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C쿰부히말,로왈링트래킹39일(2013

50.로왈링/드로람바오빙하(Drorlmbao Glacier)-트라카딩 빙하(Trakarding Glacier)에서 공포의 위기를 만나다.

나베가 2014. 3. 20. 01:09

 

 

눈앞에 펼쳐진 장엄한 로왈링 히말의 풍광에 사로잡혀 두려움 조차 까마득히 잊은 순간이었다.

한바탕 얼음땡이 된 채로 그 사로잡힘을 만끽했다고나 할까....

꿈도 꾸어보지 못한 세상...

영화속에서 조차 보지 못한 광활하다 못해 공간감 마저 상실해 버린 하얀 설원의 땅.....

 

 

 

현실감을 못느끼는 것이 어디 그뿐일까....

사방에서' 우르릉 쾅' 거대한 소리와 하얀 눈보라를 일으키며 떨어지는 눈사태.... 

엄청난 희귀한 바위 산 바로 위에는 어마 어마한 빙하 덩어리가 사이 사이 에메랄드 빛을 내 뿜고 있고...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흐르는 물줄기를 거대한 고드름으로 대신하여 메달고 있는 모습은 판타스틱하다 못해 기이하게 느껴진다.

 

근데, 이쯤되면 우리 지금 꽁꽁 얼어붙어 있어야 하는거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뜨거운 열기를 막아내야 한다니...

 

 

 

멈춰 얼어 붙었던 발걸음을 떼어 우리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조심해서 걸어갔다.

아!!

그러고 보니,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이 바로 타시랍차에서의 마의 구간이라고 대장님께서 말씀하신 곳인 거잖아?

여기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곳이 15m의 절벽위라 이거지??

 

그렇다면 여기에서 어디로 내려간다는 거지??

꼭 여기로 와서 내려가야 하는거야??

눈을 부릅뜨고 한바퀴 주변을 돌아보며 다른 곳을 탐색해 보았다.

아!!

그래도 이곳을 통해서 내려가는 것이 제일 낳은가 보네~ㅠㅠ

 

 

배낭을 벗어놓고 아래를 내려다 보니, 기막힌 트라카딩 빙하가 초롤파 호수까지 좌악~~ 한 눈에 펼쳐 보인다.

그 장엄한 모습에 또다시 넋을 놓고 서 있었다.

 

그때 펨파가 와서 한마디 거둔다.

저 아래 빙하에서 오늘밤 우리가 캠프를 칠거라고...

이곳에서 내려가기가 매우 위험하지만, 이곳만 무사히 잘 내려가면 캠프지까지는 2시간여만 가면 된다고...

 

 

 

 

 

 

 

주변을 보니, 바로 이곳에서 일본팀과 미국팀이 캠프를 치고 사투를 벌였었던 흔적이 역력했다.

아!!

그랬구나~

저 아래에서 캠프를 쳤다간 연일 쏟아지는 눈사례에 어느 순간 캠프장이 파묻힐 위험도 있고,

또 눈사태의 위험도 만날 수 있으니, 이 험한 절벽을 올라 바위위에서 캠프를 쳤던거야~

그 많은 인원이 그 추위와 폭설속에서 이곳을 오르기는 또 얼마나 힘들었을 것이며, 그 공포감은 또 어땠을까....

순간...뗑보에서 만났던 그들의 엉망이 된 얼굴과 고통의 빛이 다시금 떠올라 가슴이 뭉클해졌다.

 

 

 

 

아!!

그런데 오늘은 이처럼 날씨가 찬란하네~

 

한참을 이곳에서 쉬고있던 포터들과 키친보이들은 먼저 하산을 해서 캠프사이트를 구축하기로 하고 출발을 했다.

총바는 이곳에 밧줄을 설치하느라 정신없이 분주하다.

그나 저나 크램폰도 없이 저 무거운 짐을 어찌 내려보내고 하산을 할까....여간 걱정스럽지가 않다.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그들의 발자욱을 따라 절벽끝으로 가보았다.

그러나 도저히 위험해서 그들의 내려가는 모습을 보기까지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었다.

 

 

우린 그만 포기하고 아침에 왕다가 준비해준 점심을 먹기로 했다.

김밥이라고 해서 엄청 기대를 했건만....

아놔~~ 맨밥을 김에 둘둘 만게 다라니....ㅠㅠ

소금간과 참기름, 깨소금이라도 넣어 비벼 말을것이지....너무해~ㅠㅠ 

 

그래도  타시랍차 패디 그 절벽끝에서 눈을 녹여 밥을 지어 김밥까지 싸고 감자까지 삶아 주었으니 고맙기만 하지~

이제까지는 매번 점심은 그냥 대충 간식으로 떼웠었잖아~

그래~ 이것도 감지덕지다.

 

물을 마셔가며 간도 없는 맨김밥을 꾸역 꾸역 먹고, 감자도 먹었다.

그래도 허기지었던 몸에 에너지가 만땅 채워지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닥칠 시련의 암시같은 것일줄이야~

히말의 정령이 그나마 우리가 견디어 낼 수 있을 만큼의 최소한의 배려같은 것이었다고 말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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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하여 2시간여만 가면 오늘의 캠프사이트라고 했기도 했고...

우리가 육안으로 봐도 바로 고지가 저기 코앞인 듯 그리 가깝게 느껴졌기에,

우린 아이들을 따라 가지 않고 여기에서 대장님을 기다리며 풍광을 즐기기로 했다.

 

다시는 못올....

이 꿈의 설국에 한 시라도 더 있으려고...

 

 

 

 

이미 구릿빛이 되어 버린 얼굴이 아예 깜둥이가 되든 말든, 가까스로 햇빛을 조금이나마 피할 수 있는 바위에 비닐을 깔고 반쯤 누워

다시 못올 설국의 세상에 빠져 들었다.

 

와아~~

저기 저거 독수리잖아~

근데 이렇게 높은 곳까지 독수리가 날아 오르네~

하긴 타시랍차 패디에 올라서도 있었지~

아!! 역시 제왕이란 이름이 어울리는 독수리야~

멋져!!

 

마치 여기까지 왔음을 축하라도 해 주듯 여러 마리가 퍼레이드라도 벌이듯 주변을 빙빙 돌았다.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 지....

2시간 반여가 지난 뒤  마중을 나간 총바와 왕다, 그리고 대장님이 드디어 도착을 했다.

우린 이제 본격적으로 하산할 준비에 들어갔다.

헬멧을 쓰고,하네스를 입고, 밧줄을 이을 튼튼한 캬라비너를 매달았다.

그리고 어쩌면 다시는 못입게 될지도 모를...이 멋진(?)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하산하면서는 누구도 이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줄 사람이 없으니....ㅠㅠ

 

 

 

 

드디어 하산 시작이다.

본격적인 밧줄을 이을곳까지 내려가는 일도 만만찮게 위험해서 매우 힘들었다.

먼저 왕다가 우리를 도와줄 중간지점까지 내려갔다.

이젠 진짜 뗑보에서 처럼 연습이 아니라 우리가 내려가야 한다.

이번에도 이풀이 먼저 내려갔고, 이어서 내가 내려갔다.

보기에는 매우 높아서 두려웠지만 뗑보에서 처럼 바위가 안으로 휘어져 밑이 보이지 않는 수직코스가 아니라서 훨씬 수월했다.

 

밧줄이 끝난 지점에서부터도 매우 험준했지만, 다행히 왕다의 도움을 받으며 모두 무사히 하산을 했다.

 

 

위에서 보았던것과는 달리 평탄해 보였던 트라카딩 빙하를 걷는 일은 매우 가파른 내리막길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눈앞에 펼쳐진 장엄한 모습에 순간 순간 한없이 멈춰서기를....

그러던 어느 순간에 설산 꼭대기가 붉게 타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우린 탄성을 질었다.

 

"우와~ 저녁 노을이다~"

 

 

그러나 이 빙하 한 가운데에서 노을을 맞이했다는게 무엇을 의미하는 지...그 두려움을 아는데는 불과 얼마 안가서였다.

워낙에 고도가 높은 산에 둘러쌓여 있는 곳이라 트라카딩 빙하엔 순식간에 어둠이 찾아 들었다.

 

헐~

우린 헤드랜턴도 없는데....

이제껏 여정에서 단 하루도 늦은 시간에 도착한 적이 없는 우린 배낭의 무게를 줄인다고 그만 헤드랜턴을 배낭에 챙기지 않은 것이다.

정말 이 계절엔 눈이 안온다고...쿰부에서 거창한 12발 크램폰외에 일반 아이젠을 챙기지 않은 것과 똑같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다행히 아직은 주변이 온통 하얀 세상이라 그 빛으로 걸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 고개만 넘으면 바로 우리 캠프 사이트가 나타날것 같았던 것과는 달리 똑같은 풍광의 연속이었다.

거대한 밀림속에서 헤매는 듯한....

가도 가도 끝없고....똑같은 풍광이고....마치 귀신에 홀린 듯한....

 

뗑보에서의 월광 소나타를 기대해 보았지만, 보름달이었던 그 달이 지금쯤은 얼마나 줄어들었을 지...

아니면 거대한 산에 휩쌓인 트라카딩 빙하를 비추려 높이 떠오르기까지는 시간이 더 있어야 하는 지...

한 줄기 희망인 달빛 조차도 야속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2시간만 가면 된다던 캠프지는 보이지 않고, 왕다도 아까 휘익 지나쳤고, 늘 마중 나오던 포터들도 이 시간까지 아무도 마중 나오지도 않고...

더구나 이렇게 깜깜해졌는데...

랜턴도 없고, 세르파 총바도 안나타나고....

상황이 이렇게 되니, 오만가지 불길하고도 허튼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메워왔다.

 

우리는 발걸음을 멈췄다.

위태롭기 그지없는 너덜 바위 길로 된 하얀 눈으로 덮힌 빙하 위를 어둠속에서 걷는다는건 너무나 위험한 일이었다.

아니, 한 발자욱도 뗄 수가 없었다.


그래~

뭔가 잘못된게 분명해.

하지만 아까 왕다도 지나갔으니까 누군가 나타날거야~

 

습하고 차가운 한기가 온 몸을 덮쳐왔다.

히말라야 패딩을 덧 입었지만 아무래도 이 습한 기운을 감당해 내지 못할거 같아 추위에도 불구하고 얼른 패딩과 고어 쟈켓을 벗고

고어쟈켓 안에 두꺼운 히말라야 패딩을 입고 위에 고어 쟈켓을 입었다.

그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방이 고산으로 둘러쌓여 있고 그 가운데 빙하에서 부터 올라오는 냉기는 금방이라도 온몸을 얼어붙게 할듯 달려들었다.

 

아!!

이대로 있다간 얼어 죽을것도 같은데....ㅠㅠ

이건 일본 원정대팀과 미국 원정대팀 40여명이 함께하며 느낀 공포감보다도 훨씬 더 큰 생전 처음으로 맞는 공포감이었다.

 

 

 

그때 기적같이 총바가 우리앞에 나타났다.

우리가 랜턴이 없다고 하자, 꼼짝도 하지 말고 이곳에 그대로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는 대장님을 찾으러 그는 다시 떠났다.

캠프사이트를 못찾았다는 청천 날벼락 같은 어처구니 없는 말을 남기고는....

 

분명 총바가 가르쳐준 캠프 사이트는 벌써 지났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가도 나타나지 않아서 총바도 적당한 곳에 배낭을 풀어놓고는 우리가 걱정이 되어서 되돌아 왔다는 것이었다.

 

 

 

칠흙같이 깜깜한 하늘에선 주먹만한 별들이 쏟아져 내렸다.

아!! 세상에~ 저 별들 좀 봐~

그 와중에서도 탄성이 터졌다.

 

마치 우리의 공포심을 잠재워 주려고 히말의 정령이 그리한 것 처럼....

이제까지 본 그 어떤 별보다도 찬란한 빛을 내며 판타스틱한 풍광을  만들어 주었다.

 

다행히 생각보다 빨리 헤드랜턴을 하고계신 대장님과 총바가 나타났다.

하지만 추위에 허접한 랜턴의 배터리가 금방 달아버려서 배터리를 갈아 끼웠지만 작동을 하지 않는것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추위에 배터리가 노출되면 작동을 안한다. 난 그것도 모르고 고장났다고 내 손전등을 버렸다.ㅠㅠ

 

할수없이 우린 총바의 랜턴 하나로 무작정 캠프사이트를 찾아 곡예를 하듯 위험천만 날카로운 빙하 능선을 걸었다.

대장님은 왕다를 기다리신다고 우리보고 먼저 가라고 하셨지만, 그곳에 그냥 계시면 얼어죽는다고 같이 움직이기로 한것이다.

총바가 먼저 앞서서 가서 불빛을 비춰주면 그 실낫같은 불빛을 따라 우린 걸었다.

 

왠지 그냥 불길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찼지만, 그래도 내일 해가 뜰때까지 이렇게라도 계속 걸으면 살 수는 있을거라는

실낫같은 희망이 정신력을 가다듬게 만들었다.

 

아!!

아침도 부실했는데...아까 꾸역 꾸역 김밥과 감자까지 다 먹길 너무나 잘했어~


그래~

우린 해낼수 있어.

대장님도 계시고, 총바도 있잖아~

계속 움직일 수만 있으면 돼.

 

 

 

이렇게 몇 시간을 걸었는 지...

그때 저만치에서 가녀린 불빛이 나타났다.

아~ 우리 아이들이다.

펨파와 쿵가 그리고 파상이었다.

 

잠시 언쟁이 붙었다.

왜 가르쳐준 캠프사이트를 지나쳤느냐는게 총바의 말이고, 이들은 젤 앞서가던 파상이 그곳을 지나쳐 너무 멀리 가버려서 할수없이

나머지 포터들도 다 그를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 것이 그만 다음 캠프지까지가 너무 멀리 있었던 것이었다.

기가 막힐 일이지만...우리 모두를 책임져야 할 총바는 동분 서주 바빴고, 그 다음 대장격인 왕다 조차도 대장님을 케어하느라 늦게가게 되어서

그만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이었다.

 

어쨋든 이젠 아이들을 만났으니 공포감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됐다.

불빛이 약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들이 랜턴 불빛이 있어서 걷는데 속도감도 붙었다.

 

금방 일것 같았던 기대감과는 달리 캠프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 아까 그 암벽위에서 바라보았을때는 초롤파 호수도 지척인것 처럼 보이더만, 이렇게 몇 시간을 걸어도 똑같은 풍광의 연속이라니...

 

결국 밤 11시반에 우린 캠프지에 도착을 했다.

이 험한 설원을 무려 16시간을 ....

그것도 새벽 5시에 출발한다고 해서 3시반부터 일어나서 먹은거라곤 대충 때운 아침과 맨김밥 한줄과 감자 두알과 삶은 계란 1개...

몸도 마음도 지친데다가 긴장감까지 풀어져 옴짝 달싹도 할 수가 없었다.

저녁도 싫다고...그냥 자겠다고 했더니, 망고 통조림을 데워서 가져왔다.

조금 먹고는 옷도 다 입은 채 그대로 침낭만 겨우 편채로 쓰러져 잤다.

 

동이 틀때까지 걸을 수만 있다면....

이런 심정이었는데....이렇게 침낭속에서 잘 수 있는것만으로도 너무나 다행이다. 

 

 

 

Verdi 1813~1901
La Traviata
(Act1) Prelude