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클래식(2009년)

서울시향특별연주회-유럽투어기념/2009.8.21.금/예당

나베가 2009. 8. 11. 09:19

서울시향 특별연주회 - 유럽투어기념

 

 




클로드 드뷔시의 교향시  <바다>
 「바다」"La Mer"
    「바다」는 드뷔시 양식의 또다른 분수령이다. 눈부시게 
짜인 세 편"교향적 소묘"-드뷔시는 이 작픔을 이렇게 불렸
다-의 첫곡 "바다의 세벽부터 대낮까지"는 침을 삼키게 하
는 고요함에서 작열하는 태양까지드넓은 표현영역을 종횡
무진하는 복잡한 에피소드의 연결이다. "파도의유희"에서는 
부드러운, 사이렌의 노렛소리 같은 주제가 빠르고 날쌔게
움직이는 리듬을 타고 뛰논다. "바람과 바다의 대화" 의 빠
르기는 드뷔시는 "활기차고 소란스럽게"라 지시했다. 이 곡
은 위협하는 듯한 팀파니와 베이스 드럼, 낮은 현의 소리로 
시작한다. 뒤에 또다른 사이렌의 소리 같은 주제가 요동치
는 바다 위에 뛰놀지만 한껏 고무된 클라이맥스에 삼키운다.

                        -명곡해설- 
 

바다위의 새벽에서 정오까지
1.De I'aude amide sur la mer 



파도의 출렁임 2.Jeux de vagues Allegro-Anime.........0:06:33


바람과 바다와의 대화 3.Dialogue du vent et de la mer Anime et tumultueux....0:08:16


Orchestra de Paris_Daniel Barenboim
...........*..*...........
드뷔시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 났습니다만

아버지가 유약하였는 데다가 어머니의 히스테리가

장난이 아닐 정도로 심하여서 늘 아버지를 못살게 들들 볶아 대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집안에서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면 드뷔시는 말없이

집을 나서서 바닷가로 나가 어두컴컴해 질때까지 마냥 그렇게

우두커니 혼자 앉아 있었다고 이웃들이 증언하고 있습니다만,

심란할 때면 늘 드뷔시는 바다로 나갔고 이윽고 바다에 중독이 되어

버렸다죠.

교향시 <<바다>>는 바다의 물결이 출렁임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칼 한것은 드뷔시가 실제 배를 타본것은 단 두번이고

그것도 가까운 영불해협을 단 두번 오간것 밖에는 없다고 합니다.

   

창문을 열어 보니 회색빛의 구름이 달빛을 따라 유유히 흐르고 있고

그 달빛과 구름이 이루어 내는 조화에 이끌려 층계를 내려와

이끌려 가다 시피 쫓아갑니다.

구름과 달을 쫓아 시장을 지나고 축제가 벌어지는 거리의 풍경을 뒤로 한채

계속 가다 보니,

마침내 병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고질이 생겨서

이윽고 바닷가에 서있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곳에서 드뷔시는 바다저편에서 들리는 인어들의 소리를 들으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한없이 바다저편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집에서는 어머니의 히스테릭한 고함소리가 들리지만,

바다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여성의 소리인 인어의 소리로써 보상을

받으니 중독될만도 합니다.

 

Piano Concerto No.3 , Sz 119

바르톡 / 피아노 협주곡 3번

Bela Bartok, 1881~1945

Paul Sacher / Orch. des Sudwestdeutschen Rundfunks

이것은 바르톡의 '백조의 노래'이다. 백조는 죽을 때 한결 아름다운 목소리로 운다고 하는 전설에서, 음악가의 마지막 걸작을 이렇게 이름짓고 있다. 슈베르트의 마지막 가곡집이나, 모차르트의 제 39번 교향곡도 이처럼 일컬어지고 있다.바르톡은 백혈병에 걸려 목숨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비올라 주자 프림로즈로부터 의뢰받았던 비올라 협주곡의 작곡을 일시 중지하고 급히 이 피아노협주곡의 완성에 힘썼지만, 끝의 17마디가 스케치인 채 남고 말았다. 초연은 1948년 2월 29일에 피에르 데르보지휘의 악단 콩세르 파 드 루에 의했고, 피아노는 발레리 수델이 맡았다. 남아 있던 17마디는 스케치에 의해 제자 티보르 셀리가 완성했다. 이 「피아노협주곡」은 부인 디타 파스트리를 위해서 쓴 것이라고 하는데, 자주 않는 병과 생활고를 극복함에 있어 부인의 내조(內助)는 대단한 것이었으므로, 생애의 마지막 작품을 부인을 위해서 바쳤음은 당연한 일이리라. 부인에 대한 사랑을 담은 아름다운 마음이 전 곡에 향기를 내뿜고 있다.

제1악장 : Allegretto, E장조, 3/4박자, 세 도막 형식, 테마는 헝가리의 민요적인 독특한 리듬인데 유동적인 선율이다. 따라서 현대적인 작곡 기교로 힘차게 제1, 2테마가 전개된다.


1악장 (Allegretto)
Dinu Lipatti, Piano
Paul Sacher, Cond
Orchester des Sudwestdeutschen Rundfunks

제2악장 : 아다지오 렐리지오조, 4/4박자, 세 도막 형식


2악장 (Adagio religioso)
Dinu Lipatti, Piano
Paul Sacher, Cond
Orchester des Sudwestdeutschen Rundfunks

제3악장 : 알레그로 비바체, E장조 빠른 템포의 3/8박자, 론도 형식.


3악장 (Allegro vivace)
Dinu Lipatti, Piano
Paul Sacher, Cond
Orchester des Sudwestdeutschen Rundfunks

바르톡, 벨라 (1881.3.25∼1945.9.26)

헝가리의 작곡가. 나지센트미클로슈 출생. 5세 때부터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우고 10세 때는 자작 피아노소품을 연주할 정도의 음악적 재능을 발휘하였다. 1899년 부다페스트 왕립음악원에 입학하여 피아노를 토만(Thoman Istvan)에게, 작곡을 쾨슬러(Koessler Janos)에게 배웠다. 이 시기에는 F.리스트, J.브람스, W.R.바그너의 영향을 받았으나, 1902년 R.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Also Sprach Zarathustra》의 초연을 듣고 작곡기법에 관한 깊은 계시를 받았다. 이러한 기법상의 영향과 민족의식의 결정이 이 무렵 작품의 토대가 되어 교향시 《코수트:Kossuth, symphonic poem》(1903) 《랩소디:Rhapsody》(1904) 등이 작곡되었다.

1905년부터 코다이와 함께 헝가리민요의 수집을 시작, 조국의 농민음악을 다룬 일련의 작품을 썼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그는 인상파의 화성법, 쇤베르크의 표현주의, 스트라빈스키의 원시주의 등의 영향을 받으면서 독자적인 스타일을 확립해 나갔다. 즉 피아노곡 《알레그로 바르바로:Allegro barbaro》(11), 발레음악 《허수아비왕자:The Wooden Prince》(16), 오페라 《푸른수염공작의 성(城):Duke Bluebeard’s Castle》(11) 등은 이 무렵의 작품으로 그의 명성을 떨치게 한 최초의 작품들이다.

그 후 두 곡의 바이올린소나타(21∼22)를 작곡한 시기부터는 새로운 작풍을 보이고 있으며, 그는 있는 그대로의 민요를 소재로 한 작법을 지양하고 인상파적인 기법, 쇤베르크의 음렬작법과 민족성이 융합된 독자적 작법을 사용하였다. 이런 그의 작풍은 중기의 첫번째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피아노소나타》(26)와 《제l피아노협주곡》(26)에서 잘 구현되었다. 버르토크가 익힌 이러한 작법은 민족적 색채를 기조로 하면서 종래의 조성이나 민요의 음계에 머물지 않고 선율에서 사용하는 음과 반주에서 사용하는 음 사이에 공통음을 취하지 않는 방식에서 그의 비상한 긴장력과 밀도 높은 작품들을 낳게 하였으며, 이 밖의 일련의 작품군 제3·제4·제5현악4중주곡(27,28,34), 《현악기·타악기·첼로를 위한 음악》(36) 등 20세기 최대의 걸작들을 쓰게 한 것이다.

30년대 후반 바르토크는 가중되는 나치즘의 압박을 피해 40년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그 후의 미국 생활이 그의 후기로 구분되며, 이때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43) 《무반주 바이올린소나타》(43) 등을 작곡하였다. 이들 작품에서는 중기의 강도 높은 긴박감이 쇠퇴한 대신 맑고 평명(平明)한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뉴욕에서 가난과 백혈병으로 불행한 만년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났다.

 

La Valse(라 발스)


처참한 전쟁은 사람의 마음을 버린다. 1914년에 발발한 제 1차 세계대전은 신경질적인 라벨에게는 커다란 타격이었다. 1919년 그는 <나는 두려울 만큼 슬프다>고 술회한적이 있다. 전쟁 후 2년쯤 그는 극도의 불면증에 걸려 거의 작곡활동을 할 수 없었다. 이제까지 항상 미소짓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조그마한 체구는 볼품이 없게 되었고 숱이 검던 머리카락은 반백이 되었다.(그 뒤에 아예 백발이 된다.) 세상에 대한 혐오, 고독, 끝없이 빠져 들어가는 우수의 심연.... 이와같은 그의 성격상의 변화는 당연히 음악에도 나타났다. 이 <라 발스(왈츠)>는 바로 그러한 시기에 탄생되었다.

 19세기 중엽의 비엔나 왈츠는 더없이 우미하고 명랑한 왈츠였는데, 대전을 치른 뒤의 사람들의 생활은 어떠한가? 그리고 음악은? 라벨은 전쟁이라는 광란의 시대를 통해서 좋았던 시절의 비엔나왈츠를 찬미하여 또 현세에 살아가는 모습을 엄숙히 바라보려 했던 것이다. 라벨은 악보에 이렇게 쓰고 있다.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 사이로 왈츠를 추는 사람들이 보인다. 구름은 점점 걷혀가고 호화로운 홀에서 춤추는 사람들의 모습이 점점 뚜렷이 보인다. 홀은 점점 밝아지고 드리워진 샹들이에의 조명은 찬연히 빛난다. 1855년 무렵의 궁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