-조피 순
[음반]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 크리스타 루트비히, 오토 에델만 등,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1956년 녹음
[음반] 레지느 크레스팽, 이본느 민튼, 만프레트 융비르트 등, 게오르크 숄티 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1968년 녹음
[DVD] 르네 플레밍, 조피 코흐, 프란츠 하블라타, 디아나 담라우 등, 크리스티안 틸레만 지휘,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빈 필하모니아 합창단, 헤르베르트 베르니케 연출, 2009년 바덴바덴 페스티벌 극장 실황(한글자막)
[DVD] 펠리시티 로트, 안네소피 폰 오터, 쿠르트 몰, 바바라 보니 등, 카를로스 클라이버 지휘, 빈 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오토 쉥크 연출, 1994년 빈 공연 실황
- 글
- 이용숙 음악평론가, 전문번역가
- 이화여대 독문과 및 대학원 졸업하고 독문과 강사를 역임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 및 음악학 수학, 서울대에서 공연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연합뉴스 오페라 전문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오페라, 행복한 중독], [사랑과 죽음의 아리아] 등이 있다.
앵콜곡/Edvard Grieg - Solveig's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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